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번에 오랜만에 소개할 책은 현존하는 미국의 영적 스승인 '아디야 샨티'가 지은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라는 책입니다. ^^
http://www.adyashanti.org/ 이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좀 더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북부 캘리포니아 태생으로 1996년부터 가르침을 펴고 있는 그가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깨어남'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단번에 에고가 녹아 없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우월감에 취하거나, 일상으로부터 도피하거나, 허무주의에 파묻히는 등 에고에게 더욱 거세게 휘둘리게 될지도 모른다. 황홀경 속에서 마냥 행복하리라는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깨어남' 이후의 삶이 얼마간은 꽤나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구도자들이 착각, 오해와 자기기만이라는 함정에 빠져 옛 습성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손잡아주는 귀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대략 감이 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는 별 의미가 될 수 없는 글이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저는 '인류의 멘토'라고 불리우는 4대 성인(붓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 그리스도)이 그 오랜 시간동안 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메시지 속에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어떤 콘텐츠'가 있다는 뜻이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진실'에 대해서 아디야 산티를 비롯한 많은 세계의 영적스승들은 한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알고 있다고 여기는 이것을 나는 정말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직해 지라고.. 그것만이 나를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고.. ^^
결국 제가 좋아하는 코칭이나 혹은 최근의 랜드마크 교육도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다운 삶'을 알려주는 고마운 도구가 되는 듯 합니다. 이상 줄이고, 인상 깊었던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1장. 깨어남 뒤의 삶
- 깨어남 (자아관념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지냈던 모든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즉, 깨어남은 인식의 전환이다.
- 진짜 깨어남은 나만의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나만의 깨어남이라는 것은 없다. '나만의'라는 말은 분리를 내포하고 있다.
- 극히 적은 수의 사람에게만 완전한 깨우침의 순간이 허락되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기대는 하지 마라. '수행 과정'을 밟아라.
-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이것을 나는 정말 알고 있는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의문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발견한 것에 진지하게 열려 있으라.
2장. 진정한 깨어남 - 뒤따라오는 혼란
- 깨어남이 무엇이 '아닌지를' 아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 깨어남의 커다란 오해는, 그것을 뭔가 신비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깨어있는 삶은 여러분과 다른 세상을 보는 뜻이 아니다. 단지 서로 다른 것들이 근본적으로 똑같이 인식된다.
- 우리는 한 모금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깊숙이 '보았고' 변화가 있었더라도 '기본적인 개성'이라는 구조물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깨어남 이후에 더 밝아야할 변화과정이 남아있다.
3장. "찾았어, 그런데 잃어버렸어"
- 문제는 '내가 깨어나는 경험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 깨어남이 바로 여기, 지금 깨어 있는가?"하는 것이다.
- 생각이란 게 아무런 가치가 없고 거짓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믿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 어떤 행동이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 그렇게 행동한다는 건, 우리가 그 사실을 인식하는 한 '더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 깨어남 이후에 전개되는 과정은 반드시 고상한 영적 수행 같은 것만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삶이 여러분에게 부딧쳐오게끔 기꺼이 허용하는 일이다.
- 이런 점에서 볼 때, '삶은 그 자체로서 우리의 가장 큰 우군이다.'
- 영적 여행의 고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기꺼이, 전적으로 정직해지려는 진지한 결단이다. 삶의 모든 면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곳으로부터 완전히 걸어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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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라도 간단한 것부터 시작할 것
다만 더 이상 회피하지 말 것
자신의 내부에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그쪽을 향해 갈 것
그 문제를 직면할 것
똑바로 응시할 것
다른 길로 비껴가지 말 것
자기 안에서 아직 깨어나 있지 못한 부분을 외면하는 수단으로 과거의 깨어남을 악용하지 말 것
4장 : 삼사라를 거쳐 열반에 이른다.
- 어떤 동일시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마다, 나는 종이와 연필을 들고 커피숍을 찾곤 하였다. 거기 않아서 어떤 신념이 나를 붙잡고 있는지 찾아낼 수 있었다.
- 내게 필요한 것은 환영이 뿌리채 뽑힐 때까지 질문작업에 매달리는 집요한 태도 뿐이었다.
- 삶에서 무언가를 회피하면 그것은 다시 찾아온다. 여러분이 기꺼이 그것에 직면하여 그 진정한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려 할 때까지 몇 번이고 말이다.
- 삼사라를 피해서는 열반에 이를 수 없다. 혼동을 회피해서는 명확함에 이를 수 없다. 자유롭지 못함을 회피해선 해방에 이를 수 없다. 진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 앞서서 강조했지만, 핵심은 진실성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진지하고도 정직하게 거기에 맞닥뜨리려는 용기이다. 이것이 해탈로의 진정한 관문이다.

5장. 숨은 곳에서 완전히 나오기
-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약 완전히 진실해지고 완전히 순수하고 정직해져버리면 그땐 더 이상 내가 누구를 완전히 통제할 수가 없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 완전한 진실을 말할 때, 대부분의 인간에게 그러한 드러남은 엄청난 두려움을 몰고 온다.
-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무방비 상태의 느낌으로부터 이야기하는 것이다.
- 진정한 자유란 '나는 자유롭다'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이 자유롭다'이다.
- 깨달음이란 오로지 행복, 지복을 위한 것일 뿐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삶의 영역을 회피하거나 초월하려는 욕구가 생겨난다.
- 세상과 관계함에 있어서 어떤 초월의 경지 속에 숨어 지내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젠 거기서 빠져나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상황을 겪어내야 한다.
- 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깨달았다고 해서 반드시 삶이 자기 뜻대로 풀려간다는 어떤 보장도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깨달음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삶, 우리의 관계를 만날 수 있게 되는 '존재 상태'이다.
- 진실함은 진실을 사랑하는 마음, 진실이 최상의 선이라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
6장 : 흔히 보는 착각, 함정, 고착상태
1. 우월감에 빠짐
- 이것은 영적인 집단에서 매우 흔히 일어난다. 나는 옮다. 꺠어났으니까. 나는 '언제나' 옳다. 깨어났으니까. 에고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깨달은 에고'라는 상태를 창조해내기 시작한다.
- 영적 교사의 입장에서, 꿰뚫기가 가장 힘든 에고는 바로 실재를 잠시라도 보았던 에고이다. 어떤 사람들은 깨어남의 경험을 하고 나서도 깊숙이 미혹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았다는 걸 남들이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든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때는 삶이 그들을 꿰뚫고 지나갈 것이다. 삶에 멋진 점이 있다면, 우리가 진실이 아닌 차원에서 행동할 때, 삶은 결국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시점에선가 그 삶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된다. 영원히 미혹에 빠져 살게 되는 일 따위는 없다. 삶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 나는 우월맨(나의 깨달은 에고)에 대해 실재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야말로 완전한 패배였다. 나는 내가 아무리 깊은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여전히 패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그것에 먹이를 주지도 말라.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아 넘기도록 하라.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2. 허무의 감정
- 꿈꾸는 상태는 의미나 목표를 가질 수 없다. 그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깨어남 뒤에도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 부질없는 마음을 지닌 '인간'이 있다.
-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허무라는 덫에 걸려든다. 어떤 이는 꽤 오랫동안 우울증에 빠진 채로 지내기도 한다.
- 허무감에 대한 해독제는 실상을 오로지 에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깨어남은 '존재'에만 이롭다.
3. 공에 갇힘
- 우리가 목격자라는 것은 진실이기는 해도, 여기에는 허황된 측면 또한 존재한다. 갑자기 목격자가 된 이 사람들은, 삶에서 자신이 주로 맡던 역할을 더 이상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단한 안도감을 느낀다.
- '만약 목격되는 것이 목격자와 다르다면, 그것인 이미 분리를 내포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 그 관점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 에고는 목격하는 자리를 이용하여 인간답고 용기있게 삶을 코앞에 맞닥뜨리려 하지 않는다.
- 완전한 깨어남은 자신을 책임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7장. 삶 자체가 우리를 일깨워주는 거울이다.
- 나의 수련은 주로 스스로 질문하며 글로 적어가는 작업, 그리고 명상이었다.
- 당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까지는 인식하였으나, 그것을 놓아보낼 정도로 깨어 있지는 못하였다.
-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볼 필요가 있는 것을 보지 않으려 하거나, 자신의 오해와 망상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수단으로서 자신의 영성을 이용하고 있다.
- 삶 자체가 가장 훌륭한 교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삶은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우리를 깨워 일으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 각각의 상황 속에 담겨 건네지는 선물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삶 속의 모든 상황을 직면해야 한다.
-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거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나 자신에게 철저히, 깊이 진실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며, 내가 초래한 결말에 대해 완전히 책임지기 시작하는 것임을 말이다.
- 삶이 보여주려 애쓰는 것을 우리가 보려 들지 않을 때는, 보아야만 할 그것을 우리가 기꺼이 보려 할 때까지 삶은 그 강도를 높여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삶은 그 자체로서 우리의 가장 큰 우군이다.
- 더 이상 자신으로부터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삶과 정합을 이루어라.

8장. 깨어남의 에너지적 요소
- 깨달음에는 거의 항상 어떤 에너지적 요소가 수반된다.
- 깊은 깨달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날로 우리의 심신체계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 그저 맨발로 흙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몸 속의 에너지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 깨달음을 경험할 때는 여러분이 계획하지도 않은 많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으라.
9장. 깨어남이 마음, 가슴, 아랫배를 관통할 때
- 최초의 깨어남 후 내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음성이 있었다.
'이건 다가 아니야, 이것은 진리의 전부가 아니야, 계속 나아가야 해'
- 내면으로부터 그러한 목소리를 가졌던 것은 나의 행운이었다.
- 깨어남은 세 가지 차원에서 영향을 미친다.
(1)마음차원
- 우리가 깨어날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생각'이라는 구조물 안에는 궁극적으로 참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 우리는 마음을 통해 인식하는 체계가 그 어떠한 실체도 갖지 않음을 보기에 이른다.
- 꺠달음은 파괴적인 과정이다. '깨달음'이란 진리가 아닌 것을 부수어버리는 것이다.
(2)가슴차원
- 해방이란 더 이상 자신이 느끼는 감정으로써 자신을 정의하지 않게 되는 혁명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감정을 회피함으로써 해방에 이를 수도 없다.
- 현실과 다투면 분리가 일어나고, 희생자가 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신념으로 온갖 것을 쌓아올린다.
- 우리가 얘기하는 자유는 분리로부터 비롯되는 감정으로부터 자유이다.
- 가슴 차원의 깨어남은 영적인 가슴의 열림이다. 그 증거는 모든 존재를 그대로 아무런 차별없이 사랑한다는 것이다.
- 깨어난 가슴이 모든 것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 모두를 자기 자신으로 보기 때문이다. 진실이 깨어나면 진실은 모든 것을 사랑한다.
(3)아랫배차원
- 아랫배 차원은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자아의 느낌이다. 에고는 언제나 불편한 것을 제거하려 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없애려 하면 오히려 더욱 살아남는 법이다.
- 내려놓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 이것을 남김없이 받아들이는 것, 이러한 앎에 남김없이 관통당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지막으로 남은 내려놓음이다.
- 진정한 앎의 실현, 진정한 깨달음은 '내 뜻'을 완전히 내려놓아야만 찾아온다. '내 뜻'이라는 환영을 포기함으로써 전혀 다른 의식 상태가 자기 안에 태어난다.
느낌 점:
이 책은 '영적인 어떤 것으로' 삶을 회피하려고 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해 주는 책이다. 2007년 겨울, 나는 이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단지 그 당시에 내가 접했던 몇 가지 영적 지식들.. '나는 내 생각과 몸을 관찰하는 자다'라는 앎이 좋았고, 그렇게 초연하게 살고 싶었기에 한 때 출가를 꿈꾸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그게 멋있는건 줄 알았는데 ㅋ 지금 생각하면 ..^^;;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정립하질 못하고 있던 어린아이의 마음이었던것 같다. 이 책은 "나는 무언가 알고 있어, 혹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 라는 생각을 했던 나의 작은 마음을 관통해서, 진정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세상으로 발을 내딛게 도와주는 훌륭한 책 중에 한 권이다.
예전에 한번 '나는 20대 멘토가 되겠다'라는 꿈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꿈이 얼마나 (당시 기억으론) 오만하고 위험천한 했던 꿈이었는지 이제는 알것 같다. 물론 당돌하고 모험을 감수 하는 건 좋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치기가 나의 말을 듣고 움직일 지도 모르는 어떤 단 사람에게라도 '올바르지 못한 방향'을 제시하게 해서는 안 된다. 깊이 숙고하고 명료하게 말해야 한다.
삶에서 '나만의 기준'을 만드는 것, 삶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제는 조금 알것 같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서 삶을 살게 된다는 것도 경험한다.
내 삶의 기준은 이 책의 주제와 일치한다.
'나 자신에게 깊이 진실해지는 순간, 삶은 그 자체로서 나의 가장 큰 우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