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계속되는 병원 생활이다. 다움이의 면회는 11시와 오후 5시 두번이다. 그 외에는 중간 회진 이외에는 자유시간. 나로서는 한번도 이렇게 오래 병원에 있어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고, 또 간병하는 것도 즐거웠다. 힘든것도 잘 모르겠다. 병원이 이렇게 돌아간다는 걸 배우기도 하고, 같은 층 아기 환자들 보면서 마음이 쓰리기도 하고 그렇다.

어제 오전,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모유 수유를 해도 괜찮다고 말하셨다. 너무 감사하게도. 원래 이 병원도 모자동실 및 모유수유를 권한다. 하지만 이른둥이의 경우 혈당 수치 때문에 전용 분유를 먹여야 한다. 모유를 먹이는게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다움이가 생각보다 괜찮은 모양이다.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오전 10시 반에 내려갔다.

또 하나, 더 좋은 소식이 있는데 바로 캥거루 케어다. 캥거루 케어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 살을 맞닿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특히 이른둥이의 경우 체력 회복이나 정서적 안정이 훨씬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이가 태어나서 세상이 얼마나 낯설까, 그리고 엄마 품이 얼마나 그리울까. 9달 내내 듣던 심장 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레 안정이 되리라. 간호사 선생님이 모유 수유가 끝나면 캥거루 케어도 할 수 있게 해주셨다. 정말 좋았다. 비록 나는 함께 못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것도 몇몇 병원에서는 안 되는 걸로 아는데 감사했다.

아내는 모유 수유와 캥거루 케어가 끝나고 상기된 얼굴로 나왔다. 물어보니 한쪽은 잘 나오지 않고 한쪽에선 그나마 초유가 조금 나왔다고 한다. 아직은 자세가 불편해서 어려웠지만 그래도 다움이가 잘 빨아주었다고 한다. 아이고 너무 고마웠다. 어떤 아이들은 정상임에도 엄마 젓을 잘 안 빨아서 걱정이라고 하던데. 우리 아이는 작아도 힘은 쌘가보다. 그래서 초유를 조금 먹였다.

캥거루 케어도 너무 좋았다고 한다. 울 아기는 신생아실 아기 중에서도 제일 작은데, 넘 가엽기도 하고, 아기 냄새도 좋아서 안고 있는 내내 행복했다고 한다. 이렇게 케어를 하게 되면 엄마도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육체적 정신적 건강도 나아진다고 한다.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적이고. 정상은 3개월, 이른둥이는 1년 정도 쭉 해주면 서로에게 정말 좋다고 한다. 많이 배운다. 아이만 괜찮으면 나도 나중엔 해줘야지.

그렇게 모유 수유와 캥거루 케어가 시작되었다. 끝나면 점심 먹고, 우리들끼리 대화도 하고, 산책도 다니다가 또 부르면 달려갔다. 저녁에는 형님(아내의 오빠)와 아주버님이 면회도 와주셨다. 감사하다. 그리고 신생아실은 오전, 오후에 한번씩 들렸는데 다행히 밤에도 한번 더 불러주셨다. 아이를 더 볼 수 있단 행복감이 이리도 클 줄이야. 밤 10시에 신생아실로 가면서 아내와 너무 행복했다. 다움이는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알까.

오늘은 24일이다. 아내의 퇴원일. 자연분만의 힘인지, 아내는 잘 회복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걷지 못하기도 한다던데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병원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 중에 하나는 '공감'이다. 이제는 지나가는 산모를 봐도 한번 더 보게 되고, 아이도 그냥 보이지 않는다. 다 내 아내처럼 보이고 우리 아이처럼 보인다. 특히 아기들이 아파하는 걸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공감능력은 마주쳐야 생긴다. 나의 경험과 상대의 경험이 마주쳐야 한다. 내가 가진 경험이 미천해도 잘 모르고, 그런 경험을 대하지 못해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가진 경험과 이야기가 나에게로 이입될 때 너는 내가 된다. 너가 내가 되는 순간, 나는 세상을 더 크게 본다. 공감할 때 우리는 자신의 관점으로만 보는게 아니다. 상대의 관점을 득한다는 건 세상을 넓히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어릴 적부터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과 마주치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 그곳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회복되기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오늘은 일어나서 몸이 너무 찌뿌등했다. 며칠 씻지도 못했기에 쾌쾌한 냄세도 나고. 아내도 불편했는지 샤워부터 하자고 했다. 둘 다 차례대로 씻고 나오니 정말 좋았다. 나도 며칠 동안 깎지 못했던 수염도 정리 했더니 꽤 괜찮아 졌다. ㅋㅋ 그렇게 씻고 밥먹고 산책도 다녀왔다.

오전 9시가 되자 신생아실에서 또 연락이 왔다. 기뻤다. 아내는 모유수유 하러 들어가고, 나는 또 밖에서 이런 저런 글도 보고 이 글도 쓰고 그러고 있다. 병원 몇 번 더 오다간 작가가 될 듯하다. 이번엔 짧게 먹였다. 30분 정도. 그러고 올라와서 좀 쉬다가 캥거루 케어 때문에 내려갔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신생아 집중 케어실에 면회 온 부모들이 보였다. 아마 몇개월씩 아이와 떨어진 부모들도 있으리라. 그들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아이가 태어났지만 그들의 가족은 이산가족이 되었다. 분명히 살아있음에도 내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처지. 얼마나 안타까운지.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다. 이 세상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을까.

아내가 나왔다. 그리고 이번엔 나에게도 10분 정도의 면회 시간이 주어졌다. 비록 유리창을 사이에 둔 면회이긴 하지만. 다움이는 건강해보였다. 혈색도 좋고 표정도 좋았다. 어제처럼 오늘도 자고 있었다. 하지만 간단히 보여주는 표정 변화에 우리는 환호했다. 결국 반응이다. 부모가 자식의 작은 행동과 조그마한 표정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것, 그리고 감탄하는 것. 그게 육아가 아닐까 한다. 남들에겐 그냥 아이의 뒤척거림일지 몰라도 부모에겐 그 행동은 감탄이고 기적이다.

나 역시 한 동안 넋을 놓고 아이를 보고 있었다. 작은 혓바닥을 쏙 내밀기도 하고, 입술을 뾰족 거리기도 하고, 찡글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반가운 움직임은 짧은 미소였다. 가끔씩 기분이 좋은지. 그럴 때만 보여주는 그 사랑스런 미소. 가히 살인미소다. 남자임에도 내 마음이 쿵쾅쿵쾅 뛴다. 그렇게 행복하고 안타까운 10분이 지나갔다.

아내와 난 또 올라오면서 기분은 어땠는지, 아가가 얼마나 이쁜지 심층 토론을 나눴다. 그리고 지속적인 모유 수유를 위해 유축기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떨어져 있는 동안 아내가 지속할 수 있게 말이다. 예전엔 그런 기계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전혀 관심 밖의 무엇이었다면 이제는 이미 다른 의미가 되어버렸다.

이후 점심을 먹고 오후에 짐을 정리했다. 목요일 새벽부터 시작된 대 원정의 마무리가 오고 있다. 오늘 오후에 마지막 모유수유 및 면회를 기점으로 아내는 잠시 집으로 가고, 며칠 간 아이를 보러 오는건 나의 몫이다. 아이가 퇴원할 때 까지 매일매일 잠깐 이라도 보고 가야지.

얼마 전에 본 책에서 '대추 한 알'라는 시가 있었다. 하나의 문장이 가슴에 들어왔었다. 며칠 간의 경험 후, 그 시가 다시 나에게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첫 문장. '저게 저절로 붉어질리는 없다' 인생은 저절로 붉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가족'이란 이름으로 겪어야 할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가 있다. 우린 이 세상을 잠깐 본 듯하다. 하지만 별로 두렵지는 않다. 나, 아내, 아가도 저절로 붉어질리는 없기에. 겪어야 할 경험이 찾아 올 것을 믿기에 말이다.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리는 없다
저안에 태품 몇 개
저안에 천둥 몇 개
저안에 번개가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 질리는 없다
저 안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안에 초승달 몇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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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어제는 자연주의 출산 메디플라워에서 진행하는 자탄 1강을 들었다. 정환욱 원장님께서 직접 진행하는 강의였는데, 자연출산을 한달 앞두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강의였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88%의 경우 대부분 큰 문제 없이 아이를 낳는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 아빠가 생각하는 데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판단하는 것을 존중해 준다는 것. 그래서 예정일이라는 것도 의미없다는 것.

강의가 끝나고 나오기 전에 정 원장님이 우리에게 오시더니 아이 잘 놓겠다고 말씀 하셨다. 아마 강의 내내 손 붙잡고 다정히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이 좋아보였으리라. 아내는 예정일 4주 남았다고 했고. 원장님은 그건 모르는 거라고, 2주 뒤가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게 내일이 될지는 원장님도 우리도 꿈에도 몰랐다. 다움이는 알고 있었을까.

그날 밤에는 태동이 상당했다. 아이가 꿈틀꿈틀하는 모습을 왠지 남기고 싶어서 영상을 찍었다. 다움이랑 태담도 하고, 편안하게 잠 들었다. 평상시와 전혀 다를바 없이 말이다. 아내도 별 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새벽 3시반, 아내가 급히 날 불렀다. '여보 나 양수 터진것 같아아' 목소리는 두려움 때문인지 떨고 있었고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눈을 뜨고 본 첫장면은 평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내가 화장실 가는 길에 멈춰 서서 밑으로는 양수가 줄줄 흐르는 모습. 아내도 나도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일단 우린 자탄 리허설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급히 양수인지 확인부터 했다. 무색 무취, 양수가 틀림없다. 약간의 이슬도 보이고.

아내가 일단 대처법을 찾아보라고 했고, 매뉴얼에는 양수가 급히 터졌을 때는 고양이자세를 하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내가 전화를 하자, 가능한 빨리 택시를 타고 오라고 한다. 아내와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일단 콜을 부르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날이 아이의 생일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아직 35주 6일을 지나고 있었고, 예정일은 4주가 남았던 터라.

메디플라워에 도착한 시간은 4시반이다. 와서 먼저 태동 검사부터 했다. 아이는 다행히 잘 뛰고 있다. 아내는 슬슬 약한 진통을 느끼고 있었다. 2분 단위로 파도가 오는 걸 봐선 본격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남들는 초기 진통이 하루 이틀 간다고도 하던데 우린 그런 과정도 거의 생략한 것 같다. 참 빨랐다. 그렇게 체크하고 잠시 대기하는 동안 우리 담당 조산사 선생님이 오셨다. 잘 주무시다가 이게 왠 봉변일까. 미안했다.

선생님이 상태를 보시더니 설명을 해 주셨다. 애매한 상황이라고. 만약 35주만 되었더라도 볼 것도 없이 종합병원으로 보냈을 거라고. 하지만 35주 6일. 참 애매하다고. 왜냐면 37주 이후부턴 아이가 나와도 별 상관이 없지만, 지금은 좀 판단하기 어렵다고. 물론 35주에도 잘 낳은 아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결정은 부모가 해야 된다고.

그러면서 다만 아이를 최우선으로 둔다면 옮기는 게 맞고, 그래도 조금 더 자연출산을 하고 싶고 상황을 보고 싶다면 여기서 출산하고 아이 상황을 봐서 옮기는 것도 있다고 했다. 문제는 아이의 폐 성숙은 가장 늦게 이루어지는데, 호흡을 하게 될지 그 부분이 가장 확신하기 어렵다고 한다.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아이는 인큐베이터로 가야 하니 말이다.

아내와 둘이 앉아서 꽤 고민했다. 우린 분명 자연출산을 원해서 공부도 했고, 일반 병원에서 메디플라워로 옮기기도 했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우리 의사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 0.1%의 확률로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상황일 수 있으니. 그래서 결국 옮기기로 결정했다. 연계되어 있는 강남세브란스 응급실로 택시를 타고 갔다. 그 시간은 대략 5시 45분쯤. 아내의 진통은 아직까진 괜찮아 보였다.

아쉬운 결정일 수는 있으나, 그래도 메디플라워에서 무엇이 더 나은 방향일지 함께 고민해 보는 건 지금 돌아와보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그런 절차 없이 새벽에 정신없이 119를 불러서 근처 큰 대학병원 응급실로 떠밀려 갔다면 어땠을까? 아내도 아이도 얼마나 불안했을까?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시작된 병원 상황. 응급실에 도착하니 거의 6시. 잠깐 대기하고 필요한 검사를 했다. 아무래도 메디플라워보단 불편했지만 그래도 다들 친절해 대해 주셨다. 입원수속이 끝나고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간건 거의 7시였나.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양수가 계속 조금씩 흘러나오는 상황이라. 정신을 번쩍 차려야 했다. 그래도 아내는 큰 병원이 주는 안정감 덕분인지 마음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7시 반부터 조금씩 진통이 강해졌다. 나중을 생각하면 아직은 미약한 수준. 분만실에는 이미 어제부터 와서 진통을 하는 산모들니 2명 더 있었다. 그들의 남편들도 내 마음과 같겠지. 다들 초췌해 보였다. 그 때쯤 양쪽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아내의 철저한 준비성 덕택에 (상황을 미리 준비하는 아내가 참 고맙다. 나라면 절대 이때부터 가방을 안 쌌을 텐데.) 출산 가방 준비는 끝나있었고 몇 가지 필요한 물품을 말씀드리면서 장모님께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계속 진통 중.

내 기억으로 8시부터인가.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 특히 9시부턴 (다움이가 아내의 골반을 누르면서 들어오는 기간이라 추측했던 시간) 진통이 정말 강해졌다. 아내가 입술을 파르르 떨려가며 주기적으로 고통스러워 하기 시작했고, 나는 옆에서 손을 꼭 잡고 같이 호흡하고 독려했다. '잘 했어 잘 하고 있어. 깊게 들이쉬고 후후 하자' 이런 말을 계속 반복했던거 같다. 다행히 의사선생님은 진전이 생각보다 빠르다고 하셨다.

9시 좀 넘어가자 의사 선생님이 '초산 맞느냐'고 물으시면서 출산이 정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하셨다. 잘 하면 한 시간 안으로 아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을 하셨을 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보통 초산은 9-12시간은 걸린다고 들었는데 한 시간이라니! 기뻤지만 쉽게 믿기진 않았다.

9시 반을 넘어서자 자궁의 다 열렸다. 아이는 더 내려왔고, 아내는 거의 죽을 힘을 다해서 힘을 내야 했었다. 호흡도 어려워지고, 힘주는 법도 잘 몰라서 힘들어했다. 처음 겪는 고통에 정말 힘들었으리라. 옆에서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까웠다.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9시 45분에 조금씩 아이의 나오는 것 같았다. 곧 아내는 분만장으로 옮겨졌다. 나는 함께할 수 없었다. 같이 손을 잡아주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들어가니 오히려 소리는 더 줄어들었다. 나중에 아내의 말을 들어보면 조금씩 힘주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의사, 간호사 분들이 옆에서 잘 한다고 지지해주고, 힘내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10시 10분이 넘어가자 조금씩 느낌이 왔다. 거의 다 왔구나! 이제 몇번만 더 힘주면 나오겠구나! 떨렸다. 나오더라도 아이의 건강은 보장할 수 없었기에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카톡에도 페북에도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들 아내와 다움이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말이다.

10시 17-18분이었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나왔구나. 다행히 숨을 쉬는 구나. 첫 호흡이 얼마나 차가웠을까. 처음 보는 세상이 얼마나 낯설까. 걱정과 안도가 겹쳐서 힘들었다. 간호사가 나와서 17분에 태어났고, 사내아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건강하다고 했다. 우리 다움이가 드디어 나왔구나. 실감이 났다. 얼른 보고싶었다.

잠시 후 조그만 아이가 커다란 플라스틱 통 안 담겨서 옮겨졌다. 저 녀석이 내 아이다. 너무나 조그마해서 안타까운 우리 다움이. 사진 찍어도 된다고 하셨다. 몇 장을 찍고 신생아실까지 따라갔다. 아이의 입원수속을 마치고, 몇 가지 안내를 들으니 아직 괜찮아 보이지만 저채중 아기라서 일주일은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와 일주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안타까웠지만 일단 병원의 결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알겠다고 했다.

이후, 아내를 찾아갔다. 진통 2-3시간 만에 아이를 낳은, 출산을 위해 태어난 우리 아내다. 의사나 간호사들도 다들 와서 대단하다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했다. 예전 메디플라워 정원장님이 아내를 보더니 출산 잘 할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아내와 얘기를 나누고, 휴식을 취했다. 다행히 빨리 낳아서 회복은 빠를 듯 하다. 아내의 표정도 생각보다 좋아보였다.

이후 아내는 일반 병실로 옮겼다. 점심을 먹고, 목이 마른지 연신 물을 먹었다. 옆에서 장모님과 내가 머무르면서 도왔다. 큰일 치뤘어. 정말 고생 많았어. 여보. 아내가 역전의 용사처럼 보였다. 스스로 몸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본인도 이렇게 잘 나을 수 있을거라곤 생각치 못했을 거다. 사람의 가능성은 결코 스스로는 알 수 없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가 아는 우리보다 더 크다. 아내 얼굴에도 뿌듯함이 보였다. 이것이 자연분만이 가져다 주는 성취감이 아닐까. 아빠와 엄마와 아이가 큰 전쟁를 치룬 후 전우애를 느끼는 것. 그 감정과 다를 바 없었다.

2시가 되어서 나도 밥을 먹었다. 어젯 밤 새벽부터 지금까지 정신 없이 이리저리 다니는 동안 거의 먹지 못했다. 장모님과 간단히 식사를 하고 올라와서 아내와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고 대화를 하니 긴장감이 조금씩 풀렸다. 그간의 무용담이 대해서 나누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이 사진을 보내고, 다들 격려해주는, 그런 좋은 시간이었다.

5시가 되어서, 나는 신생아실로 향했다. 면담시간은 하루 2번, 11시와 오후 5시다. 출생 당시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어서 꽤 떨렸다. 내려가서 본 아기는 유리벽 뒤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린 우리 아가야다. 며칠 전만 해도 아내 뱃속에서 장난치고 놀던 우리 아가야. 너무너무 이뻤다. 다들 자기 자식은 누구나 이쁘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명백한 자기객관화가 되는 사람이다. 요 아이는 객관적으로 너무너무 이뻤다. ㅋㅋ 사실 부모로서 자기객관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아내에게 콩깍지가 씌어버렸듯, 갓 태어난 우리 아가에게도 씌어버렸다. 그것도 너무 빨리.

아기는 다행히 혈색도 좋고 잘 자고 있었다. 너무 조그마해서 걱정했는데 내 생각보다도 의연하고 침착해서 놀랐다. 마치 나에게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내 옆에는 다른 예비 아빠도 아기를 보러 왔는데 거기도 비슷한 분위기 였다. 생명의 탄생은 축복받고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다. 감사하게도 다움이도 많은 이들에게 축복받도 있단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무사히 확인 하고 아내와 담소를 나눴다. 아내도 하루 빨리 아이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에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내일이면 만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저녁에는 장인어른과 이모님, 이모부 그리고 처제도 잠깐 들려주셨다. 우리 필요한 짐들도 싸가지고 와 주셨다. 참 감사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나로썬 군대에 입대하는 날 이후로 가장 긴 하루였고, 인생이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배운, 하지만 그 상황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하면 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지구엔 70억 인구가 있다. 그리고 각자 70억의 이야기들로 아이들은 탄생한다. 꿈에도 예상치 몰랐던 경험이라 아직도 해롱해롱하고 있지만 다들 축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참고로 태명 다움이는 자기답게 자라란 의미로 자기다움에서 따 왔다. 그렇게 다움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태어났다. 반갑다. 앞으로 재미있게 놀아보자꾸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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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혜빈 2015.01.26 15:23

    예쁜 다움이, 재원아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렴~^^
    세상에 나온 것을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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