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양심이 없다는 상상


한번 상상해보세요. 어느 날 문득, 당신에게 양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죄의식이나 가책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낯선 사람을 비롯해 친구, 심지어 가족의 안녕을 걱정하는 마음조차 없습니다. 

어떤 이기적인 짓을 해도, 남에게 해를 끼치고도 평생동안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심리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숨길 수 있는 능력까지 생겼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이렇게 상상해 보세요. 어쩌면 당신은 돈과 권력을 갈망하고, IQ는 대단한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성공을 위해선 필요하지만 양심 때문에 포기하고 마는 일들도 감쪽같이 해치웁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사람이 되었다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상상이 되시나요? 아마 당신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머리는 뛰어나지만 양심이 없는 당신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됩니다. 거리낄 것도 없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당신은 이러한 사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아니, 불가능합니다. 
우리같은 보통 사람은 양심이라는 것을 한번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한번도 없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교정 불가능한 성격 손상’은 인구의 4%가 갖고 있으며 이를 가리켜 <소시오패스 Sociopath>라고 부릅니다. 4%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숫자일까요? 25명 중에 1명이며, 보통 50명 기준으로 한 반에서 2명이 소시오패스입니다. 생각보다 많지 않나요?

 
게다가 더 위험한 것은 우리나라 사회를 비롯한 전 세계가 이러한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권장하는 문화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소시오패스는 그것을 방조하는 사회와 문화에 의해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하우스오브카드 - 주인공 부부가 소시오패스로 나오는 대표적 미드입니다.>



이러한 <소시오패스>들은 유혹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보통 사람이 필요한 이상의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고, 갖가지 위험을 무릅씁니다. 특히 주위 사람들을 자신이 만든 위험한 모험에 동참시키는 것에 능하며, 병리적 거짓말과 기만, 그리고 기생적 친구관계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어떠한 경우에도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위험을 무릅쓰지만, 책임을 지는 자리에선 항상 벗어나 있습니다. 거짓말과 책임회피에 능하기 때문이죠. 또한 이들은 사람들과 유대를 맺으려는 관심이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도구나 소유물로 여길 뿐입니다.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관계를 형성하지만, 도구의 의미를 상실한 대상에게는 가차없는 행동을 일삼습니다. 

이러한 소시오패스에게는 양심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말이 그들이 선악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구별이 그들의 행동을 제한하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면, 이 4%가 나머지 96%의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존재하느냐 부재하느냐는 기준은 어쩌면 지능이나 인종, 성별보다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장애에 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그저 폭력적인 사이코패스쯤으로 생각합니다. 일반 (착한) 사람들에게 그들은 별나거나, 예술적이거나, 너무 승부욕이 강하거나, 게으르거나, 멍청하거나, 늘 악동 같을 뿐이며 그렇게 가볍게 여긴 탓에 그들은 쉽게 먹이가 됩니다. 어떤 의미에든 ‘소시오패스’라는 단어를 아는 자는 소수이며, 최근에야 조금씩 부각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사회적 인식’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위험성에 비해서.


 


 <공감 능력 향상을 위한 디자인씽킹 워크샵 - 강의 자료 중 일부입니다.>

 


앞으로 저는 양심과 공감 능력의 중요성을 공유하고자, 양심과 공감 능력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인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에 대한 글을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선 그것이 없어진 상태를 상상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죠. :)

 

그리고 이어서 이타성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쓰는 글은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 <공감의 시대>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 <공감의 뿌리> <공감의 힘> 그리고 <포커스>를 참고로 했습니다. 아직 제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글을 옮겨 적고, 제가 임의대로 편집하고 연결짓는 수준이라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양심의 완전한 부재,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2장. 맹자의 사단과 공감 능력


안녕하세요? 책읽는 심마니, 강정욱입니다. 

지난 시간에 저는 <양심이 없다는 상상>이란 주제로 글을 써 보았습니다. 

핵심은 이 질문이었죠.  "어느 날 문득, 당신에게 양심이 사라졌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번 시간에는 양심과 공감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좀 더 형성하고자, 쉬운 예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일단 지식채널 E <기원전 4세기>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정리해 놓은 걸 옮겨왔습니다. 

 

 

 

 

어떤 부분이 인상깊으셨나요?

저에겐 이 문장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왕에게 필요한 것은 백성의 배고픔과 가난에 대한 공감의 능력이다."

 

만약 중국의 왕이나 우리나라의 왕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왕과 권력자들이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니, 모든 사람이 이러한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떤 모습을 이루게 될까요?

지금의 모습과 같을까요? 

 

맹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惻隱之心 仁之端也(측은지심 인지단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羞惡之心 義之端也(수오지심 의지단야 )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辭讓之心 禮之端也(사양지심 예지단야)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是非之心 智之端也(시비지심 지지단야)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이는 맹자가 가진 인성론으로서 '사단설' 또는 '성선설'로 불립니다. 

맹자는 이에 근거해서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말하는데요, 이러한 정의에 근거해서 왕도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사상이 나옵니다. 이는 사람의 인성을 이야기할 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예시입니다.

 

그 옛날 기원전 4세기에 맹자를 비롯한 성인들은 벌써 <인,의,예,지>를 말하면서 사랑, 정의, 예절, 지혜를 가르치고 있었다는 사실이죠. 놀랍지 않나요? 이 4가지를 통칭하는 말은 <양심>이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그 마음이죠.

 

저는 그 4가지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이 바로 <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상황에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대상을 보면 공감적 고통이나 죄책감 등의 정서를 느끼게 되는데요. 이는 양심이 있는 인간에겐 자연스러운 정서입니다. <인>의 핵심은 결국 공감입니다. 

공감이란, 자아를 가진 인간이 타자가 되어보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죠. 


이러한 공감 능력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 학자들이 내놓은 바가 있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공감은 타자의 역할을 취하여 보고 대안적인 조망을 취해 볼 수 있는 능력이다.(Mead, 1934)

공감은 타인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들을 이해하려는 자기 인식적인 시도이다. (Wispe,191) 

공감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목격한 결과로서 경험하는 염려,자비,온정 등 타인 지향적인 느낌들이다. (DonBatson)

공감은 자신의 처지보다는 다른 사람의 처지에 더 알맞은 정서적 반응이다.(Hofman,1982) 

공감이라는 용어는 희랍어의 empatheia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타인의 감정적 체험을 적극적으로 이해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Astin,1967) 

공감은 지각된 다른 사람의 체험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Stotland,1978) 

어떤가요? 모든 정의가 각자 다르듯, 공감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다 다릅니다. 하지만,

가리키는 방향은 한 곳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네 맞습니다. 

어쩌면 이는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앎과 지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서양을 떠나서 말이죠. 


이러한 공감 능력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와 관련해서 좋은 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철학 선생님인 안광복 선생님이 과거에 인터뷰 중에 하신 말씀이 공감되어서 정리해 두었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사회는 세단계로 발전한다고 봅니다. 가장 밑바닥은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회, 그 위 단계가 이성과 합리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죠. 마지막 세 번째는 공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라고 봐요. 우리 사회는 이제 폭력에서 벗어나서 이성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단계까지는 올라온 거예요. 그런데 이성이 과연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제가 봤을 때는 이것은 말로 하는 검투사 시합일 뿐이거든요. 승자와 패자가 있고 패자는 다시 원한을 품고 갈등이 반복됩니다. 정말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공감의 사회, 상대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봐요. 우리사회는 이해의 사회에서 공감의 사회로 나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말에 100% 동의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해의 사회에서 공감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과도기에 있다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아직까지 세대 간, 지역 간, 남녀 간에 다양한 갈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공감 받고, 더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공감의 시대는, 분명히 올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저희 심마니스쿨은 이러한 공감의 시대를 준비하는 교육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교육 철학과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누구나 함께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힘을 모아주세욧! 


마지막으로 한번 더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온전한 공감 능력과 양심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PS: 나름대로 야심차게 시작했던 공감 교육 시리즈의 글이다. 호기롭게 두 번째 글까지 쓰고 더 이상 완성하지 못했었다. 2014년의 내 공부 주제가 바로 '공감'이었고, 그게 맞게 꽤 많은 책을 본 것에 비해선 좋은 결과를 남기진 못했었다. 이 시리즈라도 더 완성했더라면 어땠을까. 란 생각도 지금 다시 쓰면서 하고 있다. 당시 내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1. '공감이 없다는 상상을 해보면서 공감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기. 2. '공감 능력의 대표적 예시'를 제시하면서, 희망을 제시하기. 3. 전 세계적으로 어떻게 '공감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사례들 4. 우린 앞으로 어떻게 공감 교육을 해야하는지 대안들 5. 심마니스쿨이 어떻게 공감 교육을 해나갈 것인지 그 계획들. 이런 식으로 쓰고자 했으나 막상 성공하지 못했다. 공감에 대해선 지금도 깊은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있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의 시리즈는 모두 완성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카프카가 말했다. 서두르는 것은 죄라고. 너무 느긋하지도,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말고 나아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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