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도입 글에 이어서, 이제는 각각 책에 대한 한줄 리뷰다.
우선 1월과 2월에 읽은 책들이다. 바로 스타트


2015년 1월 
1. 어떻게 살 것인가_유시민 

+ 나는 유시민이란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가 한참 유명해지고, 활동 할 당시의 나는 정치에 전혀 무관심이었으니까. 하다못해 100분 토론에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꽤 좋아하는 사람이다. 올해 초, 유시민이란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자 해서 산 책이 <나의 한국현대사>였고, 빌려서 본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란 책에 대해선 초서를 한 적이 있다.링크입니다.어떻게 살 것인가, 핵심은 이것이었다.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자.”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이다. 

2. 블리스, 내 삶의 신화를 찾아서_조지프 캠벨

+ 내가 진행하는 독창적인 수업 중에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가 있다. 사실 작년에 매달 심톡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워크샵을 디자인하고, 또 진행해보는 경험을 했었는데 그 과정에 만들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기존에 있던 것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 이 <자신찾>에 애정이 생겼다. 이 책은 이 워크샵을 하루짜리 워크샵으로 확장시키고자 해서 들여다 본 책이다. 조지프 캠벨이 새롭게 만든 책은 아니고, 그가 했던 말을 잘 편집해서 ‘주제’에 맞게 배열한 책이다. 하지만 꽤 재미있게 편집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세계관과 잘 맞아 떨어져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 올해 1월의 책!

3.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_이희석

+ 올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 바로, 와우 스토리 연구소의 10기 연구원이 되는 것이다. <와우랩>이란 이희석 선생님을 필두로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진 커뮤니티다. '마음을 나눈 사람들의 자기실현 학습 커뮤니티’ 굳이 비교하자면, 구본형 변화연구소의 연구원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희석 선생님도 구본형 선생님의 제자이기도 했고, 느낌도 비슷하다. 원래 나는 구본형 선생님께 한번 배워보고픈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 작고하시면서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와우랩과 인연이 닿아서 올해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 독서축제란 이름으로 숙제를 하는 것이 있는데, 이 책이 첫 책이다. 나의 합류는 다소 늦게 이루어져서 이번 책은 리뷰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분실하는 바람에 꼼꼼히 리뷰도 못 하지만, 읽는 동안은 ‘독서법’에 대한 좋은 개론서라고 느껴졌다. 

4.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_짐 로허

+ 앞서 설명한 <와우랩> 2번째 책이다. 이 책의 초서와 리뷰는 여기. 링크입니다. 일반적인 자기계발 서적과 비교했을 때,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특히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다'라는 점에서 아주 공감했다. 충분한 ‘감정적, 신체적, 정신적, 영적’ 에너지가 있어야, 짦은 시간에도 몰입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점. 공감한다. 마지막 장에서 언급된 목표, 현실, 행동도 유익했다. 목표는 나의 내적 가치와 자기 이익을 뛰어넘는 것. 현실 인식은 진실과 대면하고, 자기 기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행동은 지속적인 의식의 활용으로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 이 책에선 리츄얼의 중요성을 많이 언급하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 제대로 된 리츄얼이 없단 생각도 한다. 아직 일상을 가지런하게 만들지 못했다. 다시 한번 재독하고 싶다. 

5. 유태인의 공부_정현모

+ 2015년 1월은 아내의 출산이 임박한 때이자, 특히 1월 22일엔 우리 재원이가 태어난 날이다. 그래서 1월 중순 이후에는 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사실 우린 자연출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1달 먼저 태어나는 사람에 결국 종합병원에서 낳아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교대역 <메디플라워>라는 곳에서 상담도 받고, 교육도 듣고 있었다. 자연출산으론 가장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갔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출산을 앞둔 분들에게 내가 많이 추천하는 곳이기도 하고. 여기서 대기하면서 읽었던 책이 <유태인의 공부>다. 마음에 드는 몇 문장이 있었다. 하지만 구입해서, 아주 몰입해서 볼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란 정도의 책이었다. 


2015년 2월
6. 희망의 인문학_얼 쇼리스

+ 2월도 갑작스런 1월 출산의 여파 때문에 많은 책은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은 정말 의미있게 읽었다. 바로 <희망의 인문학>이다. 너무 좋게 읽어서 리뷰를 남긴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구나. 그때 쯤 정신없어서 그런가보다. 핵심은 인문학이 ‘(물질적, 정신적)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얼 쇼리스는 여기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어찌보면 이 책은 오랜 나의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비 앞에 있는 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결국 인문학이란 회의하고, 탐구하여 기존의 ‘나의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정의지만,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인문학이란 나의 공간을 뛰어넘어 ‘타자의 공간’에 합류하는 것이다.라고. 얼 쇼리스는 이를 정치적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얼 쇼리스도 동의하는 건, 정치적 삶을 살기 위해선 가장 먼저 ‘성찰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찰적 사고란, 나의 생각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능력이다. 이것이 없다면, 우린 나를 이해할 수도, 서로를 이해할 수도, 사회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린 괴태의 말마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경멸한다. 즉, 타자의 공간에 합류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성찰’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이 연결고리를 배웠다. 고마운 책이다. 올해 2월의 책!

7. 인생수업_엘리자베스 퀴슬러 로스

+ 와우랩 3번째 책.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있었다. 한때 열풍이 불었던 책이고, 나는 이상하게도 베스트셀러를 잘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책도 대충 봤던 거 같긴 한데 제대로 기억이 나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할 때는 잘 안 보다가, 시간이 지나서 뒤늦게 읽고 좋다고 선전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사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당시 내 관심사를 굳이 바꿔서까지 읽고 싶지는 않은 것일 뿐. 그랬던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 였고, 이번 <인생수업>도 그런 책이다. 읽고 나니, 참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리뷰는 과거에 적었다. 링크입니다.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은 앞서 <어떻게 살 것인가>와 비슷하다.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그리고 배우라.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다.” 

8.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_진 리들로프

+ 2월에 한참 육아에 관심이 많을 때 봤던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바로 ‘안고 다녀라’라는 것. 이 책에 나오는 예콰이족의 경우, 아이를 항상 안고 다닌다. 그렇게 언제나 아이를 안고 일을 하고 일상생활을 한다. 그럴 경우 자라서도 우리가 걱정하는 응석받이가 되기보단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지키는 육아법이라고 말하는 책이 이 책이다. 물론, 소수 민족의 육아법을 예로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사회와 너무나 다른 맥락에 있기 때문에 이것만이 육아의 진리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분명 우리 사회는 주 양육자와 아이의 밀착을 너무나 관과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100% 밀착이 너무나 힘든 건 알지만, 이런 책들로 인해 적어도 20-30%에서 40-50%까지라도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건 의미있는 책이 아닐까? 

9. 올바른 생계수단에 대하여_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의 엄청난 책이다. 인도의 성자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높게 치는 사람이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오쇼 라즈니쉬를 비롯한 많은 성자들은 가짜다. 스피노자가 말했듯,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뿐만 아니라 드물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별의 교단 해체를 선언한, 이 시대에 보기 드물게 권력을 뒤고 하고, ‘진리는 네 안에 있다’고 말한 사람이다. 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그래서 존경하는 사람이다. 이 분이 썼던 글을 옮겨 적은게 있는데 아직 리뷰를 쓰지 않았다. 조만간 올려야 겠다. 하나의 문답만 올려보도록 하겠다. 크리슈나무르티의 핵심적 사상을 말하고 있다고 느껴지기에. 

Q. 어쨌거나 문제는 제가 어떻게 보통의 평균적인 평범한 사람은 안 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A. 내가 한마디 더 하자면 이렇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어떻게”라고 말하지 말아라. 어떻게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와서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보호막이나 어떤 체계가 누군가를 끌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너는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이고, 네 스스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네 고유한 행위와 고유의 사고력을, 그리하여 네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라고 묻는다는 것은 네가 중고품 인간으로 되었다는 뜻이거든. 그것은 시야의 전체적인 감각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본질적인 정직성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남아 있는 길을, 그리하여 지금의 이 모습을 넘어서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거지. 절대로, 절대로 “어떻게”라고 묻지 말아요. 

물론 이것은 심리적인 영역에서 하는 말이다. 자동차를 조립한다거나 컴퓨터를 만드는 문제등에서는 반드시 “어떻게” 라고 물어봐야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누군가에게서라도 배워야만 해. 그러나 심리적으로 자유롭게 되는 문제에서, 그 원천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내면적인 행위들을 알아채고,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라보고, 단 하나의 생각이라도 그 본성을, 그 근원을 관찰하지 못 하고 지나쳐버리는 것이 없어야만 한단 말이다. 관찰하고 바라보고 하는 것을 말하는 거다. 인간은 책으로부터라거나 또는 어떤 심리학자로부터라거나, 혹은 복잡하고 교활하며 박식한 학자나 교수로부터 배우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배우는 점이 훨씬 더 많아요. 

그런데 이게 정말로 어렵단다, 얘야. 이게 너를 아주 갈기갈기 찢어놓을지도 몰라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지, 소위 유혹이라고 불리는 것들 말이다. 생물학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하는 따위들 말이지. 그리고도 네 자신은 사회의 잔인성으로 하여 생매장이 될 지도 몰라요. 당연히 네 스스로 홀로 우뚝 서야 하지만, 그것은 강제나 의도나 또는 욕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네 주위와 내면의 거짓들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에요. 감정이나 희망이나 하는 것들까지도 말이다. 그렇게 네가 거짓들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알아채기 시작할 것이고, 지성이 생겨나겠지. 네가 네 스스로에게 빛이 되어야만 하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이지.

1983년 5월 30일
브록우드 파크

크리슈나무르티가 자기 자신에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도입. 
메르스가 한창이다. 다들 걱정이다.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로 걱정이 없는 편이다. 걸리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지만 만약 걸리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각종 찌라시들과 기사들은 우리를 걱정과 염려에 중독되게 만든다. 이런 시기일 수록 우린 ‘염려’의 중독에서 깨어나야 한다. 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강의가 있어서 옮겨적어 보았다. 강의는 강신주가 했지만 편집자는 나다. 강의 내용을 충실히 구현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내 위주로 편집하게 되었다. 소제목도 그냥 지어봤다. 사실 그게 더 재미있는 작업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언어를 다시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나는 즐겁다. 다들 재미있게 보시길. 



제목 : 우리는 이미지 시대에 살고 있다.
강사 : 강신주

1.
우리 사회는 지금 철학자를 부른다.

요즘 바쁘다. 사실 철학자가 세상에 나와선 안 된다. 철학책을 본다는 것은 고민한다는 뜻이기에. 다시 말해 살기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되려 10년 전에는 사람들이 날 찾지 않았다. 생계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니 나를 찾는 것이다. 1997년 IMF를 경험하면서 우린 바닥을 알았다. 그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느낌 때문에 우린 불안한 것이다. 이 고민은 개인의 문제이면서 사실 큰 구조적 문제이다. 다만 철학자들의 주어는 ‘나’이다. '나는 어디에 직면해있는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인문학자들이다. 그 관점에서 살펴보자.

2.
다람쥐 쳇바퀴의 삶을 권하다.
 
우리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제도에 산다. 우리의 표와 재벌의 표 그리고 국회의원의 표가 같아지는 순간은 선거날 단 한번이다. 나머지 날엔 실질적으로 그들은 우리를 지배한다. 월급도 고민해봐야 한다. 그들이 왜 월급을 줄까? 쓰라고.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우리가 돈을 안 쓰는 것이다. 돈을 다 쓰면 어떻게 되는가? 다시 일해야 한다. 다람쥐의 삶과 다를바 없다. 그런 쳇바퀴 중에 좋은 쳇바퀴가 대기업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 좋은 쳇바퀴에 들어가라고 한다. 

3.
우리는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일까? 그것은 소비의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온 돈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본가들은 우리를 소비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보드리야르는 책 <소비의 사회>에서 말한다. 소비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붙어있는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우린 옷이 있다. 하지만 또 구입한다. 소비에 중독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소비를 통해 잠시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각종 영화, 드라마, 광고를 비롯한 미디어들은 소비를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거란 착각을 선사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심리학은 대부분 소비자 심리학으로 발달한다. 소비자를 연구해서 사게하기 위해. 요지는 이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필요를 구입하지 않는다. 

4. 
욕망의 집합체, 자본주의의 교육장 백화점.

자본주의의 첫번째 이미지는 욕망이다. 백화점은 자본주의의 교육장이다. 만약, 백화점에 부자들만 오게 하면 나중에 부자들도, 가난한 사람들도 오지 않게 된다. 서로를 통해 부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빈자들은 욕망을 느낀다. 돈을 벌겠다는 욕망, 나도 저곳에 속하겠다는 욕망.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광고는 시청률과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낚기 위해서 방송을 만든다. 실은 방송이 아니라 광고가 본질이다.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실, 광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자본, 광고와 결부되지 않을 때 진짜 가치있는 것이 출현한다. 

5. 
욕망과 염려를 파는 사회

경기가 좋을 때 자본주의는 ‘욕망’의 이미지를 만들고, 안 좋을 때 자본주의는 두 번째 이미지를 만든다. 염려의 이미지. 그래서 우린 연금도 들고 보험도 든다. 우린 아이들에게도 염려한다. "너 이렇게 살면 나중에 이렇게 이렇게 된다." 병원은 염려를 가장 잘 파는 곳이다. 진단을 하고, 아무 문제 없다고 하면서 돈을 받아간다. 우리의 염려로 돈을 버는 것이다. 우린 생수를 사 먹는다. 물은 누가 오염시켰나? 수 많은 공장들이. 그 공장이 다시 물을 팔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는 모든 것을 판다. 특히 지금의 우리 사회는 욕망보단 염려를 판다.

6. 
종교, 자본주의 그리고 인문학

인문학과 종교는 다르다. 종교는 먼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가까운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문학자들은 현재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내 아이와 남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인문학자들은 종교와 자본을 비판한다. 현재를 못 살도록 하기 때문에. 상상해보자. 만약, 당신의 아이가 1년 뒤에 죽는다고. 그럼 학원 보낼 것인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린 서로의 미래만 걱정한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관계는 사라진다. 미래에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꽃을 볼 수 있을까? 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염려의 이미지는 치명적이다. 나와 주위 사람들을 제촉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한다.  

7.
미래에 대한 염려를 줄이는 법

발터 벤야민은 말한다. '자본주의는 세속화된 종교다’라고. 왜냐면 자본은 미래를 팔기 때문이다. 우린 전문가들에 의해 걱정이 증폭된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괜찮을까? 아프지 않을까?" 하면서 그 사이에 병이 든다. 이 사회가 우리의 스트레스를 조장한다. 어떻게 해야 미래에 대한 염려를 줄일 수 있을까? 일단,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밖에 나가서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야 한다. 다만, 염려를 가중시키는 친구는 만나면 안 된다. 순간에 머물게 도와주는 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렇게 순간을 살기 위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8.
부처, 있는 그대로 사는 자
 
내일을 걱정하거나 10년 뒤를 걱정하고 있을 때 우린 현재를 살지 못한다. 당신도 아주 즐거웠던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있는 그대로(진여 여여 타타타)' 사는 사람을 부처라고 한다. 나의 세계에 집중하면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자유로운 사람들의 특징은 현재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면 사랑이 끝날 것을 걱정해서 사랑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인가? 그냥 살다가 꽃이 지듯이 죽으면 된다. 

9
돈은 좋은 관계를 위해 쓰는 것이다.
 
우리가 염려하는 동안 무엇이 사라질까? 관계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에 집중하는 순간, 자본주의는 힘을 잃는다. 우리는 보통 염려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험을 들고, 돈을 모은다. 만약, 그 돈으로 아이과 좋은 관계를 쌓는데 쓴다면 어땠을까? 나중에 아파서 누웠을 때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여러분 옆에 있을 것이다. 우린 내 미래가 두렵기 때문에 내 미래에 집중하느라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현재에 머물러야 관계가 생길 수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똑바로 서야 한다. 

10.
아이를 미래가 아닌, 현재에 머물게 하라. 

어떤 어머니가 서울역에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꼴난다.” 그 순간부터 아이는 자기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 아이는 과연 앞으로 엄마 걱정을 할까?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공포를 주입하는 순간, 염려는 되물림된다. 그 아이는 대학을 가든 어디를 가든 불안해한다. 아이를 잘 가르치는 엄마는 아이를 ‘현재’에 머물게 한다. 제대로 가르치는 엄마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학원 가지 말고, 나를 봐’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해야 한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친구나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다. 현재를 잡게 하라. 

11.
미래를 두려워하는 만큼 삶은 낭비된다.
 
영원한 현재. 여러분은 얼마나 현재를 잡고 있는가? 어제가 또렷히 기억나는가? 기억나지 않는 다면, 당신은 헛산 것이다. 현재가 차곡차곡 쌓이면 눈감을 때 웃을 수 있다. 미래는 공포가 아니다. 절대로. 한국처럼 공포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도 없다. 행복하고 싶으면 현재에 머물고, 불행하고 싶으면 미래에 머물라.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내 앞에 있는 풍경과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문화 예술이 위축되어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들 미래에 가있기 때문이다. 카르페디엠. 현재를 잡아라. 자기계발은 미래가 두려운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통해서 진짜 행복한 사람은 그 저자들이다. 나머지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인문학적 통찰들은 그곳에서 현재에 머물게 돕는다. 우린 싸워야 한다. 싸우지 못하면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사회가 아무리 미래를 요구해도, 우린 반드시 현재를 붙잡아야 한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만큼 삶은 낭비된다. 


강의 리뷰.

1. 
강의를 듣고 느낀 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다소 뜬금없지만 ‘경청’이다. 나는 지금까지 강신주 작가의 강의를 다른 곳에서도 많이 들었다. 인문학 강의가 워낙 붐이 일다보니 유투브에 ‘강신주’만 입력해도 엄청나게 다양한 강의가 뜬다. 그 많은 강의 중에서 아침마당을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경청의 힘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2013년 봄 쯤에 한번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모임이었는데, 대부분 40-50대 아주머니들이었다.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리고 그 경험은 내 인생의 손꼽히는 행복했던 강의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때 나는 느꼈다. "아, 강의라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이 강의를 듣고 참여하는 분들이 만드는 거구나." 라는 것을. 지식도 경험도 일천한 나였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에 하나 하나 귀를 기울여주고, 뭔가를 받아적기까지 하시고, 또 중간 중간 ‘아’ 하는 감탄사까지. 정말 완벽한 경청이었고, 나도 그 분위기에 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120%를 발휘할 수 있었다. 중간에 이런 생각까지 했다. “지금 이 말을 누가 하는거지?” 

좋은 강의는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아침마당의 특강을 본다. 거기는 정말 ‘숙련된 조교(아닌 아주머니)’들이 계신다. 무슨 말만 해도 ‘아~’ ‘오~’ ‘꺄르르’ 별 말 하지 않아도 엄청난 리액션이 쏟아진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당에서 좋은 강의를 많이 건진다. 강사들도 공중파 방송이기에 아무래도 준비도 많이 할 것이고, 시간도 딱 1시간이다. 그리 길지 않아서 좋다. 사족이 길었지만, 이것이 내가 이번 방송을 본 이유다. 

2. 
내용에서의 느낀 점은 이렇다. 결론은 ‘현재를 살아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끌어가는 과정이 아주 탁월했다. 유려하게 말과 글을 만들어내는 분이란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 논리도 심플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산다. 경기가 좋을 때는 욕망을, 경기가 나쁠 때는 염려를 파는 시대. 욕망도 염려도 결국 시선이 현재가 아닌 미래로 가게 하는 것이다. 미래로 가는 순간, 일상의 중요성, 관계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를 보자. 진리는 언제나 쉽다. 하지만 실천하긴 어렵다. 이번에 메르스 때문에 우리 사회는 또 걱정과 염려가 확장되고 있다. 물론 나도 걱정한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 얼마나 많은 구멍이 있는지도 안다. 그것과 관련해서 종사하는 분들은 정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그러한 ‘일어난 일’과 상관없이 증폭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해석’들이다. 이미 많은 어머니들이 걱정을 시작했다. 나도 이제 130일 된 아가를 키우는 아빠다. 걱정은 된다. 그리고 적당한 걱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치면 언제나 우리를 해친다. 한 독물학자가 말했다. “독이나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양이다.” 

현실적으로 대처할 것은 대처하되, 그 더 이상의 확대해석은 금물이다. 이러한 염려에 대응해서 무언가는 또 나올 것이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듯한 각종 상품과 서비스들. 이것만 구매하면 당신의 염려는 사라질 수 있다는 착각들. 거기에 속아선 안 될 것이다. 우린 스스로의 힘을 키워야 한다. 외부의 어떤 것도 우리를 궁극적으로 구원해줄 수는 없다. 배에 힘을 탁 줘야 한다. 만약 내일 내가 메르스에 걸린다면, 그건 걸린 것이다. 내가 최선의 대처를 했음에도 걸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그건 그때 생각해도 된다. 그러니 시선을 돌리자. 미래에 대한 걱정, 염려와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순간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엘리자베스 퀴슬러 로스 <인생수업>의 이 말을 기억하자. 

"죽음을 앞군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가장 놀라운 배움 중 하나는 삶은 불치병을 진단 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기의 머리를 만져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삶을 진정으로 만지고 맛보고 있나요? 평범한 것 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고 느끼나요? 







핵심
-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그리고 배우라.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다. 

저자조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그녀는 192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나서 정체성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자원 봉사 활동을 통해 그녀는 인생을 바칠 소명을 발견한다.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뜬 것이다. 정신 의학을 공부한 그녀는 이후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맡는데,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의료계에 불러일으킨다. ‘죽음’ 분야의 전문가가 된 그녀는 역사상 가장 많은 학술상을 받은 여성으로 기록된다. 그녀는 <인생 수업>을 마지막으로 2004년 8월 24일 눈을 감았다.

데이비드 케슬러
-  그는 미국 홋피스 운동의 선구자로 엘리자베스와 생애 마지막을 함께 보내며 책을 집필했다. 현재는 가정 및 병동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옮겨적기
0. 서문_인생 수업에는 행복하라는 숙제뿐.
- 우리는 배움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예외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것이다. 수업이 하루 24시간인 학교에. 살아 있는 한 그 수업은 계속된다. 그리고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수업은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이다. (..) 우리가 배워야 할 과목들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다. 나아가 이 수업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 진정 누구인가 하는 깨달음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그것이 이 수업이 완성이다. (..)  P.9-10

우리가 배워야할 과목은 사랑과 행복, 혹은 평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삶에서 좋은 것만 취하려고 한다. 나 역시 20대 중반에 삶의 절반만을 취하려고 했다. 내 안의 두려움과 마주하지 못했다. 그저 모든 것으로 자유로워 지고 평화로워지고자 했지, 그것을 끌어안으려 하지 않았다. 이 수업의 완성은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두려움, 상실, 용서, 받아들임 이러한 키워드를 충분히 경험하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타인과 나누면서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치유하고자 애쓰는 것. 그것이 삶이란 수업이 주려는 교훈이 아닐까. 삶의 모든 영역을 경험하는 것 말이다. 

- 이 기간 동안엔 행복하라는 것 외에는 다른 숙제가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시도한 적이 언제였는가? 마지막으로 멀리 떠나 본 적은 언제였는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껴안아 본 적이 언제였는가?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그리고 배우라.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다.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P.14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시도한 적이 언제일까? 나는 여행도 좋아하고, 독서도 좋아하지만, 요즘 들어서 나에게 가장 재미있는 시간은 바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 ‘사람들을 초대해서’ + ‘함께 대화하고 나누는 것’이다. 최근,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라는 이름의 워크샵을 만들었는데, 그걸 만드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자선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사이에 있는 어떤 활동이 나에겐 재미있다. 현재로썬 이러한 활동을 멈추지 않으면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1.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 죽음의 문턱 가까이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여성 역시 한 가지 배움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배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배움입니다. (…) 배움을 얻는 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더 행복하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P.19

최근에 사마천에 대한 글을 보다가, ‘위대한 죽음은 위대한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란 문장을 봤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죽음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그에게 삶 역시 중요하다. 죽음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삶도 아무렇지 않다. 그렇게 죽음과 삶이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삶을 잘 인식하지 못할까? 그건 마치 물고기가 물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가 아닐까. 그렇기에 삶을 잘 살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죽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매일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은 평생에 한번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보다 삶을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반댓말이 아니다. 삶과 죽음은 동의어다. 

- 우리는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죽음이라는 종착점에서 바라본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발견해 나갈 것입니다. (..) 또한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자신이 이미 갖고 있음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P.20

나에겐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한 모든 조건이 이미 갖추어져 있을까?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참 근거없는 신념이다. 얼마 전에 아기가 태어났고, 앞으로 나갈 돈은 많지만 나의 수입은 그렇지 않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방향도 아직 안정적이지 않고, 두려움도 많다. 다시 말해, 지금 시점에서 앞으로의 모습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나에게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도 잘 믿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면 꽤 놀랍다. 어려움이 처하거나, 큰 힘이 들 때 삶은 나를 도와주었고, 그랬기에 지금의 나도 있다. ‘아, 나에게 이미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선 아마 앞으로 꽤 많은 경험과 배움이 쌓여야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저 실험 중일 뿐이다. 나는 연구원일 따름이고. 

- 평생에 걸쳐 진정한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 왔기 때문에 나는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나는 그것을 ‘냄새 맡는다’고까지 표현합니다. (…)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진정성의 냄새를 맡는 예민한 후각을 갖게 됩니다. P.25 
+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진짜 좋은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힘이 생기는 것. 게다가 스스로 글을 쓰다보면 더욱 잘 느끼지 않을까. 존재는 존재에 반응할 것이기에.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누구와 관계할 것인가?' 라는 질문보다 먼저 ‘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진정한 자신으로 존재해야 그러한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간디에서 히틀러까지, 모든 인물이 될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히틀러가 될 수 있는 면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 자신에게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P.26

과거에 ‘그림자 그리고’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이런 말이 나왔다. "당신과 함께할 수 없는 것이 당신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빌 스피노자. 크게 공감하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운 면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리석어 지는 것’을 인정하기 싫다. 계속 똑똑해 보이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누군가 어떤 의견을 내도 그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려고 한다. 그에게 보지 못한 관점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실은 ‘똑똑해 보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고집도 쎄다. 누군가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은 내가 그보다 ‘어리석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에 겉으론 동의하는 척 하지만 실은 잘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똑똑해지고 싶다’는 페르소나를 갖고 있으면서 정말 어리석게 살아왔다. 실은 어리석음 그 자체인 것이다. 진짜 지혜로움은 그런 것이 아닐테니 말이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걸 조금은 알아채고 있어서 다행이다. 잊지 말자. 나는 ‘똑똑함의 존재’가 아니다. 나는 ‘똑똑함과 어리석음의 가능성’이다. 어리석은 놈아. 

- 가끔씩은 억누르고 있던 충동에 몸을 맡기고, 이상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무엇을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신이 누구인지, 적어도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2009년에 위의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의 대답은 ‘위대한 코치’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맥락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코치’ + ‘학습 경험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역할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상태이다. 만약, 하나 더 추가한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요즘 떠오르는 것은 ‘인류학’이라는 주제이다. ‘인류학자’가 되어서 인디언을 비롯한 내가 관심 있는 인류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코치 + 학습 경험 디자이너 + 인류학자. 이 세 가지 직업을 합치면 어떤 것이 나올까? 나도 무지 궁금하다. 

2. 사랑 없이 여행하지 말라.
- 사랑, 정의 내리기조차 매우 힘든 이것은 삶에서 유일하게 진실하고 오래 남는 경험입니다. 그것은 두려움의 반대말이고, 관계의 본질이며, 행복의 근원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는 가장 깊은 부분이고, 우리 안에 살면서 우리를 연결해 주는 에너지입니다. 사랑은 지식, 학벌, 권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행위 너머에 있습니다. P.38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인가?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아니다. 그럼 나머지 절반은 무엇인가? 사랑이란 본질을 가리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지만, 내가 보는 세상은 사랑과 두려움으로 움직이고 있다. 아니 실은 대부분 두려움으로 움직이고 있다. 두려움은 무엇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 바로 권력과 돈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 있게 하였고, 이미 권력도 돈과 동일어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미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은 세상을 더욱 두려움으로 가득찬 곳으로 만들려고 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조종한다. 굳이 <1984> 처럼 빅브라더가 통제하지 않아도, <멋진 신세계>처럼 스스로 통제를 잃어버리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러한 권력과 돈의 매트릭스를 깨기 위해선 무엇이 요구되는가?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어떤 조건이나 행위와 상관없는 유일한 것이다. 삶에서 더 많은 사랑을 낳고, 발견하는 것. 그것만이 이 세상의 신화를 부수고,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네오와 트리니티의 사랑이 이미 그랬듯 말이다. 

- 사랑하는 사람과 다툴 때면 당신은 상대방이 잘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화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당신은 스스로 마음을 닫고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에 당황한 것입니다. (…) 그가 또는 그녀가 당신의 마음에 들면 어떻고, 또 안 들면 어떻습니까? 어머니, 친구, 형제들이 변하지 않는 다고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건가요?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 변화를 보게 될 것이고, 갇혀 있던 우주의 모든 힘이 해방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P.42-43

참 맞는 말이면서, 참 어려운 말이다. 상대의 있는 그대로, 있지 않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결혼을 하고, 살면서 수 없이 이러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다툴 때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조건과 옳음’이 있는지 보게 된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그런걸 주장하면 할 수록 아내와 멀어졌고, 그런 ‘나만의 옳음’을 내려놓고 상대를 인정하려 할 수록 아내와 가까워 졌다. 답은 간단하고 쉽다. 하지만 앞으로의 나는 쉽게 장담할 순 없을 것이다. 언제나 진짜 문제는 ‘답을 아는 것’과는 상관없기에. ‘답을 실천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부디 지혜와 용기가 나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랄뿐. 

- 당신은 자신의 영혼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사랑할 때는 스스로를 미소 짓게 만드는 일들로 삶을 채우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배운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일 뿐입니다. P.49 

이 글을 읽으며, 내가 하는 한 가지 반성은 바로. ‘식사’다. 나는 나를 위해 식사를 하는 것에 인색하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포함이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대충 먹는다. 혼자 있을 때는 편의점에서 하는 식사가 대부분일 정도로. 물론, 약속이 많고 집에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기에 ‘이정도는 괜찮아’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좀 더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단 의지가 생긴다. 나에게 좀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다. 미안하네 그려. 

- 삶에는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그냥 옆에 있어 줄 수는 있습니다. 결국 오랜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그것이 가장 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요? P.54
-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삶에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56

내 아내가 출산을 할 때,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함께 옆에서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어떨 때는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침묵은 수 많은 말을 내포하고 있듯, 존재와 존재는 서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주고 받기에. 

3.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 생을 다 살고 나서 지난 일들을 되돌아볼 때, 내가 그 순간들에 한쪽 다리만 걸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을 바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느끼길 바라요. 

나는 내 생애 모든 순간에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나? 온전히 나 자신을 바치고 있는가? 한쪽 다리만 걸치고 ‘다 던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예 들어가지도 않고 있는가? 죽을 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어떤 결정이 결정적 결정이었다고 말하고 싶은가? 모든 순간들에 어떻게 대했다고 말하고 싶은가? 

- 전 생애 동안 우리는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배우자나 연인, 친구처럼 우리가 선택해서 맺은 관계도 있고, 부모 형제처럼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관계도 있습니다. 그 관계들을 통해 우리는 많은 배움을 얻습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두려워하고,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깨닫는 기회를 갖습니다. P.63

이 글에선 친구나 배우자 우리가 선택해서 맺은 관계라고 나와있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예를 들어, 내가 대학을 들어가서 친해진 친구들은 오티 때 단지 ‘같은 방’에 있었을 뿐이다. 2001년 2월 어느 날 우린 우연히 같은 방에 있었을 뿐, 그 친구들을 내가 고르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것을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나의 베프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다. 어쩌면 관계야 말로 우리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 그들을 만나고 난 이후 관계의 질은 나에게 달려있지만, 만나기 까지의 과정은 전혀 예측불가이므로. 그러한 예측 불가능성과 개선 가능성이 함께 포함되어 있기에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렵고, 가장 힘들고, 가장 복잡한 것이 관계가 아닐까. 

- 사랑할 누군가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속담에도 있듯이, 당신의 배가 물에 뜨지 못한다면 아무도 당신과 함께 물을 건너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을 찾고 있다면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배울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스승이 나타난다는 것을. 당신이 관계를 맺을 시기가 되면 ‘특별한 누군가’가 나타날 것입니다. P.70

이 글의 핵심은 ‘스스로 준비하라, 그러면 나타날 것이니’이다. 앞선 글에서 관계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말했다면, 이 글에선 관계의 ‘필연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는 믿는다. 내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꼭 만날 필요가 있었기에 만난 것이라고. 그렇다면 모든 관계가 다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건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50%는 나의 의해서 바뀔 수 있는 관계, 50%는 만나야 했기에 만난 관계라고. 바뀔 수 있는 관계는 ‘현재의 나’에 달려 있다. 내가 얼마나 인생을 잘 살고 있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린 것이다. 그게 맞춰서 스승이나 도반이 나타날 수도, 경쟁자나 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바꿀 수 없는 관계는 ‘과거의 나’에 달려 있다. 과거 내가 어떤 식으로 인생을 살았고, 서로 풀어야 할 것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서 달려있다고 믿는다. 뭐 정답이 있는지 없는진 모르지만, 나에게 이런 사고 방식은 ‘받아들임과 바꾸는 용기’ 둘 다를 연습하게 하는 유용한 도구다. 

- 우리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진다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 하지만 이것은 실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상대방을 ‘더 좋게’ 바꾸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바꿀 수 없으며, 바꾸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진정한 그들로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P.73

이 부분이 참 어려운데.. 나는 내 생각을 일단 말하고 싶다. 정말 그게 진실일까? 우린 상대를 바꿀 수 없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상대방을 ‘더 좋게’ 만들겠다란 생각은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다. 무엇이 더 나은 것이고, 좋은 것일까? 그런 건 없다. 계몽주의자가 저지르는 주요 실수가 바로 ‘절대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므로. 나도 안다. 각자의 삶은 모두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하지만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다. 삶에서 방향성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 방향성이 아예 없다면 우린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 하지만 방향성이 있다면 어떨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방향성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일까? 물론 우선 인정은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머무르는 것은 너무 소극적이다. 한 단계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요청’이다. 진정한 그들로 살 수 있도록 한번 더 용기를 부추기는 것. 그들의 현재에 대해서 말 거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게 말 거는 것. 그들은 분명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것.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더 과감하게 ‘변화와 행동’을 요청하는 것. 시작은 분명 나부터 겠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진정한 나’로 살기를 요청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그냥 내 생각을 나눠본다. 사랑 그리고 요청이란, 그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기에. 

4. 상실과 이별의 수업
-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P.82

우리가 가진 ‘소유물’은 다 사라진다. 내가 가진 집, 책, 자료, 지식도 모두 '나의 것’에 불과하다. 내가 죽으면 사라지는 것들. 하지만 나의 ‘본질’은 내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이 본질일까? 대표적으론 ‘경험’이다. 누구도 나에게 ‘경험’은 가져갈 수 없다. 그리고 어떤 경험을 공유한 타인 안에는 분명 내가 있다. 경험적 차원에서 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더 많은, 더 깊은 경험을 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것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싶다. 

- 많은 사람들이 삶이 곧 상실이고 상실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생 상실과 싸우고 그것을 거부합니다. 상실 없이 삶은 변화할 수 없고, 우리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P.85

누군가 그랬다. 성공하면 한 가지를 배우고, 실패하면 모든 것을 배운다고. 

- 그들은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중 누구도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냈다고 해서, 아예 그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 상실로 인해 고통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결국 더 강해지고, 더 온전한 존재가 됩니다.P.89 

요즘,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인지 아이와 관련된 문구라 인상 깊었다. 우리 아이도 한 달 먼저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부모를 만났다. 아이가 너무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나는 비록 1주일 떨어져 있었지만, 그 잠깐의 경험으로도 얼마나 그 부모들의 마음이 아릴지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만약, 그들에게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어떨까? 그러면 그렇게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다. 그들은 돌아가고 싶을까? 예상컨데, 아마 그들은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부모라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을. 그 격렬한 사랑을 한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삶에서 필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랑의 경험이며, 그것이 인생을 ‘인생답게’ 만들어 준다. 더 열렬하게 사랑하자. 아내와 아이를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 상실의 감정이 복잡하든 단순하든, 우리는 자신만의 시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치유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지금쯤 상처가 치유되었어야만 해” 라거나 “치유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슬픔의 방식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삶의 어느 한 지점에 묶여 있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한 우리는 치유될 것입니다. P.99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각자 충분히 어리석고, 충분히 지혜롭다. 각자의 상실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함께 있어주는 것. 그리고 그들이 나의 조언을 받아들일 시점이 되었을 때 진심으로 몇 마디 던져주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가 아닐까. 

5.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 우리의 진정한 힘은 사회적 지위나 넉넉한 은행 잔고, 번듯한 직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강인한, 그리고 고귀한 내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사람들이 당신의 사유지를 가로질러 지나다닌다면,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그 땅이 당신의 것임을 알리는 푯말을 세워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뇨’ 또는 ‘그건 나한테 상처를 주는 말이야’ 라는 등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경계선을 그어야 합니다. P.108

강인한 내면에서 진정한 힘이 나온다. 그리고 강인한 내면은 내가 경계선을 그을 때 지켜질 수 있다. 이 힘을 되찾는 것은 나의 책임이다. 지난 번에 본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에서 언급된 ‘의식’이 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주기적으로 나의 의식을 반복하고, 우선 순위를 정리하면서 나의 내면을 지켜야 할 것이다. 

- 더 많은 돈을 소유하거나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외부 환경을 더 잘 통제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것은 진정한 힘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일시적인 영향력일 뿐입니다. P.111

이는 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도 다뤄보아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기보다 열배 부자면 그를 헐뜯고, 백배 부자면 그를 두려워하고, 천배 부자면 그를 위해 일을 하고, 만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 이 말은 지금 현대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사회에서 돈은 곧 권력이자 종교가 되었다. 우린 정말 이 ‘돈과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이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생존은 돈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렇기에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돈과 권력의 속성’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의 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현실을 부정하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 사회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내가 정치나 사회적 경제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고. 쨌든, 이 책을 조금 비판한다면 그 영역(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언급이 없이 개인 마인드의 중요성만 언급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 삶이 충분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 진정한 힘은 자신이 누구인가,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깨닫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더 많이 축적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완전히 잊은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모든 사람이 정해진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진정한 힘이 생겨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P.117

삶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강하다. 예전, <나는 꼼수다>의 유행어가 있다. 쫄지마 씨바.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가장 강한 사람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이미 충분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구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쫄 필요가 없다. 당시 김어준, 정봉주, 주진우는 최고의 권력과 상대했었고, 단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내었다. 그 사람들이 힘을 가졌던 이유도 단순하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기에. 이는 맑스가 주장한 공산당 선언의 논리와도 일치한다.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힘을 갖고, 그 힘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의 뿌리와 현재 위치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부단한 자기인식과 죽음을 통한 삶에의 자각, 그것이 우리가 가진 본래의 힘을 회복하는 방법일 것이다. 

6.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 변화는 지금까지의 익숙한 상황에 작별을 고하고, 새롭고 낯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그 상황의 낯설음이나 익숙함이 아니라, 그 중간에 존재하는 시간입니다. 유방암을 두 차례나 이겨 낸 작가 로니 카예는 “삶에서 하나의 문이 닫히면 언제나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그 사이의 복도는 매우 좁고 길다.”라고 말했습니다. P.136

오, 내가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말이 여기에 나오다니, 놀랐다. 나는 그 문장의 출처도 잘 몰랐고,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삶에서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까지였으나,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그러나 그 사이의 복도는 매우 좁고 길다.” 문제의 본질은 그 복도를 버텨낼 수 있느냐이다. 불확실함과 불안 속에서 신념을 갖고 버텨내는 사람은 결국 새로운 문과 마주하지만,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좌절하고 만다. 나 역시 어느 정도 경험했다. 전공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걸어가는 지금이 아마 복도 중간이 아닐까. 그렇게 큰 복도 안에서도 수 많은 작은 복도를 만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어떤 문은 내 예상과 달리 빨리 닫히기도 하고, 어떤 문은 기대도 하지 않았음에도 열려서 나를 반기기도 한다. 이 모든 상황에서 내가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은 바로 ‘복도의 끝에는 반드시 문이 있다’는 진실. 바로 그것이다. 

- 그는 현재의 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완벽한 모델입니다. (..)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만듭니다. 아무도 “잘 지내요?”나 “별 일 없어?”와 같은 그의 질문에 적당히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싶게끔 만들며, 그의 질문에는 진심을 담아 답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P.142

그렇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아니다. 누가 그 질문을 하느냐가 핵심이다. 나도 잭처럼 울림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만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꿈을 추구한다면, 당신의 삶을 틀림없이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을 앞둔 사람이 얻는 배움입니다. 죽음은 우리를 최악의 두려움과 맞서게 합니다. P.158

대담한 행동은 두려움이 사라질 때 가능하다. 두려움은 어떻게 사라질까? 두려움과 자주 마주하고, 그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가장 두려워할까? 그건 바로 ‘자신의 그림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죽음'이 최고의 두려움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 논리에서 ‘자살’은 맞지 않으므로. 죽음이 최고로 두렵다면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하는걸까.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 ‘진짜 자신의 모습_그림자’과 마주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초등학생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빌어먹을. 다시 말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그림자’다. 그림자를 들춰내는 것은 어찌보면 죽음보다 더 두렵다. 그렇담 어떻게 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가? 자신의 그림자와 직면하는 것이다. 나의 어두운 면을 밝혀내는 것이다. 끊임없이. 그렇게 자기 자신과 통합을 이루어낸 사람처럼 두려움 없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치 부끄럼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그게 아닐까?

- 진정한 자유는 가장 두려운 일들을 대담하게 행할 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붙들리지 않고 크게 한 걸을 내딛는 순간, 당신의 삶을 잃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게 됩니다. (…) 두려움을 걷어 버리거나 이겨 내야 역설적이게도 삶의 가장 안전한 장소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P.164

삶의 가장 안전한 장소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곳이다. 그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내 삶의 여정이며, 모험이다. 

7. 영원과 하루 
- 화를 내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며 알맞은 시간과 장소에서 적절하게 표현할 때는 매우 쓸모가 있습니다. (..) 화를 내면 주위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고, 그럼으로써 주위 환경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삶에 알맞은 경계선을 설정해 줍니다. P.169

아, 나도 화를 좀 내야 하는데 말이지. 생각해 보면 잘 표현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닌가? ㅋㅋ

-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갓난아기와 어린아이들은 감정을 솔직히 느낀 후에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 사람은 죽음의 시기에 이르면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정직해집니다. (…)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더 솔직해지는 법과 화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P.180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 우리 아들 재원이에게 많이 느낀다. 그 녀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분명히 표현한다. 단 한번도 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울 수 있을가? 주위 사람들 눈치가 보이는데? 하지만 우리 아가는 그냥 시원하게 운다. 그 시간이 새벽이든, 낮이든, 밤이든 신경쓰지 않는다. 솔직하고, 감정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 순수함을 닮고 싶다. 

- 놀이는 삶을 가장 충만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생산적이고 성공적이어야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시달립니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일하는 법은 알지만 존재하는 법인 잘 모릅니다. P.183

아무도 ‘일을 더 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이 부분에선 참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일 하는게 왜 이리 싫을까 ㅋ 일하는 것보다 배우고 대화하고, 노는 걸 더 좋아하는게 철이 덜 들었나.. 생각했는데. 요즘엔 이러한 생활이 참 마음에 든다. 다만 가장으로서 책임은 더 져야겠지만. (돈은 더 벌어야 한다.) 그것만 잘 되면 참 만족스런 삶이다.  

8.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 더 많은 인내심을 갖는 첫번째 단계는 상황을 고치거나 바꾸고 싶은 욕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그렇게 보이지 않고 또 볼 수 없을지라도 어떤 일들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알아차리거나 보지 못하더라도, 모든 일이 좋은 쪽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신뢰하는 것, 인내심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신뢰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P.208

네 운명을 사랑하라. 아모르파티!!

- 받아들이는 것과 포기하는 것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불치병 진단을 받고 나서 양손을 치켜올리며 “희망이 없어. 난 죽게 될 거야!”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포기입니다. 받아들임은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치료법을 선택해 시도해도 효과가 없을 경우, 우리의 삶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상황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은 포기이며, 그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은 받아들임입니다. P.217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몫으로 돌리는 것.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질문하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가? 하늘의 몫이 저절로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뭔가 해보기도 전에 기도부터 시작한다면 그건 내 잠재력을 미리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확률에 몸을 맡기지 말고, 나의 성실성에 몸을 맡기자. 그리고 상황으로 몸을 돌리자. 직시하고, 대안을 세우고, 실천하자. 

- 삶을 되돌아본다면, 가장 중요한 순간과 멋진 기회들이 반드시 당신이 세워 놓은 계획과 노력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이 그때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의 일치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받아들임이 일하는 방식이며, 삶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P.224

삶의 신비를 내가 살아서 풀어낼 수 있을까? 참으로 신비하다. 이 우연과 필연의 매커니즘을 꼭 밝혀내고 싶다. 

9. 용서와 치유의 시간
- 용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짓밟고 가도록 내버려 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용서하려면 우리에게 상처를 준 상대방의 당시 상태가 최선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잘못 이상의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을 용서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그 사람을 용서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P.230

기억하자. 그 사람의 행동을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용서하라는 것. 내 삶을 위해서. 

- 우리 자신을 용서하는데 중요한 열쇠는 우리가 그때 더 좋은 방법을 알았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P.237

나의 어리석은 행동에 몸서리 쳐지고, 자다가 이불에 하이킥하고 싶을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 말을 기억한다면 좀 더 회복되지 않을까. 수 많은 행동을 저지를 것이고, 앞으로도 저지르겠지만 스스로를 용서하고 평화를 되찾기를.. 

-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덜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보다 더 자발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내주고, 다른 사람을 도우며, 더 친절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배려합니다. 불행을 이기적인 행동을 낳는 반면에, 행복은 주는 능력을 더 키워 줍니다. P.241

행복은 ‘욕심’이 아닌, ‘양심’에 따라 살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욕심은 나를 더 배려하라고 말하지만, 양심은 자연스래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욕심과 양심은 반대일까? 아니다. 나는 그 두 단어는 ‘범위’의 차이일 뿐이라 생각한다. 사실 욕심의 기준은 ‘나’이고 양심의 기준은 ‘우리’이다. 우리가 오래 살기 위해선 양심이 활발하게 활동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느 종보다 사회적인 동물이며, 우리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나 역시 잘 살아갈 수 있기에. 그렇게 진화한 것이 아닐까. 꼭 이런 식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서로를 향할 때 가장 아름답더라. 

10.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 처음부터 끝까지 삶은 각자에게 주어지는 시험과 도전으로 이루어진 학교입니다.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을 때, 또한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쳤을 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 우리는 우리가 배우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배운 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번 삶에서는 깨닫지 못하게 될 배움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 배움입니다. P.257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고, 무엇을 가르치려 왔을까? 그리고 무엇을 깨닫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까? 갑자기 생각해 보건데, 내가 깨닫게 될 것들보다 깨닫지 못하게 될 것들이 참 재미있다. 나는 왜 그것들을 깨닫지 못하게 될까? 이 대답도 물론 의미는 없겠지. 이것에 대답한다는 것은 깨닫고 있단 뜻이기에. 생각해보면 우린 누구나 배움과 깨달음의 한계를 갖고 산다. 누구에게 나의 관점은 정말 의미없을 수 있겠구나. 전적으로 옳음이란 없겠구나. 그런 생각도 든다. 

- 죽음을 앞군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가장 놀라운 배움 중 하나는 삶은 불치병을 진단 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기의 머리를 만져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 삶을 진정으로 만지고 맛보고 있나요? 평범한 것 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고 느끼나요? P.260

전체 리뷰
오늘이 아이가 태어난지 한달이 되는 날이다. 처음 일주일은 애처러움. 그 이후 2주일은, 너무 좋았지만 조금은 막연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집에서 보낸 최근 2주일은 정말 ‘가족’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했던 것 같다. 위의 글에서 나오지만,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지 모른다. 물론 그 시간을 효율성으로만 보면 성과는 ‘제로’에 가깝다. 아이를 안고 있는다고 해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지식이 쌓이는 것도 아니기에. 하지만 인생을 그렇게만 본다면 얼마나 슬플까. 이번 설 연휴에도 아이를 엄청나게 안고 있었다. 아이를 내 품에 쏙 두고 그저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의 입도 보고, 코도 보고, 냄새도 맡고. 그렇게 한참을 있다 보면 내 안의 여러 감정이 지나간다. 그리고 나도 모를 충만함이 온 몸을 감싸더라. 참 묘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이를 안고 아내랑 함께 미소짓는 시간이 많았다. 참 좋았다. 물론 밤에 1시간 단위로 깨는 고충은 말도 못하지만.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저 그 순간 충만함과 연결감을 경험하는 것. 그 감정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기 위해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멈춰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나와 타인의 어리석음은 용서하고, 내 안의 두려움은 직면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순간의 모험처럼 하루 하루를 살아가길. 그리고 이 여정이 끝날 때 ‘아, 내 인생은 참 반짝 거렸다’라고 말하길. 나의 반짝거림이 내 아내와 아이에게 전달되어 그들도 반짝거릴 수 있게 되길. 그 파장이 널리 전달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충만함과 연결됨을 경험하길. 그리 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후회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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