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원래의 나는 책을 2번씩 잘 읽지 않는다. 그저 한번 읽고 이후에는 필요할 때 꺼내서 다시 읽는 정도.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별 다른 철학이 있는건 아니다. 그저 다양한 책에 계속 흥미가 가고, 이를 따라가다 보면 다음에 읽을 책이 눈에 보인다. 그러다보면 예전에 봤던 책은 우선 순위에서 미뤄지기 마련이더라


그러던 차에, 어느 날 내가 수업하는 학교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다시 봤다.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분명히 봤던 책이고 심지어 이 블로그에 리뷰도 남겼었다. 리뷰 링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 서서 책을 훑어보는데, 왠지 글을 읽지 않은 느낌? 기묘한 느낌이 들어서 빌려왔다. 개정증보판이기도 했고. 


다시 책을 읽는데, 참 좋았다. 2010년의 내가 어떤 지점에서 반응했었는지도 알겠거니와, 지금의 내가 어디서 글을 멈추는지도 알 수 있었다. 다시 정리해 보고 싶었다. 지금 나만의 정리로. 사실 정리한 지는 거의 한달이나 되어가지만 포스팅을 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올린다. 이번 필사는 10개의 개념 중심으로 옮겨적어 보았다. 책의 내용과 조금씩 다르게 편집되었기에, 전체 맥락과 흐름을 알고 싶은 분들은 반드시 책을 읽기를.







1. 리더란

상황을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주변을 살펴보라. 어떤 그룹이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이는 ‘썰을 푸는’ 인간이다. 상황을 언어화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운 말과 이야기로 세상을 보는 눈을 홀라당 뒤집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혁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혁명은 늘 새로운 말, 낯선 이야기들과 함께 등장했다. 

+ 리더십은 삶에 대한 통찰에 달려있다. 
구술 능력이란 단순한 말솜씨가 아니다. 삶에 인간,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의 표현이다. 삶에 대한 통찰과 애정이 있어야 이야기를 엮는 능력이 생긴다. 그러므로 글쓰기 훈련 전에 이 능력을 먼저 키워야 한다. 그러면 발성과 몸짓, 호흡 등 보디랭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자각하게 되고, 소통의 중요성을 절로 터득하게 된다. 이런 구술 능력은 리더십과 연결된다. 리더십의 대부분은 상황을 ‘언어화하는’ 능력이다. 주제를 이끌어내고,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때 그는 그 그룹의 지도자가 된다. 

2. 공부란
질문은 세상천지에 널려있다. 공부란 무엇인가? 학교를 떠나는 순간 공부가 끝나는 것이라면, 생로병사에 대한 통찰력은 언제, 어디서 배워야 하는가? 독서와 공부는 서로 다른 것인가? 교과서에 나온 지식들은 대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더 나아가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혹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는 무엇인가? 등등 공부란 세상을 향해 이런 질문의 그물망을 던지는 것이다. “크게 의심하는 바가 없으면, 큰 깨달음이 없다.”(홍대용) 고로, 질문의 크기가 곧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 

+ 공부란 네트워킹이다.
새로운 공부를 시도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동료들을 불러 모아 살아 움직이는 학습망을 조직하라. 최근 뇌과학의 성과에 따르면, 뇌의 존재 이유는 ‘네트워킹’하는 데 있다고 한다. 네트워킹을 하지 못하면 신경망이 점차 끊어져 결국 치매나 죽음에 이른다는 것.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스승과 벗을 찾아가는 네트워킹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곧 공부다. “군자는 글로써 벗을 만나고, 벗으로써 어짊을 북돋운다."


3. 학교란
“학교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노예로 만든다. 학교는 교육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자금, 사람, 그리고 선의를 독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제도가 교육에 관여하는 것을 단념하게 만들고 있다.” /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

공부에 때가 있다고?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인간은, 아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뭔가를 배운다. 살아 있음 자체가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뭔가를 끊임없이 학습하는 과정 아닌가. 아이들의 눈이 그토록 맑은 건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과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에 들어가면서 갓난아이의 이 경이에 찬 호기심은 학교식으로 재편되어 버린다. 더 이상 삶과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도, 느낄 필요도 없다. 대신 잘게 쪼개진 학년별 단위 학습이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린다. 

4. 함께 공부하는 것이란
한 사회가 공동체적 리듬을 가지려면, 노인은 청년과 함께 섞여야 하고 어린이와 청년은 노인과 함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연령대의 에너지와 지혜를 주고받을 때 비로소 집합적 기운의 분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주고받을 수 있는 건 단연코 공부밖에 없다. 공부할 때 노인과 청년은 권위와 위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벗이 될 수 있다. 공부엔 다 때가 있다! 숨을 쉬고 있는 때, 그때가 바로 공부할 때이다. 

4. 독서란
요즘 대학생들의 독서력은 실로 심각하다. 그들에게 지식이란 책을 통해 탐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터넷에 떠다니는 검색 다발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거의 드물다. 토론 수업이나 자기주도 학습도 세계와 대상을 학습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되는 법이다. 헌데, 대체 독서를 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눈을 기를 수 있단 말인가? 질문을 하려면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와 마주쳐야 하는바, 독서를 하지 않고는 그런 마주침 자체가 불가능하다. 질문이 없으니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읽지 않으니 질문이 없다. 

독서란 이것이다. 기억하라. “위로 성현과 짝할 수 있고, 아래로 뭇 백성을 깨우칠 수 있으며, 그윽하게는 귀신과 통할 수 있고, 밝게는 왕도와 패도의 방략을 터득하여 우주를 지탱할 수 있는 것” 

5. 자유란
카프카가 말했듯이, 추상적인 자유란 없다. 다만 지금 나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문턱이 있을 뿐. 그 문턱을 넘어설 때 비로소 그만큼의 자유의 공간이 열리는 법이다. 가량, 지금 10들은 게임과 포르노에 전면 노출되어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치명적 중독성에 있다. 거기에 한번 붙들리면 헤어나기가 힘들다는 것. 그게 바로 억압이다. 그렇다면 그때 자유란 ‘그 억압에 얼마만큼 저항할 수 있는가’ ‘그에 맞서 얼마나 능동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법이다. 

6. 고전이란
고전이란 시대의 통념과 억압을 뚫고 삶과 사유의 눈부신 비전을 탐색한 전위적 텍스트를 말한다. 고전이 시대마다 서로 다른 의미망을 구성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전위적 열정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전이야말로 진정, ‘미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래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곧 도래할’ 시간이다. 고전이 바로 그렇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온 것이지만 늘 우리에게 도래할 시간에 대해 예고해 준다. 오래된 미래로서의 고전! 

+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이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으면 안 된다. 쉽고 재미있는 책, 읽어서 몽땅 이해되는 책은 당장 덮어야 한다. 그런 책으로 대체 뭘 배울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취미 활동에 불과하다. 반드시 내 몸과 운명을 바꿔 줄 책을 읽어야 한다. 일단 나보다 폭넓게, 강렬하게 살았던 분들이 쓴 책, 생명의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책, 생사를 가로지르는 원대한 비전이 담긴 책,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책, 한 시대의 통념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한 책,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책 등등 그런 책들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른다. 

7. 코뮌이란 
근대 이전, 학인들은 스승을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그 시절엔 공부를 한다는 건 어떤 스승의 문하에 들어감을 의미했다. 근대 이전, 배움터란 기본적으로 ‘코뮌’이었다.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코뮌’ 고뮌이란 기성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스승을 만난다는 건 바로 그 코뮌에 접속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왜 그토록 스승을 찾아 헤매었던가? 스승을 만나야만, 그 ‘코뮌’에 접속해야만, 지리멸렬하던 공부가 단번에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배운다는 건 어떤 경지에 오른 스승을 만나는 것이자 의기투합하는 벗을 모으는 일이다. 

8. 글쓰기란 
모든 공부가 귀환하는 최종심급, 그것은 바로 글쓰기다. 지식인에게 있어 글이란 자신의 삶의 특이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표현방식이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신체적 조성을 바꿀 수 없다면, 담론을 생산할 수도, 코뮌의 리더도 될 수 없다. 내가 공부한 과정은 이렇다. 선배들은 한 마디를 던졌다. “기존 연구와 다른 주장은 뭐야?”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 자신의 눈으로 자료를 보라.’ ‘너 자신의 고유한 문제를 설정하라.’ 즉, 차이를 구성하라는 것. 정말 뚫어지게 자료를 보고 또 보았다. 하나의 문장, 하나의 낱말을 수정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파지를 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곤 했다. 참으로 미미한 차이였다. 하지만 “호리의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빚는다”고 하지 않던가. 대상이건 방법론이건 지식인이라면 일단 자신이 던진 물음과 ‘온몸으로’ 마주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화살-되기’ 그러다 보면, 문득 알게 된다. 내가 자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료가 내 신체를 통해 스스로 웅성거린다는 것을. 세상 가득히 앎의 흐름이 있고, 나는 단지 그 흐름 속을 이리저리 유영하고 있다는 것을. 새로운 질문을 던질 것, 하나의 논리로 관통할 것 - 이 두 가지가 내가 석사과정 내내 갈고 닦은 글쓰기의 초석이었다. 

생각의 지도를 변경하고 삶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 글. 그것이 내가 꿈꾸는 글쓰기의 지평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문체는 얼굴이요 몸이다. 신기할 정도로.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자신의 문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거울보다 더 투명하게 자신을 비춰 줄 것이다. 만약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운명의 궤적을 변경하고 싶다면, 문제를 바꾸면 된다. “생긴대로 쓰고, 쓰는 만큼 살아간다.”

9. 스승이란 
계몽이 아니라 촉발, 훈계가 아니라 감염. 이것이 동서고금의 위대한 스승들이 취한 최고의 교육법이다. 스스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남을 감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자기 안의 기쁨 또한 더이상 자라기 어렵다. 배움의 열기가 사라진 이 척박한 현실에서 희망을 일구는 길은 단 하나, 교사가 먼저 공부에 미치는 것뿐이다. 선생님이 공부에 미치면 그 배움의 열정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자신이 평생 뭔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평생 공부의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그러므로 스승이란 무엇인가? 가장 열심히 배우는 이다. 배움을 가르치는 이, 배움의 열정을 촉발하고 전염시키는 배움의 헤르메스, 그가 곧 스승이다. 

10.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 소외와의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책을 읽고, 삶을 조직하고, 천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주자가 말했듯이, "부귀하면 부귀한 대로 공부할 일이요. 빈천하다면 빈천한 대로 공부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땅의 청소년들이야말로 가장 억압적이면서 가장 소외된 계급에 해당한다. 이 억압과 소외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을 배움터로 바꾸고, 지식의 향연을 구가하는 학습망을 조직할 것. 즉, 청춘의 패기와 열정을 모아 지식의 노예가 아닌 지식을 통해 자유를 누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요컨대, 스스로가 ‘호모 쿵푸스’임을 자각해야 하리라. 

"교육의 목표는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콩도르세


이 책의 결론,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 고로 공부에 외부는 없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나만의 결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진짜 공부란, 목적없는 것이라고. 유일한 목적이 있다면 그건 '삶을 잘 살기 위한 것'이라고. 대학을 가기 위해서 라거나,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읽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일이지 공부는 아니다. 공부는 존재의 놀이가 아닐까. 그렇게 함께 놀면서 배우는 벗들과 이를 촉발시키는 스승이 있다면 진정한 삶의 절반 정도는 채워진 것이 아닐까. 심마니스쿨이 원하는 모습도 결국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지적생활의발견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와타나베 쇼이치 (위즈덤하우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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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년 2011년 10월에 사당의 책방에서 읽은 책이다.
당시 필사에 관심이 많을 때라 그대로 옮겨 적으려고 몇장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렇게 옮기는 과정이 벌써 3개월이나 지나고 말았다. 요즘 바빠서 정신도 없고 이렇게 주말을 활용하지 않으면 포스팅을 영영 못할 것 같아서 잠깐 시간을 내서 책 내용을 정리했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그나마 '일본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도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을 잘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 최고의 역사평론가 '와타나베 쇼이치'인데, 문체나 사상이 조금 답답한 느낌이 있지만 그 마저도 요즘 같이 빠르고 소비하는 시대에는 더 부각이 되는것 같아서 좋다 ^^ 

그럼 이제 요약 시작!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지성이 보인다."

나는 남에게 얻어먿는 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거저먹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돈을 내고 음식을 사 먹을 때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돈을 들인다는 것은 판단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듯하다.

물론 돈이 없는 학생들은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수입이 적으면 적은 대로 그때그때 형편에 맞게 책을 조금씩 사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지적생활자의 자세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이 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장서를 보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장서'는 책을 뜻하지만 영어로는 '라이브러리',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는 '비블리오테크'라고 해서 '도서관' 또는 '서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즉, 아무리 책의 권수가 적더라도 나만의 고전이 된 장서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만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읽어보지 않고서는 좋은 책인지 알 수 없다.
양서를 판별할 수 있는 안목과 직잠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서 읽어보기 잘했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곁에 두고 때때로 책장을 훌훌 넘기며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책의 진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책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하면서도 정확한 안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나는 개인적으로 위의 문단 때문에 이 책을 옮겨적기 시작했다. 왜냐면 나 역시,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변화의 시점'과 '책을 사서 모으기 시작한 시점'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와 군대 생활 중에서도 나름대로 400권 정도의 책을 읽었었는데, 그 당시에는 책을 사서 모으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을 뿐, 실제로 그것을 지식으로 활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책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내가 살 책을 모으고, 줄을 치고, 공부를 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의 결론도 이렇다.

"일단 책을 사라"







- 책이 생각나는 순간을 놓치지 마라

책을 반드시 사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혹시 예전에 읽었던 책이 문득 생각나서 다시 한번 읽어본 경험이 있는가? 그것은 지적생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어떤 책이 읽고 싶어졌을 때 그 책이 곁에 없어 읽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귀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것은 두뇌에 그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몸이 어떤 영양소를 필요로 해서 음식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 읽은 책이라도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기 쉽상이다. 하지만 좋은 책은 희미하게라도 기억에 남아 있으면서 가끔식 생각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찾아 읽은 책들은 나의 지적생산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귀한 보물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책은 반드시 나만의 장서로 소장하며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 

 

책을 사겠다는 것은 지적생활을 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신문, 잡지, 자기계발서와 달리 좋은 책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읽게 되지 않는다. 시간을 따로 내어 곰곰히 되씹으며 정독하고, 후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좋은 책을 만나는 행운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나는 헌책방에 자주 들르는데 가끔씩 절판되어 아쉬움이 남았던 좋은 책들을 발견하곤 한다.




- 아이의 공부방보다 부모의 서재가 먼저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방을 만들어준다. 물론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부모는 서재가 없으면서 아이에게 독립된 공부방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이의 공부방보다 부모의 서재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훗날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적 토론을 하게 될 것이다.
'나만의 도서관'을 갖는다는 것은 지적생활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 장서의 축적과 지식의 누적효과

칸트와 다윈은 50세 이후부터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하여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들의 서재에는 수많은 참고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특히 이 나이쯤 되면 장서의 축적은 최고점에 도달하는 듯하다.
칸트는 많은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만의 장서로 서재를 장식했다. 당시에는 책이 귀했기 때문에 수입에 비하면 책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한꺼번에 많은 책을 살 수는 없었지만 그는 한 권 한 권 책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칸트는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을,  66세에 '판단력비판'을 써냈다.

젊어서부터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좋은 책들을 조금씩 사들여 자신의 서재에 소장해온 사람은 정년 이후부터 참된 지적 즐거움을 알게 된다. 정년 수에 꾸준히 집필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출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정년 후에 더 크게 발전하는 사람과 정년과 동시에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정년 후에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차분히 꺼내 읽으며 애독할만한 책들이 없으면 지적생활은 불가능하다.




나의 생각

책을 사겠다는 것은 지적생활을 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지 알기 위해선 우리가 쓰는 '시간, 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양반만 공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농사를 짓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책을 사는데 쓰고,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가? 

나는 매달 10만원씩 책을 사는데 쓰기로 결심했었고, 책을 처음 살 때는 좋은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을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점점 사기 시작하면서 '좋지 않은 책'을 구분하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다른 사람에게 책을 추천할 정도로 분별력이 키워졌다. 장담하건데, 충분한 시간과 돈이 부여되지 못하면 책을 보는 눈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일단 책을 사라"








- 기계적인 글쓰기가 걸작을 낳는다.

수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엔서니 트롤럽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대표작인 '바셋주 이야기'를 비롯하여 56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전업작가가 아니었던 그가 이처럼 많은 작푸을 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체국 공무원이었던 그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처럼 짧은 글이라면 몰라도 장편소설은 절대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 틈틈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패작뿐이었지만 그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했다. 그러다 40세에 히트작을 냈고, 그것을 시작으로 67세에 타계할 때까지 끊임없이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그는 평생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집필활동을 했다. 그가 만년에 남긴 자서전에 따르면,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2시간 반 동안 소설을 썼다고 한다.그는 한때 우편감독관으로 여러 지방을 돌아다녔는데, 호텔이나 차 안에서도 아침 2시간 반 동안은 반드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미국에서 그의 소설이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작품은 베스트셀러에 올라섰고, 다른 작품들까지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독자들은 그의 소설이 전혀 싫증나지 않는다고 호평했다.



- 재능을 키우는 다작의 힘

나쓰메 소세끼 역시 대표작인 '명암'을 기계적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나는 '명암'을 아침마다 고통스러움을 느끼면서 기계적으로 썼습니다."

소세끼가 젊었을 때는 책 한권을 단숨에 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매일 저녁식사가 끝난 후부터 쓰기 시작해 다음날 오전 12시까지 기계적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이 기계적으로 쓰여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영감이 솟아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말을 시작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감은 일에 몰두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일이라는 것은 하다 보면 최초에 구상했던 것과 달라지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느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지 말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일해야 한다.




- 기계적으로 일하는 습관

수십 권의 저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후자와 같은 사람들이 지적생산에 대한 열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하는 기술'을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윌리엄 쇼콜리는 논문의 수가 학자의 지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통계적으로 논문의 수가 많을수록 논문의 질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작가가 글을 쓸 때처럼 지적생산은 고독한 시간과의 동행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학자나 예술가들의 고독한 시간에 대한 예찬을 끝이 없다. 언젠가 한 시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그 시대에 살게 되는 것이지만,
고독한 시간을 가질 때는 모든 시대에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생 산속에 묻혀 혼자 지내려고 작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고독에만 빠져 살 수는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생각을 나누는 지적교류가 필요하다.


나의 생각

나는 한 때 '영감'과 '직관'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신의 은총' 처럼 나에게 내려와서 나는 그게 맞춰서 신에 들린 듯 글을 쓰는.. 그런 상상을 자주 한 적이 있다. 이제 나는 그런 걸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나에게 주어질 수는 있겠지만, 나는 이제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는다.

미국 전설의 감독, 존 우든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성공은 마음의 평화이며, 마음의 평화는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존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아는데서 느껴지는 자족감이다."

나는 글을 쓸때, 책을 읽을 때, 사람들과 나눌 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나 자신을 감동시키고 있는가?
그 상태가 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과 실패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나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감'이나 '직관'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닐까?

지적 생활의 발견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잘 아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눌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그들을 위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러한 콘텐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사람들을 깨울 수 있도록 공부하고 기여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지적생활은 이런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당신이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일단 책을 사라"



 


애플은 이 같은 귀중한 자산을 어떻게 얻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은 바로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 덕분이라고 얘기한다. 그의 리더십은 간혹 ‘나 홀로’ 늑대의 리더십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이는 양자의 경우가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과에 속하는 무리 동물인 늑대는 철저한 집단 생활을 하는데 그 중 일부는 집단에서 버려진 채 ‘나 홀로’ 생활을 하다 죽어간다. 그런데 버려진 나 홀로 늑대 중 일부는 끈질긴 자기 변화의 과정을 거쳐 살아남아 다른 무리의 우두머리를 제압하고 리더가 되기도 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나 홀로’ 늑대 출신의 리더가 있는 무리가 황야 최강의 집단이 된다는 것이다.

‘나 홀로’ 늑대와 유사한 경험을 한 스티브 잡스 리더십의 핵심도‘나 홀로’늑대처럼 사투 끝에 깨달은 처절한 생존의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생존하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는 법,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애플의 경영방식을 보면 고객과의 강렬한 소통 그리고 그것을 통해 고객을 환호하게 하고 고객을 춤추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그 무엇’은 집착에 가까운 고객 만족, 고객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보이는 아이팟과 아이튠스 그리고 아이폰과 앱스토어의 비즈니스 모델, 시선을 사로잡는 직관적 UX(User Experience)와 디자인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특히 통상의 수준을 뛰어넘은 ‘디테일’의 완성도(눈에 잘 뜨이지 않는 부분까지도)는 이른바 ‘명품’이 갖는 품질 요소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애플의 마지막 방점이다. 반면 고객과의 직접 소통을 방해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이 업계의 관습이든 권위이든 묵계이든 그에게는 저항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과 품질을 고객의 눈높이에서 철저히 통제하는 마지막 관문인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은 ‘고객의, 고객에 의한, 고객을 위한’ 리더십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독한 팔로우십(Followship) 즉 리더 이전에 깐깐한 소비자로 존재하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 이것이 ‘나 홀로’ 늑대가 깨달은 지혜가 아닌가 하며 이를 통해 시장 점유율이 아닌 생태계(Ecosystem)를 확대하고, 제품이 아닌 생태계를 판매하는 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봤던 글입니다. 출처를 몰라서 죄송합니다.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느낀 것은 '나 홀로' 늑대의 리더십에 대한 통찰이다. 

개과에 속하는 무리 동물인 늑대는 철저한 집단 생활을 하는데 그 중 일부는 집단에서 버려진 채 ‘나 홀로’ 생활을 하다 죽어간다.

나는 사람도 무리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집단 생활을 하고, 관계를 맺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사람이다. 설사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외딴 섬에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이야기할 대상을 만들어 내곤 한다. '나  홀로' 생활을 하는 것은 어렵다. 외롭고 힘이 든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집단에서 버려진 채 생활을 하는 것은 거대한 모험이다.

하지만.. 이 말도 기억해야 한다..
- 자신이 다수의 편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는 항상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런데 버려진 나 홀로 늑대 중 일부는 끈질긴 자기 변화의 과정을 거쳐 살아남아 다른 무리의 우두머리를 제압하고 리더가 되기도 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나 홀로’ 늑대 출신의 리더가 있는 무리가 황야 최강의 집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모험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죽이는 과정'이 요구된다. 혁신의 아버지라 불리는 슘패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누가 죽고 누구를 살리는 것일까? 죽는 것은 '타인의 삶'이고 살아남는 것은 '나의 삶'이다. 

다시 표현하면, '타인의 삶'은 집단의 하나로서 나에게 주어진 '강요된 꿈 혹은 책무'를 의미한다. '나의 삶'은 하나의 존재로서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스스로 선택하는 꿈'을 의미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혁신의 과정'을 겪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기존의 있던 무리나 집단을 완전히 혁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왜냐면,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 절대로 경험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혁신의 과정의 거친 집단은 '황야'를 지배하게 되고, 그러한 혁신을 이루어낸 기업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그 기업이 대표적으로 애플이고, 그 리더가 바로 스티븐 잡스다. 이전 글에 이어서 한번 더 반복 하지만,
이 말은 진리다.

"시스템에서 빠져나와야만 그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시절은 우리의 적이다
우리를 잠들게 한다
역경은 우리의 친구다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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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 몰랐는데 ㅋㅋ 공감하지 않으시면 누르지 마시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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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규율의 문화 

- 회사가 성장하고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회사는 스스로의 성공에 발목을 잡히기 시작한다. 그에 응답하여 누군가가 '이제 어른이 될 때입니다. 이곳엔 어느 정도의 전문 경영이 필요합니다' 하고 말한다.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등장한다.

- 상호보완적인 힘인 '규율의 문화'와 '창업가 윤리'를 결합시킬 때 우수한 실적과 지속적인 성과를 낳는 마법을 얻는다.

- 고슴도치 컨셉이 철저하게 관철되는 세 개의 원 안에서 규율있는 행동을 하는 규율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문화를 만들라는 것

- 규율의 문화 만들기는 예외 없이 규율 있는 사람들로부터 출발한다. 비교 기업들은 흔히 규율 있는 행동으로 곧장 뛰어넘으려고 한다.




5단계, 규율의 문화 (이어서)

-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들에게 단계 5의 리더들이 있어 오래 지속되는 규율의 문화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반면에, 지속 실패 기업들에게는 단계 4의 리더들이 있어 순전히 힘을 동원하여 개인적으로 조직의 규율을 잡았다.

- 큰 성과를 내는 데 규율이 필수적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세 개의 원에 대한 규율 있는 이해가 없는 규율 있는 행동은 지속적인 큰 성과를 일구어 낼 수 없다.

-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들은 그 전성기에 다음과 같은 단순한 주문을 따랐다.
'우리의 고슴도치 컨셉에 맞지 않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 어떤 조직이 세 원안에 머무르는 규율을 더 강화할수록, 조직이 커질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가 더 많아진다.

- 커다란 기회에 '아뇨, 됐습니다.'라고 말하려면 규율이 필요하다.
어떤 것이 '평생에 단 한 번의 기회'라 해도 세 원 안에 들어맞지 않으면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 당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 리스트를 갖고 있는가??
'그만둘 일' 리스트는 있는가?? 우리는 대부분 바쁘긴 하지만 규율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 진짜 문제는 무엇이 옳고 적합한지를 안 순간 당신이 그 옳고 적합한 일을 할 규율을 갖고 있는가, 또한 부적합한 일을 그만 둘 규율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6단계, 기술 가속 페달

- 이 광란의 한복판에서 월그린즈의 대응책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기다가 걷다가 달리는 회사입니다."

- 정말 중요한 것은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들이 기술에 대해 어떻게 달리 받아들였는가에 있다.

- 인상적인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엄선한 기술의 선구적인 응용이었다.

- 그렇다면 어떤 기술이 적합할까? 고슴도치 컨셉의 세 원이 겹치는 부분에 직접 접목되는 기술,
그런 기술만이 적합하다. 만약 아니라면, '이 기술이 도대체 필요하긴 한가'라고 물어야 한다.

6단계, 기술 가속 페달 (이어서)

- 기술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도약시킨 경영자들이 기술에 대해 그토록 언급을 않다시피 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기술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닌 건 분명하다.

- "우리의 성공 요인의 20%는 우리가 채택한 신기술이지만, 80%는 우리의 문화였습니다."

- 기술 그 자체는 도약이나 몰락의 일차 원인이 아니다.

- 깊은 이해에 뿌리를 둔 단순 명쾌하고 일관된 개념에 접목돼 있다면 기술은 추진력을 가속하는 필수적인 동력이 된다. 그러나 잘못 사용되면, 명쾌하고 일관된 개념에 어떻게 접목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순쉬운 해결책으로 채택된다면 기술은 당신이 자초한 쇠퇴를 가속시킬 뿐이다.

- 어떤 기술도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을 탁자 위에다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 즉 어떤 것이 커질 수 있음에도 좋은 상태로 그냥 놔두는 것이 죄라는 단순한 내적 믿음을 불어넣어 주진 못한다.


웹진화론.2
카테고리 경제/경영 > 기업경제 > 산업경제 > 기술경제
지은이 우메다 모치오 (재인, 2008년)
상세보기

인상깊었던 글:

- 웹 진화를 과소평가하고 앞쪽 반생에 집착할 경우, 나머지 반생에서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전한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 '바보의 벽'으로 유명한 요로 다케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시대는 연장자가 으스대는 시대이다. 그러나 의도한 바는 아닐지라도, 살아 있는 이상 연장자는 불가피하게 젊은이들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런 시대에 젊은이들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적절한 삶의 방식은 연장자가 뒤쳐지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웹'이야말로 바로 그런 분야이다.

- '학습의 고속도로와 대정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참여자가 늘어난다. 새로운 참여자들이 대거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종점을 향해 질주한 결과, 종점 부근은 대정체에 빠지고 만다. 그 분야의 프로로서 밥을 먹고 살아갈 수 있을지의 여부는 대정체 구간에 접어들었을 때 자신의 미래에 대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 혼돈스럽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시대

- 웹2.0의 본질은 '지식과 정보의 게임'
거시적으로 봤을 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모든 사람이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구가 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우리 자녀들이 '손에 잡히는' 물건을 사 달라고 졸라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어린이들은 자유롭게 창조할 가능성이 열린 현실에 열광하며, 그에 따라 현실 세계의 물건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 게임이라는 관점으로만 보면 잘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의 게임'의 본질 중 하나다.

- 웹의 진화와 함께 혜성처럼 나타난 이들 스타는 하나같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줄기차게 계속해 온 사람들이다. '또 하나의 지구'를 구축하는 주역은 오로지 그런 유형의 사람들뿐이다.

-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무엇이냐고 이시구로에게 물었다. "성공 여부는 프로젝트 참여자 중에 인생 전부를 바치는 녀석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걸러지지 않은 자연 상태의 인터넷 퍼블릭 공간은 '선악'과 '청탁',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가진 모순적이고 혼돈스러운 세계다. 그런 세계에 불특정 다수를 신뢰하며 자신의 인생을 걸고 좋아하는 대상에 몰두하는 리더가 나타났을 때, 그 리더가 만들어 내는 커뮤니티는 공공성과 이타성을 띠기 시작하는 것이다.

- "이익을 포기하여 신뢰를 얻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크레이그 옆에는 '벤처가 아니라 스몰 비즈니스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원들이 있다. 그들은 오픈소스나 위키피디아로 치면'리더의 오른팔'에 해당된다. 크레이그는 사업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커뮤니티와의 신뢰를 지켜 냈고, 이제 '불특정 다수 무한대'의 이용자 겸 정보 제공자들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 벤티지 포인트 = 해당 분야의 최첨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면 구글로 가야 한다. 구글이 오늘날 최고의 벤티지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구글이 안 된다면 애플로 가라"

 '홀로 살아가는 비법'
1. 인터넷을 철저히 활용한다
2. '자신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를 정의하고, 항상 정보를 발신한다.
3.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그것에 대가를 지불해 주는 사람을 계속 만들어 간다.
4. 흔하디흔한 일상적 소모품만은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것도 편집증적으로 기피해야 한다.
5. 만약 소모품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반드시 새로운 전문성과 기술을 추가한다.
6. 적극적으로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긴다.
7. 조직에 소속되었을 때에도 조직과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조직의 논리에 매물괴지 않도록 노력한다.

- 살기 위해 물을 마시듯, 살기 위해 책을 읽었다. 이것이 실상에 가장 근접한 표현이다.
그저 즐긴다든가 지식을 축적한다든가 하는 것은 이제 독서의 부차적인 목적이 되었다.
거친 산길을 걷는 데 필수적인 '지향성'을 발견하기 위한 도구가 바로 '독서'였다.

- 웹 진화의 세상에서는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지식을 많이 모아 놓고 그 과다를 경쟁하는 것이 지식의 본래 모습은 아니다. 이제 지식은 삶의 소재로 활용될 때에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독서라는 고도의 지적행위도 결과물이 없으면 지적소비에 불과하며, 지적생산은 아니다.

- 시간, 거리, 무한이라는 개념을 뒤흔드는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자유 의지와 시간 사용법이 삶의많은 부분을 좌우하게 된다. 삶의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하는 것이다. 과거 사람들은 현실 세계의 제약 속에 피동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제약은 사라졌다. 이제는 개인의 목적의식이 삶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서는 웹 리터리시를 갖춰야 한다. 살아 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현실과 인터넷 사이를 창조적으로 오가며 노력한다면 분명히 길은 열린다. 웹은 뜻을 가진 사람에게는 든든한 힘이 되어 주는 존재다.



생각할 점:

지금까지의 웹 기술은 상당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었다. 그리고 몇몇 사람은 이미 주어진 자유 속에서도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맹목적으로 중독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인터넷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상상하는 것 이상의 '자유'를 우리에게 되돌려 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찌보면 이것은 그리 즐거운 변화가 아닐 수도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왜냐면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은 마치 백화점에서 너무 많은 물건 앞에서 어떤 물건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하고 코칭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차라리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지나치게' 보호받으면서 교육되어서 오로지 꿈은 선생님과 공무원 밖에 없는 대다수의 청년들에게는 말이다.

2009년 겨울로 돌아가보면 나에게도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었다. 취업을 포기하고 내가 원하는 길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나는 내가 선택한 완전한 자유에 몸서리 쳤고, 그에 따르는 인생에 대한 책임감에 완전히 압도 되었고, 두려워 했다. 태어나서 그런 두려움은 처음이었다.

사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에는 그 선택을 함으로서 불러올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생'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 선택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누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책을 왜 보냐고? 무슨 답을 그리 찾기에 책을 보는 거냐고?
나도 나의 답을 잘 몰랐기에, 다시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나는 대답한다.
"첫째로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읽는다.
두번째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통합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쉽게 나누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앞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이 방식이 나의 존재 방식이고 '살아남기 위해' 내가 만든 방법이다.

 
  1. 다시 봐도 2011.04.05 17:55

    이 책은 정말 좋은듯!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작년 읽은 책을 정리해 봤다.
100권 읽기를 채운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96권을 읽었다.
4권만 더 채웠으면 좋았을 껄..ㅋ
상당히 좋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에는 한번 더 표시하는게 좋을 것 같다. BOLD!

암튼 100권 읽기에는 아쉽게 실패했지만, 작년 한해는 더 많은 시행착오도 거치고, 책을 제대로 읽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깊이 있게 읽는 책과 가볍게 보는 책을 양분해서 다른 방식으로 독서하고 싶다.

올해 2011년 목표: 도해도서법 3권, 일반독서법 100권, 블로깅 50권! 목표닷~!



1월
탁월함에 이르는 창조적 노트의 비밀
대한민국에 사는 1%의 인간형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신과나눈 이야기
포지셔닝
체인지 몬스터

2월
타이밍파워, 오세훈
복잡계와 동양사상
몰입
스스로 행복한 사람
시스템 사고
인간과 우주경영의 비밀
타고난 성격으로 승부하라
4개의 통장
수면 명상
지금 이대로 완전하다

3월
마케팅 천재가 된 맥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세일즈 멘토 99.5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영업 9단 회사를 살리다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5분, 몰입의 기술
JUST ASK
달인

4월
포커스 리딩
알렉산더 테크닉
긍정의 습관
의식수준을 넘어서
독서노트
질문의 7가지 힘
제4의 불
3분 말하기 기술

5월
혼창통
오픈 포커스 브레인
호모 쿵푸스
깨어있기
디자인에 집중하라
싯다르타
2030년 부의 미래지도
호오포노포노, 가장 쉬운 길
Honesty (정직)

6월
이너게임
보랏빛 소가 온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평정심
성과를 위한 혁신
대화와 협상의 마이더스, 스토리텔링
오래된 나를 떠나라
소유의 종말
통합비전
2012 지구대전환
이너골프로 10타 줄이기

7월
돈의 심리학
당신의 기업을 시작하라
사랑에 대한 4가지 질문
호오포노포노의 지혜
오리진이 되라
멘탈리스트, 마음을 해킹하다
하루를 완성하는 시간, 아침 30분
과학콘서트
우리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8월
감정을 처리하는 3분 터치
꿈을 이루어주는 3가지 열쇠
트랜서핑의 비밀
감응력
지식의 단련법
(한번쯤은 읽어야할) 과학의 역사
자기혁신 프로그램
영혼의 잠재력 키우기
WHAT THE BIEEP DO WE KNOW?

9월
디테일의 힘
복잡계 개론
잠의 즐거움
제 5경영
The one page proposal
유태인 3000명에게 yes를 이끌어낸 협상
판매의 원리1
당신 자신이 되라
비폭력 대화
드림 소사이어티

10월
컬쳐쇼크
호오포노포노의 비밀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
양자나라의 엘리스
잭웰치를 움직인 3개의 원
인스퍼레이션
그림으로 배우는 생각정리의 기술

11월, 12월
셀프 오거나이징
스마트 스웜
카오스의 본질
물은 답을 알고 있다
혁신의 느린걸음
진실 대 거짓
과학이란 무엇인가

예전 아마 2월이었나? 3월이었나?
북카페에 앉은 자리에서 다 봐버린 소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데미안(세계문학전집44)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9년)
상세보기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는 나와 많이 닮았다.
그냥 데미안을 읽고 싯다르타를 읽은 후 나의 느낌은 그렇다.
다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대한 관점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물론 나 같은 사람이 많았기에 지금까지 많이 팔렸겠지? ㅎㅎ)
빛과 어둠을 나누어 보는 것이 아닌 빛과 어둠 그 전체를 느끼는 것..
밝기에 지향해야 하고 어둡기에 기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어둡기 때문에 밝음이 존재하고,
그렇기에 그 역도 성립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신의 존재 역시 그저 밝음이 아니라 밝음과 어둠 속에 존재하는
그 모든 존재여야 한다는 점.
오늘은 글이 이렇게 써지는 구나..^^ 조금 다른 느낌이다..

인상 깊었던 구절:

... 그는 너무도 정확하게 예전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집트에 대해, 인도에 대해, 미트라스에 대해, 아프락사스에 대해 너무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의 사랑은 이미 지구가 보았던 형상들을 매여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것은 새롭고도 달라야 한다는 것, 새 땅에서 솟아야지 수집되거나 도서관에서 길러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의 직분은 어쩌면, 나에게 해주었듯이, 인간이 그 자신에게로 이르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 들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것, 새로운 신을 제시하는 것, 그것은 그의 직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서 갑자기 예리한 불꽃같은 인식이 나를 불태웠다. 누구에게나 하나의 '직분'이 있지만, 그것은 그 누구도 자의로 택하고 고쳐 쓰고 그리고 마음대로 주재해도 되는 직분은 아니라는 것, 새로운 신들을 원한다는 것은 틀렸다.
세계에다 그 무엇인가를 주겠다는 것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이 체험에서 얻은 열매였다.
나는 자주 미래의 영상들을 가지고 유희했었다. 어쩌면 시인으로 혹은 예언자로, 혹은 화가로 혹은 어떻게든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을 역할들을 꿈꾸곤 했었다.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시를 짓기 위하여, 설교하기 위하여, 그림 그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또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시인으로 혹은 광인으로, 예언가로 혹은 범죄자로 끝장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반쪽의 얼치기였다.

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으로, 어쩌면 새로운 것에로, 어쩌면 무에로 던져졌다. 그리고 측량할 길 없는 깊은 곳으로부터의 이 던져짐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뜻을 마음속에서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이미 많은 고독을 나는 맛보았다. 이제 예감했다. 더 깊은 고독이 있으며 그 고독은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바깥에는 '현실'이 있었다. 바깥에는 거리의 집들, 사람과 시설들, 도서관과 강의실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 안에는 사랑과 영혼이 있었다. 여기에는 동화가, 꿈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차단되어 사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리는 생각과 대화 가운데서 자주 그 세계 한가운데서 살았다. 다만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과 어떤 경계선에 의하여 갈라져 다른 벌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다르게 바라봄에 의하여 갈라져 있었다.
우리의 과제는 세계 안에서 하나의 섬을 제시하는 것, 어쩌면 하나의 모범을, 아무튼 살아가는 다른 가능성을 알리는 것이었다. 내가, 오래 고립되어 있던 사람인 내가, 완전한 혼자임을 맛보고 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다시는 행복한 사람들의 연회를, 즐거운 사람들의 축제를 갈망하지 않을 것이다. 결코 다시는, 다른 사람들의 연대를 보고 시셈이나 향수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세상의 눈에는 이상한 사람들, 위험한 광인들로 비칠지도 몰았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깨어난 사람들, 혹은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어느 종교든지, 어느 구원론이든지 애초부터 죽어 있고 무익했다. 우리가 의무이자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이런 것이었다. 불확실한 미래가, 그것이 가져올 어느 것에나 우리가 준비되어 있음을 발견할 만큼 우리들 누구든 그토록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 속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그토록 완전히 따르며 기꺼이 살리라는 것.

... 인류가 가는 길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그들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일 자세였기 때문에, 오로지 그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었어, 그것은 모세와 부처에게 적용되고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에게도 적용되지, 어느 조류에 봉사하느냐, 어느 극의 다스림을 받느냐, 그것은 자신이 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한번은 그녀가 나를 한켠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당신이 믿지 않는 소망들에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아요. 그런 소망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완전히 올바르게 소망하든지요. 한번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서 성취를 확신하도록 그렇게 소망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성취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소망하고, 다시 후회하고 그러면서 두렵지요. 그 모든 것은 극복되어야만 합니다. 동화 하나를 들려드리지요.'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별과 사랑에 빠진 어떤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청년은 바닷가에 서서, 두 손을 뻗고 별에게 기도했고, 별에 대해 꿈꾸고, 그의 생각은 별에게로 기울였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혹은 안나고 생각했다. 별은 인간의 포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성취에 대한 희망도 없이 별을 사랑하는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는 이 생가겡서 포기와 말없는, 변함없는 고통, 자신을 개선시키고 정화시킬 고통에 관한 삶 전체를 다룬 시를 지었다.
그의 꿈들은 그러나 모두 별에게로 쏠렸다. 한번은 그가 다시 밤에 바닷가 높은 절벽에 서서 별을 쳐다보며 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런데 극도로 커진 그리움의 한순간 그는 별을 향하여 펄쩍 뛰어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뛰어드는 순간 번개같이 퍼뜩 그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결국 그는 으스러진 채 바닷가에 떨어지고 말았다. 사랑한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만약 뛰어드는 순간에, 성취를 굳건하게 확실하게 하는 영혼의 힘을 가졌더라면, 그는 위로 날아올라 별과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되요' 그녀가 말했다.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나의 느낀 점:
처음에는 책의 내용이 별 재미 없을 것 같아서 보지 않았던 책인데, 딱 30페이지를 읽고 나니 '정말 놀랍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을 몰입해서 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도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있는 강사라든지 코치가 되고 싶은 사람인데, 그런 나에게 가장 부족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이 책과 함께  '다큐 프라임 - 이야기의 힘 1,2,3부'를 같이 보면 정말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다큐프라임
채널/시간 EBS 월~수 밤 11시 10분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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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간이 많이 없어서 이 책의 절반만 내용을 옮겨 놓고, 이번 주 안으로 나머지 중요한 내용을 적을 생각이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바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겠다 ^^


스토리텔링(대화와협상의마이더스)
카테고리 자기계발 > 화술/협상 > 설득/협상
지은이 아네트 시몬스 (한언,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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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상깊게 본 구절:

서문
당신은 당신의 논점이 개인적이 아니라는 것을 타인에게 입증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당신 영혼의 일부를 잘라낼 필요도 없다. 사실,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바로 당신의 영혼뿐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하라. 왜냐하면 세상이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으니까.

p.23
사람들이 무조건 당신의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 전에 사람들은 항상 두 가지의 의문을 갖게 된다.
'나에게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왜 이곳에 있는가?' 이 의문들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 이상, 당신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제로다.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에 누군가가 개입하는 걸 싫어한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믿을 만하다'라고 무조건 선언하면, 오히려 의혹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렇다면, 평소에 함께 공유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나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나는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보여줄 만한 경험담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말을 듣는 행위'라 아니다.  어둑어둑해져 가는 밤, 조용한 오솔길을 당신과 함께 단둘이서 걷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길을 함께 걸으면, 늘 그렇듯 친밀감이 느껴지면서 결국에는 스스럼없이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이야기'는 청자 스스로가 느낌과 의사를 결정하도록 결정권을 부여해 준다. 이야기가 가진 진정한 비밀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야기는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당신의 이야기가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의 자유 의지로 '당신과 당신의 메시지가 믿을 만하다'는 결론에 스스로 이르게 될 것이다.

p.26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당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당신이 내린 결론과 같은 결론에 이르도록 고무하고, 당신의 말을 믿고 당신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되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신뢰한다. 그리고 일단 당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소화하기만 하면, 당신에 대한 믿음은 위력을 갖게 되고 강력해지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당신이 일일이 에너지를 공급해 주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스스로 알아서 다른 이들에게 되풀이함으로써 당신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상대를 이야기로 KO시키는 6가지 비밀]
당신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신이 믿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여주란 말인가? 다행히도 이 여론 조사가 힌트를 주고 있는데, 85%의 응답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공정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아주 간단한 일 아닌가?

사람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보여줘라.
그들이 당신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줘라.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적어도 3배 정도는 당신에 대한 신뢰도가 뛰어오를 것이다.

1.'나는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
개인적인 결함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라. '내 결점을 보여줄 만큼 내가 당신을 믿는다면, 나에게 당신의 결점을 보여줄 만큼 당신도 나를 믿을 수 있다.'라는 이론이 충분히 설명해 준다. 서로의 약점을 보여주고 그것을 헐뜯지 않을 수 있다면,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결론에 쉽게 다다르게 된다.

2.'나는 왜 여기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당신에게는 이런 이익이 있습니다'라는 말보다 '저의 이익은 이만큼입니다'라는 솔직한 말을 먼저 듣길 바란다. 당신의 이기적인 목표를 감출 필요가 전혀 없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용당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당신의 목표가 무엇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설사 당신의 목표가 이기적일지라도, 솔직한 태도를 취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진심으로 협력하려 들 것이다.

3.'나의 비전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
앞선 이야기로 인해 청중들은 당신을 편안하게 느끼고 신뢰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보여줄 차례이다! 참다운 비전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좌절을 내일의 희망의 빛으로 극복하도록 만드는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4.'감동적인 교훈'을 담은 이야기
이유를 먼저 설명해 주기 전에 기술을 가르쳐 주지 마라.

5.'실천할 수 있는 가지'를 담은 이야기
실천할 수 있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실례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그 실례를 보여줄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6. '나는 당신의 마음을 읽고 있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
'어! 내 마음을 읽고 있잖아!'라는 기분이 들게 하는 이야기를 누군가 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흥미를 가지고 기꺼이 빠져들 것이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대상에 대해 미리 연구를 해두자. 그들이 제기할지도 모르는 반박들을 미리 정리해두라.


책 소개:
 혼자있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성들의 심리치유에 관한 책..
난 비록 남자이지만, 앞으로는 여성성의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강함보다는 부드러움, 대척보다는 수용, 획일화보다는 자유로움..
많은 모임을 나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남자들은 모임을 나오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모임들의 '장'은 아직은 남자가 많다)
여자들은 여러 모임에 나오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설사 두려움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이겨내고 나온다는 점. 훨씬 더 사람과의 관계 맺음에 익숙하고, 진심을 말하려고 애쓴다는 점..
얼마 전 '초식남'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앞으로는 남자도 이러한 여성들의 긍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태도로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여성들도 남성성을 가져야 하겠지만 ^^)
무튼, 이 책은 혼자 읽기에 좋은 책!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플로렌스포크 (푸른숲,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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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조금 읽어보기: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살아 있는 한 혼자인 때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사는 법을 배울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던 구원의 환상을 버려야 했다. 그러자 점차 두려움이 걷히면서 혼자인 것이 더 이상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사는 삶의 숨겨진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수치와 외로움의 공간이 아니라 치유의 공간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내 안의 많은 것이 다시 깨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혼자라는 것은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광야가 아니라 사실은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는 왕국이었다. 혼자인 여자란 '자기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여자'다. 새로운 에너지로 내 길을 만들어가고 재정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는 고독의 기쁨과 충만함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주제를 짧게 말하면, 우리 여자들은 혼자 있는 것과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여자로서 홀로 서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인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장과 변화를 위한 자원과 기회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혼자임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혼자임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혼자인 것과 외로움은 다르다.
혼자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타인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일간 정의는 사실 '자신의 존재 안에 머무른다'는 의미를 담아내지 못한다.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혼자라는 것을 다른 시각에서 보기 위해서라도 혼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혼자 있지 못한다는 것은 혼자인 사람을 실패한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수치심은
우리가 누려야 할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오히려 혼자임을 받아들이려는 의지는 친밀한 관계를 맺는 능력을 강화해준다.

많은 여성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대면하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피하려고 할수록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려는 욕망은 집착으로 변해간다.

그러면 고독은 왜 필요한 것인가? 자기는 고독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잠을 자고, 쉴 수도 있으며, 새로운 정보와 경험을 분류하고 통합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고, 경우에 따라서는 종교적인 경험을 통해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충동과 고독을 통해 자기 본연으로 돌아가려는 충동, 이 두 가지 충동 모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치심은 지금의 자기 자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과 맞물려 그들이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도록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러나 충분하다는 것은 숫자로 나타낼 수 없다. 충분하다는 것은 수평선처럼 무엇을 하든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든 결코 닿을 수 없는 목표다.

수치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법
먼저 수치심과 두려움이 나의 감정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그렇게 태도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기 시작한다. 비밀을 털어놓고나선 예전처럼 수치심에 시달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인정하고 드러냄으로써 깊은 깨달음의 과정을 통과한 것이다.

같음과 다름의 상호작용은 일생을 통해 일어난다.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 나는 다른 사람과 원래부터 분리된 존재라는 생각이 따라오게 된다. 그래, 나는 나야. 나의 유일함을 축하하는 순간, 나는 다른 사람과 분리됨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있는 존재일 뿐 아니라 혼자이기도 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책에 나오는 한 아이의 이름) '삐삐'처럼 성인이 된 우리도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어린 시절의 능력을 다시 불러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능력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경험을 놀라워하는 감정이다. 여덟 살이 된 비키에게 엄마는 접시 닦는 법을 가르쳤다. '나는 설거지에 집중했어요.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경험은 신성하게 느껴졌으니까요.' 이제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접시 닦는 일은 매일 해야 하는 가장 즐겁지 못한 잡일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경험의 놀라움과 신선함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회화되어가는 과정과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상처 때문에 결국 우리의 자기는 숨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말하는 대신 착한 소녀나 나쁜 소녀가 되려고 노력한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랑 따위에는 관심 없다는 듯 살려고 한다. 극단적인 경우 상실과 상처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거짓 자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자아의 씨앗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당황하게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이 나머지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저주를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거부할수록, 그 아이를 지키고 싶은 강한 갈망과 고통받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갈망이 서로 싸움을 일으킨다. 어린 시절을 잊으려하는 노력 이면에는 어린 시절 속에 머무르고 싶은 충동이 숨어 있다.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는 기술, 즉 어린 시절의 세계를 정리하고 해독하고 어른의 삶에 통합하는 기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성장과 자유의 기쁨은 잃어버린 비밀스러운 부분, 바로 아이의 마음을 되찾을 때에 가능하다.

상실로 인해 고통을 겪은 아이는 커가면서 점차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아이로서 어른의 사랑과 보호를 너무도 필요로 했지만, 그것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그때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절실히 결핍을 느끼면서도 무력하기만 한 것이 어린 시절 상실의 특징이다. 어른은 도울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어린 세계로 되돌아가게 안내해주는 나침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상실의 원인이 무엇이든 아이는 잘못한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더 사랑스러웠다면 이러한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믿음은 자아 존중감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의심과 비난이 강해진다.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 안에 있는 공허함을 마주할 때 더욱더 심해진다. 그러나 두려움과 불안과 함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면, 우리 목을 조르던 이 감정들에서 점차 자유로워지기 시작한다. 고독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껴안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게 되고 '자기'는 자유를 숨 쉬게 된다. 그러고 나면 혼자 사는 것의 '예술'이 시작된다.

  1. 자유로운짜이 2010.07.28 17:33

    저는 서점에 혼자 가는 여잡니다.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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