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조사]

1. 객관적으로 보는 찰스 핸디
1932년 아일랜드 킬데어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니지먼트 사상가. 피터 드러커와 톰 피터스 등과 함께 세계를 움직이는 사상가 50인에 올라있다. 옥스포드 대학의 오리엘 칼리지에서 고전 문학, 역사 그리고 철학을 전공한 그는 1956년에서 1965년 동안 쉘 인터내셔널 석유회사에서 근무했다. 그후 MIT의 슬로언 스쿨에 들어갔다. 여기서 핸디는 워렌 베니스, 크리스 아가리스, 에드 쉐인, 그리고 메이슨 헤어를 만났으며, 조직과 그들의 원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1967년에서 1995년까지 영국 런던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심리학과 교수로 임했다. 영국 최고 비즈니스 스쿨인 슬로언 프로그램을 관리하면서 1972년에 그는 경영철학을 담당하는 정교수가 된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는 윈저성에서 세인트 조지 하우스 학장을 하며 사회 윤리학과 가치를 연구했고, 1987년에서 1989년에는 영국 왕립예술학과 회장을 역임했다. 그 과정에서 7개의 영국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게되는 그는 영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의 생각’이라는 BBC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알려지게 된다. 경영과 삶에 대한 그의 견해는 수년 동안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현대 경제를 창조적으로 분석하고, 인간성 상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찰스 핸디는 이미 10년 전에 오늘날의 다양한 경제 현상 - 다국적 기업의 확산, 개인 기업의 생존 위기, 조직의 해체, 자유시장 경제의 문제점 등- 을 분석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핸디는 조직에서 독립해서 일하고 다양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 대해 ‘포트폴리오 노동자’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핸디는 스스로를 경영의 구루라고 보는 대신 사회 철학자로 생각한다. 그는 여정히 눈먼 탐욕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을 한탄한다. 1994년 ‘올해의 경제 평론가상’을 수상한 <텅 빈 레인코트>를 비롯하여, <올림포스 경제학> <헝그리 정신>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코끼리와 벼룩> <비이성의 시대> 등 그의 책들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핸디 부부는 남편이 글을 쓰고 부인이 자신을 찍는 형태로 공저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를 비롯하여 최근작 <새로운 기부자들>도 부부의 합작품이다. 핸디 부분은 현대 런던과 노퍽에 살고 있다. 

2. 주관적으로 보는 찰스 핸디
- 위트 있는 똑똑한 할아버지. 피터 드러커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할아버지. 그런 느낌이다, 내가 보는 찰스 핸디는. 우리 집에 3권의 책이 있다. <코끼리와 벼룩>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는 이미 있었고, 이번에 와우를 하면서 <포트폴리오 인생>을 추가로 구입했다. 찰스 핸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음에도, 그를 거의 알지 못했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단적인 예로, 그가 인문학 공부를 기반으로 이런 통찰을 쌓았다는 것을 기존에는 몰랐다. 나 역시 올해 들어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던 터라, 반가웠다. 그리고 이번 책에서 <시스템 사고>라는 단어도 언급되었는데 그렇게 내가 가진 관심사와 연결해 보는 것도 즐거웠다. 이 분도 피터 드러커 옹과 마찬가지로, ‘구경꾼’이다. 삶을 회고하면서 마지막 장에 이런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기적이었던 부분에 대한 반성도 빼놓을 수 없다. 결코 궂은 일에 순을 담그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나 실업자와 함께 뭔가를 도모하지 않고 그저 그들에 대한 글만 썼다는 것이 아쉽다. 거리행진을 벌여본 적도 없고, 항의시위에 동참해본 적도 없다.” 그는 그런 상황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조망하며, 앞으로를 예측하고 대비한 사람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피터 드러커, 그리고 나와도 공통점이라고 느껴졌다. 나야 그 언저리에 아직 들어가지도 못 하지만, 성향은 그렇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코끼리와 벼룩도 다시 꺼내들었다. 이런 말이 나오더라 '포트폴리오 생활은 당신에게 성공의 의미를 재규정하도록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인생과 인생의 목적에 관한 그 개인의 가치와 신념이 자연히 드러나게 된다.’ 이 책을 첨 읽은게 2011년이었다. 그땐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삶을 살아보지 않고선 아마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찰스 핸디의 삶도 그랬다. 그리고 그 독립 과정에서 나타나는 딜레마를 잘 나타내 주어서 반가웠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많은 위안이 되었다. "나는 사회철학이 나의 새로운 천직이라고 마음을 정했지만 아직은 시기가 아니었다. 대부분은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포트폴리오 인생으로 내몰린다는 말이 진정 옳다.” 에서 언급된, 삶의 우연성을 나도 공감한다. 나 역시 이 삶을 계획했던 것이 아니므로.  "명확한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이 더욱 불안했다. 이 새로운 찰스 핸디는 누구인가? 포트폴리오 생활자라는 말은 내가 택한 삶의 방식은 말해주지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찰스 핸디가 느낀 이 불안감은 나에게 크게 공감된 것은 아니다. 왜냐? 나는 이미 2015년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찰스 핸디가 살았던 시기에는 앞서서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불안감은 아마 엄청난 쇼크였을터, 하지만 나는 이미 포트폴리오적인 삶을 사는 많은 선배들과 함께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구본형 선생님을 위시로 해서, 그 제자들. 그리고 다양한 프리랜서들이 이미 잘 활동하고 있고. 나는 거기서 힘을 얻는다. 

찰스 핸디의 전체적인 삶에서 가장 영향이 큰 사건은 역시 ‘아버지의 죽음’이 아닐까. 내가 보는 그는 ‘성찰하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어떤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허투로 넘기지 않고 자기 삶의 변화로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는 성찰하는 힘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 행동력은 생각하는 힘에 비해 탁월하진 않다고 느껴지지만, 자신이 말하는 것을 실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음이 느껴진다.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서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외, 몇 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목사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대해서 꽤나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종교에 대한 그의 시각은 나와도 비슷했다. 아마 철학이 그의 삶에 미친 영향이 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을 알리는 것에 대해서 꽤 어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점이 재미있었다. 게다가 그의 매니저도 같은 성향이었다니. ㅋㅋ 어디서나,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나 프리에이전트의 공통된 고민이 아닐까. 그런 점이 재미있었고, 함께 공감할 수 있었다. 피터 드러커와는 달리, 아직 살아계신 분이라 그런지 느낌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분의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 갑자기 그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는 웃으면서 눈을 감을 수 있을까? 그는 살면서 자신을 발견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옮겨적기]
1. 정말입니까?
- “찰스 핸디가 여기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남자는 다소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잠시 나를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정말입니까?” 나는 남자에게 좋은 질문을 해주었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버전의 찰스 핸디가 있어 왔고, 사실 그들 모두가 마냥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니까.
+ ‘정말입니까, 당신이 정말 강정욱 맞습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란 참 어렵다. 내 안에 있는 정말 많은 나를 본다. 어떤 나는 자랑스럽고, 어떤 나는 부끄럽고, 어떤 모습의 나는 치욕스럽다. 그래서 성찰이 필요하단 결론에 이른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혹은 한달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나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나답게 하루를 혹은 한달을 보냈는가? 그렇게 되물어보지 않으면 나는 마치 영화 속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듯 시간을 보내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 진짜 배역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게 될 수도 있다.  

- 오랫동안 나는 내가 바라는 찰스 핸디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뚜렷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도 교수 찰스 핸디의 모습이 내가 바라는 모습에 조금 더 가까웠다. … 앞으로 다른 버전의 새로운 찰스 핸디가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감히 누가 장담할 것인가? … 죽기 전까지 ‘완전한 자신’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 나 역시 그렇다. 앞으로 10년 뒤에 정말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수업을 준비하고, 가르치고, 종종 글을 쓰고,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배우고 그러는 것이 좋지만, 앞으론 잘 모르겠다. 완전한 자신을 죽기 전에 찾을수나 있을까? 그저 도달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인간이 가진 최선의 노력이 아닐까?

- 우리의 최선은 조하리의 창에서 A부분을 가능한 많이 개방하고 미지의 영역인 C를 탐험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정직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 내 본모습대로 살기로 마음먹으니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얼마나 마음이 놓이든지. 
+ 남들이 모르는 내 영역은 최대한 개방하는 것은 정직과 표현이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영역을 남들로 하여금 파악하게 하는 것은 (마주치려는) 용기와 수용 능력이다. 이것을 가장 잘 도와주는 나의 우군이 나의 아내과 가족들이란 생각도 든다. 내가 모르는, 나밖에 모르는 영역을 가장 많이 공유해서이지 않을까. 

-  허미니아 아이바라 교수는 서른아홉 명의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꾼 방법을 알아보았다. … 아이하라 교수는 행동하기 전에 원하는 바를 알아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고 주장했다. 일단 행동하고 경험하고 질문하고 다시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지금 생각해보면 삶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다른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진정 어떤 일에 재능이 있는지를 끝내 모른 채 죽는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 준비, 조준, 발사! 아니다. 준비, 발사, 조준! 어떤 때는 ‘준비’ ‘조준’도 필요없다. 그저 오로지 ‘발사, 발사, 발사’만이 필요한 시기도 있다. 나 역시 지금 하고 있는 주된 일을 ‘준비’하거나 미리 ‘계획’해서 구상해보았던 적이 없다. 그저 경험하고 그때 발생하는 나의 감정에 충실했던 기억이 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코나투스’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기쁨을 마주했을 때 그 기쁨을 증가시키려는 자연스러운 힘. 혹은 슬픔을 줄이려는 힘. 그것이 코나투스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도 연결되는 개념이고. 암튼 나 역시 ‘천직’ 을 찾고,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선 ‘옳고 그름’이 아닌 ‘기쁨과 슬픔’을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기쁨과 슬픔은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오기에, 그 접촉의 경험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 지금 쓰고 있는 이 책 자체가 나의 완전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다. 변화해온 삶 속에 등장했던 여러 찰스 핸디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들을 만나고 성찰하는 과정이 바로 이 책이다. 
+ ‘정말입니까’ 이 챕터에서 찰스 핸디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결론을 제시한다. 이 책의 결론은 바로 최초의 질문이다. “정말입니까?” 덧붙이자면 이렇다. “당신은 정말 당신 스스로의 자신입니까?” 이 책이 그 질문에 답을 해 나가는 나름의 여정이 아닐까. 나 역시 이러한 책을 쓴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잠깐 고민해본다. 

2. 아일랜드에서의 시작
- 내 과거를 돌아보며 사람의 유년기 환경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세상을 보는 방법이 하나뿐이라고 믿으며 성장하고, 이를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쉬운가도 깨닫기 시작했다. … 이제 나는 참으로 황당무계한 인생관을 주장하는 이가 동시에 참으로 마음씨 도운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39
+ 피터드러커 자서전에서 느낀 점과 비슷하다. 찰스 핸디는 영국계 아일랜드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아마 적잖이 찰스에게도 전이 되었으리라. 나에게 대입해보면, 나는 1983년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그렇고, 나 역시도 대구 출신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유년기 환경이 막강하게 내 삶에 많은 영향은 미치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 그 이유로는 내가 2001년 이후에 수원을 비롯한 서울 등지에서 시간을 보냈었기 때문은 아닐까. 좀 더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혀 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할 듯 싶다. 세상을 보는 방법을 다양히 배우므로. 

- 기질적으로 나는 아일랜드 사람이 아니다. 무리를 좋아하고 위트가 넘치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파티를 즐기는 그런 인사도 아니고, 선술집이나 바를 편안해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형적인 영국계 아일랜드인도 아니다. 총을 잘 쏘고, 사냥과 낚시를 즐기는 시골 사람 말이다. 43
+ 내가 본 찰스 핸디는 어느 쪽에도 분명히 속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 속할 수 있는 기질의 사람이 아닌 듯 보인다. 피터드러커는 스스로를 ‘구경꾼’이라고 칭했지만, 찰스 핸디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칭할까? 나는 ‘경계인’이라고 칭하고 싶다. 어디에 발을 담구더라도 한쪽 발은 다른 곳에 걸쳐져있는 그런 사람. 그래서 포트폴리오라는 삶의 모습에서 그가 가장 큰 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여러 경계에 동시에 속하면서도 어느 경계에도 머무르지 않는. 그런 사람을 나는 ‘경계인’이라 부른다. 

- 과연 어떤 나라가 세계화를 향한 문을 눈에 뛸 정도로 닫을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아일랜드는 현대 사회의 딜리마를 보여주는 사례연구의 장이다. 47
+ 이 책을 쓸 당시만 해도, 아일랜드의 위세가 대단했는데.. 한때 켈틱의 호랑이라고 불렸으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엄청난 하락세가 온 걸로 알고 있다. 그 이후의 소식은 잘 몰랐던 터라 이번에 검색을 해 봤더니. 글쎄 다시 경제 위기 극복의 아이콘이 되었지 뭐냐. 국가 신용도는 A에서 A+로 향상되었다고 하고, 나라를 떠난 인재들은 다시 모여든다고 한다. 이리도 경제 예측은 어렵다. 그리고 아일랜드의 저력도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3. 그리스인의 지혜
- “우선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3000자로 에세이를 제출하게.” … 여기는 내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역사와 철학을 배우고 있는 옥스퍼드 대학이었다. 49
+ 와, 진짜 멋진 숙제다. 만약 내가 이런 숙제를 대학교 때 받았다면 나는 뭐라고 썼을까?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원래 좋은 대학교를 별로 가고 싶어 하지도, 부러워하지도 않는 편인데, 이번엔 부러웠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는 내가 원하는 그런 모습의 대학교와 닮아 있었다. 물론 속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 내가 고전문학도가 된 것은 우정 때문으로, 말하자면 우연이었다. 열두 살 때 친구가 그리스어를 함께 배우자고 한 것이 계기였다. 50
+ 재미있는 부분이다. 12살에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하기도 하다니. 그것도 우연히 말이다. 허긴 삶에서 우연을 빼면 뭐가 남는가. 

- 어쨌거나 언어장벽을 깬 이후에는 위대한 두 문명의 역사와 철학을 파고들었는데, 그러자 좀 더 흥미가 생겼다. 역사의 매력도 알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들의 원인을 밝혀내고, 인물, 정황, 사건 사이의 얼키고 설킨 연결 관계를 드러내려 애쓰는 과정에서 즐거움도 커졌다. … 이런 사고방식이 그대로 나의 일부가 되었다. 당시에 말해준 사람은 없지만 내가 혼자서 터득한 이런 사고방식이 알고 보니 ‘시스템사고’라는 것이었다. 51
+ 시스템 사고를 여기서 만나다니! 나 역시 푹 빠져든 사고 체계다.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고, 또 피드백 루프를 통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살피는 그런 사고 체계. 이 시스템 사고의 특징은 ‘장기적 관점’이다. 전체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단기간은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장기적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사례도 많고, 또 그러한 인과관계를 추적하다가 보면,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추리하게 된다. 그러한 사고 능력을 훈련하는 데에는 역시 역사가 최고다. 역사적 사실들과 인과관계. 그것들을 파해치고, 분석하고. 그게 바로 찰스 핸디의 힘이구나. 나도 역사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 ㅠ

- 전공 때문에 나는 언어와 논쟁을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일반적인 통념을 짖궂게 꼬아보고 의심해보라고, 널리 인정되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해보라고, 문제 해결의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하라고 배웠다. … 내가 토론이나 논쟁에서 반대의견을 잘 받아들이고 오히려 즐기는 데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대화체로 기술한 저서들을 많이 읽은 탓도 크다. 56-58
+ 인문학의 힘. 

- 그러다가 교수님이 처음 보는 단어가 나왔다. “이건 모르는 단언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니 리델앤스콧 그리스어 대사전을 펼쳤다. “흠.. 리델도 스콧도 모르는 모양인데. 하지만 그리스 사람이었다면 이해했을 걸세. 그리스 사람들은 이 표현을 좋아했을 거야. 잘했네.” 그리고 체크. ‘여러분의 답이 더 훌륭하다면 책에 나와 있는 답은 중요하지 않다.’ 그날 내가 얻은 교훈은 그것이었다. 63
+ 이런 교수님. 너무 멋지다. 우리나라 같았음 과연 가능한 대화일까? 학점이 잘 나오기나 할까? 

- 나처럼 거기서 공부했던 라틴어와 그리스어. 로마와 그리스의 역사와 철학의 세세한 내용을 잊어버려도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옥스퍼드 인문학도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고 조리 있게 표현하고, 자신의 추론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법을 배우니까. 64
+ ‘희망의 인문학’이란 책을 계기로, 인문학에 대해서 관심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헌데 이 책에서도 찰스 핸디의 놀라운 통찰의 배경이 인문학임을 알아버렸다. 지난 번 피터드러커도 거의 이런 수준의 독서를 한 것으로 보이고. 거장들은 다 공통점이 있다. 핵심은 생각의 힘을 키우는 방법에 있다. 그 힘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좋은 책을 보고, 글에 대해서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다시 글로 쓰는 것이겠지. 

4. 보르네오에서 얻은 교훈
- 나한테는 분명 도움이 되었다. 다른 것은 다 빼고라도, 남은 평생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무엇인가는 확실히 알았다. 누군다는 이를 ‘부정적 학습’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경험을 통해 얻은 유용한 결과라고 보았다. 77
+ 나에겐 공학이 그렇다. 평생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는 나도 안다. 연지원 선생님도 공학 전공인 걸로 아는데, 나보다 훨씬 더 일찍 깨닫고 본인이 원한 것을 공부한 걸로 안다. 나는 미적미적, 꾸물꾸물 대다가 8년이 지나서야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을 제외하곤, 마음에 드는 결과다.당시에 만약 벌컥 취업이라도 되어 버렸다면, 으. 끔찍하다. 

- 싱가포르 대학에서 석유산업의 미래에 관해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그때 나는 또 하나의 귀중한 교훈을 깨달았다. 어떤 주제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보라는 것이다. … 이후로 나는 새로운 청중이나 독자를 위해 강연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보다 내가 더 많이 배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80
+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때, 내가 무엇을 제대로 알고, 모르는지 확실히 안다. 나 역시 강의에서 많이 배운다. 그리고 강의 중에 누군가가 질문했을 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면 그걸 다시 공부하게 된다. 그렇게 공부하고 난 뒤에 그 사실을 잊어버린 적은 없다. 그 정도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최고의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셀에서 나는 창고에 쌓여 있는 지식은 금세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배웠다. 실제 경험이 결합되지 않고 머릿 속에만 있는 지식은 증발해버린다. 82

5. 황금의 씨앗
- 아무리 좋게 말하려 해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는 종일 시계만 들여다보는 게으른 직장인이 되었다. 칼같이 사무실을 나서면, 마찬가지로 근무시간이 끝나자마자 다른 생활을 찾아 떠나는 직원들로 엘리베이터는 이미 만원이었다. 업무가 과소하고, 책임이 너무 작아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88
+ 나에겐 회사 생활을 했던 기간이 2년이다. (사실상 3년이지만, 마지막 1년은 회사라 보기가 어려워서 뺐다) 그때의 나는 어떤 직장인이었나? 돌아보면, 뭐 평범했다. 그리 탁월하지도, 그렇다고 막 떨어지는 그런 직장인도 아니었다. 개인적인 성취의 경험도 있었고, 학습의 경험도 잊지 못할 듯 하다. 게으름을 자주 부린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회사가 재미없던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끝나고 카페에서 책을 보고, 주말에 스터디 모임을 나가 공부를 하고, 그렇게 허기를 달래던 내 모습을 보면 나는 역시 회사 체질은 아니다. 

 - 당시 경험 덕택에 좌절한 노동자들이 보잘 것 없는 힘이라도 부정적인 힘을 행사하고픈 유혹을 느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뚜렷한 이유 없이 개발허가를 내주지 않던 공무원, 부리나케 뛰어가는 나를 보고 문을 닫아버리던 공항 직원… 그들은 모두 부정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중요한 존재임을 보여줄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었으므로. 89

- 교육업무는 나한테 무척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직감적으로 천직을 찾았음을 알았다. 그래서 회사에서 라디베리아 지사 관리 업무를 맡기자 이를 거절했다. 센터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회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서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로 나는 최초의 사직서를 썼다. 91
+ 나에게도 그렇다. 교육을 제외한 어떤 일도 나에게 크게 매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고 사직서를 낼 수 있었을까? 그렇게 했을 거 같긴 하다. 나 역시 몇번의 이직과 창업의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격렬하게 저항하는 편이니까. 지금도 그 경향이 더 강해졌음 강해졌지 약해지진 않은 것 같다. 

- 나는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라는 책을 공동집필했다. 창조적 정신을 가진 진취적 사업가들을 다룬 책으로 이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의미로 ‘연금술사’라고 불렀다. 이들 ‘연금술사’들의 삶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인생 초반에 존경하는 인물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입의 내용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준 것이다. 이런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에 이들은 과감히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택해 ‘연금술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책을 쓴 다음에야 프로이드가 이것을 ‘황금의 씨앗’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95
+ 이 책 우리집에 있는 책이다. 사진이 많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걸 찰스 핸디의 부인이 찍은 거구나. 참 멋진 공동 작업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연금술사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지향점이긴 하지만. 나에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인생 초반, 그 결정적인 시점에 ‘존경하는 인물’이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20대 중반에 들어서야 스승을 찾아다녔다. 찾아 나서고도 한참을 돌았던 것 같다. 나에게 믿음과 확신을 심어준 것은 다양한 어른도 있었지만, 역시 부모님이다. 그리고 많은 책과 코칭 프로그램들. 그런 다양한 수업과 책을 통한 성현의 말씀을 통해 나를 바로 잡아 나갔던 것 같다. 젊을 때 만난 스승의 부재는 앞으로도 계속 안타까울 것 같다. 

- 토크빌은 또한 ‘돈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강한 나라를 본 적이 없다’고 평했다. 이 점은 나한테도 흥미로웠고 다소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돈이 모든 것의 척도인 것 같았고 내가 다니는 경영대학원은 더욱 그랬다. 미국인들은 자유와 평등을 모두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경제적 평등을 기꺼이 희생할 사람들로 보였다. 그런 태도 때문에 미국은 선진국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를 바로 잡으려는 진정한 사회주의 정당이 없었다. 101
+ 라깡의 말.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것. 그것은 정확히 현대 사회를 말한다고 느껴진다. 미국이 그 전형적인 예다. 세속주의의 모델. 모든 가치가 돈으로 치환된 사회. 그리고 돈에 대해서 욕망하는 것이 뭐가 그리 죄가 되느냐는 생각들. 돈에 대해서 욕망하는 것이 진정 자신의 욕망인지. 그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이런 미국의 가치관은 전 세계에 주입되었지만, 가장 강하게 타격을 입은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이 아닐까. 자본주의라는 달콤함에 빠져서 아직도 하우적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 미국에서 배운 몇 가지 교훈만은 확실히 가슴에 새겼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충분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개인의 창의력 활용을 장려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나는 해마다 미국에 가서 특유의 활력과 낙관주의를 보충하곤 했다. 미국에서 보낸 1년은 삶에 대한 내 태도를 바꿔놓았다. 104
+ 나는 미국에 부정적인 관점이 강한 편이지만, 그 양면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소유에의 욕구는 필연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활력, 낙천주의, 긍정성. 그런 감정은 분명 미국에서 두드러진다. 과거의 미국은 분명 그런 점에서 전 세계의 롤모델이 될만 했다. 피터 드러커도 이 점을 지적했었다. 대공황을 견뎌내면서 만들어낸 미국 특유의 분위기. 그 미덕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에게도 그런 시점이 있었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지금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6. 경영을 가르치는 학교
- 경영을 배우려고 학교에 간다는 것은 당시 영국인들에게는 이상한 발상이었다. … 한 교수는 분개하여 ‘우리 학교는 실업학교가 아닙니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107
+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 우리나라 대학교들을 보면 뭐라고 할까. 한 학교는 커다랗게 이런 광고를 하는 것도 봤다. ‘공무원 사관학교’ 아무리 대학이 지성의 상아탑 역할을 저버렀기로소니 어떻게 당당하게 공무원을 생산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타깝다.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 1년이라는 시간은 나를 위해 투자하면서 나와 가족들 말고는 누구한테도 책임을 느끼지 않고 보내는, 순전히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 하지만 과연 나는 그곳에서 유용한 뭔가를 배웠을까 자문해본다. 대답은 간단하지만 다소 역설적이다.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다. 바로 그곳에  갈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수업과정이 끝나갈 무렵 나는 그동안 공부한 것들의 중요한 대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곳에 가야 했다. … 필요할 때 쉽게 꺼내 활용하려면 무의식 속의 배움을 의식 속으로 끌어내야 한다. MIT가 내게 해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부분은 ‘유경험자 교육과정’을 통해 이를 끌어낸다. 115
+ 내가 대학 졸업 후, 혹은 좀 비싼 교육 프로그램을 들은 후에 하는 생각이 딱 그렇다.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이것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배웠다는 것이다.” 대학교 졸업할 때도 나는 대학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배웠다. 삶면서 그런 것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 뒤에 언급되는 이 문장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곳에 가야 했다.’ 나 역시 그 점에 동의한다. 돈을 쓰지 않았다면,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우린 생각으론 아무 것도 알 수 없기에, 일단 저질러야 한다. 그리곤 그럴 필요 없었음을 배워야 한다. 다음에 좀 더 현명하게 행동하기 위해서. 

-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창고에 쌓아둔 지식은 아주 빠른 속도로 부패한다. 막상 사용해야 할 시점에는 창고 안에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언어를 배우려면 배운 직후 가능한 빨리 써먹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다른 것도 다르지 않다. 117
+ 그런 점에서 강사는 참 좋은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배우고 바로 써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 나는 런던경영대학원 프로그램을 MIT 프로그램만큼 훌륭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거기에 우리만의 장점을 보태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옥스퍼드에서 배운 철학적 사유를 경영대학원 프로그램에 포함시킬 방안을 찾고 싶었다. … 옥스퍼드에 MIT를 결합하면 진정 강력한 결합물이 탄생하리라고 생각했다. 123
+ 오오, 경영과 철학의 만남. 기대된다. 

7. 안티고네의 도전
- 나는 그들이 사유하는 기업인이 되기를 바랐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일상생활에서나 직장에서나 스스로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하고, 고용주의 지시대로 따르는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싶었다. 내가 그런 방향으로 이끌고 지원해주면, 이들은 소위 ‘철학자 겸 관리자’가 될 터였다. .. 그리하여 첫째 주 집단토의 자료로 문학작품인 <안티고네>를 택한 것이었다. 나는 이를 일종의 ‘명저’ 체험으로 생각했고,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식 사고’를 심어줄 수 있으리라 보았다. 126
+ 사유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참 드문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기존 지배구조가 단단한 이런 나라에선 ‘사유’ 보다는 ‘인맥 관리’가 더 중요한 역량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이 있다. 고용주의 지시대로 따르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그는 아직도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일어나게 한 당사자는 얼마 안 되는 징역을 받았고, 회장은 벌써부터 복귀를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 누가 ‘사유하는 종업원’을 원하겠는가? 하물며 ‘사유하는 기업가’는 가능하기나 할까? 한국은 분명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 맞다. 아무리 기업에서 인문학 특강을 개최한다고 한들, 한낯 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 소포클래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안티고네는 테베의 통치자인 외삼촌의 명령과 본인의 양심 및 종교적 책무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 당신도 같은 처지라면 안티고네처럼 행동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명령을 어길 만큼 소중한 신념이 있는가? 127
+ 나는 그 본부장처럼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양심에 내 몸을 던질 수 있을까? 

- 타인의 전문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결국에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꼴이 된다. 129

- 당장의 사냥감을 좇는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집단의 결속이 강해지고, 승리 혹은 성공하려는 욕망 속에서 윤리나 도덕은 설 자리를 잃는다. 옳은 길 보다는 빨리 가는 쉬운 길을 택하고, 개인의 정체성과 차이는 사라지며, 옳고 그름은 유용하냐 아니냐에 따라 다시 정의된다. 136
+ 우리나라의 특징이 아닐까.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논의 보다는 무엇이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 라는 논의가 앞서는. 윤리와 도덕은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버린 나라. 나는 이 모든 것이 ‘세속화(모든 가치가 자본화 되어버린 현상)’에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이 세속화를 이켜낼 수 있을까? 그 답은 결국 진정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철학 및 인문학 교육이 아닐까? 계속 그쪽으로 마음이 간다. 

- 하지만 관리자 교육과정에서 윤리와 관련된 철학사상을 접하게 하려는 독특한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학생도 회사도 즉각 효과가 나타나는 교육을 원했다. 언제나처럼 실용주의자가 철학파보다 우세했다. … 나는 학생들의 요구라는 형태로 표현된 시장의 압력에 굴복했다. … 시장의 요구에 따라야 하는가, 시장을 주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고객의 선택이 항상 옳은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오히려 고객에게 최선을 일러줄 수도 있는 것인가? 여론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가? 139
+ 나도 많이 하는 고민들. 시장의 요구, 대중의 요구에 그저 따르는 것이 답인가? 아니면 그들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끝까지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교만한, 계몽주의적 태도가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의 요구에 편입하는 것은 그저 양심을 거스르는 것이 아닌가? 진짜 어렵다. 사람들이 원하는 교육과 내가 하고 싶은 교육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지혜로운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8. 아버지의 죽음
- 나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조용하고, 온화하고, 인정 많은 분이었다. … 아버지는 은둔자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성직자로 일한 대부분의 기간을 자리를 옮기지 않고 같은 시골 교구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시다니. … 아버지는 도대체 야망이라곤 없는 사람 같았다. 144
+ 철없던 20대에 나도 우리 부모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너무 평범하다. 특별하지 않아서 불만이었던 적이 있다. 

- 거기 서서 아버지에 대해 곰곰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결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내 장례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줄까? 자문해보았다. … 내 삶과 일이 누구에게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질 것인가? 아버지가 깊이 영향을 미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내 바쁜 일상과 소위 성공이라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 생각할수록 아버지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아버지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있었다. 147
+ 하지만 나 역시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을 쌓아온 평판과 신뢰는 대단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회사를 나와서 친구와 함께 동업을 하며 사업을 시작한 나름대로의(?) 1인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20년 넘는 시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해 온,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삶을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가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울어줄지를.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문제는 아버지, 어머니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있었다.  

- 나는 바쁜 일상에 빠져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가 되려면 먼저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가치관과 야망을 결정하는 대신, 남의 가치관과 야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잘못된 것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과 정신적 충격, 혹은 거절과 좌절 등을 경험한 뒤에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생각한다고 한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147

- 내가 변화를 모색할 시기라고 권장하는 A지점은 일이 잘 돌아가는 상승기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마냥 좋아 보일 시기다. … A지점임을 짐작케 하는 실마리들은 있다. 편안함도 그 중에 하나다. 너무 편안하고 삶이나 일이 마음대로 된다 싶으면, 만족감 때문에 본인이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고 방심하기 쉽다. 그러므로 성공에 안주하는 것은 항상 위험하다. 개인의 삶에서든 사업에서든. 151
+ 좋은 비유였다. 일이 잘 돌아가는 시기일 때 오히려 새로운 일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 나로 옮겨오면, 내가 인문학 공부에 열을 올리는 것과 같다. 나는 앞으로 청소년들과 함께 철학과 인문학, 글쓰기 공부를 하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수업도 열심히 하되, 좀 더 나아가서 이런 분야로도 확대하고 싶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성찰하고 실천하는 삶을 함께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앞으로 3년 정도는 꾸준히 공부하고 싶다. 기회가 되면 철학 토론도 진행해 보고 싶고. 그렇게 나의 영역을 확장하자. 

9. 윈저성을 집 삼아
- 우리가 그런 일을 하자고 거기 있는 것일까? … 돈을 벌고 쓰는 구체적인 방법에 구애받지 않으면, 돈을 버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돈을 버는 방법도 쓰는 방법도 모두 신경써야 할 중요한 사항이었다. … 돈과 이윤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돈과 이윤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면 외부에 이기적으로 비칠 뿐 아니라, 좀 더 표괄적인 의미의 기업의 책무,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는다. 163
+ 우연히, 찰스 핸디는 윈저성에 근무한 덕에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CSR을 비롯한 개념들이 기업들에게 익숙할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낯선 개념이었을까. 경영 구루들의 특징은 이러한 ‘윤리적 가치’에 민감했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을 경영 구루가 칭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가들이 무시하는 것도 사실이다. 

- 내가 포트폴리오 인생 이라는 비유를 생각해낸 것도 바로 그때였다. 점점 많은 노동자가 반강제로 소속 조직이 없는 독립 노동자로 내몰리거나, 자의로 그 길을 택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들이 사회 구성원의 다수를 이루리라는 생각에서 나온 개념이었다. 170

- 나는 이런 현상을 ‘벼룩 경제’라고 부른다.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각종 소규모 기업과 자유로운 개인, 즉 프리랜서들로 이루어진 경제다. … 우리는 이제 산업사회가 아니라 지식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소규모 기업, 독립된 개인들이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사회다. … 우리는 이제 세상으로 나가는 젊은이들에게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171
+ 2009년 부터 <새로운 미래가 온다>를 비롯한, 다양한 미래학 책을 봤다. 톰 피터스의 <미래를 경영하라>도 재미있게 봤고.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견했다.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분명 가까워지고 있다. 사람들이 기대한 것처럼 한 순간에 변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역시 아직 우리나라는 멀었어’라고 실망했을 지도 모르겠다. 한때 1인 창조기업 이라고 한창 떠들던 정책과 개념들도 다 사라지고 말았으니. 하지만, 결국 이 시대는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우리에게 오고 있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삶이 더 고난해질 때 어쩌면 이 시대는 더 빛을 발하는게 아닐까? 나를 고용해주는 곳은 다 사라지니, 이젠 스스로라도 고용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 프리랜서는 대체로 급여나 임금 대신 수수료를 받지만, 양자의 차이는 주요하다. 수수료는 한 일에 대해서 지급되는 돈이고, 급여나 임금은 시간당으로 지급되는 돈이다. 수수료는 일한 사람이 계산하여 청구하는 돈이고, 급여는 고용주가 계산하여 지급하는 돈이다. 173

- ‘계란 포장’은 우리 집에서 '따분하지만 수지맞는 일'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고상한 활동에 드는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 다소 허접한 일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이는 포트폴리오 생활을 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 이 사고방식에는 대부분의 생활이 일이며 어떤 것은 따분하고, 어떤 것은 돈이 되고, 어떤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일과 생활의 균형’이 아니라 ‘일의 균형’이다. 174
+ 내 주위에 가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으론 생활이 여의치가 않다. 그녀는 아이들도 가르친다. 영어도 가르친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노래를 부르고 여행을 떠난다. ‘따분하지만 수지맞는 일’은 참 중요하다. 나에게도 작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취업 컨설팅’을 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돈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도 있었기에. 하기 싫은 일이라고 해도, 너무 완고한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포트폴리오 생활 하기엔 어렵다고 본다. 그런 사람은 정말 성직자 혹은 예술가를 해야 겠지. 포트폴리오 생황에서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추구’와 ‘삶의 유지’가 둘 다 균형감 있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참 어렵다. 

10. 성 마이클과 성 조지
- 나는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문화적 기독교인’ 즉 기독교 문화에 심취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 장엄한 영국 교회와 성당에 심취하고 … 많은 음악에, 그곳의 의식과 17세기 언어에 심취했다. 하지만 이런 구조물 뒤에 놓인 교회조직에는 그다지 호감을 가지지 않았다.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교회조직도 존재의 진정한 이유를 찾기보다는 생존에 더욱 급급해한다는 인상을 준다. 183
+ 견제를 받지 못하는 모든 조직은 결국 부패한다. 기독교나 불교도 마찬가지다. 종교 분야에 견제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 견제라는 개념이 불편한 분야라는 것. 나는 그런 것들이 아쉽다. 

- 기독교 신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185
+ 내 말이 그렇다. 나는 천국과 지옥이란 개념도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내세에서의 ‘천국’과 ‘지옥’을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좀 어색하다. 뒤에 찰스 핸디도 말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바에는 지금 열심히 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예수님도 내세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내가 보는 모든 깨달은 자들의 공통점은 ‘지금, 여기’를 말한다는 점이다. 잠들어 있는 우리들을 깨우는 것이 선각자의 역할이라면, 예수님도 분명 그랬을 것이기에. 나는 그래서 니체의 이 말을 좋아한다.  “네가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추구한다면, 믿어라. 네가 진리의 사도이기를 원한다면, 탐구해라.” 믿기 보다는 탐구하고 싶다. 찰스 핸디도 그랬을 것이다. 

- “용기를 갖고 지금 너의 새로운 삶을 시작해라.” 그리스도 상은 나에게 말한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해석이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알쏭달쏭한 개념보다 훨씬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승에서는 적어도 뭔가 해볼 수 있으니까. 189

- 생각해보면 나는 일종의 기독교 인문주의자가 아닌가 싶다. …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신은 생활이다.” 우리는 바로 생활 속에서 신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192
+ 기독교 인문주의자라는 말이 참 좋게 들렸다. 나도 기독교를 좋아한다. 하지만 몇몇 기독교인들에게서 발견되는 그 ‘맹목성’을 싫어할 뿐이다. 나는 불교도 좋아하지만, 마찬가지로 ‘맹목성’은 싫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인문주의자처럼 어떤 종교든 뒤에 ‘인문주의자’를 붙이면 그럴 듯 하단 생각을 했다. 불교 인문주의자. 이슬람교 인문주의자. 이처럼 말이다. 

- 지식인들이 죽음을 앞두고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례도 많이 보았다. 그간의 모든 지적 딜레마들이 일거에 해결되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정신적으로 편안해진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고 자란 아일랜드에서 종교를 맹신하고 무조건 복종한 나머지 유발되는 도덕적 독재의 위험을 목도했다. 당시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법규는 엄격했고, 사제가 사람들의 모든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했다. 이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의 종료였다. 198
+ 최근에 니체에 대해서 공부하고 쓴 글이 있다. 여기서 니체는 기독교의 내세가 현세의 ‘힘에의 의지’를 거스른다고 보았다. 이처럼 니체는 ‘믿음’이란 개념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유일한 그리스도교는 오직 예수 한명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기독교는 사도 바울을 위시로한 사제들의 종교일 뿐이라고 외친다. 그의 말에 나 역시 일견 동의한다. 어쩌면 기독교의 숨겨진 메시지는 그의 말대로 ‘사랑’이 아니라 '복수’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재작년에 로마의 카타콤을 들린 적이 있다. 그곳은 어둡고, 답답하고, 음침했다.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간 수 많은 초기 기독교도인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들에게 분명 ‘사랑’이 남아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곳은 ‘복수심’이 자라기 좋은 환경임은 분명하다. "지금은 우리가 비록 이렇게 지내지만, 내세에선, 하늘나라에선 ‘두고보자’는 복수심.”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나, 나는 부폐한 한국 교회나 사이비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종종 목도한다. 길거리에서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도. 물론, 참다운 종교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아니다. 참다운 종교는 언제나 죄와 벌이 아닌, 현재를 이야기 하니까. 

- 신이 부정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행동수칙을 만들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동안 포기했던 ‘스스로 생각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모두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점점 세속화되는 세상에서 교회의 새로운 역할은 철학을 가르치는 기관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99
+ 교회에서 철학을 가르친다면,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함께 읽고 토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능하기만 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11. 포트폴리오 인생
- 나는 사회철학이 나의 새로운 천직이라고 마음을 정했지만 아직은 시기가 아니었다. 대부분은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포트폴리오 인생으로 내몰린다는 말이 진정 옳다. 204
+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내몰렸다.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막상 회사를 들어갈 마음이 없을 때 프로젝트 하나를 맡게 되었고, 그 길로 이런 삶으로 내몰렸다. 인생은 인생은 우연과 필연의 합주다. 그것이 진정 맞다. 

- 명확한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이 더욱 불안했다. 이 새로운 찰스 핸디는 누구인가? 포트폴리오 생활자라는 말은 내가 택한 삶의 방식은 말해주지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206
+ 나는 애초에 명확한 정체성 자체가 없어서 그런 점에서 불안감은 없었다.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는 상황이라. 허허허. 

- 이제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은 무소속의 찰스 핸디로서 내 처신에 따라 해를 입을 수 있는 대상도, 내가 눈치를 봐야 할 대상도 오직 나뿐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믿는 바를 말하고 글로 쓰고, 원하는 사람이 되고, 좋아하는 곳에 가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일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08
+ 나는 지금의 삶이 좋다.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쓰고 싶을 때 시간을 쓰고, 내가 하고 싶은 강의를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기에. 경제적 안정감을 제외하곤 사실 거의 완벽한 삶의 행복이다. 물론 가끔 그 경제적 불안감이 삶의 행복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하지만 말이다. ㅠㅜ 그래서 정신차려야 한다. ㅋㅋ

- 무소속의 독립 생활자들은 누구나 자기 선전활동을 해야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자신 또는 내가 만든 제품을 선전하고 판매해야 하는 현실을 싫어했다. … 하지만 수요하는 것도 처음에는 인위적으로 창출해주어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다. … 대리인은 개인의 재능과 기술을 이를 찾는 고객과 연결시켜 주는 말하자면 중개인이다. 나도 밖으로 나가서 대리인을 찾았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대리인도 자랑하고 떠벌리는 것을 싫어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나보다 소극적이었다. 211
+ 빵 터졌다. 나와 공통점을 찾아서 기쁘기도 했고. 나에겐 어떤 대리인이 있는 걸까? 그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는 편이다. 강력한 에이전트가 있어서 강의를 자주 주는 편도 아니다. 지금 하는 강의는 대부분 나의 지인들이 연결해 준 것들이다. 아직까지는 감사하게 이렇게 연결 연결해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단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강력한 마케팅 활동의 필요성도 느낀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몇년동안 그랬다. 흑흑. 

- 돈을 갖고 싶다는 이유로 싫은 일을 하는 덫에 빠지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파우스트의 거래’로 바뀌고 만다. 216

- 해마다 9월이면, 3만 5천여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버닝맨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네바다 사막에 모여든다. 참가자들은 축제 창안자이자 준비위원장인 해리 하비가 네바다 사막에 만들어낸, 상업성이 배제된 증여경제를 경험하게 된다. 일주일간 제공되는 모든 것이 무료다. 사람들은 자신의 서비스와 물건들을 공짜로 내놓는다. … 래리 하비는 ‘이는 현대사회의 물질과잉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며,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정의하려는 작운 시도’라는 취지를 밝힌다. 224
+ 버닝맨 페스티벌! 여기서 볼 줄이야. 2012년이었나, 내가 처음 들었던 축제다. 너무너무 멋진 시도라고 느꼈고, 정말 한번쯤 가고 싶었다.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자신의 작품들을 마음껏 뽐내는 무대. 이런 분위기 너무 좋다. 

12. 부동산과 소유권
- 현금과 거처는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인 반면, 여기서 범위를 넓힌 자금과 부동산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이다. 228
+ 참된 삶을 위해선 필요와 욕망을 구분해야 하지만, 자본주의는 욕망으로 유지된다.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 엘리자베스는 나처럼 소유에 죄의식을 갖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소유가 좋은 것이라고 믿었다. 뭔가를 소유하면, 거기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하고 더욱 발전시킬 유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런던 집에 세들어 사는 기간 내내 우리 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집에 한푼도 투자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맞는 말이다. 233
+ 굳이 나와 비교하자면, 나는 찰스와, 아내가 엘리자베스와 비슷한 편이다. 소유에 별 미련이 없는 나에 비해서, 아내는 소유에 일가견이 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측면에서 도움도 많이 받는다. 우리 집 인테리어나 그런 것들은 모두 아내의 덕이다. 센스있게 무언가를 꾸미고, 맞춰서 사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한 도움을 받다보니, 나의 생각이 결혼 이후에 많이 바뀌게 된 것도 사실이고. 

- 소유권은 적극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말하자면 소유자의 야망을 자극하고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소유권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소유자 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집단의 이익을 존중하고 지키려면, 그럴듯한 말과 선한 의지로는 불충분하다. …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말은 무성하지만 효과적인 강제수단이 없다. 상황이 안 좋으면 선의는 사라지게 마련이므로 기업의 자발적인 선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234
+ 소유권은 적극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이 말이 참 와닿았다. 소유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나라고 해도, 어떤 부분에선 굉장히 적극적인 동기를 가진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책이다. 하지만 그것이 낳는 이기적인 속성도 조심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참 어렵다. 기업들이 사실 자기들의 몸집만 불릴 뿐, 사회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도 그렇고. 

- 필요와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필요를 목적으로 만드는 일은 논리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논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필요조건을 충분조건으로 혼동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기 위해서 산다면, 다시 말해 음식을 삶의 충분조건, 즉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하등동물과 다를 바 없어진다. 바꿔 말하면 비즈니스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더욱 큰일 또는 더욱 훌륭한 ‘뭔가’를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이유, 즉 목적은 바로 ‘뭔가’에 있다. 238
+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기업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변질된다. 내가 심마니스쿨이란 단체를 기업화 시키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그것 때문이다. 처음엔 교육 기업을 만들고자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선 결국 ‘피(자본)’가 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정도 피가 돌기 위해선 결국 ‘상품성’ 좋은 교육을 반복해서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하지만 내가 부딪친 것은 그러한 것이 ‘나의 목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반복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성격인지라, 결국 심마니스쿨은 이 모습으로 남아있다. 굳이 표현한다면 연구소 같은 느낌이다. 앞으로 심마니스쿨의 목적도 결국 ‘개인의 목적’과 대치되어선 안 된다고 본다. 함께 하는 구성원이 각자 성장한다는 느낌 속에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순서가 중요하다. 개인과 조직 중에 하나를 버린다면 조직이다. 찰스 핸디도 그렇게 생각한 듯 하다. 

- 사회적 기업들은 이윤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윤보다 목적에 강조점을 둔다. 전통적인 기업들도 언젠가 이런 시각으로 상황을 보고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41
+ 작년에 사회적기업가 리더과정을 1년 동안 들었다. 거의 MBA수준이라고 해서 정말 열심히 참석했는데, 다소 일방적인 강의 위주로 실망했던 점도 있지만 그래도 사회적 기업과 경제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어서 기뻤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이러한 가치관이 나에게도 있는 듯 하다. 내가 공부해야 할 지점이다.  

- 맑스 조차도 자본주의가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사회의 성장엔진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맑스는 엔진의 소유자가 누구냐를 우려했다. 그는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장악해야 공평한 세상이 온다고 주장했다. 지금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의 대부분을 갖고 있다. 생산수단은 노동자들 자신에게 - 그들의 기술에, 재능에, 경험에, 지식에 - 있기 때문이다. 요즘 희소가치를 갖는 것은 돈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소유한 생산수단이다. .. 맑스가 옳았다. 희소가치를 가지고 이윤을 창출하는 사람,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어야 한다. 244
+ 지식노동자에게 생산수단은 이제 모두 주어졌다. 그건 바로 노트북이다. 노트북 하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자신의 지식을 홍보할 수도 있고, 전달할 수도 있다. 과거엔 생산 수단 자체가 값이 비쌌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렇지 않다. (실제로 지금의 노트북을 1960-70년대에 개인이 구입해서 쓰는 것은 요원했을 터.) 누구나 지식을 생산하고 표현할 수 있다. 문제는 ‘지식’이라는 생산 원료다. 보이지 않는 것이라, 전달하고 배우기는 더욱 어렵다. 노동량에 비례해서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양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폭발적으로 쏟아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같은 시간에 지식을 전달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과거의 산업구조가 현대에 와서 들어맞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지식을 생산하는 것은 공장 혹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에. 

13. 주방과 서재
- 우리는 공간을 우리의 필요에 맞춰 사용하려 했다. 공간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236

- 나는 방방마다 놓을 수 있는 난로가 가족들을 흩어지게 한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난로가 없던 예전에는 주인, 하인, 아이, 부모 ..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굴뚝 아래 위치한 커다란 방으로 모였다. 거기 불이 있었으니까. 이어 난로가 등장했다. 모든 방을 별개의 불로 난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처음에는 아이와 부모라는 세대가 흩어졌고, 이어서 주인과 하인이라는 계층이 흩어졌다. … 각 방에 전자레인지와 텔레비전만 놓으면 하루 종일 다른 가족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함께 식사할 필요도 없다. 248
+ 좋은 통찰이다. 지금은 같은 방 안에서도 가족들을 흩어지게 하는 놀라운 물건이 있다. 스마트폰. 찰스 핸디가 지금의 집안 모습을 봤다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다 같이 있지만, 각자 다른 것을 보고 있는 상황. 아내랑 나도 집에 있을 땐 종종 스마트폰을 보기 바쁘다. 재원이랑 하루 종일 놀고, 밤이 되어서야 겨우 스마트폰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니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우리 부부가 가진 좋은 습관은 ‘산책’이다. 같이 산책을 나가면 우린 스마트폰을 볼 수 없다. 그저 대화를 나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 가끔 진지한 이야기까지. 그렇게 우리만의 방식의 ‘난롯가’를 만들었더니, 나도 그렇고 아내도 만족이 높다. 이 파편화 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건, 각자의 ‘난롯가’가 아닐까?

- 사무실 유지비용은 회사의 중요한 고정자산이다. 그런데 정작 사무실이 이용되는 시간은 하루의 반도 되지 않는다. … “직원들에게는 작더라도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 멋지지만 비경제적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정말로 이럴 필요가 있는 건가? 아니면 현대적인 조직을 구시대적인 공간에 억지로 맞추면서 시대를 역행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가? 251
+ 정말 비경제적이다. 나는 저녁 8-9시에 도심의 수 많은 빌딩들이 활용되지 못하는 것도 참 비효율적이라 믿는다. 누구는 공부하고 모일 장소가 없어서 카페를 전전하고, 누구는 그 좋은 장소를 그저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다 막아두고. 가끔 조용하게 모일 공간이 없을 때 수 많은 빌딩을 쳐다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더라. 

- 미래의 사무실은 도시의 전형적인 클럽처럼 변모할 것이다. 클럽은 출입이 회원으로 한정되지만 회원들이 자기 것이라고 부를 만한 공간을 갖고 있지는 않다. 드물게 보이는 개인 공간은 그곳에 상주해야 하는 사람으로 한정된다. 252
+ 요즘 시도되는 ‘코워킹 스페이스’에 대한 예언이다. 정말 구루답다. 

- 우리한테는 공동공간뿐 아니라 개인공간도 반드시 필요했다. 공동공간인 주방은 함께 만나 문제를 협의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둘 다 어느 정도 고립이 필요한 창조적인 작업을 한다. 그러므로 각자의 작업공간이 꼭 필요하다. 반면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오히려 공동공간이 효과적이다. … 결론은 상황에 따라 공간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256
+ 동의한다. 개인공간과 공동공간. 둘 다 필요하다. 개인공간이 없으면 깊이가 없고, 공동공간이 없으면 연결과 창조가 없다. 깊이 있게 공부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 아닐가.  

- 우리 부부는 (일년 중) 150일을 순전하게 창조적인 작업, 구체적으로는 집필과 사진 촬영, 거기에 수반되는 독서와 조사들을 겸하는 작업에 할당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로 해외 강연회로 이루어진 기업경영 관련 업무에 100일을 할당했다. 그리고 일종의 십일조처럼 30일을 자원봉사활동에 할당했다. 그래도 1주일에 하루는 무조건 쉬고 이따금 뜻밖의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85일이 남아 있다. 휴일의 전체적인 숫자는 지키지만 어느 요일에 쉬느냐는 우리 마음이다. … 이런 날짜 배분을 지키려면 자제력이 필요하다. 가령 강연회 등 일하는 날을 늘리고 싶은 유혹은 항상 있다. 날짜를 늘리면 곧 돈이 늘어나는 셈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집필과 사진 촬영에 투자하지 않으면 일도 곧 없어지리라는 걸 잘 안다. 이는 우리 삶의 R&D이므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 앞서가는 포트폴리오 인생. 강연들도 다 해외강연이고, 휴일에 대한 날짜 배분도 참 멋지다.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아닐까? 나는 20년, 아니 10년 뒤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질문을 바꿔보자. 어떻게 하면 10년 뒤에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지금 내가 헌신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14. 어린이 사육장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학교의 목적 자체가 인간 본성에 반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충분히 원하면 어떤 것이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믿음이다. 문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이 우리의 흥미나 학습욕구를 자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아이들이 잘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와 학교가 아이들을 자극하고 흥미를 끌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지 아이들 탓이 아니다. …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이들은 항상 뭔가를 배우고 있다. 때로 어른들이 가르치고 싶지 않은 것까지도. 274
+ 아이들은 가르칠 준비가 되었을 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울 준비가 되었을 때 배운다. 계속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 역시 대안교육으로 마음이 간다. 공교육에선 아무래도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단체 생활에서 개개인의 흥미와 학습욕구가 채워질 수 있을까? 되려 억눌러지는 경우가 많겠지. 

- 우리가 조사한 29명 중에 3명만이 맏이였다. 학업성취를 비롯해 부모들이 맏이한테거는 일반적인 기대가 너무 커서 창조성을 발휘하기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믿이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수는 있지만, 기업가나 작가 등 창조적인 사람에게 필요한 실험정신이 부족했다. 실험적인 인생을 살려면 어느 정도 자유가 필요한 법이다. 276
+ 나는 맏이는 아니지만, 맏아들이긴 하다. 하지만 한 가지 좋았던 점은 부모님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다. 기대는 크셨겠지만, 그 기대로 내 목을 조르진 않으셨다. 기대보단 믿음이 더 크셨다. 내가 지금처럼 이런 저런 삶의 실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에는 부모님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이렇게 전공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에도, 부모님의 허용이 있으셨으니 말이다. 사실 부모님은 그 당시 굉장히 속이 상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크게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 내 인생에 대해서 언제나 믿고 기다리시는 편이셨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정말 행운아다. 앞으로 재원이에게도 그런 점은 꼭 물려주고 싶다. 가장 좋은 것은 이런게 아닐까. 믿고, 사랑하되 냅두는 것. 그리고 부모가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 

- 무엇보다 학교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전통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종교와 공동체 어르신이 이런 역할을 대신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도 공동체 연장자도 권위를 상실했고, 모든 규범이 혼란에 빠져 있다. … 오랫동안 서구인의 정신세게를 지배해온 종교가 힘을 잃고 상대주의가 힘을 행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결정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 말하자면 젊은이든 노인이든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가족은 본보기를 통해 나름의 철학을 표출하지만 스스로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기란 쉽지 않다. 가족들도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82
+ 포트폴리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힘이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다.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결정하는 법을 모르면 이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철학’은 삶의 필수 공부라고 믿는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아이들을 위한 철학 토론부터 시작해서, 차츰 어른들을 위한 과정도 만들어보고 싶다. 신난다. 

-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결론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등등. 철학에서 중요한 해답은 스스로 풀어낸 해답뿐이다. 그러므로 점수를 매기기 어렵도 등급을 정하기도 어렵다. 이런 난해한 과목에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려는 교사를 찾기도 어렵다. 284

15. 소중한 가족
- 요사이 나는 ‘동일한 여성’과 두번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아이들이 자라 각자의 삶을 꾸리게 되고 나의 부모님과 아내의 부모님, 그리고 개까지 모두 죽자 아내와 나는 갑자기 다시 한번 우리만의 삶을 꾸려갈 자유를 얻었다. … 우리가 하는 일을 결합시켜 우리의 우정, 결혼생활, 가족등 우리한테 소중한 모든 것을 지킬 방법을 찾기로 했다.  지금 아내는 내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대리인 역할을 하고, 약속을 정하고, 업무차 가는 모든 여행에 동행한다. 나는 아내의 사진과 책에 글을 써주고 최선을 다해 아내의 사진촬영을 돕는다. 294
+ 멋지다. 멋진 부부다. 이런 부분에서 피터드러커 보다 찰스 핸디의 인간적인 면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피터드러커가 자서전에서 자신의 아내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비해, 찰스 핸디는 끊임없이 논의 된다. 그의 자식들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가정에 충실한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나의 지향점에 더 가깝다. 

- 정확히 30분 뒤에 나는 모든 것을 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맛보며 사람들이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앞으로 힘든 시간도 있을 테고, 배우고 알아야 할 것도 많겠지만 아직 머리도 나지 않아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작은 여자아이를 사랑하는 일만은 결코 변치 않으리라. 아이가 무슨 짓을 하든 혹은 하지 않든.’ 297
+ 재원이에게도 말하고 싶다. 네가 공부를 잘 하든 하지 않든, 효도를 잘 하든 하지 않든, 운동을 잘 하든 하지 않든, 잘 생기든 못 생기든, 착하든 착하지 않든,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할 수 없다고. 그게 바로 엄마 아빠의 마음이라고. 재원이랑 처음 만나는 순간 우리는 사랑에 빠졌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사랑한다고. 

- 진정한 자녀교육은 집에서, 부모가 바삐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운 다음, 나중에 반대로 할까, 모방할까를 결심한다. 299
+ 저번에 영남 누님이 이런 말을 했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는 자식 없고, 부모가 하는 대로 안 하는 자식 없다”고. ㅎㅎㅎㅎ

- 가족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가끔 가꾸고 다져주어야 할 필요는 있지만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키는 것이 가족이다. … 가족은 소중하며, 그만큼 자양분이 필요하다. 가족을 가꾸는 자양분의 핵심은 대화다. 의심과 질투는 침묵 속에서 활개를 친다. 우리는 기회가 닿는 대로 우리가 가족임을 감사하고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 무슨 구실을 대서든 거나한 식사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 함께 잘 먹는 가족이 오래 살고 함께 사이좋게 지낸다는 믿음 아래. 
+ 이 글을 읽으니, 앞서 말한 대화를 위한 산책을 가족 문화로 만들고 싶다. 재원이랑도 일주일에 몇번씩 함께 산책을 나가야 겠다. 우리가 가족임을 감사하고 축하할 수 있도록. 

16. 경영 구루가 되어 
- 나는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쓰는 법을 옥스퍼드에서 배웠다. 교수님 앞에서 소리 내어 에세이를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은 종속절을 포함한 장문을 써서 읽느라 숨을 헐떡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항상 문장을 짧게 써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곤 했다. 그것이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309
+ 내 글을 소리내어 읽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 글을 보면서 그래야 겠다고 생각했다. 

-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아이디어 중에 독창적인 것은 거의 없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내가 이를 표현하는 언어다. 첫 책에 대한 서평을 아직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시작 부분이 이렇다. “이 책에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말은 하나도 없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평은 이렇게 이어진다. “하지만 글로는 만나지 못했던 내용이다.” 평론가는 나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했다. 조직에 대한 이미 알려진 연구결과를 언어로 정리하여, 학생들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하자는 것이 나의 취지였다. 311
+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의미 부여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내가 하는 일도 결국 어떤 개념을 사람들에게 더 쉽게, 더 재미있게 이해시키기 위함이니깐 말이다. 지난 번 의사소통 테마와도 연결된다. 죽은 개념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는 것. 그것이 찰스 핸디가 했던 일이고 내가 할 일이다. 

- 조직은 기계가 아니다. 조직은 살아 있는 개인들의 공동체다. … 구성원들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며, 최선을 다하면 일의 지속성을 보장받고, 잘하면 적절한 보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당연히 공동체는 사명을 완수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315

- 나는 중역들에게 본인이 없을 떄 문제가 발생해도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라고 자주 물어본다. 20명 이상 나열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진정으로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효과적이려면, 작업 단위가 20명 이하로 설계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규모의 경제를 내세우는 세태에서 20명 이하의 조직이란 이론상으로 비경제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 이면에는 신뢰와 인간적인 친밀감을 바라는 심리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데서 오는 손실보다 대규모의 경제로 인한 이익이 크리라는 낙관적인 기대가 깔려 있다. 317
+ 나도 이처럼 작은 규모의 조직이 계속 마음에 간다. 커지면 왠지 불편하다. 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과 15명 정도의 규모로 뭔가 꾸며보면 어떨까? 그것도 많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나의 리더십이 더욱 훈련되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은 3-4명 정도가 좋다. 그 정도가 되어야 서로 대화하고, 삶을 나누기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기에. 

- 규모의 경제를 살리면서 소규모 조직에서 오는 이점을 결합할 수는 없을까? 바로 효율성이 충분히 검증된 연방제가 정치학적인 해답이다. … 초기 미국 헌법의 지적 토대가 되었던 <연방주의자 논집>을 보면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조직에 적용시키기만 하면 된다. 317
+ 미국 헌법이 인디언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까? 예전에 봤던 책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에서 이런 내용을 봤다. - 예일대 뉴욕시립대학교 법학 교수 펠릭스 코헨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특유의 정치적 이상은 인디언의 풍부한 정치적 전통에서 생겼다. 남성과 대등한 여성의 보통선거권, 연방주의라고 하는 주의 위치 부여, 상위의 선 인간을 인민의 주인이 아니라 심부름꾼으로 보는 습관, 공동체는 사람들의 다양성과 그들의 꿈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 - 이 모두는 콜럼버스가 오기 이전에 미국적 생활 방식을 형성했다.” 우리는 미국 헌법이 유럽 계몽주의의 맥락을 잇는 것이라 배웠지만, 사실 당시 미국 헌법의 원리는 인디언의 헌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연방제나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당시 인디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되게 놀라웠다. 그리고 인디언에 관심이 많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나의 공부 주제 중 하나다. 

- 나의 주장은 내 가치관의 반영이다. 나는 조직보다는 개인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조직은 어디까지나 개인들이 모인 집합체일 뿐이니까. 우리는 매우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 조직에 의존한다. 원칙적으로 조직의 관심사와 우리의 관심사는 일치해야 한다. 조직이 목표를 단순한 생존 이상의 가치로 정의하면 가장 번창할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개인과 조직은 결국에는 자신들이야말로 최악의 고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326

17. 일을 겸한 여행
- 여행은 우리에게 세상에는 수많은 중심이 있으며, 각각이 거기 사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중요하며, 관심사는 우리와 별다른 바가 없지만(그들도 생활하고 사랑하고 배우고 세상에 뭔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환경은 우리와 무척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때문에. 331
+ 맞다. 내가 종종 잊어버리는 것들.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생을 끈덕지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타자에의 인식. 그것을 통해 우린 좀 더 겸손해지지 않을까. 

- 시장은 모든 것을 소비자의 공통 기호에 맞춰서 들이민다. 덕분에 세상은 온통 똑같은 물건이 넘쳐난다. 효율적이지만 슬픈 현실이다. 내가 조국 아일랜드처럼 인구수가 작은 나라들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다름 때문이다. … 나는 그런 나라들을 벼룩경제라고 부른다. 세계무역을 좌지우지하는 코끼리 국가들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더욱 매혹적인 것은 그들의 다름, 즉 차이다. 모든 곳을 식민화하려는 세계시장의 힘에 맞서는 보루로써 그들은 고유한 차이를 지키고자 열심이다. 333
+ 로컬 문화. 올해 초 신년회를 가진 못했지만, ‘로컬에 대한' 강의를 글로 접하면서 참 좋았다. 고유함을 지키고자 하는 것. 표준화 되지 않는 것. 내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세계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탐욕스럽고 성급하다. … 경제성장 속도가 빠를 수록 최상층과 최하층 사이의 격차는 커진다. … 격차가 클수록 뒤처진 사람들의 건강 악화, 우울증, 폭력 성향 등도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경제성장은 뒤이은 사회의 퇴보를 가져오는 셈이다. 338
+ 불평등은 앞으로 거의 모든 사회 갈등의 씨앗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양면성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이면이 바로 ‘불평등’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러오는 사이드 이팩트가 너무 크다. 2012년 대선 때 주요 아젠다였던 경제 민주화, 복지에 대한 논의는 언제 또 사라져 버렸는지. 2017년에 다시 나오려나. 

18. 일흔 살 생일
- 아리스토텔레스는 ‘임종시험’이라는 걸 해보라고 충고한다. 죽을 날이 되었다고 상상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344
+ 지난 번 2월 수업 때 느꼈던 것. 그때 참 좋았다. 

- 나도 죽은 위에 열어보라고 아내와 두 아이에게 써놓은 편지가 있다. 편지에는 내가 살명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삶의 지침에 대한 짤막한 설명과 함께 각각에게 내가 바라는 바가 상세히 적혀 있다. 매년 편지 내용을 보충하면서 새로 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과정은 가족들보다 나한테 더 많은 도움이 된다. 많은 것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 가족들은 내가 너무 죽음에 집착한다고 놀리곤 한다. 죽음에 집착하기 때문은 아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동의하기 떄문일 뿐이다. 347
+ 죽음이라는 절대 명제 앞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했던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의 본질

- 나이가 들수록 잘 보이고 싶은 대상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본 대로 말하고, 바라는 대로 살고, 자신의 가치에 따라서만 시간을 쓰게 된다. 348

 - 이기적이었던 부분에 대한 반성도 빼놓을 수 없다. 결코 궂은 일에 순을 담그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나 실업자와 함께 뭔가를 도모하지 않고 그저 그들에 대한 글만 썼다는 것이 아쉽다. 거리행진을 벌여본 적도 없고, 항의시위에 동참해본 적도 없다. 350
+ 공감된다. 나 역시 그런 편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충분히 마음아파 하지만, 그들을 위해 내 몸을 던지진 않는다. 그런 상황을 해석하고, 글을 쓸 뿐이다. 

-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라.’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마라. 351

- 책과 기고문의 성격이 바뀔 수는 있다. 발표되는 빈도수가 줄지도 모른다. 강연이 짧아질 수도 있고, 뜸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하긴 할 것이다. 농부처럼. 느려지더라도 같은 일을, 일이 뜸해지면 요리를 익힐 시간이 늘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먹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 영화 오페라 콘서트를 감상할 시간도,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공부할 시간도, 사람이 배우기를 멈추면 살기를 멈추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357
+ 맞다. 나의 앞으로의 모습도 이러해야 할 것이다. 카프카의 말을 되세기자. “초조해하는 것은 죄다."
 


[리뷰]
재미있게 읽었다. 찰스 핸디의 인생을 옆에서 본 듯한 느낌이다. 제목도 인상적이다. “정말입니까?”에서 “일흔 살 생일”까지. 그는 첫 장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정말 당신이 찰스 핸디 맞습니까?”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해 나가는 것이 그의 삶이 아닐까. 나는 ‘영국계 아일랜드인'라는 배경을 통해 나는 그가 경계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분명 기독교인으로 길러졌음에도 그것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기독교 인문주의자’라는 것도 알았다. 그것도 결국 ‘인문학’과 ‘종교’ 사이에 머물러 있는 경계인이라는 것을 뜻한다. 찰스 핸디는 언제나 주위에 머문다. 그렇게 상황을 관찰하고, 그 상황에 숨을 불어넣는다. 새로운 개념과 은유로. 그렇게 된 것에는 ‘타고난 기질’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고, 아마 ‘옥스포드 대학’에서의 인문학 공부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고민했던 내공이 삶 전반에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의 기질과 아주 잘 어울리는 공부를 했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만약 내가 그런 공부를 대학교 다닐 때 했더라면, 지금 보다 좀 더 나다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는 행운아였다. 

피터 드러커와 찰스 핸디의 공통점이 바로 ‘구경꾼’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나는 "이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말과 글’을 잘 쓸 수 있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행동하는 사람은 무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어려울테니. 과거에 나는 이런 고민을 했다. "너무 생각만 하고, 이야기를 전달할 뿐 실천이 빠진 것은 아닐까?” 실천에의 갈망이 컸다. 그래서 굉장히 이상한 경험도 많이 하고자 노력했고 지금도 그렇다. 행동가의 삶을 꿈꿨었다. 그러한 고민에서 도출한 단어가 이것이다. '행동하는 이야기꾼’ 그리고 '이야기하는 행동가' 과거에 페북에 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나는 둘 중에 어떤 존재가 되고 싶냐고. 그 당시에는 아마 ‘이야기하는 행동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깨닫는다. 질문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에서 '어떤 존재인가'로. 나는 이야기꾼인가, 행동가인가. 일어난 일을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고, 그저 일을 일어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 둘은 그저 다르다. 그리곤 재차 물어야 한다. 행동할 것인가, 혹은 이야기 할 것인가? 

나의 경우, 내가 이야기꾼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 인정하기 싫었다. 나도 행동가가 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마치 피터드러커가 '피터드러커 자서전'에서 '나는 구경꾼으로 태어났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한 것 처럼, 나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석하고 의미부여하려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젠 하나의 선택만이 남았다. 행동하는 이야기 꾼이 될 것인가, 이야기하는 이야기 꾼이 될 것인가. 이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선택이다. 나의 선택이 남았을 뿐이다. 찰스 핸디가 마치 ‘가르친 것을 적용하기 위해서 직접 행동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나역시 내가 아는 것의 반이라도, 아니 반의 반이라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말과 글로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들 역시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이 나에게 그런 역할을 했듯이 말이다.  


최근 들어서 나는 상당한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몇년 전부터 이야기 나누었던 일하는 방식과 비즈니스 상황들이 이제는 직접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나 역시 과거에 '프리에이전트의 시대'라던지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보았던 글을 '직접' 접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조상들은 '안다는 것'은 '할 줄 안다'는 것과 동의어로 생각했다고 한다. 

율곡 이이의 자경문에도 이런 글이 나온다.

"앉아서 글만 읽는 것은 쓸데없다. 독서는 일을 잘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나는 앉아서 글만 읽는 것에 익숙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마음 한켠에는 묵직한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흥미진진한 나날의 연속이다.

내가 이 무대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오늘부터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다. 

나의 생각과 가치를 나누고, 함께 공명하는 사람들과 일을 한다.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모든 인간은 사업가다.


우리는 동굴에서 살던 시절부터 스스로를 고용했다.

일용할 양식을 직접 찾아서 스스로에게 공급했으며

인류의 역사도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문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우리 안의 사업가 기질을 억눌렀다.

통치자들이 '너는 노동자다'라고 낙인을 찍자마자 스스로 '노동자'를 자처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가 사업가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 무하마드 유누스



수많은 미국인이 산업혁명의 가장 영구적인 유산 중 하나를 포기하고 있다. 바로 직업이다.
그리고 새로운 노동방식을 찾아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1인 기업, 프리에이전트, 프리랜서를 위한 교과서, 다니엘 핑크의 프리에이전트의 시대!
사실 이 책도 5월 8일에 포스핑 하려고 했으나 5월 초에 계속되는 게으름과 자기합리화에 결국 때를 놓치고, 오늘 올리고야 마는 책이다. 오늘 포스팅 2개 해야지ㅋㅋ

프리에이전트의시대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 디지털경제
지은이 대니얼 핑크 (에코리브르, 2004년)
상세보기

이 책은 미래학 서적 가운데서도 "가장 읽기 쉽고, 가장 편하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그 의미가 얕지 않은 책"으로 유명한 '새로운 미래가 온다'의 저자, 다니엘 핑크가 지은 책이다. 그는 프리에이전트로 살기 전에 고어 부통령의 연설문을 만들어주는 일을 했을 정도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구역질과 함께 직관을 따라 튀쳐나오게 되고, 그 후 수 많은 프리에이전트를 인터뷰 하고 조사했다.

그는 2년여 동안 미국 각지의 임시직 노동자, 초소형사업자 등 프리 에이전트 수백 명을 직접 인터뷰하고 광범위한 현장 조사를 통해 그들의 삶과 노동을 생생하 게 보여준다.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프리에이전트들에 대한 연구와 책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가치있다.

이 글을 보는 모두 이 책과 함께 이미 와 있지만 충분히 퍼지지 않은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길 바란다. ^^

재미있게 읽은 부분:

뛰쳐나왔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 최소한 그렇게 느꼈다. 내 친구와 이웃 여러 명이 나와 비슷한 행로를 밟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전통적인 개념의 직장을 그만두었다. 물론 몇몇은 차세대의 대기업을 자기 손으로 일으켜 세워 보겠다는 꿈을 열심히 쫓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보다 겸손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처럼 지쳤고 불만스러웠을 뿐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삶을 자기 손으로 떠맡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는 또한 미래이기도 하다. 비록 그녀 자신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만, 베티 폭스는 미국에서 노동의 형태, 기능 그리고 윤리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상이다. 그녀는 홀로 일한다. 모든 것을 자기 집에서 운영하고, 자신의 활동 기반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대기업이 베푸는 자비심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지식과 지혜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으며, 독립적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통해 자신의 사업을 솜씨 있게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베티 폭스는 프리 에이전트다.


"조직인간"(합당한 급여와 적절한 연금을 제공하고 비슷한 이웃과 함께 즐거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집을 갖게 해주는 직장에 만족하는 인간)에서 "프리 에이전트" 로의 변화는 경제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가장 심원한 변화라면 이것이다. 즉 경제력이 조직에서 개인으로 이전되고 있으며, 경제의 기본 단위가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보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할리우드'(끊임 없이 변동하는 개인 명부를 손에 쥔 유동적인 소규모 네트워크)로 가고 있는 중이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너무 강력해지는 바람에 홀로 일하는 개인이나 매우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집단도 독립성, 유동성, 그리고 작은 것이 주는 기쁨을 희생함 없이, 대기업에 버금가는 권력, 활동 영역, 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미국은 평균적으로 한 회사당 약 7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인구 증가보다 7배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오늘날의 법인 사업체수에 비춰볼 때, 어떤 사람들은 20년 안에 사업체수가 지금의 두 배가 되고 회사는 평균 세 명의 직원만을 두게 되는 경제 구조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나노회사' :
 무자비할 정도로 작은 초소형사업체, 그것은 개인적인 선호와 경쟁 전랙,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

'디지털 마르크스 주의' :
 값싼 컴퓨터, 무선 휴대장비, 그리고 어디서나 저렴한 비용으로 접속할 수 있는 전지구적 의사 소통의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시대, 이제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할 수 있다.

피터의 원리
:
사람들이 더 이상 감당할 능력이 없는 위치에 도달할 때까지 조직의 서열 체계를 통해 승진하게 된다

피터 퇴장의 원리
:
사람들이 재미를 잃게 될 때까지 승진할 것이다. 점차 흥미가 줄어들면, 재능있는 사람들은 걸어나온다. 보통의 경우 프리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서다.


"갑자기 모든 게 분명해졌어요.
 해답은 고객수를 줄이고 돈을 적게 버는 겁니다.
보다 많은 관심, 그들을 돌보고, 우리 스스로를 돌보는 거죠.
우리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진정으로 말이죠"
- 제리 맥과이어-


예전에 '노동'은 별도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자신의 진정한 개성을 억누르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의 '노동'은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진정한 신념을 표현하고, 깊이 간직한 가치를 기반으로 행동하고, 나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노동의 목표다.


"나는 새로운 회사를 차릴 겁니다. 그리고 저 물고기는 나와 함께 갈 겁니다."
- 제리 맥과이어 -


"프리 에이전트로서 내 일을 할 때, 우리에겐 자유가 있어요. 굉장한 자유지요. 그게 바로 프리 에이전트가 주는 엄청난 매력 중에 하나에요."
"하지만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많은 프리 에이전트에게 책임감은 압박이 아니라 오히려 해방감을 의미한다.
"자기 실력에 따라 흥하거나 망하는 거에요"


"누구나, 특히 보다 발전된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시간을 수동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해 보내는 것보다
자신이 스스로 책임지는 걸 더 선호한다."
- 아브라함 매슬로 -


우리의 본 모습을 지정하게 반영하는 질 높은 노동을 산출하라. 자유를 통해 자기 도농에 대한 책임을 수용하라.
무엇이 성공인지 스스로 결정하라.
만약 잠깐씩이라도 지금 하는 일이 재미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무언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느낀 부분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 중의 하나가 '제리 맥과이어'이다.
사실 일을 하면서 최근에 스스로의 역량에 대해서 고민할 기회가 많아졌다. 항상 자신만만하고 공부도 왠만한 직장인들 보다는 많이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일을 못 한다. 물론, '생각보다' 라는 말은 무엇이 기준이냐에 따라서 정답이 바뀔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어찌 되었든 나 자신에게 조금 실망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책을 봐도 쉽게 역량이 잘 안 올라가는 걸 보면 나는 타고난 지진아인가? 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아니면 아주 효과적이지 못한 방법을 계속 고집하고 있던지..

하지만 예전보다 그 실망의 자리에서 머물러 있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라는 자리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점만은 아마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것이다.

2009년도에 많이 읽던 책 중에 '리얼리티 트렌서핑'이란 책이 있는데, 그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신의 운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짐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다"
그것은 완전히 맞는 말이다. 다만 완전한 자유를 경험하는 순간, 그 즉시 완전한 두려움이 휘말리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 것 같기는 하다. 나 역시 나의 선택 하나하나가 내 삶을 결정할 것이고, 그 삶을 내가 오롯이 경험하게 될 거라는 변치 않는 사실에 직면 할 때마다, 두렵다.
완전히 자유롭지만, 솔직히 말하면 때로는 그 자유가 두렵다.

요즘 나는 의식 공부 한다는 사람들, 명상을 한다는 사람들, 혹은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특히, 젊을 때부터 그런 쪽으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난 언제나 편안해요~ 나는 괜찮아요~ 모든 것은 온전해요, 우주는 나에게 완전한 경험만 줘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많이 떠오른다. 

중요한 것은 그 말하는 '내용'이 얼마나 좋으냐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아무리 좋고 근사하다고 할 지라도 그것을 '믿고 싶어서'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실제로 나 역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나는 문제가 없어요'라고 말해왔으니 말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결국 모든 인간은 자기합리화와 회피의 달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전한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유 방종일 뿐이다.

결국은,
자신의 인생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매 순간 열정과 내면의 직관을 따르되,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에서 계속적으로 피드백 받고 끊임없이 학습하는 사람만이 아마 1인 기업을 하든, CEO를 하든 뭘 하든 자신의 삶을 살지 않을까 한다. ^^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명상이자, 기도이며, 신에 대한 경배이다. 
나는 진정성의 힘을 믿는다. 진실만이 나의 유일한 종교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미약하나마 내가 가진 유일한 힘이다. 

 

진정한 신념을 표현하고,
깊이 간직한 가치를 기반으로 행동하고,
나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노동의 목표다.
- 프리에이전트의 시대 -

  1. 김명곤 2011.05.19 17:25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할것이다 라는 말이 떠오르는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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