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나의 목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올해 읽은 책 리뷰를 마무리 짓는 것이다. 손을 놓으려고 하면 다시 잡게 되는 목표다. 아무리 명색이 블로그인데 독서 리뷰까지 미뤄지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하지만 하지 못할 핑계는 많이 생각난다. 바쁘단 핑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핑계, 독서 축제 해야 한다는 핑계, 아직 못한 일이 많다는 핑계.. 모든 핑계를 넘어서서 지금 당장 블로그 리뷰를 쓰자. 그래야 나의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것 같다. 서두르자! 

5월  
인생학교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_로먼 크르즈나릭
불안_알랭 드 보통
생태요괴전_우석훈
에티카, 자유의 긍정의 철학_이수영
강점에 집중하라_마커스 버킹엄
남자의 물건_김정운
딜리셔스 샌드위치_유병률

6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_이진우
피터드러커 자서전_피터드러커
30분에 읽는 니체_로이 잭슨
포트폴리오 인생_찰스 핸디
작가수업_도러시아 브랜디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_폴 D 티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_사사키 아타루





2015년 5월 
25. 인생학교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_로먼 크르즈나릭
올해 인생학교 책을 꽤 봤다. 아주 양질의, 권할 만한 책이란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 정리가 잘 되어있다. 좋은 책이다. 아래의 글이 이 책의 지향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진정한 삶의 고수는 일과 놀이, 노동과 여가, 몸과 머리, 공부와 휴식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두 가지 중 뭐가 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무엇을 하든 그저 탁월함을 추구하고 그에 걸맞게 완성할 뿐, 그것이 일인지 놀이인지는 타인의 판단에 맡긴다. 그 자신은 언제나 두 가지를 모두 하고 있다."

나 역시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살기로 마음 먹은지 3년이 다 되어간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려는 사람, 자신만의 천직을 찾으려는 사람,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고민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분명 초서까지 마쳤는데 블로그에 올리지 않았구나. 오늘 중으로 올려야겠다. 
 

26. 불안_알랭 드 보통
2015년 가장 많이 본 작가 한 명을 뽑으라면 단연 나에겐 알랭 드 보통이다. "지금까지 나는 왜 이 사람의 책을 읽지 않았지?” 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관심사와 지향점이 비슷한 작가다. 인생학교를 왜 만들었는지도 공감이 가고, 또 그가 기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기에. 불안이란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불안에 대해서 예전에 TED강의가 있었다. 나도 한번 포스팅 한적이 있고. 


그 내용을 면밀하게 담은 책이다. 각박한 현대를 사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워낙 에티카를 재미있게 읽어서 순위는 밀렸지만, 그래도 5월 최고의 책 중의 하나다. 


27. 생태요괴전_우석훈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팟케스트 <나는 딴따라다>에서 우석훈과 선대인씨가 말하는 걸 인상깊게 들었었다. 공감도 많이 했고. 88만원 세대로 유명한 우석훈 씨의 책이라기에, 또 가볍게 읽고 싶었던 책이 필요했기에 빌려 봤다. 솔직히 약간 짜맞춘 느낌이 들긴 했지만, 신자본주의로 인한 부작용들을 요괴로 설정하고, 그것을 물리치기 위한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주제는 흥미로웠다.

나는 희안한 습관이 하나 있다. 좋은 책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빌려본 책은 가급적 초서를 하는 편이다. 왜냐면, 앞으로 그 책을 볼 일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 책도 초서를 했다. 초서 말미에 내가 이런 글을 적었더라. 옮겨본다.  

"그냥 내 생각. 교육도 마찬가지. 대학이나 외국의 유명한 프로그램 다 좋다. 하지만 그것에 의존한다면 결국 생태계는 건강하지 못하게 된다. 언제나 생산자는 따로 존재하고, 우린 교육을 소비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희망은 로컬이다. 우리가 만든 교육을 우리가 소비하는 것.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어 보는 것. 조금 어설퍼도, 조금 낯설어도, 조금 불편해도 그래도 이용하는 것.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꼭 필요한 자세라고 본다. 모두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교육을 만들고, 또 듣는 것. 세상 모든 사람이 학교가 되는 것 말이다. 

고객은 왕이 아니다. 고객은 노예다. 우리를 왕으로 떠받드려는 사람들일 수록, 기업일 수록 경계하라. 그렇게 왕이라는 기분에 취할 수록 나는 더욱 더 그들에게 예속된다. 노예가 된다. 나는 그들에게 돈을 내고, 그들은 나에게 기쁨을 준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지배한다. 고객이라는 말에는 너는 그저 나에게 돈이나 내고 기분이나 좋아해라. 라는 말이 들어있다. 그러니 깨어있자. 우리 모두"
 

28. 에티카, 자유의 긍정의 철학_이수영



내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충분히 이해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면 물론 No다. 하지만, 에티카에 감명받고 마음이 움직이는가? 라고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100% Yes!라고 외친다. 올해 나에게 단 한권만 고르라고 해도 이 책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다.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고, 흠뻑 빠졌던 사람이 바로 스피노자다. 올해 5월의 책으로 선정했다. 

나는 지나친 고전 만능주의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전을 일단 읽기 시작해라. 이해를 못해도 그냥 읽어내려가라. 그래야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천재 그거 해봐야 뭐 좋을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나에게 독서는 즐거움이다. 내가 몰랐던 것을 인식하고, 세상을 달리 보이게 하는 힘이 독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에티카를 직접 보진 않았지만, 그 언저리를 살펴본 느낌이고, 그것만으로도 올해는 만족스럽다. 고전에 너무 목맬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읽을 때가 되면 다 알아서 읽게 되니 말이다. 

이 책을 필두로, 스피노자에 대한 관심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일단 니체를 좀 더 읽었고, 들뢰즈에 대한 책도 몇권 샀다. 철학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삶에 대한 철학을 공부하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단 생각은 아주 커졌다. 스피노자가 꿈꾼 세상. 자유롭고 능동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나도 그것을 함께 꿈꾼다. 나와 함께 할 사람들도 어서 이 책을 읽어보시길! 


29. 강점에 집중하라_마커스 버킹엄
강점 혁명에 이어서 읽은 책. 뭘뭘 하라! 라는 식의 책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강점 카드를 적기엔 좋은 책이었다. 강점 혁명과 셋트로 보면 괜찮을 책이나, 한권만 권한다면 역시 강점 혁명이다. 링크는 여기


30. 남자의 물건_김정운
이 책은 다행히도! 블로그에 올렸었다. 김정운 교수님의 책을 다 본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재미가 있다.
그분 삶을 존경하기도 하고. 링크는 여기로


31. 딜리셔스 샌드위치_유병률
이 책은 누군가의 페북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려서 찾았다가, 한참을 보고 다시 꼽아 두었던 기억이 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만, 글쓰기와 관련한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의 미덕이 있다면 글을 써야겠구나! 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 이 책도 옮겨적었었다. 글을 쓰며 그래도 이때는 내가 꽤 부지런했었다는 사실을 재 확인한다. 링크는 여기로




2015년 6월 
32.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_이진우
니체에 대한 글을 쓸 때 참고했던 책이다. 꽤 길게 써 보았던 [프리드리히 니체를 만나다] 여기로 링크
이 당시 나는 스피노자에서 자연스럽게 니체로 관심이 옮겨지게 되었고, 일단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책을 골랐다. 알고보니 이진우 교수님은 한국니체학회 회장이시더라. 니체가 있었던 지역을 방문하면서 적은 에세이다. 내가 예상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니체의 삶도 조금 들여다볼 수 있었고. 사실 일반 분들께 니체 입문서로는 이후에 읽었던 고병권 작가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더 권하고 싶다. 


33. 피터드러커 자서전_피터드러커
내가 존경하는 어른이자 상상 속 멘토, 피터 드러커 옹에 대한 개인적 이야기다. 하지만 그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개인적으론 드러커옹의 책으론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2009년에 경영에 대해서 한참 관심이 많았을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인문학 책들을 더 읽다보니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었다. 이 책은 길게 리뷰했었다. 링크는 여기 
 

34. 30분에 읽는 니체_로이 잭슨
이 책은 핸드북이다. 니체에 대한 글을 쓸 때 참고한 책. 짦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얇은 책이다. 


35. 포트폴리오 인생_찰스 핸디



올해 6월의 책! 책을 읽다 보면, 내 삶을 한번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찰스 핸디의 선택이 역시 옳았음을 재확인한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 독립적 프리에이전트를 꿈꾸는 사람들, 1인 기업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 역시 이미 블로그에 써 두었었다. 링크는 여기로. 


36. 작가수업_도러시아 브랜디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책. 작가수업을 이제서야 읽었다. 이 책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다. 요즘은 결론이 명쾌한 책이 좋다.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부럽고. 결론은 이것이다. 글을 쓰는 자가 작가다.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일단 써라. 쓰다 보면 된다. 핑계 만들지 말라. 


37.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_폴 D 티저
나는 지금까지 에니어그렘을 위주로 공부해왔다. 그러다 보니, MBTI는 비교적 소홀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와우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그 첫 시작이 이 책이다. 아주 쉬운 책이고, 누구나 MBTI를 배울 수 있게 써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건 바로 에니어그램과 같은 이유이다. 
이 책의 잘못은 아니고, 절대 기질이나 성격은 책을 통해서는 온전히 배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처음에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고 생각한 MBTI를 온전히 이해한건 10월이 넘어서니까. 책으론 한계가 있다. 


38.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_사사키 아타루
아. 이 책도 강렬하다. 이번 달에 읽은 책 중에서 3 손가락 안에 꼽힌다. 일본의 니체라고 불리는 사사키 아타루. 그가 말하는 어조도 특이하고, 어쨌든 재미있게 읽었다. 앞서 작가수업과 딜리셔스 샌드위치가 읽고 나면 글이 쓰고 싶어지는 책이라면, 이 책을 되려 읽고 나면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아니, 사실은 책이 아니다. 위대한 인간의 정신을 미친듯 읽고 싶어진다. 니체가 그랬고, 사사키가 그랬듯. 

"갑자기 출현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됩니다. 어디러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명령을 듣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따르면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명령이라는 것은 들을 수 없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다른 누군가의 정보를, 즉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편합니다. 

왜냐하면 그 명령은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의 명령은 자기가 바꿀 수 있습니다. 어차피 자신이니까요. 그러면 당연히 확실한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지도 없이 이국의 숲을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이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는 건,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에 시달리게 합니다. … 그래도 여전히 그렇게 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괴테와의 대화 _요한 페터 에커만



#대작을 쓰지 말라 

그는 내가 이번 여름에 시를 쓰지 않았는지 물으면서 말을 꺼냈다. 나는 시를 몇 편 쓰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가능하면 대작을 쓰는 것을 피하도록 하게.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재능과 탁월한 노력을 겸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작 앞에서는 고생하는 법이기 때문이네. …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던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것만 착실히 했더라면 백 권의 책이라도 썼을 텐데 말이야.

현재는 언제나 현재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네. 시인의 마음속에 날마다 솟아오르는 사상이나 느낌은 그 모두가 표현되기를 원하고 또 표현되어야 하네. 그러나 보다 큰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가득 차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모든 사상을 등지고 생활 자체의 안락함까지 잃어 버리는 걸세. … 시인이 날마다 현재를 염두에 두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한결같이 신선한 기분으로 다룬다면 무언가 좋은 걸 만들 수 있고, 때로는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모든 걸 잃지는 않는다네. ...

언젠가 목표로 데려갈 발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네. 모든 발걸음이 바로 목표가 되고 또 발걸음 그 자체로 간주되어야 하는 걸세. … 당분간은 작은 작품들만 만들어야 하네. 그리고 자네에게 날마다 주어지는 것을 모두 곧바로 받아들이도록 하게. … 결코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자네 자신의 뜻에 따라야만 하네. (이하 중략)"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나는 한마디 한마디 그의 말의 진실성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나는 이제 괴테의 말을 통해서 몇 년이나 더 현명해지고 진보한 듯한 느낌이며, 진정한 대가를 만날 때의 행복을 마음속 깊이 깨닫는다. 그 이로움은 산술적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p.56-62

#나의생각

"대작을 쓰는 것을 피하라." 괴테의 그 말은 젊은 에커만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괴테는 이렇게 말한다. “젊을 때는 사물에 대한 지식이 일면적인데, 대작은 다면성을 요구하고 있지. 그러니 실패할 수 밖에.” 대작을 쓰지 말하야 하는 것에 대한 이렇게 완벽한 이유를 나는 아직까지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왜 글을 쓸 때 주저하는지, 그 이유도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다면적으로 쓰고 싶은 게다. 그 어떤 것도 빠뜨리지 않고, 어느 정도 완벽한 체계를 만들어 놓고 싶었던 게다. 나에겐 빌어먹을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조금 있다. 하지만 인정하진 못했다. 지금의 일천한 실력으론 아직까진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이제 인정한다.   

나는 괴테를 잘 모른다. 고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파우스트>를 쓴 소설가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최근에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으면서 그 책이 괴테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듣고 흥미를 느끼기도 했지만(에티카는 괴테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다. 파우스트는 범신론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그는 스피노자를 이렇게 칭했다. “신에 취한 사람”이라고), 본격적으론 이번 <괴테와의 대화>를 읽으면서 잠깐 조사를 해 보았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니, 왜 늙은 괴테가 젊은 에커만에게 “결코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좌우되서는 안 되며, 자네 자신의 뜻에 따라야만 하네.”라고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젊은 시절의 괴테 역시 다른 사람의 요구에 좌우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작은 공국 바이마르의 국정을 10년 동안 (원치 않게) 맡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써먹을 수는 없다.” 

그 이후 괴테는 도망치듯 떠나고, 오랜 친구들과도 멀어진다. 이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전환점을 만들고, 실러를 비롯한 다른 독일 문학의 거장들과 교류하며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다. 괴테의 진짜 삶은 환갑부터 시작된다. 환갑을 맞이한 1809년부터 사망 때 까지 20년간 그의 창작력을 절정에 달한다. 소설 <파우스트>를 비롯한 기행문 <이탈리아 기행> 그리고 시집 <서동시집> 등은 모두 이 시기의 작품이다. 그래서 나는 또 이해한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던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것만 착실히 했더라면 백 권의 책이라도 썼을 텐데 말이야.” 괴테의 말은 분명 과거의 자신을 향한 것이었음을. 

자, 그렇다면 에커만과 괴테는 뒤로 하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무엇을 쓸 것인가. 나에게 내가 말하는 바는 이것이다. 긴 글을 쓰지 말자. 짧게, 일상을 기록하자. 그저 내 생각을 담은 글 하나만이라도 꾸준히 쓰자. 한 가지 관점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쓰도록 노력하자. 다면적 관점을 스스로에게 요구하자. 하지만 그것에 함몰되어서 완벽주의적 성향을 드러내지는 말자. 그저 "모든 발걸음이 바로 목표가 되고 또 발걸음 그 자체로 간주”될 수 있도록 하자. 그 의지를 표현하자. 삶과 말 그리고 글이 일치되도록 하자. 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말한다. 오늘 현재를 표현하자.  


  1. 창실 2015.07.28 00:15 신고

    잘 읽었습니다. 많은 부분이 공감이 가네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정상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이다. 오늘 아침에 한 서울시 광고를 봤다. 서울시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세요. 그러면서 한 예시로 <파괴의 군주, 비글>이 나와있었다. 강아지를 키운 적은 없지만 비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재미있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상인 비글은 어떤 존재인가? 다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고뭉치. 말썽쟁이. 악마견. 파괴자. 등등 실제로 집안을 다 부숴버린다. 주인 입장에선 난감하다. 태도를 바꿔야 할 강아지다. 정신 무장이 필요하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비글은 정상이다. 비글을 그저 자신의 본성대로 행동할 뿐이다. 다만 자신이 있어야 할 적합한 곳이 놓여진 것이 아니다. 비글에게 어울리는 곳은 어디일까? 비글을 검색해 봤더니 이렇게 나온다. '비글은 사냥에 아주 적합한 견종으로 그들은 단호하고 날카로운 사냥꾼이다.' 그렇다. 비글에겐 아파트가 자신의 적합한 장소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공간만 충분히 확보된다면 비글은 파괴의 군주란 오명을 벗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어서 떠오른 이야기다. 영국에서 한 여자아이가 너무 산만했다고 한다. 병원에 대려가면 다들 ADHD라고, 문제가 있다고만 했다. 특수학교에 보내거나 약으로 처방해야 한다고. 부모는 낙심했다. 지친 부모는 마지막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이 아이는 타고난 댄서입니다.'


그렇다. 그 아이가 놓여야 할 곳은 교실이 아니었다. 춤을 추는 곳이었다. 아이는 너무도 춤을 추고 싶어 몸이 가만 있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이는 댄스 전문 학교로 보내어졌고 그녀는 영국왕립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가 되고 이후 <오페라의 유령>을 디렉트한 세계 발레계의 보물이 되었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선과 악의 기준은 선이라고. 선과 악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없다. 그렇기에 선은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폭력의 기준이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마찬가지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도 정상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비정상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 그것은 폭력이다. 그건 마치 자신이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정상과 비정상의 딱지를 붙이는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정말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해야 나는 더욱 나답게, 더 적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에게 맞지 않은 공간에서 우리와 맞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우리와 맞지 않은 목표를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비글이라면 사냥을 하러 가라. 당신이 댄서라면 춤을 추라.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어디서 누구와 함께 머물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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