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권의 소설을 봤다. 

과거 중학교 때는 (아직도 기억나는) 삼국지, 은하영웅전설, 람세스 등 장편 소설을 많이 봤었는데,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소설보단 비소설 위주로 책을 읽어왔다. 간간히 정말 보고싶을 때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만 봐왔었는데, 요근래에는 느낌에 따라 소설책을 집어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랬다지, 좋은 소설은 하나의 '큰 질문'과 같다고.. 나도 그것을 느낀다. 








최근에 본 2권의 소설은 '천개의 찬란한 태양'과 '빅 픽처'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내 안의 있는 '연민'과 '삶에 대한 긍정'을 일깨운 책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종교'와 '여성'에 대한 시각에 대해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를 선물한다.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깊게 나에게 전이될 수 있는지.. 놀라운 경험이었다. 현재 영화로도 만들고 있다고 하던데 이 서사를 과연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추석 연휴에 본 '빅 픽처' 이 책은 기대에는 약간 못 미치는 책이었지만 그래도 훌륭했다. 이 책은 내 안에 있는 '절박함'에 대해서 다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진정한 나'로 살고 있는가? 안정된 삶을 쫓아서 나의 길을 포기하는 선택은 하지 않았지만 아직 '절박한가?'라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을 할수는 없었다. 인상깊은 것은 직장 상사 '잭'이 하는 말이었다. 


빅픽처 49 페이지.


잭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가장 참기 힘든 게 뭔지 아나? 언젠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는 거야. 변화를 모색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거나 다른 생을 꿈꿀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리란 걸 알면서도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인 양 살아왔다는 거야. 이제는 더 이상 환상조차 품을 수 없게 됐어. 인생이라는 도로에서 완전히 비껴난 것이지." 나는 잭이 말하려는게 뭔지 알고 있어다. 연봉 50만 달러, 수많은 특권.. 그러나 그 모든 건 내가 뷰파인더 뒤의 인생을 포기하는 대가로 얻는 것들이었다. 이제는 백일몽이 되어버린 인생, 안정된 삶을 선택하는 대가로 포기한 인생. 잭은 그 안정된 삶이 바로 지옥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인상깊은 부분은 사진가와 소설가의 비교 부분이었다. 최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의도가 많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소설가를 '청소부'에 비유한 이 글이 아주 와 닿았다. 세세한 것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드는 것, 디테일 속에서 전체를 그려내는 것. 이 소설 전체가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아주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내가 가장 배우고 싶은 능력이다.  


빅픽처 404 페이지.


루디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기자는 청소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장면의 세세한 부분들을 모은다. 그 세세한 것들이 한데 모이면 '큰 그림'이 완성된다. 사진가는 늘 상황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영상 하나를 원하지만 작가는 작은 일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세밀한 묘사가 없는 이야기는 맥없고 심심할 수밖에 없으니 좋은 글을 쓰려면 균형감을 유지해야 한다. 글 전반에 작가 자신의 시각이 담기지 않으면 독자는 작가가 관찰한 바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다.  


두 개의 책을 연결한다면, 이는 '의미'라는 한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한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통, 한 소설은 뉴욕의 중심가에서 시작되지만, '삶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빅 픽처는 '자기다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천개의 찬란한 태양에선 그러한 자유로운 '자신다운 삶'은 꿈꿀 수 조차 없다. 다만 인생을 순응하면서 견디고, 버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의미 없는 것일까? 호세이니는 그렇치 않다고 단언한다. 누군가에게 작은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 삶은 충분히 가치있는 삶이고 위대한 삶이라고 역설한다.


빅 픽처의 주인공도 결국 자신의 작은 재능인 '사진'으로 누군가에게 의미를 전해주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결국 삶은 '관계'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이기주의와 소외는 닮았다. 혼자서 갖는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의미가 되고 싶어한다. 의미의 크기와 관계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누군가에게 하나의 의미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마리암의 삶처럼,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가치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