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책읽기 습관이 바뀐 것이 있다. 바로 ‘E-BOOK’이다. 
리디북스를 사용한지는 꽤 되었지만, 그렇게 효과적으로 사용하진 못했었다. 
아직 사놓고 못 읽은 책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고, 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부턴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읽는 맛이나 책장을 넘기는 맛은 좀 떨어지지만, 여러모로 편의성이나 비용면에서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티를 안내고 책을 볼 수가 있다. 

평일에는 내 시간이 많다. 출퇴근을 하면서 주로 업무와 관련된 책을 볼 수 있다. 그땐 거의 종이책을 본다. 
하지만, 주말에는 언제나 가족과 함께다. 에버랜드를 간다거나, 쇼핑몰을 간다거나 할 때, 너무 티 나게 책을 읽으면 아내가 눈치를 줬다. ㅋㅋ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지, 충실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일견 동의했다. 그래서 이젠 스마트폰으로 책을 본다. 
잠깐씩 슬쩍슬쩍 보긴 이게 좋다. 특히 주말엔 어려운 책 보단, 가급적 쉬운 책을 보고자 하는데. 그래서 이북은 더 부담이 없다. 

지난 주말에는 생각보다 자투리 시간이 많았다. 덕분에 책 한권을 볼 수 있었다. 그때 기록해 놓은 글인데, 게으른 탓에 지금에서야 올린다. 
읽은 책은 ‘서민적 글쓰기’라는 글쓰기 책이다. 솔직히 털어 놓자면, 대단히 사고 싶어했던 책은 아니다. 
그저 리디북스에서 이벤트를 하기에 나도 모르게 쓱 사버린 책이다. 리디북스가 그런 식으로 뽐뿌질을 참 잘한다. 
오늘만 특가! 50% 할인! 그런 식의 마케팅 문구에 쉽게 낚이곤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샀다. 

한 가지 이성적 이유가 있다면, 서민 작가의 칼럼을 꽤 재미있게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유머러스하고, 촌철살인적 글쓰기 실력이 어디서 비롯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읽은 지 5분만에 바로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10년간 이어진 글쓰기 지옥훈련 덕분이다. 그는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노트와 볼펜을 가지고 다니며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적었다. 
서른 살에 첫 소설책을 내긴 하지만, 서른이 될 때까지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글을 잘 쓸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라고. 

주위에서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왜 중간에 포기 하냐면, 그 정도의 이유나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람들 대부분이 이렇게 글쓰기의 꿈을 접는다. 한 달 정도는 의욕적으로 글을 써도, 몇 년씩 그 열정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왜일까? 글쓰기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던 나와 달리, 그들에게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절실함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한다. 여자친구는 사귀다 헤어지면 끝이지만, 글쓰기 실력은 한번 갖춰 놓으면 평생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서문에서, 서민적 글쓰기)

그렇다. 그는 ‘절실했다.’ 왜냐면 그것은 그의 표현하고자 하는, 인정받고자 하는 ‘자아의 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가장 공감되었다. 그 외의 부분은 솔직히 아주 훌륭한 ‘글쓰기 책’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쓰고 보는 작가의 정신과 자세는 내가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서민 작가처럼, 나도 그렇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채,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지났다. 
누구보다 조용히 살아왔던 나는 20대 중반이 넘어서 조금씩 ‘내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 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말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깊은 대화’를 시작했다. 지금은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2009년만 해도, 나는 그저 생각만 가득하고, 행동할지 모르는, 게다가 말까지 더듬는 쫄보였으니까. 

그때에 비하면 지금 나는 꽤 나를 표현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갈증은 여전하다. 말보다 글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내 생각을 정리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갈망이 강해진다. 나는 그것을 원한다. 
나는 정말 글을 잘 쓰고 싶은걸까? 그렇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 시기에, 이 책은 나에게 ‘글쓰기’에 박차를 가하자는 마음이 들게 한다. 적절한 시기에 가볍게 글을 읽었다. 
일주일에 2개의 글을 쓰기로, 조용히 마음 먹는다. 


67
“텍스트를 정확하게 읽고 요약하는 능력,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훈련은 … 교양인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231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체가 화려한다’가 아니라, 글에 ‘자기 생각을 담고 있는가’다. 자기 생각이 없으면 좋은 글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233

책을 통해 자기 생각을 만든 사람은 비록 아이라 하더라도 주변 상황(회유나 조종)에 흔들리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쓰는 리뷰입니다.

지난 번에 '왜 책을 읽는가?'라는 주제로 써 본적이 있는데요. 이번 주제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입니다.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주제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방법과 습관'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 책을 읽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다시 말해, 독서법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대단치는 않습니다. 그저  '조금 더 잘 읽기 위한' 저만의 고민과 노력을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댓글도 남겨 주시고, 자극도 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책 선정이 어려웠습니다. 워낙 다양한 곳에서 글을 빌려왔기에 마땅한 책은 없지만, 책을 읽는 법과 관련해서 고민하시는 분들께 하나의 책을 추천 드립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지식 경영인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독서 태도와 방법을 정리한 책,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입니다.    




1. 책을 읽기 전에 : 일단 사고, 가지고 다니기 

자문해 봅니다. "내 독서 생활에 있어서 '결정적 시기'는 언제일까?" 지난 번 글에서 말씀 드렸던 '군대 시절'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 시기는 '대학을 졸업하던 시점'입니다. (안타깝게도 학교는 제 인생에서 별 도움이 안 되었나 봅니다. ;;) 당시 저는 전공이 아닌, 새로운 삶의 목표를 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제 지식과 경험에 금새 좌절합니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1년에 100권. 그렇게 목표를 정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기존까지는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는 '취미 독서'를 했다면, 그 시점부턴 목적이 분명한 '전략 독서'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평소 읽지 않던 경제 경영, 마케팅, 사회학, 미래학 등의 서적을 접합니다. 무엇보다도, 제 독서 생활에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 하게 됩니다. 책을 한권 한권 구입하게 된 것이죠. 


"이제부터는 평생을 살면서 5~6번은 직업을 바꿔야 한다. 대학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독서밖에는 살아나갈 길이 없다. 취미독서가 아니라 기획독서다. 지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전략독서를 해야 한다. 지식의 지평을 넓혀가야 언젠가 나도 모르게 뛰어들게 된다."  (최재천)

책을 왜 구입해야 할까요? 무언가를 산다는 것은 그 만큼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경험에 의하면, 책을 사지 않고 좋은 독서가가 되는 길은 요원합니다. 책을 구입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첫 번째, 좋은 책을 고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책을 선택할 때는 ‘기준’이 없습니다. 뭐가 좋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차곡차곡 힘들게 모든 내 돈, 치킨을 사먹을 수도 있는 그 돈을 가지고 책을 사다보면 알게 됩니다. "이 책을 산건 정말 최악의 선택이었어!" 빌려 읽으며 단순히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것과 피같은 내 돈이 나가는 건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선구안은 그렇게 길러집니다.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선, 그만큼의 투자도 필요한 법이죠.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값은 싼 편이다.  책 한 권에 들어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다치바나 다카시의 작업실


책을 사면 얻는 두 번째, 보고 싶을 때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 나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 깊은 의미와 즐거움을 주는 책. 이런 책들은 한번 읽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저 역시 무작정 많이 읽던 시기를 지나, 요즘에는 '좋은 책을 반복해서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단 것을 느끼고 있는데요. 책을 사지 않으면 그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 돈을 아껴서라도 책을 사시길 권합니다. 물론, 이왕 구입할 거라면 리브로에서 :) 

"혹시 예전에 읽었던 책이 문득 생각나서 다시 한번 읽어본 경험이 있는가? 그것은 지적생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어떤 책이 읽고 싶어졌을 때 그 책이 곁에 없어 읽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귀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거은 둥뇌에 그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몸이 어떤 영양소를 필요로 해서 음식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 읽은 책이라도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기 쉽상이다. 하지만 좋은 책은 희미하게라도 기억에 남아 있으면서 가끔식 생각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찾아 읽은 책들은 나의 지적생산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귀한 보물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책은 반드시 나만의 장서로 소장하며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 (지적생활의 발견) 

그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좋은 책을 사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주 쉽습니다. “책을 가지고 다니면 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이라, 고사성어를 하나 가지고 오겠습니다. 예전에 오나라에 여몽이란 장군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무공을 세워서 장군이 되었으나, 학식이 부족하여 손권이 책을 권합니다. 그러나 여몽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었고, 손권은 후한 광무제의 예를 들며 “손에 책을 들고 다녀라. 그럼 책을 읽게 될 거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수불석권'이란 고사가 등장합니다.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는다’는 말인데요. 

독서 습관의 두 번째는 책을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투리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늘부터 난 달라지겠어!’하고 무리하게 책을 읽다가 이틀만에 포기하는 것보다 그냥 가지고 다니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저 내 몸에서 책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워 졌다고 느낄 때, 한자 한자 읽어 나가면 됩니다. 그것이 책을 펴기 전 가져야 할 습관입니다. 정리하면, ‘책을 가치있게 여기고, 먼저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 책을 펼치고 나서 : 펜을 들고, 핵심 구조를 그리기  

앞서 '책 구입'의 중요성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사지 않습니다. 뉴스를 찾아보니, 작년 한 가구가 책을 사는데 한달 평균 1만 5천원을 썼다고 합니다. 요즘 책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입니다. 문제는 매년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비슷한 가격대의  '치킨’ 보다 대접받지 못하는 사실에 의문이 남습니다. 어쩌면 아직 책이 주는 가치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글을 지으려는 사람은 먼저 독서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예를 들어 우물을 파는 사람은 먼저 석자의 흙을 파서 축축한 기운을 만나게 되면또 더 파서 여섯 자 깊이에 이르러 그 탁한 물을 퍼낸다또 파서 아홉 자의 샘물에 이르러서야 달고 맑은 물을 길어낸다마침내 물을 끌어올려 천천히 음미해 보면그 자연의 맛이 그저 물이라 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또다시 배불리 마셔 그 정기가 오장육부와 피부에 젖어듬을 느낀다그런 뒤에 이를 펴서 글로 짓는다이는 마치 물을 길어다가 밥을 짓고희생을 삶고고기를 익히며또 이것으로 옷을 빨고땅에 물을 주어 어디든지 쓰지 못할 데가 없는 것과 같다고작 석 자 아래의 젖은 흙을 가져다가 부엌 아궁이의 부서진 모서리나 바르면서 우물을 판 보람으로 여기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p.29 다산 선생의 지식경영법)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위백규는 독서의 정수를 맑은 물에 비유합니다. 책에서 가치있는 지식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를 어느 곳에서나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하지만 대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슬슬 읽어내며 얻은 탁한 물을 보고, 쓸모 없다고 단정하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책의 정수를 진정 맛보기 위해선, 다소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잘' 읽어야 합니다. 그냥이 아니라, 좀 더 능동적으로, ‘질문을 품고’  읽는 것이 독서의 시작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형광펜'입니다. 저에게 형광펜은 곧 '질문'입니다. 처음 형광펜을 들았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아찔한 기억인데, 저는 정말 제가 바보인줄 알았습니다. 한 3개월 정도 펜을 들고 멍하니 책을 보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중요한 문장에 줄을 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행위가 처음엔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책을 읽고 머리가 살짝 지끈거리지 않다면, 아직 책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잘 읽는다는 것은 숙련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게 하면 책 읽는 능력이 겉으로 드러난다. 즉 밑줄 그은 곳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내용을 이해했는지 알 수 있다. 핵심이 아닌 부분에만 밑줄이 쳐져 있다면 독서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P.38 독서력)

"밑줄을 긋는 일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책 속의 내용과 연결시키는 행동이다. 단지 책을 읽기만 하면 아무 변화가 없기에 독서는 수동적인 행위가 되기 쉽다. 어디에 밑줄을 그을지 생각하면서 책을 읽을 때 비로소 독서는 적극적인 행위가 된다. 실제로 밑줄을 그을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판단이 거기에 들어가고 남기 때문이다. ...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책 속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한 문장을 발견하는 일이다. 단 한 줄도 눈에 번쩍 뜨이는 문장이 없다면 그 책은 자신과 인연이 없는 것이다."  (P.147 독서력)

여러분은 책을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저에겐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이 핵심인가?"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입니다. 책의 핵심을 간파하기 위해선, 일단 그 구조를 추려내는 힘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분들께 권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바로 '구조도 그리기'입니다. 특히 소설이나 에세이 보다는 경제 경영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도움이 됩니다. 단순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한장으로 표현한다면?"란 질문에 답하면 됩니다. 핵심 요소를 추리고, 관계도를 그리는 활동입니다. 쉽지 않지만, 의미있는 작업입니다. 

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매주 1권씩 책을 읽고 결과물을 남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익힐 수 있습니다. 당시 훈련했던 것이 지금도 새로운 기획을 하거나, 과정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도움을 줍니다. 당시에 몇 가지 예시를 찾아보았는데요. 아주 유치하고 지저분하긴 한데, 몇 장 남아있네요. 부끄럽지만, 그냥 공유합니다. 

서비스 디자인 교과서 / 전략적 공부기술


노는 만큼 성공한다 (김정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줄을 긋고, 구조도를 그려보자.’ 그렇게 읽은 책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필요 시 언제든 꺼내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가치를 느끼면 책을 사는데 돈이 아깝지 않게 됩니다. 독서가가 되는 길에 접어든 것이죠. 

능동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을 던지며 읽어 내려가라” 


3. 책을 덮고 해야 할일 : 함께 읽고, 글을 쓰기 

처음 책을 읽을 때, 분명한 목표는 도움이 됩니다. '책을 좀 읽은 것 같은’ 느낌보다는 ‘실제로 읽은 기록’을 믿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죠. 대부분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니까요. 앞서 말했듯 제 첫 목표는 1년에 100권 읽기였습니다. 그것만 해도 충분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개인적으로 독서 습관을 만드는 초기에는 질적 독서 보단, 양적 독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어려운 책을 힘겹게 보는 것보단, 관심있는 책을 즐겁게 쭉 읽어나가는 것이 습관을 만드는 데 많이 도움 되었습니다.

간혹 “책 읽을 시간이 어디있어요?”라는 분들이 있는데요. 이건 관점이 좀 다릅니다. 시간은 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나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기 위해서 시간을 만드는 것’이 맞습니다. 저 역시 평소엔 시간이 없어서 주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합니다. 집에서 회사까지 보통 1시간이 걸리는데, 그렇게 하루 2시간씩 읽을 수 있습니다. 보통 1시간에 50-60페이지 정도 읽게 되는데요. 일주일에 이론상 500-600페이지가 가능합니다. 주말을 제외하더라도 충분히 일주일에 1권은 가능하더군요. 결혼한 지금은 어렵지만, 주말에 시간이 있는 분들은 카페에 가보는 것도 좋습니다. 혼자 책 읽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이 없는 사람이 책을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추천하는 것은 ‘함께 읽기’ 그리고 ‘글쓰기’입니다. 독서 모임에 참가해 보신 분들이 계신가요? 책을 읽고 함께 생각을 교류하는 활동은 독서를 습관화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됩니다. 저 역시 2010년부터 크고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서로 좋은 책을 권할 수 있어서 좋고, 또 관계 그 자체가 기분좋은 자극이 됩니다. 저희 회사 독서 모임에 참여한지도 10개월 가까이 되는데요. 개인적으론 정말 즐겁고 의미있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독서의 궁극은 바로 ‘글쓰기’입니다. 최근 인기 많았던 책이죠. ‘대통령의 글쓰기’를 보면, 역대 대통령도 독후 글쓰기를 강조합니다. 

“김대통령은 독서의 완결이란 읽은 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데까지라고 했다. 노 대통령 역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영감을 정책에 반영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책으로 집대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대통령의 글쓰기) 

책을 정리하기 전엔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이건 중요합니다.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잘쓴 글과 못쓴 글은 없습니다. 안쓴 글과 쓴글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저도 일단 씁니다. 그렇게 조금씩 쓴 글을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공유하는 것도 좋습니다. 응원도 되고, 또 자극도 되거든요. 정리하자면 '함께 읽고, 나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 정도가 되겠네요. 

지금까지 2부에 걸쳐서 독서 방법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눠봤습니다. 지금까지 읽다보면 분명 어떤 분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주로 소설책이나, 인문학 책을 읽는데, 그렇게 굳이 목적과 방법을 가지고 읽어야 하나요? 그냥 즐겁게 읽으면 안 되나요? 저는 답변 드립니다. ‘그 또한 완벽한 독서입니다.'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폰티지아는 말한다. “배우기 위해, 즐거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연설을 하기 위해, 회상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아무런 목적 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현재를 읽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 독서하라.”

이런 독서는 중요합니다. 그 자체로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지혜는 균형에 있죠. 지금까지 그렇게만 책을 읽어왔던 분들껜 '전략적 독서'도 쓱 권해봅니다. 반대로 늘 효율성에 입각한 독서를 한 분들껜 '목적 없이 읽기 좋은' 소설이나 인문학 책을 권합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나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것. 그것이 제가 책을 읽어나가는 방식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쁜 분들을 위한 3줄 정리

1. 책 읽기의 시작은 책을 사고, 일단 들고 다녀보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론, 그것이 좋습니다.
2. 책을 읽을 땐, 펜을 들고 핵심 구조를 그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좀 더 능동적 자세를 취해보는 것이죠.
3. 책을 덮고 나선, 함께 토론하고 글을 써보는 것이 좋습니다. 서로를 통해 자극받는 것이죠 :)


9월 21일
책 읽기 - 한번 더 옮기기

현대인들에겐 책 볼 시간이 없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책 볼 시간이 도저히 없다. 내가 유일하게 책을 마음놓고 볼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지하철'뿐이다. 지하철 이외의 장소에서 책을 본 기억은 나름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하던 시기뿐이다. 2012년을 기점으론, 앉아서 책을 읽은 적은 손에 꼽는다. 앉으면 보통 필사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강의를 준비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기에. 먹고 살아야 하니까. 책을 읽기 위해 나는 하나의 전략을 세웠다. 일단 강의장소가 멀면 멀수록 보통은 주저하지만, 난 마다하지 않는다. (되려 속으론 반긴다.) 비효율적인 동선을 많이 만들수록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기에. 작년엔 그 정도가 심해서 매주 오산, 일산, 남양주, 시흥, 성남을 왔다 갔다 했던 적도 있다. 올해 들어서 다소 나아졌지만, 그래도 이동시간이 만만찮은 곳들이 여전히 많다. 그렇게 시간을 확보했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강의 준비는 끝이 없는 거라서, 이동 내내 강의 준비를 하면 책을 볼 순 없게 된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에 이어 두번째 조건, '정신적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나는 이동 중엔 내가 강의 하러 간다는 사실을 잊으려 노력한다. 강의 준비 시간과 책 보는 시간은 철저히 구분하려 애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책을 읽을 수 없기에. 마지막, 사실 이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 발터 벤야민에 대한 책을 읽으며 강의하러 가는 길이었다. 책을 읽으며 그 기쁨이 참으로 커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주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지. 탁월한 비유다. 그 문구를 나에게 가지고 오면 이렇게 된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책을 보는 것일까, 책을 보기 위해 먹고 사는 것일까. 문득,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 반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게. 어느새 성큼 다가온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9월 22일
중간 점검

9월의 2/3가 지났다. 중간 점검을 해보자. 탁월한 삶을 위한 훈련은 필연적이기에.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3월부터 하나의 실험을 했다. 매일 성찰일지 적기. 물론 밀릴 때가 대부분이다. 3-4일 정도 밀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일주일 이상 밀리진 않았다. 그리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적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나 자신에게 칭찬해 줄 부분이다. 그래서, 작년 내 삶의 만족도를 6-7점 정도라고 한다면, 올해는 8-8.5점은 된다. 꽤 높은 점수의 상승의 절반은 재원이가, 절반은 성찰이 책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끝인가? 아니다. 아직 멀었다. 그 하나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었다. 9월부터 시작된 실험은 바로 ’Self-control’ 프로젝트. 매일 하나의 할 일을 정하고, 그것을 하는 것.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지속하기에 그리 쉽지도 않다. 매일 무언가를 인식하는 것 그 자체가 꽤 어려운 일임을 고백한다. 실제로 처음 며칠은 생각도 나지 않더라. 하지만 어느새 거짓말처럼 21일 정도가 지났다. 누군가 그랬다. 습관을 형성하는 시간이 21일이라고. 꽤나 설득력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젠 알아서 매일 할 일을 기록하고, 체크하고 있다. 그래. 올해는 나를 대상으로 이런 저런 실험을 하자. 그리고 내년엔 그 실험 결과를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자.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자고 하는 것은 기만이지만, 내가 갔던 길을 가자고 하는 것은 초대이자, 배려기에. 그렇게 함께 훈련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다 같이 걸어들어가 보고 싶다. 9월 지금까지 나의 만족도는 8.5점이다. 남은 1.5점은 단순하다. (솔직히 9점 이상이 되긴 어려울 듯 하지만) 남은 기간도 온전하게 이 프로젝트에 헌신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좋다. 


9월 23일 
열정에 대하여 

오늘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연이은 미팅이 있는 날. 앞서서 김희태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나는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공부를 한참 할 때였다. 아마 10월이었나 mysc에서 주관하는 소셜 이노베이터 캠프가 열렸다. 다른 것보다 기대가 된 것은 체험형 워크샵과 OST를 직접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박 2일이란 일정에도 불구하고, 신청했다. 결과적으론 만족스런 경험이었다. 그 과정에서 옆에 앉아서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는 인연으로 만났었다. 왜냐? 당시 선생님께서 협동조합 보드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때 한참 보드게임에도 관심이 많던 나는, 이후 몇번 회사를 찾아서 이야기도 했고,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 보기도 했다. 작년 이맘때쯤, 교육 하나 같이 하자고 의견도 모았지만 결국 그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근 1년만에 다시 만나서 대화하는 거라, 근황을 주로 나누었다. 이번 만남에서 특히 인상깊은 것은 바로 ‘역사’에 대한 선생님의 열정이었다. 신나게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며, ‘아, 이분은 정말 좋아하는거 하시는 구나’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저런 곳에 역사 탐방을 다니시며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듣고, 공부도 하시는 모습이 나에게 좋은 자극도 되었다. 또한, 대동법 시행과 관련한 비석을 설명할 때는 정말 기존에 ‘의미없었던 비석’이 나에게 ‘새로운 의미’가 되어 출현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역사가의 본질이 그런 것이 아닐까. 선생님의 열정에 감탄을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어서 만난 선생님은 최승표 선생님. '우리 아이는 야구선수'란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시는 분이다. 사실 인연이 된지는 꽤 오래 거슬러 올라간다. 미내사에서 부터 이어져오니 ㅋㅋ 암튼 선생님도 앞서 처럼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계시다. 우리 나라에 좋은 운동 문화가 퍼졌음하는 바람이 나에게도 전해져 온다. 나 역시 이에 감화되어서 이번에 워크샵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고 말이다. 암튼 이런 분들의 열정을 접하면, ‘열정’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열정이란, 정말 ‘삶’에 '숨’을 불어넣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그 보상을 바라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것, 그렇게 삶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열정이 아닐까. 


9월 24일 
칠보초 수업 성찰

칠보초 감사 수업이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시간은 감사편지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이번 1년은 나름의 주제를 바탕으로 주제별 수업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이번 감사수업에서 그건 가장 잘 지켜진 것 같다. 도입은 이야기로, 전개는 자신들의 실제 사례로, 절정은 역할극이나 프로젝트로. 마무리는 나눔이나 표현으로. 그렇게 하나의 주제를 탐색해보는 활동을 의도했었는데, 이번에 그나마 잘 된 것 같다. 그렇게 하반기 수업도 하나씩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잘 따라와주는, 그래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는 아이들이 감사하다. 


9월 25일 
지현쌤과의 대화

꼴라주 프로그램 때문에 서둘러 미팅을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미팅을 하면서 느끼는 건, 재미있는 과정이 될 것 같다는 기대다. 역시 다양성이 충분히 확보되고, 그 특징이 잘 발현되는 분위기가 연출될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건 기정사실인듯. 미팅을 마치고 지현쌤과 남아서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 지현쌤은 나와 애니어그램 성향은 다르지만, MBTI적 성향은 비슷하다. 나보다 외부에 비교적 많이 열려있으신 편이지만, 그래도 내부와 외부의 균형이 잘 맞는 편이다. 사람을 보는 눈이나 관심사도 비슷한 편이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성향도 비슷하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런 저런 주제로 대화했는데, 마무리할 때쯤 정리가 된 것이 있다. 퍼실리테이션과 디자인씽킹과 시스템씽킹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다. ㅋㅋ 일단 도입은 퍼실리테이션이다. 왜냐? 참가자들에게 ‘힘’을 되찾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언와 아이디어이 반영된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필수다. 그것이 없으면 공동 창조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힘을 되찾게 하고, 그 힘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역시 ‘디자인씽킹’이다. 디자인씽킹의 ‘행동 중심 모델’은 굉장히 뛰어나다. 공감을 중심으로 한 행동, 그리고 지속적 피드백. 그렇게 참가자들은 자신의 힘을 자각한다. 마지막은 시스템씽킹이다. 자신이 발휘한 힘에 대한 영향력을 추적하는 것은 역시 ‘시스템씽킹적 관점’이 최고다. 원인과 결과를 추적하고, 결과가 원인에게 다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그 피드백을 고려하는 것. 그렇게 해서 큰 그림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것. 그렇게 되면 전체 과정은 하나의 조각으로 완성된다. 끝없는 이 그림을 맞추는 것은 각자가 일상에서 돌아가서 해야 할 몫으로 남고 말이다. 역시 함께 아이디어를 합치고 나누는 것은 즐거운 과정이었다. 


9월 26일 - 29일 
추석 연휴 리뷰

이번 추석 연휴를 간단히 리뷰한다. 첫날, KTX를 타고 대구로 이동했다. 평소 나는 돈이 아까워서, 그리고 기차에서 책을 읽고자 주로 ‘무궁화호’를 이용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재원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빈 자리가 없어서 특실을 끊었다. 비싸서 그렇지 진짜 빠르긴 하더라. 1시간 40분만에 대구에 도착했다. 평소 왠만한 수업 다니는 거리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달떡’을 사러 간 것이다. 달고 떡볶이는 정말 맛있고 싸다. 2000원치만 사면 2-3명이 배부르다. 게다가 맛있다. 나는 매년 2번 대구를 가고, 매번 도착하자마자 사 먹는다. 올해는 아버지가 이벤트를 준비했더라. 재원이의 방문을 축하하는 대자보가 뙇! 진짜 웃겼다. ㅋㅋㅋ 손주가 이쁘긴 이쁜가보다. 한참을 웃고 제사음식도 먹고 놀았다. 저녁에는 아버지랑 같이 두류공원도 산책했다. 

ㅋㅋㅋ 대박 ㅋㅋㅋ


다음 날, 아침일찍 차례를 지냈다. 사실 지난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내도 나도 재원이도. 왜냐? 그놈의 모기! 재원이도 팔과 다리에 10방 정도를 물렸고, 나도 그랬다. 한 녀석이 그런거 같은데, 암튼 엄청 힘들었다. 비몽사몽으로 차례를 지내고, 사촌동생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오후엔 성묘를 갔다가 할머니 요양원도 들렸다. 할머니는 이제 정말 치매가 심해지셨더라. 우리들이 가서 인사를 해도, 엄마가 먹을 것을 드려도, 그저 ‘감사합니다’만 반복하셨다. 처음보는 사람처럼 우리를 바라봤다. 나는 사실 할머니를 통해서 키워졌기 때문에 할머니랑 각별한데, 마음이 너무나 아렸다. 평소에 편히 눈감으시는 것을 얼마나 꿈꾸셨는데.. 매번 편하게 눈감게 해달라고 애원하셨는데, 지금은 편안해 지셨으려나 모르겠다. 암튼 남은 기간 동안 할머니가 진심으로 평안하시길 기도한다. 정말 그러하시길.. 에효. 암튼 저녁에는 다들 힘들어서 뻗었다. 다음 날, 오전에 아파트 주위에 산책을 다녀온 것 이외에는 별 일이 없었다. 재원이 보느라 다들 정신없었다. 오후에 외출을 했다. 요즘 뜬다는 ‘김광석 거리’에 방문했다. 정말 예쁘더라. 그림과 음악이 어울려진 거리였고, 그에 맞춰서 갖가지 상업적 시설(;;)도 들어오고 있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나는 ‘예술의 힘’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서울로 치면 연남동이나 통의동을 걷는 기분? 예술이 자리를 잡으면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 사람들을 따라서 돈이 들어오는 모습에 더불어 볼 수 있었고 말이다. 백화점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왔다. 마지막 날은 오전에 떡볶이를 먹고, 오후에 KTX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번 추석 연휴를 정리하자면. (혼자일 때보다) 정신적, 시간적 여유는 많이 없어졌지만, 그 덕분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광경들을 새롭게 목격할 수 있었던, 그런 의미있는 명절 연휴라고 정리하고 싶다.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에서




읽게 된 계기

우연히, 페북에서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쓴 글을 보게 되었다. 읽으려고 봤더니, 절판이더라. 그래서 중고책방에 간 김에 찾아서 읽게 되었고, 내용이 그리 많지 않길래 그냥 그 자리에서 초서까지 끝내고 나왔다. 물론 책은 사서 봐야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보기도 한다. 특히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고, 굳이 재독할 필요가 없는 책들은 이렇게 잠깐 보거나, 빌려서 보고 초서해서 반납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를 폄하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공감할 부분은 대단히 많았고, 쓸데없이 어려운 문체가 아니라 쉽게 술술 읽혔던 좋은 책이다. 게다가 나 역시 요즘 들어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달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생각에 많은 도움을 얻은 책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이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문화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생각하고 글을 쓰라. 이제 글쓰기는 필수다."


딜리셔스 샌드위치 / 유병률 


옮겨적기 

1.
문화경쟁력 갖추기

‘샌드위치 한국’이 ‘딜리셔스 한국’이 되려면, 관건은 문화경쟁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성장력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보루는 생산성이라고 했습니다. 생산성은 노동과 자본을 어떤 방식으로 조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노동과 자본 투입량이 같아도 산출량이 크다면 생산성이 높은 것입니다. … 문화적 언어로 소통되는 문화제국에서 생산성은 얼마나 유연한 문화 환경과 콘텐츠를 가졌느냐에 의해 좌우됩니다. 

+ 창조 경제의 핵심은 '문화'다. 중동에, 남미에 일하러 가는 것이 만사가 아니다. 높은 문화의 힘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청년들에게 일단 뭐가 되었은 '일하고 보라'는 메시지도 나는 싫어한다. 청년들에게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가치인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 문화적 관점이 필요하다. 일단 채워놓고 보자는 식의 '수량 위주의' 일자리 정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러한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면 결국 우리나라도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 
자기만의 연구실을 가져라

꼭 찾아내야 할 한 가지는 바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입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연구실을 가져야 합니다. 지식과 정보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 그리고 미치도록 파고들 수 있는 자기만의 여유로운 밥벌이를 찾아보십시오. … 이미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자기 위치를 더 탄탄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언제든 홀로서기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늘 연구하는 제가 필요합니다. 연구는 교수나 과학자만 하는 게 아닙니다. 

+ 일에 대한 이 정의가 참 좋았다. '미치도록 파고들 수 있는 자기만의 여유로운 밥벌이' 이 단어를 보자. <미치도록 파고든다>는 말은 일에 대한 '몰입'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여유있는 밥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일에 매몰되지 않는 것. 즉, 적당한 '성찰'이 동반되는 일을 말한다. 즉, 몰입과 성찰을 동반하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한 가지만 있어선 안 된다. 몰입 없는 성찰은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성찰 없는 몰입은 '방향성'에 한계를 가진다. 우리에겐 둘 다 필요하다. 그러한 '새로운 창조'를 위해선 분명 자기만의 연구실이 필요한 법이리라.

3. 
하버드는 왜 글쓰기 교육에 올인하는가

하버드대학이 가장 신경쓰는 분야는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과목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도 안 시켜준다. 그 이유는 바로 세계적 리더 양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이 글쓰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이렇게 철저히 글쓰기교육을 시키는 학교이기 때문에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대학원 리처드 라이트 교수는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에서 “하버드생들이 4년 동안 가장 신경쓰는 분야가 바로 글쓰기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은 대학생활은 물론 직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다.”라고 강조한다. … 생명공학에 대한 글쓰기 가이드를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글쓰기는 다른 과학자들은 물론 대중과 과학에 대한 아이디어와 과학적 발견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과학을 연구하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실험노트를 작성하고, 연구제안서를 쓰고, 연구논문 형태로 스토리를 얘기하는 것 모두가 과학적 사고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 나는 외국 대학에 대한 부러움이 별로 없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한 가지 부러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글쓰기'에 대한 훈련이 그것이다. 미국도 그렇겠지만, 특히 옥스포드 대학의 경우 글쓰기와 토론 훈련을 엄청나게 시키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 사고하는 훈련은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대학 시절에 가장 등한시 한 것이 이런 공부이고, 뒤늦게나마 시작하려는 것도 결국 '살아가면서 한번은 넘어가야 하는 숙제'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다. 왜 미리 시작하지 못했을까. 안타깝다. 

4.
익스포스(하버드대 논증적 글쓰기 프로그램)의 목적

하버드는 익스포스(논증적 글쓰기 과정)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글쓰기와 사고력은 뗄 수가 없다. 훌륭한 사고력은 훌륭한 글쓰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 한 회계학 교수는 자기의 중급회계학 수업에서 비즈니스와 관련없이,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에 대해 페이퍼를 쓰라는 숙제를 낸다. … 2007년 하버드대 낸시 소머스 교수는 국내 한 주간지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하버드는 사회에서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익스포스를 진행하고 있다.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단순한 학습효과를 뛰어넘어, 능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회인으로서의 덕목을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생각을 탄생시키는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학문적인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분야에 꼭 필요한 과제다.” 정리하면, 공부를 잘 시키기 위해서뿐 아니라 능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그렇게 모질게 글쓰기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다. 

+ 글쓰기와 사고력은 서로가 서로를 형성한다. 높은 사고력(내용)도 높은 글쓰기 능력(형식)이 없다면 담길 수 없고, 높은 글쓰기 능력도 사고력이 없으면 담을 내용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형성한다. 내용과 형식은 분리될 수 없다. 말에 비해서 글이 가지는 한 가지 강점이 더 있다. 말은 휘발성이 강하지만, 글을 어쨌든 세상에 자취가 남는다. 내가 쓴 글이 나를 지탱시킬 때가 많다. 게다가 블로그에 쓴 글은 더욱 그렇다. 일단 이렇게 살겠다고 말했고, 글로 썼다. 그 글을 많은 사람들이 봤다. 나도 흔들릴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을 나침반으로 삼고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글이 가지는 '자취'가 내가 흔들릴 때 삶의 '지도'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5. 
리더 교육과 글쓰기

인재양성이나 리더교육을 위해 왜 글쓰기가 이렇게 중요할까? 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보다 합리적인 사고의 정리를 위해 글쓰기보다 더 유효한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글을 쓰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고, 글로써 보다 명료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보다 선명한 ‘소통’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위로 납작 짓눌리지 않고 세대구분 없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자기 삶의 키를 스스로 쥐고 살아가며, 나아가 어떤 분야에서든 리더가 되려면 이렇듯 글쓰기능력이 필수적이다. 

+ 소통을 하기에도 글이 더 낫다. 누군가 21세기는 이미지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적이 있다던데, 나는 반대한다. 되려 21세기는 '텍스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보는 편이다. 스마트 폰에 최적화된 것은 바로 '글'이다. 우리는 언제나 쓰거나, 읽는다. 주로 이용하는 페북도, 뉴스도, 카톡도 결국 글이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텍스트들이 인터넷을 범람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결국 이미지도, 영상도 아닌, 글이다. 해석할 여지를 가장 많이 남겨둔다는 점에서도, 앞으로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컨텐츠는 바로 '글'이 될 것이다. 

6.
과학자과 글쓰기

과학자들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연구도 더 잘한다고 합니다. 1996년 노벨상을 받은 피터 도허티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2005년 국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과학을 연구하려면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과학자가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연구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생각도 명확하게 한다. 그래서 연구를 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 글을 잘 쓰기로 유명한 과학자 정재승씨를 보면 분명 그런 것 같다. 

7. 
배움을 위한 글쓰기

지금의 글쓰기는 자기가 알지 못한 것을 찾아보게 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취재는 작가나 기자만 하는 게 아닙니다. 일기를 쓰는 게 아닌 이상, 글 쓰는 사람은 인터넷이든 보고서든 신문이든 책이든 뒤져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관심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생각과 이질적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줍니다. 오히려 독서보다 글쓰기를 하면서 배우고 알게 된 것들이 진짜 자기 것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뭘 읽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뭘 썼는지는 기억하지 않습니까? 

+  이건 내가 글을 쓰면서 정말 경험하는 것이다. 일단 글을 쓰기 위해선, 관심의 폭을 넓혀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물론 레퍼런스가 필요없는, 평소 일상의 성찰글이나 일기를 쓰는 것에는 다른 공부가 필요없다. 하지만, 주제가 있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선, 그 주제와 관련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들어봐야 하고, 또 신뢰를 쌓기 위해서 다른 책도, 강의도 봐야 한다. 그렇게 글을 쓰면 공부가 많이 된다. 그건 정말 이다. 최근 그런 글쓰기를 실험해 보고자, 니체에 대한 글을 길게 한번 쓴 적이 있는데, 짦은 기간이었음에도 꽤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링크 <프리드리히 니체를 만나다>

8. 
안 쓰면 안 된다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글을 잘 쓰자’는 것이 아니라, ‘안 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친구와 ‘메신서’ 하듯 글쓰기를 친숙한 도구로 가까이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 통로가 블로그가 됐든, 미니홈피가 됐든, 카페가 됐든, 언론사 시민기자를 하든, 책을 쓰든, 글을 쓸 물리적 능력이 되는 모든 국민이 자기만의 ‘지식발전소’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를 일상적인 도구로 활용하게 되면,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정신능력의 두 배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글쓰기라는 도구를 갖지 못했거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정신능력의 절반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겠죠. 

+ 지식을 공유하는 통로는 다양하다. 나의 경우 주로 페이스북과 블로그다. 페북에는 일상적 글을 짦은 글을 올리고, 블로그에는 일기를 모아서 올리거나, 책을 읽고 공부한 내용을 올리거나, 칼럼 형태로 쓰거나 한다. 물론 사람들은 별로 오지 않는 작은 블로그이지만, 그래도 나만의 <지식 발전소>를 갖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나에겐 의미있는 공간이다. 가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교류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그들이 어떤 통로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로가 없으면 소통도, 교류도, 창조도 없다. 

9.
발상과 표현기법

커트 행크스는 <발상과 표현기법>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디어는 단지 생각일 뿐, 생각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점이 창의적인 사고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을 고정시켜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재빨리 언어나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종이 위에 구체화시켜 놓아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은 완성된 상태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창조에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흘러나오게 한 뒤 종이 위에 일단 고정시켜놓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토머스 에디슨 등 위대한 창조력을 가진 사람은 모두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생각을 보존하고 발전시켰다."

+ 창조의 핵심은 표현이다. 표현되어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 그것이 꼭 다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도 '표현된 아이디어' 덕분에 생각을 공유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뭔가를 꺼내고 표현해야, 나도 보고, 다른 사람도 본다. 내가 되었든, 남이 되었든 그 아이디어에 대해서 논할 수 있기 위해선 일단 꺼내야 한다. 습작이라도 좋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 만으로도 대접받을 필요가 있다. 

10. 
쓰기 시작할 때, 쓰고 났을 때

사람들은 첫 한두 줄을 읽고는 재미가 없거나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모르겠으면 더 이상 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 처음 한 두 줄만 읽고도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가장 머리 쥐어뜨는 대목이 바로 리드입니다. 한 시간 기사를 쓰면 20여 분은 처음 한두 문장에 할애하지요. 리드만 완성되면 기사의 절반 이상을 쓴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입니다. 

<생각의 탄생>에도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 그러면서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위에를 비롯한 많은 작가는 편집자에게 원고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유감이라는 편지를 썼다. 그들은 한결같이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양이 절반으로 줄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소개합니다. 결국 짚어봐야 할 것은 ‘뭐 빠진 게 없나’가 아니라 ‘빼도 상관없는 단락이 없나’라는 얘기다.

+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 본 적이 없는 나의 경우에는, 이런 기자들이 참 부럽다. 기자들은 태생부터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할까?"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그런 흡입력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 그런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일단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하지만 때가 되면 나도 품어야 할 질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하기 위해선 어떤 글을 써야 할까?'라는 질문. 나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다. 


연결 고리


  1. 조아하자 2015.07.08 21:45 신고

    솔직히 저는 원하는 일 하라는 메시지에 반대해요. 제가 그 원하는 일 찾아서 했다가 인생 말아먹었거든요 ㅡㅡ 지금은 재취업해서 다시 일하고 있는데 이전보다 훨씬 못한 급여에 훨씬 못한 삶을 살고 있어요. 현실이란건 쉬운게 아니에요. 특히 그 원하는 일이 남을 돕는 일이라면 훨씬 더 어렵지요. 나 자신이 자립하지도 못하는데 남의 자립을 이야기하는 것, 솔직히 웃기잖아요? 저도 남을 돕는답시고 제가 원하는 일 찾아 나섰다가 언젠가 제 자신을 돌아보니 그 일로 제 자신이 자립할만한 돈도 못버는데 남의 자립을 이야기하고 있더라구요~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멘토들의 메시지가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착취 전략이라고 말하는데 이 주장에 어느정도 동의해요. 돈 상관 안하고 정말 좋아서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갑의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악한 마음을 먹고 착취하기도 쉽지요. 오죽하면 열정페이같은 신조어가 생겼겠어요...

    • 댓글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원하는 일을 하는 것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그 사이에서 괴리는 정말 아는 사람만 알죠. 언듯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실제론 어마어마하지요. 남을 돕는답시고 원하는 일 찾아 나섰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도 저를 포함해 주위에서도 종종 보는 일입니다. 화영님도 고생 많이 하셨군요. 얼마나 상심이 크셨을까요. ㅠㅜ 다만, 전 "원하는 일을 하라"는 메시지 전부를 비판하는 것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그 메시지에는 '전제'가 있고, 그 전제를 잘 염두해 둔다면, 그리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전제에는 일단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떠오르는 데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로는. (지금까지 원치않은 일만 해 왔다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인식해보고, 한번 도전해보라. 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 보다는 한번 정도는 물길을 다른 쪽으로 열어보는 것. 그 정도는 삶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다양성 측면에서도, 환기의 측면에서두요. 두번째로는 원하는 일을 하라, (단,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있지요. 그저 믿음 만으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명확한 현실인식은 원하는 일을 하고 살려는 이상주의자들 일수록 필수라고 봅니다. 자기객관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무작정 뛰쳐나오는 경우도 많이 보는데, 그런 경우는 저 역시 말리는 편입니다. 위험하지요. 마지막으로는 (남이 아닌 내가) 원하는 일을 하라. 라깡이 말했듯, 우린 자신의 욕망을 잘 인지하지 못하지요. 타인의 욕망,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욕망인냥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경우, 시간이 지나면 방향성은 흐지부지해지고, 결국 '허무함, 혹은 원망'만 남지요. 내가 겨우 이거 할려고 그랬나? 라는 후회와 함께요. 저는 이러한 몇 가지 전제 조건을 마음에 두고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런 조심성 없이 무작정 도전하라, 원하는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책임감 없는 멘토들은 저도 싫어합니다. 열정페이도 그런 맥락에서 마찬가지구요. 그러고 보니, 저는 맹목적 이상주의자도, 맹목적 현실주의자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네요. 글을 쓰면서 저의 몇 가지가 인식된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나눌 수 있어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2014년 8월 8일 아침 8시 50분

제목 : 일기장을 만들다


돌아보기에, 나는 블로그와 떨어져 있었다. 티스토리를 시작한지는 벌써 몇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어쩌면 내가 알리기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블로그의 속성과 내가 바라보는 블로그가 처음부터 달랐는지도 모른다.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블로그를 내가 공부하는 것들을 정리하는 공간으로 생각했다. 

마치 에버노트처럼. 그렇게 쌓이다 보면 그래도 꽤나 뿌듯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다른 사람은 내 안에 없었다. 오로지 나와 나의 지식이 있을 뿐이었다. 그게 유일한 관심이다. 


하지만 블로그는 내 지식을 정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툴이 아니다. 블로그는 내 생각과 경험을 타인들과 기꺼이 나누고, 교류하고 함께 웃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나와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 나라는 사람의 눈,코,입, 손과 발, 그리고 마음과 영혼이 표출되어야 한다. 연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분리되었다. 한달에 한번, 의무적으로 독서 리뷰나 올릴 뿐이었다. 


최근, 나는 <나는 쓰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올라왔다. 하지만 글쓰기만큼 쉽게 시도하고 쉽게 포기하는 것이 없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마치 다이어트와 영어공부처럼. 이런 산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지. 


나도 고민한다.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 하지만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칼럼이니, 독서 리뷰니 뭔가 자리를 잡고 무겁게 쓰기 전에 간단하고 소소한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다. 내 삶을 말하고 싶다. 지금보다 더 가볍게.


이미 블로그를 통해 그렇게 삶을 공유하는 좋은 분들이 많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을 닮고 싶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시작하면 되니까. 그래서 오늘 아침, 문득 일기장을 만들었다. 

잡생각도 좋고, 그냥 일상적 경험도 좋으니까. 나누자. 그게 더 나다운 거라고 느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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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생활의발견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와타나베 쇼이치 (위즈덤하우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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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년 2011년 10월에 사당의 책방에서 읽은 책이다.
당시 필사에 관심이 많을 때라 그대로 옮겨 적으려고 몇장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렇게 옮기는 과정이 벌써 3개월이나 지나고 말았다. 요즘 바빠서 정신도 없고 이렇게 주말을 활용하지 않으면 포스팅을 영영 못할 것 같아서 잠깐 시간을 내서 책 내용을 정리했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그나마 '일본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도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을 잘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 최고의 역사평론가 '와타나베 쇼이치'인데, 문체나 사상이 조금 답답한 느낌이 있지만 그 마저도 요즘 같이 빠르고 소비하는 시대에는 더 부각이 되는것 같아서 좋다 ^^ 

그럼 이제 요약 시작!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지성이 보인다."

나는 남에게 얻어먿는 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거저먹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돈을 내고 음식을 사 먹을 때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돈을 들인다는 것은 판단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듯하다.

물론 돈이 없는 학생들은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수입이 적으면 적은 대로 그때그때 형편에 맞게 책을 조금씩 사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지적생활자의 자세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이 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장서를 보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장서'는 책을 뜻하지만 영어로는 '라이브러리',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는 '비블리오테크'라고 해서 '도서관' 또는 '서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즉, 아무리 책의 권수가 적더라도 나만의 고전이 된 장서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만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읽어보지 않고서는 좋은 책인지 알 수 없다.
양서를 판별할 수 있는 안목과 직잠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서 읽어보기 잘했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곁에 두고 때때로 책장을 훌훌 넘기며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책의 진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책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하면서도 정확한 안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나는 개인적으로 위의 문단 때문에 이 책을 옮겨적기 시작했다. 왜냐면 나 역시,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변화의 시점'과 '책을 사서 모으기 시작한 시점'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와 군대 생활 중에서도 나름대로 400권 정도의 책을 읽었었는데, 그 당시에는 책을 사서 모으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을 뿐, 실제로 그것을 지식으로 활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책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내가 살 책을 모으고, 줄을 치고, 공부를 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의 결론도 이렇다.

"일단 책을 사라"







- 책이 생각나는 순간을 놓치지 마라

책을 반드시 사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혹시 예전에 읽었던 책이 문득 생각나서 다시 한번 읽어본 경험이 있는가? 그것은 지적생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어떤 책이 읽고 싶어졌을 때 그 책이 곁에 없어 읽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귀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것은 두뇌에 그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몸이 어떤 영양소를 필요로 해서 음식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 읽은 책이라도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기 쉽상이다. 하지만 좋은 책은 희미하게라도 기억에 남아 있으면서 가끔식 생각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찾아 읽은 책들은 나의 지적생산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귀한 보물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책은 반드시 나만의 장서로 소장하며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 

 

책을 사겠다는 것은 지적생활을 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신문, 잡지, 자기계발서와 달리 좋은 책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읽게 되지 않는다. 시간을 따로 내어 곰곰히 되씹으며 정독하고, 후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좋은 책을 만나는 행운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나는 헌책방에 자주 들르는데 가끔씩 절판되어 아쉬움이 남았던 좋은 책들을 발견하곤 한다.




- 아이의 공부방보다 부모의 서재가 먼저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방을 만들어준다. 물론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부모는 서재가 없으면서 아이에게 독립된 공부방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이의 공부방보다 부모의 서재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훗날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적 토론을 하게 될 것이다.
'나만의 도서관'을 갖는다는 것은 지적생활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 장서의 축적과 지식의 누적효과

칸트와 다윈은 50세 이후부터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하여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들의 서재에는 수많은 참고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특히 이 나이쯤 되면 장서의 축적은 최고점에 도달하는 듯하다.
칸트는 많은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만의 장서로 서재를 장식했다. 당시에는 책이 귀했기 때문에 수입에 비하면 책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한꺼번에 많은 책을 살 수는 없었지만 그는 한 권 한 권 책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칸트는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을,  66세에 '판단력비판'을 써냈다.

젊어서부터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좋은 책들을 조금씩 사들여 자신의 서재에 소장해온 사람은 정년 이후부터 참된 지적 즐거움을 알게 된다. 정년 수에 꾸준히 집필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출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정년 후에 더 크게 발전하는 사람과 정년과 동시에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정년 후에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차분히 꺼내 읽으며 애독할만한 책들이 없으면 지적생활은 불가능하다.




나의 생각

책을 사겠다는 것은 지적생활을 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지 알기 위해선 우리가 쓰는 '시간, 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양반만 공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농사를 짓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책을 사는데 쓰고,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가? 

나는 매달 10만원씩 책을 사는데 쓰기로 결심했었고, 책을 처음 살 때는 좋은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을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점점 사기 시작하면서 '좋지 않은 책'을 구분하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다른 사람에게 책을 추천할 정도로 분별력이 키워졌다. 장담하건데, 충분한 시간과 돈이 부여되지 못하면 책을 보는 눈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일단 책을 사라"








- 기계적인 글쓰기가 걸작을 낳는다.

수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엔서니 트롤럽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대표작인 '바셋주 이야기'를 비롯하여 56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전업작가가 아니었던 그가 이처럼 많은 작푸을 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체국 공무원이었던 그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처럼 짧은 글이라면 몰라도 장편소설은 절대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 틈틈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패작뿐이었지만 그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했다. 그러다 40세에 히트작을 냈고, 그것을 시작으로 67세에 타계할 때까지 끊임없이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그는 평생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집필활동을 했다. 그가 만년에 남긴 자서전에 따르면,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2시간 반 동안 소설을 썼다고 한다.그는 한때 우편감독관으로 여러 지방을 돌아다녔는데, 호텔이나 차 안에서도 아침 2시간 반 동안은 반드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미국에서 그의 소설이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작품은 베스트셀러에 올라섰고, 다른 작품들까지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독자들은 그의 소설이 전혀 싫증나지 않는다고 호평했다.



- 재능을 키우는 다작의 힘

나쓰메 소세끼 역시 대표작인 '명암'을 기계적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나는 '명암'을 아침마다 고통스러움을 느끼면서 기계적으로 썼습니다."

소세끼가 젊었을 때는 책 한권을 단숨에 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매일 저녁식사가 끝난 후부터 쓰기 시작해 다음날 오전 12시까지 기계적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이 기계적으로 쓰여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영감이 솟아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말을 시작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감은 일에 몰두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일이라는 것은 하다 보면 최초에 구상했던 것과 달라지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느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지 말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일해야 한다.




- 기계적으로 일하는 습관

수십 권의 저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후자와 같은 사람들이 지적생산에 대한 열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하는 기술'을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윌리엄 쇼콜리는 논문의 수가 학자의 지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통계적으로 논문의 수가 많을수록 논문의 질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작가가 글을 쓸 때처럼 지적생산은 고독한 시간과의 동행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학자나 예술가들의 고독한 시간에 대한 예찬을 끝이 없다. 언젠가 한 시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그 시대에 살게 되는 것이지만,
고독한 시간을 가질 때는 모든 시대에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생 산속에 묻혀 혼자 지내려고 작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고독에만 빠져 살 수는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생각을 나누는 지적교류가 필요하다.


나의 생각

나는 한 때 '영감'과 '직관'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신의 은총' 처럼 나에게 내려와서 나는 그게 맞춰서 신에 들린 듯 글을 쓰는.. 그런 상상을 자주 한 적이 있다. 이제 나는 그런 걸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나에게 주어질 수는 있겠지만, 나는 이제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는다.

미국 전설의 감독, 존 우든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성공은 마음의 평화이며, 마음의 평화는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존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아는데서 느껴지는 자족감이다."

나는 글을 쓸때, 책을 읽을 때, 사람들과 나눌 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나 자신을 감동시키고 있는가?
그 상태가 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과 실패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나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감'이나 '직관'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닐까?

지적 생활의 발견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잘 아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눌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그들을 위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러한 콘텐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사람들을 깨울 수 있도록 공부하고 기여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지적생활은 이런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당신이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일단 책을 사라"



누구나글을잘쓸수있다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지은이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 (예담,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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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나 꿈꿀 수 있다.

- 몽상가는 꿈을 꾸고, 작가는 글을 쓴다. 시편들, 소설들, 온갖 책들은 모두 아이디어와 상상력과 꿈의 결실이다.
그런데 그 결실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행동 '글쓰기'이다. 에오라지 당신만이 말할 수 있는 무수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말하라!

- 여러분이 글을 쓰고 싶다면, 종이와 펜 혹은 컴퓨터, 그리고 약간의 배짱만 있으면 된다.
작가가 되기 위해 별도의 인생 경험을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글쓰기 경험은 종이에 낱말을 늘어놓으며 글과 씨름을 하다 보면 저절로 생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솔직히 털어놓으며, 꾸준히 시간을 바치다 보면 어느새 여러분은 작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
초등학교 3학년 미술 시간에, 우리는 마침내 템페라 그림물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뭐든 좋아하는 걸 그리세요."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나는 다채로운 물감 색깔을 바라보며 신이 났다. 나는 모든 물감을 써보고 싶었다. 종이에 먼저 빨강을 쓱쓱 발랐다. 주황색을 칙칙 뿌리고, 자줏빛을 몇 방을 떨궜다. 우와! 노란색이 자르르 번지며 몽롱한 갈색 선이 드러났다. 마법이다! 나는 변화무쌍한 빛깔에 홀려서 창작에 몰두하느라고 선생님의 말소리를 듣지 못했다. 선생님이 나에게 바투 다가와서 거듭 물었다.
"뭘 그린 거니?"
나는 한참 생각해 봤지만, 그게 뭘 그린 것이어야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꽃밭일까요?"
나는 자신이 없어서 주눅이 든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내 손에 들린 붓을 와락 채 가더니, 휙휙 씻은 후 초록 물감통 속에 푹 찔러 넣었다. 그리고 내 그림 종이에 좌악좍 선을 그어댔다. 앗, 내 그림!
"넌 바로 이렇게 하고 싶었던 거야" 그러더니 선생님은 나처럼 속샘이 빤한 다음 학생을 '도우러' 갔다.

나는 속이 메슥거렸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뭔지를 보여준다면서 선생님이 망쳐놓은 내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 생각, 내 기쁨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나는 그림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선생님 말씀이 틀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무적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미 마법은 사라진 뒤였다.


- 글쓰기 제 1법칙
: 글쓰기는 행동이다. 생각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머리가 아닌 종이에 낱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최초에 한 문장을 쓰고, 또 한 문장을 보태는 것, 이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무엇보다 먼저 약간의 배짱이 필요하다)

-앨빈 토플러가 쓴 '제 3의 물결'을 보면, 공교육은 산업혁명의 산물이라고 한다. 착실하게 준비된 공장 노동자를 대량 배출하기 위한 것이 바로 공교육이라는 것이다. 창조성은 억압되기만 한 게 아니라 처벌되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공식 교육이 모두 끝나자 마침내 마음이 푹 놓였다면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 오늘날의 교수법이 미지에 대한 신성한 호기심을 아직도 완전히 말살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상 기적에 가깝다. 그 섬세한 어린 식물(호기심)은 격려 외에도 자유를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자유가 없으면 호기심은 좌초해서, 침몰하게 마련이다. 관찰하고 탐구하는 즐거움이 강제와 의무감으로 증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 창조적인 사람들은 나이를 떠나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여러 가지 가정에 도전한다. 직관적으로 패턴을 인식하며, 대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모든 것의 관계를 파악해서 그것들을 그물처럼 연결시키려고 한다. 우연한 기회를 포착하려고 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버리는 게 없다. 실수도 폐기 처분되지 않고 해결책의 일부로 재활용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창조적인 사람은 위험을 무릅쓴다는 것!

-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야말로 창조적 과정의 최대 걸림돌이다. 작가가 맞닥끄리는 한계의 90퍼센트는 자기 노출의 두려움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모든 글쓰기가 자기 노출의 한 형태라는 것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고개를 내밀고 틈만 노리고 있다가, 기꺼이 바보가 되어 자신을 송두리째 까발려야 한다"

- "글을 쓴다는 것은 송두리째 준다는 것을 뜻한다. 주기를 망설이며 글을 쓰는 것을 불가능하다. 가장 훌륭한 작가는 모든 것을 내주는 작가이다."

- 2년이 지나기 전에 나는 짤막한 글 몇 편을 완성해서 지방 신문사에 팔았다. 신문에 내 글이 실린 이후부터는 더욱 많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노동이었지만, 나는 차츰 글쓰기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자기 발견을 가능케 하는 행위였다.

- "글을 쓰려고 씨름을 하며 나는 다음과 같은 명백한 사실을 깨닫곤 했다. 즉, 글을 써서 작가가 되는 확실하고도 유일한 길은 무조건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지는 않고 꿈만 꾸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말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무조건 써야 한다. 글쓰기가 여느 노동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에 나는 가슴이 철렁하곤 했다." - 재닛 프레임

 




2.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 "잠재 가능성을 펼치는 최고의 방법은 놀이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인내하라! 그 모든 놀이가 훗날 당신의 많은 문제를 극복하는 힘이 될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원하기도 전에 데려다줄 것이다." / 게르하르트 골비처

-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이러한 정의는 내가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책상에 앉아서 꾸준히 글을 쓰는 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

- "우리가 작업에 몰두할 수 있으려면 생활이 규칙적이어야 한다."

- 나는 첫 강의를 할 때 이렇게 말한다. 책을 펴내는 것만이 글쓰기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라고. 자기를 위해, 혹은 자녀를 위해 글을 쓰는 것도 무한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삶을 고양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도피 글쓰기의 핵심은 오로지 재미이다. 수사법도, 문학성도 필요 없고, 발표에 한눈 팔지 말고, 남에게 보여주곘다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조리 있게 글을 쓸 필요도 없다. 허무맹랑해도 무방하다. 혹시 남에게 보여주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완전히 탈고를 하기 전에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 게 좋다. 이것은 오직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한 글쓰기, 개인적 가치를 위한 글쓰기는 습작을 할 때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계속 경력을 쌓아갈 때에도 필요하다. 그런 글쓰기는 모든 글쓰기의 든든한 버팀목인 것이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행위를 하고 있다면 당신은 자기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잠시 쉬면서 그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당신이 또다른 존재로 탈바꿈을 한다 해도, 당신은 도무지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 조지 쉬한

- 창조성을 억누르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검열이다. 컴퓨터 혁명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글을 쓰다가 멈춰서 뒤로 돌아가 곧바로 실수를 바로잡는 게 너무 쉬워졌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주춤거리면 창조의 흐름이 툭툭 끊기게 된다.

"글쓰기를 죽이는 것이 바로 읽기이다. 읽기는 곧 글쓰기의 죽음이다. 이미 쓴 글을 되돌아가서 읽어봄으로써 더 잘 쓸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거듭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글을 고쳐 쓰기 위해 매번 주춤거리게 된다. 무엇을 말하고자 했든 간에, 더듬거리며 불완전하게라도 일단은 끝까지 글을 쓸 필요가 있다." - 섀너 앨릭잰더

- 일단 검열관을 안전하게 가둬두면, 여러분 내면의 창조적 부분 곧 신명난 아이가 뛰어놀기 시작할 것이다.
"창조적인 정신은 논리 정연하지 않다"

- 글쓰기 제 2법칙
열성적으로 쓰라. 차분한 사람이라도 좋아하는 일은 열정적으로 추구하게 마련이다.
열정에는 창조성이 뒤따른다.

- 나는 책상머리에 일과표를 붙여두고, 글 쓰는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 급한 볼일이 생기면 어쩔 수 없지만, 다시 창작의 흐름을 회복하려면 여분의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글쓰기 중독에 걸리길 바란다. 나는 하루라도 고요히 책상 앞에 앉지 않으면 금단 현상이 일어난다. 아이디어가 점화되고, 언어가 넘쳐흐르고, 원고가 수북히 쌓이면 이것은 곧 성취감과 직결된다.

- 그 어느 것도 버릴 게 없다. 모든 것이 가치가 있다. 그 모든 것이 타인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내 경험에 공감하며 맞장구를 친다. 나와는 성장 배경이 다르거나 반대인 사람들은 내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 이 책을 읽을 만큼 나이가 든 여러분은 이미 글쓰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는 온갖 경험을 해왔다. 나이 마흔을 넘어선 사람은 쓰고 또 쓰고 또 아무리 글을 써고 다 쓸 수가 없을 만큼 흥미로운 온갖 경험을 한 사람이다.

- 연습 글을 쓸때 지켜야 할 규칙은 두 가지밖에 없다
1. 멈추지 않고 꾸준히 쓴다. 2. 생각하지 않고 쓴다.
(생각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머리가 아닌 종이에 낱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 글을 써서 책으로 펴내겠다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한 최고의 길이 바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기는 글쓰기를 통해 삶을 탐구하는 최고의 도구 가운데 하나이다.

- 글쓰기 제 3법칙
정직하게 쓰라. 알몸을 드러내라. 독창적인 것에는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느낀 점:
우리 모두 다 함께 글을 쓰자!


'의지와 환경'

사람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 존재다. 음.. 그냥 '많이'라는 단어로는 묘사가 안 된다. '무지하게'가 좋겠다
사람은 환경에 무지하게 영향을 받는 존재다.

복잡계라는 학문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서로 많은 사람, 공간, 사물과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고, 이는 아주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밈이나, 거울세포 등 여러가지 학문적 측면에서 실제로 연구되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모습을 배우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성(본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상당히 '오만한' 생각이다.
나와 주위의 환경을 무시하는 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나만이 존재하고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면 그 말은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 나와 연결된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이상, 그 말은 그저그런 말로 그치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까?

사실, '자신의 의지'는 하나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우물에 아무리 많은 물이 있다고 한들, 최초의 마중물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듯, 최초의 나의 의지가 그 마중물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처음에 마중물을 붓고 나서는? 그 다음부터는 그 일이 '저절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우물의 물이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나올 수 있도록 나의 환경과 사람들을 SETTING 해야 한다.




공부가 잘 안 된다? 먼저 최초의 의지가 필요하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바꾸겠다는 최초의 의지!
우선, 컴퓨터와 tv를 지금 아파트 밖으로 던지면 된다. 그리고 내 방에 공부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버린다. (공간)
그리고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을 무조건 9시간을 맞춘다.(예를 들면)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 (시간)
그리고나서 주위 친구들 중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를 가까이 하고, 그 친구들과 그냥 어울려 논다. (사람)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서 공부가 늘지 않았다면 당신은 책을 낼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공부에 무조건 실패한다'
왠지 대박할 것 같지 않은가?

좋은 습관은 배우기 어렵지만 삶에 도움이 되고, 나쁜 습관은 배우기 쉽지만 삶에 방해가 된다.
그리고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둘 다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편해진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왜 쓰고 있는가?
내가 스스로 환경을 셋팅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글을 하루에 일주일에 4-5회 쓰기로 했는데 7월에 접어들면서 어김없이 어겨지고 있는 나를 보면서 저절로 이런 글이 나오고 있다. ㅎㅎㅎ
그래 좋다 다시 한번 나의 마중물을 넣어보자. 우물이 제대로 작동될 때까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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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달인호모쿵푸스인문학인생역전프로젝트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고미숙 (그린비, 2007년)
상세보기

이 책의 주제는 맨 앞에 나와있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많은 이들이 지금의 시대를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데, 저자는 이 책을 이끌어나가는 내내 '공부의 달인, 즉 호모 쿵푸스' 만이 이 인문학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호모 쿵푸스'란 무엇인가?
공부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공부의 달인'을 말한다.
마치 쿵푸를 하듯 앎에 대한 열정으로 몸을 단련하고 일상을 바꿔 나가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이것이 그의 존재론이며,
"공부해서 남 주자", 이것이 그의 실천론이다.

자, 이쯤이면 호모 쿵푸스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나에게 울림이 되었던 말을 (편집을 조금 가해서) 옮겨 놓았다. 함께 공부의 달인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



- 학교'코뮌'의 차이

근대 사회에서 학교란 스승이 있고 학문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어떤 제도나 시스템에서만 작동한다. 고로 학교를 들어간다는 건 그 제도적 장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선생을 만나 어떤 학문을 터득하겠다는 발상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학교의 위상, 그 학과의 사회 진출 비율, 그게 선택의 유일한 척도일 뿐이다. 그렇게 때문에 학벌이 높아질수록 공부와 삶 사이의 소외와 간극은 더욱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근대 이전, 학인들은 스승을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그 시절엔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떤 스승의 문하에 들어간다는 걸 의미했다. 다시 말해, 그 스승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는 발심이 공부의 출발이자 원동력이었던 셈. 그런 점에서 근대 이전, 배움터란 기본적으로 '코뮌'이었다.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코뮌'. 코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스승을 만난다는 건 바로 그 코뮌에 접속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왜 그토록 스승을 찾아 헤매었던가? 스승을 만나야만, 그 '코뮌'에 접속해야만, 지리멸렬하던 공부가 단번에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생역전'이 가능한 것.

스승이란 무엇인가? 길을 안내해주는 자이다. 그리고 도반이란 그 길을 함께 가는 벗들이다. 뭔가를 배운다는 건 어떤 경지에 오른 스승을 만나는 것이자 의기투합하는 벗을 모으는 일이었다. 초학자뿐 아니라 일정한 경지에 오른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면 스승과 친구, 제자 사시의 경계를 서로 넘나들게 된다. 그리하여 스승이면서 친구이고 제자이면서 동시에 평생의 지기가 되는 '코뮌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스승과 도반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은 연령대별로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학습을 하는' 학교제도와는 얼마나 다른 것인지. 그토록 오랬동안 학교를 다녀도 평생을 좌우할 사제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대학원생들에게 공부는 참고 견뎌야 하는 지겨운 노동이고, 학과는 스트레스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사제관계도, 우정의 연대도 없는 곳, 거기에서 즐거운 지식의 생성은 결단코 불가능하다!!

- 공부는 네트워킹!

나는 '인문학의 위기'를 유포하는 교수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과연 교수들이 대학 안에서 능동적인 학습망을 조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가장 먼저, 학생들과 함께 세미나를 시작하면 된다. 소규모일지라도 사제 간에 '즐거운 공부'의 장을 만들어가고, 그게 사방으로 퍼져 나가 집합적 관계망을 만들면 그게 곧 '앎의 코뮌'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적 열정뿐 아니라, 학생들과의 벽을 허물기 위한 일상적 노력도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식은 세미나 때마다 소박한 파티를 여는 것이다. 세미나를 지식의 향연이자 음식의 향연이 되게 하는 것.

사제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면, 새로운 공부를 시도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동료들을 불러 모아 살아 움직이는 학습망을 조직하라. 최근 뇌과학의 성과에 따르면, 뇌의 존재 이유는 '네트워킹'하는 데 있다고 한다. 네트워킹을 하지 못하면 신경망이 점차 끊어져 결국 치매나 죽음에 이른다는 것,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스승과 벗을 찾아가는 네트워킹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곧 공부다.

- 글쓰기운명


생각의 지도를 변경하고 삶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 글, 그것이 내가 꿈꾸는 글쓰기의 지평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참으로 놀랍게도 문체는 그 사람과 닮아 있다. 아니 문체는 얼굴이요 몸이다. 문체는 말투와 동선, 삶의 패턴과 나란히 간다. 신기할 정도로.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자신의 문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거울보다 더 투명하게 자신을 비춰줄 것이다. 실제로 고전의 시대엔 그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문장에 흐르는 기세나 빛깔만 보고도 장차 어떤 인물이 될지, 어떤 일을 저지를지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운명의 궤적을 변경하고 싶다면, 문체를 바꾸면 된다.

그런데 몸이든, 문체든 혼자 힘으론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변이시켜줄 연기조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밑천이 없을 때, 집단 속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약속과 시간을 지킨다. 눈과 귀를 열어둔다. 즐겁게 공부한다. 배운 만큼 실천한다 등등. 또 상호 신뢰가 두텁다 해도 가혹한 비판을 견뎌내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해준 건 체력과 끈기, 오기와 집요함이었다. 길 위에 있는 한, 나는 수 많은 스승과 친구들을 만날 것이고, 그들은 또 나를 아주 낯설고 경이로운 곳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글쓰기가 신체를 단련시켜주고, 나아가 운명까지 바꿔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사랑, 이보다 훌륭한 텍스트는 없다.


니체는 말했다. '인간은 행복조차도 배워야 하는 존재'라고, 좀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맞는 말이다. 특히 현대인들은 행복이 뭔지도 잘 모른다. 그저 이유도, 목적도 없이 돈!돈!돈!을 외치며 살아갈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삶의 낙이라곤 연애밖에 없는 듯하다.

중략..    지금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치명적인 양상을 띠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문제적인 건 서로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사랑으로 착각하는 경향이다. 예컨데 '주역'의 패러다임에 따르면, 부모 자식 간에도 적당한 상생상극이 필요하다. '나무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거나 떠버리는 것처럼, 자애롭기만 한 어머니는 결국 자식을 죽이게' 된다. '나무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가지를 쳐주듯이 아이에게도 적당한 극을 줘야'한다. '극을 받지 않은 사람의 생명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므로 이성 간이건 가족 간이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

- 감염촉발

계몽이 아니라 촉발, 훈계가 아니라 감염, 이것이 동서고금의 위대한 스승들이 취한 최고의 교육법이다. 계몽의 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잘 배울 줄 모른다. 그런 이들은 특별한 권위를 가진 사람한테서만 배울 수 있다고 간주하고, 또 자신도 그런 선생이 되고자 한다. 해서, 남보다 많이 알면 금방 교만에 빠지고, 그렇지 않으면 곧 열등감에 젖어든다. 그래서 남보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감추려 든다. 수치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높은 학벌을 취하게 되면, 그 지식은 반드시 특권으로 작용한다. 더 결정적으로 어떤 단계에 이르면 이들은 더이상 배움의 열정을 펼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몽의 구조는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다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스스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자기 안의 기쁨 또한 더이상 자라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런 구조적 양태가 싫다면, 먼저 교수들이 열정적으로 배우면 된다. 아니,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따지고 보면 본래 교사란 그런 직업이다. 자신이 평생 뭔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평생 공부의 즐거움을 누려야 마땅하다. 자신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억압이고 명령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부모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정말 공부를 통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부모도 자식과 함께 공부를 해야 한다. 오직 학벌을 위해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게 되면, 그 지식은 결코 자식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부모가 공부를 좋아하면, 자식들은 그걸 닮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열정이 자식에게 전달되기만 하면, 언젠가는 스스로 공부의 길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1. Sitemap 2011.08.17 14:00

    수고하세요~^^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애니어그램 5번이다.
가장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 효율에 목숨을 거는 사람, 가장 이기적인 사람, 가장 탐욕스러운 사람,
중학교 때 가장 먼저 산 책이 공부법이었던 사람, 하지만 그 누구보다 시간의 관리를 게을리한사람..ㅎㅎ

어찌보면 나는 시간 관리를 고의적으로 안 했던 걸 수도 있다. 왜냐면 시간 관리를 하는 것은 왠지 세속적으로 보이고 째째해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인 것처럼,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들 또한 째째하게 보인 것이다.
그리고 또 시간을 관리할 이유가 없던 것도 컸다. 시간을 줄여서 하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나는 시간을 관리하고 싶다. 정말로.. 내 습관을 바꾸고 싶다.
나에게 있어, 시간의 관리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관심의 관리는 이제 거의 다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텔레비전도, 술이나 담배를 좋아하는 습관도 없다. 아직 인터넷이 있긴 하지만..이것도 줄이고 있다.
나의 생활에서 이제 더 이상 뺄 것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좀 더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통해 나는 더 효율성 있는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래..정말 어쩌면 내가 시간관리를 싫어한 것이, 내가 그것을 너무 원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시간 관리를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그렇게 잘 못하고 있으니까 시간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 그냥 싫었던 거다. 어린 시절의 나는..

헌데 효율성있는 삶을 왜 살고 싶은가?
효율성 없는 삶을 살았으니, 효율성 있는 삶도 살아보고 싶다는 것?
그리고 나를 바꾸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는 것!

자,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하느냐?
시간의 관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시간을 측정하자.
그것이 무엇이든, 시작하는 순간부터 시간을 재자. "몇 분만 이것을 한다." 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나에게, 나의 무의식에게 명령을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멈추고 휴식을 한다. 내가 원하는 양을 명시하고 시간을 명시한다.
그리고 하루 10분씩 이렇게 몰입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10분만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한다.

10분씩 매일 하는 것 4가지
글쓰기  (자기 전에)
운동하기 (아침 눈 떠서)
명상하기 (아침 아니면 자기 전에)
심호흡하기 (일과 중에 10분)


이렇게 40분은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딱 10분만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도달한다. .^^
.
.
.
.
.
자..나는 어디까지 가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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