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오브 맨, 그리고 그래비티 

지난 한달 동안 넷플릭스를 쓰면서 봤던 영화와 다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넷플릭스를 가입하게 된 경위는 '옥자' 때문이다. 영화 개봉 전에도 넷플릭스 때문에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다. 결국 대형 영화관에선 개봉조차 하지 않게 된. 그래서 되려 넷플릭스 가입자는 엄청나게 늘어났을 거라 추측된다. 영화는 재미있엇다. 하지만, 그 이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다. 영화를 아주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 좋아하는 영화 감독도 별로 없는 나이지만, 이 감독은 정말 '즐겨찾기' 리스트에 올릴만 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와 같은 레벨이라고 느껴진다.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칠드런오브맨 그래비티. 칠드런오브맨은 그렇다고 쳐도 그래비티는 아주 유명한 영화인데, 지금이라도 보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각각 7월 16일과 7월 23일 일요일에 봤다. 두 편 모두 나의 유일한 개인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에, 최근에 글은 거의 못 썼다. 좋은 영화를 봤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글을 못 쓴것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후회할 것 같아서. 두 작품의 공통점은 '희망' 그리고 한 개인의 '변화'에 대한 내용이다.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칠드런오브맨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시점에 한 명의 아이가 가져다주는 기적을 말하며, 그래비티는 희망도, 소리도, 빛도 없는 우주공간에서 기어코 삶의 희망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모두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다. '공통된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첫 번째 공통점은 '주인공의 상황'이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은 무기력하고, 세상에 대해서 시니컬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도 비슷하다. '아이의 상실' 이다. 그 이유는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모두 삶의 가장 큰 이유를 잃어버렸고 그 때문에 '자신의 삶'을 방치해 나간다. 칠드런오브맨의 주인공, 테오는 세상의 일에 관심이 없다.  첫 장면에서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 있음에도, 그는 무관심하다. 그리고  회사와 '승견장(?)'를 돌아다니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래비티의 주인공, 라이언도 마찬가지다.  삶에 대한 능동성은 찾아 볼 수 없으며, 우주가 왜 좋냐는 매트의 질문에 그녀는 '침묵'이라 답한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만의 '안전지대'를 구축한채 살아가고 있었다. 

두 번째 공통점은 그들을 '일깨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칠드런오브맨에선 대표적으로 테오의 '아내'가 그 역할을 한다. 그녀는 열정적이었던 그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온전히 맡긴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그녀는 죽임을 당하지만, 그 유지를 잇는다. 그리고 테오는 어느새 자신의 목숨을 바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도 강하다. 어쩌면 아내는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해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비티에선 조지 클루니가 맡은 '매트'가 그 역할을 한다. 자신의 삶을 걸어서 그녀를 구하며, 모든 걸 내려놓은 상황에서도 극적으로 그녀에게 '무엇이 가치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그의 결정적인 외침. 그로 인해 주인공의 눈빛은 달라진다. 생의 의지는 그렇게 이어지고, 그들의 삶은 완전히 변화한다. 

"자식을 먼저 잃은 것보다 큰 슬픔은 없지.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게 중요한거야. 가기로 결정했으면, 계속 가야 해." 


마지막 공통점은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생략했다고 느껴진다. 인류가 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했는지, 테오의 아이는 왜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인류의 마지막 희망, 키는 어떤 과정을 통해 임신하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는 그래비티도 마찬가지다. 라이언 자녀의 죽음, 우주정거장의 연쇄적 폭발, 말도 안 되는 확률의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지지만, 그 어떤 상황도 명확한 '이유'로 제시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감독을 그런 것을 염두해 두지 않은 듯 하다. 수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혹은 이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삶은 '이유'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 누구도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태어난 원인이지만, 내 삶의 이유는 아니다. 내가 이번 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부모님'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이 삶을 통해 그 이유들을 만나고, 만들어 가고, 연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상의 연속'에 가깝다. 결코 '한번의 사건'이 될 수 없다.    




나에게 감독은 묻는가?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당신은 죽어도 되는가?"
대답한다. "아니다. 삶을 하나의 이유로 귀결시키지 말라. 삶은 그저, 내 앞에 놓여진 것이다. 그러니, 일상을 살아라. 어쩌면 삶의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믿는다. 삶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에 놓여야 한다고. 그 단단한 일상의 기반 위에서 춤추고, 만나고, 고통을 겪고, 미치고, 배우고, 사랑해야 한다고.
그러니 우리, 길을 잃어버린다 해도 염려치 말자. 라이언의 마치막 외침처럼, 이렇게 살자. 

"불에 타 죽던지 아니면 멋진 여행을 했다고 자랑하던지, 둘 중 하나다!" 

그래. 둘 중 하나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허나, 그 또한 어쩔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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