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 읽는 심마니, 강정욱입니다. 이 카테고리는 '소소한 칼럼'이라는 이름의 '글방'입니다. 
제가 그리고 저희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적고 의견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부담없이 봐주세요 :)

이번 글은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란 주제로 조금씩 끄적거린 내용인데요, 제 생각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어서 적었습니다. 호흡이 긴 글이니, 중간에 지루해질 수 있단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재미있게 적고 싶어도 저란 사람이 그게 참 안 되네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어느 날 하와이의 전통 치유법에 대한 책, <호오포노포노, 평화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을 읽고 있었습니다. 
읽던 중 <삼나무 이야기>라는 이야기라는 짧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글이 제 생각을 대변하고 있단 느낌이 들어서 옮겨적었습니다. 우선 다 함께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짧습니다. 


"삼나무 이야기" 

옛날 어느 곳에 사과나무와 오렌지 나무, 아름다운 장미들이 
함께 행복하고 만족하면서 사는 정원이 있었다. 
정원에 있는 모든 것들은 행복했지만, 한 그루의 나무만은 그렇지 않았다. 
이 불쌍한 나무에게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과나무가 말했다.
"네가 필요한 것은 집중이다.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아름다운 사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그건 정말 쉬운 일이야"

장미 덤불이 주장했다. 
"그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어. 장미를 피우는 게 더 쉽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를 봐!"

절망한 나무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모두 시도해보았지만 다른 나무들처럼 될 수 없었다. 
매 순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더 깊은 좌절뿐이었다.

하루는 모든 새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알려진 올빼미 한 마리가 정원으로 날아왔다. 
올빼미는 나무가 절망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네 문제는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야. 지구 위에 있는 많은 인간들과 같은 문제일 뿐이지. 
내가 해결 방법을 알려줄게. 다른 사람이 바라는 사람이 되려고 네 인생을 희생하지 마. 
너 자신이 되는 거야. 너 자신을 알면 돼. 그러기 위해서는 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렇게 말하고 올빼미는 사라졌다.
 
"내면의 목소리? 나 자신이 되라고? 나 자신을 알라고?" 
절망한 나무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무는 귀를 닫고 가슴을 열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넌 사과는 결코 만들 수 없을 거야. 왜냐하면 넌 사과나무가 아니기 때문이지. 
그리고 넌 봄에 꽃을 피우지도 못할 거야. 왜냐하면 장미 나무도 아니기 때문이야. 
너는 삼나무야. 너의 운명은 크고 당당하게 자라나는 거야. 
너는 새들에게 쉴 곳을 주고 여행자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시골길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거야. 
너에게는 임무가 있어! 그 임무를 따르면 돼!'
 
나무는 그렇게 스스로 강한 확신을 얻었고, 곧이어 자신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러자 나무는 곧 공간을 채우고 모든 이들로부터 감탄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정원은 그제서야 비로소 완전히 행복해졌다.

 
다 읽어 보셨나요?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린 자연스래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삼나무들이 스스로 성장하기를 멈춰 버리는가. 
얼마나 많은 장미 덤불들이 가시만 돋아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는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 치여 '자기 자신'과 분리된 삶을 살고, 진실에서 멀어집니다. 가끔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나와서 나와 세상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만, 우린 마치 듣지 않은 것처럼 행동합니다나의 재능을 억압하고, 아니면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빠져듭니다. 그래서 분리된 삶은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참고로 앞으로의 내용은 파커.J 파머의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에 나오는 글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맡은 일에 온 힘을 다하지 않고, 그 일로 도움을 받게 될 사람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진실을 감추고서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득을 얻으려 한다. 
갈등, 도전, 변화를 피하기 위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숨기고 정체성을 감춘다. 
꼭 그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기본적인 가치를 거스르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영위한다.

이러한 분리됨은 혼자만의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곧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산됩니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건성건성' 가르치면 그것은 곧 학생들의 문제가 됩니다. 
정치인들이 단지 '혀'로만 말하면 그것은 곧 시민들의 문제가 됩니다. 문제는 확대되고, 다시 반복됩니다.

저는 이러한 현실이 싫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현실이.. 그래서 전 온전함이란 단어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온전함이란, 완벽함을 뜻하는게 아니라, 깨어짐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원래의 조건에 일치하고, 손상되지 않고, 섞인 것이 없는 진정한 상태'의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선함보다 온전함이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는 좁은 문과 좁은 길로 들어선다.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아가는 것은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훨씬 쉬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존 미들턴 머리(John Middleton Murry)


우리는 왜 이렇게 분리된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때문입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을 믿으며 우리는 가면을 쓰고 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게 안전하다고 교육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면과 갑옷을 벗고' 살아가는 게 더 안전하고 바람직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학생들과 공유하는 교사가 벽 뒤에서 정보와 지식을 날려보내는 교사보다 더 효과적이고,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리더가 인사고과표로 이끄는 관리자보다 직원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죠.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깨어있어야 합니다.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부인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부인하면 할 수록 우리는 술, 약물, 일, 쇼핑, 대중매체에 중독되어 고통을 마비시킵니다. 하지만 평생동안 거짓된 삶을 사는 일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없습니다. 

질문은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깨어있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믿을 수 있는 관계 어떤 어려움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 홀로됨은 자아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그냥 두면 자아도취와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커뮤니티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수직적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한, 그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이들 앞에서 자신이 선택한 방식에 따라 스스로 분별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공간에서는 결코 서로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면의 두려움은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도록 할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홀로됨과 커뮤니티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려면 '이해'가 필요합니다. '홀로됨'은 다른 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자아'에게서 떨어져 있지 않음을 뜻하며, '커뮤니티'는 반드시 다른 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을 놓치지 않음을 뜻합니다. 

"홀로될 수 없는 이에게는 커뮤니티를 경계하게 하자.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은 이에게는 홀로됨을 경계하게 하자."

이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요?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여기선 기대와 욕구를 채우지 않고, 각자의 능력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을 채웁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고치고자 하는 충동을 자제하고 흔들림 없이 서로와 함께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속도와 깊이로 서로 배워야 할 것을 배우도록 지원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꿈꾸는 학교의 모습도 이런 모습입니다. <홀로 함께하기>란 단어가 그려지나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저는 교육의 핵심은 온전함을 되찾는 것, 그리하여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선 '깨끗한 거울' 즉,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왜곡된 나의 모습만 볼 뿐입니다.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 공간엔 지시와 판단은 없습니다. 기다림과 질문, 깊은 신뢰가 존재할 뿐입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꿈꾸며, 사람들과 함께 이뤄가고자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를 위한 교육과 교실의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이 글을 쓴 것이 작년 4월이다. 꽤 옛날에 썼는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얼마 지나지 않았구나.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이 정답이겠다. 시간에 대한 인식은 꼭 그 시간의 양에 비례하진 않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다시 글을 읽어보았다. 뭐 지금도 이 생각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나는 자기다움과 우리다움을 회복하는 공동체에 관심이 많고, 거기에 대한 나름의 논리가 담긴 글이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뭐?"라는 자연스런 질문이 떠오르는 글이란 느낌이고 말이다. 하하하. 이어서 2탄도 옮겨본다. 


안녕하세요? 책읽는 심마니, 강정욱입니다. 
최근 세월호 사건 때문에 많은 분들이 큰 상실감 속에서 살아가고 계신데요. 저 역시 한 명의 어른으로서 크나큰 책임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일진 모르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저말고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건이 쉽게 잊혀져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번 달에는 이런 저런 사건들과 소소한 가정사 때문에 글 쓰는게 조금 늦어졌는데요, 그나마 4월 마지막 날이나마 올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포스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번에 쓴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1)'에서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육의 핵심은 온전함을 되찾는 것, 그리하여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선 '깨끗한 거울' 즉,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혼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다. 왜곡된 나의 모습만 볼 뿐이며,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야 한다. 이 공간엔 지시와 판단은 없다. 기다림과 질문, 깊은 신뢰가 존재할 뿐이며, 이 공간에서 모든 사람들은 저절로 배우고 가르친다.  
저희는 이러한 공간의 모습을 언제나 상상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이뤄가고자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를 위한 교육자와 교실의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교육의 모습'을 이루기 위해선 어떤 사람이 필요할까요?

그건 바로 '온전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온전한 교육은 온전한 어른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온전한 어른이란, 아마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줄 알며, 학생들과 깊이 공감할 줄 아는, 그런 어른일 것입니다. 이건 마치 성인군자나 니체가 말한 '초인'과 같은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완벽해지려는 분투보다는 겸손을 향한 여정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꼭 이럴 필요는 없습니다. :)

 

개인적으로 저는 2년 전에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하나 인정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 아이들이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었지만, 인정하고 나니 제가 할 일은 분명해 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르치지 않고 배움이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그 이후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이처럼 온전한 교육의 시작은 '가르침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배움은 배우는 사람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가르칠 준비가 되었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게 아니라, 배울 준비가 되었을 때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게다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지금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우린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학생들에겐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건 바로 '경험의 공간'입니다. 그 공간에서 아마 아이들은 즐거운 경험, 몰입하는 경험, 이야기는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운이 좋다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하나의 '의문 혹은 질문'을 가지고 가게 될 것입니다.

 

"아, 오늘도 재미있었다! 근데 음.. 아까 그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궁금한데?"

 

자기만의 경험을 하고, 질문을 가졌을 때 학생들은 이제 '배울 준비'가 되었습니다. 배울 준비가 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위의 모든 관계'입니다. 주위에 있는 책, 인터넷, 사람 심지어 길가에 핀 꽃을 통해서도 배우기 시작합니다. 모든 장소는 배움의 공간이 됩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그 마음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견지하고, 관계하며, 가끔 적절한 질문을 던지면 됩니다. 물론 스스로도 이미 하나의 질문을 품고 살고 있어야 하지만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교육의 경험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험이 일어나기 위해선 어떤 교실의 모습이 필요할까요? 그건 아마 이러한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바로 스웨덴의 '교실없는 학교, 비트라'입니다. 딱딱한 교실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멋지지 않나요? 

이러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서로 깊이 '공감'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며, 진실된 '나눔'을 통해 서로를 성장시키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기분 좋은 상상은 '이러한 교실에선 어떤 수업이 경험되어져야 할까?' 입니다. 

이러한 공간에서 우린 또 국어, 영어, 수학을 해야 할까요?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 학생들의 공감, 표현, 나눔 능력을 일깨워줄 수 있는 수업 커리큘럼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과 수업은 주제별 학습을 통해 흥미에 따라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메인 수업 3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철학 수업 : 철학은 당연한 것에 대해서 '의심할 때' 시작됩니다.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아마 그래서 철학 수업은 깊이 있는 독서, 글쓰기 그리고 토론을 통해 생각을 표현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나누고, 친구의 나눔을 통해 자신을 보고, 나아가 자기인식능력과 공감 능력까지 기르게 됩니다. 이러한 철학 수업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시험이나 유대인들의 떠드는 도서관 '예시바'와 같은 모습을 닮아야 할 겁니다.


Q.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A. 독서, 토론, 글쓰기, 코칭 등

 

2. 예술, 디자인 수업 : 진정한 예술은 '100% 자기 표현'을 가능하게 하며, 진정한 디자인은 '100% 인간 중심'으로 설계됩니다. 우리에겐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을 표현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불편이나 불만에 깊이 공감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시간도 또한 필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힘이 예술과 디자인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표현하고, 또 자신의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우리 모두가 꼭 누려야 할 권리일 것입니다. 이러한 예술, 디자인 수업은 영국의 서머힐 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Q.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창조하고 싶은가? A. 예술(춤, 노래, 그림, 연극), 디자인 씽킹 등


3. (게임을 활용한) 프로젝트 수업 : 게임은 지금까지 개발된 가장 효과적인 '몰입 환경'입니다. 게임에는 스토리가 있고, 자율성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모든 참가자는 이 '매직 서클' 속에서 주인공이 되며, 유능해지는 경험(Level Up)을 합니다. 게다가 레벨에 맞는 퀘스트로 인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고요. 이 교실에선 이처럼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며, 현실 세계를 탐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공간에서 학생들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닌 함께 협업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어려운 퀘스트도 쉽게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프로젝트 수업은 독일의 헬레네 랑에와 같은 사례를 참고하고 싶습니다.  


Q.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와 함께, 무엇을 탐험하고 싶은가? A. 프로젝트 수업, 게임, 소셜 디자인, 사회적 기업가정신 등 


지금까지 사람, 장소, 그리고 커리큘럼에 대해서 간단히 적어 보았습니다. 혹시 이러한 학교가 머릿 속에 그려지시나요? :) 아직은 터무니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저희는 이러한 신념을 갖고 조금씩 조금씩 현실화시켜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결국, 이 학교에선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그걸 한 단어로 말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결국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더욱 진실해지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것이며, 나아가 기꺼이 창조하고 표현하는 예술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학교를 <심마니스쿨>은 지향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믿는 신념을 함께 공유하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의견을 주시고,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작은 행동이 큰 기적을 낳는다고 합니다. 작은 행동이지만 멈추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양심을 교육시킬 수 있다. 지혜로운 글을 읽고 사색하면서..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한 발짝 물러나거나,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과정에서.. 

타인의 경험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면서, 시간을 들여 마음을 정화시키고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 목소리에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양심을 훈련시킬 수 있다." 

 

스티븐 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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