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쓰는 리뷰입니다.

지난 번에 '왜 책을 읽는가?'라는 주제로 써 본적이 있는데요. 이번 주제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입니다.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주제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방법과 습관'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 책을 읽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다시 말해, 독서법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대단치는 않습니다. 그저  '조금 더 잘 읽기 위한' 저만의 고민과 노력을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댓글도 남겨 주시고, 자극도 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책 선정이 어려웠습니다. 워낙 다양한 곳에서 글을 빌려왔기에 마땅한 책은 없지만, 책을 읽는 법과 관련해서 고민하시는 분들께 하나의 책을 추천 드립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지식 경영인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독서 태도와 방법을 정리한 책,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입니다.    




1. 책을 읽기 전에 : 일단 사고, 가지고 다니기 

자문해 봅니다. "내 독서 생활에 있어서 '결정적 시기'는 언제일까?" 지난 번 글에서 말씀 드렸던 '군대 시절'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 시기는 '대학을 졸업하던 시점'입니다. (안타깝게도 학교는 제 인생에서 별 도움이 안 되었나 봅니다. ;;) 당시 저는 전공이 아닌, 새로운 삶의 목표를 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제 지식과 경험에 금새 좌절합니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1년에 100권. 그렇게 목표를 정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기존까지는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는 '취미 독서'를 했다면, 그 시점부턴 목적이 분명한 '전략 독서'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평소 읽지 않던 경제 경영, 마케팅, 사회학, 미래학 등의 서적을 접합니다. 무엇보다도, 제 독서 생활에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 하게 됩니다. 책을 한권 한권 구입하게 된 것이죠. 


"이제부터는 평생을 살면서 5~6번은 직업을 바꿔야 한다. 대학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독서밖에는 살아나갈 길이 없다. 취미독서가 아니라 기획독서다. 지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전략독서를 해야 한다. 지식의 지평을 넓혀가야 언젠가 나도 모르게 뛰어들게 된다."  (최재천)

책을 왜 구입해야 할까요? 무언가를 산다는 것은 그 만큼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경험에 의하면, 책을 사지 않고 좋은 독서가가 되는 길은 요원합니다. 책을 구입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첫 번째, 좋은 책을 고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책을 선택할 때는 ‘기준’이 없습니다. 뭐가 좋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차곡차곡 힘들게 모든 내 돈, 치킨을 사먹을 수도 있는 그 돈을 가지고 책을 사다보면 알게 됩니다. "이 책을 산건 정말 최악의 선택이었어!" 빌려 읽으며 단순히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것과 피같은 내 돈이 나가는 건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선구안은 그렇게 길러집니다.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선, 그만큼의 투자도 필요한 법이죠.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값은 싼 편이다.  책 한 권에 들어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다치바나 다카시의 작업실


책을 사면 얻는 두 번째, 보고 싶을 때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 나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 깊은 의미와 즐거움을 주는 책. 이런 책들은 한번 읽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저 역시 무작정 많이 읽던 시기를 지나, 요즘에는 '좋은 책을 반복해서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단 것을 느끼고 있는데요. 책을 사지 않으면 그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 돈을 아껴서라도 책을 사시길 권합니다. 물론, 이왕 구입할 거라면 리브로에서 :) 

"혹시 예전에 읽었던 책이 문득 생각나서 다시 한번 읽어본 경험이 있는가? 그것은 지적생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어떤 책이 읽고 싶어졌을 때 그 책이 곁에 없어 읽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귀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거은 둥뇌에 그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몸이 어떤 영양소를 필요로 해서 음식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 읽은 책이라도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기 쉽상이다. 하지만 좋은 책은 희미하게라도 기억에 남아 있으면서 가끔식 생각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찾아 읽은 책들은 나의 지적생산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귀한 보물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책은 반드시 나만의 장서로 소장하며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 (지적생활의 발견) 

그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좋은 책을 사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주 쉽습니다. “책을 가지고 다니면 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이라, 고사성어를 하나 가지고 오겠습니다. 예전에 오나라에 여몽이란 장군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무공을 세워서 장군이 되었으나, 학식이 부족하여 손권이 책을 권합니다. 그러나 여몽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었고, 손권은 후한 광무제의 예를 들며 “손에 책을 들고 다녀라. 그럼 책을 읽게 될 거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수불석권'이란 고사가 등장합니다.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는다’는 말인데요. 

독서 습관의 두 번째는 책을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투리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늘부터 난 달라지겠어!’하고 무리하게 책을 읽다가 이틀만에 포기하는 것보다 그냥 가지고 다니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저 내 몸에서 책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워 졌다고 느낄 때, 한자 한자 읽어 나가면 됩니다. 그것이 책을 펴기 전 가져야 할 습관입니다. 정리하면, ‘책을 가치있게 여기고, 먼저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 책을 펼치고 나서 : 펜을 들고, 핵심 구조를 그리기  

앞서 '책 구입'의 중요성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사지 않습니다. 뉴스를 찾아보니, 작년 한 가구가 책을 사는데 한달 평균 1만 5천원을 썼다고 합니다. 요즘 책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입니다. 문제는 매년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비슷한 가격대의  '치킨’ 보다 대접받지 못하는 사실에 의문이 남습니다. 어쩌면 아직 책이 주는 가치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글을 지으려는 사람은 먼저 독서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예를 들어 우물을 파는 사람은 먼저 석자의 흙을 파서 축축한 기운을 만나게 되면또 더 파서 여섯 자 깊이에 이르러 그 탁한 물을 퍼낸다또 파서 아홉 자의 샘물에 이르러서야 달고 맑은 물을 길어낸다마침내 물을 끌어올려 천천히 음미해 보면그 자연의 맛이 그저 물이라 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또다시 배불리 마셔 그 정기가 오장육부와 피부에 젖어듬을 느낀다그런 뒤에 이를 펴서 글로 짓는다이는 마치 물을 길어다가 밥을 짓고희생을 삶고고기를 익히며또 이것으로 옷을 빨고땅에 물을 주어 어디든지 쓰지 못할 데가 없는 것과 같다고작 석 자 아래의 젖은 흙을 가져다가 부엌 아궁이의 부서진 모서리나 바르면서 우물을 판 보람으로 여기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p.29 다산 선생의 지식경영법)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위백규는 독서의 정수를 맑은 물에 비유합니다. 책에서 가치있는 지식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를 어느 곳에서나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하지만 대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슬슬 읽어내며 얻은 탁한 물을 보고, 쓸모 없다고 단정하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책의 정수를 진정 맛보기 위해선, 다소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잘' 읽어야 합니다. 그냥이 아니라, 좀 더 능동적으로, ‘질문을 품고’  읽는 것이 독서의 시작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형광펜'입니다. 저에게 형광펜은 곧 '질문'입니다. 처음 형광펜을 들았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아찔한 기억인데, 저는 정말 제가 바보인줄 알았습니다. 한 3개월 정도 펜을 들고 멍하니 책을 보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중요한 문장에 줄을 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행위가 처음엔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책을 읽고 머리가 살짝 지끈거리지 않다면, 아직 책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잘 읽는다는 것은 숙련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게 하면 책 읽는 능력이 겉으로 드러난다. 즉 밑줄 그은 곳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내용을 이해했는지 알 수 있다. 핵심이 아닌 부분에만 밑줄이 쳐져 있다면 독서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P.38 독서력)

"밑줄을 긋는 일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책 속의 내용과 연결시키는 행동이다. 단지 책을 읽기만 하면 아무 변화가 없기에 독서는 수동적인 행위가 되기 쉽다. 어디에 밑줄을 그을지 생각하면서 책을 읽을 때 비로소 독서는 적극적인 행위가 된다. 실제로 밑줄을 그을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판단이 거기에 들어가고 남기 때문이다. ...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책 속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한 문장을 발견하는 일이다. 단 한 줄도 눈에 번쩍 뜨이는 문장이 없다면 그 책은 자신과 인연이 없는 것이다."  (P.147 독서력)

여러분은 책을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저에겐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이 핵심인가?"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입니다. 책의 핵심을 간파하기 위해선, 일단 그 구조를 추려내는 힘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분들께 권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바로 '구조도 그리기'입니다. 특히 소설이나 에세이 보다는 경제 경영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도움이 됩니다. 단순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한장으로 표현한다면?"란 질문에 답하면 됩니다. 핵심 요소를 추리고, 관계도를 그리는 활동입니다. 쉽지 않지만, 의미있는 작업입니다. 

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매주 1권씩 책을 읽고 결과물을 남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익힐 수 있습니다. 당시 훈련했던 것이 지금도 새로운 기획을 하거나, 과정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도움을 줍니다. 당시에 몇 가지 예시를 찾아보았는데요. 아주 유치하고 지저분하긴 한데, 몇 장 남아있네요. 부끄럽지만, 그냥 공유합니다. 

서비스 디자인 교과서 / 전략적 공부기술


노는 만큼 성공한다 (김정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줄을 긋고, 구조도를 그려보자.’ 그렇게 읽은 책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필요 시 언제든 꺼내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가치를 느끼면 책을 사는데 돈이 아깝지 않게 됩니다. 독서가가 되는 길에 접어든 것이죠. 

능동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을 던지며 읽어 내려가라” 


3. 책을 덮고 해야 할일 : 함께 읽고, 글을 쓰기 

처음 책을 읽을 때, 분명한 목표는 도움이 됩니다. '책을 좀 읽은 것 같은’ 느낌보다는 ‘실제로 읽은 기록’을 믿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죠. 대부분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니까요. 앞서 말했듯 제 첫 목표는 1년에 100권 읽기였습니다. 그것만 해도 충분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개인적으로 독서 습관을 만드는 초기에는 질적 독서 보단, 양적 독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어려운 책을 힘겹게 보는 것보단, 관심있는 책을 즐겁게 쭉 읽어나가는 것이 습관을 만드는 데 많이 도움 되었습니다.

간혹 “책 읽을 시간이 어디있어요?”라는 분들이 있는데요. 이건 관점이 좀 다릅니다. 시간은 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나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기 위해서 시간을 만드는 것’이 맞습니다. 저 역시 평소엔 시간이 없어서 주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합니다. 집에서 회사까지 보통 1시간이 걸리는데, 그렇게 하루 2시간씩 읽을 수 있습니다. 보통 1시간에 50-60페이지 정도 읽게 되는데요. 일주일에 이론상 500-600페이지가 가능합니다. 주말을 제외하더라도 충분히 일주일에 1권은 가능하더군요. 결혼한 지금은 어렵지만, 주말에 시간이 있는 분들은 카페에 가보는 것도 좋습니다. 혼자 책 읽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이 없는 사람이 책을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추천하는 것은 ‘함께 읽기’ 그리고 ‘글쓰기’입니다. 독서 모임에 참가해 보신 분들이 계신가요? 책을 읽고 함께 생각을 교류하는 활동은 독서를 습관화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됩니다. 저 역시 2010년부터 크고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서로 좋은 책을 권할 수 있어서 좋고, 또 관계 그 자체가 기분좋은 자극이 됩니다. 저희 회사 독서 모임에 참여한지도 10개월 가까이 되는데요. 개인적으론 정말 즐겁고 의미있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독서의 궁극은 바로 ‘글쓰기’입니다. 최근 인기 많았던 책이죠. ‘대통령의 글쓰기’를 보면, 역대 대통령도 독후 글쓰기를 강조합니다. 

“김대통령은 독서의 완결이란 읽은 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데까지라고 했다. 노 대통령 역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영감을 정책에 반영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책으로 집대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대통령의 글쓰기) 

책을 정리하기 전엔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이건 중요합니다.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잘쓴 글과 못쓴 글은 없습니다. 안쓴 글과 쓴글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저도 일단 씁니다. 그렇게 조금씩 쓴 글을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공유하는 것도 좋습니다. 응원도 되고, 또 자극도 되거든요. 정리하자면 '함께 읽고, 나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 정도가 되겠네요. 

지금까지 2부에 걸쳐서 독서 방법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눠봤습니다. 지금까지 읽다보면 분명 어떤 분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주로 소설책이나, 인문학 책을 읽는데, 그렇게 굳이 목적과 방법을 가지고 읽어야 하나요? 그냥 즐겁게 읽으면 안 되나요? 저는 답변 드립니다. ‘그 또한 완벽한 독서입니다.'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폰티지아는 말한다. “배우기 위해, 즐거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연설을 하기 위해, 회상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아무런 목적 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현재를 읽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 독서하라.”

이런 독서는 중요합니다. 그 자체로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지혜는 균형에 있죠. 지금까지 그렇게만 책을 읽어왔던 분들껜 '전략적 독서'도 쓱 권해봅니다. 반대로 늘 효율성에 입각한 독서를 한 분들껜 '목적 없이 읽기 좋은' 소설이나 인문학 책을 권합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나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것. 그것이 제가 책을 읽어나가는 방식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쁜 분들을 위한 3줄 정리

1. 책 읽기의 시작은 책을 사고, 일단 들고 다녀보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론, 그것이 좋습니다.
2. 책을 읽을 땐, 펜을 들고 핵심 구조를 그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좀 더 능동적 자세를 취해보는 것이죠.
3. 책을 덮고 나선, 함께 토론하고 글을 써보는 것이 좋습니다. 서로를 통해 자극받는 것이죠 :)


안녕하세요?
이번 달 리뷰를 남깁니다. 

제가 주기적으로 글을 공유하다보니, 그리고 이런저런 독서모임도 참석하다 보니, 종종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책은 주로 언제 읽나요?”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나요?” “책은 왜 읽나요?” 등등. 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건 워낙 좋아하기에 신나게 대답하지만, 지금까지 제 의견을 명확하게 정리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책 읽기로 글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글이 잘 써지지 않더군요. ‘독서’를 주제로 선정하자, 제 깊은 곳에 이상한 욕심이 고개를 쳐듭니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굳이 ‘잘 써야겠다’는 부담감을 가진 적은 거의 없었는데요. 그래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쓸 수 있었구요. 그런데 이번에는 약간의 욕심이 저를 자극합니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저를 압박하지 않도록,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한번 써 보겠습니다. 글을 쓰며 독서와 관련한 다양한 책을 인용하게 되었고 딱히 대표할 만한 책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담고 있기에, 기준이 되는 책을 선정했습니다. 바로,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력” 입니다.

PS : 참고로, 글을 쓰다보니 다소 길어지고 말았네요. 그래서 1부와 2부로 나뉘고자 합니다. 1부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2부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 입니다.







1. 당신은 왜 책을 읽나요?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왜 책을 읽나요? 특별히 어떤 계기가 있나요?” 그러면 전 대답합니다. “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읽기 시작했고, 그 계기도 있습니다.” 지금도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멋진 순간은 아닙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불안해서 읽었습니다. ‘독서’라는 고상한 말보단 ‘발버둥치기’가 더 잘 어울리는 그런 상황이었죠. 그렇게 습관이 되었고, 지금은 솔직히 별 이유 없습니다. 그냥 읽습니다. 제가 처음에 책을 읽게 된 계기, 그곳으로 거슬러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감 못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남자는 군대에서 살짝 철이 듭니다. 철이 드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단지 ‘혼자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는 동안 뭘 할까요? 처음에는 잡 생각이나 잡담을 합니다. 이런 저런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거없는 자신감까지. 그러다 더 시간이 지나면 적막함이 슬그머니 찾아옵니다. 소란스런 생각들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과 마주하게 됩니다. ‘대학생’ ‘아들’ ‘친구'이란 껍질을 벗어버린 저를 말이죠. 그게 2003년이었습니다.

변화는 ‘객관적 자기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거기서 벗어나고자 아둥바둥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저를 봤습니다. 덜컥 걱정이 들더군요. “전공 공부는 정말 싫은데” “졸업하고 달리 할 것도 없고”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 전 뭐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읽었습니다. ‘발버둥’이란 말보다 적확한 표현은 없을 것 같네요. 고상한 이유 따윈 없었습니다. 뭐라고 하고자 그렇게 저는 제 주위에 놓인 책들을 주워들었습니다. 월간지 '좋은 생각'부터 자기계발서, 판타지 소설, 종교 서적, 등등. 맥락도 흐름도 없는 파편적인 독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2년 간 300여권을 읽었습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물론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도 인간성을 갈고 닦을 수 있겠지만 혼자 조용히 자신과 마주 서는 시간이 자아 형성에는 필요하다.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도 즐거운 법이다. 독서는 정신적인 긴장을 필요로 한다. 이 적절한 긴장이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독서는 혼자 하는 듯싶지만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쓴 사람과 함께하는 둘만의 시간이다. ... 뛰어난 인물이 공들여 조탁한 문장을 혼자 음미하는 시간. 이런 시간에 얻게 되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p.75

그 결과, 제가 얻은 결과물은 초라합니다. 겨우 ‘읽기’에 대한 부담감을 털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모든 순간이 자발적 이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적고, 휴가 나와서 볼 때의 기쁨. 그렇게 ‘책에 목 말라 본 느낌’은 아직도 생생 합니다. 책 읽기, 구절 옮겨적기, 생각 끄적거리기. 그렇게 보냈던 2년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가장 소박하면서, 행복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그렇게 '책'에 흠뻑 빠져 본 경험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비교적 늦게 알았지만, 더 어릴 때 그런 경험을 한 분들은 더더욱 행운이겠죠. 그것은 값진 경험입니다. 그 순간 만큼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목적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 그것이 자발적 몰입을 이끌어내는 첫 번째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독서력>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독서는 장거리 달리기'라고 말합니다. 독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축적된 독서량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머리가 그리 좋지 못한 저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그래서 독서는 정직합니다. 그저 꾸준히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장거리 여정에서 '즐거움'은 독서가의 가장 큰 우군입니다.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가 책을 읽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어떤 어떤 실험에서 아이큐는 높지만 평소에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혔더니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때 그 사람은 “난 아이큐가 꽤 높은 편인데 이해할 수 없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은 독서를 잘 모르기에 나온 발언이다. 독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축적된 독서량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장거리달리기나 행군과 비슷하다. 특별히 발이 빠를 필요가 없다. 날마다 달리고 조금씩 거리를 늘려나가면 대부분 장거리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된다. ... 독서의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꾸준히 하는 것’이 힘이 된다.” P.45


2. 경험하면 되지, 굳이 책을 읽어야 하나요?

여기까지 쓰자, 예상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래 좋겠다. 당신이 그럴 수 있었던 건 군대이니 가능한 일이지, 요즘 이렇게 바쁜데 어떻게 그게 가능 하겠어?" '즐거움'이란 달달한 용어 정도론 설득이 안 된다는 것,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깊이 묻습니다. “살아가기도 바쁜 일상에, 굳이 많은 책을 읽어야 하나요?” 그럼에도 저는 “네”라고 대답합니다. 적어도 독서는 많은 이에게 ‘자아 발견의 키’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막무가내로 책을 읽던 당시에 저는 우연히 심리와 종교, 인문학과 교육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끌리는 저를 볼 수 있었고, 이후로 몇 년간 제 전공인 ‘공학’을 뒤로 하고 관련 책을 읽는데 시간을 바쳤습니다. 자연스럽게 관심을 넓혀 갔던 것이죠. 다방면의 독서가 주는 유익은 분명합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디에 끌리는지' 자연스럽게 나를 이끄는 신호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지도 분명해 집니다. 그렇게 나의 강점과 약점, 흥미를 파악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일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굳건히 하지 않으면 쉬이 휩쓸려 버리고 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 나를 알아가는 방법으로, 독서를 신뢰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책을 가지고 어떻게 나를 발견한다는 말이야? 니가 ‘경험’을 안 해봐서 그렇지, 경험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 최고야.” "... ..." 잠시 말문이 막히지만, 다시 반론해 보겠습니다. '경험과 이론' 이는 지난 번에 언급한 ‘본성과 양육’처럼 아주 오랜 논쟁거리입니다. 서양 철학사를 돌아봐도 합리론과 경험론은 서로 기나긴 평행선을 달리죠. 경험주의자는 이론가들을 ‘해본 것이 없다고’ 쉽게 얕잡아 봅니다. 그리고 이론가는 경험주의자를 ‘그게 다인줄 안다’며 무식 하다고 비하하죠. 저는 이 논쟁을 아래 책으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철학자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에 나오는 글입니다.




"몸은 인간에게 가까운 것이어서 겪어서 알게 된 것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중의 하나는 바로 ‘겪어서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전쟁을 겪어본 사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주제에 관한 한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즉 “낙동강 전선에서 압록강 전선까지 모든 전쟁을 겪었느냐’는 반론 말이다. 오히려 몸으로 직접 겪어보지 않고 전체를 이론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태의 실상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 수도 있는 것이다. 몸으로 겪어봐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할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험과 이론 둘 다가 겸비되지 않으면 그것은 제대로 된 지식이라 하기 어렵다. ... 이걸 흔히 ‘지행합일’, 또는 ‘지행일치’ 라고 한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실망 하시겠지만 결국, 답은 ‘둘 다’입니다. 겪어서 아는 것과, 책을 읽어 아는 것. 모두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되려 경험주의자일수록 책을 더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책을 읽는 이들은 총을 매고 전쟁터로 나아가야 하겠죠. 제 삶을 봐도 그렇습니다. 책을 읽을 수록 '호기심'이 많아지고, '경험'에 목 마르게 됩니다. 그 결과, 삶에 뛰어드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다시 말해 지식과 경험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책을 통해 관심사를 넓히고, 행동으로 검증하고, 다시 책을 통해 성찰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선 순환. 그 반복을 통해 ‘나'를 더 알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책을 읽는 두 번째 이유, 바로 '지식과 경험'을 통해 '나를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적어도 저에게 책은 그런 존재입니다.

"‘독서는 할 필요가 없다.’는 근거로서 책을 읽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책 읽는 습관이 있으면 체험에 나서기가 어렵다는 말일까? 하지만 이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체험을 하는 일과 책을 읽는 일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통해 다양한 체험을 하고 싶다는 의욕이 불타오릴 수 있다. 예를 들면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 방랑>을 읽고 아시아 여행을 꿈꾸는 젊은이가 있다. 책에 이끌려 여행에 나서는 경우는 흔하다. ... 독서가 계기가 되어 체험하는 세계가 확대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서를 통해 자신이 체험한 일의 의미가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는 공감대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p.97


3. 만약 읽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렇게까지 설명 했음에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래, 읽는 것은 좋아. 인정해. 하지만 읽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별다른 일이 생기는건 아니잖아?" 예전에 저는 이 답을 어렵게 답했지만, 이젠 비교적 쉽게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아무리 운이 좋게 대통령이 되어도 '탄핵'이란 위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곧 ‘사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실질적 문맹률(문해력으로 보면 75%에 달합니다. OECD 중 최하위입니다.)은 엄청나게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 알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드라마나 예능은 대통령을 비롯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손 안의 스마트 폰은 우리가 전지전능해 졌다는 착각을 하게 합니다. 무엇이든 '검색'하면 다 알 수 있지만, 깊은 '사색'은 사라졌습니다. 과거엔 지하철에서 책 읽는 이를 그나마 볼 수 있었으나, 이젠 거의 드뭅니다. 그리고 모두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전 그것이 솔직히 두렵습니다. 홍세화 작가의 책 <생각의 좌표>에 나오는 글을 옮겨 적습니다. 




"네 경로(독서, 토론, 직접견문, 성찰)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인 반면,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이지 않다. 독서와 토론, 직접견문과 성찰은 내가 주체적으로 행하는 것이지만, 제도교육과 미디어에서 나는 주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객체이며 대상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 중 책을 읽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소수다. 문제는 과거에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제도교육이 보편화되었고 미디어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들의 의식세계는 빈 채로 남아 있지 않고 채워진다." <생각의 좌표>

홍세화 작가가 말했듯, 책을 읽지 않아도 현대 사람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듣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과 글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책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말은 특별한 장애가 없는 한 누구나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하지만 읽고 글쓰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그 차이가 재미있습니다. 구술문화에 속하는 이들은 ‘추상’의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해머, 톱, 손도끼 등을 보여주며 공통점을 말하라고 하니, 그들은 ‘연장’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대신에 이렇게 대꾸했다고 합니다. “톱은 나무를 썰고, 손도끼는 통나무를 가르죠.”

구술문화권 사람들은 자신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도 곤란을 느낍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들은 인격을 기술하는 대신 신상을 늘어놓습니다. “나는 우츠구르간 출신이죠. 무척 가난했고 지금은 결혼해서 자식도 있어요.” 이러한 ‘인식 능력’의 차이는 아주 중요합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적 사유’는 문자 문화의 영역이며, 훈련에 의해 단련됩니다. 저는 이 차이가 지금의 우리나라, 그리고 광화문에서 볼 수 있는 세대간 갈등을 설명하는 하나의 근거라고 봅니다. 절대적인 가치 하나만을 쫓은 사고 방식, 그 맹목성을 닮아가지 않으려면 스스로 ‘언어의 한계’를 넓히고 '사고의 주체성'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공존시킬 수 있어야, 결국 ‘주체적인 자아’를 기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세 번째 이유, 단순합니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함입니다.

"독서의 폭이 좁으면 한 가지 사실을 절대시하게 된다. ... 눈앞의 한 가지 신비에 마음이 빼앗겨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은 지성이나 교양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대학 시절에 신비주의 단체를 조사해본 적이 있다. 그런 단체의 교리를 철저히 믿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어느 지점에서 사고가 정지되어 있었다. 절대적인 가치관을 하나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것은 부정하는 사고방식에 빠져 있었다. ... 어떤 철학적인 문제에는 강한 면을 보이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음미하는 관용적인 태도를 볼 수 없었고 한 가지 삶의 방식만을 모범으로 삼는 경향이 강했다. 모순되고 복잡한 사실들을 마음속에 공존시키는 것. 독서로 기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복잡성의 공존이다. 자아가 한 덩이의 단단한 바위라면 부서지기 쉽다. 복잡성을 공존시키면서 서서히 나선 모양으로 상승해가야 한다. 그래야 강인한 자아를 기를 수 있다.” p.69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책을 왜 읽어야 할까?"에 대한 질문에 자문하면서 답해 보았습니다. 설득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누가 누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저 제 생각을 좀 더 다듬어보기 위한 노력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조만간,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지?” 책 읽는 방법으로 다시 써 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쁜 분들을 위한 3줄 정리

1. 책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단, 자발적으로 읽는 경우에.
2. 책을 통한 지식과 경험을 통한 앎은 모두 중요하며, 책은 그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3.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 다양한 생각을 공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1. 독서의 영향이란 어리석은 신화에 불과하다. 

P.28-29
몇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같은 문장에 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 사람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독서는 우리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한다. 어쩌면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원래 비열한 인간은 라신을 읽는다 해도 비열한 인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반대로 선한 사람이 나쁜 책을 읽는다 해서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독서의 나쁜 영향은 그것이 주는 좋은 영향력만큼이나 어리석은 신화에 불과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그러할 테지만 세상은 유익한 것만을 사랑한다. 이런 세상에서 책은 생존하기 위한 길을 걸어왔고, 그래서 문학 또한 도덕적이 되거나 비도적적이 되어야 했다. 


-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다. ‘독서는 우리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한다.’ 경험에 의하면, 한 두 번의 독서로 대단한 인생 반전을 노리는 사람일수록 진짜 독서가가 아닐 확률이 높았다. 독서가는 커녕, 단지 책을 통해 자신의 성공과 영리를 추구할 뿐이다. 아마추어 독서가인 나의 기준에서, 진짜 독서가는 책을 통한 변화에 그리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읽어나갈 뿐이다. 독서가들에게 독서는 마치 삼시새끼와 같다. 아무리 좋은 밥이라도 한 두끼의 밥이 우리의 건강을 변화시키지 못하듯, 책도 그렇다. 정말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심지어 ‘꾸준한 독서’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진 못한다. 그저 아주 살짝 더 온전한, 인간다운 인간,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운이 나쁘면 이것도 요원하다. 그게 내가 책을 읽으며 얻는 답이다. 오랫동안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도 많이 변했다고 '믿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난 여전히 몇년 전에 감동 했던 문장에 새삼스레 또 놀라고, 줄 쳤던 곳에 또 줄치고, 그렇게 위로받는다. 언제나 철이 들까. 언제나 좀 더 나아질까. “수 많은 책 들아, 지금까지 너희는 뭐 했니?” 라고 ‘근무 태만’을 묻고 싶을 지경이다. 밥값이 아니라 책값도 못하는 것들. 그럼에도 또 책을 산다.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내 모습에 대한 놀라운 자각이며,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배움이다. 쉽게 기적을 꿈꿔선 안 된다. 


#2. 책은 독자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P.30 
책은 독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저자를 위한 것도 아니다. 책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책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독자를 위해 만든 책은 독자를 소비자로 간주하고 무언가 의도를 품는다. 그 의도가 누군가를 즐겁게 하려는 거시든, 설득하려는 것이든 그런 책은 친절해진다. 문제는 책이 도구로 전락하면서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 볼 때 책은 본래 주제에서 멀어진다. 독자는 독자대로 자신이 자유롭게 판단하고 선택하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는 모욕을 느낀다. 


- 나는 세상의 책을 두 종류로 나눈다. ‘팔리기 위한 책’과 ‘읽기 위한 책’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전자의 책은 ‘수단’이고 후자의 책은 ‘목적’이다. 팔리기 위한 책의 목적은 ‘사람들 손에 쥐어지는 것’이고, ‘읽기 위한 책’의 목적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뭐 그래 봐야 밥 한끼 밖에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책은 '뇌의 소중한 밥이자, 반찬이며, 국이다’ 그 목적을 잃어버린 책들은 세상에 분명 존재한다. 아직 책 한 권 써보지 못한 입장에서, 책을 쓰는 저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다소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래의 나에게 말할겸 한 마디 하고 싶다. "니가 나중에 무슨 책을 어떻게 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나무에 대한 예의는 지키자. 이 자식아."

종종 그런 책을 본다. 책의 내용이나 메시지보다 책이 되어버린 나무가 생각나는 책. 사람에게 잘못된 정보는 주는 책, 대중을 속이기 위한 책, 자기 변명을 위해 존재하는 책. 책을 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영달을 꽤하는 책. 책보다 나무가 먼저 생각나게 하지는 말자. 그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어느새 나는 ‘책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나의 목적은 ‘글을 쓰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치약을 짜듯 나의 뇌를 쭉 짜면 글이 쏟아지는 그런 사람. 홀로 독방에 갇히더라도, 혼자 글을 쓰고 그걸 읽으며 자족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나의 목표다. 별거 아닌거 같은데 참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책을 하나 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3. 이기심에서 책을 읽지만, 우린 결국 이타심을 얻게 된다. 

P.39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이타심이다. 애당초 책을 읽을 때 이타심 같은 것은 원한 적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 이것이 바로 책의 습격이다. 내가 갈구하는 것. 나는 피해자고, 책은 가해자다. 문제는 피해자는 가해자의 일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어디서 얻어 맞을지 알 수 있을까? 그렇기에 언제나 나는 기습 당한다. 예를 들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을 때 그랬다.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책을 펼쳤다. 그리고 나는 ‘아프가니스탄’ 한 가운데 놓여졌다. 그들의 삶이 들어왔고, 없었던 관심이 생겼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얻었다. 물론, 영화도 그림도 이 역할을 한다.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 바로 ‘타자 되어보기’다. 하지만 책 처럼 충실한 자는 없다. 상상하게 하고, 공감하게 하는, 그래서 ‘타인’이 되어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이타심을 원하지 않더라도 얻게 되는 것이 독서이며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4. 책은 평화롭게 쉴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P.42 
책이 경전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책은 신앙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며, 작가 또한 신이 아니다. 우리는 작가를 사랑할 수도 있고, 난도질을 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죽은 자들이라도 평화롭게 쉬도록 놓아두는 것에 반대한다. 평화 속에서 영면하도록 내버려진 작가는 이 세상과의 인영이 완전히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

- 위대한 책은 걸레가 되어야 한다. 유명한 책일수록 더 많이 읽혀지고, 난도질 당하고, 잘리고, 죽는다. 그리고 부활한다. 새로운 컨텐츠로. 그렇지 않은 책도 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비판하지 않는 책도 있다. 그런 책은 그렇게 멀쩡하게 죽는다. 책은 난도질 당해 살아나거나, 멀쩡하게 죽거나. 이 두 가지 결말을 기다리며 태어난다. 책도 이럴진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마찬가지 아닐까. 세상과,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의외로 쉽다.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싸울 일도, 다툴 일도 없다.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이 나는 두렵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육받은 대로, ‘눈에 띄지마’ ‘중간만 하면 된다’라는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어느새 그렇게 살기가 싫어졌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툰다. 하지만, 멀쩡하게 죽기는 싫다. 난도질 당해 살아남고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이다. 


#5.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답변

P.91
왜 책을 읽는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왜 책을 읽는가? 자기 울타리 안에 갇혀 편견 속에 살면서 무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어둠은 인식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문학의 일부이다. … 우리는 숨기고 싶은 자신의 결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 

- 마지막 질문.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처음에는 뭐라도 해야 할거 같아서 읽었고, 그것은 어느새 즐거움이 되어 버렸다. 운동도 모르고, 술과 담배도 모르는 나는 인생에서 즐거움이 별로 없다. 그 중 하나가 책이다. 그런 사소한 즐거움을 느끼지만 가끔 ‘커다른 기쁨’도 데리고 온다. 언제 기쁠까? 하나는 ‘발견’이다. 하나의 책을 보고, 그와 연결된 다른 책을 볼 때의 즐거움. 혹은 어떤 책을 보고 그와 전혀 상관없는 책을 보면서 예전의 책이 이어지는 느낌들. 그렇게 책과 책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관성을 '발견'할 때 나는 커다란 기쁨을 맛본다. 두 번째는 ‘깊이’다. 나 혼자선 도달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생각과 성찰에 닿을 때, 그때 경험하는 전율이 있다. 대부분 책의 인도로 따라 가다 보면 얻게 되는 부산물 들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본다. 그 외엔 달리 딱히 할 일도 없고, 이보다 즐거운 일도 없기에. 





#6. 무언가를 가르치는 책들에 대한 혐오

P.94 
나는 문학을 향한 지독히 편파적인 애정 때문인지 무언가를 가르치는 책들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 가르침을 목적으로 하는 책들은 문학을 타락시키는 것만 같다. 나는 책에서 배우기보다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선호한다. 

-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사실,이 말을 이해하기 까지 꽤 걸린 것 같다.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지금은 ‘가르치는 것’과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큰지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가르침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책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기억 남는 예시가 있다. 우연히 정유정의 ‘종의 기원’과 조정래의 ‘들풀도 꽃이다’라는 책을 함께 읽었다. 종의 기원을 읽을 때, 그 이야기는 나에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내 삶을 반추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라고 되돌아볼 수 있었고, 내 주위 사람들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조정래 작가의 책을 볼 때는 뭔가 ‘탁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고, 계속 화자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래야 한다고. 아니, 저래야 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욕심. 그 욕심이 빤히 보이는 책. 아무리 그 메시지가 의미있더라도, 그 욕심 때문에 진의는 파악되지 않았다. 그리고 피곤했고 책을 덮었다.  


#7. 독서는 선이 아니다.

P.100 
독서는 선이 아니다. 어린이에게는 물론 어른한테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라는 말을 듣자마자 독서에 대한 마음이 싹 사라진다. 

- 내가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은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위인전이 있었다. 남들 다 가지고 있을 만한, 그런 평범한 위인전이었다. 다 합쳐서 60권 정도가 되었을까. 나는 그 위인전에 관한 한 대단한 편식가 였는데, 내 마음에 든 편만 골라보기에 바빴다. 10명도 안 되는 위인들을 반복해서 읽었고, 나머지 위인들엔 손도 대지 않았다. 굳이 왜 안 읽었냐고 하면, 이름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은 위인들을 뭐하러 읽어야 하냐. 그런 생각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편애했던 2명이 있다. 바로, 김유신과 이순신이다. 남자라면, 역시 장군이지. 어럼픗 기억나는 어느 주말이다. 내가 엄마에게 가서 "엄마 나 이순신 이거 5번도 넘게 읽었어!"라고 말했다. 엄마는 아이고 잘했다고 칭찬했다. 별거 아닌 기억이다. 하지만, 나는 기뻤다. 엄마는 그 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에게 그 어떤 책도 읽으라고 권하지 않으셨다. 만약, 그때 엄마가 화를 내며, "왜 그것만 읽어! 너 자꾸 편식할래! 남은 책은 다 버릴꺼야?"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책을 읽지 않을꺼란 극단적 결과까지는 아니어도, 지금보다 덜 흥미로워 했을 것은 분명하다. 책은 놀이와 같다. 철저히 초대 받아야 한다. 거절할 자유도 그의 것이어야 한다. 선택할 수 없을 때, 독서라는 놀이는 노동이 되고 의무가 된다. 독서는 결코 선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놔 두라고' 권한다. 혹은 먼저 읽던가. 독서를 권하는 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많은 경우에, 그건 그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마치 누가 나보고 밥 먹으라고 소리 지르는 순간, 식욕이 싹 사라지는 것처럼. 


#8. 어쩌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까? 

P.216 
책을 읽으며 열정의 도가니에 빠지는 것은 종종 작가가 되기 위한 징후다. 읽고, 또 읽고, 자꾸 읽으면 거의 자동으로 쓰는 단계에 이른다. 어쩌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까? 먼저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일종의 모방작이란 말인가? 책 읽는 사람이 없는 사회에서는 글 쓰는 사람도 없다. 

- 몇년 전에 우연히 인상깊게 본 동화책이 있다. <책 먹는 여우>라는 책인데, 그 여우는 책을 읽고 나면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꿀꺽 먹어 버린다. 서점에서도 먹고, 도서관에서도 먹고. 결국 그러다가 경찰에 잡혀서 감옥에 갇힌다. 형벌은 독서 금지. 어떻게 했을까? 여우는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고, 직접 글을 쓴다. 결국 자신이 쓴 글이 가장 맛있다는게 결론이다. 나는 아직 동의하진 못하겠다. 내가 쓴 글보다 다른 훌륭한 작가들의 글이 더 좋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내 글도 좋아지고 있다. 언젠간, 적어도 나에겐, 가장 맛있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또 노력한다. 


#9. 유년기에 광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의 운명

P.217 / 유년기에 광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필경 작가가 될 운명이다. 만일 그 꿈이 실현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 위대한 독자가 작가의 꿈을 접은 것이다. … 명심할 것은 타인의 책이 내 책의 막힌 곳을 뚫어주었다면, 나 역시 내 책의 막힌 곳을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 "내가 이러려고 글을 쓰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때때로 자괴감에 빠진다. "이 글이 어떤 가치를,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그럴 때 되짚어가며 읽어야 할 문장이다. 맥락을 좀 바꿔보자.  "타인의 책이 내 인생의 막힌 곳을 뚫어주었다면, 내 책도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받았으면, 다시 돌려주는 것.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세상에 놓여졌고, 무언가를 소비하고 파괴하면서 나를 유지시켰다. 그랬다면, 나 역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장 정당한 사유, 사색 

P.255 
사색이야 말로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가장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결국 독서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피리 부는 사람 앞에 놓인 뱀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반대로, 사색을 제외하고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는 없다. 또한 깊은 독서는 그 자체로 사색을 이끌어 낸다. 평소의 나의 생각으론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독서는 도달하게 한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건을 경험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에 나를 닿게 한다. 그렇제 나의 지평은 넓어진다. 그렇기에, 나는 사색과 독서를 따로 분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어떤 자극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깊이 향하는 것은 중요하다. '무작위적 연결'은 그때 발생한다.  



  1. 조아하자 2017.01.15 22:52 신고

    사실 저도 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실제로 변화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정말 최악의 제 자신에서 최악을 조금 벗어난 제 자신으로 변한 것 정도? 책읽기 전에 저는 뭔가 잘못되면 제 자신을 자해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책읽으면서 이거 하나는 고쳐졌거든요.

12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나의 목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올해 읽은 책 리뷰를 마무리 짓는 것이다. 손을 놓으려고 하면 다시 잡게 되는 목표다. 아무리 명색이 블로그인데 독서 리뷰까지 미뤄지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하지만 하지 못할 핑계는 많이 생각난다. 바쁘단 핑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핑계, 독서 축제 해야 한다는 핑계, 아직 못한 일이 많다는 핑계.. 모든 핑계를 넘어서서 지금 당장 블로그 리뷰를 쓰자. 그래야 나의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것 같다. 서두르자! 

5월  
인생학교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_로먼 크르즈나릭
불안_알랭 드 보통
생태요괴전_우석훈
에티카, 자유의 긍정의 철학_이수영
강점에 집중하라_마커스 버킹엄
남자의 물건_김정운
딜리셔스 샌드위치_유병률

6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_이진우
피터드러커 자서전_피터드러커
30분에 읽는 니체_로이 잭슨
포트폴리오 인생_찰스 핸디
작가수업_도러시아 브랜디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_폴 D 티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_사사키 아타루





2015년 5월 
25. 인생학교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_로먼 크르즈나릭
올해 인생학교 책을 꽤 봤다. 아주 양질의, 권할 만한 책이란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 정리가 잘 되어있다. 좋은 책이다. 아래의 글이 이 책의 지향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진정한 삶의 고수는 일과 놀이, 노동과 여가, 몸과 머리, 공부와 휴식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두 가지 중 뭐가 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무엇을 하든 그저 탁월함을 추구하고 그에 걸맞게 완성할 뿐, 그것이 일인지 놀이인지는 타인의 판단에 맡긴다. 그 자신은 언제나 두 가지를 모두 하고 있다."

나 역시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살기로 마음 먹은지 3년이 다 되어간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려는 사람, 자신만의 천직을 찾으려는 사람,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고민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분명 초서까지 마쳤는데 블로그에 올리지 않았구나. 오늘 중으로 올려야겠다. 
 

26. 불안_알랭 드 보통
2015년 가장 많이 본 작가 한 명을 뽑으라면 단연 나에겐 알랭 드 보통이다. "지금까지 나는 왜 이 사람의 책을 읽지 않았지?” 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관심사와 지향점이 비슷한 작가다. 인생학교를 왜 만들었는지도 공감이 가고, 또 그가 기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기에. 불안이란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불안에 대해서 예전에 TED강의가 있었다. 나도 한번 포스팅 한적이 있고. 


그 내용을 면밀하게 담은 책이다. 각박한 현대를 사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워낙 에티카를 재미있게 읽어서 순위는 밀렸지만, 그래도 5월 최고의 책 중의 하나다. 


27. 생태요괴전_우석훈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팟케스트 <나는 딴따라다>에서 우석훈과 선대인씨가 말하는 걸 인상깊게 들었었다. 공감도 많이 했고. 88만원 세대로 유명한 우석훈 씨의 책이라기에, 또 가볍게 읽고 싶었던 책이 필요했기에 빌려 봤다. 솔직히 약간 짜맞춘 느낌이 들긴 했지만, 신자본주의로 인한 부작용들을 요괴로 설정하고, 그것을 물리치기 위한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주제는 흥미로웠다.

나는 희안한 습관이 하나 있다. 좋은 책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빌려본 책은 가급적 초서를 하는 편이다. 왜냐면, 앞으로 그 책을 볼 일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 책도 초서를 했다. 초서 말미에 내가 이런 글을 적었더라. 옮겨본다.  

"그냥 내 생각. 교육도 마찬가지. 대학이나 외국의 유명한 프로그램 다 좋다. 하지만 그것에 의존한다면 결국 생태계는 건강하지 못하게 된다. 언제나 생산자는 따로 존재하고, 우린 교육을 소비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희망은 로컬이다. 우리가 만든 교육을 우리가 소비하는 것.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어 보는 것. 조금 어설퍼도, 조금 낯설어도, 조금 불편해도 그래도 이용하는 것.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꼭 필요한 자세라고 본다. 모두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교육을 만들고, 또 듣는 것. 세상 모든 사람이 학교가 되는 것 말이다. 

고객은 왕이 아니다. 고객은 노예다. 우리를 왕으로 떠받드려는 사람들일 수록, 기업일 수록 경계하라. 그렇게 왕이라는 기분에 취할 수록 나는 더욱 더 그들에게 예속된다. 노예가 된다. 나는 그들에게 돈을 내고, 그들은 나에게 기쁨을 준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지배한다. 고객이라는 말에는 너는 그저 나에게 돈이나 내고 기분이나 좋아해라. 라는 말이 들어있다. 그러니 깨어있자. 우리 모두"
 

28. 에티카, 자유의 긍정의 철학_이수영



내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충분히 이해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면 물론 No다. 하지만, 에티카에 감명받고 마음이 움직이는가? 라고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100% Yes!라고 외친다. 올해 나에게 단 한권만 고르라고 해도 이 책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다.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고, 흠뻑 빠졌던 사람이 바로 스피노자다. 올해 5월의 책으로 선정했다. 

나는 지나친 고전 만능주의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전을 일단 읽기 시작해라. 이해를 못해도 그냥 읽어내려가라. 그래야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천재 그거 해봐야 뭐 좋을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나에게 독서는 즐거움이다. 내가 몰랐던 것을 인식하고, 세상을 달리 보이게 하는 힘이 독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에티카를 직접 보진 않았지만, 그 언저리를 살펴본 느낌이고, 그것만으로도 올해는 만족스럽다. 고전에 너무 목맬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읽을 때가 되면 다 알아서 읽게 되니 말이다. 

이 책을 필두로, 스피노자에 대한 관심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일단 니체를 좀 더 읽었고, 들뢰즈에 대한 책도 몇권 샀다. 철학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삶에 대한 철학을 공부하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단 생각은 아주 커졌다. 스피노자가 꿈꾼 세상. 자유롭고 능동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나도 그것을 함께 꿈꾼다. 나와 함께 할 사람들도 어서 이 책을 읽어보시길! 


29. 강점에 집중하라_마커스 버킹엄
강점 혁명에 이어서 읽은 책. 뭘뭘 하라! 라는 식의 책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강점 카드를 적기엔 좋은 책이었다. 강점 혁명과 셋트로 보면 괜찮을 책이나, 한권만 권한다면 역시 강점 혁명이다. 링크는 여기


30. 남자의 물건_김정운
이 책은 다행히도! 블로그에 올렸었다. 김정운 교수님의 책을 다 본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재미가 있다.
그분 삶을 존경하기도 하고. 링크는 여기로


31. 딜리셔스 샌드위치_유병률
이 책은 누군가의 페북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려서 찾았다가, 한참을 보고 다시 꼽아 두었던 기억이 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만, 글쓰기와 관련한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의 미덕이 있다면 글을 써야겠구나! 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 이 책도 옮겨적었었다. 글을 쓰며 그래도 이때는 내가 꽤 부지런했었다는 사실을 재 확인한다. 링크는 여기로




2015년 6월 
32.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_이진우
니체에 대한 글을 쓸 때 참고했던 책이다. 꽤 길게 써 보았던 [프리드리히 니체를 만나다] 여기로 링크
이 당시 나는 스피노자에서 자연스럽게 니체로 관심이 옮겨지게 되었고, 일단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책을 골랐다. 알고보니 이진우 교수님은 한국니체학회 회장이시더라. 니체가 있었던 지역을 방문하면서 적은 에세이다. 내가 예상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니체의 삶도 조금 들여다볼 수 있었고. 사실 일반 분들께 니체 입문서로는 이후에 읽었던 고병권 작가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더 권하고 싶다. 


33. 피터드러커 자서전_피터드러커
내가 존경하는 어른이자 상상 속 멘토, 피터 드러커 옹에 대한 개인적 이야기다. 하지만 그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개인적으론 드러커옹의 책으론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2009년에 경영에 대해서 한참 관심이 많았을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인문학 책들을 더 읽다보니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었다. 이 책은 길게 리뷰했었다. 링크는 여기 
 

34. 30분에 읽는 니체_로이 잭슨
이 책은 핸드북이다. 니체에 대한 글을 쓸 때 참고한 책. 짦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얇은 책이다. 


35. 포트폴리오 인생_찰스 핸디



올해 6월의 책! 책을 읽다 보면, 내 삶을 한번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찰스 핸디의 선택이 역시 옳았음을 재확인한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 독립적 프리에이전트를 꿈꾸는 사람들, 1인 기업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 역시 이미 블로그에 써 두었었다. 링크는 여기로. 


36. 작가수업_도러시아 브랜디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책. 작가수업을 이제서야 읽었다. 이 책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다. 요즘은 결론이 명쾌한 책이 좋다.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부럽고. 결론은 이것이다. 글을 쓰는 자가 작가다.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일단 써라. 쓰다 보면 된다. 핑계 만들지 말라. 


37.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_폴 D 티저
나는 지금까지 에니어그렘을 위주로 공부해왔다. 그러다 보니, MBTI는 비교적 소홀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와우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그 첫 시작이 이 책이다. 아주 쉬운 책이고, 누구나 MBTI를 배울 수 있게 써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건 바로 에니어그램과 같은 이유이다. 
이 책의 잘못은 아니고, 절대 기질이나 성격은 책을 통해서는 온전히 배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처음에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고 생각한 MBTI를 온전히 이해한건 10월이 넘어서니까. 책으론 한계가 있다. 


38.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_사사키 아타루
아. 이 책도 강렬하다. 이번 달에 읽은 책 중에서 3 손가락 안에 꼽힌다. 일본의 니체라고 불리는 사사키 아타루. 그가 말하는 어조도 특이하고, 어쨌든 재미있게 읽었다. 앞서 작가수업과 딜리셔스 샌드위치가 읽고 나면 글이 쓰고 싶어지는 책이라면, 이 책을 되려 읽고 나면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아니, 사실은 책이 아니다. 위대한 인간의 정신을 미친듯 읽고 싶어진다. 니체가 그랬고, 사사키가 그랬듯. 

"갑자기 출현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됩니다. 어디러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명령을 듣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따르면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명령이라는 것은 들을 수 없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다른 누군가의 정보를, 즉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편합니다. 

왜냐하면 그 명령은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의 명령은 자기가 바꿀 수 있습니다. 어차피 자신이니까요. 그러면 당연히 확실한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지도 없이 이국의 숲을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이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는 건,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에 시달리게 합니다. … 그래도 여전히 그렇게 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짦은 리뷰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이다. 그저 '표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을 읽는 중 이런 멋진 문장을 만났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와 거의 비슷한 개념이었다. “배우기 위해, 즐거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연설을 하기 위해, 회상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아무런 목적 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현재를 읽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 독서하라.”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목적을 가지지 말라고? 누군가는 이 말에 강한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싫어하는 영어단어가 바로 For (~을 위해서)이다. 아이들은 재미를 위해서, 혹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노는 것이 아니다. 그저 노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미있을 수 있고,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것이다. 목적이 아닌 과정 추구.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반작용도 만만찮다. 모든 것엔 음과 양이 있듯) 독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성과를 위해선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목적을 가진 독서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에 가까운 활동이지, 순수한 독서활동이라 할 수는 없다. 삶에는 일도 필요하지만, 순수 독서도 필요하기에.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건 글을 읽는다고 모두 독서를 하는 건 아니란 것이다. 


다음 부분도 의미있는 문장이었다. 움베르트 에코의 말이다. “자기 안에 있는 타자를 발견할 때 사람은 비로소 ‘윤리’를 얻는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나의 경우에도, 충분히 윤리성을 획득할 수 있다. 윤리성은 내 안의 타자, 즉 양심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아무리 종교를 가지고 있고, 열심히 믿는다 하더라도 타자성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리면 윤리는 얻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종교적이면서 집단 이기주의적인 희안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타자'를 인식하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성찰 그리고 독서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홀로 찬찬히 읽어 나가는 독서 활동과 성찰 활동은 그것을 가능캐 한다.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만 해도,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위의 것들에 공감하고 반응하기 시작하기에. 


마지막으로 재미있었던 문장을 꼽아보자. “롤랑 바르트는 모든 진지한 독서는 ‘다시 읽는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꼭 두 번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구조 전체를 시야에 넣고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의 미로를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갖고 탐구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 말에 공감한다. 모든 독서는 다시 읽는 것이다. 나는 과감하게 이렇게 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 한번 읽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라고. 나의 경우에도 중요한 책은 3번 정도 읽는다. 처음에 줄을 치면서 읽고, 두 번째는 인상 깊은 문장을 옮겨적으면서 다시 읽는다. 그때 놀라는 일도 많다. 이런 문장이 있었어? 라고. 마지막은 내가 옮겨적은 문장을 다시 읽으며 느낀 점을 적거나 리뷰를 적는다. 그렇게 3번은 읽어야 조금은 책이 나에게 들어온다는 걸 느낀다. 내가 읽는 모든 책을 이렇게 읽을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갈 수록 "좋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진짜 독서의 참맛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 책 조금 많이 읽는다고 우쭐했던 내가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워지는 요즘이다. 



가슴에 남는 글귀 

p.28
프랑스의 교사이자 작가인 다니엘 페나크는 자신의 독서론 ‘소설처럼’에서 ‘책을 읽다’라는 동사가 ‘꿈꾸다’ ‘사랑하다’와 함께 명령어로 바꿀 수 없는 단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사랑하라’ ‘꿈꾸라’하고 명령한다고 해서 그것이 명령자의 뜻대로 실행될 수 없듯이, 읽기 싫은 사람에게 ‘읽어라’하고 명령해보았자 그저 읽는 척하거나 이내 수면제 대용으로 활용해버릴 뿐이다. 그래서 페나크는 책 읽기를 보다 친근한 일로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독자의 10가지 권리를 제창하고 있다. 

첫째, 읽지 않을 권리. (나는 기분이 좋지 않거나 장정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여하든 읽고 싶지 않을 때는 안 읽는다.)
둘째, 건너뛰어서 읽을 권리. (새로 발간된 전공 서적을 읽을 때 내가 잘 쓰는 수법이다.)
셋째,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괴테의 ‘파우스트’는 고교 시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다 못 읽었다.)
넷째, 연거푸 읽을 권리 (내가 좋아하는 로크카의 시집은 하도 여러 번 읽어서 이제는 거의 다 외운다.)
다섯째, 손에 집히는 대로 읽을 권리 (이현세의 만화를 읽다가 갑자기 막스 베버를 읽은들 어떠랴.)
여섯째, 작중 인물과 자신을 혼동할 권리. (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으면 햄릿이 되고 또 가끔 홍길동이 되기도 한다.)
일곱째, 읽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권리. (침대에서 읽고, 기차간에서 읽고, 수영장에서도 읽는다.) 
여덟째,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읽을 권리 (내 특기다)
아홉째, 소리 내어 읽을 권리. (흥이 겹거나 감동했을 때는 저절로 소리가 난다.)
열 번째,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책 읽기의 장점 중 하나는 그 즐거움을 혼자만의 비밀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p.50-51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을 읽어서 도대체 어디다 써먹을 거냐?” 이 질문은 ‘효용’이라는 관점으로만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질문이다. 물론 책 읽기는 실용적 동기를 가진 사람에게도 쓸모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 무언인가를 배워서 응용하기 위해 책을 찾는 사람들이 독서 인구의 가장 큰 축을 이룬다. 이 책 읽기는 ‘공부’로서의 책 읽기이므로 누구에게도 박해받지 않는다. ... 그러나 나는 독서 중의 독서, 궁극의 책 읽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또는 아내에게 핀잔 받는 책 읽기야말로 책 읽는 자에게 지고의 쾌락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4만 권이 넘는 자신의 책을 밀라노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폰티지아는 말한다. “배우기 위해, 즐거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연설을 하기 위해, 회상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아무런 목적 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현재를 읽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 독서하라.” 그가 권하는 ‘목적 없는 독서’야말로 문자 그대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다. 이런 책 읽기는 시험에도 취업에도 농사일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도움이 안 되면 어떤가? 그 무엇보다도 책 읽기는 쾌락으로 충만해 있지 않은가. ...

...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는 진정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을까? 오히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를 거듭한 사람일수록 나중에 세상에서 여러모로 쓸모가 많아지는 사람이 된다는 걸 살면서 새록새록 깨달아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를 많이 한 사람일수로 목적 있는 책 읽기만 주로 한 사람들에 비해 세상을 보는 눈이나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더 깊고 더 따뜻한 것을 나는 보았다. 


p.60
책을 읽을 때는 사람이 주인이다. 읽으려는 의도와 읽는 속도, 그만두는 행위를 사람이 스스로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상매체는 사람보다 더 힘이 세고, 사람보다 더 빨라서 사람을 종종 압도한다. 물론 편하기는 하다. 영상의 속도에 감정을 맞춰두면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는 일을 남의 의도에 내맡기기 쉽다. 책 읽는 일이 사람과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참으로 중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은 스스로 책을 고르고, 책장을 연다. 또 스스로 활자를 따라 눈동자를 굴리고, 때로 앞장으로 되돌아가려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또는 읽다가 팍 덮어버리거나 휙 던져버린다. 이 모두 사람이 스스로 하는 일이다. 따라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일보다 귀찮고 힘이 드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래서 그만큼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책을 읽는 일은 사람이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p.64-7
어떻게 하면 이 ‘끔찍한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와 마르티니 추기경의 서간집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는 그 해답의 작은 단서가 비친다. 로마교구의 마르티니 추기경이 던진 “비신앙인은 어디에서 선의 빛을 찾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에코의 대답은 이렇다. “자기 안에 있는 타자를 발견할 때 사람은 비로소 ‘윤리’를 얻는다.” 사람은 타자를 인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육체를 존중하고 그 육체의 확장인 다른 사람의 말, 사상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대량학살, 식인 풍습, 타자의 육체에 대한 모욕을 인정하는 문화가 과거에 있었거나 지금도 있는 것일까요? 그 문화들은 ‘타자’의 개념을 단지 부족 공동체에만 국한시키고, ‘야만족’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군 병사들조차 이교도들을 사랑해야 할 이웃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타자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 우리를 위해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욕구들을 타자에게서도 존중해야 할 필요성, 이것은 바로 천년에 걸친 인류 성장의 결실입니다."
/ 움베르트 에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묻지 맙시다. 

…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상은 나치 학살자들이 ‘타자’의 범위를 자기 민족으로 국한시켰기 때문에 생긴 일이리라. 그렇다면 이 영상미디어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전쟁과 살인의 물화를 거부하는 일, 미디어 이벤트가 된 전쟁과 테러의 와중에도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는 일, 텔레비전을 끄고 책을 읽는 일이다. 

책 읽기를 통해 우리는 타자를 만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서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장 특별한 혜택이다. ... 책은 인간에게 주어진 공간과 시간의 벽을 넘어 수많은 인간 유형을 만나게 해준다. 우리는 책 속에서 허락도 약속도 없이 여러 유형의 인간들과 마음대로 만나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책 속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출발선에 우리를 세워준다. 


p.85
종이책은 ‘무한 에너지’를 가진 매체다. 충전시키지 않아도 되고, 콘센트에 꽂지 않아도 볼 수 있다. ... 또 책은 개인매체다. 혼자서 사용하고, 혼자서 통제하고, 혼자서 즐기는 매체다. ... 책은 내용에 제한이 없다. 즉 어떤 콘텐츠도 다 담을 수 있다. 이런 콘텐츠의 ‘다양성’이 매체로서 책이 가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의 하나다. 


p.88

이 모든 장점을 다 합쳐도 도달할 수 없는 오직 책만이 가진, 책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책이 ‘사람이 주인인 매체’라는 데 있다. 즉, 책은 읽는 사람이 스스로 통제해야만 하는 매체다. 책을 읽는 일은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행위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듣는 행위와는 달리 ‘읽는 의지’가 필요하다.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를 고양시키려는 인간의 행동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행위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청하는 행위만큼 쉽지 않다. ... 책 읽기가 고통이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책이 독자에게 자신을 해독할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책을 온전히 읽으려면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문장 전후의 문맥을 이해해야 한다. ... 그러나 책 읽기에 따라오는 이런 고통이야말로 사실은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다. 모든 쾌락은 고통의 시간 뒤에 온다. ... 깊은 쾌락일수록 깊은 고통을 요구한다. 


p.94
우리가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떤 위정자가 독재자였고, 누가 민주적인 통치자였는지 한 칼에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우리 역사에서 광해군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가장 손쉬운 독재자 판별법이 있다. 책을 불태운 자가 바로 독재자다. 네로, 진시황, 아돌프 히틀러와 같이 책을 불태운 사람들을 독재자라고 부르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을 불사르는 자가 빼앗고 없애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상상력, 꿈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다. 또한 ‘남과 다른 생각’이며, 남의 말이나 남의 생각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려는 의지’다. 그렇다. 책을 읽는 일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일이며,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공임을 우리 스스로 깨닫는 일이다. 그것은 때로 귀찮고 힘든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므로, 더욱, 인간으로 태어난 지고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 책 읽기는 때로 어렵다. 그래도 나는 읽는다.  


p.122
다시 읽기를 주창하는 사람 중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씨가 있다. 그는 소설 ‘우울한 얼굴의 아이’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롤랑 바르트는 모든 진지한 독서는 ‘다시 읽는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꼭 두 번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구조 전체를 시야에 넣고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의 미로를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갖고 탐구하는 것이다.”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은 오래전에 갔던 산사를 다시 찾아가는 일과 같다. 전에는 안 보이던 빛바랜 단청이며 뒤뜰의 부도탑이 어느덧 눈에 들어온다. 몇백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인데 왜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같은 절을 여러 번 방문하면, 무엇보다도 절집 전체의 구도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뒷산과 대웅전 처마 끝이 맞닿은 풍광이 가슴에 천천히 안겨오게 된다. 책도 이와 같다. 오래 사귄 책은 오래된 절과도 같다.


p.134
내용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책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는 추억만 읽으면 된다. 가끔 어딘가에서 책을 읽었던 그 행위 자체가 한 권의 책이 된다. 프루스트는 말했다. “자신이 읽은 책에는 그 책을 읽은 밤의 달빛이 섞여 있다.” 


p.146
그렇다고 고전이 필요없다는 건 아니다. 고전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오래도록 큰 울림을 남긴 책이다. 사람들이 되풀이해서 읽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그 내용과 명성이 오랜 시간 전해지면서 비로소 전설이 된 책이 고전이다. 그러나 책 읽는 사람 각자에게 의미 있는 ‘고전’이 있을 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고전’은 없다. 저명한 학자나 권위자가 정한 고전 목록에 체크를 해가면서 한 권 한 권 억지로 읽는, 마치 방학 숙제와 같은 책 읽기에서 좀 자유로워 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p.164-6
아무도 내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책들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당신은 왜 우리에게 이토록 매달리는가?”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책을 바라보듯이, 책 역시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행하게도 나는 아직 책 읽기보다 더 즐거운 일을 만나지 못했다. 아마 오래도록 책을 읽고 있는 까닭도 책 읽기가 행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정치학자인 최장집 선생이 자신의 일과가 “전공 책을 읽는 시간과 비전공 책을 읽는 시간으로 나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전공과 상관없는 책을 읽으면서 보낸다. 얼마 전 일본 문학의 두 거장인 쓰지 구니오와 미즈무라 미나에의 ‘필담’을 읽다가 거기에 나오는 쓰지 구니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적이 있다. 다음의 문장 중에서 ‘문학’이라는 말을 ‘책’으로 바꾸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될 듯싶다. 

“문학이란 재미있기 때문에 읽는 것입니다. ‘놀아야 한다’고 해서 ‘놀이’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이란 하나의 ‘놀이’와 같습니다. ‘읽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학을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문학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을 안다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어떤 ‘놀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무관심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자기가 ‘행복’ 그 자체를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무관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마냥 즐거운가. 그렇지만은 않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행복하면서 동시에 불행하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세상과의 소통과 세상과의 단절을 동시에 경험한다. 책을 읽는 자는 완전한 단독자로서 세계와 맞닥뜨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 읽는 일은 구원인 동시에 좌절이다.  


  1. 조아하자 2015.11.30 21:29 신고

    책을 불태운 자가 독재자... 맞는말인듯... 책을 포함해서 문화유산을 불태운 자가 독재자라는 말도 맞는거같아요... 최근에는 IS가 문화유산을 불태워서 말많았죠.

9월 21일
책 읽기 - 한번 더 옮기기

현대인들에겐 책 볼 시간이 없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책 볼 시간이 도저히 없다. 내가 유일하게 책을 마음놓고 볼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지하철'뿐이다. 지하철 이외의 장소에서 책을 본 기억은 나름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하던 시기뿐이다. 2012년을 기점으론, 앉아서 책을 읽은 적은 손에 꼽는다. 앉으면 보통 필사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강의를 준비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기에. 먹고 살아야 하니까. 책을 읽기 위해 나는 하나의 전략을 세웠다. 일단 강의장소가 멀면 멀수록 보통은 주저하지만, 난 마다하지 않는다. (되려 속으론 반긴다.) 비효율적인 동선을 많이 만들수록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기에. 작년엔 그 정도가 심해서 매주 오산, 일산, 남양주, 시흥, 성남을 왔다 갔다 했던 적도 있다. 올해 들어서 다소 나아졌지만, 그래도 이동시간이 만만찮은 곳들이 여전히 많다. 그렇게 시간을 확보했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강의 준비는 끝이 없는 거라서, 이동 내내 강의 준비를 하면 책을 볼 순 없게 된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에 이어 두번째 조건, '정신적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나는 이동 중엔 내가 강의 하러 간다는 사실을 잊으려 노력한다. 강의 준비 시간과 책 보는 시간은 철저히 구분하려 애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책을 읽을 수 없기에. 마지막, 사실 이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 발터 벤야민에 대한 책을 읽으며 강의하러 가는 길이었다. 책을 읽으며 그 기쁨이 참으로 커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주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지. 탁월한 비유다. 그 문구를 나에게 가지고 오면 이렇게 된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책을 보는 것일까, 책을 보기 위해 먹고 사는 것일까. 문득,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 반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게. 어느새 성큼 다가온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9월 22일
중간 점검

9월의 2/3가 지났다. 중간 점검을 해보자. 탁월한 삶을 위한 훈련은 필연적이기에.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3월부터 하나의 실험을 했다. 매일 성찰일지 적기. 물론 밀릴 때가 대부분이다. 3-4일 정도 밀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일주일 이상 밀리진 않았다. 그리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적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나 자신에게 칭찬해 줄 부분이다. 그래서, 작년 내 삶의 만족도를 6-7점 정도라고 한다면, 올해는 8-8.5점은 된다. 꽤 높은 점수의 상승의 절반은 재원이가, 절반은 성찰이 책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끝인가? 아니다. 아직 멀었다. 그 하나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었다. 9월부터 시작된 실험은 바로 ’Self-control’ 프로젝트. 매일 하나의 할 일을 정하고, 그것을 하는 것.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지속하기에 그리 쉽지도 않다. 매일 무언가를 인식하는 것 그 자체가 꽤 어려운 일임을 고백한다. 실제로 처음 며칠은 생각도 나지 않더라. 하지만 어느새 거짓말처럼 21일 정도가 지났다. 누군가 그랬다. 습관을 형성하는 시간이 21일이라고. 꽤나 설득력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젠 알아서 매일 할 일을 기록하고, 체크하고 있다. 그래. 올해는 나를 대상으로 이런 저런 실험을 하자. 그리고 내년엔 그 실험 결과를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자.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자고 하는 것은 기만이지만, 내가 갔던 길을 가자고 하는 것은 초대이자, 배려기에. 그렇게 함께 훈련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다 같이 걸어들어가 보고 싶다. 9월 지금까지 나의 만족도는 8.5점이다. 남은 1.5점은 단순하다. (솔직히 9점 이상이 되긴 어려울 듯 하지만) 남은 기간도 온전하게 이 프로젝트에 헌신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좋다. 


9월 23일 
열정에 대하여 

오늘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연이은 미팅이 있는 날. 앞서서 김희태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나는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공부를 한참 할 때였다. 아마 10월이었나 mysc에서 주관하는 소셜 이노베이터 캠프가 열렸다. 다른 것보다 기대가 된 것은 체험형 워크샵과 OST를 직접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박 2일이란 일정에도 불구하고, 신청했다. 결과적으론 만족스런 경험이었다. 그 과정에서 옆에 앉아서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는 인연으로 만났었다. 왜냐? 당시 선생님께서 협동조합 보드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때 한참 보드게임에도 관심이 많던 나는, 이후 몇번 회사를 찾아서 이야기도 했고,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 보기도 했다. 작년 이맘때쯤, 교육 하나 같이 하자고 의견도 모았지만 결국 그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근 1년만에 다시 만나서 대화하는 거라, 근황을 주로 나누었다. 이번 만남에서 특히 인상깊은 것은 바로 ‘역사’에 대한 선생님의 열정이었다. 신나게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며, ‘아, 이분은 정말 좋아하는거 하시는 구나’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저런 곳에 역사 탐방을 다니시며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듣고, 공부도 하시는 모습이 나에게 좋은 자극도 되었다. 또한, 대동법 시행과 관련한 비석을 설명할 때는 정말 기존에 ‘의미없었던 비석’이 나에게 ‘새로운 의미’가 되어 출현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역사가의 본질이 그런 것이 아닐까. 선생님의 열정에 감탄을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어서 만난 선생님은 최승표 선생님. '우리 아이는 야구선수'란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시는 분이다. 사실 인연이 된지는 꽤 오래 거슬러 올라간다. 미내사에서 부터 이어져오니 ㅋㅋ 암튼 선생님도 앞서 처럼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계시다. 우리 나라에 좋은 운동 문화가 퍼졌음하는 바람이 나에게도 전해져 온다. 나 역시 이에 감화되어서 이번에 워크샵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고 말이다. 암튼 이런 분들의 열정을 접하면, ‘열정’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열정이란, 정말 ‘삶’에 '숨’을 불어넣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그 보상을 바라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것, 그렇게 삶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열정이 아닐까. 


9월 24일 
칠보초 수업 성찰

칠보초 감사 수업이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시간은 감사편지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이번 1년은 나름의 주제를 바탕으로 주제별 수업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이번 감사수업에서 그건 가장 잘 지켜진 것 같다. 도입은 이야기로, 전개는 자신들의 실제 사례로, 절정은 역할극이나 프로젝트로. 마무리는 나눔이나 표현으로. 그렇게 하나의 주제를 탐색해보는 활동을 의도했었는데, 이번에 그나마 잘 된 것 같다. 그렇게 하반기 수업도 하나씩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잘 따라와주는, 그래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는 아이들이 감사하다. 


9월 25일 
지현쌤과의 대화

꼴라주 프로그램 때문에 서둘러 미팅을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미팅을 하면서 느끼는 건, 재미있는 과정이 될 것 같다는 기대다. 역시 다양성이 충분히 확보되고, 그 특징이 잘 발현되는 분위기가 연출될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건 기정사실인듯. 미팅을 마치고 지현쌤과 남아서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 지현쌤은 나와 애니어그램 성향은 다르지만, MBTI적 성향은 비슷하다. 나보다 외부에 비교적 많이 열려있으신 편이지만, 그래도 내부와 외부의 균형이 잘 맞는 편이다. 사람을 보는 눈이나 관심사도 비슷한 편이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성향도 비슷하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런 저런 주제로 대화했는데, 마무리할 때쯤 정리가 된 것이 있다. 퍼실리테이션과 디자인씽킹과 시스템씽킹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다. ㅋㅋ 일단 도입은 퍼실리테이션이다. 왜냐? 참가자들에게 ‘힘’을 되찾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언와 아이디어이 반영된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필수다. 그것이 없으면 공동 창조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힘을 되찾게 하고, 그 힘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역시 ‘디자인씽킹’이다. 디자인씽킹의 ‘행동 중심 모델’은 굉장히 뛰어나다. 공감을 중심으로 한 행동, 그리고 지속적 피드백. 그렇게 참가자들은 자신의 힘을 자각한다. 마지막은 시스템씽킹이다. 자신이 발휘한 힘에 대한 영향력을 추적하는 것은 역시 ‘시스템씽킹적 관점’이 최고다. 원인과 결과를 추적하고, 결과가 원인에게 다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그 피드백을 고려하는 것. 그렇게 해서 큰 그림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것. 그렇게 되면 전체 과정은 하나의 조각으로 완성된다. 끝없는 이 그림을 맞추는 것은 각자가 일상에서 돌아가서 해야 할 몫으로 남고 말이다. 역시 함께 아이디어를 합치고 나누는 것은 즐거운 과정이었다. 


9월 26일 - 29일 
추석 연휴 리뷰

이번 추석 연휴를 간단히 리뷰한다. 첫날, KTX를 타고 대구로 이동했다. 평소 나는 돈이 아까워서, 그리고 기차에서 책을 읽고자 주로 ‘무궁화호’를 이용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재원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빈 자리가 없어서 특실을 끊었다. 비싸서 그렇지 진짜 빠르긴 하더라. 1시간 40분만에 대구에 도착했다. 평소 왠만한 수업 다니는 거리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달떡’을 사러 간 것이다. 달고 떡볶이는 정말 맛있고 싸다. 2000원치만 사면 2-3명이 배부르다. 게다가 맛있다. 나는 매년 2번 대구를 가고, 매번 도착하자마자 사 먹는다. 올해는 아버지가 이벤트를 준비했더라. 재원이의 방문을 축하하는 대자보가 뙇! 진짜 웃겼다. ㅋㅋㅋ 손주가 이쁘긴 이쁜가보다. 한참을 웃고 제사음식도 먹고 놀았다. 저녁에는 아버지랑 같이 두류공원도 산책했다. 

ㅋㅋㅋ 대박 ㅋㅋㅋ


다음 날, 아침일찍 차례를 지냈다. 사실 지난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내도 나도 재원이도. 왜냐? 그놈의 모기! 재원이도 팔과 다리에 10방 정도를 물렸고, 나도 그랬다. 한 녀석이 그런거 같은데, 암튼 엄청 힘들었다. 비몽사몽으로 차례를 지내고, 사촌동생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오후엔 성묘를 갔다가 할머니 요양원도 들렸다. 할머니는 이제 정말 치매가 심해지셨더라. 우리들이 가서 인사를 해도, 엄마가 먹을 것을 드려도, 그저 ‘감사합니다’만 반복하셨다. 처음보는 사람처럼 우리를 바라봤다. 나는 사실 할머니를 통해서 키워졌기 때문에 할머니랑 각별한데, 마음이 너무나 아렸다. 평소에 편히 눈감으시는 것을 얼마나 꿈꾸셨는데.. 매번 편하게 눈감게 해달라고 애원하셨는데, 지금은 편안해 지셨으려나 모르겠다. 암튼 남은 기간 동안 할머니가 진심으로 평안하시길 기도한다. 정말 그러하시길.. 에효. 암튼 저녁에는 다들 힘들어서 뻗었다. 다음 날, 오전에 아파트 주위에 산책을 다녀온 것 이외에는 별 일이 없었다. 재원이 보느라 다들 정신없었다. 오후에 외출을 했다. 요즘 뜬다는 ‘김광석 거리’에 방문했다. 정말 예쁘더라. 그림과 음악이 어울려진 거리였고, 그에 맞춰서 갖가지 상업적 시설(;;)도 들어오고 있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나는 ‘예술의 힘’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서울로 치면 연남동이나 통의동을 걷는 기분? 예술이 자리를 잡으면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 사람들을 따라서 돈이 들어오는 모습에 더불어 볼 수 있었고 말이다. 백화점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왔다. 마지막 날은 오전에 떡볶이를 먹고, 오후에 KTX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번 추석 연휴를 정리하자면. (혼자일 때보다) 정신적, 시간적 여유는 많이 없어졌지만, 그 덕분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광경들을 새롭게 목격할 수 있었던, 그런 의미있는 명절 연휴라고 정리하고 싶다.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에서



#독서 #책읽기 #가을 


현대인들에겐 책 볼 시간이 없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책 볼 시간이 도저히 없다. 내가 유일하게 책을 마음놓고 볼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지하철'뿐이다. 지하철 이외의 장소에서 책을 본 기억은 나름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하던 시기뿐이다. 2012년을 기점으론, 앉아서 책을 읽은 적은 손에 꼽는다. 앉으면 보통 필사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강의를 준비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기에. 먹고 살아야 하니까.


책을 읽기 위해 나는 하나의 전략을 세웠다. 일단 강의장소가 멀면 멀수록 보통은 주저하지만, 난 마다하지 않는다. (되려 속으론 반긴다.) 비효율적인 동선을 많이 만들수록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기에. 작년엔 그 정도가 심해서 매주 오산, 일산, 남양주, 시흥, 성남을 왔다 갔다 했던 적도 있다. 올해 들어서 다소 나아졌지만, 그래도 이동시간이 만만찮은 곳들이 여전히 많다.


그렇게 시간을 확보했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강의 준비는 끝이 없는 거라서, 이동 내내 강의 준비를 하면 책을 볼 순 없게 된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에 이어 두번째 조건, '정신적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나는 이동 중엔 내가 강의 하러 간다는 사실을 잊으려 노력한다. 강의 준비 시간과 책 보는 시간은 철저히 구분하려 애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책을 읽을 수 없기에.


마지막, 사실 이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 발터 벤야민에 대한 책을 읽으며 강의하러 가는 길이었다. 책을 읽으며 그 기쁨이 참으로 커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주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지. 탁월한 비유다. 그 문구를 나에게 가지고 오면 이렇게 된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책을 보는 것일까, 책을 보기 위해 먹고 사는 것일까. 문득,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 반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게. 어느새 성큼 다가온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내가 읽은 10개의 장면 & 내가 만든 10개의 질문 

1.
“임신 상태보다 장중한 상태가 있을까?” “이 장중함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기대되는 것이 사상이든 행위든 - 우리는 모든 본질적인 완성에 대해 임신이라는 관계 이외의 관계를 갖지 않는다.” ... 들뢰즈는 철학이란 개념의 창조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개념concept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애초에 ‘잉태된 것conceptus’이라는 뜻입니다. ... 개념, 임신, 그것은 세계를 다시 낳는 것입니다. 

: 철학이란 개념의 창조이며, 창조에는 잉태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품고 있는가? 


2. 
저에게는 니체의 말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책을 읽었다기보다 읽고 말았습니다. 읽고 만 이상,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는 이상, 그 한 행이 아무래도 옳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은 이상, 그 문구가 하얀 표면에 반짝반짝 검게 빛나 보이고 만 이상, 그 말에 이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한 행의 검은 글자, 그 빛에, 그러므로 저는 정보를 차단했습니다. 무지를 택하고, 어리석음을 택하고, 양자택일의 거부를 택하고, 안테나를 부러뜨리는 것을 택하고, 제한을 택했습니다. 또는 보답 없는 것을, 무명을, 음지를 말이지요. 

: 나는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가? 누구의 말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가? 


3.
마르틴 루터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책은 적게 읽어라. 많이 읽을 게 아니다.” 책이란 되풀이해서 읽는 것이라는 겁니다. ... 왕왕 대량으로 책을 읽고 그 독서량을 자랑하는 사람은, 똑같은 것이 쓰여 있는 책을 많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즉 자신은 지를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착취당하는 측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읽은 책의 수를 헤아리는 시점에서 이미 끝입니다. ... 저는 몇 권 안 되는 책을 반복해서 읽기 때문에 입에 붙어 거의 원문 그대로 술술 나옵니다. 반복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왜 책을 읽는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대혁명’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지요.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운동입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 루터가 살았던 16세기는 12세기의 중세 해석자 혁명, 즉 교황 혁명의 성과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 한창 이런 때였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성서를 읽은 것은. ... 그의 고난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이 세계에는,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을. 성서에는 교황이 높은 사람이라는 따위의 이야기는 쓰여 있지 않습니다. ... “십계명을 지켜라”라고 쓰여 있을 뿐입니다. 수도원을 지으라고도 쓰여 있지 않습니다. ... 면죄부는 논할 계제도 못 됩니다. 몇 번을 읽어도 그런 것은 쓰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은 왜 존재하는가? 무엇이 혁명을 낳는가?   


5. 
루터는 이상할 정도로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성서의 일부분을 일부러 여백이 많은 종이에 베껴 쓰게 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메모를 해가며 되풀이해서 읽기까지 했습니다. 라틴어도 그리스어도 히브리어도 공부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읽습니다. ...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 질서는 완전히 썩어빠졌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이 질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 모든 사람이, 루터를 제외하고, 교황이 있고 추기경이 있고, 대주교가 있고 주교가 있고 수도원이 있고, 모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성서에는 그런 것이 쓰여 있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6.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루터는 가톨릭교외에서 파견된 요한 에크와 라이프치히 논쟁을 벌입니다. ... 루터는 “얀 후스가 옳다” “교회도 잘못을 저지른다.”라는 치명적인 말을 해버립니다. 책에 그렇게 쓰여 있다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면 말이지요. 그리하여 루터는 대이단임을 선고받습니다. ... 루터는 “설사 보름스 시대 지붕의 기와가 모두 적이 되어 습격해온다고 해도 나는 간다”라고 말하며 소환에 응합니다. 거기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서의 증언이나 명백한 이유를 가지고 따르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계속 내가 든 성구를 따르겠다. 나의 양심은 신의 말에 사로잡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교황이나 공의회는 자주 잘못을 저질렀고, 서로 모순된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주장을 철회할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는 것은, 확실하기는 해도 득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 나는 무엇에 근거하여 살아가는가? 양심인가? 권력인가? 또 다른 무엇인가? 


7. 
그리스인들이 쓴 책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정도일까요? 천권 중 한권입니다. 즉 99.9퍼센트는 사라졌습니다. 사멸한 것입니다. 남은 것은 단 0.1퍼센트입니다. ... 그렇다면 그리스 문학은 패배했을까요? 괴멸한 것일까요? 그들은 승부에 져서 훗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걸까요? ...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0.1퍼센트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99.9%퍼센트의 사멸을 넘어 그리스 문화는 이슬람 문화를 키우고 유럽을 창출했으며, 우리 세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 고전이란 무엇인가? 고전이 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8. 
아주 옛날부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수도사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또는 공부하여 출세하려는, 귀족계급보다는 하층계급 사람들이 말이지요.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군자야말로 위대하다는 것은 그리스와 로마만의 아름다운 상식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귀족이면 무학이고 난폭해도 된다, 오히려 그러는 편이 고귀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들의 고귀함은 핏줄만이 보증합니다.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가 되어도 로베르토 미셀스라는 독일 귀족이 “학문이야말로 혁명의 선구이자 우리의 적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바로 말 그대로 입니다. 이 말에 여실히 드러난 대로, 책을 읽고 또 쓰는 것은 늘 혁명의 힘이 거처하는 곳이었습니다. 

: 혁명을 꿈꾸는 자는 누구이며, 거부하는 자는 누구인가? 혁명의 힘은 어디에 거처하고 있는가?


9.
명예욕을 위해서도 아니고 금전욕을 위해서도 아니라고 한다면, 왜 발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그것은 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좀 더 말해볼까요? 베케트나 첼란이나 헨리 밀러나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나... 발레리가 없었다면 저는 여기에 없을 겁니다. 니체나 푸코나 르장드르나 들뢰즈나 라캉이 있어주어 다행입니다. 그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습니다.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라고요. 

: 표현은 왜 하는가? 표현하지 않으면 왜 안 되는가? 무엇을 읽어야 하고, 무엇을 써야 하는가? 


10. 
철학사상 견줄 것이 없는 걸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최종부인 제4부가 몇 권이나 배포되었는지 아십니까? 출판사의 버림을 받아 자비로 40부를 찍었고 7부만 지인들에게 보냈습니다. 세계에서 단 7부입니다. 그렇다면 니체는 패배했을까요? 진 걸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런 건 인정할 수 없습니다. ... 이것이 니체 자신이 말한 ‘미래의 문헌학’이라는 것입니다. 니체는 이런 의미의 말을 했습니다. "언젠가 이 세계에 변혁을 초래할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인간에게도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밤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그 극소의, 그러나 절대 제로가 되지 않는 가능성에 계속 거는 것, 그것이 우리 문헌학자의 긍지고 싸움이다." 

: 니체가 말한 ‘번혁을 초래한 인간’은 누구인가? 당신이 아니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나의 한 줄 요약
읽어라. 미쳐라. 그리고 혁명하라. 달리 할 일이라도 있는가?  


지난 번 도입 글에 이어서, 이제는 각각 책에 대한 한줄 리뷰다.
우선 1월과 2월에 읽은 책들이다. 바로 스타트


2015년 1월 
1. 어떻게 살 것인가_유시민 

+ 나는 유시민이란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가 한참 유명해지고, 활동 할 당시의 나는 정치에 전혀 무관심이었으니까. 하다못해 100분 토론에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꽤 좋아하는 사람이다. 올해 초, 유시민이란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자 해서 산 책이 <나의 한국현대사>였고, 빌려서 본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란 책에 대해선 초서를 한 적이 있다.링크입니다.어떻게 살 것인가, 핵심은 이것이었다.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자.”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이다. 

2. 블리스, 내 삶의 신화를 찾아서_조지프 캠벨

+ 내가 진행하는 독창적인 수업 중에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가 있다. 사실 작년에 매달 심톡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워크샵을 디자인하고, 또 진행해보는 경험을 했었는데 그 과정에 만들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기존에 있던 것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 이 <자신찾>에 애정이 생겼다. 이 책은 이 워크샵을 하루짜리 워크샵으로 확장시키고자 해서 들여다 본 책이다. 조지프 캠벨이 새롭게 만든 책은 아니고, 그가 했던 말을 잘 편집해서 ‘주제’에 맞게 배열한 책이다. 하지만 꽤 재미있게 편집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세계관과 잘 맞아 떨어져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 올해 1월의 책!

3.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_이희석

+ 올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 바로, 와우 스토리 연구소의 10기 연구원이 되는 것이다. <와우랩>이란 이희석 선생님을 필두로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진 커뮤니티다. '마음을 나눈 사람들의 자기실현 학습 커뮤니티’ 굳이 비교하자면, 구본형 변화연구소의 연구원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희석 선생님도 구본형 선생님의 제자이기도 했고, 느낌도 비슷하다. 원래 나는 구본형 선생님께 한번 배워보고픈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 작고하시면서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와우랩과 인연이 닿아서 올해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 독서축제란 이름으로 숙제를 하는 것이 있는데, 이 책이 첫 책이다. 나의 합류는 다소 늦게 이루어져서 이번 책은 리뷰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분실하는 바람에 꼼꼼히 리뷰도 못 하지만, 읽는 동안은 ‘독서법’에 대한 좋은 개론서라고 느껴졌다. 

4.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_짐 로허

+ 앞서 설명한 <와우랩> 2번째 책이다. 이 책의 초서와 리뷰는 여기. 링크입니다. 일반적인 자기계발 서적과 비교했을 때,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특히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다'라는 점에서 아주 공감했다. 충분한 ‘감정적, 신체적, 정신적, 영적’ 에너지가 있어야, 짦은 시간에도 몰입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점. 공감한다. 마지막 장에서 언급된 목표, 현실, 행동도 유익했다. 목표는 나의 내적 가치와 자기 이익을 뛰어넘는 것. 현실 인식은 진실과 대면하고, 자기 기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행동은 지속적인 의식의 활용으로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 이 책에선 리츄얼의 중요성을 많이 언급하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 제대로 된 리츄얼이 없단 생각도 한다. 아직 일상을 가지런하게 만들지 못했다. 다시 한번 재독하고 싶다. 

5. 유태인의 공부_정현모

+ 2015년 1월은 아내의 출산이 임박한 때이자, 특히 1월 22일엔 우리 재원이가 태어난 날이다. 그래서 1월 중순 이후에는 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사실 우린 자연출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1달 먼저 태어나는 사람에 결국 종합병원에서 낳아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교대역 <메디플라워>라는 곳에서 상담도 받고, 교육도 듣고 있었다. 자연출산으론 가장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갔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출산을 앞둔 분들에게 내가 많이 추천하는 곳이기도 하고. 여기서 대기하면서 읽었던 책이 <유태인의 공부>다. 마음에 드는 몇 문장이 있었다. 하지만 구입해서, 아주 몰입해서 볼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란 정도의 책이었다. 


2015년 2월
6. 희망의 인문학_얼 쇼리스

+ 2월도 갑작스런 1월 출산의 여파 때문에 많은 책은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은 정말 의미있게 읽었다. 바로 <희망의 인문학>이다. 너무 좋게 읽어서 리뷰를 남긴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구나. 그때 쯤 정신없어서 그런가보다. 핵심은 인문학이 ‘(물질적, 정신적)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얼 쇼리스는 여기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어찌보면 이 책은 오랜 나의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비 앞에 있는 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결국 인문학이란 회의하고, 탐구하여 기존의 ‘나의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정의지만,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인문학이란 나의 공간을 뛰어넘어 ‘타자의 공간’에 합류하는 것이다.라고. 얼 쇼리스는 이를 정치적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얼 쇼리스도 동의하는 건, 정치적 삶을 살기 위해선 가장 먼저 ‘성찰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찰적 사고란, 나의 생각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능력이다. 이것이 없다면, 우린 나를 이해할 수도, 서로를 이해할 수도, 사회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린 괴태의 말마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경멸한다. 즉, 타자의 공간에 합류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성찰’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이 연결고리를 배웠다. 고마운 책이다. 올해 2월의 책!

7. 인생수업_엘리자베스 퀴슬러 로스

+ 와우랩 3번째 책.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있었다. 한때 열풍이 불었던 책이고, 나는 이상하게도 베스트셀러를 잘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책도 대충 봤던 거 같긴 한데 제대로 기억이 나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할 때는 잘 안 보다가, 시간이 지나서 뒤늦게 읽고 좋다고 선전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사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당시 내 관심사를 굳이 바꿔서까지 읽고 싶지는 않은 것일 뿐. 그랬던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 였고, 이번 <인생수업>도 그런 책이다. 읽고 나니, 참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리뷰는 과거에 적었다. 링크입니다.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은 앞서 <어떻게 살 것인가>와 비슷하다.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그리고 배우라.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다.” 

8.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_진 리들로프

+ 2월에 한참 육아에 관심이 많을 때 봤던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바로 ‘안고 다녀라’라는 것. 이 책에 나오는 예콰이족의 경우, 아이를 항상 안고 다닌다. 그렇게 언제나 아이를 안고 일을 하고 일상생활을 한다. 그럴 경우 자라서도 우리가 걱정하는 응석받이가 되기보단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지키는 육아법이라고 말하는 책이 이 책이다. 물론, 소수 민족의 육아법을 예로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사회와 너무나 다른 맥락에 있기 때문에 이것만이 육아의 진리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분명 우리 사회는 주 양육자와 아이의 밀착을 너무나 관과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100% 밀착이 너무나 힘든 건 알지만, 이런 책들로 인해 적어도 20-30%에서 40-50%까지라도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건 의미있는 책이 아닐까? 

9. 올바른 생계수단에 대하여_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의 엄청난 책이다. 인도의 성자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높게 치는 사람이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오쇼 라즈니쉬를 비롯한 많은 성자들은 가짜다. 스피노자가 말했듯,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뿐만 아니라 드물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별의 교단 해체를 선언한, 이 시대에 보기 드물게 권력을 뒤고 하고, ‘진리는 네 안에 있다’고 말한 사람이다. 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그래서 존경하는 사람이다. 이 분이 썼던 글을 옮겨 적은게 있는데 아직 리뷰를 쓰지 않았다. 조만간 올려야 겠다. 하나의 문답만 올려보도록 하겠다. 크리슈나무르티의 핵심적 사상을 말하고 있다고 느껴지기에. 

Q. 어쨌거나 문제는 제가 어떻게 보통의 평균적인 평범한 사람은 안 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A. 내가 한마디 더 하자면 이렇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어떻게”라고 말하지 말아라. 어떻게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와서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보호막이나 어떤 체계가 누군가를 끌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너는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이고, 네 스스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네 고유한 행위와 고유의 사고력을, 그리하여 네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라고 묻는다는 것은 네가 중고품 인간으로 되었다는 뜻이거든. 그것은 시야의 전체적인 감각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본질적인 정직성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남아 있는 길을, 그리하여 지금의 이 모습을 넘어서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거지. 절대로, 절대로 “어떻게”라고 묻지 말아요. 

물론 이것은 심리적인 영역에서 하는 말이다. 자동차를 조립한다거나 컴퓨터를 만드는 문제등에서는 반드시 “어떻게” 라고 물어봐야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누군가에게서라도 배워야만 해. 그러나 심리적으로 자유롭게 되는 문제에서, 그 원천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내면적인 행위들을 알아채고,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라보고, 단 하나의 생각이라도 그 본성을, 그 근원을 관찰하지 못 하고 지나쳐버리는 것이 없어야만 한단 말이다. 관찰하고 바라보고 하는 것을 말하는 거다. 인간은 책으로부터라거나 또는 어떤 심리학자로부터라거나, 혹은 복잡하고 교활하며 박식한 학자나 교수로부터 배우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배우는 점이 훨씬 더 많아요. 

그런데 이게 정말로 어렵단다, 얘야. 이게 너를 아주 갈기갈기 찢어놓을지도 몰라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지, 소위 유혹이라고 불리는 것들 말이다. 생물학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하는 따위들 말이지. 그리고도 네 자신은 사회의 잔인성으로 하여 생매장이 될 지도 몰라요. 당연히 네 스스로 홀로 우뚝 서야 하지만, 그것은 강제나 의도나 또는 욕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네 주위와 내면의 거짓들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에요. 감정이나 희망이나 하는 것들까지도 말이다. 그렇게 네가 거짓들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알아채기 시작할 것이고, 지성이 생겨나겠지. 네가 네 스스로에게 빛이 되어야만 하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이지.

1983년 5월 30일
브록우드 파크

크리슈나무르티가 자기 자신에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벌써 2015년의 절반이 지났다. 올해 상반기 나의 책읽기를 돌아보려고 한다. 그 전에, 잠시 더 뒤로 가보자. 때는 2009년, 내 인생의 가장 큰 방향 전환이 있던 해다. 원래 전공이었던 전파통신공학을 뒤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그 당시 이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상태였음에도)을 하면서 살겠다는 결심을 나는 2009년 1월에 했다. 지금도 내 안에서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왔었는지, 스스로에게 잘 했다고 칭찬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 이후 내 안정적 삶은 파국으로 치달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결정이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했으니까 말이다. 나중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던, 그 순간 나의 내면의 욕망을 따랐던 그런 선택이었다. 

그러한 결정을 하고, 내가 가장 먼저 목표를 세운 것은 ‘책 읽기’다. 책 읽는 것은 원래 좋아했던 편이지만, 대부분 책을 빌려보는 편이었다. 일년에 읽는 권수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읽는 횟수를 카운팅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당시에 2가지 목표를 세웠다. "모든 책은 사서 본다. 그리고 1년에 100권을 읽는다." 라는 나름의 담대한 목표. 지금 나에겐 이 목표가 그리 커 보이지는 않지만 그 당시 나는 이렇게 살아보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차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1년에 100권 책 읽기라는 목표는.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씨앗이라도 품어보고자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약 6년이 흘렀다. 올해가 7년이 들어가는 해다. 어떤 해는 100권을 넘게 본 해도 있고, 어떤 해는 약간 못 미친 해도 있지만, 대략 평균을 내면 600권 가까이 책을 읽었다고 봐야한다. 2009년에 개인적으로 소장하던 책은 10권도 채 안 되었지만, 지금 내 책장의 책들은 좀 된다. 작은 방 한쪽 벽면을 이중으로 꽉 채운 책들은 나의 보물 1호다. 그렇게 나는 읽어가면서 지금의 (사실상) 1인 기업가의 삶을 꾸려왔다. 읽기가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과 재작년에 걸쳐서 약간의 불만이 스믈스믈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의 표현’에 대한 것이었다. 
 
어쩌면 농사로 비유한다면 씨앗을 뿌리고, 물과 비료를 주지만,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논. 그게 바로 나였다. 많이 읽기는 읽는 것 같은데, 그게 걸맞을 정도의 지적 성찰이나 책과 같은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꾸려가고 있던 블로그도 한달에 겨우 1-2번 정도 글을 올릴 정도였으니,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불만, 결과물에 대한 실망은 쌓여갔다. 그리곤 반년 전인 2015년 1월에 결심했다. 올해는 읽는 책을 1/2로 줄이기로. 그리고 포스팅을 50번 하기로. 포스팅 50번을 하기 위해선 일주일에 1번 정도를 올려야 했다. 6개월 전의 나로썬 꽤 많은 양이었다. 읽기에서 쓰기로. 나는 그렇게 두번째 변화를 주기로 했다. 

지금은 6월 25일. 일년의 절반이 지난 시점이다. 돌아보기에 좋은 지점. 결과는 어떨까?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 부를 만 하다. 우선 긍정적인 부분은 바로 ‘블로그 포스팅’이다. 지금까지 무려 (놀라지 마시라) 74개의 포스팅에 성공했다. 애초 목표라면 25개 정도의 포스팅을 했어야 함에도 벌써 300% 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 이는 나로썬 비약적인 변화였다. 비록 하루에 방문자 수가 20-30명을 왔다 갔다 하는 미미한 블로그지만, 무언가 꾸준히 하고 있다는사실은 나에겐 꽤 큰 위로가 된다. 참고로 그렇게 된 이유로는 ‘일상의 성찰’이라는 매일 매일 쓰는 일기글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 변화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실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독서량이다. 좋은 책을 선정해서, 50권 정도를 여러번 심사숙고해서 읽어 보겠다는 나의 목표는 온데간데 없고, 작년과 그리 다를 바 없는 탐욕스런 독서량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내 현실이다. 6월까지 읽은 책을 정리해보면 대략 40권에 달한다. 다시 말해, 올해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변명을 더하자면, '나는 아직 배고프다.’고 말했던 히딩크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한 쪽의 나는 깊이 있게 책을 보고, 재독에 삼독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원하지만, 다른 한쪽의 나는 그저 보고 싶을 땐 언제든 책을 들춰서 읽어대는 탐욕스런 책벌레를 원하기도 하기에. 일단 어쩔 수 없다. 목표는 수정이다. 2015년 독서 목표는 80권이다. 그리고 포스팅은 150개다. 내년에 더 깊이있는 책들로 다시 도전해 보기로 하자. 읽었던 책들에 대해서 간단한 리뷰도 쓸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는 관계로 그건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 봤던 책들을 올려본다. 6월 30일 전까지는 리뷰를 다 쓸 것이다. 

1월 
어떻게 살 것인가_유시민
블리스, 내 삶의 신화를 찾아서_조지프 캠벨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_짐 로허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_이희석
유태인의 공부_정현모

2월
희망의 인문학_얼 쇼리스
인생수업_엘리자베스 퀴슬러 로스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_진 리들로프
올바른 생계수단에 대하여_크리슈나무르티

3월
삶에 내게 말을 걸어올 때_파커 j 파머
보이지 않는 고릴라_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디자인씽킹 강의노트_리팅이 외 지음
어떻게 자기답게 사는가_연지원
거대한 사기극_이원석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드러커를 읽는다면_이와사키 나쓰미

4월
인생학교 -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_존 폴 플린토프
고민하는 힘_강상중
도산에 사는 즐거움_이황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_파커 j 파머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_피에르 바야르
호모 코뮤니타스_고미숙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_마커스 버킹엄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_엄윤숙, 한정주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_요시다 타로

5월 
인생학교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_로먼 크르즈나릭
불안_알랭 드 보통
그림책 읽는 즐거운 교실_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생태요괴전_우석훈
에티카, 자유의 긍정의 철학_이수영
강점에 집중하라_마커스 버킹엄
남자의 물건_김정운
딜리셔스 샌드위치_유병률

6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_이진우
피터드러커 자서전_피터드러커
30분에 읽는 니체_로이 잭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_사사키 아타루
포트폴리오 인생_찰스 핸디
작가수업_도러시아 브랜디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_폴 D 티저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06.27 06:34

    저도 비슷한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많이 배웁니다.^^

    • 그렇군요 :) 감사합니다. 생각과 목표가 비슷하다는 건 기쁜 일이지요. 저도 슈밍아빠님 블로그에 들어가 봤는데, 짧은 시간임에도 굉장히 많은 글을 올리시더라구요.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론 그 성실함을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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