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7월 심톡

오늘은 7월 심톡이 있는 날이다. 거의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주제는 한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하지만 장소와 포맷은 거의 동일했다. 합정역 근처 ‘허그인’이란 카페에서 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눴었는데, 이번에는 장소가 바뀌었다. 이미영 코치님의 마음챙김 명상과 요가를 제대로 체험하고 싶은 마음에 고른 장소는 젠 내츄럴 힐링센터였다. 사람들이 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눕거나 혹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는 공간. 아주 훌륭했다. 10분 정도가 오셨다. 공간에 맞는 적절한 인원이 모였고, 우린 함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요가도 했고, 호오포노포노도 배워보고, 요가니드라도 했다. 짧은 3시간이었지만 나름 알차게 진행되었고,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생각을 했다. 3번의 한번 정도는 이런 식으로 심톡을 꾸려가고 싶단 생각. 대화도 좋지만 가끔은 대화가 아닌 몸 동작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것도 참 좋구나 라는 생각. 그리고 언제나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구나. 적절한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 혹은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내가 할 일은 공간을 열고, 좋은 컨텐츠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초대장을 보내는 일이구나. 그런 것이 참 즐겁단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기분 좋게 집에 들어갔다. 


7월 28일 
월드 카페를 진행하다

이번 7월에 가장 많은 수업을 진행하는 곳은 바로 시흥 <세계를 담은 스쿨>이다. 외국인 대학생들과 한국인 고등학생이라는 재미있는 조합 덕분에, 매 수업 시간마다 즐거운 일이 많이 벌어진다. 전체적인 프로그램 과정 역시 스스로 주제를 뽑고,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프로젝트 형태이다. 그러다 보니, 통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려움도 많다. 하지만 좋은 점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번 시간에는 프로젝트별 주제를 결정하고, 서로간의 피드백을 주고 받는 시간을 가졌다. 형식은 <월드 카페> 토론 방식을 취했는데, 각자 프로젝트를 열심히 설명하고, 피드백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오늘 수업을 하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앞으로 나만의 단단한 사상적 체계를 가진, 그러면서도 참여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그런 퍼실리테이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서 배우되 한번씩 깊이 있는 피드백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꿰하게 만드는 역할, 그런 역할을 담당할 때 개인적으로 가장 신나고 즐겁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수업도 즐거웠다는 :) 


7월 29일
EBS 프리미엄 캠프

오늘은 2015년 하계 EBS 프리미엄 캠프를 진행하러 용평 리조트로 갔다. 2013년 여름부터 진행했으니, 벌써 2년이 다 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진행하는 경우는 나로선 처음인데, 나름대로 대규모 캠프임에도 잘 진행되고 있어서 감사하다.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대상이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한번에 몰아서 있을 뿐더러, 인원도 많다. 가장 많았을 때는 70명 가까이 된 적도 있었고, 여름에는 보통 50명 정도 된다. 인원이 다양하고, 많다보니 할 수 있는 활동도 한정적인 편이다. 그래서 난이도가 높은 편인데, 그래도 이렇게 매년 2번씩 반복해서 진행하다 보니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매번 조금씩 변화를 주는 편이다. 이번에도 지난 겨울과 비교했을 때도 조금 다르게 진행했다. 핵심은 <부족 리더십>이다. "나만 최고야"에서, "우리가 최고야”로 도약하는 지점을 설계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오늘 아이들에게 즐겁게 전달된 느낌이다. 중간 중간 멘토들도 아이들이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을 처음본다고 말해줘서, 기뻤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내내 수업이구나. 아이고 바쁘다. 


7월 30일 - 8월 2일
여름 휴가 

장장 3박 4일에 걸친 휴가였다. 대구에서 부모님이 수요일에 올라오셨는데, 사실상 나는 목요일부터 함께 놀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부모님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재원이다. 재원이를 너무너무 보고 싶었지만, 평소에 잘 볼 수 없기에 이번 휴가 시즌에 맞춰서 올라오신 것이다. 5개월만에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낯설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재원이는 잘 적응했다. 종종 힘들다고 앙앙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수월하게 잘 지낼 수 있었다. 목요일 오전엔 부모님과 홍대로 놀러가서 팥빙수를 먹고 놀았고, 오후엔 용인의 누나집으로 갔다. 누나도 12월 출산이 예정이라 꽤 힘들었을 텐데도, 재원이를 많이 이뻐해 주었다. 저녁엔 영화도 봤다. <쥬라기 월드>를 봤는데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영화에 난 감동했다. ㅠㅜ  담날은 다 같이 코다리 냉면을 먹고, 이천에 있는 롯데 아울렛에 갔다. 간단한 쇼핑을 끝으로 집으로 오니 벌써 저녁. 다들 녹초가 되었다. 토욜은 오전 오후 편히 쉬면서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놀았고 (정광수 돈까스 가게에서 돈까스도 먹었다) 저녁엔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만나서 저녁 먹고 한강에서 놀았다. 이번 휴가에서 느낀 것은 3가지다. 1. 가족이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가족은 세상과 내가 이어지는 가장 강한 연결선이구나. 그렇기 때문에 넘어지고 싶을 때도 가족이 주는 힘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이다. 2. 휴가가 별게 아니구나. 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잠도 푹 자고, 재원이 재롱도 보면서 같이 웃을 수 있는 것. 그게 최고의 휴가구나. 3. 집안에 아이가 있으니 분위기가 바뀌는구나. 특히 아빠는 재원이를 완전 물고 빨고 했는데, 그렇게나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자라는 재원이가 참 부럽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했다. 올해 중으로 조카도 다들 태어날 텐데, 나중에 다 같이 여행다니면 정말 정신 없을듯 ㅋㅋㅋ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재원이



+
성찰일지가 밀렸다. 게다가 블로그 포스팅도 더 밀렸다. 올해 들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것임에도. 이 꾸준함이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이번에 놓치고 말았다. 아쉬움과 약간의 자책도 든다. 하지만, 다시 나아가자. 머물러 있을 시간도 없다. 성찰이 실행이 되고, 실행이 내 삶이 되고, 그렇게 내 삶의 지혜로워질 때까지 쉴 틈이 어디에 있겠는가? 


7월 20일
자소서 캠프

오늘, 당산서중에서 자기소개서 캠프가 있었다. 최지은 코치님과 함께 하게 되었는데, 이 교육을 하게 된 것도 사실 우연의 일부다. 올해 1학기, 당산서중에서 ‘디자인씽킹을 활용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좋게 본 선생님께서 함께 진행한 최지은 코치님이 기자셨다는 사실을 알고, 자소서에 대해 물어보셨다. 사실 작년에 부천대에서 최지은 코치님과 나는 함께 자소서 컨설팅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할 수 있다고 답변드렸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회가 이번 캠프가 되었다. 사람의 일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어쨌든 그렇게 캠프를 했다. 다들 자사고를 준비하는, 꽤 똑똑한 친구들이었다. 나는 한명 한명 만나서 봐주기 시작했는데, 정말 많은 아이들이 한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특별한 것이 없어요.’라는 말.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아이들이 계속 출현하자, 나는 애원했다. "제발 나는 특별한 것이 없어요. 라고 말하지 말고, 아직 찾지 못했어요. 라고 말해달라고” 언어는 생각의 틀이다. 일단 언어로 가능성을 닫으면 실제로 뇌는 그런 정보만을 진실로 인식하기에, 나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자신만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싶은 아이들은 나에게 오고, 자소서 자체를 코칭받고 싶은 아이들은 최지은 코치님께 가라고. 그리고 꽤 많은 아이들을 만나서 대화했다. 한 아이는 7년이 넘도록 배드민턴을 쳐 온 친구도 있었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꿈인 아이도 있었고, 학원을 다니지 않은 아이도, 낮잠을 자는 아이도 있었다. 적어도, 나에겐 모두가 특별했다. 그리고 그걸 찝어주었다. 아이들도 신기해 하는 눈치더라. 그러한 ‘가능성’의 대화가 나는 즐거웠고, 한편으론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 사회와 학교가 다소 안타까웠다. 


7월 21일
연지원 선생님과의 대화

오늘 와우 스토리 연구소 연지원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사실 지금까지 1:1로 만날 기회가 많이 없었던 터라, 오랜만의 만남이었고 대화도 정말 즐거웠다. 몇 가지 피드백이 인상 깊었는데, 그 중 하나는 ‘글쓰기’에 대한 것이었다. 우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최근 쓴 니체의 글을 유심히 보셨고, 특히 작가보다 편집자의 역량이 돋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핵심을 잘 파악한다는 것도 뛰어나다. 다만, 자의적인 해석이 눈에 띄는 편이긴 하지만, 그것도 정도를 넘어가지 않는다. 납득할 정도로 표현한다. 다만, 인용을 할 때 너무 많은 작가를 인용하면 되려 전문적이지 않게 보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인용하는 문구도 맥락에 맞게 해야 하기에 인용하려는 작가의 책도 어느 정도 읽고 쓰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셨다. 동감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어서 권했다. 내년부터 (아님 올 하반기부터) 진짜 좋은 책 1권을 반복해서 읽어보라. 니체, 푸코, 벤야민을 권한다. 그런 수준의 작가들의 책을 보기 위해선 사전 작업도 필요한데, 그것도 좋다. 어쨌든 그런 작가들의 책을 읽고 글을 한번 써보라.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고 그것을 쉽게 전달하는 역할이 잘 어울린다. 글을 계속 써라. 라고 하셨다. 음. 올해 들어서 나에게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어쨌든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는 것인데, 글쓰기에 대해서 이렇게 좋은 피드백을 받으니 어리둥절 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기도 했다. 이후에도 이런 저런 대화를 했지만, 나머진 나만의 기억으로 남기기로 한다. 쨌든, 오늘의 결론은 이것이다. 깊이 공부하고, 계속 쓰자.  


7월 22일
인디언 계모임 

오늘 오전엔 인디언 계모임이 있었다. 학습조직에 대한 학습조직. 그것에 내가 꿈꾸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일단 각자에 대한 역량도 높아져야 하고, 성찰 능력도 필요하다.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는 퍼실리테이션의 능력도 필요하고 말이다. 어쨌든 내가 기억에 남는 말을 적어보면 이렇다. 우선 핵심은 <상황의 원인>을 <나>로 돌리는 것이다. 뒷담화와 뒷담화 아님을 구분하는 기준도 결국 ‘원인’을 ‘나’로 돌리느냐, 아니면 ‘상대 혹은 상황’을 탓 하느냐 이다. 하지만 그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인디언들 중 몇몇은 퍼실리테이션에, 몇몇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사는 삶’에, 몇몇은 디자인씽킹에, 몇몇은 독서와 철학, 그리고 인문학 공부에 열을 올린다. 그 각자의 자기다움이 서로에 대한 신뢰로 시너지를 이뤄서 결국 위대함을 함께 만드는 것, ‘공동 창조’에 이르는 것. 그것이 모든 조직의 최고의 목적이자. 최고 난이도의 시험이자,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이번에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꿈꾼다. 계속 실험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삶에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7월 23일
미술영재교육원 원데이 디씽 캠프     

오늘 하루 종일 디자인씽킹 캠프가 있었다. 이것도 참 재미있는 인연으로 연결되었는데, 지난 번 미술과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교사연수를 진행했었다. 그 당시 한 선생님께서 ‘이거 우리 아이들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고, 바로 캠프 날짜를 잡아버렸다. 나 역시 마침 지난 주 목요일에 칠보초 수업이 끝나서 시간이 괜찮기도 했고. 그렇게 소개로, 혹은 우연으로 이렇게 수업이 열리는 상황이 참 흥미롭다. MBTI를 보면 나는 ‘인식형’으로 나오는데, 인식형은 뭔가 정해져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것, 예상 가능한 것을 좋아하기 보단, 불안정하지만 그럼에도 흥미롭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한다. 내가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캠프를 했다. 2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오전에는 지갑, 오후에는 리모콘이었다. 둘 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일부러 가지고 왔다. 그리고 리모콘을 고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문제가 많다. 그리고 만들기 쉽다. 이 아이들은 표현력은 정말 좋았다. 원래 미술을 하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프로토타이핑 만드는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8분 이란 시간 안에 글루건을 써서 만들 정도니.. 하지만 어려워하는 건 바로 ‘인터뷰’였다. 특히 몇몇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 시간에 끄적끄적 그리는 것에 더 익숙했던 탓이겠지. 하지만 이번 시간을 통해 조금이나마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참 좋았을 것 같다. 다행히, 캠프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말씀해 주셨다. 몇몇 아이들도 나가면서 재미있었다고, 다음에 또 보자고 말해 주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나누고 의견을 주고 받는 것. 우리는 이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 아닐까. 그 경험을 짧게 나마 할 수 있었다면 나야 말로 참 다행이다. 조금이나마 의미가 되었길. 


7월 24일
아나모 모임

오늘 저녁에 오랜만에 아나모 모임이 있었다. 아나모란, 아띠를 나온 사람들의 모임의 준말이다. (맞나? ㅋㅋㅋ) 좀 더 정확하게는 2012년을 중심으로 창의력학교 아띠에서 몸을 담았던 사람들이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며, 성장을 돕고 서로를 격려하는 그런 모임이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는 뜻이다. 벌써 3년이 지났으니 꽤 시간이 흘렀다. 그 당시만 해도, 군대 갈 걱정이 한창이던 아이들이 벌써 전역이 한창이다. 관희는 전역을 했고, 경민이도 담주에 전역이다. 남은 건 현식이 밖에 없다. 아, 원이도 있구나. ㅋㅋ 그리고 당시에 고1이던 정희는 벌써 대학생이 되어서 함께 맥주를 먹을 나이가 되었다. 나의 추천으로 ‘연남동’에서 만남을 가졌다. 처음에 6명 정도 모였었는데, 점점 스믈스물 오겠다고 하더니 결국 12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이더라. 누가 있었냐면, 관희 (요번에 전역하고 사업에 완전 몰입중이다), 해리 (드디어 작업을 시작한 그림쟁이:), 부선 (이 녀석도 호주 다녀와서 오랜만이었다), 경민 (에피소드 메이커 이번 건 정말 대박이었음), 원이 (원이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스위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글로벌 리더의 표본 ㅋㅋㅋ), 은정 (요즘 많이 아팠다고 한다. 맘이 쓰였다), 여름 (그나마 종종 봐서 다행인), 정선 (캠프임에도 잠깐이라도 얼굴 비춰준), 진욱 (사업 때문에 바쁨에도 와준), 유리 (육아와 일 때문에 바쁨에도 와주었구나), 정희 (같이 맥주를 먹을 수 있다니 신기한 일이구나) 이렇게 있었다. 모여서 이런 저런 근황을 나누다보니 참 대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들 한명 한명이 고마운 인연이고, 또 오래 가고 싶은 사람들이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정말 많이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7월 25일
와우 수업날.

와우 수업 날이다. 대부분은 수업 후기에 적었고, 짦은 성찰 거리만 옮겨본다. 수업 날은 언제나 즐거운 날이다.
짦은 성찰 1. 번역에 대한 설명이 좋았다. '나'를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도 알 것 같다. 그래야 ‘인지'되고, ‘인지'되어야 그 부분만큼은 ‘변화'할 수 있기에. 다시 말해 내 안의 무의식적 공간을 계속 개척함으로써 ‘의식화’하는 것이 선생님이 말한 번역 작업이 아닐까. 하이데거 였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연결되어 떠오른다. 내가 성찰를 나누면서 고미숙 선생님의 <호모 쿵푸스>이야기를 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있더라. 공유하면 이렇다. “리더란, 상황을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주변을 살펴보라. 어떤 그룹이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이는 ‘썰을 푸는’ 인간이다. 상황을 언어화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운 말과 이야기로 세상을 보는 눈을 홀라당 뒤집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혁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혁명은 늘 새로운 말, 낯선 이야기들과 함께 등장했다.”

짧은 성찰 2. 나는 칭찬 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칭찬 받는 것도 어려워한다. 지난 번에 선생님과의 벙개에서도 그랬고, 이번 수업에서도 그랬다. 선생님이 니체에 대해 썼던 글을 잘 썼다고, 어떤 부분은 부럽기도 하다며 칭찬해 주셨다. 굉장히 부끄러웠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다. 속으론 좋다. 하지만 겉으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는 느낌이다. 그저 빨리 이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는 그런 민망함?이 대부분의 감정을 차지한다. 칭찬에 왜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지, 한번 들여다 봐야 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 워낙 익숙치 않으니, 사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칭찬을 잘 하지도 않더라. 지시적 피드백에 대한 필요성, 그리고 칭찬에 대한 나의 인식을 약간은 알 수 있었다. 


7월 26일
꿀잠

낮잠은 참 좋은 것이다.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힘들었는데, 마침 오늘 아내가 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장모님과 코스트코를 다녀오면서 나에게 낮잠 잘 시간을 준 것이다. 게다가 맛있는 옥수수도 만들어 놓고 가셨다. 나는 옥수수를 오독오독 먹고, 단점에 취했다. 그렇게 2시간을 내리 잤다. 오랜만에 맛보는 꿀잠이었다. 역시 잠 중의 잠은 낮잠이다. 이러한 기회를 제공한 아내게에 다시 한번 감사를. 요즘 좀 피곤했었는데 그래도 이런 기회 덕분에 살 것 같단 생각도 했다.   


7월 13일
용마중 마지막 수업

성찰이 늦었다. 며칠 밀렸던 것이다. 사실 지난 시흥 캠프부터 정신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속도가 너무나 밀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어려워하는 전자세금계산서 발급을 비롯한 몇 가지 잡무들이 있었다. 다른 것도 대부분 약하지만 내가 그런 회계나 숫자엔 더더욱 약하다. 월요일은 용마중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 주에 대부분의 수업들이 마무리 된다. 여름 방학때는 조금 다른 스케쥴이 기다리고 말이다.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섭섭도 하다. 매번 학기 말에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 것 같다. 그래도 잘 따라와준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이 크고, 또 이렇게 인연이 일단락 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크다. 그나마 요즘은 페북을 통해서 교류를 하는 편이긴 하지만. 수업을 마치고 종각에서 심톡 관련 미팅을 했다. 이번 주 호스트는 이미영 코치님이다. 미팅은 잘 끝났다. 기존 심톡 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날이 될 것 같은 기대가 들었다. ㅋㅋㅋ 


7월 14일
이동 또 이동

사람은 참 이상하다. 낯선 곳에 갈 때, 익숙한 곳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것 같다. 절대 이성적으로 판단이 되지 않는 것이 인간이란 생각도 든다. 오늘 간 곳은 4호선 끝자락, 정왕역 근처 한국산업기술대학교이다. 평소 잘 가지 않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오이도를 가 본적도 없다. 아, 그 근처 월곶포구와 소래포구는 최근에 한번 가 봤다. 그것도 자동차를 갔기 때문에 느낌은 다르다. 이번엔 수업을 하러 갔다. 지난 주 부터 이어진 세계를 담은 스쿨 수업 때문에. 나는 사실 매주 정읍을 간다. 하지만 정읍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2012년부터 꾸준히 다녔던 곳이라 그런지, 익숙하다. 왔다 갔다 8시간이 걸리지만. ㅋㅋ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잘 가지 않는 지역이라 더 멀게 느껴졌다. 왔다 갔다 대략 4시간 정도 소요되더라. 그래도 지난 번엔 정말 멀리 갔다온 느낌이었는데. 한 2번 왔다 가니깐 조금 편해졌다. 수업도 즐거웠고, 학생들도 반가이 맞아주었고. 암튼 나는 역마살이 끼었나보다 일주일 내내 전국을 돌아다닌다. ㅋㅋ


7월 15일
당산서중 마지막 수업 

당산서중 마지막 수업. 발표를 다들 잘 해줬다. 용마중과 당산서중을 하면서 느끼는 점. 중학생들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한계와 가능성이 동시에 보인다. 그 친구들의 한계라기 보단 사실상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한계’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활동을 하기에 그 아이들에게 충분한 여유가 없더라는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아니다. 정신적 여유를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조급하지 않아야 세상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고, 누군가를 공감할 수 있다. 그래야 문제도 발견되는 법이고, 해결책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는 그런 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그저 즉각즉각 수업 시간에만 문제를 한번씩 생각해보는.. 그런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있었다. 가능성도 있다. 그건 바로 어쨌든 이러한 시도가 공교육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운이 좋게 빨리 시작하게 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공교육 혁신이 일어나는 것에 약간은 기여하고 있단 느낌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 아이들도 느낀 점을 봐도 그렇고. 암튼 이제 1학기가 마무리 된다. 


7월 16일
꿈을 꼭 찾아야 하나?

칠보 초등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쓴 시를 봤다. 전체적으로 ‘꿈’에 대한 내용이었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지막 문장이 나에게 들어왔다. ‘빨리 꿈을 찾아야 겠다.’라는 문장과 함께 마무리 되었다. 그 글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우리 사회는 꿈을 찾으라고 권하는 사회다. 원대한 꿈을 꾸라느니, 비전을 세워보라느니, 심지어는 꿈 너머 꿈을 꾸라는 말도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꿈을 꾼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꿈을 찾는 것이 중요할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꿈이 아닌 ‘자신’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꿈을 찾으러 멀리 떠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찾으러 떠나야 한다. 자신을 찾아야 ‘나의 꿈’을 찾을 수 있기에. 자신을 찾지 못한 사람이 꿈을 꾸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꿈’을 쫓게 된다. 현대 사회의 각종 욕망과 욕구가 점철된 ‘다른 사람의 꿈’이 진정 나의 꿈이라고 믿은 채로 산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삶도 뭐.. 좋다. 본인만 만족한다면. 하지만 진짜 문제는 ‘만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계속 허무하고,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또 다른 꿈으로 그 허망함을 달랜다. 혹은 쾌락의 중독으로. 


7월 17일
집에서 일하기 

오늘 잡일들을 처리한 날이다. 나는 정말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큰 흐름만 보려고 하지 디테일한 쪽으로 가면 영 귀찮다. 그렇게 일이 쌓인게 2주다. 오늘을 그렇게 회피하고 살았는데 드디어 온 것이다. 내가 귀찮아 하는 일들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견적서 보내기, 부가가치세 신고하기, 세금계산서 보내기, 기획서 쓰기, 공지 올리기 등등. 일 하나 하나는 1시간 정도 걸리는 일이지만, 막상 닥쳤을 때 처리하기 보단 이렇게 몰아서 한번에 처리하는 편이다. 요즘 사실 좀 바빠서 시간도 없었지만, 진짜 이유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오후 4-5시가 되어서 일이 마무리 되었다. 마치 미룬 방청소를 끝내는 느낌이랄까. 시원했다. 사실 중간 중간 재원이랑 놀기도 했고, 밥도 먹었다. 하루 종일 이렇게 집에서 일하는 것도 좋았다. 나중에 좀 더 글을 잘 쓰게 될 때 집에서 작업하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단 생각도 했으니 말이다. 


7월 18일
퀴즈쇼

최근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 있다. 바로 김영하 작가의 ‘퀴즈쇼’ 김영하 작가는 익히 들어왔던 소설가다. 팟케스트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으로도 만나고 있고, TED를 비롯한 강연도 재미있게 들었다. 언젠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막상 잘 읽지 못했던 작가. 그렇담 나는 왜 소설을 잘 읽는 편이 아닐까? 나는 소설을 싫어할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나도 소설을 좋아한다. 재작년과 작년에 읽은 소설들도 좀 있다. 신, 빅픽처, 천개의 빛나는 태양, 또.. 또.. 음 뭐가 있더라. 정말 안 읽는구나. ㅋㅋㅋ 내가 소설을 읽을 때 마인드는 사실상 ‘휴가’다. 나는 좀 쉬고 싶을 때, 뭔가 빠지고 싶을 때 소설을 읽는다. 그리고 그 자체가 힐링이 된다. 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아내님(당시 여친님)께 선물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걸 1년 가까이 보지 않았다. 이유는 이것이다. ‘몰아서 볼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싶다는 것. 그런 때가 올까? 사실 그런건 없다. 하지만 바쁜 일정이 끝나고 한 달에 걸쳐서 전권을 몰아서 보는 그 쾌감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나는 그래서 소설 만큼은 신중하게 보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번 ‘퀴즈쇼’는 좀 다르다. ‘그냥’보고 싶었다. 분명 요즘 너무 바쁘긴 한데, 그래도 그냥 아무 이유없이 읽고 싶었다. 그래서 읽었다. 주말 동안 틈틈히, 아내 눈치, 재원이 눈치 보면서 읽어 나갔다. 현실에 반틈, 소설에 반틈 걸쳐져 산 느낌이었다. 좋았다. 


7월 19일
퀴즈쇼 2

"나는 말이야, 아무래도 너랑 가는 길이 다른 것 같아."
“달라? 뭐가 달라?"
“나는 말이야, 아직 철이 덜 들었나봐. 나는 좀, 그러니까 뭐라고 말 해야 하나. 그냥 좀 무의미한 일을 하고 싶어.” 
“무의미한 일?"
“사람들은 대부분 의미 있는 일들을 하잖아. 돈을 벌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근데?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뭐랄까, 인생에는 그런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뭔가가 있는 것 같아.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런 세계가 전부는 아니라는 거지. ... 이간이 그런 일간지 경제면 같은 세계에만 매물돼서 산다는 건,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는 건, 너무 허망한 거 같아."

나는 퀴즈쇼에 나오는 주인공 ‘이민수’를 보면서 나를 떠올렸다. 나도 그랬거든. 나도 20대 중후반은 거의 무의미한 일에 매달린 편이다. 여기서 ‘편’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몰입했던 것도 아니라. 어쨌든 일반사람들이 보기에 이해가 안 되는 짓을 많이 했던 건 사실이다. 희안한 사람도 많이 만나고, 허송세월을 많이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그랬던 나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그 당시 나는 분명 ‘타자화’가 잘 되지 않는, 굉장히 주관적인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그런 성향을 만나니 반가웠다. 20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들고, 지금 내 모습은 무엇이 바뀌었는지,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소설책을 봤다고 해서, 그저 논 것은 아니다. 나름 가장의 역할은 충실히 하려고 애썼다. 토요일엔 타임스퀘어가서 놀고, 코스트코도 다녀왔고, 일요일엔 두레생협 가서 장도 보고, 홈플러스도 갔다. 아내가 대형 마트를 좋아하는 편이라 자주 돌아다녔다. 대청소도 했고, 재원이랑도 신나게 놀았다. 한 권의 소설책과 가족과 함께 한 소소한 일상. 음. 좋은 주말이었다고 자평한다. 


7월 6일
심톡 회의

오늘은 이런 저런 일 때문에 하루 종일 카페에 있었다. 일도 하고, 또 건강에 대한 영상도 보고.. 혼자서 잘 놀았다. 저녁에는 심톡 회의가 있었다. 우선 지난 번 심톡에 대한 피드백이 이어졌다. 해리의 성찰이 재미있었는데. 해리의 경우 지난 1년 반 동안 ‘서브 호스트’ 역할에도 불구하고, ‘참가자’ 역할에만 몰두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번 심톡에서 그나마 ‘서브 호스트’로서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참가자들과 함께 참가는 하지만, 한발짝 떨어져서 그들의 경험을 더욱 촉진하는 역할. 그 역할에 대한 인지가 반가웠다. 정선이는 지난 번 심톡 이후로 좀 더 사람들을 모아볼까? 라는 욕심이 생기더란다. 그러한 책임감이나 건강한 욕심은 반가운 일이다. 나도 욕심이 난다. 앞으로 좀 더 활발하게 공지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 싶단 생각을 했다. 나의 목소리가 들어간 자그마한 활동을 지속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 그것이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7월 7일
감정에 대한 감정

오늘 느낀 점이 하나 있다. 내가 자주 스스로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은 바로 ‘네 생각이 뭐야?’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잘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바로 ‘네 느낌은 뭐야?’이다. 나는 감정을 잘 물어보지 않는다. 관심도 없다. 나에게 감정이란 아직도 낯선 것이다. 지난 와우 수업 때부터 느끼고 있던 테마였는데, 오늘도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오늘 오전에, 이미영 코치님과 짧은 코칭 세션이 있었다. 조만간 심톡 호스트로 모실려고 생각하고 있는 코치님인데, 그에 앞서서 직접 한번 코칭을 느껴보고 싶었기에 부탁드렸다. 그렇게 시작된 1:1 코칭에서 내가 ‘나의 감정’에 대해서 얼마나 억압하고 있는지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비유를 들자면, 커다란 두 문이 나와 감정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느낌? 게다가 그 문은 어찌나 오랫 동안 닫혀있었는지 녹이 슬고, 때가 잔뜩 낀, 게다가 서슬퍼렇게 차가운.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내가 나에게 얼마나 무심한지.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앞으론 성찰일지를 적을 때 감정에 대해서도 적어보겠다고. 지금 나의 감정에 대해서 더 자주 인식하고, 표현하기로. 작은 결심이지만 잊지 않기로 하자. 쨌든, 지금의 내 감정은 다소 가벼워졌음이다. :) 


7월 8일
습관 고치기

지난 번 심톡을 연지 일주일이 넘었다. 지난 번 심톡에서 내가 고치기로 한 습관이 하나 있다. 그 습관은 바로 일어나자 마자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에 빠져드는 것이다. 페북이나 블로그를 확인하는 정도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네이버 메인 페이지로 향하고, 뉴스를 보게 된다. 그렇게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오전이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들로 흐트러진다. 그러지 않고 책을 본다거나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그럴 경우 훨씬 더 만족스럽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곤 심톡에서 말했다. 매일 체크하겠다고. 체크해보니, 일주일 동안 단 1번 성공했다. 첫 3일은 인지조차 하지 못했고, 나머지 3일은 인지는 했으나 습관을 바꾸는 것에는 실패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정말 강력한 것이 습관이다. 별 수 없다. 다시 인지하고, 아주 사소하게 일상을 바꾸는 것. 최근 들어서 내 몸과 감정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매일 아침은 나의 몸과 감정을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그런 시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자기 전에도 그렇고. 


 7월 9일
세계를 담은 스쿨 1

오늘부터 3일 동안 연속 교육이다. 교육은 바로 시흥 국제교류팀에서 주최하는 세계를 담은 스쿨.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 다소 생경한 대상과 교육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첫날 교육을 마치고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취지는 이렇다. 18명의 외국인 대학생들과 18명의 한국인 고등학생들이 함께 팀을 이뤄서 주제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그 과정에서 시흥시의 명소나 문화도 알리고, 학생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고, 대학생들은 한국어 교류도 많이 할 수 있고.. 그리고 모두에게 진로나 자신의 적성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여러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도록 구상해야 했고, 그래서 다소 준비가 많이 필요했다. 모든 강의가 그렇지만, 이렇게 또 대상이 특별한 경우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첫날 강의가 끝나고 느낀 점. 일단 나에게 도움이 된다. 왜냐면, 외국인을 대상으로 진행을 하다 보니 (물론 영어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더 친절해지고, 말이 더 느려지게 되었다. 평소 말이 다소 빠른 편이라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부럽고, 또 하고 싶었는데 이번 첫 시간은 어느 정도 천천히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집에 가는 길이 너무 멀다는 점을 빼곤 다 좋았다. ㅎㅎ


7월 10일
세계를 담은 스쿨 2

어제에 이어서 1박 2일 캠프가 있었다. 원래 어제 오리엔테이션이 6월 중에 진행되기로 했는데 ‘메르스’ 때문에 미뤄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 입장에서도, 학생들 입장에서도 잘 된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일정일수록 시간 지연이 발생할 수록 의욕은 떨어지게 되기에. 차라리 한번에 몰아서 진행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캠프라 그런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특히 어제 보다 더 쾌적하고 넓은 강의장이다 보니, 또 어제 한번 친해진 덕분에 분위기는 더 뜨거웠다. 나 역시 진행하는 입장에서 어제보다 더 여유있어 졌고. 아이스브레이킹을 비롯한 팀빌딩 게임을 했다. 내가 워낙 레크레이션에 강한 편은 아니어서, 주로 미션을 주고 피드백하는 분위기로 진행했지만, 나름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후 피드백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나 같은 경우 내가 스스로 웃긴 상황을 만들어내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약간의 웃긴 상황만 만들어진다면, 그것을 콕 집어서 배가 시키고, 확장 시키는 것에는 능하다. 이번의 경우 외국인 대학생들이 워낙 스스럼없이 웃겨주었고, 나도 그런 분위기를 활용해서 자주 웃겼다. 재미있었다. ㅋㅋ


7월 11일
세계를 담은 스쿨 3

캠프 마지막 날. 오늘은 아침부터 미션이 주어졌다. 일정 예산을 주고, 시흥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UCC를 만드는 미션.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날씨다. 거의 20년 만에 찾아오는 폭염이라는데 정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땀이 줄줄, 숨이 턱까지 찼다. 학생들이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다들 잘 만들었다. 내가 좀 아쉬웠던 점은 바로 ‘시간 관리’다. 11시까지 다 업로드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연수원이 생각보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았고, 그 때문에 전반적인 작업 속도가 느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좀 더 철저하게 확인했어야 했는데, 다시 돌아봐도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다. 그렇게 해서 12시에 마무리 되어야 할 일정이 12시 20분이 되어서야 마무리 되었다. 그래도 다들 잘 해줬다. ㅎㅎㅎ 찜통같은 날씨에 집으로 오는데 정말 힘들었다. 와서 바로 샤워하고 저녁에 아주버님의 생일 축하 겸 저녁 식사가 있어서 장모님 댁으로 갔다. 처제와 처남, 그리고 아윤이도 왔는데 재원이보다 4개월 빠른 아윤이는 정말 에너지 넘치더라. 이제 막 기어다니고 서고 그럴 때가 처제가 한시도 마음을 놓치 못했다. 아윤이가 살이 많이 빠졌던데, 그렇게 움직여서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재원이도 그렇게 돌아다닐 때가 오는데,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 




세상을 담은 스쿨




6월 29일
내 안의 스승과 대화하다

오늘 우연히 유투브에서 ‘쿠마레’라는 다큐 영화를 보았다. 스스로 거짓 스승이 되어, 사람들에게 ‘진짜 스승’은 스스로에게서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 매우 놀라운 이야기였다. 이런 수준의 다큐를 공짜로 (번역까지 되어서) 볼 수 있음에 일단 감사한 하루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만났던 몇몇 스승(이라 칭하는)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내가 무엇을 바랬는지도 좀 더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스승을 찾았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았다. 그들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지만 이 ‘쿠마레’는 말한다. 그 답은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다고. 나는 내면의 스승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스승이여. 앞으로 나에게 중요한 3가지 일은 무엇인가요? 라고 물었다. 스승이 답했다. 첫 번째. 관계를 소중히 여겨라. 가까운 관계든 먼 관계든 진심을 다하라. 두 번째. 글을 써라. 더욱 밀도 깊게, 더욱 정기적으로, 더 많은 글을 생산하라. 마지막 가르침. 그건 바로, 침묵하라. 말을 줄여라. 말하려는 스스로를 인식하라. 그리고 더 천천히 말하라. 말에 힘을 실어라. 정리하자면 이렇다. 말을 줄이고, 글을 쓰고, 관계를 소중히 여겨라. 스승의 말이 옳다. 맞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 3가지 맞다. 

쿠마레 링크


6월 30일
진욱이와 대화

오늘 오전에 오랜만에 진욱이를 만났다. 진욱이는 나와 가치중심적 성향임은 비슷하지만, 실제 행동양식은 거의 정반대다. 나는 교육쪽 관심사가 많다보니 책을 읽고, 수업을 하고, 가까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면 진욱이는 좀 더 사업가에 가깝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도 이제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던데, 대단한 일이다. 1년 만에 이 정도로 법인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과 연계되어서 무언가를 벌이는 것. 어쨌든 나는 진욱이의 지난 1년간의 홀로서기가 대단해 보인다. 나를 돌아본다. 나는 지난 2년이란 시간 동안 무엇을 헌신하고 있는지. 내가 좋아서 움직이는 활동은 늘었지만, 해야 해서 하는 것들 (사업화, 마케팅, 브랜딩 등)은 분명 많이 줄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악순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의 조화, 그것이 지혜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놓친다. 저녁엔 심톡이 있었다. 대략 지금까지 10번 넘게 진행되면서 하나 느낀 점이 있다. 나는 심톡 한번 한번의 성공이나 실패 혹은 사람들의 반응보다, 그것을 꾸준히 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는 것. 잘 하고 못 하고가 있는게 아니라, 하고 안 하고가 있을 뿐이니까. 그리고 앞의 것들이 행동에 초점을 맞춘 거라면, 뒤의 것은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마치 작가들이 ‘글을 잘 쓰는 것’ 보다 ‘글을 매일 쓰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듯. 그리고 한가지 더. 사람들에게 나눌 만한 질문을 던지고, 적절한 사람들(진지하면서도 한편 가벼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초대하면, 의미있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것. 결국 핵심은 ‘적절한 사람’ 그리고 ‘적절한 주제’다. 그 두 가지가 ‘주연'이고, 나를 비롯한 나머지는 ‘조연’에 불과하다. 그렇게 매번 주연이 빛나게 하는 것이 앞으로 심톡의 중요한 역할이 될 듯 하다. 다음 호스트는 또 누가 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 설렌다. 그 누구도 함께 할 수 있고, 또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으니까. 어제와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곤 한달 전에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심톡 전체 사진


 
7월 1일 
시스템 사고 교육

오늘 오전엔 인디언 계모임이 있었고, 오후에는 어린이를 위한 시스템 사고 교육을 선보이는 자리가 있었다. 진행되었던 곳은 이화여대 종합과학관이었는데,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대를 가보게 되었다. 사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간다는 건 언제나 낯섬과 설렘을 준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이대가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얼마나 언덕이 많은지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다른 방법을 찾았을 터인데, 그냥 무작정 지도만 보고 찾아가다보니 엄청난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날씨는 덥고, 생각보다 크기는 크고, 방학이라 그런지 물어볼 사람은 없고, 또 강의실 찾는건 왜 이렇게 어려운지. 한참을 해메다 겨우 찾아서 들어갔다.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건물배치가 아닌가. 그런 원망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ㅠ 암튼, 들어갔더니 시스템사고 교육은 한창이었다. 5-6개 정도의 게임을 통해서 쉽게 접근하도록 디자인되었더라. 워낙 미국에서 잘 개발된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나도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은 바로 ‘감염 게임’ 이 게임은 정말 재미있었다. 나중에 사람들 한 100명 정도 모아놓고 진행하면 대박일듯. 변수도 좀 더 다양하게 넣고 말이다. 2학기에 기회가 닿으면 한 학교 정도 시스템사고 교육 진행하면 재미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 배우는게 너무 좋은가봐. 


7월 2일 
피드백이란

어제 시스템사고 교육에서 이런 게임이 있었다. 2명이 나온다. 랜덤으로 2명의 사람을 뽑는다. 그럼 그 사람들이 다시 나온다. 다시 2명을 뽑느다. 그런 식으로 새로운 친구들이 늘어나면 전체 친구도 일정하게 늘어난다. 산술급수라고 하나? 암튼 그런 식으로 매 라운드마다 2명씩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2번째 게임에선 방식을 바꿨다. 2명이 나온다. 새로 2명을 뽑는다. 그리곤 앞서 뽑은 친구를 포함해서 4명이 다시 친구를 뽑는다. 그 다음엔 8명이 뽑는다. 그런 식으로 뽑다보니 금방 모든 친구들이 뽑혔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관계를 그리자면 앞의 실험은 새로운 친구 -> 전체 친구 / 뒤의 실험은 새로운 친구 <-> 전체친구 인 것이다.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원인과 결과가 일차적 관계를 맺을 때 이를 선형 인과라고 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단순하다. 예측하기도 쉽다. 10라운드가 지났을 때, 결과가 어떻게 될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원인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이를 비선형 인과라고 하며, 이것은 복잡하다. 예측도 어렵다. 확산의 속도도 매우 빠르다. 이 둘의 차이를 만든건 무엇일까? 바로 ‘피드백 고리’다. 결과가 원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지금처럼 가파르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양의 피드백 고리, 혹은 균형을 위해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음의 피드백 고리라고 한다. 이러한 피드백 고리는 ‘시스템 씽킹’의 핵심이다. 

이 피드백 고리는 디자인씽킹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무언가를 만들고, 실제 유저에게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다시 개선한다. 하물며 성찰이나 일기쓰기도 하나의 ‘피드백 고리’라고 볼 수 있다. 내가 한 행동(결과)가 다시 나의 계획(의도)에 영향을 주고, 나 자신을 바로 잡는 것이다. 그렇게 피드백 고리를 삶에서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사람은 ‘비약적으로 성장(양의 피드백)’하거나, 혹은 지나치지 않게 '균형을 잡는(음의 피드백)’다. 나는 그것을 ‘비선형적 인생’이라고 본다. 그들은 어찌 되었든 범인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간혹 피드백 고리가 없는(혹은 약한) 사람들이 있다. 같은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 이처럼 자기인식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결국 ‘선형적 인생’을 산다. 

소통하지 않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거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무엇이 옳은 삶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무엇이 좀 더 생생하고, 역동적인 삶일지는 쉽게 예상 가능하다. 인생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뽑으라면 바로 이 ‘피드백 고리’가 아닐까.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결과를 시인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하려는 탐구적인 태도. 이 모든 것이 ‘피드백’이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 '피드백 고리'는 '나는 모른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7월 3일
칠보초 발표 수업 - 나는 나야! 

칠보초에서 이번 1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대대적인 개인 발표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사실 발표 시간을 많이 갖지 않은건, 무언가 앞에 나와서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각하는 것, 함께 문제를 해결해보는 것, 협업하는 것,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 한번 정도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과제로 10장의 PPT를 만들어서 ‘나’에 대해서 발표하게 했다. 주제는 ‘나, 나의 가족, 내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 화날 때, 슬플 때, 기쁠 때, 10년 뒤 내모습..등등’ 다양하게 주었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것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평소 수업 태도가 게으른 친구들도 이번 시간 만큼은 꽤 열정적으로 임했다. 다들 정말 잘 했다. 그리고 특히 개인적으로 감동했던 친구는 5학년의 선아와 민균이다. 선아와 민균이 모두 가정 환경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둘 다 그리 친구들 사이에서 도드라지지 않는다. 민균이는 착하고 배려심이라도 많은데, 선아는 그런 편도 아니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친구들이 꽤 많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 둘 다 너무 잘 해줬다. 발표를 할 때 침착하게 한 것은 물론이요,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까지 드러낼 수 있었다. 친구들이 서로에게 준 피드백을 보니, ‘평소와는 다르게 발표를 잘 했다.’ 라거나 ‘진심을 말했다’라는 말이 종종 있었다. 나에겐 기분 좋은 일이었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나 역시 어릴 적 한번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칭찬을 받았다. 아직도 기억한다. 목소리가 좋다는 그 칭찬을. 그런 작은 단서들이 쌓여서 지금 내가 강의를 하게 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7월 4일
와우 수업 6번째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느낀 점을 나누고 싶다. 우선, 함께 모이니 좋았다. 특히 MBTI에 대한 사전 지식 덕분에 서로에 대한 차이점을 좀 더 ‘공유된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초반에 선생님이 ‘다양성’에 대한 언급을 했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가급적 다양한 성향과 성별을 모으려고 노력하셨구나.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혼란스러웠다. MBTI를 제대로 공부해 본 것은 처음이라 그런지, 그리고 아직 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별로 없어서 인지 내가 어떤 유형인지, 무엇이 더 나다운 것인지 헷갈렸다. 나 덕분에 다들 더 헷갈려하시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움이 나로썬 더 반가운 일이기도 했다. 이렇게 탐구할 만한 거리가 주어진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다. 이렇게 절반이 끝났다. 생각해보면 올해도, 인생도 대략 절반 정도 온 것 같다. (물론 내 인생은 좀 더 남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활력있는 시절은 절반 정도 남지 않았을까) 아직 뭔가 해보기도 전인데, 승부를 걸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간이 반이나 흐른 느낌이다. 자기다움 5장면에서도 나왔지만, 나는 뭔가 지지부진하고, 이것이 내가 가야할 길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 그렇게 절박할 때 움직인다. 이젠 나이가 더 들었다. 더 현명해지고 싶다. 건강에 절박해졌을 때는 이미 늦다. 삶도 마찬가지다. 이젠 더 빨리 내다보고, 먼저 움직이고 싶다. 아쉬움을 뒤로 남기고 싶진 않다. 전심전력으로, 생생하게, 살아나가고 싶다. 와우도, 올해도, 내 인생도. 


7월 5일
일산 호수공원

한 차례 메르스 태풍이 지나간, 평화로운 오후다. 아내는 오늘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듯 보였고, 나 역시 그저 집에서 쉬는 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결정한 목적지는 바로 ‘일산 호수공원’이다. 서로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아내는 원래 일산을 좋아한다. 그 깔끔한 분위기. 그리고 나는 ‘알라딘’이 목표였다. 일산 지점이 예쁘다는 소식을 이미 접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우린 일산으로 향했다. 아웃백에서 맛있는 밥도 먹고, 호수공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중간에 뽑기도 했는데, 아내는 엄청난 실력으로 정확히 뽑아내는데 성공했다. 근처 초딩들이 굉장히 부러워한다는 걸 난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달아서 반쯤 버린건 함정. 어릴 적 추억이 파릇파릇 돋아났다. 즐거웠다. 라페스타를 구경하다가, 홈플러스가서 재원이 맘마도 먹였다. 결국 마지막 종착지는 알라딘. 둥근 구조가 참 예뻤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나는 2권의 책을 구입했고, 아내 책도 하나 사주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자 하루가 다 지나갔다. 피곤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바깥 나들이를 나갈 수 있음에 행복한 일요일이라 총평한다. 



읽게 된 계기

우연히, 페북에서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쓴 글을 보게 되었다. 읽으려고 봤더니, 절판이더라. 그래서 중고책방에 간 김에 찾아서 읽게 되었고, 내용이 그리 많지 않길래 그냥 그 자리에서 초서까지 끝내고 나왔다. 물론 책은 사서 봐야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보기도 한다. 특히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고, 굳이 재독할 필요가 없는 책들은 이렇게 잠깐 보거나, 빌려서 보고 초서해서 반납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를 폄하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공감할 부분은 대단히 많았고, 쓸데없이 어려운 문체가 아니라 쉽게 술술 읽혔던 좋은 책이다. 게다가 나 역시 요즘 들어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달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생각에 많은 도움을 얻은 책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이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문화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생각하고 글을 쓰라. 이제 글쓰기는 필수다."


딜리셔스 샌드위치 / 유병률 


옮겨적기 

1.
문화경쟁력 갖추기

‘샌드위치 한국’이 ‘딜리셔스 한국’이 되려면, 관건은 문화경쟁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성장력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보루는 생산성이라고 했습니다. 생산성은 노동과 자본을 어떤 방식으로 조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노동과 자본 투입량이 같아도 산출량이 크다면 생산성이 높은 것입니다. … 문화적 언어로 소통되는 문화제국에서 생산성은 얼마나 유연한 문화 환경과 콘텐츠를 가졌느냐에 의해 좌우됩니다. 

+ 창조 경제의 핵심은 '문화'다. 중동에, 남미에 일하러 가는 것이 만사가 아니다. 높은 문화의 힘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청년들에게 일단 뭐가 되었은 '일하고 보라'는 메시지도 나는 싫어한다. 청년들에게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가치인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 문화적 관점이 필요하다. 일단 채워놓고 보자는 식의 '수량 위주의' 일자리 정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러한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면 결국 우리나라도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 
자기만의 연구실을 가져라

꼭 찾아내야 할 한 가지는 바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입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연구실을 가져야 합니다. 지식과 정보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 그리고 미치도록 파고들 수 있는 자기만의 여유로운 밥벌이를 찾아보십시오. … 이미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자기 위치를 더 탄탄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언제든 홀로서기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늘 연구하는 제가 필요합니다. 연구는 교수나 과학자만 하는 게 아닙니다. 

+ 일에 대한 이 정의가 참 좋았다. '미치도록 파고들 수 있는 자기만의 여유로운 밥벌이' 이 단어를 보자. <미치도록 파고든다>는 말은 일에 대한 '몰입'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여유있는 밥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일에 매몰되지 않는 것. 즉, 적당한 '성찰'이 동반되는 일을 말한다. 즉, 몰입과 성찰을 동반하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한 가지만 있어선 안 된다. 몰입 없는 성찰은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성찰 없는 몰입은 '방향성'에 한계를 가진다. 우리에겐 둘 다 필요하다. 그러한 '새로운 창조'를 위해선 분명 자기만의 연구실이 필요한 법이리라.

3. 
하버드는 왜 글쓰기 교육에 올인하는가

하버드대학이 가장 신경쓰는 분야는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과목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도 안 시켜준다. 그 이유는 바로 세계적 리더 양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이 글쓰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이렇게 철저히 글쓰기교육을 시키는 학교이기 때문에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대학원 리처드 라이트 교수는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에서 “하버드생들이 4년 동안 가장 신경쓰는 분야가 바로 글쓰기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은 대학생활은 물론 직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다.”라고 강조한다. … 생명공학에 대한 글쓰기 가이드를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글쓰기는 다른 과학자들은 물론 대중과 과학에 대한 아이디어와 과학적 발견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과학을 연구하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실험노트를 작성하고, 연구제안서를 쓰고, 연구논문 형태로 스토리를 얘기하는 것 모두가 과학적 사고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 나는 외국 대학에 대한 부러움이 별로 없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한 가지 부러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글쓰기'에 대한 훈련이 그것이다. 미국도 그렇겠지만, 특히 옥스포드 대학의 경우 글쓰기와 토론 훈련을 엄청나게 시키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 사고하는 훈련은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대학 시절에 가장 등한시 한 것이 이런 공부이고, 뒤늦게나마 시작하려는 것도 결국 '살아가면서 한번은 넘어가야 하는 숙제'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다. 왜 미리 시작하지 못했을까. 안타깝다. 

4.
익스포스(하버드대 논증적 글쓰기 프로그램)의 목적

하버드는 익스포스(논증적 글쓰기 과정)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글쓰기와 사고력은 뗄 수가 없다. 훌륭한 사고력은 훌륭한 글쓰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 한 회계학 교수는 자기의 중급회계학 수업에서 비즈니스와 관련없이,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에 대해 페이퍼를 쓰라는 숙제를 낸다. … 2007년 하버드대 낸시 소머스 교수는 국내 한 주간지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하버드는 사회에서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익스포스를 진행하고 있다.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단순한 학습효과를 뛰어넘어, 능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회인으로서의 덕목을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생각을 탄생시키는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학문적인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분야에 꼭 필요한 과제다.” 정리하면, 공부를 잘 시키기 위해서뿐 아니라 능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그렇게 모질게 글쓰기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다. 

+ 글쓰기와 사고력은 서로가 서로를 형성한다. 높은 사고력(내용)도 높은 글쓰기 능력(형식)이 없다면 담길 수 없고, 높은 글쓰기 능력도 사고력이 없으면 담을 내용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형성한다. 내용과 형식은 분리될 수 없다. 말에 비해서 글이 가지는 한 가지 강점이 더 있다. 말은 휘발성이 강하지만, 글을 어쨌든 세상에 자취가 남는다. 내가 쓴 글이 나를 지탱시킬 때가 많다. 게다가 블로그에 쓴 글은 더욱 그렇다. 일단 이렇게 살겠다고 말했고, 글로 썼다. 그 글을 많은 사람들이 봤다. 나도 흔들릴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을 나침반으로 삼고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글이 가지는 '자취'가 내가 흔들릴 때 삶의 '지도'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5. 
리더 교육과 글쓰기

인재양성이나 리더교육을 위해 왜 글쓰기가 이렇게 중요할까? 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보다 합리적인 사고의 정리를 위해 글쓰기보다 더 유효한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글을 쓰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고, 글로써 보다 명료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보다 선명한 ‘소통’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위로 납작 짓눌리지 않고 세대구분 없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자기 삶의 키를 스스로 쥐고 살아가며, 나아가 어떤 분야에서든 리더가 되려면 이렇듯 글쓰기능력이 필수적이다. 

+ 소통을 하기에도 글이 더 낫다. 누군가 21세기는 이미지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적이 있다던데, 나는 반대한다. 되려 21세기는 '텍스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보는 편이다. 스마트 폰에 최적화된 것은 바로 '글'이다. 우리는 언제나 쓰거나, 읽는다. 주로 이용하는 페북도, 뉴스도, 카톡도 결국 글이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텍스트들이 인터넷을 범람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결국 이미지도, 영상도 아닌, 글이다. 해석할 여지를 가장 많이 남겨둔다는 점에서도, 앞으로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컨텐츠는 바로 '글'이 될 것이다. 

6.
과학자과 글쓰기

과학자들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연구도 더 잘한다고 합니다. 1996년 노벨상을 받은 피터 도허티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2005년 국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과학을 연구하려면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과학자가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연구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생각도 명확하게 한다. 그래서 연구를 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 글을 잘 쓰기로 유명한 과학자 정재승씨를 보면 분명 그런 것 같다. 

7. 
배움을 위한 글쓰기

지금의 글쓰기는 자기가 알지 못한 것을 찾아보게 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취재는 작가나 기자만 하는 게 아닙니다. 일기를 쓰는 게 아닌 이상, 글 쓰는 사람은 인터넷이든 보고서든 신문이든 책이든 뒤져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관심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생각과 이질적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줍니다. 오히려 독서보다 글쓰기를 하면서 배우고 알게 된 것들이 진짜 자기 것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뭘 읽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뭘 썼는지는 기억하지 않습니까? 

+  이건 내가 글을 쓰면서 정말 경험하는 것이다. 일단 글을 쓰기 위해선, 관심의 폭을 넓혀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물론 레퍼런스가 필요없는, 평소 일상의 성찰글이나 일기를 쓰는 것에는 다른 공부가 필요없다. 하지만, 주제가 있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선, 그 주제와 관련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들어봐야 하고, 또 신뢰를 쌓기 위해서 다른 책도, 강의도 봐야 한다. 그렇게 글을 쓰면 공부가 많이 된다. 그건 정말 이다. 최근 그런 글쓰기를 실험해 보고자, 니체에 대한 글을 길게 한번 쓴 적이 있는데, 짦은 기간이었음에도 꽤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링크 <프리드리히 니체를 만나다>

8. 
안 쓰면 안 된다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글을 잘 쓰자’는 것이 아니라, ‘안 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친구와 ‘메신서’ 하듯 글쓰기를 친숙한 도구로 가까이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 통로가 블로그가 됐든, 미니홈피가 됐든, 카페가 됐든, 언론사 시민기자를 하든, 책을 쓰든, 글을 쓸 물리적 능력이 되는 모든 국민이 자기만의 ‘지식발전소’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를 일상적인 도구로 활용하게 되면,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정신능력의 두 배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글쓰기라는 도구를 갖지 못했거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정신능력의 절반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겠죠. 

+ 지식을 공유하는 통로는 다양하다. 나의 경우 주로 페이스북과 블로그다. 페북에는 일상적 글을 짦은 글을 올리고, 블로그에는 일기를 모아서 올리거나, 책을 읽고 공부한 내용을 올리거나, 칼럼 형태로 쓰거나 한다. 물론 사람들은 별로 오지 않는 작은 블로그이지만, 그래도 나만의 <지식 발전소>를 갖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나에겐 의미있는 공간이다. 가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교류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그들이 어떤 통로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로가 없으면 소통도, 교류도, 창조도 없다. 

9.
발상과 표현기법

커트 행크스는 <발상과 표현기법>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디어는 단지 생각일 뿐, 생각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점이 창의적인 사고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을 고정시켜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재빨리 언어나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종이 위에 구체화시켜 놓아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은 완성된 상태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창조에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흘러나오게 한 뒤 종이 위에 일단 고정시켜놓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토머스 에디슨 등 위대한 창조력을 가진 사람은 모두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생각을 보존하고 발전시켰다."

+ 창조의 핵심은 표현이다. 표현되어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 그것이 꼭 다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도 '표현된 아이디어' 덕분에 생각을 공유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뭔가를 꺼내고 표현해야, 나도 보고, 다른 사람도 본다. 내가 되었든, 남이 되었든 그 아이디어에 대해서 논할 수 있기 위해선 일단 꺼내야 한다. 습작이라도 좋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 만으로도 대접받을 필요가 있다. 

10. 
쓰기 시작할 때, 쓰고 났을 때

사람들은 첫 한두 줄을 읽고는 재미가 없거나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모르겠으면 더 이상 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 처음 한 두 줄만 읽고도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가장 머리 쥐어뜨는 대목이 바로 리드입니다. 한 시간 기사를 쓰면 20여 분은 처음 한두 문장에 할애하지요. 리드만 완성되면 기사의 절반 이상을 쓴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입니다. 

<생각의 탄생>에도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 그러면서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위에를 비롯한 많은 작가는 편집자에게 원고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유감이라는 편지를 썼다. 그들은 한결같이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양이 절반으로 줄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소개합니다. 결국 짚어봐야 할 것은 ‘뭐 빠진 게 없나’가 아니라 ‘빼도 상관없는 단락이 없나’라는 얘기다.

+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 본 적이 없는 나의 경우에는, 이런 기자들이 참 부럽다. 기자들은 태생부터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할까?"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그런 흡입력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 그런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일단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하지만 때가 되면 나도 품어야 할 질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하기 위해선 어떤 글을 써야 할까?'라는 질문. 나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다. 


연결 고리


  1. 조아하자 2015.07.08 21:45 신고

    솔직히 저는 원하는 일 하라는 메시지에 반대해요. 제가 그 원하는 일 찾아서 했다가 인생 말아먹었거든요 ㅡㅡ 지금은 재취업해서 다시 일하고 있는데 이전보다 훨씬 못한 급여에 훨씬 못한 삶을 살고 있어요. 현실이란건 쉬운게 아니에요. 특히 그 원하는 일이 남을 돕는 일이라면 훨씬 더 어렵지요. 나 자신이 자립하지도 못하는데 남의 자립을 이야기하는 것, 솔직히 웃기잖아요? 저도 남을 돕는답시고 제가 원하는 일 찾아 나섰다가 언젠가 제 자신을 돌아보니 그 일로 제 자신이 자립할만한 돈도 못버는데 남의 자립을 이야기하고 있더라구요~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멘토들의 메시지가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착취 전략이라고 말하는데 이 주장에 어느정도 동의해요. 돈 상관 안하고 정말 좋아서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갑의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악한 마음을 먹고 착취하기도 쉽지요. 오죽하면 열정페이같은 신조어가 생겼겠어요...

    • 댓글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원하는 일을 하는 것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그 사이에서 괴리는 정말 아는 사람만 알죠. 언듯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실제론 어마어마하지요. 남을 돕는답시고 원하는 일 찾아 나섰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도 저를 포함해 주위에서도 종종 보는 일입니다. 화영님도 고생 많이 하셨군요. 얼마나 상심이 크셨을까요. ㅠㅜ 다만, 전 "원하는 일을 하라"는 메시지 전부를 비판하는 것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그 메시지에는 '전제'가 있고, 그 전제를 잘 염두해 둔다면, 그리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전제에는 일단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떠오르는 데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로는. (지금까지 원치않은 일만 해 왔다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인식해보고, 한번 도전해보라. 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 보다는 한번 정도는 물길을 다른 쪽으로 열어보는 것. 그 정도는 삶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다양성 측면에서도, 환기의 측면에서두요. 두번째로는 원하는 일을 하라, (단,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있지요. 그저 믿음 만으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명확한 현실인식은 원하는 일을 하고 살려는 이상주의자들 일수록 필수라고 봅니다. 자기객관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무작정 뛰쳐나오는 경우도 많이 보는데, 그런 경우는 저 역시 말리는 편입니다. 위험하지요. 마지막으로는 (남이 아닌 내가) 원하는 일을 하라. 라깡이 말했듯, 우린 자신의 욕망을 잘 인지하지 못하지요. 타인의 욕망,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욕망인냥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경우, 시간이 지나면 방향성은 흐지부지해지고, 결국 '허무함, 혹은 원망'만 남지요. 내가 겨우 이거 할려고 그랬나? 라는 후회와 함께요. 저는 이러한 몇 가지 전제 조건을 마음에 두고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런 조심성 없이 무작정 도전하라, 원하는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책임감 없는 멘토들은 저도 싫어합니다. 열정페이도 그런 맥락에서 마찬가지구요. 그러고 보니, 저는 맹목적 이상주의자도, 맹목적 현실주의자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네요. 글을 쓰면서 저의 몇 가지가 인식된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나눌 수 있어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6월 22일
작가란 무엇일까

오늘 아침, 작가수업이란 책을 꺼내 들었다. 인상 깊은 구절이 2개 있다. 첫째. 글을 잘 쓰는 것과 작가가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맞다. Doing과 Being의 차이점은 생각보다 큰 법이다. 작가의 삶을 산다는 것과 작가처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작가의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창조적 자아와 비판적 자아를 키우는 것이다. 그것이 두번째 인상깊은 구절이다. 이것을 처음 들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다시 읽어보니, 그리고 요즘 창조적 자아와 친해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더 와닿는다. 어쩌면 둘 다 내 안에 있는 친구다. 내가 일찍이 잘 놀아주지 못했던 친구들. 그 친구들을 새롭게 만나고, 놀고, 친해지고, 그들과 통합되는 것. 그것이 작가가 아닐까. 그러므로 당연히 작가는 글쓰기와는 좀 거리가 있다. 그렇게 논 결과가 글로 나오는 것이 책일 뿐, 굳이 책을 쓰는 것이 작가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나는 여기서 한 명의 친구를 더 추가하고자 한다. 창조적 자아와 비판적 자아와 함께 놀면 좋은 자아는 바로, ‘관찰적 자아’다. 이 모든 상황을 내려다 보면서, 어떤 자아가 활동하고 있는지, 어떤 자아는 숨죽이고 있는지, 관찰하고 나에게 알려주는 역할. 즉, 깨어있기 위해선 관찰적 자아의 힘이 필요하다. 관찰적 자아는 서로 거리가 먼 두 자아들의 연결고리가 되어 준다. 내 안에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 나가는 재미. 그것이 예술가의 특권이자 의무가 아닐까. 삶의 예술가가 되고 싶은 나에게도 이 사실은 중요하다.  


6월 23일
검단초 수업을 마치고

오늘 성남에 있는 검단초 수업을 마무리했다. 4학년들과 지난 3개월에 걸쳐서 5번 정도 수업을 진행했는데, 작년보다 더 재미있었다. 왜냐면, 좀 더 오랫동안 수업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아이들 한명 한명이 눈에 들어올 수 있었기에. 그리고 나 역시 새로운 수업 자료를 만들어 보고, 또 실험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새롭게 만들어 본 2개의 독서토론 주제는 ‘경쟁’과 ‘자유’다. 그것을 나는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과 ‘스갱아저씨의 염소’라는 책을 기반으로 아이들과 나누었는데 꽤나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실제 이슈를 가지고 토론을 해보기까지 했으니 더욱 좋았고. 아이들의 피드백을 받아보았다. 끝나서 아쉬워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 중 몇몇은 별 느낀 점이 없었는지 쿨하게 “안녕히가세요”라고 한 글자씩 쓴 아이들도 있었다. ㅋㅋ 마지막 반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려는 길에 몇몇 아이들이 손을 내밀더라. 뭘 주려는지 보니 자기들이 쓰는 샤프랑 볼펜 이런걸 주는 게 아닌가. 헐. 내가 아이고 괜찮다고 너희들 써야지 나한테 주면 어떻하니. 하면서 아무리 만류하고 다시 도로 집어 줘도 막무가내로 나에게 집어넣는다. 끝까지 씨름했지만 아이들이 결국 이겼고, 나는 아이들이 주는 걸 가지고 왔다. 아이고.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참 짠했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나. ㅠ 

어떻게 갚아야 하나 ㅠ


6월 24일
의존성, 독립성, 그리고 상호의존성
 
근대 철학은 말한다. 인간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라고.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까먹어버려서 일어나는 착각이다. 무슨 얘기냐면, 재원이를 키우면서 느낀 것이다. 우리 아가는 철저히 의존적인 존재다. 심지어 처음 태어났을 때는 스스로 몸을 가둘 수도 없다. 옆의 사람들이 목을 잡아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하물며 그것 뿐이랴. 2-3시간 단위로 밥도 먹어야 살 수 있고, 혼자선 옷도 못 입는다. 똥이랑 오줌도 다 갈아줘야 한다. 그렇게 약 3년의 시간이 흘러야 그제서야 인간은 부모의 행동과 태도를 모방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허긴 그러고도 30년 정도가 흘러서 아이를 낳을 때 쯤에 인간이 되지만. 나처럼 말이다. ㅎㅎ 이처럼 인간은 철저하게 의존적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느낀다. 아, 내가 혼자 잘나서 지금까지 살아온게 아니구나. 나 역시 철저히 의존적인 상태가 있었고 그 당시 부모님의 헌신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도 없겠구나. 지금까지도 어떤 영역에선 의존적이고 말이다. 그러한 ‘관계’에 눈을 뜨지 않으면 자신의 1/3만 보고 있는 것이다. 스티븐 코비가 말했다. 의존성을 넘어 독립성이 있고, 그것을 넘어 상호의존성이 있다고. 독립성으로 나아가야 서로의 힘을 보태서 더 큰 것을 만들어내는 상호의존성, 즉 시너지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 첫 시간은 철저히 의존적이었음을, 그 기간에는 충분히 의존적이어야 함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디폴트값이기에. 아침에 재원이를 보면서 느낀 점이다. 


6월 25일
에피톤 프로젝트

나는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다. 하지만 듣는 수준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교양 있는 편도 아니다. 그저 내가 듣기 좋으면 그게 좋다.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케이팝도 자주 듣고, 팝송도 끌리는대로 듣는다. 그런 내가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듣고 있는 가수가 있다. 바로 에피톤 프로젝트다. 몇년 전에 우연히 듣고 나선, 이후 발매되는 대부분의 앨범을 듣는 편이다. 비록, 콘서트엔 가본 적은 없지만 이렇게 나와 맞는 뮤지션을 발견하고, 함께 한다는 건 기쁜 일이다. 사실 오늘은 정읍 가는 날이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오전은 자연스럽게 개인 작업 시간이 되었다. 밀린 책도 보고, 초서도 하고, 못 다 만든 강의도 손 보는 그런 나만의 시간. 나는 이 시간을 참 좋아한다. 오늘도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들으니 참 좋더라. 따뜻한 햇살, 흔들리는 창가, 적당히 조용한 버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널리 홍보하지 않아도, 자신의 목소리나 생각을 꾸준히 알리고, 그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그의 결과물을 기다리고. 그렇게 새로운 결과물을 가지고 대중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창조적인 작업을 하러 들어가고. 작가나 음악가, 미술가.. 등 내가 생각하는 모든 예술가들은 일정한 흐름이 존재한다. 나도 그 흐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나만의 창조적인 시간을 갖고, 결과물을 만들고, 그것으로 다시 사람들과 공유하고, 더 큰 것을 공동 창조하는 것. 그런 멋진 화음을 만들어내고 싶다. 

6월 26일
청년참 인터뷰, 디씽 교사연수 있던 날

오늘은 청년참 인터뷰가 있는 날이다. 커뮤니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프로그램인데, 나도 한번 지원해봤다. 그래서 불광동 청년허브로 갔다. 인터뷰를 하고, 청년허브에서 일도 좀 했다. 그나마 여유있는 오전, 오후였다. 오후 늦게부턴 ‘디자인씽킹 교사연수’가 있었다. 지난 주에 미술과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봤는데, 이번 주는 그 2번째 시간이다. 이번 주제는 ‘미술 교실’을 더 낫게 디자인하는 것! 다들 미술쪽 분야 선생님들이셔서 그런지 정말 멋진 아이디어와 프로토타이핑 실력을 보여주셨다. 내가 한 수 배운 느낌. 워크샵을 마치고 몇몇 선생님들이 말씀을 걸어주셨다. 한 선생님은 지난 수 수업 끝나고 오늘이 굉장히 기다려졌다는 분도 계셨고. (황송하게도) 어떤 선생님은 방학 중 프로그램을 같이 해보자는 분도 계셨다. (황송 황송) 다행히 워크샵이 좋게 느껴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수업을 하고도 힘이 빠지기 보다는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나눌 수 있어서 더 힘이 나는, 그런 행복한 수업을 했단 생각이다. 요즘 그런 수업이 많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6월 27일
합정 메세나폴리스

오늘 오전에는 소아과 병원에 들렸다가 왔다. 재원이가 요즘 계속 응가를 자주해서 갔는데, 그래도 속 상태는 좋단다. 시간을 갔고 지켜보자고 말씀하신다. 집에 와서 잠깐 쉬었다가 오후에는 합정 메세나폴리스에 갔다. 집에서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아내랑 평소에도 자주 왔다 갔다 하는 편이다. 최근 유행하는 메르스 때문에 사람들이 적지 않을까 했었는데, 날씨가 좋아서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특히 메세나 폴리스는 동그란 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하는 편인데, 그 분위기가 참 좋다. 뭔가 가족적인 분위기. 과거에 어딘가에서 ‘둥근 구조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딱딱한, 네모형의 집’에 사는 사람들 보다 스트레스가 적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나에겐 메세나폴리스에서 그러한 ‘둥근 구조’가 주는 긍정적 힘을 느낄 수 있다. 아, 다른 좋은 예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도 있다. 다만 단점은 그렇기 때문에 길이 헷갈리기 쉽다는 점. 그리고 자주 이용하는 길 이외에는 잘 가지 않게 된다는 점. 뭐 몇 가지 단점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둥근게 더 좋다. 홈플러스에서 몇 가지 필요한 걸 사고, 망원동 미스터피자에서 피자를 먹고, 망원시장을 거쳐서 집으로 왔다. 시장을 거쳐서 오는 길에 수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거의 나이 많으신 할머니들은 꼭 재원이를 보면서 한 마디씩 하시더라. 인상깊은 말은 ‘참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장군감이다’ ㅋㅋ 지금 살이 많이 쪄서 그렇게 보이나보다. 그런 주말이었다. 재미있었다. 

참 예뻤던 우산과 하늘



6월 28일
빠르다. 일요일은. 

오늘 일요일은 여느 일요일과 좀 달랐다. 보통 4-5시에 한번 깨는 재원이는 오늘은 새벽 2시 50분쯤 깼다. 한참을 울고 불고 하길래, (아내는 몸이 좋지 않았다) 내가 재운다고 재원이를 포대기로 품었다. 새벽 3시 반이었나, 그때부터 포대기를 했는데 한참을 돌아다녔다. 재원이가 푹 잘 수 있도록. 4시 넘어서 재원이를 다시 눕혔더니 내 잠이 다 깨버렸더라. 그래서 난 오랜만이다 싶어서 책상 앞으로 갔다. 요즘 주말에는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을 보고 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진도가 안 나가던 차였다. 이왕 잠이 깬거 그냥 읽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7시 넘어서까지 책도 보고, 중간 중간 놀기도 하면서 개인 시간을 보냈다. 아침이 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잠이 너무 모자랄 것 같은 걱정. 8시쯤 다 되어서 다시 누웠다. 아내는 눈을 뜰려고 하고 있었고, 마치 바톤 터치처럼 나는 뻗었다. 그렇게 2시간을 더 자고 일어났다. 그리곤 뭐 1시까지 청소하고, 오후엔 책도보고 티비도 보다가, 오후 늦겐 장모님과 이모님, 형님, 아주버님과 밥먹고 들어왔더니 하루가 다 갔다. 아기와 함께 하는 일요일은 참 빠르다. 정말로 말이다. 찰나라고나 할까. 


지난 번 도입 글에 이어서, 이제는 각각 책에 대한 한줄 리뷰다.
우선 1월과 2월에 읽은 책들이다. 바로 스타트


2015년 1월 
1. 어떻게 살 것인가_유시민 

+ 나는 유시민이란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가 한참 유명해지고, 활동 할 당시의 나는 정치에 전혀 무관심이었으니까. 하다못해 100분 토론에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꽤 좋아하는 사람이다. 올해 초, 유시민이란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자 해서 산 책이 <나의 한국현대사>였고, 빌려서 본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란 책에 대해선 초서를 한 적이 있다.링크입니다.어떻게 살 것인가, 핵심은 이것이었다.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자.”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이다. 

2. 블리스, 내 삶의 신화를 찾아서_조지프 캠벨

+ 내가 진행하는 독창적인 수업 중에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가 있다. 사실 작년에 매달 심톡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워크샵을 디자인하고, 또 진행해보는 경험을 했었는데 그 과정에 만들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기존에 있던 것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 이 <자신찾>에 애정이 생겼다. 이 책은 이 워크샵을 하루짜리 워크샵으로 확장시키고자 해서 들여다 본 책이다. 조지프 캠벨이 새롭게 만든 책은 아니고, 그가 했던 말을 잘 편집해서 ‘주제’에 맞게 배열한 책이다. 하지만 꽤 재미있게 편집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세계관과 잘 맞아 떨어져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 올해 1월의 책!

3.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_이희석

+ 올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 바로, 와우 스토리 연구소의 10기 연구원이 되는 것이다. <와우랩>이란 이희석 선생님을 필두로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진 커뮤니티다. '마음을 나눈 사람들의 자기실현 학습 커뮤니티’ 굳이 비교하자면, 구본형 변화연구소의 연구원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희석 선생님도 구본형 선생님의 제자이기도 했고, 느낌도 비슷하다. 원래 나는 구본형 선생님께 한번 배워보고픈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 작고하시면서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와우랩과 인연이 닿아서 올해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 독서축제란 이름으로 숙제를 하는 것이 있는데, 이 책이 첫 책이다. 나의 합류는 다소 늦게 이루어져서 이번 책은 리뷰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분실하는 바람에 꼼꼼히 리뷰도 못 하지만, 읽는 동안은 ‘독서법’에 대한 좋은 개론서라고 느껴졌다. 

4.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_짐 로허

+ 앞서 설명한 <와우랩> 2번째 책이다. 이 책의 초서와 리뷰는 여기. 링크입니다. 일반적인 자기계발 서적과 비교했을 때,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특히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다'라는 점에서 아주 공감했다. 충분한 ‘감정적, 신체적, 정신적, 영적’ 에너지가 있어야, 짦은 시간에도 몰입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점. 공감한다. 마지막 장에서 언급된 목표, 현실, 행동도 유익했다. 목표는 나의 내적 가치와 자기 이익을 뛰어넘는 것. 현실 인식은 진실과 대면하고, 자기 기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행동은 지속적인 의식의 활용으로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 이 책에선 리츄얼의 중요성을 많이 언급하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 제대로 된 리츄얼이 없단 생각도 한다. 아직 일상을 가지런하게 만들지 못했다. 다시 한번 재독하고 싶다. 

5. 유태인의 공부_정현모

+ 2015년 1월은 아내의 출산이 임박한 때이자, 특히 1월 22일엔 우리 재원이가 태어난 날이다. 그래서 1월 중순 이후에는 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사실 우린 자연출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1달 먼저 태어나는 사람에 결국 종합병원에서 낳아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교대역 <메디플라워>라는 곳에서 상담도 받고, 교육도 듣고 있었다. 자연출산으론 가장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갔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출산을 앞둔 분들에게 내가 많이 추천하는 곳이기도 하고. 여기서 대기하면서 읽었던 책이 <유태인의 공부>다. 마음에 드는 몇 문장이 있었다. 하지만 구입해서, 아주 몰입해서 볼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란 정도의 책이었다. 


2015년 2월
6. 희망의 인문학_얼 쇼리스

+ 2월도 갑작스런 1월 출산의 여파 때문에 많은 책은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은 정말 의미있게 읽었다. 바로 <희망의 인문학>이다. 너무 좋게 읽어서 리뷰를 남긴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구나. 그때 쯤 정신없어서 그런가보다. 핵심은 인문학이 ‘(물질적, 정신적)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얼 쇼리스는 여기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어찌보면 이 책은 오랜 나의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비 앞에 있는 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결국 인문학이란 회의하고, 탐구하여 기존의 ‘나의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정의지만,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인문학이란 나의 공간을 뛰어넘어 ‘타자의 공간’에 합류하는 것이다.라고. 얼 쇼리스는 이를 정치적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얼 쇼리스도 동의하는 건, 정치적 삶을 살기 위해선 가장 먼저 ‘성찰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찰적 사고란, 나의 생각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능력이다. 이것이 없다면, 우린 나를 이해할 수도, 서로를 이해할 수도, 사회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린 괴태의 말마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경멸한다. 즉, 타자의 공간에 합류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성찰’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이 연결고리를 배웠다. 고마운 책이다. 올해 2월의 책!

7. 인생수업_엘리자베스 퀴슬러 로스

+ 와우랩 3번째 책.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있었다. 한때 열풍이 불었던 책이고, 나는 이상하게도 베스트셀러를 잘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책도 대충 봤던 거 같긴 한데 제대로 기억이 나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할 때는 잘 안 보다가, 시간이 지나서 뒤늦게 읽고 좋다고 선전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사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당시 내 관심사를 굳이 바꿔서까지 읽고 싶지는 않은 것일 뿐. 그랬던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 였고, 이번 <인생수업>도 그런 책이다. 읽고 나니, 참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리뷰는 과거에 적었다. 링크입니다.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은 앞서 <어떻게 살 것인가>와 비슷하다.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그리고 배우라.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다.” 

8.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_진 리들로프

+ 2월에 한참 육아에 관심이 많을 때 봤던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바로 ‘안고 다녀라’라는 것. 이 책에 나오는 예콰이족의 경우, 아이를 항상 안고 다닌다. 그렇게 언제나 아이를 안고 일을 하고 일상생활을 한다. 그럴 경우 자라서도 우리가 걱정하는 응석받이가 되기보단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지키는 육아법이라고 말하는 책이 이 책이다. 물론, 소수 민족의 육아법을 예로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사회와 너무나 다른 맥락에 있기 때문에 이것만이 육아의 진리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분명 우리 사회는 주 양육자와 아이의 밀착을 너무나 관과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100% 밀착이 너무나 힘든 건 알지만, 이런 책들로 인해 적어도 20-30%에서 40-50%까지라도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건 의미있는 책이 아닐까? 

9. 올바른 생계수단에 대하여_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의 엄청난 책이다. 인도의 성자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높게 치는 사람이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오쇼 라즈니쉬를 비롯한 많은 성자들은 가짜다. 스피노자가 말했듯,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뿐만 아니라 드물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별의 교단 해체를 선언한, 이 시대에 보기 드물게 권력을 뒤고 하고, ‘진리는 네 안에 있다’고 말한 사람이다. 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그래서 존경하는 사람이다. 이 분이 썼던 글을 옮겨 적은게 있는데 아직 리뷰를 쓰지 않았다. 조만간 올려야 겠다. 하나의 문답만 올려보도록 하겠다. 크리슈나무르티의 핵심적 사상을 말하고 있다고 느껴지기에. 

Q. 어쨌거나 문제는 제가 어떻게 보통의 평균적인 평범한 사람은 안 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A. 내가 한마디 더 하자면 이렇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어떻게”라고 말하지 말아라. 어떻게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와서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보호막이나 어떤 체계가 누군가를 끌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너는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이고, 네 스스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네 고유한 행위와 고유의 사고력을, 그리하여 네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라고 묻는다는 것은 네가 중고품 인간으로 되었다는 뜻이거든. 그것은 시야의 전체적인 감각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본질적인 정직성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남아 있는 길을, 그리하여 지금의 이 모습을 넘어서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거지. 절대로, 절대로 “어떻게”라고 묻지 말아요. 

물론 이것은 심리적인 영역에서 하는 말이다. 자동차를 조립한다거나 컴퓨터를 만드는 문제등에서는 반드시 “어떻게” 라고 물어봐야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누군가에게서라도 배워야만 해. 그러나 심리적으로 자유롭게 되는 문제에서, 그 원천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내면적인 행위들을 알아채고,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라보고, 단 하나의 생각이라도 그 본성을, 그 근원을 관찰하지 못 하고 지나쳐버리는 것이 없어야만 한단 말이다. 관찰하고 바라보고 하는 것을 말하는 거다. 인간은 책으로부터라거나 또는 어떤 심리학자로부터라거나, 혹은 복잡하고 교활하며 박식한 학자나 교수로부터 배우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배우는 점이 훨씬 더 많아요. 

그런데 이게 정말로 어렵단다, 얘야. 이게 너를 아주 갈기갈기 찢어놓을지도 몰라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지, 소위 유혹이라고 불리는 것들 말이다. 생물학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하는 따위들 말이지. 그리고도 네 자신은 사회의 잔인성으로 하여 생매장이 될 지도 몰라요. 당연히 네 스스로 홀로 우뚝 서야 하지만, 그것은 강제나 의도나 또는 욕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네 주위와 내면의 거짓들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에요. 감정이나 희망이나 하는 것들까지도 말이다. 그렇게 네가 거짓들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알아채기 시작할 것이고, 지성이 생겨나겠지. 네가 네 스스로에게 빛이 되어야만 하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이지.

1983년 5월 30일
브록우드 파크

크리슈나무르티가 자기 자신에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벌써 2015년의 절반이 지났다. 올해 상반기 나의 책읽기를 돌아보려고 한다. 그 전에, 잠시 더 뒤로 가보자. 때는 2009년, 내 인생의 가장 큰 방향 전환이 있던 해다. 원래 전공이었던 전파통신공학을 뒤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그 당시 이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상태였음에도)을 하면서 살겠다는 결심을 나는 2009년 1월에 했다. 지금도 내 안에서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왔었는지, 스스로에게 잘 했다고 칭찬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 이후 내 안정적 삶은 파국으로 치달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결정이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했으니까 말이다. 나중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던, 그 순간 나의 내면의 욕망을 따랐던 그런 선택이었다. 

그러한 결정을 하고, 내가 가장 먼저 목표를 세운 것은 ‘책 읽기’다. 책 읽는 것은 원래 좋아했던 편이지만, 대부분 책을 빌려보는 편이었다. 일년에 읽는 권수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읽는 횟수를 카운팅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당시에 2가지 목표를 세웠다. "모든 책은 사서 본다. 그리고 1년에 100권을 읽는다." 라는 나름의 담대한 목표. 지금 나에겐 이 목표가 그리 커 보이지는 않지만 그 당시 나는 이렇게 살아보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차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1년에 100권 책 읽기라는 목표는.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씨앗이라도 품어보고자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약 6년이 흘렀다. 올해가 7년이 들어가는 해다. 어떤 해는 100권을 넘게 본 해도 있고, 어떤 해는 약간 못 미친 해도 있지만, 대략 평균을 내면 600권 가까이 책을 읽었다고 봐야한다. 2009년에 개인적으로 소장하던 책은 10권도 채 안 되었지만, 지금 내 책장의 책들은 좀 된다. 작은 방 한쪽 벽면을 이중으로 꽉 채운 책들은 나의 보물 1호다. 그렇게 나는 읽어가면서 지금의 (사실상) 1인 기업가의 삶을 꾸려왔다. 읽기가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과 재작년에 걸쳐서 약간의 불만이 스믈스믈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의 표현’에 대한 것이었다. 
 
어쩌면 농사로 비유한다면 씨앗을 뿌리고, 물과 비료를 주지만,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논. 그게 바로 나였다. 많이 읽기는 읽는 것 같은데, 그게 걸맞을 정도의 지적 성찰이나 책과 같은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꾸려가고 있던 블로그도 한달에 겨우 1-2번 정도 글을 올릴 정도였으니,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불만, 결과물에 대한 실망은 쌓여갔다. 그리곤 반년 전인 2015년 1월에 결심했다. 올해는 읽는 책을 1/2로 줄이기로. 그리고 포스팅을 50번 하기로. 포스팅 50번을 하기 위해선 일주일에 1번 정도를 올려야 했다. 6개월 전의 나로썬 꽤 많은 양이었다. 읽기에서 쓰기로. 나는 그렇게 두번째 변화를 주기로 했다. 

지금은 6월 25일. 일년의 절반이 지난 시점이다. 돌아보기에 좋은 지점. 결과는 어떨까?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 부를 만 하다. 우선 긍정적인 부분은 바로 ‘블로그 포스팅’이다. 지금까지 무려 (놀라지 마시라) 74개의 포스팅에 성공했다. 애초 목표라면 25개 정도의 포스팅을 했어야 함에도 벌써 300% 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 이는 나로썬 비약적인 변화였다. 비록 하루에 방문자 수가 20-30명을 왔다 갔다 하는 미미한 블로그지만, 무언가 꾸준히 하고 있다는사실은 나에겐 꽤 큰 위로가 된다. 참고로 그렇게 된 이유로는 ‘일상의 성찰’이라는 매일 매일 쓰는 일기글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 변화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실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독서량이다. 좋은 책을 선정해서, 50권 정도를 여러번 심사숙고해서 읽어 보겠다는 나의 목표는 온데간데 없고, 작년과 그리 다를 바 없는 탐욕스런 독서량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내 현실이다. 6월까지 읽은 책을 정리해보면 대략 40권에 달한다. 다시 말해, 올해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변명을 더하자면, '나는 아직 배고프다.’고 말했던 히딩크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한 쪽의 나는 깊이 있게 책을 보고, 재독에 삼독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원하지만, 다른 한쪽의 나는 그저 보고 싶을 땐 언제든 책을 들춰서 읽어대는 탐욕스런 책벌레를 원하기도 하기에. 일단 어쩔 수 없다. 목표는 수정이다. 2015년 독서 목표는 80권이다. 그리고 포스팅은 150개다. 내년에 더 깊이있는 책들로 다시 도전해 보기로 하자. 읽었던 책들에 대해서 간단한 리뷰도 쓸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는 관계로 그건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 봤던 책들을 올려본다. 6월 30일 전까지는 리뷰를 다 쓸 것이다. 

1월 
어떻게 살 것인가_유시민
블리스, 내 삶의 신화를 찾아서_조지프 캠벨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_짐 로허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_이희석
유태인의 공부_정현모

2월
희망의 인문학_얼 쇼리스
인생수업_엘리자베스 퀴슬러 로스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_진 리들로프
올바른 생계수단에 대하여_크리슈나무르티

3월
삶에 내게 말을 걸어올 때_파커 j 파머
보이지 않는 고릴라_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디자인씽킹 강의노트_리팅이 외 지음
어떻게 자기답게 사는가_연지원
거대한 사기극_이원석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드러커를 읽는다면_이와사키 나쓰미

4월
인생학교 -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_존 폴 플린토프
고민하는 힘_강상중
도산에 사는 즐거움_이황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_파커 j 파머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_피에르 바야르
호모 코뮤니타스_고미숙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_마커스 버킹엄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_엄윤숙, 한정주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_요시다 타로

5월 
인생학교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_로먼 크르즈나릭
불안_알랭 드 보통
그림책 읽는 즐거운 교실_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생태요괴전_우석훈
에티카, 자유의 긍정의 철학_이수영
강점에 집중하라_마커스 버킹엄
남자의 물건_김정운
딜리셔스 샌드위치_유병률

6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_이진우
피터드러커 자서전_피터드러커
30분에 읽는 니체_로이 잭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_사사키 아타루
포트폴리오 인생_찰스 핸디
작가수업_도러시아 브랜디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_폴 D 티저


  1. 슈밍아빠 2015.06.27 06:34 신고

    저도 비슷한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많이 배웁니다.^^

    • 그렇군요 :) 감사합니다. 생각과 목표가 비슷하다는 건 기쁜 일이지요. 저도 슈밍아빠님 블로그에 들어가 봤는데, 짧은 시간임에도 굉장히 많은 글을 올리시더라구요.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론 그 성실함을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도입. 
메르스가 한창이다. 다들 걱정이다.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로 걱정이 없는 편이다. 걸리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지만 만약 걸리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각종 찌라시들과 기사들은 우리를 걱정과 염려에 중독되게 만든다. 이런 시기일 수록 우린 ‘염려’의 중독에서 깨어나야 한다. 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강의가 있어서 옮겨적어 보았다. 강의는 강신주가 했지만 편집자는 나다. 강의 내용을 충실히 구현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내 위주로 편집하게 되었다. 소제목도 그냥 지어봤다. 사실 그게 더 재미있는 작업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언어를 다시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나는 즐겁다. 다들 재미있게 보시길. 



제목 : 우리는 이미지 시대에 살고 있다.
강사 : 강신주

1.
우리 사회는 지금 철학자를 부른다.

요즘 바쁘다. 사실 철학자가 세상에 나와선 안 된다. 철학책을 본다는 것은 고민한다는 뜻이기에. 다시 말해 살기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되려 10년 전에는 사람들이 날 찾지 않았다. 생계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니 나를 찾는 것이다. 1997년 IMF를 경험하면서 우린 바닥을 알았다. 그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느낌 때문에 우린 불안한 것이다. 이 고민은 개인의 문제이면서 사실 큰 구조적 문제이다. 다만 철학자들의 주어는 ‘나’이다. '나는 어디에 직면해있는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인문학자들이다. 그 관점에서 살펴보자.

2.
다람쥐 쳇바퀴의 삶을 권하다.
 
우리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제도에 산다. 우리의 표와 재벌의 표 그리고 국회의원의 표가 같아지는 순간은 선거날 단 한번이다. 나머지 날엔 실질적으로 그들은 우리를 지배한다. 월급도 고민해봐야 한다. 그들이 왜 월급을 줄까? 쓰라고.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우리가 돈을 안 쓰는 것이다. 돈을 다 쓰면 어떻게 되는가? 다시 일해야 한다. 다람쥐의 삶과 다를바 없다. 그런 쳇바퀴 중에 좋은 쳇바퀴가 대기업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 좋은 쳇바퀴에 들어가라고 한다. 

3.
우리는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일까? 그것은 소비의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온 돈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본가들은 우리를 소비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보드리야르는 책 <소비의 사회>에서 말한다. 소비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붙어있는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우린 옷이 있다. 하지만 또 구입한다. 소비에 중독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소비를 통해 잠시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각종 영화, 드라마, 광고를 비롯한 미디어들은 소비를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거란 착각을 선사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심리학은 대부분 소비자 심리학으로 발달한다. 소비자를 연구해서 사게하기 위해. 요지는 이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필요를 구입하지 않는다. 

4. 
욕망의 집합체, 자본주의의 교육장 백화점.

자본주의의 첫번째 이미지는 욕망이다. 백화점은 자본주의의 교육장이다. 만약, 백화점에 부자들만 오게 하면 나중에 부자들도, 가난한 사람들도 오지 않게 된다. 서로를 통해 부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빈자들은 욕망을 느낀다. 돈을 벌겠다는 욕망, 나도 저곳에 속하겠다는 욕망.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광고는 시청률과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낚기 위해서 방송을 만든다. 실은 방송이 아니라 광고가 본질이다.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실, 광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자본, 광고와 결부되지 않을 때 진짜 가치있는 것이 출현한다. 

5. 
욕망과 염려를 파는 사회

경기가 좋을 때 자본주의는 ‘욕망’의 이미지를 만들고, 안 좋을 때 자본주의는 두 번째 이미지를 만든다. 염려의 이미지. 그래서 우린 연금도 들고 보험도 든다. 우린 아이들에게도 염려한다. "너 이렇게 살면 나중에 이렇게 이렇게 된다." 병원은 염려를 가장 잘 파는 곳이다. 진단을 하고, 아무 문제 없다고 하면서 돈을 받아간다. 우리의 염려로 돈을 버는 것이다. 우린 생수를 사 먹는다. 물은 누가 오염시켰나? 수 많은 공장들이. 그 공장이 다시 물을 팔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는 모든 것을 판다. 특히 지금의 우리 사회는 욕망보단 염려를 판다.

6. 
종교, 자본주의 그리고 인문학

인문학과 종교는 다르다. 종교는 먼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가까운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문학자들은 현재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내 아이와 남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인문학자들은 종교와 자본을 비판한다. 현재를 못 살도록 하기 때문에. 상상해보자. 만약, 당신의 아이가 1년 뒤에 죽는다고. 그럼 학원 보낼 것인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린 서로의 미래만 걱정한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관계는 사라진다. 미래에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꽃을 볼 수 있을까? 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염려의 이미지는 치명적이다. 나와 주위 사람들을 제촉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한다.  

7.
미래에 대한 염려를 줄이는 법

발터 벤야민은 말한다. '자본주의는 세속화된 종교다’라고. 왜냐면 자본은 미래를 팔기 때문이다. 우린 전문가들에 의해 걱정이 증폭된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괜찮을까? 아프지 않을까?" 하면서 그 사이에 병이 든다. 이 사회가 우리의 스트레스를 조장한다. 어떻게 해야 미래에 대한 염려를 줄일 수 있을까? 일단,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밖에 나가서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야 한다. 다만, 염려를 가중시키는 친구는 만나면 안 된다. 순간에 머물게 도와주는 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렇게 순간을 살기 위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8.
부처, 있는 그대로 사는 자
 
내일을 걱정하거나 10년 뒤를 걱정하고 있을 때 우린 현재를 살지 못한다. 당신도 아주 즐거웠던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있는 그대로(진여 여여 타타타)' 사는 사람을 부처라고 한다. 나의 세계에 집중하면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자유로운 사람들의 특징은 현재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면 사랑이 끝날 것을 걱정해서 사랑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인가? 그냥 살다가 꽃이 지듯이 죽으면 된다. 

9
돈은 좋은 관계를 위해 쓰는 것이다.
 
우리가 염려하는 동안 무엇이 사라질까? 관계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에 집중하는 순간, 자본주의는 힘을 잃는다. 우리는 보통 염려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험을 들고, 돈을 모은다. 만약, 그 돈으로 아이과 좋은 관계를 쌓는데 쓴다면 어땠을까? 나중에 아파서 누웠을 때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여러분 옆에 있을 것이다. 우린 내 미래가 두렵기 때문에 내 미래에 집중하느라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현재에 머물러야 관계가 생길 수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똑바로 서야 한다. 

10.
아이를 미래가 아닌, 현재에 머물게 하라. 

어떤 어머니가 서울역에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꼴난다.” 그 순간부터 아이는 자기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 아이는 과연 앞으로 엄마 걱정을 할까?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공포를 주입하는 순간, 염려는 되물림된다. 그 아이는 대학을 가든 어디를 가든 불안해한다. 아이를 잘 가르치는 엄마는 아이를 ‘현재’에 머물게 한다. 제대로 가르치는 엄마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학원 가지 말고, 나를 봐’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해야 한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친구나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다. 현재를 잡게 하라. 

11.
미래를 두려워하는 만큼 삶은 낭비된다.
 
영원한 현재. 여러분은 얼마나 현재를 잡고 있는가? 어제가 또렷히 기억나는가? 기억나지 않는 다면, 당신은 헛산 것이다. 현재가 차곡차곡 쌓이면 눈감을 때 웃을 수 있다. 미래는 공포가 아니다. 절대로. 한국처럼 공포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도 없다. 행복하고 싶으면 현재에 머물고, 불행하고 싶으면 미래에 머물라.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내 앞에 있는 풍경과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문화 예술이 위축되어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들 미래에 가있기 때문이다. 카르페디엠. 현재를 잡아라. 자기계발은 미래가 두려운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통해서 진짜 행복한 사람은 그 저자들이다. 나머지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인문학적 통찰들은 그곳에서 현재에 머물게 돕는다. 우린 싸워야 한다. 싸우지 못하면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사회가 아무리 미래를 요구해도, 우린 반드시 현재를 붙잡아야 한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만큼 삶은 낭비된다. 


강의 리뷰.

1. 
강의를 듣고 느낀 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다소 뜬금없지만 ‘경청’이다. 나는 지금까지 강신주 작가의 강의를 다른 곳에서도 많이 들었다. 인문학 강의가 워낙 붐이 일다보니 유투브에 ‘강신주’만 입력해도 엄청나게 다양한 강의가 뜬다. 그 많은 강의 중에서 아침마당을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경청의 힘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2013년 봄 쯤에 한번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모임이었는데, 대부분 40-50대 아주머니들이었다.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리고 그 경험은 내 인생의 손꼽히는 행복했던 강의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때 나는 느꼈다. "아, 강의라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이 강의를 듣고 참여하는 분들이 만드는 거구나." 라는 것을. 지식도 경험도 일천한 나였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에 하나 하나 귀를 기울여주고, 뭔가를 받아적기까지 하시고, 또 중간 중간 ‘아’ 하는 감탄사까지. 정말 완벽한 경청이었고, 나도 그 분위기에 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120%를 발휘할 수 있었다. 중간에 이런 생각까지 했다. “지금 이 말을 누가 하는거지?” 

좋은 강의는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아침마당의 특강을 본다. 거기는 정말 ‘숙련된 조교(아닌 아주머니)’들이 계신다. 무슨 말만 해도 ‘아~’ ‘오~’ ‘꺄르르’ 별 말 하지 않아도 엄청난 리액션이 쏟아진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당에서 좋은 강의를 많이 건진다. 강사들도 공중파 방송이기에 아무래도 준비도 많이 할 것이고, 시간도 딱 1시간이다. 그리 길지 않아서 좋다. 사족이 길었지만, 이것이 내가 이번 방송을 본 이유다. 

2. 
내용에서의 느낀 점은 이렇다. 결론은 ‘현재를 살아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끌어가는 과정이 아주 탁월했다. 유려하게 말과 글을 만들어내는 분이란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 논리도 심플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산다. 경기가 좋을 때는 욕망을, 경기가 나쁠 때는 염려를 파는 시대. 욕망도 염려도 결국 시선이 현재가 아닌 미래로 가게 하는 것이다. 미래로 가는 순간, 일상의 중요성, 관계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를 보자. 진리는 언제나 쉽다. 하지만 실천하긴 어렵다. 이번에 메르스 때문에 우리 사회는 또 걱정과 염려가 확장되고 있다. 물론 나도 걱정한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 얼마나 많은 구멍이 있는지도 안다. 그것과 관련해서 종사하는 분들은 정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그러한 ‘일어난 일’과 상관없이 증폭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해석’들이다. 이미 많은 어머니들이 걱정을 시작했다. 나도 이제 130일 된 아가를 키우는 아빠다. 걱정은 된다. 그리고 적당한 걱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치면 언제나 우리를 해친다. 한 독물학자가 말했다. “독이나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양이다.” 

현실적으로 대처할 것은 대처하되, 그 더 이상의 확대해석은 금물이다. 이러한 염려에 대응해서 무언가는 또 나올 것이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듯한 각종 상품과 서비스들. 이것만 구매하면 당신의 염려는 사라질 수 있다는 착각들. 거기에 속아선 안 될 것이다. 우린 스스로의 힘을 키워야 한다. 외부의 어떤 것도 우리를 궁극적으로 구원해줄 수는 없다. 배에 힘을 탁 줘야 한다. 만약 내일 내가 메르스에 걸린다면, 그건 걸린 것이다. 내가 최선의 대처를 했음에도 걸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그건 그때 생각해도 된다. 그러니 시선을 돌리자. 미래에 대한 걱정, 염려와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순간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엘리자베스 퀴슬러 로스 <인생수업>의 이 말을 기억하자. 

"죽음을 앞군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가장 놀라운 배움 중 하나는 삶은 불치병을 진단 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기의 머리를 만져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삶을 진정으로 만지고 맛보고 있나요? 평범한 것 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고 느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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