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스토리 연구소> 이희석 코치님의 4주 강연의 일부입니다. 
강의 내용이 좋아서 공유합니다. 요즘 인문학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즐겁네요. :)



도입
기존 인문학 책은 ‘지식관’에 해당되는 것이 많다. 아무래도 실용기반으로 ‘인문학’을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럴 것이다. 가만 보면 사람들이 책을 접하는 태도와 강사인 내가 책을 접하는 태도는 다른 것 같다. 나는 곡괭이를 들고, 원석을 찾아보려는 자세를 가지는 반면, 대부분은 나무 밑에 누워서 ‘뭐라도 떨어지겠지’라는 느낌으로 책을 읽는 것 같다. 조금은 다른 자세가 필요하다. 

"자기경영서는 ‘실천하는 독자’를 만나면 효과를 발휘하고, 인문서는 ‘사유하는 독자’를 만나야 효과를 발휘한다."

1부 강연 
Q. 인문학 독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성서 해석적 독서
책에서 인용구를 추려내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서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이 그 예다. 이것의 지배정서는 '숭배’이다. '우리는 모르지만 그는 알고 있다.' 이 방법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너무 편한 방법이다. 내 생각과 비슷한 것들만 모으다 보면, 기만에 빠질 수 있다. 또한 다른 생각, 반대 생각을 하는 게 귀찮아지고, 결국 ‘사유를 차단한다’. 들뢰즈는 말한다. 책상 앞이나, 대화를 통해선 ‘사유’는 일어나지 않는다.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을 때 우린 진짜 사유를 한다. 충격은 사유의 훌륭한 도우미임에도, 성서 해석적 독서가들은 그러한 충격을 피하려고 애쓰게 된다.

2) 독단적 독서
이것의 지배정서는 '오만’이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는 모른다. 

3) 불가지론적 독서
이것의 지배정서는 ‘허무’다. 우리도 그도 모른다. 
(이 '허무'라는 키워드는 강의 중에 나온 것은 아니고 나의 생각이다.)

4) 변증법적 독서
이것의 지배정서는 ‘탐구’다. 우리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와 나의 공동의 탐구를 통해 더 나은 것을 사유할 수 있다.
내 주장을 쓴다. 그리고 나와 반대 주장을 하는 글을 찾는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와서 글을 쓴다. 그 둘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자 매섭게 사유하는 과정이 변증법적 독서이다. “변증법적 독서가들은 문화 충격을 회피하기보다는 기대한다.” 이 말과도 같다. "신을 믿으면서 한번도 회의해보지 않은 사람은, 신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을 믿고 있다는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논리는 어떤가? 평범하다. 예를 들면, 방이 덥다. 에어콘을 틀었다. 방이 시원하다. 하지만 진짜 멋진 논리는 말도 안 되는 두 소재를 가지고 와서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바로 그런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이다. 


Q. 기억해야 할 현대 철학자들과 구조적 ‘자기이해'란?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는 중요하다. 그들이 다 옳다는 것이 아니라, 관점의 전환을 이룬 사람들이기에. 철학자들의 시야는 좁다. 하지만 그들의 위대함은 그곳에 있다. 그 ‘한 지점’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 버린기에. 자기만의 논리와 사유체계를 만들어버리기에.

마르크스는 ‘계급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왔다. 당신은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의 계급으로 인해 당신의 생각은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가지고 왔다. 그의 영향 덕분에,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 우린 근대인이다. 이들 영향 덕분에 ‘구조주의’가 20세기 전반에 흐른다. 그 전에는 ‘주체’와 ‘대상’이 중요했다. 하지만 ‘구조주의’는 한 요소가 아닌 그것들을 둘러싼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내가 누구인지'를 ‘구조’ 속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즉, 자기이해는 인간이해와 함께 한다. 인간이해란 다른 사람의 관점에 대한 이해다. 

통시적 자기의식이란, 시간의 차이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어제까지의 세계>가 좋은 예다. 
공간적 자기인식이란, 공간의 차이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상상으론 어렵다. 여행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때 가능하다. 
관계적 자기인식이란, 관계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이 역시 관찰로는 어렵다. 타자를 체험해야 한다. 

이처럼, 나를 뒤흔들기 위해서는 통시적, 공간적, 관계적인 책을 읽고, 그에 관한 경험을 해야 한다. 그것이 구조적 자기이해다. 
니체는 말한다. 영혼이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비교하고, 영혼이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그리고 영혼이 강한 사람은 ‘자기 긍정’을 통해 나의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까지도 다 받아들인다. 하지만 영혼이 약한 사람은 ‘자기 기만’을 통해 자신을 속인다. 

2부 강연
Q. 인문주의자들의 예술적 일상은 어떨까?
현대 미술에 대한 우리의 첫 인상은 어떨까? 난해하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싸다. 등등 왜 난해해졌을까? 미술 작업의 도구들이 다양해지고, 작가들의 본인들의 심리와 관점을 나타내기 시작했기에. 연출이란, 생각을 배우들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행동을 묘사하면 장면 전환이 빠르다. 하지만 심리를 묘사하면 어떤가? 느려지고 복잡해진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나온 책이 <율리시스>다. 이처럼 19세기엔 그저 장면을 묘사하고 행동을 나타냈다면, 20세기부턴 작가와 감독의 관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술계는 어려워졌다. 현대 예술은 세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세상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 

# 재능과 훈련, 그리고 의미와 탁월함. 
미술을 그리는 것은 재능의 영역일까? 아니다.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느냐의 문제다. 그렇다면 재능은 무엇일까? 시간을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힘. 재능은 우리에게 탁월함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의미와 재미를 준다. 탁월함은 훈련의 영역이고, 의미는 재능의 영역이다. 아무리 잘 해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결론은 여러분도 가볍게 그림을 그려보라. 그리고 미술관을 가보라. 어렵게 여기지 말고.

# 알랭 바디우 <존재와 사건>에 대하여 
사건이 존재를 바꾼다. 철학은 진리를 생산하지 않는다. 정치, 예술, 과학, 사랑이 진리를 만든다. 예를 들자. 사랑은 두 진리의 충돌이다. 그 과정에서 진짜 진리가 생성된다. 그는 "후사건적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Post-event acts> 한번의 행동이 아닌 실천들. 그것이 우리를 바꿔간다. 결론, 어떤 사건을 통해 경험한 새로운 깨달음을 실천을 통해 표현하라!



+ 나의 작은 성찰들. 

1.
나는 치약이 되고 싶다. 짜면 쭈욱 하고 나오는. 나는 이런 저런 것들을 잔뜩 쌓아두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앞으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그래봐야 노트북이 날라가거나, 에버노트 서버가 폭파되거나, 인터넷이 먹통에 되면 다 사라진게 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남는 것은 결국 나 밖에 없다. 혹은 나의 머릿 속. 그러한 영역에 대한 롤 모델로는 알랭 드 보통이 될 것이다. '일상의 철학자'라는 별칭에 걸맞게 그는 어떤 주제든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으로 해석함으로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눈’을 부여해 준다. 그것이 참 부럽다. 팀장님의 ‘얼개를 구성하는 능력’도 부럽고. 치약처럼 언제든 짜면 나오는 사람. 무엇이든 나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지식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학과 습을 해야 할까. 더 단단해지자.

2. 
성서 해석적 독서와 독단적 독서. 그리고 변증법적 독서. 나는 어떤 독서를 하고 있는가? 나도 상당히 편집증적인 인간이란 생각도 든다. 나는 지금까지 거의 내가 보고 싶은 책, 내가 흥미있는 책 위주 로만 봐 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워낙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넓고 얇게 책을 봤고, 또 한 분야나 저자에 빠져 읽지는 않았다. 맹목적인 관점을 싫어하기에 그런 걸 멀리하기도 하고. 하지만 깊이 사유하려는 욕심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주장을 접하고, 그 주장에 반대되는 책도 보고, 나도 나의 의견을 내보고 하는 등의 ‘탐구적 자세’를 가졌을까? 많이 아쉽다. 그저 내 흥미와 주의를 끄는 책을 탐욕적으로 봐왔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나름의 관점이 생긴건 맞지만, 나의 옅은 사유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이 인상적이었다. “변증법적 독서가들은 문화 충격을 회피하기보다는 기대한다.” 나는 회피하고 있나, 기대하고 있나. 혹은 기대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회피하고 있었나. 

3. 
자기인식 첫 번째. 통시적 자기인식은 내 삶의 역사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있었던 사건을 적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평가해 보는 것. 물론 해석과 평가에 관한한 어느 정도의 자기기만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사실 그 자체를 훼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내 삶의 결과가 쌓이면, 누구라도 자신을 직면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나도 20대 중반에 명상의 방편으로 ‘뿌리캐기’라는 걸 했었다. 그게 뭐냐면, 내가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 까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기억을 적어보는 것. 언듯 들어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기억이 있을 것 같지만, 뇌는 현명하다. 알아서 기억을 정리하는 뇌는, 생각보다 많은 기억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에게 남아있는 기억은 분명 ‘중요한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 그 당시 그렇게 적어보는 과정을 통해 나 역시 ‘세세한 사건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에 따라서 지금의 내가 있구나’란 나름의 통찰을 얻었었다. 나를 더 이해하는 계기이기도 했고. 그렇기에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분명 ‘자기인식’에 도움을 준다. 통시적 자기인식은 과거의 나와 결별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다. 

4. 
두 번째, 공간적 자기인식이란 내 삶의 여행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한국 사람이다. 태어난 곳은 대구이고, 지금 사는 곳은 서울 망원동이다. 33년 동안 보낸 한국이란 나라는 나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언어도, 문화도,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다. 하물며 무한도전이란 방송은 거의 10년째 보고 있으니 말 다했다. 과거에 비하면 비약적인 변화를 이루었지만, 공간적 한계는 우리의 경험을 제한한다. 그 경험을 확장하는 방법은 뭘까? 공간을 바꾸는 것이다. 바로 여행. 여행은 우리를 새로운 맥락에 놓이게 한다. 새로운 사회, 문화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 그곳에서 나는 나를 새로이 바라보게 된다. 나의 첫 해외 여행은 2007년 11월 2일이다. 날짜도 기억한다. 필리핀에서 3개월 머물고 호주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는데, 아직도 필리핀 특유의 냄새와 정취가 선명하다. 그 당시 1년 동안 영어 공부란 핑계로 해외에 머물렀지만, 사실 나는 내 경험을 확장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안 해본 경험을 해보려고 애쓰기도 했고. (그래서 캥거루 고기도 먹어보고, 수영도 배워보고, 파티에서 막춤도 춰봤더랬다.) 이처럼 낯선 환경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살게 한다. 여기선 보지 못했던 나를 그곳에선 만날 수 있다. 공간적 자기인식은 여기의 나와 결별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다. 

5.

마지막 관계적 자기인식이란, 이런 비유가 떠오른다. ‘내 삶의 거울’. 우리는 수 많은 자아를 가진다. 관계의 수만큼. 부모님을 만났을 때의 나와, 친구를 만날 때의 나,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할 때의 나는 동일한 인물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아들로서의 나는 친구로서의 내가 갖지 못한 면을 가진다는 것이다. 남편으로서의 나도 그렇고.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그 총합이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것조차도 오만한 생각이다.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수 많은 사람이 있으므로. 그 사람들과 부딪쳤을 때의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기에 ‘나를 안다’고 말하는 건 참 어렵다. 어찌보면 오만한 말일지도.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뒤통수를 볼 수 없다. 유일한 길은 다른 사람과의 부딪침을 통해 ‘살짝’ 들여다 보는 것이다. 나는 아내를 만나기 전에 ‘내가 얼마나 찌질한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현명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 영역들은 나에게 있어 뒤통수에 있었던 것들이다. 그래서 아내는 나의 뒷면을 보게 해주는 '거울’이다. 또한 부모님을 통해 나의 옆면을 보고 우리 아이를 통해 나의 앞통수도 볼 것이다. 내 관계의 수만큼 나는 거울을 가진다. 이처럼 관계적 자기인식은 부분적 나와 결별하고 전체의 나를 보게 하는 탁월한 방법이다. 물론 그 관계의 질과 깊이가 그 거울의 ‘선명도’를 좌우하겠지만 말이다.


<와우 스토리 연구소> 이희석 코치님의 4주 강연의 일부입니다. 
강의 내용이 좋아서 공유합니다. 요즘 인문학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즐겁네요. :)


1부 강연
Q. 이 4주 간의 수업을 통해 우린 무엇을 배워야 할까?
1. 인문학에 대한 큰 그림이 무엇인지?
2. 인문소양을 어떻게 쌓을 수 있을지?

Q. 심리학에 대한 간단한 언급
그리스, 로마 시대 이래 학문의 큰 기둥은 ‘철학’이었다. 최초의 철학자는 탈레스다. 그는 세상을 처음으로 탐구했다. 당시 학자들은 역사, 자연, 인간을 다 연구했다. 이후 데카르트를 지나,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서, 자연과학이 떨어져 나온다. 이후 사회학과 심리학이 떨어져 나온다.

19C말에, 철학의 위기가 온다. 반증 가능성 없이 사유하는 것이 탁상공론처럼 들렸기에. 그 당시에 심리학의 위상이 대단해진다. 이후 후설과 하이데거의 공으로 철학의 위상은 다시 세워졌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은 무엇일까? 모던은 이성을 신봉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이성을 신봉하지 않는다. 그 대표 주자가 푸코, 들뢰즈다. 

심리학의 한계는 이것이다. ‘인간의 마음’만을 다룬다는 점. 물론, 인문학도 인간이 중심이다. 하지만 마음만 다루지는 않는다. 조정래는 황홀한 글감옥에서 <소설은 인간 삶에 대한 총체적 연구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문학, 역사, 철학은 인간의 모든 주제에 다 붙일 수 있기에, 인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특히, 철학의 본질은 질문을 던지는 것. 그래서 각 분야의 철학서는 그 분야의 본질을 묻게 된다. 본질이란, 그것을 더욱 그것답게 만드는 것. 이기 때문이다. 

Q. 인문학적으로 생각하는 법
역사는 과거인가? 역사는 과거와 다르다. 과거는 실제에 가깝다. 하지만 역사는 하나의 관점을 갖고 과거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E.H카는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선 역사 보다 먼저 ‘역사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가지고 한번 고민해보라.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다. 

+ 간단히 생각해보면 나의 생각은 이렇다. 과거의 인문학자들도 과거를 말할 수 없다. 그들의 관점을 우리에게 던진 것이다. 말과 글로. 우리는 그러므로 그들의 관점에 맹목적일 필요가 없다. 인문주의적으로 독서를 한다는 것은 계속 그 관점에 ‘정말 그럴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 넘어오자. 우리는 현재를 산다. 하지만 현재는 말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를 통해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인문학자가 될 수 있다. 현재를 각자의 관점과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 될 것이다. 비판에 주저하지 말고. 

<강신주의 감정수업>에 나오는 문장이다. *하나에 몰입한다는 것은 다른 하나를 무시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문장이 걸리는가? 넘기지 말라. ‘무시’를 사전으로 찾아보라. 무시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 문장을 각자의 관점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지양해야 할 태도는 그냥 그 문장을 갖고 남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야, 하나에 몰입한다는 것은…” 그거야 말로 상대에 대한 무시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했던 문장도 그대로 쓰면, 틀릴 수 있다. 그러므로 개념에 대한 사유가 우리에겐 중요하다. 그것이 인문학적 독서다. 

다르게 사유해보자. 몰입이란, 인생을 잘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균형이란, 몰입없이 오지 않는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시간대’를 지켜야 한다. 일주일이 좋다. 주중에 일터에 있는 동안 깊이 몰입하고, 주말에는 가정에서 깊이 몰입하는 것. 그것이 균형이다. 즉, 몰입이란, 다른 것을 충분히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지금 앞에 있는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으로 보면, 앞서 나온 ‘몰입’과 이 ‘몰입’은 다르다. “몰입한다는 것은 삶의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한 도구다”라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감정수업>의 또 다른 문장이다. "자신이 모든 불행을 직접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을 때만 후회에 감정에 빠진다. 하지만 모든 불행을 자신이 초래한 것은 아니다. (…) 후회는 신과 같은 자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감정이다.” 스티븐 코비는 ‘주도성’을 말하면서, 자극과 반응 사이에 우리가 선택권이 있다고 말했다. 그 선택권이 많아 진다는 것은 ‘지혜와 자유’를 말한다. 주도적인 사람과 반사적인 사람 중에 누가 후회를 많이 할까? 그건 모른다. 반사적인 사람이 성찰 지능이 떨어지면, 후회하지 않는다. 주도적인 사람은 후회를 하지 않을까? 아니다. 그 사람들은 상황의 책임을 자신에게 둔다. 그렇다면 충분히 후회할 수 있다. 주도적인 사람이 오만해서 더 후회하는 것만은 아니다. 반성하기 때문에 후회하는 것이다. 

+ 강신주는 단정을 잘 한다. 단정을 잘 짓는 사람들의 강점이 있다. 그들은 ‘깊어 보인다’. 나도 단정을 잘 짓는 편이 아닐까? 그 밑에는 ‘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는 것이 아닐까?



2부 강연
Q. 문사철 식견을 어떻게 키울까
좋은 방법. 문학동네에서 나온 안내서를 본다. 쭉- 보면서 스토리를 읽으면서 끌리는 것을 찾는다. 그 책을 사서 본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개관서를 본다. 쭉-보면서 끌리는 단어를 찾는다. 예를 들어, 그리스가 좋다면 그리스의 개관서를 본다. 그리고 재미있는 역사적 장면들을 뽑는다. 그 장면을 다룬 더 깊은 책을 본다. 내가 왜 이런 장면에 끌릴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계속 본다. 이러한 작업은 친구와 함께 하면 좋다. 키워드가 정말 다르게 뽑히기 때문이다. 철학. 철학책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면, 안광복의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 추천. 그걸 보면서 마음에 드는 철학자를 고른다. 그 철학자가 좋은 이유는 각자 다 다르다. 줄스 에반스<철학을 권하다>

안도현의 시를 읽고 도움이 되었는가? 문사철 식견을 기르기 위해서 우선, '이것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무엇이든 동기가 필요하다. 두번째로는 지적 얼개와 흐름을 공부하라.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고속도로이다. 한번 쭉 달리고 나서, 마음에 들었던 곳들을 국도로 구석구석 탐방하라. 그래야 주관적 독서에 빠지지 않게 된다. 

Q. 책을 읽고 사유가 없다면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유의 깊이와 넓이가 아니다. 사유하려는 의지.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관점이 진리라고 믿지 않는 것. 진리란 없고 ‘진리들'이 있다. 그리고 좋은 키워드를 발견했다면 노트에 옮겨 적으라. 몰입, 용기, 가치 등으로. 그렇게 단어를 쭉 나열해보라.  

책을 노트에 옮겨적는 것은 좋은 독서법이다. 옮겨 적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떠오른다면, 밑에 적어라. 그것을 ‘초록’이라 한다. 다산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추천한 방법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다 옮겨적으려 하지 말고, 줄이고 줄여서 키워드만 뽑아내라. 

Q. 좋은 엄마의 조건 <부모 역할 훈련>
1) 좋은 부부관계. 그래야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는다. 
2) 자신의 세계 갖기. 그래야 자존감이 생긴다. 
3) 사랑을 기반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행동이 모두 사랑으로 기반되는 것이 아니다. 주도 두려움, 책임감, 혹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린 사랑으로 기반하는 행동을 늘려라.

+ 간단한 성찰
오늘 강의를 마치고 돌아왔다. 씻고, 자려고 하는데 왠지 간단한 리뷰는 쓰고 자야 할 것 같아서 노트북을 켰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짧게 남긴다. 이번 시간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인문학적으로 책을 보는 방식’이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라는 글이 그 주제가 될 수 있다. 이 글을 보니 NLP에서 자주 나오는 말인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라는 말도 떠올랐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인데. 

뜬금없다. 각설하고,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팩트(실제)’는 그것을 서술하는 자의 ‘관점’에 따라서 새롭게 ‘편집’된다. 인간이 만드는 것 중에서 ‘편집’ 되지 않은 것은 없다. 왜냐, 언어가 이미 편집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는 언어를 통해서 이미 변환되고, 편집된다. 실제 그 자체는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선 어떤 텍스트를 접하더라도 그것이 한 작가 고유의 ‘관점’임을, ‘편집 된 내용’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실제 수업에선 ‘강신주의 감정수업’의 지문을 가지고 예시를 들었는데, 그렇게 해 보니 더욱 와 닿았다. 강신주 작가가 쓰는 문장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사람과, 강신주 작가가 쓰는 문장을 그의 맥락에서 이해해보고, 나의 맥락에서 다시 고쳐써보는 사람은 같은 책을 보지만 완전히 다른 사유를 낳을 것이다. 전자의 사유는 ‘맹목적 수용’으로 치달을 것이고, 후자의 사유는 ‘비판적 수용’으로 갈 것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맹목적 인간을 낳기 위함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인간, 비판적 인간, 정치적 인간(공적 인간)이 인문학 공부의 중요한 목적이다. 결국 인문학적 독서는 훌륭한 인문학자들의 관점을 ‘추려서 취하는 것’ 그리고 ‘내 것을 만드는 것’ 이다.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렇게 읽고 있는가? 부끄러운게 한 두 개가 아니다. 나부터 단어 하나 하나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할 듯 하다. 하나씩 해보자. 


<와우 스토리 연구소> 이희석 코치님의 4주 강연의 일부입니다. 
강의 내용이 좋아서 공유합니다. 요즘 인문학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즐겁네요. :)


1부 강연 
Q. 라깡 “행위로의 이행” 나는 act하고 있는가? action하고 있는가? 
action은 행동 하는 척. act는 실제로 하는 것. act는 행위, 어떤 의지를 가지고 하는 짓.
예를 들어, 매주나 매월에 한번씩 만나서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다. 그때 실제로 고민하지 않으면서 대화의 소재거리로서만 대화를 꺼내는 것, 그럴 때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무엇일까? act일까 action일까. 기만적 액션에 가까울 것이다.  

action은 기만적 액션과 충동적 액션으로 나뉜다. 코치님은 두 달 동안 유럽여행을 하다가 3일을 남겨놓고, 가방을 잃어버렸다. 그때 나는 기만적 행동과 충동적 행동을 했다. 그것을 잃어버리고자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없는 셈 치자’라고 기만하기 시작했다. 또 계속 주위 사람들에게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오버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린 평소 얼마나 많이 act가 아닌 action을 취하고 있을까. 

+ 나도 공감을 많이 했다. 나 역시 과거 시드니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그 다음날 나는 카지노를 갔다. (ㅋㅋ) 그 스트레스를 충동적으로 해소하고 싶으니 그랬겠지만 참 슬픈 에피소드다. 이 두 단어의 분별은 참 중요하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벌써 몇 개의 액션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맨 얼굴의 나를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기만하고, 충동적으로 사는 것이 지금까지의 삶이었다면, 조금 더 진실되고, 깊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론. 

추천 책:
알베르 카뮈 <이방인> - 자기기만에 대한 소설. 이런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인문학 공부다. 

기억하라.
단정 짓는 순간, 지혜는 사라지고, 자유도 사라진다. 

Q.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1) 지혜관 -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 (밤의 인문학)
장점: 인문 공부의 목적이다. 인문정신. /  단점: 범주의 모호함이 발생한다. 
인문정신이란, 자기 이해-타인 이해-인생 이해라고 볼 수 있다.
자기를 잘 이해하면 자연스러워진다. 억지스러운 것이 사라진다. 자연스러워야 오래 가고 자유로워 진다. 

(2) 지식관 - 문사철 지식을 쌓는 것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장점 :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장 도움이 되는 학문(대상)이 무엇인지 알려줌. 인문지식. / 단점: 지식과 교양 쌓기의 유행
세상의 학문을 쭉 놓고 보았을 때, 어떤 책이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까? 문학, 역사, 철학이 아니겠는가? 좀 더 들어가자면, 종교학과 언어학이 추가될 수 있고 정신분석학도 알면 좋다. 무의식의 발견이 20세기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기에. 

(3) 고전관 - 그리스, 로마의 고전 읽기 (열린 인문학 강의)
장점 : 예술적 감성을 키워준다. / 단점 : 고전 문헌의 절대화
인문주의는 당대의 문제를 풀기위해 고전을 참고 및 이용하는 것이다. (실은, 고전은 시대마다 바꿔 번역되어야 한다. 언어가 바뀌고 시대 정신이 달라지기 때문에) 하지만, 고전을 위한 고전을 하게 되면 그것이 절대화 되기도 한다. 

예시) 오딧세이아 & 일리아드 :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에 쓴 책. 이 책이 모든 모험 이야기의 원형이다. 이 책은 서사시다. 서사(스토리) + 시(은율) = 아주 아름다운 노래처럼 씌어진 문학 작품이다. 
그리스 비극 걸작선 :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최고의 비극 작가들이 쓴 이야기. 예. 오이디푸스 왕
시학 :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치유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 카타르시스. 예술적 체험은 우리에게 위로와 영감을 준다. 고전(서사와 문학)이란 것에 인간을 울리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

+ 지혜와 지식에 이어서 고전에 대해서 더 다뤘다. 그런데 듣다 보니, 굳이 고전이라기 보단 삶의 이야기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인간을 울리는 힘, 그것이 본질이지 그것을 다루는 양식은 좀 더 자유롭게 생각해도 될 듯하다. 그 양식이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추천 책:
재레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 - 전통 사회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이 무엇인지. 비교해 보는 것.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라. 

연지원의 인문방정식
인문소양 = 문사철 식견 + 예술적 감성 + 인문정신
                        (지성)                (감정)              (의지)  


Q. “문학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세계 문학은 쉽지 않다. 당대에 최적화된 텍스트이므로. 그렇기에 자신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하는 책이 가장 좋다. 그래야 잘 읽힌다. 그러니, 책을 고르기 전에 나의 문제의식과 맞는 책이 무엇인지 훑어보라. 예. 강신주의 감정수업
자신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이상문학상과 같은 현대 소설부터 보는 것도 좋다. 우리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 



2부 강연
Q. “키케로에게 인문정신이란 무엇인가?"
로마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후 제정으로 바뀐다. 제정이 되기 직전, 혼란의 시기를 살았던 인물 키케로. 
그리스가 사변적이고 이론적이라면, 로마는 실용적이다. 그리스는 문화를 남겼고, 로마는 선진 문물과 문화를 잘 배웠다. 로마에서 가장 그리스 문화를 잘 이해하고 번역한 사람이 키케로. 그 이후에 라틴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많은 신조어를 그가 만들었다. 예를 들면 ‘후마니타스’.

이 ‘후마니타스'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키케로 역시 그리스 철학자들로 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최초의 인물이, 소크라테스다. 그가 처음으로 자연에서 인간으로 방향을 돌렸고, 그것이 키케로로 이어졌다. 나중에 르네상스 시대에 키케로는 재발굴 되고, 이후 그렇게 정의 된 후마니타스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인간적인 것(humanitas)에 어울리는 교양을 몸에 지닌 사람만이 인간이다.” 

“키케로가 말한 우마니타스란, 단지 인간성, 인간다움, 인문주의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 관용, 인문학, 교양을 뜻하는 개념이었다.”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추천 책 :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 당시의 인문주의자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Q. “인문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인문정신은 인간다움에 기여하는 가치를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나에게 인문정신을 써보고, 어떻게 삶에서 실현할 것인지 고민해보라. 그것이 인문정신을 추구하는 공부다. 

예시. 





Q. 정치에 대해서. 리더십의 본질은 정치다. 
politics란 정치, proper politics란 본연의 정치, post politics는 탈 정치(낡은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벗어나, 전문적인 운영과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고 주장하는 정치), pure politics는 순수 정치(경제 관념을 배제한 정치)

정치란, (공공의) 일을 되게 하는 기술이다. 리더란, 핵심 당사자들을 놀라게 만들어선 안 된다. 공공의 일을 되게 만드려면, 순차적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했어야 했다. 혼자 하는 일이라면 안 그래도 된다. 하지만 공공의 일은 고도의 의사결정이 소요된다. 모든 탁월한 수준의 성과에는 필연적 수고가 있다. 지나치게 효율성을 따라가선 안 된다. 

리더십은 영향력이다. 내가 가고, 누군가 따라오면 리더십이다. 아무도 안 따라오면 그냥 산책이다. 리더란 내가 갈 방향을 알고, 영향력으로 함께 가자고 말 하는 사람이다. 말이 아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말하면 우린 듣지만, 없는 사람이 말하면 우린 듣는 척한다. 우린 성품이 있거나 역량이 뛰어난 사람의 말을 듣는다. 둘 다 갖추면 최고고. 
참고로, 리더십을 얻는 데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신뢰다. <신뢰의 속도> 스티븐 코비. 

*변환이란, 끝내고 쉬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아주 중요하다. 성인식이 바로 변환의 의식이다. 
우리는 잘 끝내지고, 잘 쉬지도 못한다. 그리므로 잘 시작하지도 못한다. 

+ 리더십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단순하기에 중요하다. 영향력이 우선이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말하면 듣고, 없는 사람이 말하면 우린 듣는 척 한다. 그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인것 같다. 내가 말하면 사람들이 들을까? 잘 모르겠다. 나조차 가끔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를때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러한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작은 것 하나에도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한명 한명과 신뢰를 쌓고, 도움을 주고 받고,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것.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나를 떠나는 사람이 있음에 동요하지 않는 것. 더 멀리 바라봐야 하는 것.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Q. 인문정신을 찾아가는 3가지 질문
1) 나는 누구인가? 추천 책 : <하얀 성> 정체성의 탐구.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무경계> 켄 윌버
2) 어떻게 살 것인가? 추천 책 : <어떻게 살 것인가> 몽테뉴 평전. <인생 수업> 
3) 죽음이란 무엇인가? 추천 책 : <죽음이란 무엇인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나는 날마다 죽는다 = 나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삶에 대한 경외의 회복)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끝이 있다. 




<와우 스토리 연구소> 이희석 코치님의 4주 강연의 일부입니다. 
강의 내용이 좋아서 공유합니다. 요즘 인문학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즐겁네요.


1부 강연 오프닝
‘인문학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4주를 준비했다. 이 4번의 강의 만으로도 충분하게.  
인문학 공부가 지식 쌓기 이외의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저의 관점을 제시하겠다. 

Q. 다들 자기성장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어떤 텍스트가 우리를 성장시키는가?

(1) 자아적 텍스트 : 좋은 자기경영서 (예.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2) 시대적 텍스트 :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고, 상황 판단에 도움을 주는 책. 예를 들면 땅콩 회항, 프랑스 테러, 어린이집 폭행 사건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라는 것.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과 슬라보예 지젝은 기억할 만 하다.

지젝은 철학자다. 자신의 철학으로 현재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 그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린 그 사건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중에서 <폭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권할만 하다. 이 책에서 폭력이란 4가지로 나뉜다. 1) 주관적 폭력 - 눈에 보이는, 흔히 아는 것. 2) 구조적 폭력 3) 상징적 폭력 - 이는 객관적 폭력이다. 삼성은 법도 바꿔서 사회를 주무른다. 이게 진짜 폭력이다. 어린이집 사례도 마찬가지다. 우린 흔히 문제를 잘못 정의한다. 어린이집 교사가 문제인가? 아니다. 다른 직업은 안 그런가? 직업은 3가지로 나눠야 한다. 하나는 생계직, 둘째는 경력직, 셋째는 천직. 이 비율은 대략 6:3:1 이다.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이 비율은 적용된다. 정치인이든, 작가든, 강사든 어디든. 이것을 인증이나 자격증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CCTV, 인증)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구조, 체제)에 대해서 더욱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보게 해주는 책들이 시대적 텍스트이다. 이런 책을 읽고 땅콩 회황 사건을 보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 

(3) 인문적 텍스트 : 이 강연은 ‘기술로서의 인문학’으로 접근한다. 모든 학문은 실천과 이론으로 나뉜다. 철학을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철학이란 이론뿐만 아니라 삶의 기술로 생각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론과 실천으로 나뉘었다. 플라톤은 이론, 디오게네스는 실천으로 나뉜다. 이후 철학사는 주로 이론으로 흐르게 된다. 실천적 철학책은 정말 읽을만 하다. 예 <철학을 권하다>

철학을 위한 철학이 이론이라면, 예술을 위한 예술은 유미주의다.(달과 6펜스) 삶을 위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유미주의를 싫어한다. 우리는 여기서 ‘삶을 위한 인문학’을 말할 것이다. 왜냐면 한 사람의 인생에도 ‘모든 학문’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린 한번쯤은 경영, 철학, 문학, 예술, 역사적 인간이 된다. 예를 들어, 일기를 쓰면 역사적 인간, 질문을 던지면 철학적 인간이 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 경영이라면, 우린 하루를 계획하며 경영적 인간이 된다. 즉, 우리 삶은 모든 학문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각 학문의 본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적 인간은 언제 되는 걸까? 문학이란 나와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다. (질 들뢰즈) 즉, 문학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여기까진 추상적이다. 그렇기에 구체적 메시지도 필요하다. 행복론을 강의한다고 치자. ‘행복하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행복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감사일지를 쓰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실전 지침은 호불호가 나뉜다. 옆 사람들과 대화해보라. 10점 만점에 몇점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대화해 보라. 결과가 어떨까? 성향은 다 다르다. 1-2점 만족도를 가진 사람에게 감사일지는 어울리지 않다. 실제 실험 결과는 어떨까? 언듯, 매일 쓰는 것이 좋아보일지 모르나, 그렇지 않았다. 일주일에 2번 정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만족도가 더 높았다. 결론. 추상적인 제안은 우리에게 변화의 기회가 되지 않는다. 미셀 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도와 달력이 없으면 말하지 않는다.’ 지도는 공간, 달력은 시간을 말한다. 맥락에 따라 답은 바뀐다는 뜻이다. 푸코는 ‘보편적’이란 말을 싫어했다. 나에게 맞는 것이 상대에겐 맞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 

Q. 역사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사적 인간이란 과거를 기록하는 인간이다. 과거의 중요성을 아는 것은 역사인식이 있는 것이다. 질문의 중요성을 아는 것은 철학적 인식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언제부터 역사를 기록했을까? 벽화다. 그들도 우리처럼 먹는 것을 주로 그렸다. 처음엔 그리다가 이후 문자를 기록했다. 주로 큰 사건들(전쟁 등)만. 이유나 맥락은 없이. 이것이 1차적 역사 인식이다. 기술하는 것. 이 당시에 중요한 것은 정직이다. 사실을 적는 것.

인류 최초의 인과 관계를 기술하는 사람이 페르시아 전쟁을 기술했다. 그는 헤로도토스이며, 그 책 이름이 <히스토리아>이다. 그 때부터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해석이 시작되었고, 2차적 역사 인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외에 다른 민족이 있는데,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이다. 물론 신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지만, 다름대로의 원인을 덧붙여서 썼다. 그들이 서양 문명을 일으킨 그리스 문명과 히브리즘이다. 이 말은, 만약, 우리가 역사적 인간이 된다면 우리의 삶은 진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있었던 일을 정직하게 쓰고(기술), 그 일에 대한 원인을 써보라.(해석)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참고로, 3차적 인식으로 넘어가면 가치관이 나온다. 그때부터 평가가 나온다. 해석은 논리의 문제지만, 평가는 가치관의 문제다. 이렇게 삶이 바뀌는 것이 우리가 인문학에서 원하는 것이다. 3개월에 한번씩, 1년에 한번씩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라. 

2부 강연 오프닝
어떤 책이든, 삶을 위한 학문을 읽으면 다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파리의 심리학 카페>는 삶을 위한 심리학이다. 이 관점은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싫어한다. 학문을 삶에 복종시키는 느낌이 싫어서. 한권 더 추천한다면, <어떻게 당신의 인생을 평가할 것인가>는 삶을 위한 경영학이다. 이 책은 경영학자가 인생의 경영 관점에서 쓴 책이다. 좋은 책이다. 

Q. 인문학 범람의 시대를 사는 법
강이 범람하면 어떻게 되는가? 위험해진다. 깨끗했던 물이 불순물로 탁해진다. 그리고 언젠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한 비평가는 이렇게 말한다. 비평의 임무란 유행이라는 파괴적 물결 속에서 탁월한 작가들을 보호해 주는 것. 

1) 인문학의 본질을 탐구하라. 
인문학 범람은 두 가지의 범람이다. 인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범람’과 인문학 ‘책의 범람’이다. 인문학의 본질을 찾으려는 태도를 갖자. 유행이라는 것은 본질을 탐구하기엔 좋지 않은 시기이다. 진짜를 만나면 가짜를 알아보는 감식안이 생긴다. 
2) 관점의 범람을 반겨라.
자연과학은 답이 같다. 하지만 인문학의 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인문학은 학자의 관점이 중시되고, 관점의 이해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자연과학자들은 인문학을 싫어하기도 한다. 답이 없기에.  
3) 처음 만난 관점에 함몰되지 마라. 
인문학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의 관점만이 진리라고 여기지 않아야 한다.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은 더 많은 편견을 접하는 것이다. 
4) 인문학 책의 범람을 경계하라.
같은 관점을 지닌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을 경계하라. 그리므로. 
5) 훌륭한 인문서를 찾아 읽어라. 
설국열차처럼 인문열차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열차를 이끌어가는 맨 앞의 엔진. 거기까지 가보자.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곳엔 인문주의가 있다. 인문주의적이지 않은 책들을 경계하라. 훌륭한 인문서는 인문주의적인 책이다. 

Q. 인문학 열풍 들여다보기 (유인물)
1) 원인을 하나로 단정 짓지 않는 태도. 
대중은 확신과 단정을 좋아하지만, 지성은 단정 속의 비논리와 무사유를 경계한다. 물론 거의 확실한 정답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문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안다고 하는 순간, 그를 모르는 것이다. 모든 인과관계의 완전한 파악은 불가능에 가깝다.

확실한 것을 찾는 순간, 자유는 없어진다. 자유란 불확실성 한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자유는 좋다. 하지만 무한대의 자유란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자기철학이 없고, 그 철학 대로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없고,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자기 경영 능력이 없으면 자유란 없는 것이다. 자유란 시간의 양이 아니다. 자유란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힘이다. 불확실성을 온 몸으로 맞닥뜨리는 것이다. 회사 나온다고 자유로워 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뿐만 아니라, 지혜도 마찬가지다. 지혜는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면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건은 나의 경험의 폭으로 이해가 되지만, 어떤 경험은 이해가 안 된다. 그러면 우린 쉽게 그것을 버리게 된다. 하지만 지혜로워지려면 그 경험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양자학자는 누가 풀었을까? 계속 끌어앉고 있는 과학자들이 풀었다. 20-30년. 다시 말해, 인생의 지혜를 얻기 위해선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혼란과 답답함이 올 것이다. 그것을 견딜 때 지혜가 온다. 

그렇다면, 자유와 지혜는 누구의 것인가? 그 혼란과 답답함, 불확실성을 견디고 맞서는 사람들의 것이다. 인문주의도 그 불확실성 속에 있다. 정리하자면, 질문을 던져라. 혼란과 답답함을 견뎌라. 스스로 솔루션을 모색하라. 

우리가 20대에는 3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되었다. 직장, 배우자, 앞으로 할 일. 하지만 30대는 어떤가? 이정도론 끝나지 않는다. 30대에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 인생은 더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답답해할 것인가? 해소할 것인가? 

2) 인문학에 실용성이 있는가?
인문학은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인문학은 유용일까, 무용일까? 그 사이에 있는 무엇일까? 
실용이란 실질적인 쓸모를 뜻하고, 유용은 쓸모가 있음을 뜻한다. 나의 결론은 인문학은 실용적이진 않으나, 유용하다. 
진짜 인문학을 하는 사람 3명을 소개한다. 고종석, 강유원, 김현. 이분들의 공통점이 있다. 인문학의 비실용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인문학이 실용적이라고 하는 순간, 그 책은 인문주의에서 이미 멀어진 것이다. 

'쓸모 있음'은 '쓸모 없음'을 억압한다. 바쁜 일상에서 쓸모 없는 행동은 잘 권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 삶에 대해서 한번씩 돌아보는 것, 그것은 실용적인가?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가? 그렇다. 꼭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쓸모 없음’은 그런 의미에서 쓸모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용적인 마인드와 비실용적인 마인드의 균형이다. 사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은 없다. 쓸모없는 장소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인문 소양은 없지만, 인문학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다. 그런 분들에겐 지식만 취하면 된다. (최진기 선생님)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어학 능력이다. 인문주의적인 사람은 어학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다. 말은 못 해도 읽기라고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언어와 사상은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 있기에. 깊이 있고 정교한 공부를 위해선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언어는 인문학 공부의 알파와 오메가다. 

3) 합리적 비판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비판이란, 잘잘못을 가려 따지는 것이다. 그리고 합리적 비판주의는 가치 평가를 감정적 선호가 아닌 합리적 이성에 두어야 한다. 나의 관점을 배제하고. 각각의 장, 단점을 따지는 것. 

4)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각자 이야기해보자. 인문정신을 갖는 것 / 문사철 지식을 쌓는 것 / 고전을 읽는 것. 등등
이것들에 대해서 합리적 비판을 해보자. 
(1) 지혜관 -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 (밤의 인문학)
장점: 인문 공부의 목적이다. 인문정신. /  단점: 범주의 모호함이 발생한다. 
(2) 지식관 - 문사철 지식을 쌓는 것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장점 :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장 도움이 되는 학문(대상)이 무엇인지 알려줌. 인문지식. / 단점: 지식과 교양 쌓기의 유행
(3) 고전관 -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읽는 것.

Q. 인문정신이란 무엇인가? 
1) 보편적 인문정신 : 어떻게 사람답게 사는가? (이를 위해서 자유, 합리성, 비판, 감수성 등이 필요하다.)
2) 개인적 인문정신 : 어떻게 자기답게 사는가? (이를 위해선 보편적 인문정신의 이해가 도움이 된다.)
즉, 인문학이란 인문정신(인간다움, 자기다움)을 찾아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
이 둘의 조화를 이룬 추천 책 : 철학이 필요한 시간, 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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