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달 리뷰를 남깁니다. 

제가 주기적으로 글을 공유하다보니, 그리고 이런저런 독서모임도 참석하다 보니, 종종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책은 주로 언제 읽나요?”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나요?” “책은 왜 읽나요?” 등등. 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건 워낙 좋아하기에 신나게 대답하지만, 지금까지 제 의견을 명확하게 정리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책 읽기로 글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글이 잘 써지지 않더군요. ‘독서’를 주제로 선정하자, 제 깊은 곳에 이상한 욕심이 고개를 쳐듭니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굳이 ‘잘 써야겠다’는 부담감을 가진 적은 거의 없었는데요. 그래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쓸 수 있었구요. 그런데 이번에는 약간의 욕심이 저를 자극합니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저를 압박하지 않도록,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한번 써 보겠습니다. 글을 쓰며 독서와 관련한 다양한 책을 인용하게 되었고 딱히 대표할 만한 책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담고 있기에, 기준이 되는 책을 선정했습니다. 바로,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력” 입니다.

PS : 참고로, 글을 쓰다보니 다소 길어지고 말았네요. 그래서 1부와 2부로 나뉘고자 합니다. 1부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2부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 입니다.







1. 당신은 왜 책을 읽나요?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왜 책을 읽나요? 특별히 어떤 계기가 있나요?” 그러면 전 대답합니다. “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읽기 시작했고, 그 계기도 있습니다.” 지금도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멋진 순간은 아닙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불안해서 읽었습니다. ‘독서’라는 고상한 말보단 ‘발버둥치기’가 더 잘 어울리는 그런 상황이었죠. 그렇게 습관이 되었고, 지금은 솔직히 별 이유 없습니다. 그냥 읽습니다. 제가 처음에 책을 읽게 된 계기, 그곳으로 거슬러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감 못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남자는 군대에서 살짝 철이 듭니다. 철이 드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단지 ‘혼자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는 동안 뭘 할까요? 처음에는 잡 생각이나 잡담을 합니다. 이런 저런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거없는 자신감까지. 그러다 더 시간이 지나면 적막함이 슬그머니 찾아옵니다. 소란스런 생각들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과 마주하게 됩니다. ‘대학생’ ‘아들’ ‘친구'이란 껍질을 벗어버린 저를 말이죠. 그게 2003년이었습니다.

변화는 ‘객관적 자기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거기서 벗어나고자 아둥바둥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저를 봤습니다. 덜컥 걱정이 들더군요. “전공 공부는 정말 싫은데” “졸업하고 달리 할 것도 없고”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 전 뭐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읽었습니다. ‘발버둥’이란 말보다 적확한 표현은 없을 것 같네요. 고상한 이유 따윈 없었습니다. 뭐라고 하고자 그렇게 저는 제 주위에 놓인 책들을 주워들었습니다. 월간지 '좋은 생각'부터 자기계발서, 판타지 소설, 종교 서적, 등등. 맥락도 흐름도 없는 파편적인 독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2년 간 300여권을 읽었습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물론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도 인간성을 갈고 닦을 수 있겠지만 혼자 조용히 자신과 마주 서는 시간이 자아 형성에는 필요하다.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도 즐거운 법이다. 독서는 정신적인 긴장을 필요로 한다. 이 적절한 긴장이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독서는 혼자 하는 듯싶지만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쓴 사람과 함께하는 둘만의 시간이다. ... 뛰어난 인물이 공들여 조탁한 문장을 혼자 음미하는 시간. 이런 시간에 얻게 되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p.75

그 결과, 제가 얻은 결과물은 초라합니다. 겨우 ‘읽기’에 대한 부담감을 털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모든 순간이 자발적 이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적고, 휴가 나와서 볼 때의 기쁨. 그렇게 ‘책에 목 말라 본 느낌’은 아직도 생생 합니다. 책 읽기, 구절 옮겨적기, 생각 끄적거리기. 그렇게 보냈던 2년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가장 소박하면서, 행복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그렇게 '책'에 흠뻑 빠져 본 경험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비교적 늦게 알았지만, 더 어릴 때 그런 경험을 한 분들은 더더욱 행운이겠죠. 그것은 값진 경험입니다. 그 순간 만큼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목적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 그것이 자발적 몰입을 이끌어내는 첫 번째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독서력>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독서는 장거리 달리기'라고 말합니다. 독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축적된 독서량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머리가 그리 좋지 못한 저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그래서 독서는 정직합니다. 그저 꾸준히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장거리 여정에서 '즐거움'은 독서가의 가장 큰 우군입니다.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가 책을 읽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어떤 어떤 실험에서 아이큐는 높지만 평소에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혔더니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때 그 사람은 “난 아이큐가 꽤 높은 편인데 이해할 수 없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은 독서를 잘 모르기에 나온 발언이다. 독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축적된 독서량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장거리달리기나 행군과 비슷하다. 특별히 발이 빠를 필요가 없다. 날마다 달리고 조금씩 거리를 늘려나가면 대부분 장거리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된다. ... 독서의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꾸준히 하는 것’이 힘이 된다.” P.45


2. 경험하면 되지, 굳이 책을 읽어야 하나요?

여기까지 쓰자, 예상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래 좋겠다. 당신이 그럴 수 있었던 건 군대이니 가능한 일이지, 요즘 이렇게 바쁜데 어떻게 그게 가능 하겠어?" '즐거움'이란 달달한 용어 정도론 설득이 안 된다는 것,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깊이 묻습니다. “살아가기도 바쁜 일상에, 굳이 많은 책을 읽어야 하나요?” 그럼에도 저는 “네”라고 대답합니다. 적어도 독서는 많은 이에게 ‘자아 발견의 키’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막무가내로 책을 읽던 당시에 저는 우연히 심리와 종교, 인문학과 교육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끌리는 저를 볼 수 있었고, 이후로 몇 년간 제 전공인 ‘공학’을 뒤로 하고 관련 책을 읽는데 시간을 바쳤습니다. 자연스럽게 관심을 넓혀 갔던 것이죠. 다방면의 독서가 주는 유익은 분명합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디에 끌리는지' 자연스럽게 나를 이끄는 신호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지도 분명해 집니다. 그렇게 나의 강점과 약점, 흥미를 파악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일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굳건히 하지 않으면 쉬이 휩쓸려 버리고 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 나를 알아가는 방법으로, 독서를 신뢰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책을 가지고 어떻게 나를 발견한다는 말이야? 니가 ‘경험’을 안 해봐서 그렇지, 경험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 최고야.” "... ..." 잠시 말문이 막히지만, 다시 반론해 보겠습니다. '경험과 이론' 이는 지난 번에 언급한 ‘본성과 양육’처럼 아주 오랜 논쟁거리입니다. 서양 철학사를 돌아봐도 합리론과 경험론은 서로 기나긴 평행선을 달리죠. 경험주의자는 이론가들을 ‘해본 것이 없다고’ 쉽게 얕잡아 봅니다. 그리고 이론가는 경험주의자를 ‘그게 다인줄 안다’며 무식 하다고 비하하죠. 저는 이 논쟁을 아래 책으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철학자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에 나오는 글입니다.




"몸은 인간에게 가까운 것이어서 겪어서 알게 된 것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중의 하나는 바로 ‘겪어서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전쟁을 겪어본 사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주제에 관한 한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즉 “낙동강 전선에서 압록강 전선까지 모든 전쟁을 겪었느냐’는 반론 말이다. 오히려 몸으로 직접 겪어보지 않고 전체를 이론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태의 실상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 수도 있는 것이다. 몸으로 겪어봐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할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험과 이론 둘 다가 겸비되지 않으면 그것은 제대로 된 지식이라 하기 어렵다. ... 이걸 흔히 ‘지행합일’, 또는 ‘지행일치’ 라고 한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실망 하시겠지만 결국, 답은 ‘둘 다’입니다. 겪어서 아는 것과, 책을 읽어 아는 것. 모두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되려 경험주의자일수록 책을 더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책을 읽는 이들은 총을 매고 전쟁터로 나아가야 하겠죠. 제 삶을 봐도 그렇습니다. 책을 읽을 수록 '호기심'이 많아지고, '경험'에 목 마르게 됩니다. 그 결과, 삶에 뛰어드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다시 말해 지식과 경험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책을 통해 관심사를 넓히고, 행동으로 검증하고, 다시 책을 통해 성찰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선 순환. 그 반복을 통해 ‘나'를 더 알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책을 읽는 두 번째 이유, 바로 '지식과 경험'을 통해 '나를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적어도 저에게 책은 그런 존재입니다.

"‘독서는 할 필요가 없다.’는 근거로서 책을 읽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책 읽는 습관이 있으면 체험에 나서기가 어렵다는 말일까? 하지만 이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체험을 하는 일과 책을 읽는 일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통해 다양한 체험을 하고 싶다는 의욕이 불타오릴 수 있다. 예를 들면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 방랑>을 읽고 아시아 여행을 꿈꾸는 젊은이가 있다. 책에 이끌려 여행에 나서는 경우는 흔하다. ... 독서가 계기가 되어 체험하는 세계가 확대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서를 통해 자신이 체험한 일의 의미가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는 공감대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p.97


3. 만약 읽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렇게까지 설명 했음에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래, 읽는 것은 좋아. 인정해. 하지만 읽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별다른 일이 생기는건 아니잖아?" 예전에 저는 이 답을 어렵게 답했지만, 이젠 비교적 쉽게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아무리 운이 좋게 대통령이 되어도 '탄핵'이란 위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곧 ‘사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실질적 문맹률(문해력으로 보면 75%에 달합니다. OECD 중 최하위입니다.)은 엄청나게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 알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드라마나 예능은 대통령을 비롯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손 안의 스마트 폰은 우리가 전지전능해 졌다는 착각을 하게 합니다. 무엇이든 '검색'하면 다 알 수 있지만, 깊은 '사색'은 사라졌습니다. 과거엔 지하철에서 책 읽는 이를 그나마 볼 수 있었으나, 이젠 거의 드뭅니다. 그리고 모두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전 그것이 솔직히 두렵습니다. 홍세화 작가의 책 <생각의 좌표>에 나오는 글을 옮겨 적습니다. 




"네 경로(독서, 토론, 직접견문, 성찰)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인 반면,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이지 않다. 독서와 토론, 직접견문과 성찰은 내가 주체적으로 행하는 것이지만, 제도교육과 미디어에서 나는 주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객체이며 대상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 중 책을 읽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소수다. 문제는 과거에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제도교육이 보편화되었고 미디어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들의 의식세계는 빈 채로 남아 있지 않고 채워진다." <생각의 좌표>

홍세화 작가가 말했듯, 책을 읽지 않아도 현대 사람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듣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과 글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책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말은 특별한 장애가 없는 한 누구나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하지만 읽고 글쓰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그 차이가 재미있습니다. 구술문화에 속하는 이들은 ‘추상’의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해머, 톱, 손도끼 등을 보여주며 공통점을 말하라고 하니, 그들은 ‘연장’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대신에 이렇게 대꾸했다고 합니다. “톱은 나무를 썰고, 손도끼는 통나무를 가르죠.”

구술문화권 사람들은 자신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도 곤란을 느낍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들은 인격을 기술하는 대신 신상을 늘어놓습니다. “나는 우츠구르간 출신이죠. 무척 가난했고 지금은 결혼해서 자식도 있어요.” 이러한 ‘인식 능력’의 차이는 아주 중요합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적 사유’는 문자 문화의 영역이며, 훈련에 의해 단련됩니다. 저는 이 차이가 지금의 우리나라, 그리고 광화문에서 볼 수 있는 세대간 갈등을 설명하는 하나의 근거라고 봅니다. 절대적인 가치 하나만을 쫓은 사고 방식, 그 맹목성을 닮아가지 않으려면 스스로 ‘언어의 한계’를 넓히고 '사고의 주체성'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공존시킬 수 있어야, 결국 ‘주체적인 자아’를 기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세 번째 이유, 단순합니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함입니다.

"독서의 폭이 좁으면 한 가지 사실을 절대시하게 된다. ... 눈앞의 한 가지 신비에 마음이 빼앗겨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은 지성이나 교양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대학 시절에 신비주의 단체를 조사해본 적이 있다. 그런 단체의 교리를 철저히 믿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어느 지점에서 사고가 정지되어 있었다. 절대적인 가치관을 하나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것은 부정하는 사고방식에 빠져 있었다. ... 어떤 철학적인 문제에는 강한 면을 보이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음미하는 관용적인 태도를 볼 수 없었고 한 가지 삶의 방식만을 모범으로 삼는 경향이 강했다. 모순되고 복잡한 사실들을 마음속에 공존시키는 것. 독서로 기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복잡성의 공존이다. 자아가 한 덩이의 단단한 바위라면 부서지기 쉽다. 복잡성을 공존시키면서 서서히 나선 모양으로 상승해가야 한다. 그래야 강인한 자아를 기를 수 있다.” p.69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책을 왜 읽어야 할까?"에 대한 질문에 자문하면서 답해 보았습니다. 설득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누가 누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저 제 생각을 좀 더 다듬어보기 위한 노력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조만간,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지?” 책 읽는 방법으로 다시 써 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쁜 분들을 위한 3줄 정리

1. 책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단, 자발적으로 읽는 경우에.
2. 책을 통한 지식과 경험을 통한 앎은 모두 중요하며, 책은 그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3.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 다양한 생각을 공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독서 #책읽기 #가을 


현대인들에겐 책 볼 시간이 없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책 볼 시간이 도저히 없다. 내가 유일하게 책을 마음놓고 볼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지하철'뿐이다. 지하철 이외의 장소에서 책을 본 기억은 나름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하던 시기뿐이다. 2012년을 기점으론, 앉아서 책을 읽은 적은 손에 꼽는다. 앉으면 보통 필사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강의를 준비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기에. 먹고 살아야 하니까.


책을 읽기 위해 나는 하나의 전략을 세웠다. 일단 강의장소가 멀면 멀수록 보통은 주저하지만, 난 마다하지 않는다. (되려 속으론 반긴다.) 비효율적인 동선을 많이 만들수록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기에. 작년엔 그 정도가 심해서 매주 오산, 일산, 남양주, 시흥, 성남을 왔다 갔다 했던 적도 있다. 올해 들어서 다소 나아졌지만, 그래도 이동시간이 만만찮은 곳들이 여전히 많다.


그렇게 시간을 확보했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강의 준비는 끝이 없는 거라서, 이동 내내 강의 준비를 하면 책을 볼 순 없게 된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에 이어 두번째 조건, '정신적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나는 이동 중엔 내가 강의 하러 간다는 사실을 잊으려 노력한다. 강의 준비 시간과 책 보는 시간은 철저히 구분하려 애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책을 읽을 수 없기에.


마지막, 사실 이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 발터 벤야민에 대한 책을 읽으며 강의하러 가는 길이었다. 책을 읽으며 그 기쁨이 참으로 커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주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지. 탁월한 비유다. 그 문구를 나에게 가지고 오면 이렇게 된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책을 보는 것일까, 책을 보기 위해 먹고 사는 것일까. 문득,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 반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게. 어느새 성큼 다가온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벌써 2015년의 절반이 지났다. 올해 상반기 나의 책읽기를 돌아보려고 한다. 그 전에, 잠시 더 뒤로 가보자. 때는 2009년, 내 인생의 가장 큰 방향 전환이 있던 해다. 원래 전공이었던 전파통신공학을 뒤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그 당시 이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상태였음에도)을 하면서 살겠다는 결심을 나는 2009년 1월에 했다. 지금도 내 안에서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왔었는지, 스스로에게 잘 했다고 칭찬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 이후 내 안정적 삶은 파국으로 치달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결정이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했으니까 말이다. 나중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던, 그 순간 나의 내면의 욕망을 따랐던 그런 선택이었다. 

그러한 결정을 하고, 내가 가장 먼저 목표를 세운 것은 ‘책 읽기’다. 책 읽는 것은 원래 좋아했던 편이지만, 대부분 책을 빌려보는 편이었다. 일년에 읽는 권수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읽는 횟수를 카운팅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당시에 2가지 목표를 세웠다. "모든 책은 사서 본다. 그리고 1년에 100권을 읽는다." 라는 나름의 담대한 목표. 지금 나에겐 이 목표가 그리 커 보이지는 않지만 그 당시 나는 이렇게 살아보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차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1년에 100권 책 읽기라는 목표는.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씨앗이라도 품어보고자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약 6년이 흘렀다. 올해가 7년이 들어가는 해다. 어떤 해는 100권을 넘게 본 해도 있고, 어떤 해는 약간 못 미친 해도 있지만, 대략 평균을 내면 600권 가까이 책을 읽었다고 봐야한다. 2009년에 개인적으로 소장하던 책은 10권도 채 안 되었지만, 지금 내 책장의 책들은 좀 된다. 작은 방 한쪽 벽면을 이중으로 꽉 채운 책들은 나의 보물 1호다. 그렇게 나는 읽어가면서 지금의 (사실상) 1인 기업가의 삶을 꾸려왔다. 읽기가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과 재작년에 걸쳐서 약간의 불만이 스믈스믈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의 표현’에 대한 것이었다. 
 
어쩌면 농사로 비유한다면 씨앗을 뿌리고, 물과 비료를 주지만,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논. 그게 바로 나였다. 많이 읽기는 읽는 것 같은데, 그게 걸맞을 정도의 지적 성찰이나 책과 같은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꾸려가고 있던 블로그도 한달에 겨우 1-2번 정도 글을 올릴 정도였으니,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불만, 결과물에 대한 실망은 쌓여갔다. 그리곤 반년 전인 2015년 1월에 결심했다. 올해는 읽는 책을 1/2로 줄이기로. 그리고 포스팅을 50번 하기로. 포스팅 50번을 하기 위해선 일주일에 1번 정도를 올려야 했다. 6개월 전의 나로썬 꽤 많은 양이었다. 읽기에서 쓰기로. 나는 그렇게 두번째 변화를 주기로 했다. 

지금은 6월 25일. 일년의 절반이 지난 시점이다. 돌아보기에 좋은 지점. 결과는 어떨까?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 부를 만 하다. 우선 긍정적인 부분은 바로 ‘블로그 포스팅’이다. 지금까지 무려 (놀라지 마시라) 74개의 포스팅에 성공했다. 애초 목표라면 25개 정도의 포스팅을 했어야 함에도 벌써 300% 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 이는 나로썬 비약적인 변화였다. 비록 하루에 방문자 수가 20-30명을 왔다 갔다 하는 미미한 블로그지만, 무언가 꾸준히 하고 있다는사실은 나에겐 꽤 큰 위로가 된다. 참고로 그렇게 된 이유로는 ‘일상의 성찰’이라는 매일 매일 쓰는 일기글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 변화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실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독서량이다. 좋은 책을 선정해서, 50권 정도를 여러번 심사숙고해서 읽어 보겠다는 나의 목표는 온데간데 없고, 작년과 그리 다를 바 없는 탐욕스런 독서량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내 현실이다. 6월까지 읽은 책을 정리해보면 대략 40권에 달한다. 다시 말해, 올해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변명을 더하자면, '나는 아직 배고프다.’고 말했던 히딩크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한 쪽의 나는 깊이 있게 책을 보고, 재독에 삼독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원하지만, 다른 한쪽의 나는 그저 보고 싶을 땐 언제든 책을 들춰서 읽어대는 탐욕스런 책벌레를 원하기도 하기에. 일단 어쩔 수 없다. 목표는 수정이다. 2015년 독서 목표는 80권이다. 그리고 포스팅은 150개다. 내년에 더 깊이있는 책들로 다시 도전해 보기로 하자. 읽었던 책들에 대해서 간단한 리뷰도 쓸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는 관계로 그건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 봤던 책들을 올려본다. 6월 30일 전까지는 리뷰를 다 쓸 것이다. 

1월 
어떻게 살 것인가_유시민
블리스, 내 삶의 신화를 찾아서_조지프 캠벨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_짐 로허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_이희석
유태인의 공부_정현모

2월
희망의 인문학_얼 쇼리스
인생수업_엘리자베스 퀴슬러 로스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_진 리들로프
올바른 생계수단에 대하여_크리슈나무르티

3월
삶에 내게 말을 걸어올 때_파커 j 파머
보이지 않는 고릴라_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디자인씽킹 강의노트_리팅이 외 지음
어떻게 자기답게 사는가_연지원
거대한 사기극_이원석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드러커를 읽는다면_이와사키 나쓰미

4월
인생학교 -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_존 폴 플린토프
고민하는 힘_강상중
도산에 사는 즐거움_이황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_파커 j 파머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_피에르 바야르
호모 코뮤니타스_고미숙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_마커스 버킹엄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_엄윤숙, 한정주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_요시다 타로

5월 
인생학교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_로먼 크르즈나릭
불안_알랭 드 보통
그림책 읽는 즐거운 교실_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생태요괴전_우석훈
에티카, 자유의 긍정의 철학_이수영
강점에 집중하라_마커스 버킹엄
남자의 물건_김정운
딜리셔스 샌드위치_유병률

6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_이진우
피터드러커 자서전_피터드러커
30분에 읽는 니체_로이 잭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_사사키 아타루
포트폴리오 인생_찰스 핸디
작가수업_도러시아 브랜디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_폴 D 티저


  1. 슈밍아빠 2015.06.27 06:34 신고

    저도 비슷한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많이 배웁니다.^^

    • 그렇군요 :) 감사합니다. 생각과 목표가 비슷하다는 건 기쁜 일이지요. 저도 슈밍아빠님 블로그에 들어가 봤는데, 짧은 시간임에도 굉장히 많은 글을 올리시더라구요.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론 그 성실함을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작년 읽은 책을 정리해 봤다.
100권 읽기를 채운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96권을 읽었다.
4권만 더 채웠으면 좋았을 껄..ㅋ
상당히 좋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에는 한번 더 표시하는게 좋을 것 같다. BOLD!

암튼 100권 읽기에는 아쉽게 실패했지만, 작년 한해는 더 많은 시행착오도 거치고, 책을 제대로 읽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깊이 있게 읽는 책과 가볍게 보는 책을 양분해서 다른 방식으로 독서하고 싶다.

올해 2011년 목표: 도해도서법 3권, 일반독서법 100권, 블로깅 50권! 목표닷~!



1월
탁월함에 이르는 창조적 노트의 비밀
대한민국에 사는 1%의 인간형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신과나눈 이야기
포지셔닝
체인지 몬스터

2월
타이밍파워, 오세훈
복잡계와 동양사상
몰입
스스로 행복한 사람
시스템 사고
인간과 우주경영의 비밀
타고난 성격으로 승부하라
4개의 통장
수면 명상
지금 이대로 완전하다

3월
마케팅 천재가 된 맥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세일즈 멘토 99.5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영업 9단 회사를 살리다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5분, 몰입의 기술
JUST ASK
달인

4월
포커스 리딩
알렉산더 테크닉
긍정의 습관
의식수준을 넘어서
독서노트
질문의 7가지 힘
제4의 불
3분 말하기 기술

5월
혼창통
오픈 포커스 브레인
호모 쿵푸스
깨어있기
디자인에 집중하라
싯다르타
2030년 부의 미래지도
호오포노포노, 가장 쉬운 길
Honesty (정직)

6월
이너게임
보랏빛 소가 온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평정심
성과를 위한 혁신
대화와 협상의 마이더스, 스토리텔링
오래된 나를 떠나라
소유의 종말
통합비전
2012 지구대전환
이너골프로 10타 줄이기

7월
돈의 심리학
당신의 기업을 시작하라
사랑에 대한 4가지 질문
호오포노포노의 지혜
오리진이 되라
멘탈리스트, 마음을 해킹하다
하루를 완성하는 시간, 아침 30분
과학콘서트
우리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8월
감정을 처리하는 3분 터치
꿈을 이루어주는 3가지 열쇠
트랜서핑의 비밀
감응력
지식의 단련법
(한번쯤은 읽어야할) 과학의 역사
자기혁신 프로그램
영혼의 잠재력 키우기
WHAT THE BIEEP DO WE KNOW?

9월
디테일의 힘
복잡계 개론
잠의 즐거움
제 5경영
The one page proposal
유태인 3000명에게 yes를 이끌어낸 협상
판매의 원리1
당신 자신이 되라
비폭력 대화
드림 소사이어티

10월
컬쳐쇼크
호오포노포노의 비밀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
양자나라의 엘리스
잭웰치를 움직인 3개의 원
인스퍼레이션
그림으로 배우는 생각정리의 기술

11월, 12월
셀프 오거나이징
스마트 스웜
카오스의 본질
물은 답을 알고 있다
혁신의 느린걸음
진실 대 거짓
과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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