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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경제경영 분야

[2011.3.27] 웹진화론2 / 우메다 모치오


웹진화론.2
카테고리 경제/경영 > 기업경제 > 산업경제 > 기술경제
지은이 우메다 모치오 (재인,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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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었던 글:

- 웹 진화를 과소평가하고 앞쪽 반생에 집착할 경우, 나머지 반생에서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전한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 '바보의 벽'으로 유명한 요로 다케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시대는 연장자가 으스대는 시대이다. 그러나 의도한 바는 아닐지라도, 살아 있는 이상 연장자는 불가피하게 젊은이들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런 시대에 젊은이들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적절한 삶의 방식은 연장자가 뒤쳐지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웹'이야말로 바로 그런 분야이다.

- '학습의 고속도로와 대정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참여자가 늘어난다. 새로운 참여자들이 대거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종점을 향해 질주한 결과, 종점 부근은 대정체에 빠지고 만다. 그 분야의 프로로서 밥을 먹고 살아갈 수 있을지의 여부는 대정체 구간에 접어들었을 때 자신의 미래에 대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 혼돈스럽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시대

- 웹2.0의 본질은 '지식과 정보의 게임'
거시적으로 봤을 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모든 사람이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구가 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우리 자녀들이 '손에 잡히는' 물건을 사 달라고 졸라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어린이들은 자유롭게 창조할 가능성이 열린 현실에 열광하며, 그에 따라 현실 세계의 물건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 게임이라는 관점으로만 보면 잘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의 게임'의 본질 중 하나다.

- 웹의 진화와 함께 혜성처럼 나타난 이들 스타는 하나같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줄기차게 계속해 온 사람들이다. '또 하나의 지구'를 구축하는 주역은 오로지 그런 유형의 사람들뿐이다.

-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무엇이냐고 이시구로에게 물었다. "성공 여부는 프로젝트 참여자 중에 인생 전부를 바치는 녀석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걸러지지 않은 자연 상태의 인터넷 퍼블릭 공간은 '선악'과 '청탁',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가진 모순적이고 혼돈스러운 세계다. 그런 세계에 불특정 다수를 신뢰하며 자신의 인생을 걸고 좋아하는 대상에 몰두하는 리더가 나타났을 때, 그 리더가 만들어 내는 커뮤니티는 공공성과 이타성을 띠기 시작하는 것이다.

- "이익을 포기하여 신뢰를 얻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크레이그 옆에는 '벤처가 아니라 스몰 비즈니스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원들이 있다. 그들은 오픈소스나 위키피디아로 치면'리더의 오른팔'에 해당된다. 크레이그는 사업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커뮤니티와의 신뢰를 지켜 냈고, 이제 '불특정 다수 무한대'의 이용자 겸 정보 제공자들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 벤티지 포인트 = 해당 분야의 최첨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면 구글로 가야 한다. 구글이 오늘날 최고의 벤티지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구글이 안 된다면 애플로 가라"

 '홀로 살아가는 비법'
1. 인터넷을 철저히 활용한다
2. '자신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를 정의하고, 항상 정보를 발신한다.
3.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그것에 대가를 지불해 주는 사람을 계속 만들어 간다.
4. 흔하디흔한 일상적 소모품만은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것도 편집증적으로 기피해야 한다.
5. 만약 소모품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반드시 새로운 전문성과 기술을 추가한다.
6. 적극적으로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긴다.
7. 조직에 소속되었을 때에도 조직과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조직의 논리에 매물괴지 않도록 노력한다.

- 살기 위해 물을 마시듯, 살기 위해 책을 읽었다. 이것이 실상에 가장 근접한 표현이다.
그저 즐긴다든가 지식을 축적한다든가 하는 것은 이제 독서의 부차적인 목적이 되었다.
거친 산길을 걷는 데 필수적인 '지향성'을 발견하기 위한 도구가 바로 '독서'였다.

- 웹 진화의 세상에서는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지식을 많이 모아 놓고 그 과다를 경쟁하는 것이 지식의 본래 모습은 아니다. 이제 지식은 삶의 소재로 활용될 때에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독서라는 고도의 지적행위도 결과물이 없으면 지적소비에 불과하며, 지적생산은 아니다.

- 시간, 거리, 무한이라는 개념을 뒤흔드는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자유 의지와 시간 사용법이 삶의많은 부분을 좌우하게 된다. 삶의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하는 것이다. 과거 사람들은 현실 세계의 제약 속에 피동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제약은 사라졌다. 이제는 개인의 목적의식이 삶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서는 웹 리터리시를 갖춰야 한다. 살아 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현실과 인터넷 사이를 창조적으로 오가며 노력한다면 분명히 길은 열린다. 웹은 뜻을 가진 사람에게는 든든한 힘이 되어 주는 존재다.



생각할 점:

지금까지의 웹 기술은 상당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었다. 그리고 몇몇 사람은 이미 주어진 자유 속에서도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맹목적으로 중독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인터넷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상상하는 것 이상의 '자유'를 우리에게 되돌려 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찌보면 이것은 그리 즐거운 변화가 아닐 수도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왜냐면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은 마치 백화점에서 너무 많은 물건 앞에서 어떤 물건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하고 코칭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차라리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지나치게' 보호받으면서 교육되어서 오로지 꿈은 선생님과 공무원 밖에 없는 대다수의 청년들에게는 말이다.

2009년 겨울로 돌아가보면 나에게도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었다. 취업을 포기하고 내가 원하는 길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나는 내가 선택한 완전한 자유에 몸서리 쳤고, 그에 따르는 인생에 대한 책임감에 완전히 압도 되었고, 두려워 했다. 태어나서 그런 두려움은 처음이었다.

사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에는 그 선택을 함으로서 불러올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생'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 선택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누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책을 왜 보냐고? 무슨 답을 그리 찾기에 책을 보는 거냐고?
나도 나의 답을 잘 몰랐기에, 다시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나는 대답한다.
"첫째로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읽는다.
두번째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통합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쉽게 나누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앞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이 방식이 나의 존재 방식이고 '살아남기 위해' 내가 만든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