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쓰는 리뷰입니다.

지난 번에 '왜 책을 읽는가?'라는 주제로 써 본적이 있는데요. 이번 주제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입니다.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주제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방법과 습관'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 책을 읽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다시 말해, 독서법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대단치는 않습니다. 그저  '조금 더 잘 읽기 위한' 저만의 고민과 노력을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댓글도 남겨 주시고, 자극도 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책 선정이 어려웠습니다. 워낙 다양한 곳에서 글을 빌려왔기에 마땅한 책은 없지만, 책을 읽는 법과 관련해서 고민하시는 분들께 하나의 책을 추천 드립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지식 경영인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독서 태도와 방법을 정리한 책,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입니다.    




1. 책을 읽기 전에 : 일단 사고, 가지고 다니기 

자문해 봅니다. "내 독서 생활에 있어서 '결정적 시기'는 언제일까?" 지난 번 글에서 말씀 드렸던 '군대 시절'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 시기는 '대학을 졸업하던 시점'입니다. (안타깝게도 학교는 제 인생에서 별 도움이 안 되었나 봅니다. ;;) 당시 저는 전공이 아닌, 새로운 삶의 목표를 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제 지식과 경험에 금새 좌절합니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1년에 100권. 그렇게 목표를 정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기존까지는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는 '취미 독서'를 했다면, 그 시점부턴 목적이 분명한 '전략 독서'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평소 읽지 않던 경제 경영, 마케팅, 사회학, 미래학 등의 서적을 접합니다. 무엇보다도, 제 독서 생활에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 하게 됩니다. 책을 한권 한권 구입하게 된 것이죠. 


"이제부터는 평생을 살면서 5~6번은 직업을 바꿔야 한다. 대학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독서밖에는 살아나갈 길이 없다. 취미독서가 아니라 기획독서다. 지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전략독서를 해야 한다. 지식의 지평을 넓혀가야 언젠가 나도 모르게 뛰어들게 된다."  (최재천)

책을 왜 구입해야 할까요? 무언가를 산다는 것은 그 만큼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경험에 의하면, 책을 사지 않고 좋은 독서가가 되는 길은 요원합니다. 책을 구입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첫 번째, 좋은 책을 고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책을 선택할 때는 ‘기준’이 없습니다. 뭐가 좋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차곡차곡 힘들게 모든 내 돈, 치킨을 사먹을 수도 있는 그 돈을 가지고 책을 사다보면 알게 됩니다. "이 책을 산건 정말 최악의 선택이었어!" 빌려 읽으며 단순히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것과 피같은 내 돈이 나가는 건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선구안은 그렇게 길러집니다.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선, 그만큼의 투자도 필요한 법이죠.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값은 싼 편이다.  책 한 권에 들어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다치바나 다카시의 작업실


책을 사면 얻는 두 번째, 보고 싶을 때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 나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 깊은 의미와 즐거움을 주는 책. 이런 책들은 한번 읽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저 역시 무작정 많이 읽던 시기를 지나, 요즘에는 '좋은 책을 반복해서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단 것을 느끼고 있는데요. 책을 사지 않으면 그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 돈을 아껴서라도 책을 사시길 권합니다. 물론, 이왕 구입할 거라면 리브로에서 :) 

"혹시 예전에 읽었던 책이 문득 생각나서 다시 한번 읽어본 경험이 있는가? 그것은 지적생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어떤 책이 읽고 싶어졌을 때 그 책이 곁에 없어 읽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귀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거은 둥뇌에 그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몸이 어떤 영양소를 필요로 해서 음식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 읽은 책이라도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기 쉽상이다. 하지만 좋은 책은 희미하게라도 기억에 남아 있으면서 가끔식 생각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찾아 읽은 책들은 나의 지적생산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귀한 보물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책은 반드시 나만의 장서로 소장하며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 (지적생활의 발견) 

그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좋은 책을 사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주 쉽습니다. “책을 가지고 다니면 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이라, 고사성어를 하나 가지고 오겠습니다. 예전에 오나라에 여몽이란 장군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무공을 세워서 장군이 되었으나, 학식이 부족하여 손권이 책을 권합니다. 그러나 여몽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었고, 손권은 후한 광무제의 예를 들며 “손에 책을 들고 다녀라. 그럼 책을 읽게 될 거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수불석권'이란 고사가 등장합니다.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는다’는 말인데요. 

독서 습관의 두 번째는 책을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투리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늘부터 난 달라지겠어!’하고 무리하게 책을 읽다가 이틀만에 포기하는 것보다 그냥 가지고 다니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저 내 몸에서 책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워 졌다고 느낄 때, 한자 한자 읽어 나가면 됩니다. 그것이 책을 펴기 전 가져야 할 습관입니다. 정리하면, ‘책을 가치있게 여기고, 먼저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 책을 펼치고 나서 : 펜을 들고, 핵심 구조를 그리기  

앞서 '책 구입'의 중요성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사지 않습니다. 뉴스를 찾아보니, 작년 한 가구가 책을 사는데 한달 평균 1만 5천원을 썼다고 합니다. 요즘 책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입니다. 문제는 매년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비슷한 가격대의  '치킨’ 보다 대접받지 못하는 사실에 의문이 남습니다. 어쩌면 아직 책이 주는 가치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글을 지으려는 사람은 먼저 독서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예를 들어 우물을 파는 사람은 먼저 석자의 흙을 파서 축축한 기운을 만나게 되면또 더 파서 여섯 자 깊이에 이르러 그 탁한 물을 퍼낸다또 파서 아홉 자의 샘물에 이르러서야 달고 맑은 물을 길어낸다마침내 물을 끌어올려 천천히 음미해 보면그 자연의 맛이 그저 물이라 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또다시 배불리 마셔 그 정기가 오장육부와 피부에 젖어듬을 느낀다그런 뒤에 이를 펴서 글로 짓는다이는 마치 물을 길어다가 밥을 짓고희생을 삶고고기를 익히며또 이것으로 옷을 빨고땅에 물을 주어 어디든지 쓰지 못할 데가 없는 것과 같다고작 석 자 아래의 젖은 흙을 가져다가 부엌 아궁이의 부서진 모서리나 바르면서 우물을 판 보람으로 여기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p.29 다산 선생의 지식경영법)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위백규는 독서의 정수를 맑은 물에 비유합니다. 책에서 가치있는 지식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를 어느 곳에서나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하지만 대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슬슬 읽어내며 얻은 탁한 물을 보고, 쓸모 없다고 단정하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책의 정수를 진정 맛보기 위해선, 다소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잘' 읽어야 합니다. 그냥이 아니라, 좀 더 능동적으로, ‘질문을 품고’  읽는 것이 독서의 시작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형광펜'입니다. 저에게 형광펜은 곧 '질문'입니다. 처음 형광펜을 들았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아찔한 기억인데, 저는 정말 제가 바보인줄 알았습니다. 한 3개월 정도 펜을 들고 멍하니 책을 보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중요한 문장에 줄을 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행위가 처음엔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책을 읽고 머리가 살짝 지끈거리지 않다면, 아직 책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잘 읽는다는 것은 숙련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게 하면 책 읽는 능력이 겉으로 드러난다. 즉 밑줄 그은 곳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내용을 이해했는지 알 수 있다. 핵심이 아닌 부분에만 밑줄이 쳐져 있다면 독서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P.38 독서력)

"밑줄을 긋는 일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책 속의 내용과 연결시키는 행동이다. 단지 책을 읽기만 하면 아무 변화가 없기에 독서는 수동적인 행위가 되기 쉽다. 어디에 밑줄을 그을지 생각하면서 책을 읽을 때 비로소 독서는 적극적인 행위가 된다. 실제로 밑줄을 그을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판단이 거기에 들어가고 남기 때문이다. ...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책 속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한 문장을 발견하는 일이다. 단 한 줄도 눈에 번쩍 뜨이는 문장이 없다면 그 책은 자신과 인연이 없는 것이다."  (P.147 독서력)

여러분은 책을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저에겐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이 핵심인가?"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입니다. 책의 핵심을 간파하기 위해선, 일단 그 구조를 추려내는 힘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분들께 권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바로 '구조도 그리기'입니다. 특히 소설이나 에세이 보다는 경제 경영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도움이 됩니다. 단순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한장으로 표현한다면?"란 질문에 답하면 됩니다. 핵심 요소를 추리고, 관계도를 그리는 활동입니다. 쉽지 않지만, 의미있는 작업입니다. 

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매주 1권씩 책을 읽고 결과물을 남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익힐 수 있습니다. 당시 훈련했던 것이 지금도 새로운 기획을 하거나, 과정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도움을 줍니다. 당시에 몇 가지 예시를 찾아보았는데요. 아주 유치하고 지저분하긴 한데, 몇 장 남아있네요. 부끄럽지만, 그냥 공유합니다. 

서비스 디자인 교과서 / 전략적 공부기술


노는 만큼 성공한다 (김정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줄을 긋고, 구조도를 그려보자.’ 그렇게 읽은 책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필요 시 언제든 꺼내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가치를 느끼면 책을 사는데 돈이 아깝지 않게 됩니다. 독서가가 되는 길에 접어든 것이죠. 

능동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을 던지며 읽어 내려가라” 


3. 책을 덮고 해야 할일 : 함께 읽고, 글을 쓰기 

처음 책을 읽을 때, 분명한 목표는 도움이 됩니다. '책을 좀 읽은 것 같은’ 느낌보다는 ‘실제로 읽은 기록’을 믿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죠. 대부분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니까요. 앞서 말했듯 제 첫 목표는 1년에 100권 읽기였습니다. 그것만 해도 충분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개인적으로 독서 습관을 만드는 초기에는 질적 독서 보단, 양적 독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어려운 책을 힘겹게 보는 것보단, 관심있는 책을 즐겁게 쭉 읽어나가는 것이 습관을 만드는 데 많이 도움 되었습니다.

간혹 “책 읽을 시간이 어디있어요?”라는 분들이 있는데요. 이건 관점이 좀 다릅니다. 시간은 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나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기 위해서 시간을 만드는 것’이 맞습니다. 저 역시 평소엔 시간이 없어서 주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합니다. 집에서 회사까지 보통 1시간이 걸리는데, 그렇게 하루 2시간씩 읽을 수 있습니다. 보통 1시간에 50-60페이지 정도 읽게 되는데요. 일주일에 이론상 500-600페이지가 가능합니다. 주말을 제외하더라도 충분히 일주일에 1권은 가능하더군요. 결혼한 지금은 어렵지만, 주말에 시간이 있는 분들은 카페에 가보는 것도 좋습니다. 혼자 책 읽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이 없는 사람이 책을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추천하는 것은 ‘함께 읽기’ 그리고 ‘글쓰기’입니다. 독서 모임에 참가해 보신 분들이 계신가요? 책을 읽고 함께 생각을 교류하는 활동은 독서를 습관화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됩니다. 저 역시 2010년부터 크고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서로 좋은 책을 권할 수 있어서 좋고, 또 관계 그 자체가 기분좋은 자극이 됩니다. 저희 회사 독서 모임에 참여한지도 10개월 가까이 되는데요. 개인적으론 정말 즐겁고 의미있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독서의 궁극은 바로 ‘글쓰기’입니다. 최근 인기 많았던 책이죠. ‘대통령의 글쓰기’를 보면, 역대 대통령도 독후 글쓰기를 강조합니다. 

“김대통령은 독서의 완결이란 읽은 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데까지라고 했다. 노 대통령 역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영감을 정책에 반영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책으로 집대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대통령의 글쓰기) 

책을 정리하기 전엔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이건 중요합니다.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잘쓴 글과 못쓴 글은 없습니다. 안쓴 글과 쓴글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저도 일단 씁니다. 그렇게 조금씩 쓴 글을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공유하는 것도 좋습니다. 응원도 되고, 또 자극도 되거든요. 정리하자면 '함께 읽고, 나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 정도가 되겠네요. 

지금까지 2부에 걸쳐서 독서 방법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눠봤습니다. 지금까지 읽다보면 분명 어떤 분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주로 소설책이나, 인문학 책을 읽는데, 그렇게 굳이 목적과 방법을 가지고 읽어야 하나요? 그냥 즐겁게 읽으면 안 되나요? 저는 답변 드립니다. ‘그 또한 완벽한 독서입니다.'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폰티지아는 말한다. “배우기 위해, 즐거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연설을 하기 위해, 회상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아무런 목적 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현재를 읽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 독서하라.”

이런 독서는 중요합니다. 그 자체로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지혜는 균형에 있죠. 지금까지 그렇게만 책을 읽어왔던 분들껜 '전략적 독서'도 쓱 권해봅니다. 반대로 늘 효율성에 입각한 독서를 한 분들껜 '목적 없이 읽기 좋은' 소설이나 인문학 책을 권합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나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것. 그것이 제가 책을 읽어나가는 방식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쁜 분들을 위한 3줄 정리

1. 책 읽기의 시작은 책을 사고, 일단 들고 다녀보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론, 그것이 좋습니다.
2. 책을 읽을 땐, 펜을 들고 핵심 구조를 그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좀 더 능동적 자세를 취해보는 것이죠.
3. 책을 덮고 나선, 함께 토론하고 글을 써보는 것이 좋습니다. 서로를 통해 자극받는 것이죠 :)







#1. 독서의 영향이란 어리석은 신화에 불과하다. 

P.28-29
몇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같은 문장에 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 사람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독서는 우리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한다. 어쩌면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원래 비열한 인간은 라신을 읽는다 해도 비열한 인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반대로 선한 사람이 나쁜 책을 읽는다 해서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독서의 나쁜 영향은 그것이 주는 좋은 영향력만큼이나 어리석은 신화에 불과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그러할 테지만 세상은 유익한 것만을 사랑한다. 이런 세상에서 책은 생존하기 위한 길을 걸어왔고, 그래서 문학 또한 도덕적이 되거나 비도적적이 되어야 했다. 


-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다. ‘독서는 우리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한다.’ 경험에 의하면, 한 두 번의 독서로 대단한 인생 반전을 노리는 사람일수록 진짜 독서가가 아닐 확률이 높았다. 독서가는 커녕, 단지 책을 통해 자신의 성공과 영리를 추구할 뿐이다. 아마추어 독서가인 나의 기준에서, 진짜 독서가는 책을 통한 변화에 그리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읽어나갈 뿐이다. 독서가들에게 독서는 마치 삼시새끼와 같다. 아무리 좋은 밥이라도 한 두끼의 밥이 우리의 건강을 변화시키지 못하듯, 책도 그렇다. 정말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심지어 ‘꾸준한 독서’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진 못한다. 그저 아주 살짝 더 온전한, 인간다운 인간,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운이 나쁘면 이것도 요원하다. 그게 내가 책을 읽으며 얻는 답이다. 오랫동안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도 많이 변했다고 '믿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난 여전히 몇년 전에 감동 했던 문장에 새삼스레 또 놀라고, 줄 쳤던 곳에 또 줄치고, 그렇게 위로받는다. 언제나 철이 들까. 언제나 좀 더 나아질까. “수 많은 책 들아, 지금까지 너희는 뭐 했니?” 라고 ‘근무 태만’을 묻고 싶을 지경이다. 밥값이 아니라 책값도 못하는 것들. 그럼에도 또 책을 산다.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내 모습에 대한 놀라운 자각이며,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배움이다. 쉽게 기적을 꿈꿔선 안 된다. 


#2. 책은 독자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P.30 
책은 독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저자를 위한 것도 아니다. 책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책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독자를 위해 만든 책은 독자를 소비자로 간주하고 무언가 의도를 품는다. 그 의도가 누군가를 즐겁게 하려는 거시든, 설득하려는 것이든 그런 책은 친절해진다. 문제는 책이 도구로 전락하면서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 볼 때 책은 본래 주제에서 멀어진다. 독자는 독자대로 자신이 자유롭게 판단하고 선택하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는 모욕을 느낀다. 


- 나는 세상의 책을 두 종류로 나눈다. ‘팔리기 위한 책’과 ‘읽기 위한 책’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전자의 책은 ‘수단’이고 후자의 책은 ‘목적’이다. 팔리기 위한 책의 목적은 ‘사람들 손에 쥐어지는 것’이고, ‘읽기 위한 책’의 목적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뭐 그래 봐야 밥 한끼 밖에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책은 '뇌의 소중한 밥이자, 반찬이며, 국이다’ 그 목적을 잃어버린 책들은 세상에 분명 존재한다. 아직 책 한 권 써보지 못한 입장에서, 책을 쓰는 저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다소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래의 나에게 말할겸 한 마디 하고 싶다. "니가 나중에 무슨 책을 어떻게 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나무에 대한 예의는 지키자. 이 자식아."

종종 그런 책을 본다. 책의 내용이나 메시지보다 책이 되어버린 나무가 생각나는 책. 사람에게 잘못된 정보는 주는 책, 대중을 속이기 위한 책, 자기 변명을 위해 존재하는 책. 책을 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영달을 꽤하는 책. 책보다 나무가 먼저 생각나게 하지는 말자. 그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어느새 나는 ‘책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나의 목적은 ‘글을 쓰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치약을 짜듯 나의 뇌를 쭉 짜면 글이 쏟아지는 그런 사람. 홀로 독방에 갇히더라도, 혼자 글을 쓰고 그걸 읽으며 자족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나의 목표다. 별거 아닌거 같은데 참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책을 하나 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3. 이기심에서 책을 읽지만, 우린 결국 이타심을 얻게 된다. 

P.39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이타심이다. 애당초 책을 읽을 때 이타심 같은 것은 원한 적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 이것이 바로 책의 습격이다. 내가 갈구하는 것. 나는 피해자고, 책은 가해자다. 문제는 피해자는 가해자의 일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어디서 얻어 맞을지 알 수 있을까? 그렇기에 언제나 나는 기습 당한다. 예를 들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을 때 그랬다.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책을 펼쳤다. 그리고 나는 ‘아프가니스탄’ 한 가운데 놓여졌다. 그들의 삶이 들어왔고, 없었던 관심이 생겼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얻었다. 물론, 영화도 그림도 이 역할을 한다.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 바로 ‘타자 되어보기’다. 하지만 책 처럼 충실한 자는 없다. 상상하게 하고, 공감하게 하는, 그래서 ‘타인’이 되어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이타심을 원하지 않더라도 얻게 되는 것이 독서이며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4. 책은 평화롭게 쉴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P.42 
책이 경전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책은 신앙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며, 작가 또한 신이 아니다. 우리는 작가를 사랑할 수도 있고, 난도질을 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죽은 자들이라도 평화롭게 쉬도록 놓아두는 것에 반대한다. 평화 속에서 영면하도록 내버려진 작가는 이 세상과의 인영이 완전히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

- 위대한 책은 걸레가 되어야 한다. 유명한 책일수록 더 많이 읽혀지고, 난도질 당하고, 잘리고, 죽는다. 그리고 부활한다. 새로운 컨텐츠로. 그렇지 않은 책도 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비판하지 않는 책도 있다. 그런 책은 그렇게 멀쩡하게 죽는다. 책은 난도질 당해 살아나거나, 멀쩡하게 죽거나. 이 두 가지 결말을 기다리며 태어난다. 책도 이럴진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마찬가지 아닐까. 세상과,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의외로 쉽다.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싸울 일도, 다툴 일도 없다.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이 나는 두렵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육받은 대로, ‘눈에 띄지마’ ‘중간만 하면 된다’라는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어느새 그렇게 살기가 싫어졌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툰다. 하지만, 멀쩡하게 죽기는 싫다. 난도질 당해 살아남고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이다. 


#5.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답변

P.91
왜 책을 읽는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왜 책을 읽는가? 자기 울타리 안에 갇혀 편견 속에 살면서 무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어둠은 인식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문학의 일부이다. … 우리는 숨기고 싶은 자신의 결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 

- 마지막 질문.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처음에는 뭐라도 해야 할거 같아서 읽었고, 그것은 어느새 즐거움이 되어 버렸다. 운동도 모르고, 술과 담배도 모르는 나는 인생에서 즐거움이 별로 없다. 그 중 하나가 책이다. 그런 사소한 즐거움을 느끼지만 가끔 ‘커다른 기쁨’도 데리고 온다. 언제 기쁠까? 하나는 ‘발견’이다. 하나의 책을 보고, 그와 연결된 다른 책을 볼 때의 즐거움. 혹은 어떤 책을 보고 그와 전혀 상관없는 책을 보면서 예전의 책이 이어지는 느낌들. 그렇게 책과 책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관성을 '발견'할 때 나는 커다란 기쁨을 맛본다. 두 번째는 ‘깊이’다. 나 혼자선 도달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생각과 성찰에 닿을 때, 그때 경험하는 전율이 있다. 대부분 책의 인도로 따라 가다 보면 얻게 되는 부산물 들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본다. 그 외엔 달리 딱히 할 일도 없고, 이보다 즐거운 일도 없기에. 





#6. 무언가를 가르치는 책들에 대한 혐오

P.94 
나는 문학을 향한 지독히 편파적인 애정 때문인지 무언가를 가르치는 책들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 가르침을 목적으로 하는 책들은 문학을 타락시키는 것만 같다. 나는 책에서 배우기보다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선호한다. 

-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사실,이 말을 이해하기 까지 꽤 걸린 것 같다.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지금은 ‘가르치는 것’과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큰지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가르침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책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기억 남는 예시가 있다. 우연히 정유정의 ‘종의 기원’과 조정래의 ‘들풀도 꽃이다’라는 책을 함께 읽었다. 종의 기원을 읽을 때, 그 이야기는 나에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내 삶을 반추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라고 되돌아볼 수 있었고, 내 주위 사람들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조정래 작가의 책을 볼 때는 뭔가 ‘탁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고, 계속 화자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래야 한다고. 아니, 저래야 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욕심. 그 욕심이 빤히 보이는 책. 아무리 그 메시지가 의미있더라도, 그 욕심 때문에 진의는 파악되지 않았다. 그리고 피곤했고 책을 덮었다.  


#7. 독서는 선이 아니다.

P.100 
독서는 선이 아니다. 어린이에게는 물론 어른한테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라는 말을 듣자마자 독서에 대한 마음이 싹 사라진다. 

- 내가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은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위인전이 있었다. 남들 다 가지고 있을 만한, 그런 평범한 위인전이었다. 다 합쳐서 60권 정도가 되었을까. 나는 그 위인전에 관한 한 대단한 편식가 였는데, 내 마음에 든 편만 골라보기에 바빴다. 10명도 안 되는 위인들을 반복해서 읽었고, 나머지 위인들엔 손도 대지 않았다. 굳이 왜 안 읽었냐고 하면, 이름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은 위인들을 뭐하러 읽어야 하냐. 그런 생각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편애했던 2명이 있다. 바로, 김유신과 이순신이다. 남자라면, 역시 장군이지. 어럼픗 기억나는 어느 주말이다. 내가 엄마에게 가서 "엄마 나 이순신 이거 5번도 넘게 읽었어!"라고 말했다. 엄마는 아이고 잘했다고 칭찬했다. 별거 아닌 기억이다. 하지만, 나는 기뻤다. 엄마는 그 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에게 그 어떤 책도 읽으라고 권하지 않으셨다. 만약, 그때 엄마가 화를 내며, "왜 그것만 읽어! 너 자꾸 편식할래! 남은 책은 다 버릴꺼야?"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책을 읽지 않을꺼란 극단적 결과까지는 아니어도, 지금보다 덜 흥미로워 했을 것은 분명하다. 책은 놀이와 같다. 철저히 초대 받아야 한다. 거절할 자유도 그의 것이어야 한다. 선택할 수 없을 때, 독서라는 놀이는 노동이 되고 의무가 된다. 독서는 결코 선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놔 두라고' 권한다. 혹은 먼저 읽던가. 독서를 권하는 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많은 경우에, 그건 그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마치 누가 나보고 밥 먹으라고 소리 지르는 순간, 식욕이 싹 사라지는 것처럼. 


#8. 어쩌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까? 

P.216 
책을 읽으며 열정의 도가니에 빠지는 것은 종종 작가가 되기 위한 징후다. 읽고, 또 읽고, 자꾸 읽으면 거의 자동으로 쓰는 단계에 이른다. 어쩌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까? 먼저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일종의 모방작이란 말인가? 책 읽는 사람이 없는 사회에서는 글 쓰는 사람도 없다. 

- 몇년 전에 우연히 인상깊게 본 동화책이 있다. <책 먹는 여우>라는 책인데, 그 여우는 책을 읽고 나면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꿀꺽 먹어 버린다. 서점에서도 먹고, 도서관에서도 먹고. 결국 그러다가 경찰에 잡혀서 감옥에 갇힌다. 형벌은 독서 금지. 어떻게 했을까? 여우는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고, 직접 글을 쓴다. 결국 자신이 쓴 글이 가장 맛있다는게 결론이다. 나는 아직 동의하진 못하겠다. 내가 쓴 글보다 다른 훌륭한 작가들의 글이 더 좋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내 글도 좋아지고 있다. 언젠간, 적어도 나에겐, 가장 맛있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또 노력한다. 


#9. 유년기에 광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의 운명

P.217 / 유년기에 광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필경 작가가 될 운명이다. 만일 그 꿈이 실현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 위대한 독자가 작가의 꿈을 접은 것이다. … 명심할 것은 타인의 책이 내 책의 막힌 곳을 뚫어주었다면, 나 역시 내 책의 막힌 곳을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 "내가 이러려고 글을 쓰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때때로 자괴감에 빠진다. "이 글이 어떤 가치를,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그럴 때 되짚어가며 읽어야 할 문장이다. 맥락을 좀 바꿔보자.  "타인의 책이 내 인생의 막힌 곳을 뚫어주었다면, 내 책도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받았으면, 다시 돌려주는 것.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세상에 놓여졌고, 무언가를 소비하고 파괴하면서 나를 유지시켰다. 그랬다면, 나 역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장 정당한 사유, 사색 

P.255 
사색이야 말로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가장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결국 독서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피리 부는 사람 앞에 놓인 뱀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반대로, 사색을 제외하고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는 없다. 또한 깊은 독서는 그 자체로 사색을 이끌어 낸다. 평소의 나의 생각으론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독서는 도달하게 한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건을 경험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에 나를 닿게 한다. 그렇제 나의 지평은 넓어진다. 그렇기에, 나는 사색과 독서를 따로 분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어떤 자극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깊이 향하는 것은 중요하다. '무작위적 연결'은 그때 발생한다.  



  1. 조아하자 2017.01.15 22:52 신고

    사실 저도 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실제로 변화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정말 최악의 제 자신에서 최악을 조금 벗어난 제 자신으로 변한 것 정도? 책읽기 전에 저는 뭔가 잘못되면 제 자신을 자해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책읽으면서 이거 하나는 고쳐졌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책 '미국 최고의 교수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의 저자, 켄 베인의 신작이다.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공부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다양한 대상을 상대로 조사했으며, 특히 내가 관심을 갔던 것도 조사 대상이다. 저자는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가진 혹은 좋은 학교를 들어간 사람들을 조사한 것이 아니라,  학교를 졸업한 뒤, 성장과 창조를 거듭하는 사람들을 선별했다.  


이 책의 결론은 이러하다. '학교는 우리에게 삶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 너무 많은 것을 암기하도록 요구한다. 최고의 학생들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스스로를 발견하려고 노력했으며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해 노력했다. 진정 원하는 것을 찾고, 공부하라.'


저 역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머릿 속에 남은 지식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시작된 나의 진짜 공부에 비교하면 그 전의 공부는 '그것이 과연 공부였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평생동안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공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즐겁게 봐주세요. 


PS: 아래의 글은 이 책의 목차와 내용을 제 나름대로 수정해서 다시 만든 편집본입니다. 책의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완전히 똑같은 문장'은 거의 없습니다. 제목도 맥락에 맞게 다시 바꾼 것임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0. 프롤로그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위대한 사람들을 만든 비법은 독서다. 다만 책을 읽을 때는 자신만의 주견이 있어야 한다. 주견 없이는 아무 책이나 읽는 난독에 빠질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주견과 '초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초서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주견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옮기는 것이다. 다산은 평생 '초서'를 실천했고,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할 수 있었다. 


- '생각의 자유'가 있고 '자기 확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다. 대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면 다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데, 읽은 책을 초서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길의 시작이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이제는 인터넷을 의미 없이 검색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보다 독서를 하고 자신의 노트북에 초서를 해 그 초서 파일을 검색하자. 초서 검색은 사색으로 이어지고, 사색은 창의적 아이디어 발상에 도움을 준다. 


1. 성공의 뿌리, 공부

- 우리는 학교를 졸업한 뒤, 생산성 높은 사람이 되어 성장과 창조를 계속해 나가는 인물들을 선별했다. 질문은 이것이다. 그들은 열정을 쏟을 대상을 어떻게 찾았을까? 교육으로 얻은 지식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일생을 보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조사했다. 


[실험] 학점과 이해력과의 관계

질문 : 물리학 개론을 듣고 나서 운동의 원리에 대한 이해도가 바뀌는가? (이해도 측정)

실험 : 600명에게 수업을 듣기 전 문제를 낸다. 대부분은 풀지 못한다. 그 뒤 학생들은 물리학 수업을 들었고 성적은 나뉘었다. 몇 달 뒤 학생들은 같은 테스트를 받았다. 중요한 사실은 학점이 운동 개념에 대한 실제 이해도와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위권 학생들은 그저 공식을 외우고, 정답을 계산하는 실력이 더 나았을 뿐, 실제 이해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학점이 낮은 학생도 마찬가지다. 

결과 : 핵심은, 성적은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진정한 지침이 되지 못한다. 즉, 학점과 이해력은 비례하지 않는다. 


- 학교에서 우리는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많은 것을 암기하도록 요구받는다.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정체성, 창의성, 이해력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좋은 성적이냐 깊이 있는 학습이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내 선택은 항상 후자다.


- 베이커 교수는 '능력의 통합'이라는 강의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성장이라고 말한다. 이 수업에 참석한 수 많은 학생들이 창의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그들은 자신을 이해할수록 자신감이 더 커졌고 결국 스스로에게 동기부여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교수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선 자기 내면과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흥분시키는 활동을 발견하고 열정적으로 매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끔은 두려운 상황을 상상해보라.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의 내면은 이미 죽어있을까?


- 최고의 학생들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그들은 다른 이들의 위대한 창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창의적 재능을 찾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거의 어린아이와 같은 열정으로 평범을 거부하고 미지의 세계에 달려들었다. 이러한 학생들과 평범한 학생들의 가장 큰 차이는 '인내심과 태도'의 차이다. 최고의 학생들은 과제에 훨씬 더 오래 매달리면서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모든 행위는 '성적'이 아니라 배우고 창조하고 성장하고 싶다는 '내적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학습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2. 공부란 무엇인가

- 무언가를 이해하고 다른 문제와 연관시키기 위한 암기는 그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지식을 머릿속에 억지로 집어넣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연구한 이들은 학교 교육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교육을 창조해 자신의 삶과 생각에 큰 변화를 일구어 냈다. 하지만 전략적 학습자들은 정해진 과정 외의 공부가 성적을 까먹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모험을 잘 하지 않는다. 그들은 '판에 박힌 전문가'가 되어 움직일 뿐, 창의적인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피상적 학습자와 전략적 학습자는 심지어 학교 생활에 대한 염증 때문에 불안감과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연구] 학습자의 3가지 유형

가설 : 대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3가지 학습법 중 하나를 취하며, 이에 따라 성과가 크게 좌우된다.

결과 : 한 편의 글을 주면서 읽게 하고, 이후에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요인을 조사함.

1) 피상적 학습자 : 나중에 받을지도 모르는 질문을 예상하면서 글을 암기하는데 집중함

2) 심층적 학습자 : 아이처럼 열정적으로 과제에 임해 분석, 종합, 평가, 이론화 같은 기술을 사용함.

3) 전략적 학습자 : 졸업이나 MBA 진학을 위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함. 자발적으로 배움을 찾지는 않음.


- 깊이 있게 배우려는 의도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독서법이나 학습법을 익혀도 목표에 다다르기 어렵다. 학습 기피 유형 (피상적) 학생들과 자아 지향적 유형 (전략적) 학생들은 진정한 의미의 이해도, 어떤 혁신적 창조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 


- 정규 교육의 폐해는 피상적이고 전략적인 학습법을 부추기고 깊이 있는 학습을 방해하는 것이다. 여러 사회과학자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외적 동기가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제 대가로 돈을 받은 학생들은 흥미를 잃어버린 반면, 자발적으로 과제를 수행한 학생들은 꾸준함을 보였다. 어린 나이에 우린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하고 '통제력 상실' 즉, 남에게 조종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서서히 어릴 적 호기심은 시들해지고 자신의 학습에 책임을 지지 않기 시작한다. 


- 그렇다면 외적 보상의 유혹을 물리쳤던 사람들의 비결은 뭘까? 그중 하나는 인생을 고찰해 자신만의 자질과 시각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의 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외적 동기에 휘둘릴 수 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 인생만의 특별함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통찰했다. 그 시각은 학습 과정에 힘과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며 연민과 정의감을 길러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움직였다. 





3. 리더들의 공부법

1) 메타인지 능력

-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사람들은 생각하는 동안 자신의 사고에 대해 생각한다. 이 과정을 '메타 인지'라고 하는데, 메타 인지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평정을 찾고, 하나의 편협한 분야보다는 여러 영역에서 배움을 얻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 우선,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치켜세우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이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 결과, 그들은 수많은 우여곡절과 사회적, 역사적 흐름이 만들어 내는 인생의 거대한 복잡성에 경외감을 품었다.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사람은 오만에 빠지기 쉽고, 인생이 술술 풀리는 사람은 연민과 정의감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너무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함과 자신감을 겸비해야 창의적인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 별다른 고민 없이 단 하나의 시각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자신만의 상자에 갇힐 수 있다. 그 상자에서 빠져나오려면, 우리의 뇌가 어떻게 현실을 구축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우리 뇌는 기존 모델에 따른 특별한 결과를 기대하지만, 그와 다른 일이 벌어질 경우 멈춰 서서 인식을 새롭게 쌓는다. 이러한 깨달음 순간을 '기대 실패'라고 한다우리는 생각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책이나 스승을 만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에 대한 도전을 회피하는데 아주 능숙하다. 어지간히 충격적인 기대실패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 다른 문화에 적응한 경험을 포함해 이미 많은 기대 실패를 겪은 사람들은 새로운 모델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더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안다.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자신과 다른 사회 집단의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도 문제 해결 능력이 더 높아진다. 기존의 정신 모델이 먹히지 않는 상항에 많이 접할 수록, 우리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이해력과 창의력을 더 넓혀 나간다. 그리고 더 즐길수록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두 그룹의 피실험자들에게 똑같은 과제를 주면서, 한 그룹은 '일'도, 다른 그룹은 '게임'으로 설명했다. '일'그룹은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지루해했지만, '게임' 그룹은 똑같은 활동을 재미있게 했다. 


- 우리에겐 자동적 사고와 반성적 사고가 존재하며, 우리 뇌는 반성적으로 고민하기 보다는 자동적으로 생각하며 남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려 한다. 자동적 사고의 3가지 패턴을 알아 두면, 거기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 자동적 사고의 3가지 패턴

1) 확증 편견 : 자신의 관점으로만 생각하는 경향. 우리는 자신을 남들보다 객관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2) 선명성 편견 : 단 하나의 선명한 사례에 팔려 모든 증거를 숙고하는 까다로운 숙제를 회피함. 딱딱한 통계보다는 선명한 피해자가 더 와 닿는다.

3) 프레이밍 편견 : 어떤 문제의 틀이 답변에 영향을 미침.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만 바꿔도 뇌 속의 인식이 바뀌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일 수도 있다.' '~일지도 모른다'와 같은 구절이 들어가면 학생들은 훨씬 더 다양한 답을 생각한다. 


2) 성장형 사고방식

- 누구나 실패를 한다. 창의적인 사람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포용할 줄 알며, 그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계속 움츠려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는 노력하면 두뇌의 능력을 높일 수 있다고 믿었고, 후자는 지능에 대해 고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후자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믿고 싶어서 그 생각에 반하는 일은 원치 않았다. 


- 사실, 두 그룹은 완전히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전자는 '문제 풀이'가 목표이고, 후자는 '똑똑해 보이기'가 목표이다. 노력에 대한 칭찬보다 개인적인 창찬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고정적 지능관을 갖기 쉬워지며,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그 반대다. 그들은 반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가 되기 위한 경쟁을 하지 않았으며, 그보다는 자신의 재주를 기르는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 실패를 잘 극복하는 사람은 결과에 책임을 지면서도, 어떤 상황이든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과 능력'의 조합을 '자기 효능감'이라 부른다. 다른 사람에 비해 성공이나 실패를 평가하는 조건부 자존감으로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기 힘들다. 창의적인 사람의 목표는 남들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꾸준할 수 있었고 자존감이 뛰어났다. 그리고 꾸준히 배우면 뇌가 변한다. 운동하면 근육이 발달하듯, 뇌 역시 실제로 자라고 새롭게 연결을 만든다. 


3) 질문과 토론

- 우리가 시민, 친구, 학생, 부모, 자식으로서 더 나은 판단을 하는데 교육이 도움이 될까? 문제를 구조화된 문제와 비구조화된 문제로 나누어야 한다. 답이 없는 비구조화된 문제를 잘 다루는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이 있을까? 이 들은 남의 생각을 듣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를 나눌 기회를 반기면서 자기 자신과의 대화 또한 자주 했고, 그러한 자기 인식을 활용해 생산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웠다.


- 창의적인 사람은 권위자의 주장을 무턱대고 믿지도 않았고, 인생관이 다른 사람의 생각도 무조건 무시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긴 하지만, 존 듀이가 말했듯, 리는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대해 생각하면서 배움을 얻는 다는 사실 또한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사고력의 사다리 7단계 (참고로 누구든 바닥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절대 절망하지 말라.)

<전반성적 사고 : 지식은 권위자에게서 나온다. 지식에 대한 의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1층 : '지식'이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관찰한 것이 절대적이다. 주로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생각이다. 

2층 : '지식'이란 '권위자가 갖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권위자들이 어떻게 그런 지식을 얻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어떤 개념 뒤에 숨은 힘을 보지 못한다.

3층 : '지식'이란 권위자에게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 한계는 존재한다. 남은 부분은 자신의 믿음으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유사 반성적 사고 : 증거를 이용하지만,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을 모르며, 결론은 결국 개인 특유의 것으로 본다.>

4층 : '지식'이란 불확실하고, 사람마다 자신만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약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를 갖는다. 

5층 : '지식'이란 증거에 대한 해석이다. 우리는 해석을 알 수는 있지만 결국 판단할 수는 없다. 이 단계는 수 많은 해석이 있음을 알지만, 쉽게 어떤 결론에 이르지는 못한다. 


<반성적 사고 : 여러 시각에서 증거를 평가하고 거기서 비롯되는 잠정적 해결책과 아이디어를 찾는다.>

6층 : '지식'이란 다양한 연구와 증거를 통해 내리는 잠정적인 결론이다. 해결책의 유용성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7층 : '지식'이란 '자신의 원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증거를 통해 합리적 결론을 끌어내고, 새로운 증거나 시각이 드러나면 재평가에 들어간다. 따라서 이와 같은 탐구는 지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필요로하며, 인생에서 어려운 선택을 할 때 그러한 이해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존 비그스의 '깊이 있는 학습을 정의하는 방법'에서 최고 수준의 학생은 한 조각이 더 큰 그림에 맞춰지는 원리를 이해한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문제를 분석하고 일반 원칙을 적용한다. 아이디어를 서로 비교, 대조하고 원인을 설명하며, 통합시킬 줄 안다. 또한 그 아이디어를 완전히 다른 영역에 적용할 줄도 알며, 새로운 이론과 가설을 도출하고, 그 가설을 실험하는 이런 저런 방법들을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지식에 대한 관점을 바꾸지만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반성하으로써 배운다.  





4) 자기인식과 자존감

- 낮은 자존감은 분명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지만, 지나친 자신감도 문제가 된다. 우리는 학생들이 좋은 성적으로 강한 자신감을 키운다면 더 많이 배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성적만으로 자신감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배움 자체보다 성과에 집착하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저 자존심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은 배운 내용을 창의적으로 이용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 심지어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탓한다. 


- 이러한 문제의 대안은 '자기 연민'이다. 자기 연민은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 부족함, 실패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그 경험을 더 넓은 세상사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자기 연민을 발휘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도 높아진다. 이것은 방종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과 결과에 기꺼이 맞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불안감을 덜 겪는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큰 목표를 세우고 남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 자신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라. 자신의 개성을 깨닫고, 남다른 그 조각들을 모아 다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창조하라. "다른 사람이 나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어린 시절에 무척 고마워하고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기회를 줬으니까요."


5) 다양한 지식의 통섭

- 창의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는지 알려면, 그들이 한두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들기 전에 왜 폭넓은 학습을 중시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우리가 만난 이들은 자신 외 무언가에 푹 빠졌다. 그리고 인문학, 예술, 사회, 자연 과학이란 풍요로운 금광에서 개념과 정보를 캐내 마음의 양식으로 삼았다. 그것들은 그들에게 모든 경험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 대학교에 들어가서 우리는 좋은 성적과 개인적인 성장이란 갈림길에 선다. 우리의 연구 대상들은 출세나 명예 이상의 것을 원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한다 해도, 경이로움을 느끼고 깊이 사색할 수 있는 배움을 추구했다. 그 중 한명은 도서관의 구석 자리를 찾아 매일 3시간씩 역사, 과학, 수학 등을 공부했다. 모든 과목에 깊이 있게 접근해,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고 분야 간 연결을 시도했다.  


- 최고의 학생들은 다양한 영역을 통합하는 역량과 폭넓은 관심사를 키웠지만, 결국에는 인생의 과업을 이루어 나갈 하나의 무대를 선택했다. 그들은 언제 집중해야 할지 잘 알았다. 그리고 한 분야를 파고든다고 해서 다른 모든 관심사를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활용해 한두 개 주요 분야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했다.  


"우리는 일생을 살다 가는 한 개인에 불과하지만, 책을 읽으면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험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글을 쓰는 법도 배울 수 있죠."


4. 최고의 학습법 정리

1) 진정 원하는 것을 발견하라. 

- 전공 선택은 대학교의 성적, 졸업 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정말 중요한 선택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중요하다. 참고로, 깊이 있는 학습을 하면 동시에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지만, 좋은 성적이 주된 관심사면 깊이 있는 학습, 창의적인 인생을 누리기는 어렵다. 


2) 내적 동기로 무장하라.

- 일반적인 사람들은 보통 일을 미루고 늑장을 부린다. 왜냐면 그 프로젝트가 자신의 목표를 진정으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고의 학생들은 그들의 목표를 완벽히 반영하는 프로젝트와 강인한 내적 동기를 가진다. 그리고 그들은 그 힘을 이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매진했다. 자신만의 규율을 엄격히 지키면서 남들의 좋은 아이디어에 항상 마음을 열어 두었다.



3) 능동적으로 독서하라.

- 그들은 책을 읽기 전에 차례와 개요를 먼저 보면서 내용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추측들을 실제 내용과 비교한다. 정답을 찾기 전 추측하는 습관을 기른 사람들은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30~60분 동안 그 책에 대한 질문들을 생각합니다."


- 그들은 심오한 목적을 가지고 독서를 한다. 탐정처럼 글 속에 담긴 의미를 찾고, 그것을 다른 문제에 적용한다. 인쇄된 글자를 창문 삼아 다른 뭔가를 보기 위해 애쓴다. 책의 여백에 메모를 하거나 공백에 자신의 견해를 적어 둔다. 


- 그들은 지금 읽는 책과 과거에 읽었던 책이 서로 일치하고 불일치하는 점들을 인지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개요를 작성하고 나중에 점점 줄여나간다. 그들은 기억하고, 이해하고, 응용하고, 종합하고, 평가한다. 


-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것처럼 책을 읽는다. 그렇게 읽으면 암기력과 이해력이 더 올라간다고 한다.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중요한 개념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통해 자신의 이해력 역시 성장시킬 수 있었다. 


4) 소통을 위한 글쓰기를 하라. 

- 글을 쓰는 것은 아주 유익하다. 특히 자기 자신과 가치관, 상처 깊은 경험 등을 고찰하기 위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쓰는 훈련을 한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높은 성적을 얻었다. 형식과 문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표현이었다. 그저 떠오르는 단어들이 흘려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최고의 학생들은 창의적인 글쓰기를 즐겼다. 


5) 배움을 선택하라. 

- 창의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해서 창의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성공하겠다고 마음 먹는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어떻게 창작하는지 이해하려면 자신과의 대화가 꼭 필요하다. 무엇을 배우고, 바꾸고 싶은지, 어떤 열정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연구한 창의적인 인물들은 자기 자신보다 더 흥미로운 대상을 발견했다. 나머지 성공과 창의성은 당면한 과제에 전념할 때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하게 느껴지는 일에 관심을 쏟고, 그 열정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지적생활의발견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와타나베 쇼이치 (위즈덤하우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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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년 2011년 10월에 사당의 책방에서 읽은 책이다.
당시 필사에 관심이 많을 때라 그대로 옮겨 적으려고 몇장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렇게 옮기는 과정이 벌써 3개월이나 지나고 말았다. 요즘 바빠서 정신도 없고 이렇게 주말을 활용하지 않으면 포스팅을 영영 못할 것 같아서 잠깐 시간을 내서 책 내용을 정리했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그나마 '일본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도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을 잘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 최고의 역사평론가 '와타나베 쇼이치'인데, 문체나 사상이 조금 답답한 느낌이 있지만 그 마저도 요즘 같이 빠르고 소비하는 시대에는 더 부각이 되는것 같아서 좋다 ^^ 

그럼 이제 요약 시작!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지성이 보인다."

나는 남에게 얻어먿는 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거저먹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돈을 내고 음식을 사 먹을 때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돈을 들인다는 것은 판단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듯하다.

물론 돈이 없는 학생들은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수입이 적으면 적은 대로 그때그때 형편에 맞게 책을 조금씩 사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지적생활자의 자세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이 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장서를 보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장서'는 책을 뜻하지만 영어로는 '라이브러리',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는 '비블리오테크'라고 해서 '도서관' 또는 '서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즉, 아무리 책의 권수가 적더라도 나만의 고전이 된 장서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만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읽어보지 않고서는 좋은 책인지 알 수 없다.
양서를 판별할 수 있는 안목과 직잠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서 읽어보기 잘했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곁에 두고 때때로 책장을 훌훌 넘기며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책의 진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책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하면서도 정확한 안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나는 개인적으로 위의 문단 때문에 이 책을 옮겨적기 시작했다. 왜냐면 나 역시,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변화의 시점'과 '책을 사서 모으기 시작한 시점'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와 군대 생활 중에서도 나름대로 400권 정도의 책을 읽었었는데, 그 당시에는 책을 사서 모으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을 뿐, 실제로 그것을 지식으로 활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책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내가 살 책을 모으고, 줄을 치고, 공부를 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의 결론도 이렇다.

"일단 책을 사라"







- 책이 생각나는 순간을 놓치지 마라

책을 반드시 사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혹시 예전에 읽었던 책이 문득 생각나서 다시 한번 읽어본 경험이 있는가? 그것은 지적생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어떤 책이 읽고 싶어졌을 때 그 책이 곁에 없어 읽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귀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것은 두뇌에 그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몸이 어떤 영양소를 필요로 해서 음식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 읽은 책이라도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기 쉽상이다. 하지만 좋은 책은 희미하게라도 기억에 남아 있으면서 가끔식 생각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찾아 읽은 책들은 나의 지적생산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귀한 보물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책은 반드시 나만의 장서로 소장하며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 

 

책을 사겠다는 것은 지적생활을 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신문, 잡지, 자기계발서와 달리 좋은 책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읽게 되지 않는다. 시간을 따로 내어 곰곰히 되씹으며 정독하고, 후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좋은 책을 만나는 행운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나는 헌책방에 자주 들르는데 가끔씩 절판되어 아쉬움이 남았던 좋은 책들을 발견하곤 한다.




- 아이의 공부방보다 부모의 서재가 먼저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방을 만들어준다. 물론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부모는 서재가 없으면서 아이에게 독립된 공부방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이의 공부방보다 부모의 서재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훗날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적 토론을 하게 될 것이다.
'나만의 도서관'을 갖는다는 것은 지적생활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 장서의 축적과 지식의 누적효과

칸트와 다윈은 50세 이후부터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하여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들의 서재에는 수많은 참고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특히 이 나이쯤 되면 장서의 축적은 최고점에 도달하는 듯하다.
칸트는 많은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만의 장서로 서재를 장식했다. 당시에는 책이 귀했기 때문에 수입에 비하면 책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한꺼번에 많은 책을 살 수는 없었지만 그는 한 권 한 권 책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칸트는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을,  66세에 '판단력비판'을 써냈다.

젊어서부터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좋은 책들을 조금씩 사들여 자신의 서재에 소장해온 사람은 정년 이후부터 참된 지적 즐거움을 알게 된다. 정년 수에 꾸준히 집필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출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정년 후에 더 크게 발전하는 사람과 정년과 동시에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정년 후에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차분히 꺼내 읽으며 애독할만한 책들이 없으면 지적생활은 불가능하다.




나의 생각

책을 사겠다는 것은 지적생활을 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지 알기 위해선 우리가 쓰는 '시간, 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양반만 공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농사를 짓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책을 사는데 쓰고,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가? 

나는 매달 10만원씩 책을 사는데 쓰기로 결심했었고, 책을 처음 살 때는 좋은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을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점점 사기 시작하면서 '좋지 않은 책'을 구분하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다른 사람에게 책을 추천할 정도로 분별력이 키워졌다. 장담하건데, 충분한 시간과 돈이 부여되지 못하면 책을 보는 눈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일단 책을 사라"








- 기계적인 글쓰기가 걸작을 낳는다.

수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엔서니 트롤럽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대표작인 '바셋주 이야기'를 비롯하여 56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전업작가가 아니었던 그가 이처럼 많은 작푸을 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체국 공무원이었던 그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처럼 짧은 글이라면 몰라도 장편소설은 절대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 틈틈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패작뿐이었지만 그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했다. 그러다 40세에 히트작을 냈고, 그것을 시작으로 67세에 타계할 때까지 끊임없이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그는 평생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집필활동을 했다. 그가 만년에 남긴 자서전에 따르면,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2시간 반 동안 소설을 썼다고 한다.그는 한때 우편감독관으로 여러 지방을 돌아다녔는데, 호텔이나 차 안에서도 아침 2시간 반 동안은 반드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미국에서 그의 소설이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작품은 베스트셀러에 올라섰고, 다른 작품들까지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독자들은 그의 소설이 전혀 싫증나지 않는다고 호평했다.



- 재능을 키우는 다작의 힘

나쓰메 소세끼 역시 대표작인 '명암'을 기계적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나는 '명암'을 아침마다 고통스러움을 느끼면서 기계적으로 썼습니다."

소세끼가 젊었을 때는 책 한권을 단숨에 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매일 저녁식사가 끝난 후부터 쓰기 시작해 다음날 오전 12시까지 기계적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이 기계적으로 쓰여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영감이 솟아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말을 시작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감은 일에 몰두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일이라는 것은 하다 보면 최초에 구상했던 것과 달라지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느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지 말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일해야 한다.




- 기계적으로 일하는 습관

수십 권의 저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후자와 같은 사람들이 지적생산에 대한 열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하는 기술'을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윌리엄 쇼콜리는 논문의 수가 학자의 지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통계적으로 논문의 수가 많을수록 논문의 질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작가가 글을 쓸 때처럼 지적생산은 고독한 시간과의 동행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학자나 예술가들의 고독한 시간에 대한 예찬을 끝이 없다. 언젠가 한 시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그 시대에 살게 되는 것이지만,
고독한 시간을 가질 때는 모든 시대에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생 산속에 묻혀 혼자 지내려고 작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고독에만 빠져 살 수는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생각을 나누는 지적교류가 필요하다.


나의 생각

나는 한 때 '영감'과 '직관'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신의 은총' 처럼 나에게 내려와서 나는 그게 맞춰서 신에 들린 듯 글을 쓰는.. 그런 상상을 자주 한 적이 있다. 이제 나는 그런 걸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나에게 주어질 수는 있겠지만, 나는 이제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는다.

미국 전설의 감독, 존 우든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성공은 마음의 평화이며, 마음의 평화는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존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아는데서 느껴지는 자족감이다."

나는 글을 쓸때, 책을 읽을 때, 사람들과 나눌 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나 자신을 감동시키고 있는가?
그 상태가 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과 실패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나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감'이나 '직관'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닐까?

지적 생활의 발견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잘 아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눌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그들을 위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러한 콘텐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사람들을 깨울 수 있도록 공부하고 기여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지적생활은 이런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당신이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일단 책을 사라"




<책은 곧 나, 나는 곧 책이 되게 하라.>

독서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지켜야 한다. 사물에 유혹당하지 않아야 하고, 반드시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고 연구하여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마땅히 자신이 행할 도리가 분명하게 나타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천하의 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사물의 이치를 깊게 궁리하고 연구해야 한다. 사물의 이치를 깊게 궁리하고 연구할 때 독서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옛 성인과 현자가 마음을 쓴 발자취와 세상만사의 옳고 그른 판단 및 경계해야 할 내용이 모두 책에 쓰여 있기 때문이다.

독서하는 사람은 반드시 단정하게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공경하는 마음으로 책을 대해야 한다. 마음을 한곳으로 집중하고 뜻을 다해 정확하고 세밀하게 사고하고, 익숙해지도록 읽고, 깊게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글과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단지 입으로만 읽고 마음속으로 얻지 못하고 몸으로 실행하지 못한다면, 책은 책일 뿐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 이렇다면 무슨 이로움과 유익함이 있겠는가?                                                                                                                          / 이이 격몽요결

이지성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보다가 마지막 부분에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리딩으로리드하라세상을지배하는0.1퍼센트의인문고전독서법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 독서 > 독서법
지은이 이지성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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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바로 다음에 나올 '자경문' 때문이다.
이 글을 쓴 율곡 이이는 '스무 살' 때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지었다.
'스무 살' 때..
'스무 살'.. 나는 어디서 무엇을..
아 급 우울해 진다. ^^;;

헌데 그 글의 깊이가 결코 얕지 않다. 단지 얕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매우 깊다.
내가 생각으로 머리로 표현하려고 했던 나의 좌우명을 그대로 옮겨 적은 느낌이었다.
마치 내 생각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이..

나는 이제부터 이 글을 나의 좌우명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 것이다.


[자경문] '리딩으로 리드하라' 중에서..

다음은 율곡이 스무 살 때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자경문'의 핵심을 정리한 것이다.

- 을 크게 갖고서 성인의 삶을 따른다.

- 마음이 안정된 사람은 말이 적으니, 말을 적게 한다.

- 마음이란 살아있는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정신을 한데 모으고 담담하게 그 어지러움을 살핀다.

그렇게 마음공부를 계속하다보면 마음이 고요하게 안정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 홀로 있을 때 헛된 마음을 품지 않는다. 모든 악은 홀로 있을 때 삼가지 않음으로 비롯되니,

마음속에서 올바르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 앉아서 글만 읽는 것은 쓸데없다. 독서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일이 없으면 그만이겠지만, 일이 있을 땐 옳고 그름을 분간해서 합당하게 처리한 뒤 글을 읽는다.

-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는다. 일을 할 때 대충 편하게 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 해야 할 일은 모든 정성을 다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마음속에서부터 끊는다.

- 불의한 일을 단 한 번, 무고한 사람을 단 한 명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 누가 나에게 악을 행하면 나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돌아본 뒤 그를 감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 가족들이 착하고 아름답게 변화하지 않는 것은 내 성의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나 자신을 돌아본다.

- 몸에 질병이 있거나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아니면 눕지 않는다. 비스듬히 기대지도 않는다.

- 공부는 죽은 뒤에나 끝나는 것이니 서두르지도 늦추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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