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미치겠네

오늘 밤, 3시에 모기 소리에 깼다. 그 엥엥 거리는 소리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게다가 우리 부부가 더 신경을 곤두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재원이 때문이다. 모기들이 아기를 좋아한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 나도 민감하고 아내도 그렇다. 얼마 전에 형님께 받은 전기 모기채가 있어서 그걸로 잡으려고 일어났다. 그런데 왠일, 파박 파박 소리가 요란한데 비해서, 생각보다 잡히지 않는 것이다. 전기가 약한걸까, 아니면 내가 요령이 없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모기가 특수 체질인건가.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더 미칠 지경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냈다. 잡은거 같아서 누우면 또 엥엥 거리고. 다시 모기채를 휘두르기를 반복했다. 잠은 이미 달아나버리고, 배는 고프고, 감기 초기라 코는 막혀서 숨은 쉬기 어렵고, 재원이는 울고. 아, 정말 최악의 새벽을 보냈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5시 반에 나왔고, 나와서도 모기 때문에 시달리다가 잠을 포기하고 이 글을 쓴다. 이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정말 밤 모기는 싫다. 왠만한 상황은 다 웃으면서 넘어가는 나지만, 모기는 아니야. 엥엥 소리가 너무 싫다. 흑흑. ㅠㅜㅠㅜ


9월 15일
기억이 없다. 

이 날은 성찰일지를 못 쓴지 너무 오래 지났다. 그래서 기억도, 성찰도 없다. 시간은 중요하다. 기억은 시간을 담보로 하기에. 하지만 실은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다시 말해, 시간이 중요한게 아니다. 기록이 시간 위에 있다. 기록은 자신의 삶을 복기하려는 자연스런 의지에서 비롯된다. 어떤 아마추어 바둑 선수는 바둑을 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바둑을 두지만, 프로를 꿈꾸는 누군가는 바둑을 두고 바로 이어서 두지 않는다. 그는 복기를 한다. 내가 어디서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판단을 했는지, 복기하는 과정이 없인 프로가 될 수 없다. 너무 멀어져서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복기하자. 


9월 16일
다툼이 있던 날

저녁에 아내와 살짝 다투었다. 계기는 나의 감기 때문이다. 아내는 전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위협을 항상 걱정해하고, 불안해하는 성격이다. 나는 그 반대다. 되려 신경도 쓰지 않고, 닥치더라도 별로 불안해하지 않는다. 장단점이 있다 아내는 불안해하기 때문에 안정을 갈구하고, 실제로 미리미리 대비한다. 미리미리 예방하고, 건강검진도 꾸준히 받는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벗어날 정도의 사건이 닥치면 잘 대처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다. 나는 그런 스트레스는 없다. 그리고 상황이 닥치면 거기 맞춰서 유기적으로 잘 대처하고자 한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미리 대처하면 충분히 커지지 않게 막을 일도 있기에. 울 아가가 있으니 이제 아내의 예민은 더 날카로워졌다. 그 덕에 한판의 썰전이 벌어졌다. 서로가 가진 성향에 대한 옹호를 펼쳤다. 내 주장의 핵심은, ‘모든 일을 다 미리 막을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아기가 나 때문에 감가에 옮았다고 하더라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 아내가 평소 걱정과 죄책감이 많은 편이라 나는 이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화를 마치고, 다음 날이 되자. 곧 후회가 밀려왔다. 왜 그런 방식으로, 논쟁적으로 이 말을 했어야 했을까? 좀 더 현명하게 나의 의도를 전하는 길도 많았을 텐데, 나는 그리 지혜롭지 못했다. 되려 아내의 마음만 상하게 한 것 같아서 후회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재원이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고, 밤새 잠을 뒤척였고 말이다. 아이고. 이게 무슨 꼴이람. 


9월 17일
칠보초 다녀오는 길 

햐얕게 불태운 날이다. 오전에는 기존에 처리하지 못했던 잡일들과 친밀함 독서축제, 그리고 강의 준비까지
오후에는 수업, 저녁에는 독서축제 마무리.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독서. 후회가 남아있지 않은 하루다. 


9월 18일 
자소서 캠프

오늘 용마중학교 자기소개서 캠프가 있었다. 자소서 완성을 위해 '스스로 자원한' 학생들 23명이 모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매번 느끼지만, '원해서 모인' 아이들과 하면 분위기는 좋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최지은 코치님과 함께 진행한 수업이었는데 코치님이 주로 글의 표현을, 나는 아이들의 글감을 위주로 코칭했다. 앞부분, 간단한 강의와 문답을 마치고 1:1 코칭이 이어졌다. 한명 한명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묻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 그런 하소연을 듣다보니 나의 대학교 4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평생을 글과 상관없이, 게다가 특별한 경험도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내가, 어찌 자소서를 쓸 수 있었을까. 빈 종이를 보며 좌절하던 내가 떠올랐다. 영혼없이 쓰는 자소서가 왜 그리도 원망스러운지. 그리고 자책도 많이 했다.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기에 자소서에 쓸 말이 이리도 없냐고 말이다. 이미 엎퍼버린 물, 뒤늦은 후회였지만. 그런 장면이 잠시 지나가던 찰나, 한 아이가 대화 중 울기 시작한다. 휴지를 건내주거 잠시 기다렸다. 천천히 물었다. 지금 어떤 감정이 올라왔냐고. 그 아이는 답답하다고 했다. 지금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다고. 이게 어찌 그 아이의 잘못일까. 어쩌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하지 않는 우리 어른들의 잘못인 것을.

코칭이 끝날 때쯤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니, 실은 어린시절의 나에게 던지는 미련같은 조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했다. 우리 모두 앞으로 자소서는 계속 부딪치게 될 거라고.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어쩌면 끝도 없을 거라고. 그때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얼마나 힘드냐고.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언제든 써낼 수 있는 '근육'이라고 말하며, 앞으로 딱 두 가지만 해보자고 했다. 첫 번째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저 하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무거울 필요는 없다. 그저 가볍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하고 행동하기.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좋아하는' 것을 하기. 그렇게 가볍게. 두 번째는 '그 경험을 기록하고, 느낌을 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찰이다. 우린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배운다는 말을 전하며,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걸 잘 갈무리 하지 않으면, 성찰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천천히 세밀하게 나의 경험을 살피는 것은 중요하기에. 이 두 가지 활동은 어쩌면 자기인식의 필수 키워드가 아닐까. 행동하고, 성찰하고. 그러한 성찰을 통해 자신을 바로잡고 새로운 행동을 거듭하는 것. 그 선순환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행동이 성찰보다 부족하면 공허해지고, 성찰이 행동보다 부족하면 맹목적이 되기에. 이 각박하고, 여유가 없는 요즘 시절에 얼마나 이 한가로운 이야기가 귓가로 들어갔을까 싶지만은, 그래도 그렇게 말하고 나니 내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이 끄덕거리며 뭔가를 적어나가는 모습도 나에겐 고마웠다. 그렇게 오늘 경험을 갈무리하며 집에 가는 길이다. 


9월 19일 - 20일 
주말 보내기

이번 금요일에 재원이가 감기에 걸렸다. 그와 동시에 우리 부부의 잠도 반으로 줄어든 날들이었다. 완전히 비몽사몽하게 보낼 수 밖에 없는 나날들. ㅠㅜ 그 와중에 토요일에 경험했던 워크샵은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즐거운 질문들도 있었고 (현재 고군분투하거나, 도전 과제로 느끼는 것들은? 지난 한 달간, 학교에서 당신을 놀라게 한 것은? 체인지메이킹 성공스토리나 그 동안 배운점은?) 아쇼카 펠로우인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의 송인수 대표님과 세상을 품은 아이들의 명성진 대표님의 특강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몇몇 문장이 있다. 우선 송인수 대표님. "언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그 이후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꼰대가 된다.”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까지 지키려는 가치가 있는 사람은 ‘변화를 만드는 힘’을 확보하게 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상황에 맞춰 문제를 줄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참여의 정도가 문제의 해결 여부를 결정한다.” 명성진 대표님의 강연도 의미있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을 때, 말을 꺼내면 안 된다.” “좋은 아저씨의 삶과 체인지메이커의 삶은 다르다.” “어떤 문제든 ‘통’으로 인식되면 무력감을 느낀다. 큰 과제를 다 썰어서, 작은 과제 만큼은 반드시 처리하자.”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 노력하시는 두 분의 태도에 일단 감동했고, 영감받았다. 나 역시 저런 큰 존재가 되고 싶단 생각을 다시금 했고. 그렇게 토요일을 보냈다. 일요일에는 재원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인상깊게 남아있다. 한 20분 정도를 둘이 깔깔대면서 놀았던거 같다. 요즘 재원이의 웃는 모습이 왜 이렇게 아른거리는지. 꼬부기처럼 좋아하고, 꺄르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게 참 감사하다. 앞으로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즐겁게 놀았으면. 다만, 재원이랑 재미있게 놀기 위해선 나도 몸관리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이젠 정말 체력이 실력이다.  


4월 20일
오늘은 월요일. 자유학교 수업이 있는 날이다. 프로젝트는 결국 2개로 확정되었다. 하나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전거 이용자가 즐겁게 라이딩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 두번째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학교 앞 쓰레기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데, 모쪼록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처음에 ACT와 ACTION을 구분했다. ACT란 돌파구를 만들기 위한 진짜 행동, ACTION란 하는 척 하는 행동이다. 이것을 구분할 수 있는 건 자기자신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그냥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 하기 위해서 할 수도 있고, 진짜 조금이라도 진심으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움직일 수도 있단 뜻이다. 사실 그렇다. 나는 체인지메이커가 되기 위한 교육을 하고 싶다. 체인지메이커인척 하는 교육은 하고 싶지 않다. 변화를 만드는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었으면 좋겠다. 변화를 만드는 것이 나의 진로에 도움이 되거나, 내 스팩을 쌓기 위해서, 혹은 선생님에게 덜 미안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면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이 메시지가 꼭 전달 되었으면 좋겠다.

4월 21일
오늘은 토론 수업이 있는 날. 요즘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 정신이 딴데 팔려있나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닌데 또 나쁜 습관이 고개를 든다. 더 잘하자. 성찰로는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성찰 뒤에 오는 실천. 그것이 변화를 이끈다.  이 글은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내가 더 나답게 살기 위해 쓰는 글이다. 실천이 없다면 이 글은 그냥 쓰레기다. 반복하고 싶지 않으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4월 22일
오늘 오전부턴 VTON멤버들 지현쌤과 한수쌤과 미팅했다. 정말 다양한 주제가 오고 갔다. 최근에 내가 가진 이슈들도 자연스래 나왔다. 키워드만 뽑아 본다면, 회복력, 커뮤니티, 학습조직, 온전함의 회복 등이었고, 책으로는 학교 없는 사회, 학습하는 조직, 폭력이란 무엇인가, 호모 코뮤니타스 등이 언급되었다. 3시간 정도의 대화 나눔이었지만, 밀도가 높았다. 배움이 별거인가. 이런게 배우는게 아닐까.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내가 이렇게 말했다. “뭘 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뭘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맞다. 그냥 모이는 것이 좋다. 꼭 목적을 가져서 모이는 것 보단, 그냥 모여서 뭘 할까를 함께 정하고 가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학습 조직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해서, 내년에는 꼭 시도하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역이니. 오랜만에 환기도 했고, 일도 했다.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4월 23일
요즘 내 생각의 흐름을 가속화주는 책도 읽고, 변화를 주는 책도 많이 읽게 된다. 가속화하는 책들은 예를 들면 고민하는 힘, 희망의 인문학,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호모 코뮤니타스 등이 있다. 내가 추구하는 생각을 이미 이뤄가는 사람들의 사례이고, 그로 인해 얻는 것이 많다. 하지만 변화를 주는 책들도 있다. 슬라보예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그러하다. <폭력이란 무엇인가>는 생각만 해도 너무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다음에 다루기로 하자. 오늘 오전에는 <읽지 않은 책..>을 옮겨적었다. 이 책은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인 나에겐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는 책이다. “책 읽는 거? 그거 정말 중요해?”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의 나는 저자의 생각에 거의 동의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독서가 중요하다 아니다가 아니라, ‘지나친 독서에의 맹신’이 주는 폐악을 보자는 것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네 생각을 말하라.’ 책을 읽고 안 읽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되려 독서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성찰할 시간을 빼앗아버리게 된다. 이러한 관점으론 최근 최진석 교수가 쓴 책 <인간의 그리는 무늬>도 비슷하다. 이 책을 본 것은 아니자만, 저자의 강연을 듣고, 인터뷰를 듣고, 책의 리뷰를 보고 내린 나의 판단이다. 나도 읽지 않은 책에 말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하. ‘나는 이 정도 책을 봤으니 이 정도야’라는 생각. 그건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지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자기 생각을 얼마나 말했는가? 그것이 본질이다. 우리는 모두 수용자가 아닌 생산자,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을 기억하라. 책은 읽는 사람의 생각음 움직일 수 있고, 동시에 그가 가진 가장 독창적인 부분으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나도 앞으로 기죽지 않으련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당당히 말하련다. 틀리면 뭐 어때. 

4월 24일
올해 들어서 일기 쓰는 일을 거의 빼먹지 않았는데, 이번에 거의 처음으로 3일이 밀렸다. 그 이유는 와우 엠티 때문이리라. 그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금요일 일기를 적지 못한 건 내 불찰이다. 금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되돌아보자. 그래 금요일에 자유학교 발표가 있었다. 아이들의 마지막 발표였지. 나름 잘 해주었다. 금요일 오후에는 병원을 갔다. 오른쪽 어깨가 자주 아파서 정형외과를 갔는데, 근막통증이라고 하더라. 금요일엔 왼쪽 어깨도 치료받았다. 의사가 말하길, 아무리 이렇게 치료받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체조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체조하는 습관. 이젠 더 이상 늦어질 수 없다. 피터 드러커는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건강을 중요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하루에 1시간은 꾸준히 수영을 했다고 하니,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드러커보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닐텐데. 체조를 빼먹는 일은 없도록 하자. 

4월 25일-26일 (엠티 후기)
오늘은 와우 엠티를 가는 날. 엠티의 행선지는 바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안동이다. 이 엠티를 가기 위해 아내의 엄청난 배려가 필요했다. 무려 1박 2일의 일정이었기에. 아기가 배가 조금 아픈 상황이기도 했고, 떠나는 나도 마음은 다소 무거웠다. 쨌든, 아침 일찍 서둘러서 떠났다. 서울팀은 8시반, 양재역에 모여서 출발했다. 오랜만에 보아서 더욱 반가웠다. 아름다운 덕평 휴게소를 지나 나는 지명(형)님 차로 옮겨 탔다. 이번 엠티에서 누구보다 이야기를 많이 한 게 지명(형)님이 아닐까 싶다. 안동으로 가는 길, 거의 대서사시이자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지명(형)님의 인생을 들었고, 나도 내 삶을 나누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들 한번 들어보시길 강추한다. (ㅎㅎㅎ) 시간 가는지 모르고 수다를 떨다보니 이내 도착한 곳은 하회마을이었다. 하회마을은 워낙 유명한 곳인데, 팀장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강이 돌아서 나간다고 해서 하회란 이름이 붙었단다. 아무것도 모르고 좋다고 돌아다니는 내가 부끄럽다. (ㅎㅎㅎ) 도착 후 가장 먼저 먹은 건 안동찜닭. 워낙 식도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지만, 왜 안동찜닭이 여기서 유명해졌는지는 궁금했다. 나름 검색해보니 1970년도 부터 유명해졌다고. 아주 과거 (조선시대) 부터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맛은 너무 좋았다. 달콤달콤. 그 이후엔 화천서원을 들려서 서원과 서당(정사)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부영대를 올라갔다. 

부영대에서 내려다 본 하회마을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정말 완벽한 그림. 산은 보기에 딱 좋을 만큼 높았고, 하늘은 구름 한점 없었고, 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는 낙동강은 반짝 반짝. 그리고 그 사이에 소복히 내려앉은 듯한 마을은 이 그림의 정점이었다. 놀라운 경치였다. 다들 놀라운 광경에 사진을 찍느라 정신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예전에 로마에서 본 포로로마노가 문득 떠올랐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하나 정하라고 하면 나는 포로로마노를 꼽는다. 그 이유는 건축물이 웅장해서도 (콜로세움이 더 웅장하다), 주위 풍경이 더 멋져서도 (베니스가 풍경은 낫다) 아니다. 그 이유는 포로로마노에선 내가 ‘그 때 그 시절’을 그려보았기 때문이다. 수 많은 로마인들이 광장에 모여 토론하는 모습, 물건을 파는 모습, 걸어다니는 모습. 그런 모습이 총체적으로 떠올라서 일 것이다. 하회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을 때도 슬쩍 스쳐지나갔다. 공부하는 조선의 선비들과 밥을 짓기 위해 부산스런 아낙내들. 강으로 물자를 나르던 상인들과 뱃사공들. 옆 마을과 교류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그걸 상상하는게 좋았다. 광땡들과 사진을 찍고, 잠깐 머문 뒤, 내려왔다.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도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5대 서원이 무엇인지. 18대 현인은 누구인지 등등. 내가 남명 조식 선생을 비롯한 몇몇 유학자들은 왜 5대 서원에 들어가지 않냐는 질문도 했고, 팀장님이 잘 답변도 해 주셨다.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 내려오는 길에도 많은 생각을 했는데, 어서 이 빈칸들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게 자연스런 공부가 아닐까.

부영대에서 내려와선 옥면선사에 들렸다. 류성룡 선생님이 내려와서 ‘징비록’을 지은 곳. (기억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회 마을이 더 가까이 보이는 곳이었는데 이런 곳에서 공부가 잘 될까. 싶긴 했다. 아마 풍류를 즐기느라 더 바쁘셨을 지도. 이후에 자리를 옮긴 곳은 병산서원이다. 가는 길도 너무 이뻤지만, 도착해선 더 놀랐다. 어마어마한 병풍들. 그 앞을 흐르는 강. 그리고 그것들과 한치의 어긋남 없이 자리잡은 병산서원. 병산서원의 툇마루에서 내려다 보는 산수의 모습은 하회마을을 능가하는 절경이었다. 내가 기존에 한국 땅을 많이 보지 않은 이유가 더 크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얻은 중요한 나의 시야는 바로 ‘산과 물’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산과 물이 잘 어울어지는 땅이었나? 안동이 유독 그런 것인가, 내가 너무 돌아다니지 않은 탓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한 것인가. 지금까지 이런 것을 잘 알지 못했기에 조금은 후회스러웠고, 더욱 놀라웠다. 서원을 둘러보고 나선 강가로 나아갔다. 잔잔한 강을 보면 생각하는 놀이가 있지. 돌을 던져 통통 튕기는 전설의 그 놀이! 물수제비. 거의 초등학교 때, 아니 중학교 때 까진 했던거 같은데 그 이후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돌맹이를 손에 쥐고 던져봤다. 잘 안 되더라. 물과 돌, 그리고 사람의 힘이 적절해야 잘 되는데 우리에게 그리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기로 몇번 더 튕기긴 했지만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1등은 팀장님이 튕긴 5개. 나는 3개인가 4개인가. 암튼 재미있었다. 그거 조금 운동했다고 담날 어깨가 약간 아프긴 하더라 ㅋㅋ 물가에서 놀고, 사진도 찍다가 자리를 옮겼다. 월영교로 가는 길이 꽤 멀었기에 서둘렀다. 

월영교에 도착해선 헛제삿밥을 맛있게 먹고 (내가 지금껏 먹는 탕국 중에 베스트였다. 제사 음식 답게 반찬이 차서 좀 아쉬웠지만) 월영교에서 산책을 즐겁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물 위에 비친 달이 참 멋진 곳이었다. 안동에 관광하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도 많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길었지만, 차에 탄 영남 누님과 연주르와의 수다로 즐겁게 올 수 있었다. 숙소인 온계 종택도 멋졌지만, 차에서 내렸을 때 별빛이 더욱 멋졌다. 얼마만에 보는 밤 하늘인지. 팀장님이 아프셔서 이후엔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다들 그래도 즐겁게 와인과 다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비록 나는 술은 잘 못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즐겁고 편안했다. 다음 날 일어나서 주위를 산책하려고 하는데 진경이가 벌써 부지런히 나와있었다. 함께 집 근처를 돌아봤다. 옆집의 할머니가 따뜻한 고구마를 건내시며 하나 먹어보라고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ㅠㅜ 이런 시골 인정 정말 어쩔꺼야 ㅠ  이후 궁금했던 것들을 부지런히 물어봤다. 저건 무슨 밭이에요? 여긴 왜 소나무가 많아요? 할머니는 뭐 키우세요? 저건 무슨 나무에요? 무슨 꽃이에요? 등등 할머니는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셨다. 넘 감사한 할머니를 만나서 산책길이 충만했다. 이후 팀장님과 지명형님도 산책 나오셨기에 건강을 여쭙고 퇴계태실에 들렀다가 왔다. 이후 아침을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여기 와서 장난아니게 살찔 듯. 오전에 집주인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듣고, 단체 사진도 찍고, 집을 나섰다. 다음 코스는 농암종택.

농암 종택에 가는 길은 정말이지. 절경이었다. 굽이 굽이 자동차 길을 따라서 강이 흐르고, 그 뒤로는 산과 절벽이 가득한. 이런 코스를 걸어다니면 백정도 저절로 선비가 되겠더라. 농암종택은 내가 방문 했던 국내 여행지 중에서도 손 꼽히는 곳이었다. 정말 자연과 잘 어우러졌다. 여행을 마치고도 어제 들린 병산서원과 농암종택을 난 최고로 쳤다. 그 만큼 종택에서 머물 때의 감명이 깊었다. 그리고 하나 느낀 건 내가 원래 자연에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거 같은데 나이가 들 수록 자연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 자주 접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 그런 변화도 느낄 수 있었다. 사진도 찍고, 대화도 나누고, 쿠사리도 먹고 (강각이었나. ㅋㅋ 나가세요 당장 나가세요 ㅋㅋ) 재미있었다. 언젠가 한번 꼭 따로 와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자고 싶단 생각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재원이와 함께 꼭 한번 와야지. 이후 점심으로 간고등어랑 더덕무침을 먹었는데 그것도 꿀맛이었다. 도산서원에 도착해선 공사 중이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오래 된 느티나무들이 인상적인 곳이었고, 무엇보다 스승의 뜻을 소중하게 여기고자 하는 제자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더 애틋한 곳이었다. 도산서원 앞으로 내려다 보는 강물의 반짝거림이 아직도 머릿 속에 남아 있다. 

돌아가는 길. 나는 로디우스 뒤에 짐들과 함께 큰 짐이 되었다. 처음엔 많이 불편했는데, 그래도 적응하니 좀 괜찮았다. 하지만 대화하기 적합한 자세는 아니어서 그냥 혼자 책도 보고, 졸기도 하고, 광땡들 이야기도 훔쳐 듣고 하면서 왔다. 다들 맨 뒤에 있는 날 걱정해 주셔서 감사했다. 어쩌면 이 상황 때문에 그날 아침에 잘 생겼다고 띄어준 것은 아닐까? 이 모든게 큰 계획의 일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은 그 당시 하지 못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 한다. (ㅋㅋㅋ) 농담이다. 쨌든, 돌아오는 길은 아무래도 마음이 급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나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지명(형)님이 더 걱정 되었지만)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말했기에 지켜야 했고. 국수역에서 급하게 내리는 바람에 한명 한명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미안하게도. 그래도 유진 누님과 함께 타서 좋았고, 지하철에서도 내내 이야기하고 놀았다. 이틀 내내 행복하게 잘 놀다 가는 느낌이다. 도산서원에서 리뷰할 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원래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번 여행은 나에게 혼자하는 여행의 즐거움 (여유로운 시간, 산책)과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친밀감, 대화, 배려)을 둘 다 맛본 여행이라 더 좋았다고. 정말 그랬다. 애써주신 팀장님을 비롯한 모든 광땡들에게 감사함을 깊이 전하며 이만 총총. 


1.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이렇게 한번 상상해보자. 만약 당신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마술 지팡이가 주어진다면?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당신은 지금 당장 바꾸고 싶은 것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상은 절실히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

하지만 우리의 성향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는 종종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지언정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고는 더 이상 어떤 시도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적으로 우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자신을 창의적으로 만들어주는 공감과 기회의 창고를 발견하고, 대담성이라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변화시킬 때의 깊고도 지속적인 만족감은 그 변화가 ‘완성’됐을 때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한 단계씩 밟아나갈 때도 느낄 수 있다. (…)

페미니스트 이론에서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고 가르친다. 개인적인 작은 일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진술이 참이라면 그것을 입증해주는 증거는 당연히 평범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 증거이므로, 평범한 개인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행동들이 세상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사실, 우리를 둘러싼 견고한 사회적 시스템이나 그 어떤 노력으로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문제 앞에서 분노하거나 과절에 빠지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만한 감정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즉각적인 반응은 변화의 가능성을 우리 각자에게서 더욱 멀찌감치 물러서게 할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라. 인류의 역사가 모두 그런 방향에서 진행되어왔다면 우리는 아직도 노예제도, 여성과 유색인, 이민자에 대한 억압,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무분별한 침략, 무소불위 독재권력, 심지어 신분과 계급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변화들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개인의 작은 행동에서 촉발되었음을 상기하는 것이다. 변화는 생각처럼 빨리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대로, 당장 우리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되지는 않더라도 평범한 일상의 행동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때 세상은 ‘반드시’ 변화할 것이다. 이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P.19

2. 베를린 장벽 붕괴
사실 동베를린과 서베른린 사이의 장애물이 무너지게 된 것은 수많은 평범한 베를린 시민들이 아주 작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민중의 힘’이 몇몇 주변 국가들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동독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뒤따르자 그들은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기 위해 국경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뿐이었다. 최근 주변 국가들에서 벌어진 일들을 의식하고 어리둥절해 있던 초소의 경비병들은 시민들이 이쪽 도시에서 저쪽 도시로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도록 문을 개방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장벽은 더 이상 장애물로서 기능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붕괴되었다.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군인들은 그들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 P.35


3. 톨스토이는 이렇게 썼다. 
“한 상업회사가 2억 명이 살고 있는 한 국가를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이성적인 사람에게 말해보십시오. 그러면 그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운동선수들도 아니고 그저 나약하고 평범한 3만 명의 사람들이, 쾌활하고, 영리하며, 자유를 사랑하는 2억 명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수치는, 영국인이 인도인을 노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도인들 스스로 노예가 되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 아닙니까?” 톨스토이와 편지를 주고받은 인도 청년은 다름 아닌 간디였다. (…)

간디는 말한다. “노예가 자기 자신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고 결심하는 순간, 그의 족쇄는 끊어질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그 방법을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자유와 노예는 정신적인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첫 번째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더 이상 노예의 역할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명령을 그것 자체로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의 양심과 일치하지 않을 때 불복종할 것이다.”” P.38

4. 나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만약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희망한다면,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특히 우리의 이익을 좇을 거인지, 책임감을 좇을 것인지 생각해야만 한다. (…) 임마누엘 칸트는 천국에서의 보상이나 지옥에서의 징벌과 상관없이 그것 자체가 목적인 의무론을 주장했다. 그는 우리의 욕망이나 성향에서 비롯된 모든 동기들을 제쳐둘 때만이 온전히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은 철학자 피터 싱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서 지적했듯이 융통성 없는 광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재판을 앞군 상황에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자신이 칸트의 도덕법칙, 특히 칸트의 의무에 대한 정의에 따라 평생을 살았다고 갑자기 주장했다. (…) 이따금 자신이 가스실로 보낸 유대인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기는 했지만, 자신의 책무가 동정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확고하게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 것이다."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칸트의 주장에 반대했다. 그는 뭔가를 하기 위한 모든 이유가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려면 욕망이나 감정과 관련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흄이 옳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를 먼저 묻는 것이다. P.50

5. 의미를 인식한다는 것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의미를 인식한다는 것은 결국 주어진 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그의 주장은 마틴 셀리그먼이 주창하는 ‘긍정 심리학’ 운동에 의해서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셀리그먼과 그의 동료들은 피험자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눈 다음 각각 다른 종류의 기쁨을 경험하도록 했다. 한쪽 그룹은 발마사지를 받거나 초콜릿을 먹게 함으로써 단순한 쾌락을 경험하도록 했다. 또 다른 그룹에게는 구성원들 개개인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두 그룹 중 훨씬 더 깊고 오래 지속되는 만족감을 느낀 것은 두 번째 그룹이었다. 각 피험자들은 이 ‘여운’이 자신들의 일상에 활기를 전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편협한 자기 이익만을 좇는 것보다 훨씬 더, 그리고 심지어는 초콜릿을 입에 물고 발마사지를 받는 것보다도 훨씬 더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P.57 

6. 희망이란 문을 부수는 도끼다. 
단지 뭔가를 금지하고 법체화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거대한 변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결의를 따르겠다는 사람들의 결심이다. 우리가 보아왔듯이 의회의 개입 없이도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만약 자신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대신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무기력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며, 필연적이고 유익한 책임감을 박탈하는 것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레베카 솔닛은 우리가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희망이란 없다고 말한다. “희망이란 소파에 앉아서 당첨되기만을 꿈꾸며 손에 꽉 쥐고 잇는 복권이 아니다. 희망이란 문을 깨부수는 도끼이다. 희망은 행동을 필요로 한다.”P.88

7. 변화하라.
몇 년 전 어떤 파티에서 한 젊은 여성(코맥)이 내게 다가오더니 자신이 쓰고 직접 출간한 책을 봐줄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단지 예의상 그러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책을 보고 나느 큰 감동을 받았다. 코맥은 ‘변화하라’라는 이름의 행사에 돈을 내고 청중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행사에서 연설가들이 다른 화제는 환경위기나 사회비리 등과 같이 다양했는데 때때로 연설자들이 음울한 어조로 강연을 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희망적이라는 사실에 코맥은 놀랐다. “내가 있던 그 강연장 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관해 열렬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사흘간 계속된 행사에서, 사람들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연설가들로부터 강연을 들었다. “나는 혼자 생각했죠. ‘정말 대단해! 누군가는 이런 내용의 책을 써야만 해.” 

그러고 나서 강연자들은 청중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 행사는 강연자들만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보고자 하는 그런 변화가 되기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때 코맥은 책을 써야 할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곧 준비에 착수했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정리된 내용을 토대로 책을 출간한 뒤 직접 홍보를 하러 다녔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특별한 명분을 강조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명분을 더 잘 알리려고 노력했다. P.107

8. 자유란. 
다이앤 내쉬는 이렇게 회고했다. “마틴은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아주 말을 잘 하는 유능한 대변인이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슈퍼맨이나 성자라고 여기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할 때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오늘날 마틴 루터 킹 같은 리더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사람들은 전략을 구상하고 그 운동을 이끌어가는 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란, 그 단어가 정의하는 바와 같이, 그들의 지도자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P.135

9. 개인적 이익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의무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을 더 추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위대한 과제는 의무를 개인적 이익과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단순히 의무가 아닌 ‘매력적인’ 일로 만들 수 있을까? 만약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돕기를 바란다면, 그들에게 공동체의식과 화목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변화 운동을 추진해야만 한다. 

환경운동가들의 사업은 삶의 질을 높여주고 즐거움도 주지만, 대개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체를 형성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한다. 협력하려는 근본적 이유가 그동안 이 세상을 구해왔듯이, 이 사업의 추진 요인은 다름 아닌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우리가 변화를 시도할 때, 사회의 이런 본능적 가치를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만약 사람들에게 이웃들과 인사할 기회만 제공해줘도 우리의 프로젝트는 엄청난 성공을 이룰 것이다. P.171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당신의 아이디어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니,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당신의 이웃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의 이익과 연관된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면 그 아이디어는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는 성공할 자격도 없다. P.184

10. 키즈 컴퍼니 사례
그녀와 만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과 접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부유한 가정에서조차도 아이들이 심각하게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어요.” 돈만으로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키즈 컴퍼니가 하는 모든 일의 기본 전제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다. 특히, 이 단체는 ‘애착 이론’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이론은 아동심리학자 존 보울비가 처음으로 체계화한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은 자신을 처음 돌보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애착 정도에 따라서 발달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방치된 아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에 대해서 반응도 없고 도움이 되지 않으며 꺼린다고 생각한다. 학대당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하고 적대적이고 도움을 주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형태의 아이들 모두, 사람들이 자기가 예상한 대로 자신을 대할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 보울비는 일단 아이가 관계의 유형을 결정했다면 그것을 바꾸기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다행히도 초기 사랑이 부족하다고 해서 모두가 방황을 하는 것은 아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릴 때 성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여성의 61%가 자녀를 학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보고서는 사람들의 정서적인 도움과 장기간의 집중적 심리 치료가 학대의 재발방지에 상당한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키즈 컴퍼니로부터 얻는 것이다. 이 아이들 상당수는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 아이들에게 단순히 전통적인 도덕성을 교육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문제아동들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게 하려면, 아이들이 겪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먼저 누군가가 사과해주어야 한다. 키즈 컴퍼니의 활동가들은 그렇게 했다.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고 훈련받은 어른들과 강도 높은 애착 관계를 형성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고쳐준 것이다. P.188

11. 동정심의 발현
“회의론자들은 황금률은 별 ‘영향력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들은 실제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당신이 동의하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교리가 아니다. 그것은 방식이고, 그것을 시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실천하는 것이다.” 황금률을 실천한 사람들은 완전한 수준의 존재감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나 시도하면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높은 수준의 동정심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프로 운동선수들이 훈련을 하듯이 그것을 실천하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훈련법은 많다. 그중 하나는,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나의 친구이거나 친인척이라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만약 노숙자가 당신의 아버지나 형제 또는 자식이라고 상상한다면 그를 무시하기 힘들 것이다. P.210

12. 행동하라. 
아일랜드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할 수 있는 일이 단지 조금밖에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큰 실수는 없다’고 말했다. 행동하기를 뒤로 미루면서 나중에 상황이 더 나아지면, 즉 새 직장을 얻거나 더 큰 집으로 이사하거나 은퇴를 하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을 현혹하는 것이 바로 버크가 말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상황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정체된’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목표를 언젠가 벽에 걸게 될 아름다운 액자에 끼워진 완성작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대신 ‘진행하는’ 사고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종착점이 목표는 아니다. 어떤 선율의 끝이 반드시 그 음악의 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당신의 임무를 그림으로 생각하지 말고 음악으로 생각해보자. 

왕가리 미타이가 소소한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그녀의 단체는 그렇게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지 못했을 것이다. “땅을 파고 묘목을 심고 물을 주어 나무를 살리기 전까지 당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그저 말로만 하고 있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도 같은 생각을 가졌다. “나는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한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나는 4만 2,000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을 물과 같다. P.226

세상을 바꾸는 일은 절대 끝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일’이라기보다는 ‘정신상태’에 더 가깝다. 있는 상황 그대로에 관심을 갖는 것. 변화에 대한 책임감을 기꺼이 나누는 것, 절망감으로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희망으로 가능하게 하려는 마음. P.228

추천 책
- 전쟁과 평화 / 더욱 막강한 힘 / 비폭력운동의 정치학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피터 싱어) / 타인과 함께 홀로 

- 변화 만들기 (트레나 코맥)

“희망이란 소파에 앉아서 당첨되기만을 꿈꾸며 손에 꽉 쥐고 잇는 복권이 아니다. 희망이란 문을 깨부수는 도끼이다. 희망은 행동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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