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의 시작

2016년 새해가 밝았다. 드디어 34살이 되었다. 어릴 적, 30대 중반 아저씨를 보면 다 알것 같고, 꼭 어른 같았는데.. 지금의 나를 보면,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 나이는 그저 나이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해가 바뀐다고 해서 철이 더 드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만큼 생각하고, 실천한 만큼 철이 들 뿐이다. 1월 1일, 나와 아내는 오전에 아주버님 산부인과로 향했다.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했기에. 그리고 향한 곳은 종각이다. 어머님이 우리 재원이 돌을 맞이해서 목걸이를 해주신다고 하셨는데, 새해 첫날 한번 알아보러 가게 되었다. 이런 저런 곳에서 견적도 물어보고, 또 명동에 가서 떡볶이도 먹었다. 무엇보다 재원이 덕분이 많이 웃은 날이었는데, 뭐만 했다하면 꺄르르 꺄르르 엄청 웃은 하루였다. 재원이가 감기가 다 나아서 그런지, 웃음이 많아졌다. 행복했다.


1월 2-3일 
휴일의 끝

주말은 온종일 휴식이었다. 요즘 다소 무리한 탓인지 청소만 마치고 쉬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재미있다고 해서 다운 받아서 봤다. 일요일도 별일 없었다. 청소를 하고, 이유식을 만들고, 오후엔 잠깐 홍대로 산책을 갔다. 하루가 왜이리 짧은지. 그렇게 연휴가 끝났다. 나로썬 이번 2주를 만들기 위해서 나름 신경을 썼다. 다른 건 최대한 줄이고, 아내와 재원이랑만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큰일도 치뤘다. 할머니 장례식도 있었고, 형님 2세 탄생도 지켜볼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이, 연말과 연초가,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2주였다.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가족과의 시간이었다. 특히 재원이는 2주 전까지만 해도 아빠 아빠를 잘 하지 않앗는데, 이젠 곧잘 아빠 아빠를 외친다.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는 시간도 많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육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간다는 것도 깨달았다. 밥 먹이고, 밥 차리고, 재우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놀아주고, 약 먹이고, 옷 갈아입히고.. 그 경험을 온전하게 했다. 좋았던 것도 있지만, 아쉬운 것도 있다. 일상에서 너무 멀어졌다. 책을 본지도 꽤 되었고, 글을 쓰지도 못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일상을 잘 관리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겠단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잘 구분해야 할 것 같다. 이젠 끝이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일주일, 나의 패턴을 회복하자.  


1월 4일
일상은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사실상 아주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건만, 쓸데없는 시간으로 채우고 말았다. 어린 시절의 나에겐 익숙한 그런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일상은 작은 습관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작은 습관들은 하나 하나를 보면 별 힘이 없어 보이지만, 그것들이 연계되면 어마어마한 패턴을 형성한다. 나는 그 패턴의 주인이 아니다. 노예다. 그 패턴을 자각하고 벗어나려는 의식적 노력 없이는 말이다. 지난 2주 동안 나의 일상적 패턴은 완전히 깨진 상태다. 회복하기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위로하자. 하지만 위로는 절반의 역할이다. 절반의 역할은 단호한 자아의 것이다. 내 안에 숨어 있는 결단력 있는 자아를 불러내자. 그가 발언권을 갖도록 하자. 내 안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그가 이기도록 하자. 그것이 자아 회의 주관권을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악이다.
 

1월 5일
철학 아카데미 첫 수업

정읍에서 캠프를 마치고, 경복궁 옆 철학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었다. 박남희 교수님께서 수업을 진행해 주셨는데, 참 재미있었다. 그리고 좋은 자극이 되었다. 우선적으로,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철학적 삶을 산다는 것이지 철학을 전공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거울을 보며 외모를 다듬고, 내 태도를 고치듯 철학자들의 생각과 글을 보며 내 삶을 다듬는 것이 곧 철학이다. 매우 공감하는 바였다. 나 역시 삶을 위한 기술로써의 철학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첫 시간이라, 전체 얼개를 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자연 철학자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에 스윽 지나갔는데, 다행히 이리 저리 본 책들 덕분인지 이해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가장 큰 자극이 된 것은 역시 책이다. 이번 수업 교재는 교수님이 직접 쓰신 책을 가지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수업하고 싶었다. 내가 쓴 책을 가지고 수업을 한다는 것. 내 생각을 그대로 공유하고, 그로 인한 다른 이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다.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매달 글 쓰는 미션 꼭 성공하자. 


1월 6일
EBS 캠프 3년차가 되다. 

오늘은 EBS 프리미엄 캠프에 갔다. 일찍 베어스 타운에 갔는데, 스키 시즌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강의장 위치도 아주 높아서 스키타는 사람들 구경 실컷했다. 나는 발에 눈도 안 묻히고 왔지만. ㅎㅎㅎ 이번 캠프로 나도 이제 3년차가 되었다. 2013년에 시작했으니 인연이 꽤 되 편이다. 비록 일년에 2번의 캠프지만, 여름 겨울이면 반복되는 연례 행사가 되었다. 그 동안 프로그램도 변화가 있었다. 크게 변화한 것은 1번이고, 나름 대로 캠프 마다 작게 작게 변화하고 있다. 이번에 또 하나의 시도를 했는데, 나름대로 괜찮았다. 아이들에게 전할 메시지도 나름대로 정리되었고, 수업도 용이했다. 오늘은 꽤 만족하는 수업이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셔틀버스가 운행한다는 점이곘지만. 그것도 왕복 3000원에 말이다! :) 

그러고 보니 그렇다. 예전에는 선택의 기준이 단순했다. '기쁨'이었다. 물론 단순한 기쁨은 아니다. 의미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몸을 옮겼다. 남들이 버기엔 무모해 보이는 결정도 나에겐 아니았다. 힘들어도, 분명 기뻤으니까. 지금도 그 기준은 유효하다. 나는 소중하니까. ㅎㅎㅎ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게 되어 바렸다. 이젠 하나의 기준이 더 있다. 그 결정으로 인해 우리 가족도 '기쁜가?'라는 것. 나로 인해 가족에게도 의미있는 기쁨이 전달되어야 한다. 왜냐. 가족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이기 때문이다. 이젠 떨어져 생각할 수가 없다. 하나 더 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기쁜가! 나의 선택으로 인해 말이다. 그 선택이 옳다고 세상이 말하는가. 이것은 유심히 관찰하고, 귀 기울여 들어야 겨우 알 수 있는 신호이다. 앞서 보다 큰 범주이지만 분명 중요한 관점이다. 이 셋이 모두 일치하는 지점. 그 교집합이 내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이럴 땐 드래곤 라자의 명언이 떠오른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그렇다. 나는 섬이 아니다.


1월 7-8일 
교사 연수 및 미팅 

사실, 일지를 놓쳤다. 그래도 짧게라도 기록하자. 목요일에는 교사연수가 있었다. 프로토타이핑에 대한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선생님들은 뭐 말할 것도 없다. 워낙 훌륭해서 내가 할 것이 거의 없더라. 오후에는 리버럴 아츠에 대한 수업이 있었다. 명쾌해서 좋았다. 다만 그것이 나에게 좀 더 내제화가 되어야 하는데.. 라는 개인적 공부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금요일엔 계속 미팅이었다. SCM 관련 캠프와 시흥 프로젝트가 시작될 것 같다. 지난 주 일정은 그래도 괜찮았다.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또 바쁘게, 반갑게 시간을 보냈다. 


1월 9-10일 
주말 일정

주말이다. 토요일에는 대학교 친구 상근이 결혼식 기념 (?)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최근에는 워낙 자주 만나지 못하는 터라, 반가웠다. 아내와 재원이도 가서 자리를 빛냈다. 다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대화 주제도 많이 바뀌더라. ㅎㅎ 재미있었다. 나름대로 다들 철이 들어가는 느낌도 들었다. 일요일에는 오전에 SCM미팅이 있었고, 저녁에는 돌잔치를 하지 않는 대신,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이모님 가족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고기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못 먹겠더라. ㅎㅎㅎ 어쨌든 맛있게 먹었다. 사실 일요일은 내가 큰 실수를 했다. 하기로 한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아내도 나도 다쳤다. 온전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월요일도 이어진다. 


1월 11일
온전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오늘은 정말 온전하지 않았다. 꾸준한 사람이 삶을 망친다. 꾸준히 온전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다. 나는 패턴이 있다. 잘 하다가도 중간에 무너지는 시기가 온다. 그렇다고 엄청 무너지지도 않는다. 중간에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다. 하지만 앞으론 좀 더 민감하고 싶다. 하기로 한 일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 참으로 매정하게 다가왔다. 1월의 목표는 이것이다. 온전한 몸을 만들기. 만족도를 9점까지 올리기. 나에게 남은 20일, 나는 하기로 한 일을 하는 그런 사람으로 있고 싶다. 


1월 12일
철학 수업

매주 화, 목요일이 나는 참으로 좋다. 화요일 저녁에는 철학 아카데미에서 수업이 있는데, 오늘 배운 내용을 한번 정리해보자. 우선, 수업 중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흐름을 계속해서 언급하는 것이 좋았다. 나 역시, 맥락을 중요시 여기는 편인데, 왜 이런 사상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접근이 좋았다. 자연철학자들이 세계의 근본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그들이야 말로, 어떤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순수하게 질문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공식적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철학자들. 그들의 사유는 근대까지 ‘이성의 빛’에 가리워져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되려 재발견되고 있다. 특히 소피스트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나에겐 놀라운 인식의 전환이었다. 그저 궤변론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진리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할 방법도 없다. 그러므로 진리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소피스트였다는 것은 대반전이었다. 서양 철학의 시작점을 피타고라스라고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예를 들면, 수)를 기준으로 삼았던, 그리고 혼란이 아니라 질서를 목적으로 삼았던 철학자이기에. 오늘 수업을 듣고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니체가 왜 ‘근대 사상’을 전복할 수 있었는지. 그는 문헌학에 능통했다. 아마 이러한 고대와 자연 철학자들의 사상에도 쉬이 접근할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 변화의 시작은 ‘읽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해하고, 탐구하다가 결국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순간, 내면에서 강한 울림이 따라오는 순간, 인간은 변화한다.  


1월 13일
자신감 리더십 캠프

지난 주에 이어서, 이번 주에도 자신감 리더십 캠프가 있었다. 매년 비슷한 포맷이기는 하지만, 아주 조금씩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번에 확 달라진건 초반에 몇 번이었고, 지금처럼 완성된 형태가 된 건 작년 이맘때부터 였던 것 같다. 올해는 어떤 변화를 줄까 하다가, 앞부분에 ‘자신감을 올리는 법’에 대해서 좀 더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만든게 안전지대, 기적지대, 도전지대를 채우는 것. 나에게 익숙한 활동을 쓰고, 나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쓴다. 그리고 나서 ‘도전하고 싶은 것’들을 쓰는 것. 그 중 하나를 발표해 보는 것. 나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꿈도 사실 내가 도전하는 것들을 하나씩 이뤄나가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다들 잘 해주었다. 다음에는 뭘 바꿔볼까? ㅎㅎㅎ 


1월 14일
지식의 얼개

일주일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날이 있다. 그건 바로 화요일과 목요일, 공부하는 날이다. 화요일은 철학 아카데미에서, 목요일은 GLA에서 수업을 듣는데 두 분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식의 얼개’다. 전체 학문의 구조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많이 공감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균형감각’이기에. 오늘은 교양인에 대해서 배웠는데, 역시나 우리가 알고 있는 ‘전문인’과는 많이 다른 개념이었다. 신영복 선생님 책 <강의>에선 이렇게 설명한다. "전문화는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아래층에서 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차를 전문적으로 모는 사람, 수레바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 배의 노를 전문적으로 젓는 사람 등 전문성은 대체로 노예 신분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였습니다. 귀족은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육예를 두루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예, 악, 사, 어, 서, 수를 모두 익혀야 했지요. …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입니다. 결코 인간적 논리가 못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 나는 이러한 ‘얼개를 아는 힘’, ‘육예를 두루 익히는 힘’이 지금 시대에 재발견되어야 할 개념이라고 생각하며, 올해는 이 공부에 한 목숨(?) 바치고 싶다는 각오를 던진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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