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서일대 창업캠프

우연히 알게 된 업체가 있다. 작년 한 대학교 강의에서 인사를 주고 받았고, 그 이후로 연락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헌데 두달 전 10월에 창업 강의로 오랜만에 연락이 왔고, 그 이후에 한달에 2번 정도씩 강의 의뢰를 맡기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연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어떤 방식으로 인연이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작은 인연도 모두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도 사업계획서 작성에 대해서 강의를 하러 갔다. 지난 번에 한번 가 보았던 서일대인데, 271번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나는 유독 버스 타는 걸 힘들어 한다. 가면서 책을 보기도 힘들 뿐더러, 진짜 문제는 멀미다.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암튼 2시간 가까이 걸려서 학교에 도착했다. 강의는 잘 진행되었다. 창업경진대회 나가는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집중력도 좋았다. 중간중간 학생들이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나는 그걸 대답해 나가면서 진행했는데 나는 이런 강의가 좋다. 짜여지지 않고, 그 순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전달해 주는 것. 기존에 경영과 마케팅에 대해서 공부해 놓은 것이 그래도 도움이 되었던 느낌이다. 


12월 2일
규선이형

오늘 오후엔 사당에서 규선이 형을 만났다. 규선형과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서 모임을 찾고 있던 나는, 아카야라는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상당히 (?) 용기있게 자신이 공부하는 내용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올리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에 방문을 했지만, 몇번 들리면서 꽤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지금의 정선이도 만났고 말이다. 그곳에서 첨 규선이 형을 만났다. 최근에 본 것은 작년이다. 퍼실리테이션을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말씀하셨고, 지금은 국제 공인 자격증도 딸 정도로 전념하고 계신다. 오랜 인연을 만나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과거를 공유할 수 있는 것도 그렇지만, 그러한 인연을 토대로 뭔가 재미있는 일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선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친해지는 경험으론 ‘말과 행동의 일치’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에. 이번에 규선이 형과 대화하면서 그런 것도 느꼈다. 이 세상은 너무 좁다는 것.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형도 잘 알고 있고, 평판은 돌고 돌기 때문이다. 더 착하게 살아가야 겠단 결론을 내리며 대화를 마쳤다. 


12월 3일
강의보단 멘토링

오늘은 오전에 사당에서 마션 프로젝트 미팅을 마쳤고, 오후에는 창업 멘토링을 진행했다. 지난 화요일에 창업 강의가 있었고, 오늘과 내일 10시간에 걸쳐서 멘토링을 진행하는 과정이었는데, 1시간에 1팀씩 5시간을 내리 만나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런 마음도 있었다. "다들 빠지지 않고 열심히 멘토링 받으러 올 수 있을까?” 대학생들 대상으로 진행할 때, 약간의 소극적인 참여를 경험한 적이 있기에, 10팀 중 몇몇은 빠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랐다. 다행히도, 아무도 빠지지 않았고, 게다가 소극적이지도 않았다. 나에겐 쉴 틈을 주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의미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느끼는 것이 더 싫으므로. 오늘은 5팀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진행했는데 하면서 나도 참 좋았다. 몇몇 친구들은 내 말에 정말 집중해 주었고, 나 역시 그들의 생각에 집중했다. 멘토링이나 코칭은 분명 강의보다 더 많은 공과 시간을 쏟아야 하지만, 만족도는 훨씬 높은 것 같다. 지난 번 자기소개서 멘토링을 할 때도 이런 기분을 느꼈다. 나는 분명, 강의 보다 이런 식의 만남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앞으론 이런 기회를 더 늘려보자는게 나의 생각이다. 아, 창업 멘토링에서 내가 중점은 둔 것은 딱 2개다. 디자인씽킹 덕분에 나의 메시지도 간단해 졌다. 1. 그게 진짜 가치있는 문제인가? 누구에게 피드백 받아봤는가? 공감이 되는 문제를 정의했는가? 2.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실제로 개발해 보았는가? 이 두가지 질문이 창업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학생들도 꽤 동의했다고 느낀다. 


12월 4일
최악의 하루

아, 최악이다. 요즘 재원이가 몸이 안 좋다. 어제 밤부터 그랬는데, 체온이 38도까지 올라가고 중간 중간 계속 잠에서 깼다. 아기가 잠에서 깨면 부모도 잠을 못 잔다. 헌데 어젠 평소보다 그 정도가 심한 편이었다. 보통은 아내가 토닥토닥 하면 금방 잠들곤 하는데, 더웠는지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 거의 2시부터 2시간 정도를 잠을 이루지 못했고, 우리도 그랬다. 그 이후 평소에는 금방 잠이 잘 들던 나였는데 왠일인지 2-3시간인가 뜬 눈으로 있게 되더라.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이미 깨버린 이상 어려웠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저녁쯤이면 녹초가 된다. 하지만 같은 일이 또 발생하고야 말았다. 이번엔 11시에 잠을 들려고 하는 순간부터 그랬다. 그렇게 잠을 못 잔지 지금 거의 4시간이 지났다. 중간에 아내와 다투기도 했다. 내가 인내심이 부족하니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되고, 아내도 무척이나 예민했다. 아 최악이다. 좀만 더 참을껄. 이게 새벽에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힘들게 재우면 너무 쉽게 깨고, 그걸 반복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하더라. ㅠㅜ 어찌해야 하나. 부모가 되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12월 5일-6일
삼성 크리에이티브 멤버십

지난 1년 반 동안의 최종 결과물, 미밈 마을이 거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 SCM 수업에선 지금까지 프로토타입 수준이었던 미밈마을을 확실하게 제작하는 미션을 주었다. 그리고 ‘몰입하는 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앞부분엔 ‘개별 시나리오’를 직접 그려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3개의 장면을 그려냈고, 발표하면서 우리 마을의 이미지를 함께 상상할 수 있었다. 거의 두시간 정도 진행된 실제 제작에서 아이들은 놀라운 준비성과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몇몇은 내가 말은 뚝딱 하면 그걸 귀신처럼 만들어서 가지고 오는 재주를 가졌다. 보면서도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미래 자신의 이상적 모습'을 계속 상상해보길 원했다. 누구와 일하길 원하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길 원하는지 생각해보길 원했다. 그러한 지속적 상상 속에 진짜 자신만의 자아의 신화를 살기 위한 에너지와 자양분을 얻게 된다고 믿기에. 그리고 그 장면이 아무리해도 생생하게 그려지지 않으면, 그건 사실 자신의 꿈이 아닐 수 있다는 신호라고 볼 수도 있기에. 1년 반이란 시간이 끝나간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이 다음 주 인데, 의미있고 재미있게 마무리하고 싶다. 그리고 찾아온 일요일, 설사에 몸살에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몸이 아프면 다 필요없더라. 건강이 최고더라. 


12월 8일
할머니 소식

어젯 밤, 아내에게 우리 엄마랑 할머니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최근에 너무 무리하는 바람에 대상포진에 걸려서 한참을 고생했고, 할머닌 많이 위독 하시단다. 산소호흡기를 부착하신 상태로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식사는 못 드시는 상태고. 아이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특히 할머니 소식은 쉽게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상태가 괜찮았을 때 할머니를 본 것은 2013년 설연휴가 마지막이다. 그때만 해도, 약간 오락가락 하신 상태였으니, 그렇게라도 봐서 다행이란 마음이 든다. 그 이후로 할머닌 요양원에 계신다. 거의 3년의 기간이구나.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소식을 듣고, 미안하단 마음과 죄책감이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갔다. 한번씩 전화를 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고.. 연락하는데 게을렀던 나의 철없던 20내가 원망스러웠다. 오늘 새벽이었다. 요즘 재원이가 3시쯤 되면 잠에서 깬다. 그리곤 한참을 설친다. 1-2시간 정도를 말이다. 아내는 완전 넉아웃이 되고, 나는 4시반쯤 일어나서 포대기를 했다. 그러곤 한참을 재원이를 안고 마루를 걸었다. 자장자장 하면서 재우면서 자연스럽게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빠가 어떻게 자랐는지. 그리고 지금 얼마나 슬픈지. 할머니랑 산에 다니던 추억도, 시장에 다니던 추억도 있는데, 하면서 한참을 말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12월 9일
우리나라 교육이란?

오늘은 안양에 계신 유진쌤과 세은쌤과 만난 날이다. 캠프 관련해서 만났는데 오랜만에 즐거웠다. 특히 좋았던 것은 학교 주위의 설산 배경이다. 아침에 일찍 간 바람에 산을 조금 걸었는데, 한번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아침의 찬공기가 폐까지 그냥 들어왔다. 숨통이 저절로 확 트였다. 이렇게 공기가 맑은 곳에서 공부하는 이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알게된 학교 규칙은 나에겐 너무 슬픈 현실이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고등학생들의 경우 취침시간이 12시 반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들 그렇게 공부하고 있다는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직접 확인하니 너무 슬펐다. 군대에서도 심지어 10시에는 잠을 자도록 하는데 한참 자라나야 할 학생들이 무슨 죄인가? 이것을 단순하게 하나의 사례로 보는 것은 너무 좁은 시야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현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다. 현 교육을 잘 실천하기로 한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순환논리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바라고 원하는 세상은 아직 너무나 이상적인 것일까. 그런 고민을 했던 하루다. 아이들이 모두 9시쯤에 자고, 새벽 5시에 깨서 보고 싶은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그런 모습이 나는 왜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까. 




12월 10일
심톡이란 씨앗

오늘은 오전에, 그리고 저녁에 한번씩 미팅이 있었다. 오후엔 오롯하게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적은 몇번 있었지만, 대부분은 해야 할 일에 치여있었다. 그래서 뭐랄까 나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느낌이 없었다고 해야할까. 오늘도 할 일들을 가득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었다. 올해 4월쯤 이런 시간이 있었는데, 그리고 나선 거의 8개월 만에 맛보는 휴식같은 하루였다. 하기로 한 일도 별 무리없이 끝냈다. 오늘 하나 의미를 찾자면, 그건 바로 심톡의 재발견이다. 오전에 여름이 회사에서 미팅이 있었다. 내년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관련해서 미리 들어보자는 것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성찰과 심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담당자분이 상당히 흥미로워 하시면서 다음에도 초대해 달라고 하셨다. 저녁에도 그랬다. 원재님이랑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런 저런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 나누면서 심톡 재미있게 봤다고 하셨다. 우리 입장에선, 그저 우리가 좋아서 하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에 호의를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꼭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그저 신나는 마음으로 씨앗을 뿌리다 보면 언젠간 열매가 맺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올해 심톡을 정리하는 포스팅 한번 하고 싶다. 사진부터 취합하기로. 


12월 11일
하루치기 가족여행 

그간 바쁜 일정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하루 종일 시간을 냈다. 요즘 세상에 가장 값진 자원은 시간이 아닐까. 시간 내는 게 참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았다. 오전에 산부인과도 갔어야 했고, 이후엔 명동으로 갔다. 사실 재원이가 태어나고 나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의 절반은 이유식 먹이는데 쓰인다. 어디를 가든 수유실이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하고 말이다. 명동에 가자마자 역시 밥부터 먹였다. 밥먹이고 나니 벌써 오후 2시. 우리도 아웃백으로 밥먹으로 갔다. 그리곤 명동 좀 돌다가 광화문으로 고고. 아내가 꼭 사고 싶은 펜이 있다고 해서, 교보문고까지 걸어갔다. 다행히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다. 나도 아내도 오랜만에 이렇게 걸으니 기분이 좋아서 많이 장난치고 웃었다. 물론 이젠 예전처럼 자유롭지도 못하고, 활동적으로 노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이 좋다. 아가 덕분에 웃을 일이 많아서 좋고, 이렇게 어른이 되어 간다는 느낌도 좋다. 바쁜 일정 중 짬짬히 시간만 내면, 이렇게 평일에 얼마든지 놀 수 있는 나의 직업도 좋고 말이다. 


12월 12-13일
마지막 SCM

토요일. 오늘 삼성크리에이티브멤버십 마지막 수업이다. 지난 2년 동안 격주 토요일은 압구정에서 시간을 보냈었는데, 앞으론 어떻게 될지.. 한편으론 걱정이 되면서도 또 한편으론 기대도 된다. 특히 이번 2기랑은 정말 많은 정을 쌓았다. 지난 번 1기는 아쉽게 1학기 밖에 시간을 보내지 않았기에, 그런 마음이 덜 한데.. 2기는 오롯히 1년 반이란 시간을 보내서일까. 그 사이에 아이들과 대화도 비교적 많았고, 다들 저마다의 성장도 뚜렷히 보여서 그런지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마지막 시간, 우린 미밈마을의 첫번째 축제란 이름으로 지난 3학기를 돌아봤다. 시험 기간이라 많이 오지 않으면 어떻하나.. 란 걱정을 했지만, 1명을 제외하곤 모두 와 주었다. 완전 감동! 축제 준비를 했다. 아이들에게 완전히 일임한 작업이었음에도 누구도 놀지 않고 각자 역할에 충실해서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없어서 다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준비한 프로그램도 알찼다. 마지막에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나의 길을 갈테니, 여러분도 여러분의 길을 가라고.. 외롭거나, 힘들어도 누군가 길을 가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난 정말 그런 마음이다. 아이들이 여기서 발견한 자신만의 꿈에 정말 가까이 갔으면 한다. 그 과정이 어렵겠지만, 방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이뤄갔음 좋겠다. 그걸 위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보다 더 멋지게 살아가고, 더 많이 성장하면 된다. 그렇게 다음에 만나서 웃으면 된다. 일요일은 대구에서 올라온 부모님과 함께 누나집에 갔다. 태어난지 이제 2주 정도 된 선우보러~ ㅎㅎ 갓난아기 보니깐 울 재원이 그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 아이고 언제 키우나 싶다. 오랜만에 그렇게 가족과 함께 보낸 맘편한 주말이었다.  



10월 1일
두 번의 감동

오늘은 오전이 유난히 인상깊은 날이다. 일찍부터 미팅이 있어서 일찍 나온 아침이었다. 매일 보던 정류장이고 매일 타던 버스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느낌이 달랐다. 대구에 다녀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것인지, 어둑어둑한 날씨 때문인지, 조금씩 떨어지는 낙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버스를 타고 노래를 선곡했다. 왠지 오늘 아침에 어울릴 것 같은 곡, 황혼을 틀고 이어폰을 귀에 꼽는 순간, 살짝 전률했다. 지금의 이 공간, 이 시간, 그리고 노래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그 느낌. 그걸 포착하자 기분이 갑자기 차분해졌다. 노래를 온전히 들었다. 그저 좋았다. 미팅 장소는 종각 투썸이었다. 맨 윗층에 가면 야외 테라스가 있는데, 나는 거기 앉아서 읽던 책을 마저 읽기로 했다. 어둑한 날씨는 더욱 그 정도가 심해지고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드문 일이었다. 빗 속에서 책을 읽는 건. 빨간 파라솔이 나를 지켜주고, 그 속에서 책을 읽는 경험은 색달랐고 그 맛은 깊었다. 그 순간을 붙잡고 싶을 만큼. 

10월 2일 
아내와 함께 한 금요일

오래 전 부터 약속했던, 아내와 함께 하기로 한 시간이다. 벌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육아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아주 많아진다. 분명 가족과 (특히 재원이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 놀라운 경험. 육아가 주는 놀라운 망각의 힘이다. 분명한 건, 이날 나와 아내는 합정에 다녀왔다. 그리곤, 뭐 했더라. 흠. 그날 적지 않았더니 벌써 이런 부작용이. 원래 홍대에 나가기로 했는데, 급 피로해진 아내 때문에 합정에서 멈췄던 기억만 나는구나. 에헤라디야. 

10월 3일-4일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

토요일은 일정이 있어서 일찍 나갔다가 늦게 들어왔다. 일요일은 언제나 그렇듯, 대항해의 시대가 아닌 대청소의 시대. 먼지를 훔치고, 청소기를 돌리고, 그 와중에 재원이를 보고, 창문틀도 닦고. 이리저리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2-3시간이 훌쩍 지난다. 사실 오늘은 지난 번 외출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멀리 나가자고 마음을 먹었었다. 처음 목표는 이케아였다. 하지만 청소를 하면서 점점 빠지는 기운들. 결국 이케아를 가긴 무리일 것 같단 결론을 내렸고, 해서 간 곳은 명동이다. 아내는 유난히 명동을 좋아한다. 명동 그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나는 엄청난 중국 관광객들에게 치이는 것이 두렵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멀리 나가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막상 도착해서 본 명동은 사실상 ‘홍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아내와 홍콩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자꾸 났다. 중추절은 맞은 요우커의 위엄은 대단했다. 그렇게 사람 반, 물건 반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미국을 따라한 이벤트가 있었다.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해서 국가적인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아마 그 영향인지, 사람들이 더 많아진 듯 하다. 예전의 나 같았음 별 생각이 없었을 것 같다. 그냥 ‘아 물건 싸게 파는구나. 뭐라도 사 볼까?’ 정도의 생각만 했을 테지.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요즘 이런 저런 철학책을 뒤적거려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이 현상이 너무나 비판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소비’를 권장하는 세상이라니. 어느새 이 세상의 경제 원리는 자원을 많이 가공하고,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고, 서둘러서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야 ‘경제’가 발달하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서 오래 쓰는, 튼튼한 물건을 만들면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소비가 경제 생활의 중추라니. 그렇게 해서 경제 성장률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니. 생산과잉과 소비과잉, 그러한 모든 ‘과잉’이 미덕이 되어버린 이 사회가 이젠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적절하게 생산하고, 오래쓰는 삶은 그리 권장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왠지 슬프게 다가온다. 뭐 그렇다고 내가 당장 뭘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건 아니지만, 좀 더 다르게 생각해보고 싶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다. 그건 분명하다. 이번 쇼핑에서 느낀 교훈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10월 5일 
시간의 효율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굉장히 효율이 높은 시간대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시간대도 있다. 아마 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음악하는 사람들은 주로 밤에 작업한다고 하는데, 그들에겐 아마 그 시간이 가장 생산적인 때가 아닐까? 그리고 대부분의 일반인, 직장인들은 9시에서 6시 사이에 근무한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가장 생산적인 것을 아닐 테지만, 어쩔 수 없다. 다들 그 시간에 일하니, 나도 해야 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인식되길, 낮 시간은 일을 하는 시간이다. 특히 오전에 회의를 진행하고, 그 회의 결과를 토대로 오후에는 각자의 업무를 진행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쓰느냐고? 왜냐면 시간을 망쳤기 때문이다. 무슨 시간을? 오후 업무 시간을 말이다. 나에게 있어 시간은 매우 불규칙적이다. 강의를 하는 중간 중간 시간이 나에겐 업무 시간이다. 따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한다. 특히 자투리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잘 쓰면 보물같고, 잘못 쓰면 인생 금방 나락으로 떨어진다. 오늘 나에겐 2시부터 4시까지 자투리 시간이 있었다. 남들에겐 가장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황금 오후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왠지 어수선했던 것 같다. 난 희안하게 내가 하고 싶은 걸 충분히 하고나서 일을 하면 잘 되는 편인데, 그렇지 못하고 바로 일을 할 때는 잘 되지 않더라. 게다가 나에게 오후 시간은 정말 지루한 시간이다. 이 시간에 차라리 강의를 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일은 정말 효율이 낫다. 차라리 책이나 읽을 껄. 하는 생각을 이제는 한다. 내가 잘 쓰는 시간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기에. 성찰을 하는 이유는 나의 부족함을 알고, 다음에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오늘 망쳤으니 다음에는 더 제대로 만들자. 오전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자. 


10월 6일 
초서를 하는 이유

초서(옮겨적기)를 하게 되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첫 번째.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그 패턴을 보게 된다. 내가 줄을 그은 곳을 다시 읽으며, 하나하나 정성들여 옮겨적다 보면 ‘아, 나는 이런 문구에, 이런 의미에 반응하는구나.' 그걸 알게 된다. 두 번째. 나중에 다시 찾을 수 있다. 나중에 내가 책을 쓸 때, 결국 모든 사례들은 나의 초서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의 열매는 나의 씨앗이 된다. 마지막, 내 책을 누가 읽어줄 때 이렇게 읽었음 좋겠다. 하나하나 나에게 공감했던 것에 줄을 치고, 옮겨적는 과정은, 사실 내가 저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다. 나도 이런 성의를 들여서 내 책을 읽는 독자를 만나고 싶기에. 나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값어치 있는 것을 값어치 있게 대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만큼 가치있는 글을 쓰고 싶단 갈망도 여전하다. 

10월 7일
세계를 담은 스쿨 성과발표회

오전은 마들역 상경중에서 시작했다. 시스템 사고 강의를 마치고 허겁지겁 노들역 동양중으로 갔다. 동양중은 정말 산 위에 있는 학교다. 처음 갔을 때 엄청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수업을 마친 시간은 4시 10분. 아직 일정이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은 시흥의 ABC행복학습타운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바로 ‘세계를 담은 스쿨’ 성과발표회를 여는 날이었으므로. 갔더니 엄청 나게 준비를 하셨더라. 학생들 사진 하나하나를 다 코팅하고, 자르고.. 이렇게 디테일한 것에서 감동을 준다는 걸 세삼 느꼈다. 성과 발표회는 잘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문자를 이렇게 보냈다. 다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늘 참석함으로써 프로젝트를 완주하신 분들, 그리고 개인 일정으로 완주하지는 못 했지만 마음으로라도 함께 해준 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가 탔던 롤러코스터는 이제 내리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가능성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각자 자신의 삶에서 더 멋지게, 더 행복하게 잘 살아갑시다. (씨익) 워낙에 좁아진 세상이라, 언제든 어디서든 다음에 또 만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담에 만나면 또 웃으며 인사해요. 앞으로 여러분의 건승을 빕니다. 다시 한번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하트뿅)"

10월 8일
칠보초 짧은 회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3주. 사실상 다음 주 1주 남았다. 그때, 퍼실리테이션을 해야 겠다. 우선, 3학년 수업. 이번 시간에 우진이랑 성민이 했지만, 한명 한명과 시간을 보내볼까. 각자의 강점과 단점을 인지하는 것. 그 활동을 해보자. 수업 시간에 기억남는 것은 마지막 시간에. 4학년은 좀 더 다르다. 차별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션을 해보자. 크로스 더 라인을 해볼까. 아니면, 무엇을 할까. 고민이 된다. 세아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하고 싶다. 5-6학년은 뭐 이번에 나온 기획을 그대로 해보면 된다. 아이들이 마음먹고 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하다. 마지막 2번은 그대로 하면  되고. 아. 함께 할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짧아지니 아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해진 일정을 바꿀 수 없으니 바꿀 수 있는 걸 바꾸자. 바로 나의 마음! 언제나 나의 신조를 염두하자.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그 교훈은 언제나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10월 10일
딥스

아침에 딥스를 읽으면서 캠프를 진행하러 가는 길이다. 아침에 밥이 얼마 없길래 그냥 안 먹고 나왔다. 아내는 배고플 때 민감해진다. 사실 지난 번에 일어났는데 나 때문에 밥이 없다고 한번 혼난 이후에 좀 신경이 쓰이기도 하다. 지하철에서 통하를 하는데 아내가 왜 밥을 안 먹었냐고 한다. 나는 지난 번에 혼나서 그랬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살짝 울컥했다. 아 내 안에 있는 어린 자아는 그 말에 상처 받았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다양한 자아를 품고 있다. 성숙한 자아에서 외롭고 어린 자아까지. 각각의 자아는 자신의 역할을 맡아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딥스를 보면서 그런 관점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이것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것.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 그렇구나 상처 받았었구나. 그랬구나. 라고 말해주는 것.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8월 3일
독서토론 교사연수

오늘 용인 동막초에서 교사연수가 있었다.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셨나, 했더니 다른 선생님 소개로 연락주셨다고 한다. 게다가 와서 보니 예전에 교사연수를 진행한 천천초 선생님 한분이 또 진행하시면서 내 이야기를 하셨다고 하더라. 세상이 참 좁구나 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하고 있다. 선생님 연수는 할 때 마다 느끼지만, 그래도 즐거운 편이다. 선생님들께서 워낙 공감을 잘 해주시기도 하고, 나 역시 아이들을 대하는 입장이라서, 함께 이야기할 거리도 많다. 이번 주제는 독서토론에 대한 것이었는데 몰입도도 꽤 높았다. 첫 한 시간은 간단한 게임과 함께 ‘참여도를 높이는 법’에 대해서 토론했는데, 결과적으론 ‘적절한 시간, 공감되는 주제, 경청하는 자세’ 이런 것들이 나왔다. 뒤의 2시간 동안은 ‘스갱아저씨의 늑대’를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했는데, 어른들이 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좋은 주제였다. 하면서도 주제 선정을 잘 했단 생각을 중간중간 했다. 중간에 어떤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 굉장히 신나 하시면서 수업하는게 느껴진다고. 그래서 우리들도 재미있게 수업듣고 있다고. 감사하다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 나도 기분이 좋다. 게다가 연륜이 많으신 이런 선생님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좋은 결과를 만들고 가는 길이라, 기쁜 하루다. 


8월 4일
함석헌 선생님 

지난 주에 이어서 시흥에서 <세계를 담은 수쿨>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수업 이야긴 요즘 많이 했으니 빼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바로 함석헌 선생님 이야기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걸쳐서 읽은 책이 바로 <함석헌 평전>이다.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선생님으로 파커j파머가 있는데, 그 분이 바로 퀘이커 교도이시다.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을 비롯한 <내게 삶이 말을 걸어올 때>를 읽으며 나는 파커 파머가 가진 세계관이 너무 궁금했고, (왜냐하면 내가 가진 세계관과 가장 흡사했기 때문에) 그렇게 퀘이커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퀘이커교도가 누굴까? 바로 함석헌 선생님이다. 자연스럽게 그분의 책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에 평전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근 현대사 공부는 정말 필수구나”란 것이다. 특히나 역사를 보는 관점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왜곡되지 않은 역사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책이다. 선생님 사상의 핵심은 씨알이다. 씨알은 바로 우리들을 의미하는데, 우리를 각자가 참되게 살아가는 것.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현실에 참여해서 세상을 나아가게 하는 것. 그런 것을 말했다. 선생님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상 체계를 배우시고, 삶에 녹아들도록 했는데, 그러한 점이 나에겐 가장 크게 와 닿았다. 결국 진리는 하나라는 것. 진리가 어느 하나에 갇히게 되면 그건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는 것.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공감했다. 요즘 나의 관심사의 흐름을 보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에서 헬레니즘 철학자 (에피쿠르소와 스토아학파), 노장사상을 비롯한 스피노자 (나는 이 둘이 비슷한 흐름이라고 여긴다), 그러한 스피노자에게 영향 받은 괴테와 니체등 독일 철학자, 문학가들. 톨스토이와 간디를 비롯한 이상적 개인과 공동체를 꿈꾼 사람들. 그리고 파커 파머와 함석헌 선생님을 비롯한 퀘이커 교도들. (그들의 현실 참여성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이렇게 이어지는데, 나름대로 그들의 흐름을 잘 연결해서 나만의 생각으로 정리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이 흐름에 하나의 존재로서 올라타고 싶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싶다.


8월 5일
피곤한 일정

지난 주 휴가를 마치고 연이어 강행군 중이다. 오늘은 강원도에 가는 날. 수업을 잘 마무리 했다. 한 멘토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일주일 강의 중에 내 강의가 가장 좋았다는 극찬도 해 주셨고, 나 역시 지난 번 보다 올해 버전이 더 마음에 들어서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체력이었다. 오는 길에 안상렬 코치님과 정말 즐겁게 대화하면서 서울에 왔지만, 그 이후에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나의 배터리는 모두 나가버렸다. 최근 거의 5시간씩 밖에 자지 못했고, 또 이동이 워낙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결국, 집에 가서도 짜증을 부리고 말았다. 내가 내 몸을 챙기지 못하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그러면 주위 사람들 마저도 폐를 끼치게 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관계는 결국 신체 건강에 달려있기도 하다. 건강 챙기자. 바부팅.


8월 6일 
칠보에서의 하루

오늘 칠보초 캠프 수업이 끝나고 숙소로 왔다. 빌린 김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를 읽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마침 해가 질 무렵이라, 날씨는 시원했다. 발걸음도 가볍다. 조그만 도랑을 건너는데 물살에 꽤나 세보였다. 최근 전국적으로 내린 비 덕분인가보다. 이렇게 활발하게 흘러가는 물을 보는 것이 오랜만이라 기쁘기도 했다. “꽥 꽥” 오리 소리가 들리길래 가만히 들여다보니, 정말 오리 가족이 있다. 두 마리의 큰 오리와 열댓마리의 아기 오리들이 줄을 지어 헤엄을 친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애처로운지 한 참을 쳐다보다가 발을 옮겼다. 저녁은 이어도 회관에서 먹으려고 했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옆에 있는 소머리 국밥집에 들어갔다. 역시 전라도 음식은 담백하고 맛나다. 한 그릇 뚝딱 먹고, 반찬도 다 해치웠다. 밖을 나오니 이미 해는 저물고, 어두웠다. 시골길을 걸어다니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구나. 최근엔 이럴 일이 거의 없었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숙소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책을 보면서 몇 문장을 옮기고자 노트북을 켰다. 습관처럼 노래를 틀었다.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는데, 귓가에 “찌르르 찌르르”란 소리가 들렸다. 노래를 껐다. 그러자 들리는 수많은 오케스트라 소리들. 내 주위의 곤충들이 하나같이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눈을 잠시 감았다. 입가엔 미소가 고인다. 오늘 이 시간들이 나에겐 낯설지만, 그래서 어쩌면 나를 채워주는 것일지도. 그래. 나는 문득 다짐했다. 자기 전, 다시 밖으로 나가기로. 별을 보고 오기로 말이다. 


8월 7일
칠보 캠프

지난 이틀 간 캠프가 끝났다. 이번 캠프에서 새롭게 시도했던 것이 '팅커링 게임 만들기'이다. 사실상 디자인씽킹 중, '프로토타이핑'에 방점을 찍은 것인데, 아이들에게 제한적인 도구들만 주고, 게임을 만들어보게 했다. 나는 그걸 아래에 나오는 브리콜라주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게임과 놀이를 사고 소비하는 데 익숙한 아이들이, 스스로 게임을 창조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에서 진행했는데, 역시 우리 아이들은 이미 훌륭한 크리에이터였다. 처음에는 각자 하나씩 만들어보고, 나중에는 팀별 게임까지 만들었다. 우리가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는 길은 단순하다. 사지 않고, 직접 만들고 표현하면 된다. 브리콜라주의 마법은, 그 거친 창조성과 다양성에 있다. 그리고 거기에 인간성의 회복이 달려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브리콜라주란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적 사고>에 나오는 말로 원주민들의 ‘손재주’를 뜻한다. 브리콜뢰르, 곧 장인들의 작업장에는 별 연관도 없는 재료들과 기구가 널려 있다. 하지만, 일거리가 있을 때마다 장인들은 이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들에게 제멋대로 배열된 재료와 도구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다스의 손이 모든 걸 ‘화폐화’해 버린다면, 브리콜라주는 그 반대다. 최소한의 화폐로 다양한 삶을 연출해 낸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p.121





8월 8일-9일
하루 종일 콕

집에 붙어있기 신공을 발휘한 주말이었다. 사실상 재원이와의 사투?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번 주말 내내 집에 있었다. 정말 아빠가 되면서 나 자신에 투자하는 시간들(독서, 공부, 관계, 교육 등등)은 많이 줄었다. 토요일만 해도 책 한번 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마음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틈만 나면 책을 보려고 했으나, 무리하진 않았다. 지난 2주 동안 나도 캠프 때문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집안을 못 챙긴 것 때문에, 가급적 재원이랑 놀았으니 말이다. 이제 재원이는 꽤 잘 뒤집는다. 그리고 잘 기어다닌다. 뒤로. ㅎㅎㅎㅎ 뒤로 갔다가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돌다가 아주 웃긴다. 그리곤 우리를 보면서 헤헤헤 웃는다. 우리도 헤헤헤. 그렇게 함께 헤헤헤 거린다. 토요일 저녁에는 한강에 나갔다. 군포에서 이모와 이모부가 올라오셔서, 함께 한강에서 한잔 했다. 한강이 옆에 있어서 참 좋구나. 란 생각도 다시 했다. 일요일엔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청소하고, 쉬고, 영화도 보고 그랬던 것 같은데. 재원이랑 함께 있으면 뭐 그냥 시간 따윈 사라지는 것 같다. 아마 재원이가 다 먹어 치워버리나보다. 



3월 23일
요즘 카페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 일상을 살고,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체감하고 있는지라. 손에 익어가고 있다. 21일과 22일 일기를 마무리했다. 이제 몸은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조금만 더 무리하면 다시 심해지는게 감기라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 오전에 자유학교 10학년 수업은 잘 마쳤다. 즐거웠다. 무엇보다 수업 의도가 심플했고, 그 의도에 맞춰서 진행되었던게 즐거웠다. 복잡한 의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단순하게 가자.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라, 내가 가진 장점을 서로를 통해 인식하게 하고, 내가 앞으로 가졌으면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서로를 통해 일깨워주는 작업이었다. 이것은 그리 단순한 작업만은 아니다. 하지만 다들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인지 잘 해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소규모 수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친밀함과 안정감이 마음에 들었고. 어쨌든 요약하자면 즐거웠던 시간! 수업을 마치고 병원에서 감기약을 타서 지금은 스벅이다. 나의 사무실 ㅎㅎ 5시 미팅 전까지 보고서 작성하자. 저녁에는 심톡. 이번에는 처음으로 지현쌤이 호스트로 진행을 해주셨는데,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름의 삶과 관점을 나누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매달 이런 식으로 새로운 주제와 호스트를 발굴하고 싶단 생각도 했고. 하하. 2015년 심톡은 계속 잘 진핼될 듯 하다!

3월 24일
아직 몸살이 다 낫지 않았다. 하지만 토요일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상태. 아침에는 재원이 병원을 가야했다. 목욕도 시키고, 아침도 먹고, 포대기에 싸서 근처 소아과로 갔다. 갔더니 너무너무 잘 크고 있다고 하신다. 오히려 체중과다를 걱정해야 할 정도. 모자라서 문제지 넘치는 건 뭐 그리 문젤까. 기분이 좋았다. 주사 두방을 허벅지에 맞고 으앙 울던 재원이는 어느새 안고 집에 오는 길에 잠이 들었다. 집에 와서 밥먹고 오후에는 검단초를 잠깐 방문했다. 토론 교사 계약서 작성 때문에. 작년에 인연이 되었는데 올해도 1년에 걸쳐서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좀 멀긴 하지만 그래도 믿고 맡겨주심에 감사하다. 왔다 갔다 하고 나니 벌써 5시. 집에 와선 재원이를 안고 좀 잤다. 나도 피곤하고 아내도 피곤하고. 푹 자고 일어나서 저녁먹고, 집안일 좀 하고, 잠도 재우고 하니 벌써 12시. 하루가 이렇게 갈 수도 있구나. 그래도 아내가 주말에 이어 계속 힘들어했는데 도와줘서 다행이다. 낼은 위플래쉬 보고 다시 충전해야지!

3월 25일
위플래쉬를 보고. 아내님의 무한한 아량과 배려 덕분에 지난 번 <킹스맨>에 이어서 또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평일 아침에 조조로 혼자 가서 보는 영화감상이란, 직장인들은 꿈도 못 꿀 호사다. 나도 직장 다닐 때는 그랬고. 위플래쉬에 대한 워낙 높은 관심들과 극찬의 리뷰를 미리 봐서인지, 음악적 두뇌가 그리 발달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남들처럼 기립박수가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그런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렬한 비트와 메시지는 분명 내 머릿 속에 하나의 자취를 남겼는데, 이는 위플래쉬가 ‘가볍게 지나갈 만한 영화’도 아님을 말한다. 내가 ‘듣고 느낀’ 위플래쉬를 3가지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1) 재즈의 매력! 재즈를 더 알아보고 싶다!는 느낌을 남겼고 2) 탁월함과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겼으며 3) 두 주인공의 미친 광기를 내 삶에서도 표현하고 싶다!는 갈망도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플레쳐 교수의 교수법과 인성은 전혀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가 지향하고자 하는 탁월함의 수준은 동의했기에 꽤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주인공이 막판 10분쯤 보이는 미친 인생 연주는 두고두고 남을 것 같은 느낌. 

오늘 광화문에서 있었던 일. 하나 더. 묘목을 나눠주는 행사였던 것 같다. 사람들 몇 백명이 쭈욱 길을 서 있었다. 마지막에 새롭게 줄을 서려는 사람이 그 앞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거 뭐 나눠주는 거에요? 그랬더니 앞 사람이 이랬다. 글쎄요. 저도 몰라요 막 줄 서서. 지나가는 길에 스쳐 들은 대화였지만 정말 흥미진진한 대화였다. 우리나라가 이 대화에 담겨 있었다고 본다. 무슨 이야기냐?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인데, 일단 줄이 길면 그 줄에 선다. 그리고 물어본다. 뭐 주는지?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특징과 유사한데, 일단 줄이 긴 과에 들어간다. 예를 들면 의대나 법대. 그리고 물어본다. 어떤 전공인지? 이는 우리나라 취준생들의 특징과 유사한데, 일단 줄이 긴 회사에 들어간다. 예를 들면 삼성. 그리고 물어본다. 무슨 일 하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는 ‘다른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자신의 선택이 된다. 그것이 너무나 무의식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스스로 그러한 선택을 내리는지도 잘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생각한다. 이 줄이 내가 스스로 판단해서 선 줄이 맞는가? 이 줄 끝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거 맞는가? 만약 중간에라도 그 줄이 아니라면 나는 이 줄을 포기할 수 있는가? 이러한 생각을 했던 짧은 일상이었다. 

3월 26일
오늘은 정읍에 가는 날이다. 칠보초 가는 길은 그나마 내가 일주일 중에서 가장 ‘나만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올라오는 길은 피곤해서 잘 활용하지 못하는 편인데, 내려가는 길은 확실히 오전이라 잘 쓴다. 오늘은 이번 주 와우 수업축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 칠보초 수업은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주제로 진행했는데, ‘특별함’에 대해서 다루기 위해서 <미션 임파서블>을 준비했다. 내가 워낙 즐겨쓰는 프로그램이라 아이들 반응은 좋았는데, 앞으로는 계속 걱정이다. 허긴 어쩌면 새로운 실험을 하기에는 최고의 자리이기도 하다. 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실험소이기도 하고. 다양한 협동학습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가서 실험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일구어나갔으면 한다.  

3월 27일
오늘 오전은 자유학교에서 수업이 있었다. 팀을 꾸리고, 배움에 대해서 간략하게 의견을 주고 받았던 시간. 던지는 건 많이 던졌고, 앞으론 내가 어떻게 하냐에 달렸다. 지금까지 분위기는 좋다. 별명도 좋고. 사실 하나인학교에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년에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다. 오후에는 소셜크리에이티브랩에 왔다. 시스템 사고도 참 매력있는 듯. 복잡계 공부도 꾸준하게 하자. 흐름을 끊기지 말자. 

3월 28일
오늘은 와우수업이 있는 날. 하루 종일 수업에 몰두한 날이다. 자세한 내용은 수업 리뷰를 통해서 전달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패스!

3월 29일
오랜만의 일요일. 오늘은 정말 부끄럽지(?) 않을 만큼 가정에 충실했다. 재원이 보고, 청소하고, 바닥도 닦고, 설거지도 하고, 재원이 응가 치우고, 재우고, 쓰레기도 비우고, 창문틀도 닦고 등등. 육아와 집안일을 평소에 해내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다들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대충 청소가 다 마무리 되니까 4시 정도 되더라. 집안일은 끝이 없다. 5시부턴 내가 유일하게 보는 티비 프로그램, 케이팝스타. 원래 무한도전을 빼먹지 않고 보는 무도빠였지만, 물론 지금도 무도빠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시간 관계상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케이팝스타는 시간대가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챙겨보는데 참 재미있다. 심사의원들 멘트 중에서도 귀 기울릴 만한 것도 많고. 물론 무시해야 하는 말들도 많지만. 그렇게 잠깐 보고, 저녁 먹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잘 시간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는 이리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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