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혼자있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성들의 심리치유에 관한 책..
난 비록 남자이지만, 앞으로는 여성성의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강함보다는 부드러움, 대척보다는 수용, 획일화보다는 자유로움..
많은 모임을 나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남자들은 모임을 나오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모임들의 '장'은 아직은 남자가 많다)
여자들은 여러 모임에 나오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설사 두려움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이겨내고 나온다는 점. 훨씬 더 사람과의 관계 맺음에 익숙하고, 진심을 말하려고 애쓴다는 점..
얼마 전 '초식남'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앞으로는 남자도 이러한 여성들의 긍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태도로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여성들도 남성성을 가져야 하겠지만 ^^)
무튼, 이 책은 혼자 읽기에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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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조금 읽어보기: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살아 있는 한 혼자인 때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사는 법을 배울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던 구원의 환상을 버려야 했다. 그러자 점차 두려움이 걷히면서 혼자인 것이 더 이상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사는 삶의 숨겨진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수치와 외로움의 공간이 아니라 치유의 공간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내 안의 많은 것이 다시 깨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혼자라는 것은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광야가 아니라 사실은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는 왕국이었다. 혼자인 여자란 '자기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여자'다. 새로운 에너지로 내 길을 만들어가고 재정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는 고독의 기쁨과 충만함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주제를 짧게 말하면, 우리 여자들은 혼자 있는 것과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여자로서 홀로 서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인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장과 변화를 위한 자원과 기회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혼자임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혼자임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혼자인 것과 외로움은 다르다.
혼자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타인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일간 정의는 사실 '자신의 존재 안에 머무른다'는 의미를 담아내지 못한다.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혼자라는 것을 다른 시각에서 보기 위해서라도 혼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혼자 있지 못한다는 것은 혼자인 사람을 실패한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수치심은 우리가 누려야 할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오히려 혼자임을 받아들이려는 의지는 친밀한 관계를 맺는 능력을 강화해준다.
많은 여성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대면하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피하려고 할수록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려는 욕망은 집착으로 변해간다.
그러면 고독은 왜 필요한 것인가? 자기는 고독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잠을 자고, 쉴 수도 있으며, 새로운 정보와 경험을 분류하고 통합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고, 경우에 따라서는 종교적인 경험을 통해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충동과 고독을 통해 자기 본연으로 돌아가려는 충동, 이 두 가지 충동 모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치심은 지금의 자기 자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과 맞물려 그들이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도록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러나 충분하다는 것은 숫자로 나타낼 수 없다. 충분하다는 것은 수평선처럼 무엇을 하든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든 결코 닿을 수 없는 목표다.
수치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법
먼저 수치심과 두려움이 나의 감정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그렇게 태도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기 시작한다. 비밀을 털어놓고나선 예전처럼 수치심에 시달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인정하고 드러냄으로써 깊은 깨달음의 과정을 통과한 것이다.
같음과 다름의 상호작용은 일생을 통해 일어난다.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 나는 다른 사람과 원래부터 분리된 존재라는 생각이 따라오게 된다. 그래, 나는 나야. 나의 유일함을 축하하는 순간, 나는 다른 사람과 분리됨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있는 존재일 뿐 아니라 혼자이기도 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책에 나오는 한 아이의 이름) '삐삐'처럼 성인이 된 우리도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어린 시절의 능력을 다시 불러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능력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경험을 놀라워하는 감정이다. 여덟 살이 된 비키에게 엄마는 접시 닦는 법을 가르쳤다. '나는 설거지에 집중했어요.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경험은 신성하게 느껴졌으니까요.' 이제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접시 닦는 일은 매일 해야 하는 가장 즐겁지 못한 잡일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경험의 놀라움과 신선함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회화되어가는 과정과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상처 때문에 결국 우리의 자기는 숨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말하는 대신 착한 소녀나 나쁜 소녀가 되려고 노력한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랑 따위에는 관심 없다는 듯 살려고 한다. 극단적인 경우 상실과 상처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거짓 자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자아의 씨앗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당황하게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이 나머지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저주를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거부할수록, 그 아이를 지키고 싶은 강한 갈망과 고통받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갈망이 서로 싸움을 일으킨다. 어린 시절을 잊으려하는 노력 이면에는 어린 시절 속에 머무르고 싶은 충동이 숨어 있다.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는 기술, 즉 어린 시절의 세계를 정리하고 해독하고 어른의 삶에 통합하는 기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성장과 자유의 기쁨은 잃어버린 비밀스러운 부분, 바로 아이의 마음을 되찾을 때에 가능하다.
상실로 인해 고통을 겪은 아이는 커가면서 점차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아이로서 어른의 사랑과 보호를 너무도 필요로 했지만, 그것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그때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절실히 결핍을 느끼면서도 무력하기만 한 것이 어린 시절 상실의 특징이다. 어른은 도울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어린 세계로 되돌아가게 안내해주는 나침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상실의 원인이 무엇이든 아이는 잘못한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더 사랑스러웠다면 이러한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믿음은 자아 존중감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의심과 비난이 강해진다.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 안에 있는 공허함을 마주할 때 더욱더 심해진다. 그러나 두려움과 불안과 함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면, 우리 목을 조르던 이 감정들에서 점차 자유로워지기 시작한다. 고독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껴안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게 되고 '자기'는 자유를 숨 쉬게 된다. 그러고 나면 혼자 사는 것의 '예술'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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