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스토리 편집법은 자기 자신 및 사회적 세계에 대한 개인적 해석을 바꾸어 더욱 행복하게 만들고 좀 더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더 바람직한 자아관을 키워내는 것이다. 그래서, 스토리는 강요 없이 남의 행동을 바꾸고, 고통 없이 나의 행동을 바꾼다. 

정리하자면,
(1)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려면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봐야 한다. 자신과 사회를 해석하는 방법이 중심이다.
(2) 이 해석은 항상 고정되어 있는게 아니라 적절한 접근법을 통해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3) 해석의 작은 변화는 지속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며, 장기적인 행동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인상깊은 구절


1. 한 걸음 물러나 이유 묻기 
-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극도의 분노와 적대감’을 느꼈던 때를 떠올리라는 요청을 받고, 4개의 집단으로 나뉜다. 
(1) 몰입하고 감정에 초점을 맞춘 그룹
(2) 몰입하고 이유에 대해 생각한 그룹
(3) 거리를 두고 감정에 초점을 맞춘 그룹
(4) 거리를 두고 이유에 대해 생각한 그룹 

연구 결과, 4번 그룹이 좋은 효과를 보았다. 그들은 냉정한 접근법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적게 경험했고, 안정적 혈압을 유지했다. 이 실험의 결론은 사건을 곱씹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재해석하고 설명하라’는 것이다. 

2. 좋은 일이 일어나지 ‘못했을 수 있는 모든 경우’ 적어보기
- 연구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없는 삶을 떠올리게 한다. 
(1)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끝내 결혼을 하지 못했다면 삶이 어땠을지
(2) 지금의 배우자를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연구 결과, 1번 그룹이 부부 관계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생겼을 일을 상상해봄으로써 사람들은 그 일을 다시금 놀랍고 특별하며 조금은 신기한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3. 훌륭한 부모의 조건
- 버지니아 대학에선 12-18개월 유아들을 4개의 조건에 무작위 배정했다. 
(1) 4주 동안 최소 5회 교육용 비디오를 혼자서 보기
(2) 4주 동안 최소 5회 교육용 비디오를 부모와 함께 보기
(3) 비디오를 전혀 보지 않고 비디오에 나오는 어휘를 부모가 가르치기
(4) 비디오를 전혀 보지 않고 부모가 가르치지도 않기 

결론적으로, 그 무엇도 부모-자녀 간 상호작용을 대체할 수 없다. 3번째 조건의 아이들이 가장 많은 단어를 습득했다. 흥미롭게 대다수 부모들은 자녀들이 비디오를 통해 많은 단어를 배웠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 자녀를 위한 노력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4. 복종보다 중요한 내면의 스토리 
- 체벌은 아이의 행동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적이다. 그러나 엉덩이나 뺨을 맞고 자란 아이들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도덕 내면화’ 수준이 낮다. 아이는 “여동생을 때리는 건 잘못된 행동이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내가 여동생을 때리면 엄마가 내 뺨을 때를 거니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체벌을 사용하는 많은 부모는 자녀의 행동 교정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자신이 자녀의 내러티브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느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규칙 준수가 아니라 내면화다. 당신의 자녀의 내러티브를 어느 쪽으로 인도한 것일까?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녀의 자아관과 세계관을 방향 전환하는 것이다. 

- 보상은 위험하다. 물론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한동안 어떤 활동을 하고 나면 그 활동을 좋아하게 되고, 결국 보상이 중단된 뒤에도 그 활동을 계속하리라고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러나 보상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원래의 독서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손해날 것 없으니 아무 문제 없다.” 그러나 알고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보상은 아이들이 어떤 활동 자체의 재미 때문이 아니라 보상을 위해 그걸 하고 있을 뿐이라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그 활동에 대한 내재적인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 사회심리학자 마크 레퍼는 모든 교훈을 ‘최소 충분 원리’로 정리했다. 아이들이 바람직한 태도와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이 목표라면 부모들은 아이들이 바람직한 행동을 하게 할 최소한의 위협과 보상을 사용해야지 아이들이 그 것을 ‘행동의 이유’로 여길만큼 강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 자기 가치 확인 이론
- 사람들은 스스로를 착하고 유능하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여기려 하고, 그런 시각이 위협을 받으면 자아상을 회복하기 위해 심리적으로 어던 행동이든 하려 한다. 사람들에게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되새길 기회를 주는 것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그 분야는 ‘정체성으로 인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분야’들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어찌 되었든 인생에는 다른 중요한 것들이 있으므로, 학업은 더 이상 자기 자신에 대한 최악의 두려움 또는 다른 사람들의 고정 관념이 재확인될까봐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 미래의 내 인생을 머릿 속에 그려보고 3일 연속으로 20분씩 “어떻게 해서 모든 일이 가능한 모든 면에서 순조롭게 흘러갔고 내가 꿈꾸던 일이 실현되었는지”에 대해서 적어본다. 이 <최고의 자화상> 글쓰기를 마친 학생들은 중립적 주제에 관해 글을 쓰도록 배정된 학생에 비해 더 높은 낙관주의를 나타냈고, 삶의 만족도도 더 높았다. 


6. 고립감에서 소속감으로
- 공동체에 이해관계가 있다고 느끼고 미래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는 아이들은 피임없는 관계를 가짐으로써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적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10대들의 내러티브를 고립감에서 소속감(나는 공동체의 소중한 일원이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그 방법으로는 정기적인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의 자아관을 바꾸는 최고의 방법은 행동을 먼저 바꾸는 것이다. (선행 실천 원칙) 실제 행동이 자아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지, 교육이 도움을 주지 않는다. 




성찰하는 글쓰기 

 

2005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시기였던 것이다. 남자들은 군대를 전역할 때 쯤이면 누구나 '앞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지!' 라는 결심을 마음에 되새긴다. 내가 이 지긋지긋한 곳을 나가기만 하면 이렇게 살지 않을꺼야. 뭐 이런 각오를 다지는 것이지. 그래서 전역 후에는 습관처럼 6시에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고 이불도 스스로 갠다. 나 역시 그랬다. 3일 동안은. 


군대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독서와 성찰이었다. 그 전의 인생에서 성찰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나는, 군대에서 그나마 수첩을 보게 되고 끄적끄적 거리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책을 읽게 된다. 그 전에 읽었던 책들이 정말 흥미 위주의 책이었다면 그나마 군대에선 좀 더 깊이 있는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그 익숙함이 아직까지 나를 지탱하는 좋은 습관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군대가 아니었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아마 어려웠을 껄. 


상병이었나, 나는 한창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빠져 있었다. 타나타노트나 천사들의 제국을 비롯한 다양한 '영적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로웠고, 이후에도 휴가 나오면 정신세계사를 비롯한 영적 혹은 종교적 이야기와 관련한 책을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으면서 나는 '전역 한 이후에는 꼭 명상을 해야지'라는 희안한 결심을 하게 된다. 영적 세계에의 동경이 20대 중반의 나를 그 방향으로 이끌었던 모양이다. 


다시 돌아와서, 2005년 이후부터 나는 다양한 명상 및 영성 모임을 들락 날락 거리게 된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나는 대학 전공 이나 취업 따윈(?) 중요치 않다는 오만함에 가득차 있었고, 수업도 철학의 이해니 뭐니 그런 것만 찾아듣고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 순위는 오로지 '깨달음'이었으니까 말이다.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다소 치우치긴 했으나, 그래도 평소에 절대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깨달음이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대화했던 기억은 아직도 즐겁게 남아있다. 이후, 스승과 깨달음의 허상을 본 것도 그때 미친듯 쫓았기 때문이고.


그리스 철학자 에펙테토스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이후 몇 년간의 시간 끝에 나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 결국 인간은 인식으로 고통받는 구나. 이러한 앎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다루는 효과적인 툴이 코칭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코칭이나 질문에 관심이 많아 진 것도 그러한 배경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내가 왜 심톡을 하고, 질문 디자인 연구원을 하는지도 10년 전으로 돌아가야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결국 나는 그때의 관심사를 갖고 아직도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과거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하나 바뀐 것이 있다면 '목적지'이다. 깨달음과 영적인 세계에 꽃혀서 삶을 바라보지 못했던 과거의 나에 비해서, 지금의 나는 건강하고 후회없이 잘 사는 것이 목적이다.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았다면, 지금은 조금 내려왔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도 깨달음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아관과 세계관을 올바르게 형성하기 위한 교육을 하고 싶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아마 그 시작은 육아이리라. 기대와 두려움이 반반이다. 


이제 낼 모래면 2015년이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래도 배운 것이 있는 걸 보니 그냥 세월이 지난 것만은 아니다. 다행이도. 앞으로의 10년, 내 삶이 흘러갈지 나도 궁금하다. 2005년의 내가 지금의 모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도 2025년의 내 모습을 전혀 상상도 못했음 한다. 그래도 궁금하다. 2025년을 맞이하면서 그때의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10년 동안 무엇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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