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규칙적으로 생활하면 사고가 딱딱해져서
창작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창의적인 일은 생활의 방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규칙적인 생활에서 나온다.
- 만화가 허영만, (이주형 저, ‘그래도 당신이 맞다’에서) 

자유로운 생활에서 창의성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가들은 규칙적인 생활과 자기절제, 끊임없는 노력에서
창의성이 잉태된다고 말합니다.


창의적인 생각은 '자유로움'에서 나온나. 그리고..
사실상 나라는 사람에게 '자유'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아니 가치였다.
자유의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즉, 자유는 외부를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을 때 느껴지는 경험이다.

나는 굉장히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한때는 삶의 목표가 오로지 견성, 깨달음 혹은 해탈이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자유를 추구하지 않는다.

왜냐면,
자유를 추구함으로써 절대로 자유를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알게 되었다.
자유는 자유 속에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적이게도, 자유는 제약과 규율 속에서 '발견'되었다.

태극을 보자.

 
태극은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헌데, 잘 보면 음의 한 가운데에 양이 출현하고, 양의 한 가운데에 음이 출현한다.
"음극양, 양극음" - 양이 극하면 음이 생(生)하고, 음이 극하면 양이 생한다.

이 세상에 남자만 있다면, 남자가 존재할까?
잘 생각해 보면,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라는 개념은 '여자'가 존재할 때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아무도 없는 숲에서 쓰러지는 나무의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존재'는 그것을 '있다고 인식하는 존재'가 있을 때 '존재'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양'이라는 개념은 '음'이 존재할 때 존재한다.
그리고 '자유'라는 개념은 '규율'이 존재할 때 존재한다.
그 자유는 규율이 극할 때 '출현'한다. 그 속에서 '발견'된다.
자유 속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자유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삶의 기준과 규율'을 만들었고,
그것을 지키려고 기꺼이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충분치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삶은 역설이다.
그게 더 진실에 가깝다.



자유를 구하라. 그러면 그대 욕망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규율을 구하라. 그러면 자유를 찾게 되리라.
- 베르나르 베르베르 (신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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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쉐아르 2011.10.04 02:58 신고

    스티븐 킹의 말이 생각납니다. 일년에 사흘빼고는 매일 아침부터 열두시까지 글을 쓴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만 사실은 그날들에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는 말이요. 그렇게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상상력이 넘치는 작가가 될 수 있었겠지요. 말씀하신대로 자유는 규율에서 나오는것 같습니다.

    • 네 맞습니다. 어제 봤던 책 중에 지적 생활의 발견이란 책이 있는데, 그 책에서도 와타나베 쇼이치가 '기계적인 글쓰기가 걸작을 낳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영감에 따라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기계적으로 글을 쓸 때 역설적으로 가장 영감이 넘치는 글을 쓰게 된다는 말이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 나중에 기회가 되면 쉐아르님을 뵙고 싶네요 ㅎㅎㅎ


목표설정와 자기다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중의 하나가 바로 '목표설정'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변화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보는 매체가 '책-자기계발 서적'이고, 그 수 많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변화하고 싶으면 우선 목표를 설정하라'이기 때문이다.

드림 리스트, 비전 보드, SMART목표 달성법, Works,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등 너무나 많은 책이 이 이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러한 방법을 통해 목표를 성취했고, 다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목표를 정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 쌓여서 실제로 아무리 좋은 책을 봐도 작심삼일에 그치는 경우를 나를 포함해서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싶은가?' vs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위의 두 질문의 차이점을 구분하겠는가? 위의 질문을 다시 고쳐서 쓸 수 있다면, 이런 식의 질문이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더욱 충만함을 느낄까?'
                        vs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더욱 인정받고 사랑받을 것인가?'

여기서 슬슬 드러나있지 않던 상관관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방정식의 출현이다.
'나는 타인에게서 인정받고 사랑받을 때, 기분이 충만하다' 이 생각을 신뢰하는 사람은 최초에 제시했던 2가지 질문을 구분하지 못한다. 타인의 사랑과 인정으로부터 나의 존재가치를 찾는 사람은, 나의 내면에 질문을 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한다. 왜냐면, 그 순간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질문을 해보자.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싶은가?' vs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전자의 질문은 당신의 가슴으로, 내면으로 향하고 있고, 후자의 질문은 당신의 머리로, 외부로 향하고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목표설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나를 아는 것'이 선행이 되어야 한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 내가 무엇을 하면 남보다 좀 더 잘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면 돈을 안 벌어도 행복한지, 내가 무엇을 할 때 자기다운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할 때 '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인지를 경험하는 것이다.

헌데 이것이 쉽지 많은 않다.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느끼는 것은, '나의 자유가 완벽하게 제한'되는 상황에 왔을 때, 나는 나를 보게 되었다. 정말 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낄 때, 그러면서 그 상황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문제를 찾고자 했고, 스스로를 책임지려고 했을 때,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고, 그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구나 하는 통찰이 왔다.

하지만 그러한 '절박한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체,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배 부른'상태에서는 나의 진실된 내면을 보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삶의 결정이 외부의 영향 때문에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그렇게 외부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안전함을 쫓아왔던 나의 삶을 자각했을 때야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해야겠다는 깊은 인식에 이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실제로 '무한한 자유'라는 것이 주어지게 되면 그와 함께 수반되는 '엄청난 책임감'이 나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자유와 방종은 다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자유는 사실 '방종'이라는 말에 가깝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데로 다 하면서, 그것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는 것, 그것은 방종이다. 하지만 진짜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면서 그것에 대한 100% 온전한 책임기꺼이 지려는 태도 그 자체이다.

'자기다움'을 알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깊이 인식할 때, 내 삶의 기준이 세워진다.
내 삶의 기준을 아는 사람만이 방종이 아닌 자유를 맛보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
스스로 느끼기에 아직 그러한 말을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지르고 보는거다!
온전하게 ^^


오늘 아침 기사에 최윤희 부부의 동반 자살 소식이 메인에 떴다.
자세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건강에 의한 비관으로 자살했다고 한다. 부부 동반으로..

우선..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음..암튼..
우리 회사가 특강 강사 분들을 자주 섭외하고 모시는 일을 하는데..
팀장님 말씀으로도 전화할 때마다 정말 반갑게 맞아주고, 행복해 '보였다'고 말을 하더라
그리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행복한 인생을 사는 법 - 특강'을 하고 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모든 일을 알 수는 없지만..
혼자 추측을 하자면
외부 이미지와 내부 이미지의 불일치에서 오는 괴리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게 아닌가 싶다

특히, '행복'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사는 것은 좋지만
그 행복이 '나의 불행복함'을 완전히 수용하는 행복이 아닐 경우에,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불행복함들과 싸워야 하고, 또 그것을 '행복한 척' 위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란,
자유와 비자유 중에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행복이란,
행복과 불행 중에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란
자유/비자유, 행복/불행을 구분하고 있는 나의 '신념과 생각'이 허상이란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비자유와 불행복함이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살 수 밖에 없고..
결국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다..조금만 더 '진실했더라면..'

다시 한번..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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