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스토리 연구소> 이희석 코치님의 4주 강연의 일부입니다.
강의 내용이 좋아서 공유합니다. 요즘 인문학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즐겁네요. :)
1부 강연
Q. 이 4주 간의 수업을 통해 우린 무엇을 배워야 할까?
1. 인문학에 대한 큰 그림이 무엇인지?
2. 인문소양을 어떻게 쌓을 수 있을지?
Q. 심리학에 대한 간단한 언급
그리스, 로마 시대 이래 학문의 큰 기둥은 ‘철학’이었다. 최초의 철학자는 탈레스다. 그는 세상을 처음으로 탐구했다. 당시 학자들은 역사, 자연, 인간을 다 연구했다. 이후 데카르트를 지나,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서, 자연과학이 떨어져 나온다. 이후 사회학과 심리학이 떨어져 나온다.
19C말에, 철학의 위기가 온다. 반증 가능성 없이 사유하는 것이 탁상공론처럼 들렸기에. 그 당시에 심리학의 위상이 대단해진다. 이후 후설과 하이데거의 공으로 철학의 위상은 다시 세워졌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은 무엇일까? 모던은 이성을 신봉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이성을 신봉하지 않는다. 그 대표 주자가 푸코, 들뢰즈다.
심리학의 한계는 이것이다. ‘인간의 마음’만을 다룬다는 점. 물론, 인문학도 인간이 중심이다. 하지만 마음만 다루지는 않는다. 조정래는 황홀한 글감옥에서 <소설은 인간 삶에 대한 총체적 연구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문학, 역사, 철학은 인간의 모든 주제에 다 붙일 수 있기에, 인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특히, 철학의 본질은 질문을 던지는 것. 그래서 각 분야의 철학서는 그 분야의 본질을 묻게 된다. 본질이란, 그것을 더욱 그것답게 만드는 것. 이기 때문이다.
Q. 인문학적으로 생각하는 법
역사는 과거인가? 역사는 과거와 다르다. 과거는 실제에 가깝다. 하지만 역사는 하나의 관점을 갖고 과거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E.H카는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선 역사 보다 먼저 ‘역사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가지고 한번 고민해보라.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다.
+ 간단히 생각해보면 나의 생각은 이렇다. 과거의 인문학자들도 과거를 말할 수 없다. 그들의 관점을 우리에게 던진 것이다. 말과 글로. 우리는 그러므로 그들의 관점에 맹목적일 필요가 없다. 인문주의적으로 독서를 한다는 것은 계속 그 관점에 ‘정말 그럴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 넘어오자. 우리는 현재를 산다. 하지만 현재는 말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를 통해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인문학자가 될 수 있다. 현재를 각자의 관점과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 될 것이다. 비판에 주저하지 말고.
<강신주의 감정수업>에 나오는 문장이다. *하나에 몰입한다는 것은 다른 하나를 무시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문장이 걸리는가? 넘기지 말라. ‘무시’를 사전으로 찾아보라. 무시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 문장을 각자의 관점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지양해야 할 태도는 그냥 그 문장을 갖고 남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야, 하나에 몰입한다는 것은…” 그거야 말로 상대에 대한 무시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했던 문장도 그대로 쓰면, 틀릴 수 있다. 그러므로 개념에 대한 사유가 우리에겐 중요하다. 그것이 인문학적 독서다.
다르게 사유해보자. 몰입이란, 인생을 잘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균형이란, 몰입없이 오지 않는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시간대’를 지켜야 한다. 일주일이 좋다. 주중에 일터에 있는 동안 깊이 몰입하고, 주말에는 가정에서 깊이 몰입하는 것. 그것이 균형이다. 즉, 몰입이란, 다른 것을 충분히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지금 앞에 있는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으로 보면, 앞서 나온 ‘몰입’과 이 ‘몰입’은 다르다. “몰입한다는 것은 삶의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한 도구다”라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감정수업>의 또 다른 문장이다. "자신이 모든 불행을 직접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을 때만 후회에 감정에 빠진다. 하지만 모든 불행을 자신이 초래한 것은 아니다. (…) 후회는 신과 같은 자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감정이다.” 스티븐 코비는 ‘주도성’을 말하면서, 자극과 반응 사이에 우리가 선택권이 있다고 말했다. 그 선택권이 많아 진다는 것은 ‘지혜와 자유’를 말한다. 주도적인 사람과 반사적인 사람 중에 누가 후회를 많이 할까? 그건 모른다. 반사적인 사람이 성찰 지능이 떨어지면, 후회하지 않는다. 주도적인 사람은 후회를 하지 않을까? 아니다. 그 사람들은 상황의 책임을 자신에게 둔다. 그렇다면 충분히 후회할 수 있다. 주도적인 사람이 오만해서 더 후회하는 것만은 아니다. 반성하기 때문에 후회하는 것이다.
+ 강신주는 단정을 잘 한다. 단정을 잘 짓는 사람들의 강점이 있다. 그들은 ‘깊어 보인다’. 나도 단정을 잘 짓는 편이 아닐까? 그 밑에는 ‘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는 것이 아닐까?
2부 강연
Q. 문사철 식견을 어떻게 키울까
좋은 방법. 문학동네에서 나온 안내서를 본다. 쭉- 보면서 스토리를 읽으면서 끌리는 것을 찾는다. 그 책을 사서 본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개관서를 본다. 쭉-보면서 끌리는 단어를 찾는다. 예를 들어, 그리스가 좋다면 그리스의 개관서를 본다. 그리고 재미있는 역사적 장면들을 뽑는다. 그 장면을 다룬 더 깊은 책을 본다. 내가 왜 이런 장면에 끌릴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계속 본다. 이러한 작업은 친구와 함께 하면 좋다. 키워드가 정말 다르게 뽑히기 때문이다. 철학. 철학책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면, 안광복의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 추천. 그걸 보면서 마음에 드는 철학자를 고른다. 그 철학자가 좋은 이유는 각자 다 다르다. 줄스 에반스<철학을 권하다>
안도현의 시를 읽고 도움이 되었는가? 문사철 식견을 기르기 위해서 우선, '이것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무엇이든 동기가 필요하다. 두번째로는 지적 얼개와 흐름을 공부하라.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고속도로이다. 한번 쭉 달리고 나서, 마음에 들었던 곳들을 국도로 구석구석 탐방하라. 그래야 주관적 독서에 빠지지 않게 된다.
Q. 책을 읽고 사유가 없다면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유의 깊이와 넓이가 아니다. 사유하려는 의지.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관점이 진리라고 믿지 않는 것. 진리란 없고 ‘진리들'이 있다. 그리고 좋은 키워드를 발견했다면 노트에 옮겨 적으라. 몰입, 용기, 가치 등으로. 그렇게 단어를 쭉 나열해보라.
책을 노트에 옮겨적는 것은 좋은 독서법이다. 옮겨 적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떠오른다면, 밑에 적어라. 그것을 ‘초록’이라 한다. 다산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추천한 방법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다 옮겨적으려 하지 말고, 줄이고 줄여서 키워드만 뽑아내라.
Q. 좋은 엄마의 조건 <부모 역할 훈련>
1) 좋은 부부관계. 그래야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는다.
2) 자신의 세계 갖기. 그래야 자존감이 생긴다.
3) 사랑을 기반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행동이 모두 사랑으로 기반되는 것이 아니다. 주도 두려움, 책임감, 혹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린 사랑으로 기반하는 행동을 늘려라.
+ 간단한 성찰
오늘 강의를 마치고 돌아왔다. 씻고, 자려고 하는데 왠지 간단한 리뷰는 쓰고 자야 할 것 같아서 노트북을 켰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짧게 남긴다. 이번 시간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인문학적으로 책을 보는 방식’이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라는 글이 그 주제가 될 수 있다. 이 글을 보니 NLP에서 자주 나오는 말인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라는 말도 떠올랐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인데.
뜬금없다. 각설하고,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팩트(실제)’는 그것을 서술하는 자의 ‘관점’에 따라서 새롭게 ‘편집’된다. 인간이 만드는 것 중에서 ‘편집’ 되지 않은 것은 없다. 왜냐, 언어가 이미 편집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는 언어를 통해서 이미 변환되고, 편집된다. 실제 그 자체는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선 어떤 텍스트를 접하더라도 그것이 한 작가 고유의 ‘관점’임을, ‘편집 된 내용’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실제 수업에선 ‘강신주의 감정수업’의 지문을 가지고 예시를 들었는데, 그렇게 해 보니 더욱 와 닿았다. 강신주 작가가 쓰는 문장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사람과, 강신주 작가가 쓰는 문장을 그의 맥락에서 이해해보고, 나의 맥락에서 다시 고쳐써보는 사람은 같은 책을 보지만 완전히 다른 사유를 낳을 것이다. 전자의 사유는 ‘맹목적 수용’으로 치달을 것이고, 후자의 사유는 ‘비판적 수용’으로 갈 것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맹목적 인간을 낳기 위함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인간, 비판적 인간, 정치적 인간(공적 인간)이 인문학 공부의 중요한 목적이다. 결국 인문학적 독서는 훌륭한 인문학자들의 관점을 ‘추려서 취하는 것’ 그리고 ‘내 것을 만드는 것’ 이다.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렇게 읽고 있는가? 부끄러운게 한 두 개가 아니다. 나부터 단어 하나 하나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할 듯 하다. 하나씩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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