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에버 노트엔 묵은지처럼 오래된 글이 꽤 있다. 

분명 책을 읽을 땐 신나게 옮겨 적었지만, 아무 곳에서도 활용되지 못한 글들. 이들은 분명히 나에게 들어와 감화를 일으켰음 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감동을 주기엔 실패했다. 그리고 내 게으름을 분명하게 직시하게 해 주는 내 소중한 거울이다. 오랜만에 그 중 하나를 들춰보았다. 

오늘 다룰 책은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란 긴 제목의 책이다. 무려 1년 반 전에 읽은 책이고, 저자는 권용선 작가다. 아주 유명한 책은 아닐지 모르지만, 지금도 당시에 읽었을 때의 흥분과 감동이 남아있다. 적어도 나에겐 의미있는 책이 분명한데, 무엇보다 벤야민이란 사람을 만나게 해준 것이 가장 감사하다. 이 책을 대략 5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발터 벤야민’은 이동하는 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벤야민이 위대한 것은 그가 남긴 위대한 ‘업적’이 아니다. 그의 존재 방식, 끊임없이 ‘이동하는 노마드’로서 존재했던 균형 감각, 거기에 그의 위대함이 있다. 그는 그 무엇도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방황한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든 되고자 했기 떄문에 자신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움직여 다녔다.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 닮고 싶은 것도 거기에 있다. 나 역시 하나의 정체성으로 갇히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그것을 상상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싶다. 방향성은 있지만, 예상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으면 한다. 그것을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인, ‘노마드’라고 부른다. 

"그가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그가 그 무엇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들에 대한 빛나는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도 되지 않았던 그의 선택, 혹은 탁월한 위치 감각에 있다. 그는 어느 하나의 장소 혹은 위치를 점유함으로써 영향력 있는 지식의 권력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끊임없이 위치를 이동하고 시선의 위치를 바꾸며 글쓰기의 패턴을 교정하면서 매번 다른 것들을 만들어 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분류 불가능한 것들의 존재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P. 20

"앞서 말했듯이 그는 그 무엇도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방황했던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든 되고자 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움직여 다녔다. 그에게서는 자신의 고유한 영토를 만들고 그곳에 안주하는 정착민의 특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성격은 오히려 척박한 불모의 땅을 찾아다니며 쓸 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졌던 유목민의 것에 가깝다. 유목민은 벤야민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파괴적 성격’을 지닌 자이다." P. 26


2. 벤야민의 비평이란, ‘그들이 되어보는 것’이다.
그의 비평은 일반적인 개념과 다르다. 그는 ‘철저하게 그들이 되어보는 것’을 비평이라 여긴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나’라고 하는 자의식적 관념으로부터 거리를 둬야 한다. 앞서 말했듯, 그것은 발터 벤야민에게 있어서 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하나의 관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동하는 ‘노마드’의 것. 그 독특한 정체성이 비평의 방식까지 바꿔놓았다. 그의 어떤 경험이 그러한 철학을 낳게 했을까. 더욱 궁금해진다. 

"벤야민이 되고자 했던 ‘비평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성격의 비평가들처럼 작품을 해설하고 평가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있다. 벤야민은 비평적 대상으로 삼았던 예술가 혹은 연구자들을 통해 무엇인가 그들 안에 있는 고유한 가치를 발견했고, 그것을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때로는 개념의 형태로, 또 때로는 방법적 틀로 전유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실험을 통해 그는 새로운 글쓰기를 발명했고, 자기 당대에는 없는 새로운 직업을 창안하고자 했던 것이다. ... 그는 대중적인 동의나 학문적 권위를 획득하는 일에 일관되게 무심했고, 비평가라는 제도적 칭호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다. 그가 의도했던 것은 오히려 ‘비평’이라는 개념을 그 자신이 철처히 실천하는 데 있었을 뿐이다. 

... 그의 비평 작업은 자신 안에 있던 카프카와 프루스트와 보들레드를 발견하는 것, 철저하게 그들이 되어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수천 수만의 작가들, 작품들, 언어들을 발견하고 해석하고 평가하고 위치시킴으로써 자신을 객관화한다. ... 때문에 그에게 있어 1인칭의 표상 형식은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된다. 1인칭 형식으로부터 스스로를 탈각시켰다는 것은 그 자신이 주체의 자의식적 관념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P.36-39


3. 중요한 것은,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것. 
과거에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기’ 벤야민은 그것을 거의 완벽하게 해낸다. "문학적 몽타주. 말로 할 건 하나도 없다. 그저 보여 줄 뿐. 가치 있는 것만 발취하거나 재기발랄한 표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같은 일은 일절 하지 않는다. 누더기와 쓰레기를 목록별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으로 그것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도록 해줄 생각이다. 즉 그것들을 재인용하는 것이다.” 파편들을 새롭게 연결함으로써, 매번 하나의 별자리를 만들어내는 것. 마셜 맥루한이 말한 '미디어가 곧 메시지'란 사실을 벤야민은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했다. 

"벤야민은 개념적인 언어로 사물들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의 ‘이미지’를 보여 줌으로써 이념적 층위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것을 위해 ‘인용부호 없는 인용술’이 동원된다. 벤야민은 그것을 ‘문학적 몽타주’라고 불렀다. 

벤야민의 문학적 몽타주는 언어로 만들어진 문장들이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공간에 재배열 되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로 구성된다. 이때 각각의 파편들은 자기의 고유성을 유지한 채로 새로운 장소에서 이웃한 것들과 관계 맺음으로써 전혀 다른 효과를 생산한다. 각각의 파편들이 하나의 별처럼 자기를 드러내고, 그들 사이에 관계의 선분이 그어질 때마다 매번 하나의 별자리가 만들어지도록 문장들을 배열하는 것, 이것이 벤야민이 시도했던 문학적 몽타주 혹은 문학적 스테인드글라스의 조성법이다.” P.83

4. 참을 수 없는 세계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다.
'변화’는 언제 시작될까? ‘지금 이 모습’을 참을 수 없을 때 시작된다. 다시 말해, ‘불만’을 가지지 않는 자는 변화할 수도 없다. ‘항구적인 일상적 진부함의 상태’를 살아가는 것은 그래서 재앙이다. 고민할 것도, 더 나아질 것도, 생각할 것도 없는 안전한 삶. 그것이야 말로 가장 불안한 삶이 아닐까. 벤야민은 이를 ‘판타스마고리아’의 세계라 부른다. 그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니체의 언어로 표현하면 ‘말세인의 삶!’ 

"참을 수 없는 세계란 어떤 것인가. 불편과 부당, 폭력이 만연하는 세계? 혹은 차별과 빈곤과 착취로 얼룩진 세계? 물론 이런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가리는 세련된 판타스마고리아의 세계에서 배짱 좋게 잠자는 일이 아닐까. 참을 수 없는 세계란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강박적 추구에도 불구하고, ‘권태와 무위’ 속에서 ‘항구적인 일상적 진부함의 상태’를 살아가게 하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이런 세계는 사유의 불가능성을 조장한다. 반복되는 삶의 패턴들 속에서 사유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조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아무것도 사유할 수 없는 상태를 사유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거, 그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출구는 그때 만들어진다.” P.167
 

5. 노동자는 어떻게 ‘소비자’로서 훈련받는가?  
자본주의은 노동자와 결과물을 분리시키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다시 구매하는 소비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하다.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모두 ‘생산자’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소비하고, 소비하기 위해 노동하는 자는 결코 ‘집단의 잠'에서 깨어날 수 없다. 앞서 말했던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 사는 이들은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없다. 그들은 멈춰있는 자들이며, 고정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벤야민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를 자기화하는 ‘허의의식’을 갖는 것, 그리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업, 자기 노동이 노동자 자신을 소외시키는 현실 속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자기소외는 필연적이다. 부르주아 세계는 프롤레타리아에게 허의의식을 심어 줌으로써 노동을 자본의 도구로 만들고, 노동의 결과물인 상품으로부터 노동자를 소외시키며,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다시 구매하는 소비자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착취를 전면화한다. ... 부르주아 계급의 심리적 토대는 그의 전 시간을 자본가로서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고 감독하고 생산물을 판매하는 데 바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이 고도화되었을 때 만들어진다. 곧, 부르주아의 계급적 정체성은 그가 지닌 재화(화폐)를 소비할 때가 아니라, 자본가로서 잉여적인 것을 생산하고 축적할 때 만들어진다는 점을 그는 맑스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벤야민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생산하는 자로서 ‘노동자’가 어떻게 ‘소비자’로서 훈련받게 되는지이며,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오랜만에 보는 글이라 두서가 없다. 당시에 인상깊은 글을 남겼기에, 다시 쓰려니 말문이 막힌다. 역시, 바로 바로 쓰는 것이 최고다. 그 순간 느낀 생생한 깨달음은 쉬이 날아가는 법이다. 어쨌든 앞서 나의 글을 돌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지향하는 바를 3가지 정도만 정리하고자 한다. 

첫 번째 : 멈춰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것
-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정체성을 고집하는 것도, 지금 상태에 머무는 것도 모두 여기에 해당이 된다. 이를 위해선 역설적이게도, 지금 내가 누구인지,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지 집요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움직이려면 지금의 내가 멈춰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기에. 변화는 지금 이 모습을 참을 수 없을 때 일어나기에. 
 
두 번째 : 말하기 보단, 보여주는 것. 
- 소설가 김훈은 이렇게 말한다. '개념어는 사어다’라고. 개념으로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어리석다. 나도 예전엔 그것을 몰았지만, 지금은 절감한다. 그리고 절망한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관찰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인지 잘 알기에.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다시 태어나도 제대로 못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차근차근 노력하는 수 밖에. 

세 번째 : 소비하기 보단, 생산하는 것. 
- 근대는 사회가 ‘생산자’를 '소비자’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대부분은 그것에 쉽게 길들여졌지만, 몇몇 지식인들은 예민하게 반응했고, 그 본질을 꿰뚫어보았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더욱 강건해졌다. 이제 사람은 너무나 쉽게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일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직장인들은 주말이면 쇼핑몰을 돌아다니고, 주중엔 온라인 쇼핑을 하며 ‘소비’를 통해 ‘자신’을 만들었다. 벤야민은 이를 두려워한 사람이다. 나 역시 이것이 두렵다. ‘내 이름을 거는 것'은 그래서 무섭지만, 중요하다. 살이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불만족한 상태를,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자기만의 균형 감각을, 결국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것을 위해 벤야민은 싸웠다. 나도 그렇게 싸우고 싶다.



지난 5-6월 리뷰에 이어서 이번에는 올해 7-8월에 읽은 책 리뷰다. 리뷰를 쓰면서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그건 바로 책 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때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는 점이다. 올해 여름은 참 힘들었고, 뜨거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추운 한 겨울에 리뷰를 쓰고 있다.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이 읽은 책에는 그 책을 읽은 밤의 달빛이 섞여 있다." 그래, 책을 읽는다는 건 그런거다.  

7월 
철학을 권하다_줄스 에반스
깊은 인생_구본형
메논_플라톤
성격의 재발견_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퀴즈쇼_김영하

8월 
철학의 위안_알랭 드 보통
함석헌 평전_김성수 
옥수수와 나_김영하
친밀함_매튜 켈리
생산적 책읽기 50_안상헌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_권용선




2015년 7월 
38. 철학을 권하다_줄스 에반스
올해 7월의 책은 바로, <철학을 권하다>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책과 느낌이 비슷하다. 실제로 줄스 에반스도 함께 인생학교를 만든 사람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철학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삶을 사랑하는 기술’ 이기에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다. 사실, 나도 조금만 더 내공이 쌓이면 로컬 ‘인생학교’ 버전의 심마니스쿨을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이 책에는 참고로 내가 재미있게 들었던 프로그램인 ‘랜드마크 포럼’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더 흥미로웠는데, 저자의 생각에 아주 동의하진 않지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순 있을거라 본다. 8월에 읽은 <철학의 위안>과 그 궤를 함께하는 책으로, 두 권 모두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비슷하면서 다른, 그런 책이다. 



참고로,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나요?'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땅, 부, 명성, 철학은 이 셋 중 그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이를 뒤집어보자. 철학은 이 셋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약속한다. 다시 말하면, 철학은 삶의 소유물이 아닌, 삶 그 자체를 자각하게 한다. 철학자들은 '진짜 문제'와 '가짜 문제'를 구별하는 사람들이며, 진짜 철학자들일 수록 그 분별력의 수준이 높다. 그 힘을 갖고 싶다면, 삶의 본질에 닿아 살아가고 싶다면 당신도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도, 줄스 에반스처럼, 당신께 '철학을 권한다'. 


39. 깊은 인생_구본형
내가 존경하는 구본형 선생님의 책이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나는 선생님께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간접적으론 이렇게 책이나 글로.. 직접적으론 선생님의 제자분들을 만나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분, 그리고 그 삶의 향기에 많은 이들을 도취시키신 분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이 책은 아주 얇다. 하지만 이야기의 깊이는 그리 얇지 않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를 원하는, 탁월함을 꿈꾸는 모든 분들께 권하고 싶은 한 권의 동화책이다. 아랫 부분은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들이다. 한번 읽어보라. 
 
"내가 사하라 사막을 여행할 때였다. 천지가 모래였다. 그때 거대한 케러벤들이 수백 마리의 낙타 떼 위에 짐을 실고 가는 것을 보았다. 참으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일시에 내 여행의 모든 목적이 충족되는 듯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자 수십 마리 혹은 수백 마리가 10여 킬로나 길게 이어져 나타나는 낙타 떼와 캐러밴은 더 이상 볼거리가 되지 못했다. 경이로움은 평범함으로 바뀌었다. 시시해졌다. 그때 사막의 아름다운 모래 굴곡 사이로 황금빛 사자 한 마리가 보였다. 사자는 조용히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한 마리로 족했다. 나는 지칠 줄 모르고 그 사자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아름다운 석양이 찾아왔고, 그 사자는 꼬리를 가볍게 칠렁이며 지는 해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우린 언제 황금빛 사자가 되는가? 우리의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위대함의 씨앗은 어느 때 발아하게 되는가? 언제 우리는 그 시점을 계기로 과거의 그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가?"

"나는 간디나 체 게바라처럼 크고 빛나는 별은 아니다. 나는 작은 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빛나야 할 운명을 가진 별’이다. 사람은 모두 별이다. 자신의 내면에 커다란 빛을 품고 있으면서도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장막으로 빛이 가려진 별들. 이 평범한 별들을 찾아 자신의 이야기를 창조해냄으로써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움별, 그 별이 바로 나임에 틀림없다."

"방황을 할 때는 당장 그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되,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묻지 말아야 한다. 미리 생각해둔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다음 세 가지는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하나는 굶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하는 것이다."


40. 메논_플라톤
사실 관심이 가는 책이었다기 보단, 손에 잡혀서 읽은 것이 맞다.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 지금 쓰는 언어가 아닌지라 이해 하긴 어려웠지만, 소크라테스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진실인가?”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되묻는다. 이 질문에서 빠져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도, 당신도, 모두 그렇다. 


41. 성격의 재발견_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이 책의 미덕은 ‘방대한 조사’와 ‘원리에 대한 설명’이다. 지난 달,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이 다소 ‘읽기 쉽게’ 쓰기 위해서 몇몇 소중한 맥락을 생략한 책이라면 이 책은 ‘읽기는 다소 어렵지만’ 앞서 빼먹은 맥락을 지혜롭게 잘 배치하고 있다. 게다가 엄청난 조사에 근거했기 때문에 직업과의 연관성이나, 전공과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나의 성격유형과 지금 내가 일하는 방식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도 신기했다. 만약, 내가 원래 전공대로 엔지니어링으로 갔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의 강점이나 성격유형은 전혀 살릴 기회가 없었을까? 아님 그 안에서 나름의 살 길을 찾아서 지금처럼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이 책은 리뷰가 있다. 링크는 여기 


42. 퀴즈쇼_김영하
이 책을 읽었을 때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는 한 여름, 나에게 휴식을 선물하고자 고른 책이 바로 김영하의 <퀴즈쇼>다. 나는 평소에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다른 읽을 책들이 많은 편이기에. 하지만 여름이나 겨울에는 한 두권 꼭 챙겨 읽는다.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에는 왠지 소설에 손이 갔었다. 나름 고생한 나에게 주는 쉼이라고 볼 수 있겠다. 김영하 작가의 책은 오랫동안 읽고 싶었지만, 막상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천상 소설가다. 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탁월한 작가의 말솜씨였다. 특히 이 부분! 대단히 공감되었던 구절이다. 리뷰를 쓰다가 중단했는데, 어서 마무리 해야겠다. 

그 순간 나는 길거리에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다. 아니다. 바로 그 정신, ‘그깟 사만원 때문에’라고 말하는 바로 그 정신 때문에 나는 세상에 속아넘어가는 것이다. 다른 자들의 밥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사만원 때문에 이 새벽부터 부지런히 사기를 치고 또 누군가는 그 사만원 때문에 해도 뜨기 전에 가게에 나와 알바를 족치는데, 오직 나만이, 이 한심한 이민수만이 ‘그깟 사만원 때문에’ 라고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방값 이십구만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천원짜리 컵라면에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이나 먹는 주제에 말이다. (p.112)


2015년 8월
43. 철학의 위안_알랭 드 보통
8월에는 정말 좋은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 유난히 행복했던 달이다. 이 책도 그 책들에 포함된다. 앞서 철학을 권하다와 비슷한 맥락이라, 올해 8월의 책에는 선정되지 못했지만 최고의 책으로 선정하기엔 모자람이 없다. 그리고 난 이 책들을 통해 나의 관심사를 알 수 있었다. 나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진정으로 일상을 잘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을 다루고 싶고, 정말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그게 나의 관심사다.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은 누구든 함께해요. ㅋㅋ :) 


44. 함석헌 평전_김성수 
함석헌 선생님은 내 마음의 스승들 가운데 한 분이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시대가 가진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바로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어른다운 어른'이라고 불릴 만한 함석헌 선생님의 삶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그러한 뜻과 의지를 닮고 싶었고, 퀘이커 교에 대한 이해도 좀 더 깊어질 수 있었다. 그 분의 삶을 따라 자신의 삶도 바친 저자 ‘김성수’ 선생님의 삶도 대단히 존경스러웠다. 나는 과연 무엇에 나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 있을까?  


45. 옥수수와 나_김영하
지난 번 퀴즈쇼에 이어서, 소설 책이 끌리기에 이어서 본 책이다. 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이었는데, 모두 읽은 건 아니고 김영하 작가를 비롯한 몇몇 단편만 읽었다. 그리 인상 깊진 않았다. 기억에 남는 건 슬라보예 지젝 뿐이다. 


46. 친밀함_매튜 켈리
올해 8월의 책을 선정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바로 이 책과 뒤에 나올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책 때문이다. 두 권 모두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기에, 결국 모두 선정하기로 했다.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 나만의 기준인데 뭐 어떠랴. 이 책은 지금 절판이라 구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주위에 워낙 많이 썰을 풀고 다녀서, 중고 서적으로 구한 분들이 꽤 있다. 읽고 나선 모두 하나 같이 말한다. ‘진짜 좋은 책이다’라고! 당신에게도 추천합니다. :)


하지만 정 구할 수 없다면, 참고하시길. 


47. 생산적 책읽기 50_안상헌
그야 말로 가볍게 읽은 책이다. 독서에 입문하는 사람들 대상으론 괜찮을지 모르나 나에겐 잘 맞지는 않았다. 중간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책읽기는 완전한 책읽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상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무작정 책만 많이 읽는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독서에 실패를 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책을 읽어도 구체적인 결과물이 없다는 생각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 책을 읽어도 효과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책읽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책을 읽은 후 결과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런 문장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움도 있다. 왜냐, 나는 그 생각과 반대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폰티지아는 이렇게 말했다. “배우기 위해, 즐거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연설을 하기 위해, 회상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아무런 목적 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현재를 읽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 독서하라.” 나는 생산적 책읽기 그 자체가 필요하다곤 인정하지만, 그것이 책읽기의 모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되려 요즘 같이 바쁜 세상일수록, 아주 비생산적, 비효율적 책읽기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깟 책 좀 결과 없이 보면 어떠랴! 그것으로 나의 지친 마음을 달랠 수만 있다면, 친구들과의 대화 꺼리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다고 난 생각한다. 
 

48.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_권용선
친밀함과 더불어 올해 8월의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를 알게 되었고, 그 다음 책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이어서 읽게 되었다. 굳이 벤야민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누구나 쉽게 접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 아주 높게 평가하는 책이다. 인간 벤야민에 대한 호기심을 엄청나게 증폭시켰던 책이자, 엄청나게 많은 문장을 초서했던 기억이 생생한 책이다. 어서 블로그에 옮겨 놓아야 하는데 말이지. ㅠ 



"그가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그가 그 무엇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들에 대한 빛나는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도 되지 않았던 그의 선택, 혹은 탁월한 위치 감각에 있다. 그는 어느 하나의 장소 혹은 위치를 점유함으로써 영향력 있는 지식의 권력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끊임없이 위치 이동하고 시선의 위치를 바꾸며 글쓰기의 패턴을 교정하면서 매번 다른 것들을 만들어 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분류 불가능한 것들의 존재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이 문장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들뢰즈가 말했던 ‘노마즈’의 삶. 그것을 온 몸으로 살아낸 사람이 발터 벤야민이 아닐까. 나 또한 끊임없이 이동하고, 시선을 바꾸고, 매번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하게했던 책이다. 읽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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