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낸 것도 뉴턴역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에는 유태교 신자였고, 불교를 일으킨 석가는 힌두교 신자였다.
피카소와 같이 독창적이고 개성이 풍부한 예술가도 젊었을 때는 사실적인 데생을 반복했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사람은 분명 기존의 체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들이었다는 예는 모든 학문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변혁이 실제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 때까지의 패러다임이 성숙되어 있어야한다.
그리고 현재의 패러다임을 성숙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가 착각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착각하는 존재이다.
나도 왜 이렇게 인간이 착각하도록 태어났는지 잘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인간은 착각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먼저 들어온 정보가 견해가 된다'는 의미의 선입견(先入堅) 속에서 살아가고,
게다가 오로지 '오감(五感)'을 통해서 밖에 정보를 해석하지 못한다.
돌고래처럼 초음파를 듣지도 못하고, 독수리처럼 멀리 보지도 못하고, 강아지처럼 냄새를 잘 맡지도 못한다.
근데 그러면서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이 다 진실인 줄 알고 착각하는 존재다.

그 수 많은 착각 중에서..사람들이 가장 잘, 많이, 엄청나게, 무지하게 착각하는 것이 바로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 so, 나는 특별하다'라는 착각이다.
이 착각은 일견 진실이자 착각이다. 참 재미있게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 내가 있어야 이 세상이 경험되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것
참 맞는 말 같다.(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이 자존감으로 잘 가게 되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지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본인의 인생은 참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안 그래도 나만은.. 다를 것이다.. 라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원랜드나 로또에 사람들이 왜 가겠는가?
잃을 확률이 너무나 높은 곳에..
확률적으로는 답이 이미 나와있음에도 왜 자꾸 그런 짓을 반복하는 걸까?
왜냐면 '나만은.. 이번에만큼은.. 설마..'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시드니 카지노에서 그랬다;)

즉, 우리는 세상 사람들은 나를 주시하고 있고, 내가 실수하면 다 나를 비난할 것이고, 내가 오늘 멋을 부리면 다들 나를 보고 부러워 할 것이라는 '철저한 착각과 스토리'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어떤 일을 성공하면 '내가 잘나서 잘 된 것이고, 어떤 일을 못하면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이다 혹은 남들이 못나서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자만도 자책도 많이 하게 된다.

맨 윗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 역사는 어떤 한가지를 증명하고 있다.
'나'라는 것은 모든 의미를 만들어 내지만 또한 혼자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음을..
패러다임이 성숙되지 못한 시점에서의 어떤 '특별한 천재'는 단지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이는 '광인'이 될 수도 있고. 패러다임이 성숙된 시점에서의 어떤 '광인'은 시대가 주목하는 '천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뉴턴이 그 시점에서 그런 업적을 낳게 된 것은, 그 전까지의 모든 수학적 체계가 완성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고, 아인슈타인의 업적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100번째 원숭이 현상, 공시성의 원리에 기반한다)
물론 나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렇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몇 년정도 (혹은 몇 십년) 뒤에 진행되었겠지만, 분명히 다른 어떤 사람이 상대성 이론을 주장하고 나왔을 것이 더욱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버전으로 인류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아셨는지 그 두분을 포함한 진정한 '군자'들은 다 같은 말을 한다.
즉, '군자'에게서는 볼 수 있고 '소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겸허함'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존감은 겸허함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내가 한 것이라기 보단 나를 통해서 스스로 드러난 것이다." 라고 하는 겸허함..
나는 단지 선배들의 업적(거인의 어깨)위에서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 뿐이다. 라고 하는 자세..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나는 우주의 중심이고 나는 특별하다'라는 말보다는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고 우리는 특별하다'라는 말이 더 진실처럼 들릴 것이다.

앞으로 WEB2.0이 낳을 (낳고 있는) 집단지성 사회에서는 더욱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 될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듣고, 그 정보를 적용해서 내 삶을 만들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교훈,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또 그것을 가지고 삶을 변화시키는 역동적이고 확장적인 변화를 통해서 우리는 '모두가 동시적으로 진화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창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높은 복잡도에서의 창발은 더욱 더 격차가 큰 단절적 변화를 가져온다)

나 또한 그러한 것을 제대로 알고 싶고, 나 자신을 온전하게 허용하고 싶다.
나를 통해 어떤 것이 드러나고, 어떤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질지는 모르지만..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 나는 단지 직관을 따를 뿐이다.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다' 라는 말을 따를 것이다.
물론, 나도 아직은 주인공이 되고 싶고, 드러나고 싶고, 이름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기에.. 단지 공간을 열어두고 싶다. 
누가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큰 꿈을 꾸고 그것을 하라. 만약 그것이 너무 벅차면 네가 하다가 네 아들에게 넘겨주면 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는 뭐 이런 고리타분한 얘기를.. 이란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이 말에 동의한다. ^^

역시 글이 산으로 가고 있음을 느낀다.ㅋㅋ
성급하게나마 결론을 짓는다면, 앞으로 우리 모두는 실시간으로 '거인의 어깨'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과 SNS서비스의 발달로 우리가 원하는 정보는 언제든 접속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나누고 또 나누고,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사회가 될 것이다. 물론 그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만..
하지만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거인의 어깨'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냐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이란 책에서도 지적한 바가 있듯,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정보, 다양한 정보를 얻겠지만, 누구나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는 없을 것이고,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깊이 사고하고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만이, 진짜로 '거인의 어깨 위에서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인류는 그 사람을 통해서 인류의 지혜를 더욱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매 순간, 배운다는 자세로 자신을 낮추고 헌신하는 사람에게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깊이 사고하고, 넓게 나누자
Think deeply, Share widely 
   




"군자 화이부동, 소인 동이불화" - 논어, 공자

"지식은 자신이 많이 배웠음을 자랑하고 지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개를 숙이네!" - 윌리엄 쿠퍼
 
"남들보다 조금 더 멀리 보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 - 아이작 뉴턴

"나의 길을 밝혀주면서 몇 번이고 나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삶을 대하도록 새로운 용기를 북돋워준 이상은 친절과 아름다움과 진리였다. 인간의 노력이 추구하는 진부한 것들,소유,외형적 성공,사치 따위는 항상 나에게는 천한 것으로 비쳤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1. hsp 2012.06.24 22:04

    잘 읽었습니다 멋지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2. SA 2013.06.13 09:19

    작성해주신 글속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 담아갑니다.

  3. 저 푸른 언덕 2018.05.07 20:39

    글이 넘 좋네요. 덕분에 힘내고 갑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