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을 보며 좋아하는 재원이
백일이 지난 재원이는 이제 꽤 잘 웃는다. 얼마 전, 5월 31일이었나 일요일 저녁이었다. 아내의 체력은 이미 방전되었고, 아이는 막 쌩쌩한, 그런 상황이었다. 나도 뭐 아주 힘이 넘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재원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상황. 맘마도 먹었겠다, 재원인 아마 놀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도 오전과 오후 내내 놀아주었기 때문에 좀 쉬고 싶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 아이를 침대로 데리고가서 모빌을 보여주기로 했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이패드로 놀기로 했고. 이것이 거절할 수 없는 나의 제안이다. 재원이 침대 위에는 3마리의 동물 인형이 노래와 함께 돌아가는 모빌이 있다. 처음엔 (아마 시각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을 시점) 이 모빌에 관심이 없던 재원이가 요즘엔 부쩍 자주 쳐다본다. 유난히 좋아하는 모습이다. 모빌을 틀자, 나의 예상대로 재원이는 흥미가 동했다. 발을 팔딱팔딱,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좋아한다. 그걸 보는 나도 즐겁다. 

재원이는 한참을 놀았다. 재원이의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우리 아이여서가 아니라) 웃는 상이라는 점이다. 아주 미남은 아니지만 인상이 푸근하고 좋다. 마음 넓은 아저씨 의 미소를 가끔 보는 듯 하다. 어릴 적부터 엄마랑 아빠랑 자주 웃어서 그런지, 언제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이빨이 하나도 없는 채로 우리를 향해서 씩 웃으면 얼마나 거북이 같고 귀여운지. 아, 거북이는 좀 그렇다.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꼬부기랑 비슷한 얼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암튼 한참을 놀던 재원이는 갑자기 옆에 있는 나를 본다. 재원이가 날 쳐다보는 걸 느끼는 순간, 나는 웃으며 재원이 볼에 뽀뽀를 했다. 쪽쪽쪽. 그러면 다시 재원이는 고개를 위로 돌려서 한참을 논다. 처음에 난 그게 그저 우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난 그때서야 재원이의 마음을 조금 헤아릴 수 있었다. 

모빌을 보다가 나를 보고, 서로 뽀뽀를 하고, 다시 모빌을 보는 패턴은 계속 되었다. 처음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나도, 그 패턴이 반복되자 느낄 수 있었다. '아, 재원이가 지금 안정감을 느끼고 있구나.' 라는 것. 재원이는 그 어느 때 보다 신나하고 있었고, 어느 때 보다 오래 놀았다. 난 그렇게 즐겁게 노는 재원이를 본 적이 없었다. 아내는 종종 본다곤 하지만, 나에겐 처음이었다. 발을 하늘 끝까지 차는 것처럼 팔짝 팔짝 뛰는 모습이 마치 첫눈 오는 날 뛰어다니는 강아지 같았다. 너무너무 귀여워서 보던 아이패드를 끄고 재원이를 한참 구경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다. 이 조그만 녀석이 주는 감동은 그렇게나 컸다. 

꼬부기를 점점 닮아가는 재원이

퍼펙트 베이비 2부 <감정조절능력>을 다시 보다.
아직 분리 불안을 분명하게 느낄 시기는 아니지만, 아이는 본능적으로 안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찾는 건 엄마다. 엄마 없이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저 소리를 빽 지른다. 서러우리만큼 울어댄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놀랄만큼.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광경을 본 것 같아서 다큐를 찾아봤다. 언젠가 포스팅하려고 모아 둔 자료가 있었다. <퍼펙트 베이비> 2부에서 나오는 내용이 이와 유사했다. 애착 형성이 안 된 아기가 보여주는 무덤덤함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그 방송에선 몇 가지 실험을 한다. 엄마가 없는 상태에서 아기가 어떻게 노는지 관찰하는 것. 어른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엄마 없이 잘 노는 아이에게 효도한다고, 벌써부터 의젓하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엄마가 사라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를 찾는 아이에겐 차갑다. 엄마 고생시킨다는 이야기가 저절로 나온다. 

엄마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서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실험에서 3가지 사례가 나왔다. 안정애착과 저항애착, 그리고 회피애착. 안정애착은 엄마를 만나는 순간 스트레스가 내려가는 유형, 반응을 잘 해줄 때 가장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이다. 저항애착은 그 반대다. 되려 엄마를 만났을 때 스트레스가 올라가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일관되지 않은 육아 때문이다. 어떤 때는 잘 해주고, 어떤 때는 무시하거나 그럴 때, 아이는 엄마가 항상 잘 해줄 거란 확신이 없다. 그래서 되려 스트레스가 올라간다. 더 무서운 것은 회피애착이었다. 그 아이들은 엄마 없이 잘 노는 것 처럼 보이나, 실은 혼자 있을 때, 엄마와 있을 때, 언제나 같은 상황이었다. 자기 감정을 위로 받아본 적이 없는 그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언제나 최고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여기서 사례에 나온 아이의 경우, 어릴 때 부터 아기 모델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 결과 엄마와 함께 보내야 할 시간에 혼자 놓여진 경험이 많았고, 이런 애착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결국 아기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아기는 불안정애착을 형성하게 된다. 슬픈 일이었다. 




육아 일기를 쓰다보면, 계속 애착 문제로 마무리 되곤 한다. 이 포스팅 시리즈를 몇 번 보는 사람들은 아마 지겨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이 애착, 그리고 정서적 안정감은 단순한 정도가 아니다. 나는 이 애착을 삶의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본다. 애착은 정서적 문제와 결부된다. 그리고 초기에 형성된 애착은 이후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삶은 관계다. 그러니 애착이 중요할 수 밖에. 게다가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적 사랑을 느끼는 상태에서 뇌는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뇌의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인 전두엽. 그 부분은 나중에 ‘주의력’과 관련한 기능에 영향을 주는데 이 주의력이 ‘마시멜로 이야기’에 나오는 그 힘이다.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상황을 다시 볼 수 있는 힘. 그 힘은 나중에 자기인식 능력, 그리고 공감 능력과도 연결되며, 이러한 힘이 조화롭게 길러진 사람이 창의적인 인재가 된다. 그저 나만 잘 났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그런 창의성이 아닌, 진짜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 공자가 말하는 군자 말이다. 그러니 이 힘은 중요할 수 밖에. 그 힘이 초반에 길러지고 안 지고는 어떤 특별한 ‘영재 교육’이 아니라 ‘부모의 꾸준한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 이 세상에 어떤 것이 이보다 더 중요할까.  







백일 동안 3배가 늘어난 몸무게
지난 5월 1일은 재원이 백일이었다. 내가 참으로 무지하다. 돌을 챙기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기 백일을 챙기는지는 몰랐다. 내가 잘 몰랐다는 사실은 비밀이다. 아내도 내가 이런 줄 몰랐을 것이다. 쪽 팔려서 밝히지 않았으니까. 나는 보통 애인을 사귀거나 할 때나 백일을 챙기는 걸로만 알았다. 이렇게 무지몽매한 나를 데리고 사는 아내가 조금 안타깝지만, 쨌든 백일은 잘 치뤘다. 내가 백일 때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면 똑같은 모습이라 다들 놀란다. 유전자 깡패라는 얘기도 들었다. ㅋㅋ 지금 재원이는 꽤 몸이 커졌다. 태어날 때 2.3kg이었던 몸무게가 단 100일 사이에 3배가 들었다. 지금은 7.5kg정도가 되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도 생명과 인체에 대한 경외심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가까이서 한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는 어마어마하게 놀라고 감탄하고 있다. 그렇게 재원이는 '먹고자고 먹고자고' 하는 사이에 팔과 다리가 쑥쑥 자랐다. 이젠 안을 때도 꽤나 무거워서 허리를 조심해야 한다. 잘못 들다가는 삐긋하기 쉽상이다. 아기가 자라는 것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엄마의 변화다. 난 정말 신기했다. 아기가 출산하는 순간부터 엄마의 몸은 육아에 맞춰서 재탄생한다는 것이 말이다. 출산 전 커다랗게 부풀어 있던 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가슴에선 아가에게 공급할 모유가 나오며, 가냘픈 아가씨는 사라지고 아이를 보듬은 강인한 엄마가 출현한다는 것. 그렇게 몸의 시스템이 180도 바뀌는 것이 신기해서 눈으로 보면서도 놀랐고, 아내와도 함께 몇번이나 새삼 감탄했었다. 생명의 신비는 지식으로는 경험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재원이 최초의 놀이는 거울 놀이
요즘 재원이가 빠진 놀이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거울 보기’다. 물론 아직 스스로 기어가서 거울을 보진 못 한다. 방법은 이렇다. 아내나 내가 아가를 안고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활짝 웃는다. 그럼 재원이는 거울을 보다가 우리를 보는 건지, 자기 자신을 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캬르르 웃는다. 아기의 웃음은 정말 글이나 그림,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암튼 엄청나게 귀엽게 웃는다. 종종 좀 웃다가 부끄럽다는 듯 아내의 가슴팍으로 얼굴을 돌리기도 한다. 그것도 무지 귀엽다. 다시 거울을 보여주면 또 활짝 웃고 고개를 돌리기를 반복한다. 나는 이걸 재원이가 처음으로 논다고 믿는다. 놀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놀이에서의 핵심은 바로 ‘반응’일 것이다. 상대가 숨었을 때 나는 찾는다. 상대가 도망가면 나는 잡는다. 놀이에는 언제나 상대와 내가 벌이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그 상호작용을 아가와 함께 배우는 듯 하다. 우리가 웃으면 재원이는 따라서 웃고, 그렇게 웃는 자신을 보면서 또 웃는다. 비슷한 시기에 부쩍 발달한 것이 ‘옹알이’다. 요즘은 뭔가 말을 하고 싶다는 듯 ‘옹알옹알’ 거린다. 아기를 자주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옹알이를 그냥 우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서 관찰하는 부모들은 아이가 우는 것인지, 옹알이 하는 것인지 확실히 구분한다. 분명한 것은 옹알이 할 때는 혀나 입을 요리조리 바꿔간다는 것이다. 그걸 보는게 참 재미있다. 함께 맞장구를 쳐주면서 놀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이러다가 ‘엄마!’라고 분명히 외치면 얼마나 신기할까. 존재에 대한 반응이 존재를 완성시킨다는 그런 느낌이다. 

마더 쇼크 그리고 파더 쇼크
EBS 다큐는 꽤 유익하면서 재미있다. 예능이나 드라마에 비해,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사람이 잘 없다는 것 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나름 다큐 매니아로서 몇 가지 다큐는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 중 하나의 시리즈가 ‘마더 쇼크’ 그리고 ‘파더 쇼크’다. 원래 마더 쇼크가 먼저 나왔는데, 그 인기에 힘입어서 다음 시리즈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 파더쇼크에서 한 개념이 나에게 꽤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안정애착>과 <불안정애착>이다. 자신의 자녀와 갓난 아기 때부터 놀아주고, 안아 준 아빠는 <안정애착>이 형성된다. 아이는 한 공간에 아빠와 단 둘이 있어도 불안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쁜 일 때문에 잘 놀아주지도, 안아주지도 못한 아빠는 <불안정애착>이 형성된다. 아기들은 그러한 아빠와 있을 때 정서적으로 불안해하고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렇게 아빠와의 부정적 애착관계는 청소년 비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되어 진다. 이것이 비단 청소년 시기의 문제 뿐이겠는가? 인생 전반에 걸쳐서 태어나서 3년, 길게는 7년 간의 경험은 그 만큼 결정적이다. 나 역시 아내에게 육아를 거의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가급적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아이와 많이 놀어주려고, 안아주려고 한다. 육아는 아웃소싱 되어선 안 되기에. 




아이들은 그들이 배울 준비가 됐을 때 배운다.
혁신이론의 창시자로 유명한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책이 있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정말 보석같은 책이다. 강추하는 책. 그 책에는 대략 이런 단락이 나온다.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칠 준비가 됐을 때가 아니라 그들이 배울 준비가 됐을 때 배운다. 아이들이 배울 준비가 됐을 때 부모가 그들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의 아웃소싱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아이들 곁에 있게 되었다. 당신의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선순위와 가치를 얻는다면, 그들은 누구의 아이인가? 핵심은 이것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기 시작하는 순간,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아이들이 개발하게 도와줄 소중한 기회를 점점 더 잃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반복하자.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기 시작하는 순간, 우린 소중한 가치를 전해줄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여기선 분명, 결정이 필요하다. 다들 바쁘다는 거 안다. 하지만 결정해야 한다. 나는 내 가치관이 꼭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민하자는 것이다. 더 나은 부모의 역할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일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을 위한 일이 되기 위해서. 나의 선택은 ‘균형’이다. 일을 놓치진 않으려 하지만 최대한의 시간은 아이의 곁에 있으려고 한다. 지난 백일이 그러했고, 앞으로의 몇년도 그러할 것이다. 외부적 활동에 목마른 것도 사실이나, 지금의 나는 아이와의 교감에 더 목말라 있으니 말이다. 아이가 반짝거리는 순간에 함께 하고 싶고, 그렇게 연결되고 싶다. 




재원이는 나를 닮았다. 
재원이는 이제 5키로를 넘어섰다. 태어난지 2달이 넘었고, 엄청난 속도로 크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원래 작게 태어난 아이들이 모유 수유를 통해 몸무게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쨌든 엄청나게 잘 크고 있다. 태어날 때 그 작던 아기를 생각해보면 너무 감사하게도. 이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자. 눈은 추욱 쳐진 것이 꼭 나를 닮았다. 선하게 보인다는 장점과 사기 당하기 좋게 생겼다는 단점을 가진 ‘쳐진 눈’이다. 속쌍커풀은 살짝 있는 것 같다. 특히 왼쪽에 더 짙게 있어서, 왼쪽 눈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인다. 이 또한 나를 닮았다. 나도 눈이 짝짝인데, 왼쪽 눈이 더 크다. 눈썹은 정말 길다. 여자처럼 길어서 눈을 감으면 놀랄 때가 많다. 그 다음에 머리통을 보자. 머리통은 완벽한 앞, 뒷 짱구다. 여기까지도 나의 판박이다. 뒷 머리가 툭 튀어나와서 똑바로 누워있는걸 힘들어 한다. 자꾸 한 쪽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짱구배게를 사줬다. 누군가에겐 뒷통수를 동그랗게 만들고자 함이지만, 우리는 그저 똑바로 누워서 자게 할 목적이다. 나의 경우, 아직도 높은 배게는 힘들다. 잠도 거의 옆으로 누워잔다. 그게 더 편하다. 우리 재원이도 그럴 것 같다. 코를 보면 나름 오똑하다. 재원이가 갓 태어났을 때 사람들이 하던 가장 많은 피드백이 바로 ‘콧대가 높다’는 말이었다. 동양 쪽 특히 우리나라 아기들은 태어날 때 콧대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재원이는 작게 태어났음에도 코가 높았다. 그래서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가랑 같이 코끝을 비비는 걸 좋아하는데, 내 코를 재원이 코끝에 톡톡 간지럽히면 참 기분이 좋다. 코는 누구 닮았나 모르겠다. 아내도 나도 비슷하다.

재원이는 아내도 닮았다.
입은 아내를 닮았다. 아내의 입은 약간 ‘참새’입이라고 해야하나, 윗 입술이 아랫 입술에 비해 쏙 튀어나왔다. 내가 참 좋아하는 입술이다. 그런데 재원이도 그렇다. 배고플 때 쩝쩝 거리면서 입술을 오무렸다 펼 때 너무 귀엽다. 참새같은 입술. 그리고 볼살과 턱살은 지금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믿고 싶다. 딱 떠오르는 캐릭터는 바로 ‘놀부’다. 아니 ‘아기 놀부’가 되겠지. 엄청난 볼살과 3겹 정도는 되어 보이는 턱살은 놀부 정도말고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나중에 다 키로 갈거라 믿는다. 아니, 믿어야 한다. 나는 부모니까. 마지막으로 귀. 사람들이 재원이 귀가 크단 이야기도 많이 했다. 키가 크면 복이 많다는데, 정말 그렇겠지? 내가 보기에도 귀는 잘 생겼다. 무엇보다 귀는 말랑말랑해서 내가 참 좋아한다. 귓살이 부드럽고 말랑해서 귓가에 속살일 때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또 어떤 부분이 있을까. 손과 발은 모든 아기가 그렇겠지만, 참 작고 귀엽다. 특히 손이 이쁜데, 여자 손처럼 가늘고 길다. 색깔도 하얗고. 손톱이 자주 자라는 편이라 나를 껴앉을 때 꽤 아프다. 토실토실한 손에 내 손가락을 끼우면 요즘은 곧잘 잡는다. 그럼 같이 쎄쎄쎄 하면서 논다. 지금 아가는 엄마와 함께 있다. 엄마한테 달라 붙어서 맘마를 먹는 중인데, 뒷모습이 동그랗게 보인다. 떠오르는 건 ‘비엔나 소세지’다. 자꾸 이런게 생각나서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모습은 아주 큰 소세지 같다. 동글동글하고 탐스러운 녀석. 킹킹 대면서 밥을 먹는 모습이 참 애처럽고 대견하다. 갑자기 어른처럼 방구 뿡뿡 뀔 때는 아직 적응이 안 되지만. 

애착육아란 무엇일까

재원이는 이제 태어난지 70일이 되었다. 안아주면 안 울고, 혼자 있으면 우는, 소위 말해서 어른들이 ‘손 탄다’라고 말하는 시점이다. 사실 재원이는 이미 손이 탔다. 우리가 안고 있으면 천사처럼 조용하지만, 혼자 있으면 기차처럼 운다. 아내가 그래서 많이 힘들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하니까. 하지만 잘 해나가고 있다. 내가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진 철학이 맞다고 믿는다. 아이는 손을 타야 한다.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엄마의 냄새를 맡고, 몸을 부대끼고, 연결되면서 자연스래 애착이 생기고, 안정감도 생기기라 믿는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절대 시간’이다. 이러한 애착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져선 안 된다. 아웃소싱은 금물이다. 부모가 직접 아이와 맺는 시간이 중요하다. 그래서 가급적 나도 많이 안으려 한다. (아내에겐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란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식이 심리적으로 완전하게 독립하는 것은 부모의 간절한 기도이자 모든 양육의 종착점이다. 이 기도가 완성되려면 아기가 어렸을 때 애착이 견고해야 한다. (…) 애착이 심하게 불안정하거나 아예 애착이 형성되지 않으면 마음이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못해 건강한 줄기를 뻗지 못한다. 그 결과 성격과 정서에 문제가 생겨 삶이 위태로워진다.” 이 말에 동의한다. 앞으로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이다. 결정적 시기임을 부모가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할 듯 하다. 돈도 중요하고, 커리어도 중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생명, 한 사람을 오롯히 키워내는 것.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을 가장 가치있게 대하는 것. 그 마음가짐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재원이는 지금 엄마 허벅지에 매달려 곤히 뻗어있고, 아내는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 이제 식사 준비하러 가야겠다. 


  1. aquaplanet 2015.04.02 13:53 신고

    ㅎㅎ 글을 재밌게 잘 쓰시네요 :)
    아가랑 항상 행복하세요~!

꽃돼지가 된 우리 아가 재원이

요즘 재원이의 별명은 꽃돼지다. 1월 22일 2.3키로에 태어난 아이는 3월 3일 병원에 갔을 때 벌써 4키로를 돌파했다. 가느다란 다리와 핼쓱한 얼굴이 너무 안쓰러웠던 우리 아가는 이젠 닭다리같은 다리와 포동포동한 얼굴로 우리 부부를 웃게 한다. 아이가 잘 먹고 살찌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하지만 계속 이런 속도로 찌면 눈과 코가 보이지 않을까 살짝 두렵기도 하다. 35주 6일에 태어나서 주위 사람들 마음을 졸였던 아가였는데, 병원을 갔더니 이젠 모든 것이 정상이란다. 마지막으로 뇌초음파 검사도 마쳤고, 이젠 미숙아를 위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애초에 정상과 비정상이 의미있을까? 물론 의학적인 맥락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 사실이나. 존재론적 맥락에서 누가 누구에게 정상이니, 혹은 비정상이니 할 수 있을까? 그저 각자의 여정이 다 다를 뿐. 

3살까지 부모와의 애착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

어젠 애착 육아에 대한 다큐를 봤다. KBS 파노라마 <세살의 행복한 기억> 거기선 3살까지 부모와 주고 받는 교류가 ‘감성의 뇌’ 성장을 좌우한다고 했다. 그게 결국 성인의 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래서 3살 까지는 가급적, 부모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아이는 미세한 신호를 보내고, 엄마 아빠는 그것을 알아채고 충족시켜주고. 그런 교류를 반복하면서 아이는 ‘아, 나를 누군가 보살피고 있구나’라는 정서적 안정감을 획득한다. 이러한 ‘부모에의 애착’은 나아가 ‘세상에의 애착’으로 확장된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덜 두려움에 빠지고, 더 빨리 회복된다. 그리하여 삶에서 더 모험적으로 행동한다. 심지어는 학습 능력도 좋고, 사회성도 뛰어나다. 다시 말해, 태어나서 3년 간 아이의 인생은 정말 중요하다. 인생의 결정적 구간이라 해도 좋을 듯.  

최선을 다 하되, 자책에 빠지지 않는 부모가 되자.

이 다큐를 보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도 느꼈다. 물론 아이의 신호를 모두 알아채고 반응할 수 있다면 최고다. 하지만 부모의 에너지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주 일요일 이었나, 재원이가 1시간 단위로 울고 보채고 답을 달라고 하는데, 정말 말처럼 쉽지 않더라. 마음 같아선 나도 젖이 나와서 먹이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말이다. 아내가 잠을 못 자고 비몽사몽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을 보는게 참 마음이 아팠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아이가 울어도 ‘에라 모르겠다. 좀 만 참아라 아가야. 우리도 좀 쉬자’라는 마음도 든다. 어느 부모도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아이를 키울 수는 없으리라. 그리고 나는 약간의 결핍은 아이가 스스로 딛고 일어나야 할 적절한 장애물이라고 믿는다. 만약 세상에 결핍없이 자란 아이가 있다면, 그 또한 결핍이 될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할 일은 하되, 그러지 못했다고 스스로 자책은 하지 않는 것. 그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아이도 그러한 부모를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 사랑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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