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미있는 강연을 들었고, 인상깊은 책을 읽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강연과 책 그리고 개인적 경험이 연결되었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재미있게 본 강연은 바로 TED <당신이 중독에 관해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잘못되었습니다>이다. 요한 하리란 작가의 강연이고, 내용이 너무 좋아서 전문을 대략적으로 옮겨 적어 보았다. 링크는 여기로. 내용이 길지만, 핵심만 정리하면 이렇다. 기존에 우린 중독의 원인을 ‘약물’ 그 자체에 둔다. 하지만 중독의 원인은 그것이 아니다. ‘소외’가 중독의 진짜 원인이다. 감옥에 갇힌 쥐들은 헤로인에 쉽게 중독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행복하게 놀고 관계 맺을 수 있는 ‘쥐 공원’에서 노는 쥐들은 그것을 쉽게 섭취하지 않는다. 마약 때문에 골치가 아프던 포르투칼 역시 중독자들을 사회와 격리시키기 위해 했던 노력을 역으로 사회와 재결합하는데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마약 비율이 현격하게 줄었다. 마약을 합법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가?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은 ‘쥐 감옥’에 가까운가, ‘쥐 공원’에 가까운가? 우리가 아무리 다양한 SNS로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하루 종일 심심할 틈도 없더라도, 따스한 온정을 나누는 경험이 없다면, 깊은 친밀감의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인간 관계’의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완벽한 쥐 공원처럼 보이지만, ‘사실상의 쥐 감옥’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TED 강의 중 이런 말이 나온다. "피터 코헨 교수는 ‘중독’이라 불러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교류’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무게에 억눌려 교류를 할 수 없을 때, 우린 안도감을 찾기 위한 어떤 것을 갈구하게 된다. 도박, 성인물, 코카인, 대마초, 게임 등. 그게 우리의 본능이다. 뭔가와 결속하려는 것. 그렇게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이 말에 참 많이도 공감하게 된다. 강의의 결론은 마지막 문장이다. “중독의 반댓말은 단지 ‘많은 정신’이 아니다. 중독의 반댓말은 ‘관계’다.” 

중독의 반댓말은 ‘관계’다. 이 말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나는 ‘관계’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니었다. 최근 몇 년의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믿지 않을 수 있겠지만, 과거의 나는 굉장히 관계 맺기에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중, 고등학교 때는 그 정도가 심해서, 친한 친구 1-2명을 제외하곤 제대로 관계도 맺지 못했었다. 막 왕따당하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영향력은 전혀 갖지 못한, 정말 그저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에는 관계를 맺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마냥 귀찮았다. 그래서 되려 컴퓨터 게임에 매달리거나, 혼자서 책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20대를 지나면서 그런 폐쇄적인 성향은 다소 나아졌으나, 그것도 역시 ‘비교적’이었다. 게다가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2년 동안은 영적인 것, 형이상학적인 것에 빠져서 사회적 관계를 고립시켰던 때도 있었다. 자취방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한 달 가까이를 보낸 적도 있었고, 게임이나, TV프로그램, 성인물과 같은 것에 중독 된 것도 사실이다. 가족과도, 친구들과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 관계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지금 생각하면 그리 건강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내 인생의 최대의 암흑기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중독’에 빠진 것이 아니라, ‘관계’로 부터 소외되었던 것이다. ‘친밀함'로부터의 소외는 결국 그에 마땅한 대안을 찾아 헤매게 만들었고, 그 대상은 앞서 말했던 그런 ‘구하기 쉬운 것들’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매튜 캘리의 <친밀함>이란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친밀한 인간관계는 우리를 진실하게 만든다.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보고 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거울이 되어주는 까닭이다. 고립되어 혼자 있으면, 우리는 온갖 종류의 그릇된 확신을 갖게 된다.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에서 우리를 꺼내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다.” (P.26-27) 이 문장을 읽고 얼마나 공감했는지 모른다. 그 당시 나의 문제점은 이러한 나에게 거울이 되는 ‘친밀한’ 사람들이 적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직언’을 들을 수도 없었고, 내 확신을 스스로 의심할 성찰 능력도 더군다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홀로 방에서 온갖 종류의 그릇된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 방에서 나오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허긴, 아직 내 그림자의 일부는 아직 그 방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튜 켈리의 <친밀함>은 정말 좋은 책이다. 좋은 책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 삶을 더 진실되게 살아갈 수 있고, 더 나은 내가 되도록 기여하는 책을 나는 좋은 책이라고 부른다. 물론 우리나라의 좋은 책들은 대부분 절판되기 마련이고, 이 책도 같은 운명에 처해있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없으리라. 이 책은 ‘인생’은 곧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소 긴 인용문이지만, 옮겨본다. "인생이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 어떤 사람과 진실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당신 자아의 모든 면을 보여주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가면을 벗고, 숨겨둔 무기를 내려놓은 채 겸손하게 우리의 삶으로 이들을 안내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장점과 단점, 허물, 결점, 약점, 재능, 능력, 성취 그리고 잠재력은 또 무엇인지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인 까닭이다.” (p.19) 친밀함이란, 자신을 성숙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라는 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표현이다. 

그렇담, 친밀함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듯, 친밀함도 그러하다. 친밀한 관계를 위해선 한 가지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한다. 그건 무엇일까? 바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니 좀 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란 두려움’이 아닐까? 매큐 켈리에 따르면, 이 두려움에서 엄청난 기만이 생겨난다. 이 기만 때문에 우린 타인과 관계 맺고, 진실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 고난 속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까닭에 어떤 이는 술의 힘을, 누군가는 쇼핑의 힘은, 혹자은 약물의 힘을 빌린다. 매튜 켈리의 말은 이어진다. “모든 중독은 건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허전함을 채우려고 할 때 생겨난다. ... 중독은 우리들을 자기중심적인 환상세계 속으로 깊숙이 밀어넣는다. 중독은 우리들의 환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에 확신을 심어준다.” (p. 31-32) 이렇게 소외와 중독은 ‘우리의 거울 - 타자’를 지운다. 오로지 ‘에고’만을 살찌게 할 뿐이다. 

중요하니 반복하자. 중독의 반댓말은 ‘관계’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친밀함’이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결코 친밀함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상상의 동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드러내야 한다. 가장 먼저 누구에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즉, 타인과 친밀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친밀해져야 할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자신과 함께할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답변은 이렇다. "오직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밖에 없다. 고독하고 고요할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다.” (p.24) 참 역설적이지 않은가?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 되려 우린 ‘홀로 됨’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홀로 됨'은 ‘외로움’와 비슷한 양태를 가지지만, 본질적으론 완전히 다르다. ‘외로움’이란 '(원치 않지만) 홀로 되어 버린 것'이며, '홀로 됨’이란 ‘(나의 선택에 의해) 홀로 있는 것’이다. 자발적 고독은 결코 고독이 아니다. 그건은 나 자신과 친밀함을 쌓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다. 깊은 자기인식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대화 역시도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홀로 됨’이 필요하다. 그나마 내가 조금씩 철이 들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유리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홀로 있는 시간’. 이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생각했던 것을 자연스럽게 나누기 시작하면서, 다시 말해 더 깊은 수준의 대화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는 사람들과 친밀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린 홀로됨과 커뮤니티의 '지혜로운 변증법'을 이루어야 한다. 신학자 디트리히 본희퍼는 <함께 삶>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홀로될 수 없는 이에게는 커뮤니티를 경계하게 하자.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은 이에게는 홀로됨을 경계하게 하자." 이 경고를 지침으로 삼는다면, 함정에 빠지는 일은 없으리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심톡을 하는 이유는 이런 욕구와 갈망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외로웠던 젊은 시절의 나는 내 생각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애초에 처음 심톡을 열 때 이런 욕구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나는 이러한 결과를 무의식적으로 그리면서 프로젝트를 진행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친밀함을 위해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 첫 시작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친밀함이란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기억하기 쉽게 한다. 또한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우리가 분별력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p.21) 그리고 내가 파커.j.파머를 위시로한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것도, 사회적 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에 관심이 있는 것도, 계속해서 학습조직을 꿈꾸는 것도 모든 것은 이 ‘관계’라는 숙제를 풀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글을 쓰는 것은 참 유익하다. 글을 쓰면서 나를 드러내게 되고, 그 과정에 내가 몰랐던 나의 내적 동인을 발견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말이다. 뒷걸음 치다가 뭐라도 걸린 격이다.  

정리해보자. 당신이 만약,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면 주위를 돌아보자. 아니, 스스로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없더라도, 공허하고, 사는 것이 헛헛하다면 자신을 돌아보자. 당신은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들과 얼마나 ‘자주’ 만남을 갖는가? 그리고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한번 떠올려보자. 설사 당신이 놓인 곳이 혼자뿐인 ‘감옥’이라도, 이제 우린 서로의 힘으로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 손을 내밀면, 생각보다 우리 주위엔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 시작은 어디일까? 첫 번째, 자기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아주 먼 옛날, 철학자 헤카토가 자신의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어떤 진전을 이루었는지 그대가 물었지? 난 이제 막 나 자신의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네’ 그 글에 감동한 세네카가 말했다. "그 말이야말로 내개는 진정 위대한 은총이었다.” 친밀함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바로 내 생각이 어떠한지, 내 느낌과 욕구는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이다. 그 내면의 시간이 없이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 없이는 타인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무엇일까?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 바로 가족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얼마 전 여름 휴가였다. 내 '아버지, 어머니'가 이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손자랑 함께 놀고 있었고, 나와 아내는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문득, 나는 ‘연결됨’을 경험했다. 그리고 인식했다. "가족은 세상과 내가 이어지는 가장 강한 연결선이구나”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린 수 없이 넘어지고 싶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뿌리, 가족이 주는 힘으로 말이다. ‘깊은 관계’에의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가족부터 만나보자. 그리고 가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자. 더 나은 가족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하자. 그렇게 친밀함의 원을 조금씩 확장시켜 보자. 우리 사회를 감옥이 아닌, 정말 멋진 ‘테마 파크'로 만들어 보자. '중독과 소외'라는 현대 사회의 이 고질적 문제는 이 작은 실천으로 점차 해결될 수 있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러하길.  


  1. 지은 2015.08.22 10:49

    공감백배! 멋진고백에 감사해요 코치님

'온전함을 회복하는 대화, 심톡'입니다.

우리는 '삶의 진실된 이야기'를 나눌 때 공감받고 힘을 얻습니다.

내 앞에 놓인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 앞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렇게 서로를 통해 온전함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이 모든 공간이 바로 심톡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함을 회복하고, 나아가 가족을 회복하고,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것.

그 시작은 나의 이야기를 꺼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저희는 믿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대상]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분들도 환영합니다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도 환영합니다

가까이에서 그냥 놀러오시는 분들도 환영합니다! 

 

[참가비 / 장소]

1인당 12,000원

- 참가비는 장소비, 음료비, 강의 준비로 사용됩니다.  

- 장소는 합정역나눔문화플랫폼 <허그인> 2층입니다. 

- 참여 방법은 https://www.facebook.com/events/681610641968611/ 이곳에서 신청해 주시면 됩니다.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 - 즉 트라우마 - 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음 속 소리를 찾고 싶다면, 더 행복한 관계와 삶을 꿈꾸신다면 심톡에서 만나요! :) 


우리는마이크로소사이어티로간다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 경제전망
지은이 팔란티리 2020 (웅진윙스, 2008년)
상세보기

지난 일요일 아침, 홍대에 있는 카페베네에서 발견한 책이다.
예전에 다른 후배가 읽고 있는 것은 봤었는데, 카페에 보이길래 얼른 중요한 부분을 나의 사랑하는 블루투스 키보드로 옮겨 적었다. 두둥!
 


요 녀석은.. 가끔 구입하기에는 조금 부담이 되면서, 중요한 부분을 옮기고 싶은 책을 발견 했을 때 아주 유용하다.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아서 가방에 넣고 다니면 아이폰과 함께 아주 궁함이 좋다. 아이패드를 나중에 사게 되면 더 좋겠지만 ^^

일단 이 책 '우리는 마이크로소사이어티로 간다' 라는 책을 보면 여러 사람들의 스터디 모임을 통해 공동으로 만들어진 책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고, 내가 학습조직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식의 생산과 소비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시스템.. ^^
인상 깊었던 부분은 거의 1장에 다 있었는데, 그래서 1장에서 중요한 부분만 옮겨 적어보려한다.

재미있게 본 것

[나는 몇 개인가?] (네트워크 속 개인과 인간관계)

무한한 인터넷 공간의 확장으로 나는 과거에 비해 더 다양한 상황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 앞에 놓이게 된다. 인터넷상에서는 여러 가지 자신의 모습을 시도해보고 필요에 따라 수정하거나 없애버릴 수도 있다. 사회적 정체성은 자신과 타인 간의 '상호 주관성'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지므로, 네트워크상에서 자아는 고정된 단일의 실체를 갖기보다는 관계에 따라 늘 유동적이고 파편화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객관화시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에게 큰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하는 사람은 다양한 사람이나 집단과의 교류를 즐기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성찰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는 한발 더 앞서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대해지느냐에 따라서 변한다. 네트워크의 엄청난 효력은 그 안에 포함된 개인들이 네트워크의 강력한 효과를 인지하고 자발적으로 구성하도록 촉진한다는 점이다.

개인이 기본 구성 단위가 되어 서로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위에서 신뢰를 교환하고 참여하는 것이 사회학자 배리 웰맨이 지칭하는 '네크워크화된 개인주의'이다. 개인은 네트워크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안정에 대한 욕구) 동시에 스스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싶어한다. (개인 중심적 원리)

하지만 수많은 네트워크에 지나치게 얽매이게 되면, 진정한 자아의 형성을 위해 나 자신을 반추해보는 성찰을 할 여유가 없어진다. 단일성과 자율성의 신화로부터 자유로운 개인, 자기중심적 집단을 직접 건설하는 개인, 네트워크에 의해 자신을 구성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개인, 그 안에서 나는 과연 어디에 위치할까? 동시에 여러 곳에, 그러나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렇게 본다면, 현대 철학자들이 말하듯, '나는 누구인가?' 보다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구성주의적 질문이 뒤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소집단 커뮤니케이션의 부상]

한국의 경우 10여년 전과 비교해서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자신과 이해관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집단의 정체성은 약화되고, 대신 개인적으로 정서적 교류를 나누는 집단, 끊임없이 나와의 관계를 확인하고 접속하는 집단의 정체성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의 발달로 나타난 변화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카페'라고 불리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활성화였다.

인터넷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모임을 만드는 일이나,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렵고 돈도 되지 않으며 쓸데없어 보이지만 잔재미를 주는 인터넷상의 모든 일은 계속 번창할 것이다. 이것들이 사람들에게 원천적인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나의 즐거움은 나의 더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참여와 활동은 또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이렇게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에너지는 빠른 속도로 증폭될 것이다.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의 단점:

명품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찾는 현상은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자아의 개념의 덜 독립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인주의에 기반을 두는 서양 문화에서는 독립적 개인을 지칭하는 주체인 반면 집단주의에 기반을 두는 동양 문화에서는 자아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의해 다른 사람들와 서로 연결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결정됨을 의미한다. 단지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명품을 소비하기 보다는 명품족이 되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알리고자 하는 숨은 뜻이 있는 것이다.

[관계란 무엇인가?]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 구성원의 주체성과 개인성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 요인을 찾는다면 단연 '관계형 매체의 이용 증가'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가상적 사회 집단의 활동이 늘어나고 집단 안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이 늘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관계란 무엇인가? 실체가 있는 것인가? 관계란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유지되는 것이고, 일상적이고 소소한 대화 그 자체이다. 스몰토크가 없다면 그것이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겠는가? 도구적인 커뮤니케이션만 생각한다면 자주 만나는 친구보다 아주 오래만에 만난 친구들과 할 이야기가 더 많아야 한다. 서로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오가야 하는 정보도 더 많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던가? 대개는 "이야 반갑다. 어떻게 지냈어?"를 한 순배씩 교환하고 나면 썰렁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들은 매일 만나서 끊임없이 얘기해도, 일상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도 할 이야기가 샘솟는다. 이렇듯 일상적인 수다로 관계는 지속적으로 다져지는 것이며, 커뮤니케이션은 다져진 관계 사이에서 더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수단의 발달로 인해 과거에 비해 개인이 인간관계를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다. 메신저, 문자, 블로그를 통해 스몰토크가 이루어지며, 관계의 중심에는 개인이 있고 개인을 중심으로 여러 관계망이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정보에 강한 개인은 열려 있고 활발한 교류를 하지만, 정보에 약한 개인은 오히려 주어진 집단에 의존하게 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단, 여전히 인간과 인간의 면대면 만남이 갖는 의미나 가치를 간과하지 말아햐 한다. 클릭 한번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어떤 정보가 값지기 위해서는 그 정보를 아는 사람들의 수가 본질적으로 적어야 한다. 그렇다면 클릭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널린 정보는 고급 정보가 아니다. 진짜 고급 정보는 인터넷 회선이 아니라 관계를 타고 온다.

스몰토크는 사소하지만, 아니 사소하기 때문에 그것을 나누는 행위의 의미가 심대한 대화가 아닐까? 그 영향력이 작지 않다. 물론 스몰토크를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친해지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형식적인 관계는 지극히 스몰토크만 하는 관계일 수 있다. 우리는 상대의 이름도 잘 모르고 무슨 일을 하는지 등 '깊은' 속사정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렇지만 스몰토크는 친한 사람과 단연 많이 한다. 관계가 긴밀할 수록 미시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Where are you?'라고 한다. 우리도 가장 많이 들리는 표현은 '너 어디야?'이다.

어쨌거나 친한 사이에서는 수많은 스몰토크가 교환되고, 친한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몰토크를 계속해야 한다. 스몰토크는 관계 그 자체이다. 스몰토크는 점차 큰 이야기들이 나오고 이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휴대폰 이용이 증가하면서 '친밀성'의 개념이 변화했는가? 스몰토크는 얼마나 오래 깊이 이야기를 나누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얼마나 자주 접촉을 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여기서 '의사소통 회기'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의사소통 회기'란 물리적 시공간에서 시작과 끝으로 구획되는 한 번의 의사소통의 흐름을 지칭한다. 가족 구성원 간에 휴대전화 이용이 증가함에 따라 친밀함이 강화되었ㅇ며, 그 친밀성을 강화시키는 기제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지만 잦은 빈도를 보이는 의사소통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매개로 언제 어디에서나 연락 가능한 사회에서 짧지만 빈번한 의사소통 회기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사이는 더 이상 친한 사이가 아닌 것이다. 친하지 않으면 단지 어색한 관계일 뿐이며, 이는 친구나 연인 또는 동료는 물론 심지어 가족 구성원에게도 적용된다.

[승자는 스몰토크로 세상을 지배한다]

- 블로그나 미니홈피에서 인기 있는 '나'가 되려면 '전문성'보다는 '근면성'이 중요하다. 부지런히 자신을 홍보하고 광장에 노출해야 입소문이 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역시 스몰토크를 진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너 어디니'라고 물을 경우, 정말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네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 하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렴'이라는 함의가 더 중요한 것이다. 즉 친밀성을 형성하고 확대하기 위한 고유한 코드가 스몰토크인 것이다.

관계적 매체가 폭증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쑥스러움을 느끼는 주체, 머뭇거리는 주체, 말을 건네지 않거나 말이 없는 주체는 더 이상 사회적 상호작용의 당사자가 되기 어렵다. 방문과 댓글이 없는 썰렁한 미니홈피나 발신자 목록이 텅 빈 휴대전화는 소통하는 주체의 무능력함을 증명할 뿐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관계도 없다. 따라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은 사회적 성공을 가져오는 발판으로써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느낀 것

이 책에서 예전에 몰랐던, 새롭게 배우게 된 부분은 '스몰토크의 중요성'이다. 사실 나는 관계맺는 것이 아주 서툴고, 전화하는 것이 쑥쓰럽고, 비지니스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잘 먼저 전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전화가 잘 오지도 않는다. 그런 식의 관계 맺기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관계는 스몰토크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을 보는데, 정말 나에게 많이 필요하고 또 중요한 부분이겠구나 싶었다. 트위터도 하고, 페이스북도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 블로그 역시 나 혼자 일방적으로 글을 만들어내고 혼자 정리하는 공간이지,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눈다거나 댓글이 달리거나 그런 일도 거의 없다.

그러고 보면 남이 쓴 글에 댓글을 달아주는 일에 많이 인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온라인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타인'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고나 할까.. 이번 랜드마크를 들으면서 많이 배웠고, 또 내 삶의 커다란 숙제가 던져진 기분이지만, 앞으로 나는 더욱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그 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마 그 길이 나에게 주어진 가장 '난이도 높은' 그러나 '보상도 큰' 길이리라.. 마지막 줄에 나오는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고 진정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는 것에 뜻을 둘 것이다. 화이팅!!
  1. 김명곤 2011.05.13 15:38

    다른 관점에서 보면 '관심'이 없는 블로그,페이스북,사람들을 만난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관심이 별로 없는데 '의지'를 사용해서 관심을 갖는건 꽤나 에너지가 소비가 심한일이죠, 커뮤니케이션이라는것도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구요. 제가 생각한 방법은 '의도'가 같은 사람들 즉 '공명'이 되는 사람들 부터 우선적으로 만나는것 입니다. '정보의 바다' 라고 불릴만큼 방대한 곳에서 자신과 공명이 되는 사람을 만난다는건 어쩌면 어려우면서도 쉽지 않는 일이죠, 전 우선적으로 오프라인에서 '공명'이 되는 사람들과 만남을 하고 그 공명이 되는 사람들과 모임을 가져 온라인에서 만들고 저와 공명이 되는 사람이 좀더 쉽게 찾을수있도록 하는것을 의도중입니다. 물론 그 과정중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것은 쉬지 않아야겠지요 ^^ 커뮤니케이션이란 상대방에 혼신을 다해서 듣는것인데 그건 쉽지도 않고 에너지가 상당히 소모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명이 되지 않는 상태라면 더욱더 힘들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방법은 오프라인->온라인->오프라인->온라인 으로 생각하고있습니다. 순환의 사이클이 되도록 하고 그 사이클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수있도록 해야겠죠,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분명 '공명'이 되는 사람들을 볼수있을테고 그사람들을 모으다보면 점점더 공명이 되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공명이 되는 사람들이 있으니 에너지는 점점더 커지겠구요, 그걸 기반으로해서 처음엔 공명이 되지않더라도 관심을 가질수있겠죠, 그렇지 않다면 에너지 소비가 심하고, 소위 '에너지 충전'이 되지않는다면 오히려 악순환에 빠질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공명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걸 기반으로해서 좀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좀더 탄탄한 사이클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관심'자체가 가지 않은데 만난다는건 꽤나 쉽지 않을일이라 생각해서요 ^^ 내안에 '무엇'이 있어서 긴댓글이 되었는데 잘 소통할수있는 하나의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ㅎㅎ

  2. 김명곤 2011.05.13 15:52

    아, 그리고 글을 만들어내고 글을 정리하는것도 꽤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공개적'인 곳에서 공유를 한다는 자체가 꽤나 대단한 에너지들이 유입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자기 일기장에서 쓰는것과 그래도 블로그,인터넷 이라는 사람들이 볼수있는 공개적인 곳에서 공유하는것과는 천지 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코멘트가 없다는걸 보면 힘이 빠질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 그래도 '누군가는 본다'라는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기 블로그들을 보면 사실상 그렇게 제가 보는 관점에선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제가 봤던 블로그 들은 주로 연예,음악,tv 가끔은 IT,정치 정도 됬었는데 제가 봤던 블로그들중에 얼마나 의미가있는 정보를 보았다거나 교류를 했다하면 미지수네요, 저의 한계이기도 하고, 저의 해석이기도 하지만 정말 '좋은 정보'를 잘 소통하는 블로거나 그룹들을 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최소한 소통이 되는곳 조차 별로 못봤습니다. 보통 다 와 글 좋습니다,최고네요,추천합니다 라는 글이지 이글은 이글은 이러이러해서 좋은것같고, 내생각은 저러저러한데 어떻게 생각하냐 라는 '토론의 장'이라던지 별로 그런걸 보지 못한것같습니다. 혹자는 인터넷에서 뭘 그렇게까지 바라냐 라고 할수도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인터넷은 정말 위대하고 대단한곳입니다. '시공'을 초월할수있죠. 한국에 거주하는 분과 미국에서 거주하는 분이 인터넷을 통해 '소통'을 한다면 이 얼마나 위대한일 아닙니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것 이죠, 물론 시차라는 핸디캡이 있긴 하지만요, 사실 서울에 사는 사람끼리 만나는것도 신기한 일이고, 이렇게 강구환 코치님의 블로그에 댓글을 쓰는것도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경이로운일인지 모르죠. 결국에는 얼마나 '공명'되는 사람들과 소통할것이고(정보라던지, 여러가지 것들을) 그리고 최소 수십명에서 최대 수억명까지 영향력을 행사할수있는 인터넷을 잘 이용할지는 개인의 선택이겠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오프라인이건 온라인이건 자신과 공명이 되는, 혹은 좀더 질좋은 정보, 좀더 깨끗한 에너지(저의 판단입니다만)을 어떻게 교류할것인지,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것이 기반이 될거라고 전 봅니다. 조금 두서없이 엄청난 댓글을 써버리게 됬는데, 음 잘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3. 김명곤 2011.05.13 16:09

    저또한 저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쉽지 않음을 느끼네요, 제가 가야할 길임을 느낍니다. ^^

  4. 김명곤 2011.05.18 05:49

    네, 강구환 코치님께 학습조직도 문의했던 사람이랍니다!

  5. 김명곤 2011.05.20 13:44

    언제 뵐지는 저는 잘 모르겠던데 언제 뵙길 원하세요? ㅎ

    • 음^^ 요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데 정말 즐거운 일인거 같아요 ^^ 6월달에는 일정이 조금 빡빡한데, 여유있게 7월 초나 중순이 좋을 듯 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