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헤르만 헤세의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유명했지만, 그것을 읽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올해 초인가? 데미안을 어느 북카페에서 읽었는데 단숨에 읽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데미안(세계문학전집 44)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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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은 하나의 세계다..새는 알을 깨고 날아간다... 라는 문장.. 그리고 아직도 기억나는 신의 이름 아프락사스..
글을 읽으면서 수 차례 나를 놀라게 했던 책이 었다.
그 문장의 수려함에 한번 놀라고, 그 인식의 깊이에 두번 놀랐었다.

오늘 1000원을 주고 '싯다르타'를 구입했다.  고속터미날 역 어느 조그만 서점에서..
그리고 퇴근 길에 항상 들리는 강남역 스타벅스에서 다 읽고 돌아오는 길..
'데미안'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가득했다.
싯다르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헤르만 헤세 (문예출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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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의문은..
1. 어째서 독일인이 이런 책을 쓴 것일까?
2. 서양 사람들이 이걸 이해하고 노벨문학상을 준 것인가?
ㅎㅎㅎ

몇 가지 구절을 적자면..

- 보시오, 카마라, 만일 당신이 돌을 물속에 던진다면, 그 돌은 가장 속한 길을 취하여 밑바닥까지 가라앉을 것이오.
싯다르타가 한 목적을 품고, 한 결심을 할 때에도 꼭 그와 같소. 싯다르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며, 사고하며, 금식할 뿐이나, 물을 꽤뚫으려는 돌과 같이 세계의 모든 사물을 꿰뚫어 들어가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그는 끌리면 몸을 그 곳에 맡기고 마오. 그의 목적이 그를 잡아 끄오. 목적에 위반하는 일이란 아무것도 마음에 허락하지 아니하는 까닭이오.

- 당신을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사고할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단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까?"
"그것이 전부라고 믿어집니다"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가령 단식같은 것,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인, 그것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먹으 거이 없는 경우에 단식이란 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예를 든다면 제가 단식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는 오늘에 와서 어떠한 일이라도 하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당신에게 든지, 다른 곳이든지 장소를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염치가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천천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는 초조함을 모르며 그는 절박함을 모르며, 그는 오랫동안 굶주림에 빠져 있을지라도 그것을 웃어버릴 수 있습니다. 주인, 그 점에 있어서 단식은 좋은 것입니다."

- 나는 다시금 나의 속에서 아트만을 발견하기 위하여 어리석은 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디로 나의 길은 나를 다시 인도하려는 것인가?
그 길은 어리석은 길이다.
그 길은 환형을 그리며 뺑뺑 돌고 있는 길이다.
길아, 갈대로 가거라, 나는 너를 따라 가리라.
이상하게도 그는 가슴 속에 북받쳐 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마음에 물었다.
대체 어디서, 어디서 이 기쁨은 오는 것이냐?

중략..

내 자신에 대한 증오와 그 어리석은 생활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요, 기쁜 일이요, 칭찬할 일이었다.
싯다르타,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렇게 오래 어리석은 생활을 하다가 너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너는 가슴에서 우는 새 소리를 듣고 그것을 쫓으려고 하였다.
이렇게 그는 자신을 칭찬했다. 자신에 대해서 기쁨을 가졌다.

중략..

이 절망과 이 깊은 증오를 느꼈다는 것, 그리고 그 증오에 굴하지 않았다는 것, 기쁜 샘과 음성이 아직도 그 속에 살아 있다는 것, 그 새가 있는 것에 대하여 그는 기쁨을 느꼈고, 웃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반백발이 된 그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알아야 될 것을 스스로 체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리하여 나는 죽고, 새로운 싯다르타가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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