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라. 


[리뷰]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김정운 교수가 쓴 <남자의 물건>이란 책을 봤다. 요즘 스파노자 ‘에티카’랑 피터 센게 '제5경영' 같은 무거운 책만 보다 보니, 다소 가벼운 책을 읽고 싶어서 즉흥적으로 집어들었고, 빨리 읽었다. 1부와 2부가 나뉘어 있는 책인데, 솔직히 1부는 별로 임팩트는 없었다. 이미 ‘노는 만큼 성공한다’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비롯한 책과 다양한 강연에서 전하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김정운 교수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겐 재미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2부 남자들과의 인터뷰는 꽤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이어령의 책상, 안성기의 스케치북, 문재인의 바둑판 등 한명 한명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물건에 대한 애착도 느껴보는 경험은 꽤나 즐거웠다. 나에게도 물어보았다. 내가 애착을 가진 물건은 무엇인지. 


하나를 꼽을 순 없었다. 3개를 추려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책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그건 바로 책상이었다. 우리 집엔 꽤 큰 책상 하나가 있다. 결혼 할 때 아내가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뭐냐고 물었다. 보통 남자들은 축구를 보거나 게임을 하기 위해 TV를 큰걸 원한다고 하는데 나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TV는 필요없다고 말했고, 되려 크기는 내가 더 나서서 줄였다. 그 대신 나는 직접 공방에서 제작한 책상을 사달라고 했다. 그게 내가 원한 조건이었다. 기성 가구점에선 내가 원하는 사이즈는 살 수 없었다. 그렇게 얻게 된 우리 집 책상은 정말 크다. 한 6명이 함께 공부할 수 있을 정도다. 일상이 바쁘다 보니 나도 생각보다 그 책상 앞에 앉아있을 시간은 적다. 하지만 볼 때마다 기분이 탁 좋아진다. 아내 입장에선 방을 좁게 만드는 그 책상이밉상이겠지만  :) 두 번째로 수첩이다. 나는 10년전 부터 쓰던 수첩을 아직도 모아둔다. 2-3년 전부턴 그 역할을 에버노트가 거의 대신하기에 수첩에 끄적거리는 양은 확연히 줄었다. 하지만 그 애착은 아직 줄지 않았다. 재작년 이탈리아 놀러 갔을 때, 내가 가장 기뻤던 순간 중의 하나는 피렌체 가죽 공방에서 작고 이쁜 수첩 하나 샀을 때다. 다소 여성스런 취향이라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좋을 걸 어째. 


마지막으론 역시 이다. 나는 책을 사는 것에는 대범하다. 하지만 책을 나누어 주는 것에는 인색하다. 이 인색함이 나이가 들 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마 올해 안에 책을 대거 나누어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아직은 역시 주저주저한다. 내가 산 책에 대한 애착은 어지간한 편이다. 책을 하나 사서 좋은 문장에 줄을 치고, 가끔 들여다 보는 것.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 그게 나다. 한 권의 책 <남자의 물건>을 통해 내가 어디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성찰해 봤으니, 이번 책도 읽은 값은 잘 치른 것 같다. 내가 가진 욕망을 잘 들여다보고, 솔직해 지는 것. 그리고 표현하는 것. 그것은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연습이 필요하다. 디테일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에.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더 자연스럽게, 더 나답게 살 수 있기에. 이런 작업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나를 아는 것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옮겨적기] 

2부 인터뷰에서 마음에 드는 몇몇 글을 발취해 보았다.


1. 신영복

한국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불일치의 기원을 신영복은 서구에서 강제로 유입된 ‘근대성’에서 찾는다. 특히 지식인은 바로 이 근대성의 문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형식이 내용을 정확하게 담을 수 있는 ‘탈근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근대성의 핵심은 ‘주체’ ‘자아’의 구성에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구체와 자아가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신영복은 지적한다. 인간의 상호관계에서는 서로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서구의 근대는 주체와 대상이라는 타자와의 과정을 거치며 상호 이해의 부재, 공감 부재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관계와 맥락으로부터 고립된 주체는 필연적으로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를 겪게 된다. 


“제가 근대적인 교육을 받았잖아요. 타자화하고, 대상화하고, 분석하고 이런 거죠. 그래서 감옥에 가서도 처음에는 저 사람의 죄명이 항상 궁금하고, 형기가 얼만지, 가정은 결손가정이었던가, 또 학력은 어느 정도인가 부단히 분석했지요. 그게 아주 근대적인 사고로 굳어져 있었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하고 긴긴 겨울 밤,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으면서 아, 나도 저 사람과 같은 부모를 만나서 저런 인생 역정을 겪었으면 똑같은 죄명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겠구나 하는 그런 공감을 갖게 되요. 아마 한 5,6년 걸리지 않았나. 그때쯤 제가 왕따를 면하게 되요. 처음에는 왕따인 줄도 몰랐지. 아주 친절하고,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 잘 도와주고 이러니까 몰랐는데, 나중에 뵈까 다들 내게 일정하게 거리를 뒀더라고.. 그 시점에 내가 아주 흐뭇했던 것은 ‘내가 발전했다!’ 그런 느낌을 가졌어요. 드디어 머리에서 가슴까지,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을 마쳤다. 그렇게 생각했죠.” 


신영복의 1차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이었다. 대상화, 타자화, 분석에서 이해, 공감으로의 변화다. 그런데 그것만큼이나 더 먼 여행이 또 신영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2차 여행이었다. … 그 변화와 발전은 인간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신영복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충분히 설 수 있을 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변화와 발전이란 결국 이 성숙한 인간관계의 내면화에 다름 아니라는 이야기다. 


+ 누군가를 볼 때 그의 삶을 보려고 하는 것. 그 태도가 내재화 되는 것.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런 시야를 갖는 것. 사람을 넘어서서 다른 대상들에게까지 그러한 공감을 유지하는 것. 신영복 선생님도 감옥 안에서 5,6년이 걸린 작업. 나는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내 머리에서 가슴은 어찌나 먼지. 발은 하물며. 


2. 문재인

바둑은 학문의 수준으로 연구되고 또 학습된다. 바둑은 그렇게 단순한 놀이가 아니기 떄문이다. 바둑은 자기 성찰이 포함되는 아주 희한한 놀이다. ‘복기’다. 프로기사는 바둑을 끝낸 후에 반드시 복기를 한다. 철저한 자기 절제, 자기 성찰의 훈련이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장이야!’를 외치며 상대방을 굴복시키면 바로 끝나는 장기와는 격이 다르다. 그래서 바둑판에서 ‘한번만 물러 달라’는 것처럼 비도덕적인 발언은 없는 거다. 자기 성찰의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둑에서는 복기를 통해 자신의 실수를 정확히 알고, 성찰해야 한다. 지금 정치인 문재인은 ‘복기’ 중이다. …  


“예, 그것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 참여정부가 이명박 정부를 낳은 거 아니냐는 거죠. 예. 그에 대한 부채 의식 있어요. 사실 MB정부의 등장은, 말하자면 가치를 부정하는 거였거든요. 뭐 민주주의, 그거 뭐, 덜 중요하다. 도덕성? 그런 것도 뭐, 도덕성이 밥 먹여주냐? 경제 살리기, 이런 거 해서 잘 살게 해주는 게 최고 아니냐. 이제, 이렇게 이런 가치들을 부정하게 만든 책임은 결국 우리에게 있는 거죠. … MB정부 들어와 보니 민주주의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냐, 소통이나 화합이란 게 얼마나 중요하냐, 또는 도덕성이나 신뢰 같은 게 얼마나 중요하냐. 이런 것들을 이제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하게 되는 거죠.” 


“참여정부는 국민들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보다는 뭐 정치 개혁이랄까, 우리가 내새우는 그런 가치들에 더 집중하고, 그쪽에 올인하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에 민심이 떠나게 만들고, 실망하게 만든 거죠. … 조금은 더디더라도, 이거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다, 이거는 너무나 당연하 거다. … 한두 걸음 앞서서 소통하고 이해를 구해나간 게 아니라, 훨씬 앞장서서 끌고 나갔다는 그런 면도 있을 테고요."


+ 복기. 바둑을 볼 때마다 놀라곤 한다. 프로선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복기할 수 있다고 하니 놀랍다. 놀러워 하면 그들은 패턴으로 외우는 거라서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인생도 생각해보면 낙장불입이다. '한번만 물러달라'고 조를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복기다. 하지만 복기만으론 절대 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되짚어보고 돌아보고 성찰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오로지 실천. 실천. 자신의 과거를 뛰어넘는 실천.


3. 안성기

안성기의 스케치북을 펼치면 바로 첫 페이지에 자화상이 나온다. 겸손한 사람은 절대 자화상을 그리지 못한다. 더군다나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자화상은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범죄자는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곳에 거울을 설치해놓으면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거울 속의 자신의 눈길을 의식해서다. 카지노에 거울이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자화상을 그릴 수 없다. 


인류 역사에서 초상화가 등장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다. 종교적 주체를 주로 다뤘던 회화의 주제가 인간 개인의 초상으로 넘어온 것은 인간 스스로에 대한 엄청난 자의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초상화의 완성은 자화상이다. 자화상에서 화가는 자신이 그림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다. 철학에서는 이를 ‘자기반성’이라고 한다. 자신이 인식의 주체가 되는 동시에 객체가 되는 자기반성은 논리적 모순이다. 주체가 동시에 객체가 되고, 이 객체는 동시에 또 다른 주체가 되는 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 무한 순환의 두려움을 마주 대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자화상을 그릴 수 있다. 


+ 자화상. 나는 나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까?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곧 떳떳함이다.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피해서, 이런 모습이 되었다가, 저런 모습이 되었다가.. 결국 내가 누구인지 도통 모르겠는 상황에서 자신의 얼굴을 본다면, 아마 미쳐버릴 지도 모르겠다. 지금 저기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지. 그 이질감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넌 도대체 누구냐? 


연기를 하다가 여배우와 실제로 애틋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냐고 물었다. 안성기는 단호하게 없다고 했다. 배우가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여배우를 보면 그 부모가 먼저 눈에 어른거리고, 그 배우의 가족들이 자꾸 생각나는데 어찌 에로틱한 느낌이 있겠냐고 반문한다. 아름다운 여배우를 보며 어찌 그녀의 가족들을 먼저 떠올릴 수 있느냐, 말도 안 된다는 내 항의에 그는 진짜 그렇다며 또다시 미안해한다. 


+ 앞서 신영복 선생님의 '공감'이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한번 순서를 만들어 보자. 가장 먼저,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의 삶 그 자체를 상상해 본다.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을 낳은 부모님을 상상해 본다. 마지막으론 그 사람이 낳을 자녀들, 손자 손녀들까지 상상해 본다. 다시 돌아와서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을 마주할 때 나는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공감은 상상력 그리고 주의력과도 밀접하다. 그 사람으로 쑥 들어갈 수 있는 것. 머리에서 가슴은 그래서 멀다. 


4. 조영남

“너 그러다 조영남처럼 된다!” 학창 시절, 음악도 좋아하고, 미술도 좋아하고, 글쓰기도 조금 재주를 보이던 내게 어머니는 항상 ‘조영남처럼’된다고 경고하셨다. 그때 ‘조영남처럼’이란 ‘인생이 엄청 꼬인다’와 같은 뜻이었다. … 내 어머니는 그림도 그리고, 책도 쓰고, 노래도 하는, 조영남처럼 재주 많은 사람은 평탄하게 사는 법이 없다고 했다. 내 어머니에게 조영남은 ‘한 우물’이 아닌 ‘여러 우물’을 파다가 망한 대표적 케이스였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이도 저도 아닌 ‘크로스오버’ ‘통섭’ ‘융합’과 같은 방식이 먹히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내 어머니는 잘 모르셨다. 


조영남은 경계인이다. 그 경계가 어디인지 동물적으로 안다.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다가 1969년 <딜라일라>를 번안해 가수로 데뷔한다. 지금도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부르면 그 세계에서 왕따를 당한다. 그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 화가 조영남도 마찬가지다. 남들 다 그리는 방식으로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아 느닷없이 ‘화투’를 그림의 주제로 들고 나와 화가를 자처한다. … 작가로서의 조영남도 철저하게 경계를 오간다. 그가 쓴 책은 열 권이 훨씬 넘는다. 대중가요에 대한 책을 쓴 게 아니다. 1970년대 중반 가수로 잘 나가다가 느닷없이 신학공부하겠다고 미국에 갔다 오더니 기존 신학계에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조영남식 신학을 설파한 <예수의 샅바를 잡다>라는 책을 쓴다. 맨날 시뻘건 화투짝을 그리다가는 느닷없이 자신만의 현대미술론을 정리한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란 엄청 두꺼운 책을 낸다. 


조영남은 일단 ‘전문가들’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이 이해할 수 없으면 자신이 무지한 게 아니고, 그들이 잘못된 거라는 신념이 있다. 무서운 자기 확신이다. 그러니까 신학, 현대미술, 문학의 장르를 마구 건너뛰며 글을 써댈 수 있는 거다. 그 즐거움에 밤을 꼬박 새는 날도 많다. 그의 글쓰기는 죄다 구어체 문장이다. 말하는 투 그대로 글로 쓴다. 현학적인 표현은 거의 없다. 자신이 아는 내용, 느끼는 그대로 글로 옮긴다. 그래서 문장에 관해 가장 많이 고민했던 번역가 이윤기는 조영남을 ‘구어체 글쓰기’의 최고봉으로 치켜세운다. 


+ 사실 나는 조영남에 대해서 잘 몰랐다. 이번 글을 통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 걸까? 그 엄청난 자기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부럽기도 했다. 다양한 재능과 실력이. 그리고 넘나듦과 몰입도. 하지만 그는 그이고. 나는 나다. 그가 글을 쓰는 것과 내가 글을 쓰는 것 다를 바 없다. 좀 더 나 자신을 낱낱히 드러내야 하겠지만, 내가 아는 내용, 느끼는 것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더 커지고 있다. 더 꺼내도 괜찮다.  


5. 이왈종

“전통이라는 게 도대체 뭐에요?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계속 발전시키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고.. 정체된 것은 절대 전통이 될 수 없어요. 난 학교에서 애들 가르칠 때도 절대 밑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했어요. 그냥 생각나는 것을 바로 그려라. 주제를 가지고 고민할 것도 없다. 시를 읽고 생각나는 대로 그려라. … 그랬다고. 재료도 뭐든지 쓰라고 했지. 그랬더니 팬티나 스타킹을 가지고 한국화를 하겠다는 학생들도 나왔어… 물론 교수들 사이에서 갈등도 생겼지. 그러나 열려 있지 않으면 발전도 없어요. 난 지금도 그래. 남녀의 체위를 그리면.. 너는 자식도 없냐? 또 그런다고. 그럼 난 이렇게 이야기해요. 넌 밤에 이거 안 하냐? … 예술가가 두려운 게 많고 가리는 게 많으면 예술가가 아니에요. 모든 것에 열려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 예술가는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사람이다. 그냥 생각을 토해내고, 감정을 느끼고, 몸이 가는대로 움직이는 것. 나는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다. 그 표현이 음악과 미술은 아닐 것이다. 말과 글, 그리고 실천이 될 것이리라. 


도대체 그런 비난을 뚫고 그토록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기초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 용기는 자신에 대한 신념, 즉 자기 실력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 자기 얼굴을 그린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자기 얼굴을 꼭 한 번은 그린다. 이런 기초의 끊임없는 반복에서 자기 확신에서 나오고,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도 나오는 것이다. 


“내 서귀포 생활은 게으름이야. 게으르게 사는 게 중요해요. 게을러야 색 하나를 보더라도 오래 보게 돼.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 그래야 내 마음에 드는 색이 나와. 색 하나를 찍어놓고 몇 년을 볼 수 있어야 내 색깔이 나와. 지금 내 그림에 터키바다색, 나뭇잎 색, 다 그렇게 나온 거야."


+ 게으르게 사는 것. 올해 들어서 그나마 조금씩 터득하고 있는 소중한 가치. 더 게으르게 살고 싶은 욕망. 


6. 박범신

“작가는 빨가벗겨져 시청 앞에 운집한 군중 속으로 내던져지는 존재에요. 그게 두려우면 소설 못 씁니다. 혹시 이게 뭐, 내가 나이든 작가로서 너무 망가지는 거 아닌가? 사람들이 날 주인공으로 볼까? 이런 거 생각하면서 어떻게 소설을 써요. … 정말로 난 그런 거 상관없어요. 문학이라는 건 허위로 쓰는 거지만, 삶의 본질 속에 내재된 진실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을 수 있지요. 그 소설에서 노인이 보여주는 그 욕망도 대부분 내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지요."


박범신은 디테일로 이야기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가 아니다. “형광등의 스타트 전구처럼 … 진저리를 치듯 전신을 부르르’하며 놀라야 진짜 놀라는 거다. 박범신의 소설에는 일관되게 이런 디테일이 있다. 묘사 중심의 문체라는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 박범신은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황혼에 대화한다는 설정으로 교지에 콩트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 지도교사가 그를 불러 ‘황혼’이 그냥 ‘황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충고를 한다. 이 한마디의 충고로 인해 오늘날까지 디테일한 묘사는 박범신 소설의 특징이 된다. 


+ '황혼'을 '황혼'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 그것이 탁월한 예술가들의 경지. 내가 도달하고픈. 하지만 나에겐 아직 너무 어려운. 그 곳. 필요한 것은 게으름, 자기확신, 그리고 미친 몰입. 이 3가지다. 그냥 이 세가지 단어가 지금 떠오른다. 더 게으르고, 더 확신을 갖고, 더 몰입하자는. 그런 생각.  

나의 게으름 탓이다. 2013년 8월에 적은 글을 지금에서야 포스팅 하는 건. 2013년에 한창 읽었던 주제들이 유영만 교수의 브리꼴레르를 비롯한 '정보를 지식화하는 법'을 다룬 책들이다. 최근, 디자인씽킹과 인문학 그리고 학습하는 법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이 책도 생각이 나서 다시 검색했다. 그랬더니 그냥 나의 에버노트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더라. 원래 블로그에 올릴 려고 나름 공을 들여서 편집하고 초서했는데, 이렇게 빛도 못 보게 하고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가둬두었다니. 미안했다. 문제는 이런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 시간이 많이 지났어만, 종종 포스팅 해야겠다. 더 늦어서 이 텍스트들의 효용가치가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참고로, 한기호 소장님을 뵌 적도 없고 책을 아주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분이다. 그분의 사는 맥락과 책을 통에서 진실성이 느껴지더라. 얼마 전에 '책은 진화한다'라는 책도 샀는데 그것도 보고 포스팅 해야 겠다. 즐겁게들 보셔요. 






핵심

- 지금 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무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컨셉력이다. 달리 말하면 '브리콜라주적인 지식'이다. 브리콜라주는 바로 눈앞에 있는 것들로 필요한 무엇인가를 만드는 작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개인에게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연결해 자신만의 지식을 만드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졌다. 

옮겨적기 

1부. 20대, 컨셉력으로 세상을 읽고 분석하라
1. 88만원 세대, 길은 없는가?
- 세상은 바뀌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를 위해선 이제 상위 1%에 들어가고자 하는 꿈부터 버려야 한다. 앞으로는 99개 단점이 있어도 단 한가지 장점으로 살 수 있다. 오솔길이라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이면 된다. 그런 길을 걷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보여줄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그런 기회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평상시에 컨셉력을 키운 사람들이다.  

- 미래에 대한 불안, 흔들리는 정치, 양극화 심화, 해소되지 않는 청년 실업으로 인해 대중들은 '성공 우화'를 포기하고 '나만의 행복'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자기 치유가 사회적 화두가 된 것이다. 열정이 사라지니 사람들의 마음은 메말라 갔다. 

- 상인과 은행가, 사업자, 자본가들로 구성된 '탐획자 계급'은 행동과 생각이 온통 돈을 쫓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산이다. 바트라는 '모든 문명의 역사에서 노동자 시대 다음에 전사 시대가 오고, 전사 시대 이후에는 지식인 시대가 오며, 지식인 시대 뒤에는 탐획자 시대가 오고, 이런 과정에서 사회 혁명의 기운이 축적된다. 이런 식의 사회 진화는 자연 법칙"이라고 간단히 정리한다. 

2. 나쁜 사회의 희망, 컨셉력
- 니콜라스 카는 말한다. '클라우드 소싱'으로 인해 유저들이 제작한 콘텐트가 상업화할수록 저널리스트, 편집가, 사진가, 연구원 같은 숙련 노동자마저 소프트웨어로 대체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자발적 노동을 결집해 경제적 가치를 거둬들이는 극히 소수의 기업에 의해 경제 성장이 촉진되고 소비되는 플루토노미가 강화될 것이 니콜라스 카의 판단이다. 

- 우리는 네트워크 사회의 가능성에만 주목했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도 하다. 이러한 체계에선 컨셉력만이 개인 생존의 솔루션이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객관적 사실을 확보하고, 경험을 쌓고, 많은 책을 읽는 거의 일상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2부. 20대, 컨셉력으로 생존의 솔루션을 찾아라.
3. 비전 없는 시대의 솔루션 찾기
- 솔루션은 누가 제시할 것인가? 대부분의 강단 학자들에게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그들은 박사학위를 취득하긴 했겠지만 그것마저 '지성'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이며, 세상의 변화에 따른 가치 있는 솔루션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현장 경험자들이 구체적인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내놓는 매뉴얼이어야만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성과를 낸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임팩트가 강한 책을 내놓아야만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요즘 젊은이들은 회사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관두고 뭘 할꺼냐고 물으로 대답은 대개 유럽이나 몇 달 여행을 하겠다거나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는 둘 중 하나의 답이 돌아온다. 시험에 목매는 사람일수록 '인관관계를 푸는 능력이 떨어지고나 그런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결과가 정확히 나오는 시험에 전부를 건다. 자기 주관이 부재한 젊은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 교토대 명예교수 다케우치 요는 '지금의 대학교육에서 교수는 '스승'이 아니라 '도구'가 되어 버렸다. 매뉴얼화된 수업을 성실히 수행할 뿐인 교육 노동자다.'라고 말한다. 대학은 아직도 과거의 것은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인간을 이해하는 기반 학문의 기도를 배우는 사람도 없다. 그저 외워서 답을 쓰기만 하는 판국이니 바뀐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갈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4. 고민하는 힘이 필요하다. 
-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을 통해서 볼 수 있듯,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출판 시장의 흐름은 바뀌었다. 첫째, 자아가 지나치게 비대해지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타자와의 관계에 눈을 돌렸다. 둘째, 작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을 일상에서 찾기 시작했다. 셋째, 미국산 자기계발서에서 사람이 갖춰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으로 옮겨오고 있다. 넷째, 종교적인 가르침이다. 세상이 험악해질수록 권위 있는 종교보다는 비록 마이너일지라도 새로움과 긍정적 대안을 내놓으면 빠르게 대중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새로운 디지털 도구들은 동질적 그룹이 뭉쳐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결속형 자본'이 아닌 이질적 그룹 안에서 참여하는 사람을 무한대로 키울 수 있는 '교량형 자본'의 힘을 키운다. 지금 젊은이들은 새로운 도구를 이용해 기존의 틀을 깨고 있다. 그렇게 바뀐 세상에서 지식과 정보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웹에서 글을 읽는 '검색형 독서'는 분명 대세이다. 세브레이 브린이 말한 '정보를 얻는 능력'은 누구나 쉽게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다 할 수 있는 일은 개인에게는 아무런 장점도 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정보를 생산하기 위한 기본 능력, 즉 컨셉력을 키워야만 세상을 주도할 수 있다. 그것은 책 읽기에서 키워진다. 하나의 테마를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책을 써 낼 수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전문가로 행세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3부. 20대, 지독하게 컨셉력을 갈고 닦아라.
5. 세상을 바꾸는 힘, 컨셉력
- 컨셉력이란 간단히 말하면 편집을 잘하는 힘이다. 야마나시 히로카즈는 편집이란 '일정한 방침하에서 정보와 다양한 소재를 모으로 정보와 정보, 물건과 물건의 관계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짜 맞춤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편집은 소재의 수집, 소재의 조합, 새로운 가치의 창조, 이렇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 이때에는 분석 능력과 종합 능력이 필요하고, 특히 어떤 조합도 부정하는 일 없이, 적극적이고 독특한, 때로는 조합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 '지의 편집공학'의 저자 마쓰오카 세이고는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정보 공학자다. 그는 광고회사에 들어가서 두 개씩 한 쌍의 광고를 따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쌍을 어떻게 관계설정할 것인지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고민했다. 그는 이때 인생을 좌우할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세상의 모든 정보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깨달음이다. 새로운 상품을 기획할 때는 전혀 이질적인 것들까지도 연결 지어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그렇게 명확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6. 일주일에 책 한권을 읽어라.
- 책의 세계에선 '분할'과 '통합'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분할'이란 책이 다루는 범위기 갈수록 잘게 쪼개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 책을 설명하는 방식은 통합적이다. 정치, 문화, 기술, 금융, 국가 안보, 환경 등의 전통적 구분선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고, 다양한 시각에서 얻은 정보를 '하나의 스토리'르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책 생산이 가능해진 이유는 네트워크와 디지털 기술 때문이다. 즉, 이제 인간은 하나의 테마를 실마리 삼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여행하다가 인류가 생산한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나름의 상상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생산할 수 있다. 미래에 주도권을 질 수 있는 사람은 이런 책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 나는 제안한다.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권씩 무조건 책을 읽자고 말이다. 처음에는 인간을 이해하는 기반 지식, 철학, 역사, 심리학, 인류학, 문학 등에서 꼭 읽어야 하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장 추구하는 전공 분야를 좁힐 필요가 있다. 사실 한 분야의 책 100권을 잘 골라 읽으면 전공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다만 이것 하나마은 기억하자. 모든 정보는 트리 구조로 되어 있다. 그 패턴을 이해하면 인간의 지혜를 심층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데, 책에도 뿌리나 굵은 줄기에 해당하는 책도 있고, 잔가지나 잎에 해당하는 책도 있다. 되도록 뿌리나 줄기에 해당하는 책부터 먼저 읽고 차차 가지나 잎에 해당하는 책으로 관심을 넓혀야 한다. 

- 일본 경제 평론가 '가쯔마 카즈요'는 "책은 타인의 인생과 비슷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왔고, 읽은 책의 성과는 업무와 실생활에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20대라면 아직까진 독서로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있다. 30살이 넘었다면 전직은 쉽지 않겠지만 책으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 살든, 몇 살이 되든, 책은 여러분에게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녀가 말한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환경'이란, 인생의 자유도와 연결된다. 

7. 책을 펴내겠다는 각오로 글을 써라
- 이제 누구나 블로거가 될 필요가 있다. 나는 2009년 날마나 책 한권에 대한 서평을 올렸다. 책을 읽는 데 보통 3-5시간, 글을 정리하는데 2-3시간이 걸리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일이 없었으면 이 책을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소통의 시대에 전문가는 어떻게든 소통의 통로에서 중요한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 전문가란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시작하자. 책을 읽은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놓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통하는 이웃을 만나게 될 것이다. 

- 나는 1997년에 '출판마케팅 입문'이란 책을 내게 되었다. 그 책이 나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원고 청탁과 강의도 줄을 이었다. 이제 소수가 쓰고 다수가 읽는 구조는 지구상에서 종말을 고했다. 누구나 날마다 쓰고 있다. 이래저래 글쓰기는 누구나 갖춰야 할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다. 글쓰기는 살아남고 이겨내고 행복해지기 위해선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나는 책을 펴낼 각오로 블로그에 글을 쓸 것을 권유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더욱 분명하게 정리해 갈 수 있을 것이다.

 - 나만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첫째, 무조건 컨셉을 간단하면서 명확하게 잡는다. 그 컨셉은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것이 좋다. 
둘째,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는 역발상의 내용이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은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 되도록 남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소재를 다루되, '아 이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하나의 키워드에서 다층적 의미를 꾸준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비교나 대비를 하는 유연한 발상이 필요하다. 내가 '구라에서 수다로' '열정에서 냉정으로' '성공이 고달프니 나만의 행복찾네'등등 비교나 대비가 되는 개념을 쓸 때는 언제나 반응이 좋았다. 
다섯째, 구체적인 사례를 3개쯤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칼럼에는 구체적 팩트가 들어가는 것이 필수다. 

8. 모든 컨셉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훈련을 하라.
- 지금 출판 시장은 독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 해야 한다. 단순 사실이 아닌 행동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 극적인 구조가 있어야 한다. 캐릭터가 확실해야 한다. 우화 형식을 차용해야 한다. 말하는 이의 신뢰감을 키워야 한다. 개인의 감성에 호소해야 하며, IT혁명에 따른 구조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모든 책에서 이야기를 담보하지 않으면 책의 생명력이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 책이나 집자의 원고를 쓰던, 단 한 장의 제품 기획서를 쓰던, 단 한 줄의 광고 카피를 쓰던, 한 단어의 제품 이름을 정하더라도 그곳에는 늘 사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유연할 사고일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외에는 무조건 배척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연결 고리
얼마 전에 올렸던 김정운 교수의 <오늘 미래를 만나다> 강의 리뷰와도 맥락이 비슷하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들어와 보세요!


  1. Shinjjo 2015.03.19 11:10 신고

    저도 무척무척 좋아하는 책입니다. 20대~로 시작하는 책 중에 단 한권 고르라면 이 책이죠!




1. 창조는 틀렸다. 
모두가 창조적이 되라고 강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창조에 대해선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열등감만 느끼게 한다. 창조는 틀렸다. 그건 신만이 할 수 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

그럼 창조가 아니라 창의성이라고 해보자. 창의성이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틀렸다. 창의성이란 듣도 보도 못한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 있는 것, 익숙해서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창의성이다. 다시 말해, 낯설게 하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이 창의성이다. 

그래서 나는 에디톨리지를 만들었다. 창조의 방법론. 편집학. 이것은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뜻이다. 모두 기존에 있던 것들이 새롭게 편집되었을 뿐이라는 것. 지금 정보는 넘처난다. 어느 때보다도 정보를 편집하는 편집자가 중요해진 세상이 된 것이다. 편집자가 권력을 가진 세상이 되었다. 

2. 편집학이란?
편집학은 자극, 정보, 지식으로 구성된다. 이 공간엔 수천가지 자극이 존재한다. 실험을 해보자.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이것을 <선택적 지각>이라고 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지각한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필요한지는 모른다. 

새로운 지식이란, 정보와 정보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즉, 정보의 맥락이 바뀌는 것. <도끼, 망치, 나무, 톱> 중에서 무엇을 뺄 것인가? 나무를 뺀 사람은 도구로 묶었고, 망치를 뺀 사람은 벌목으로 묶었다. 전자가 이론적 개념으로 정리된 추상적 지식이고, 후자가 맥락이 기반된 실천적 지식이다.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 

3. 마우스 혁명
<멍 때리기 대회> 우린 멍 때릴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멍할 때가 가장 창조적이고, 열심히 일할 때가 가장 비창조적이다. 열심히 한다는 건 이미 정해져있다는 뜻이다. 그건 이미 창조적이지 않다. 

천재와 맹구의 차이는 무엇일까? 천재도 맹구도 생각이 확 날라간다. 그러나 천재는 돌아오고, 맹구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처럼 옛날엔 천재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우스 덕분에 우린 천재가 될 수 있다. 날아가는 생각을 잡아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도구가 마우스다. 나는 주장한다. 마우스 덕분에 지식혁명이 시작되었다. 텍스트의 한계를 벗어나기 때문에. 

하이퍼텍스트란, 하이퍼링크를 통해 독자가 한 문서에서 다른 문서로 즉시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를 의미한다. 이렇게 마우스를 통해 사람들이 세상을 자발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새로운 분류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등등) 블로만가도 엄청난 지식이 넘쳐난다. 

그 결과, 지식권력으로서의 대학은 몰락했다. 미네르바 사건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알기 전, 대단한 경제학자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한방 먹은 것이다. 그는 전문대 출신의 무직자였다. 충격의 본질은 인터넷이 되는 곳에선 누구든지 편집을 통해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젠 대학이 설 자리가 없다. 

4. 맥락과 답의 관계
창조적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편집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집을 하기 위해선 맥락적 사고를 해야 한다. 어떤 사물을 볼 때마다 맥락과 관련지어서 말해보려고 해야 한다. 




A와 B의 색깔은 같은가? 사실 같다. 하지만 우린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
분명 다르다. 맥락은 답을 결정한다. 질문을 해보자. 
1)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2) 당신은 지난 달 데이트를 몇 번 했습니까?

뒤바꿔보면, 
1) 당신은 지난 달 데이트를 몇 번 했습니까?
2)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처럼 맥락이 달라지면 답도 달라진다. 그리고 사람도 맥락이 바뀌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남자가 군대에 가서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맥락이 남에 의해서 바뀌면 아주 힘들지만, 스스로 바꾼다면? 창조적 삶을 사는 것이다. 

5. 김정운 교수의 이야기 
3년 전, 일본에 가기 전 나는 탑이었다. 그런데 계속 화를 내고 짜증을 내더라. 그건 심리적으로 과부하의 증상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쓰고 있는 것.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안식년을 신청하고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사표를 냈다. 내 나이 50살에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했단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51살부턴 내맘 대로 하면서 살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엔 뭐 하고 싶은지 몰라서, 당황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은 안 한다고 바꿨다. 그 첫번째 조건이 학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좋은 교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봤더니, 지금까지 교수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 때문에 했던 것이었다. 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어릴 적 하고 싶었던 일,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일본의 미술전문대학에 입학했다. 그렇게 내 삶의 맥락이 바뀌니까, 내 생각이 180% 달라졌다. 그리고 가장 생산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너무나 외로웠다. 삶의 맥락을 바꾸기 위해서 외로움은 반드시 한번 경험해야 한다. 그게 무서워서 사람들은 관계로 도피한다.  

맥락을 바꿔라.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을 살아라. 유태인은 철저하게 일하고 철저히 쉰다. 안식일엔 절대 일하지 않는다. 창조는 열심히만 해선 결코 될 수 없다. 내 삶의 맥락을 주체적으로 바꾸기 위해선 외로운 시간, 휴식의 시간, 자기 반성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느낀 점.

삶은 편집이다. 맥락을 바꿔라. 물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정작 하는 것은 어렵다. 내가 예전부터 이 교수님을 좋아했었지만 지난 3년의 삶을 통해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 맥락에서 의사를 그만두고 어느샌가 그리스를 연구 중인 박경철 작가님도 존경한다. 주체적으로 삶의 맥락을 바꾸지 않으면 외부에 의해 바꿔지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그러하다. 1부는 여기까지 정리합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2부와 3부도 정리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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