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학기말 자유학기제 캠프
 
지난 주에 이어서, 당산서중 교육이 있었다. 6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들어가서 같은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것. 끝나고 느낀 것은 절반의 성취감과 절반의 아쉬움이다. 우선, 성취감은 있다. 내가 워낙 잘 못 하는 영역 (단체 교섭 및 교육 및 단일 프로그램 구성 등등)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배운 점도 많았기에.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사실, 나는 모든 교육은 그걸 진행하는 사람에 따라 모두 달랐음 한다. 각자 개성과 강점이 다르고, 그게 100% 발휘될 수 있을 때 교육생들도 만족하는 법이니까.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교육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장단점도 있다. 그런 교육일수록 더 실험적이고, 망할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에선 ‘안정’을 더 중요시한다. 예전 성인 대상 교육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특정 콘텐츠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되는 것이다. 만족도가 높게 나와야 하기에. 결국, 결과가 보장될 수 있는 게임을 활용한 교육이 선호되고, 계속 열릴 수 밖에 없는지도 이제는 이해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교육 비즈니스가 아님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실험소’다.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펼쳐지는 학교. 학생들도 선생도 모두 공부하고, 실험하고, 성장하는! 나는 무엇보다 그런 모델을 꿈꾼다는 사실을 알았다. 많은 것은 배운 경험이었다. 


12월 15일
연지원 선생님 멘토링

연지원 선생님은 올해 맺은 인연 중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 중 한 명이다. 알고 있었던 것은 꽤 되었지만, 얼굴을 직접 본 것은 작년 이맘때니, 그리 오래된 인연은 아니다. 하지만 1년 동안의 와우 수업을 듣게 되면서 가깝게 인연을 맺었다. 오늘은 1:1 멘토링이 있던 시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딱 지나가버린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블랑에서 대화하다가 저녁은 홍대밀방에서 먹고, 저녁에 연남동 낙랑파라로 옮겼다. 관심사나 주제가 어느 정도 비슷해서 그런 것일 수 있지만, 끊임없이 대화하고 하루 종일 웃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만나기 전, 선생님이 허리를 삐긋하는 바람에 중간 중간 꽤나 고통스러우셨으리라는 것. 허리를 아파보았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주로 나눈 주제는 올해 1년을 돌아보기 였고, 선생님의 근황도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주력하는 직업적 역할과 앞으로의 계획도 나누었는데 말하면서 정리되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 중간 중간 필요한 조언도 주었다. 뜬금없지만, 나에게 가장 자극이 된 건 ‘시간관리’였다. 한창 젊을 때는 5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말에서 ‘나는 어느 정도의 시간 단위’를 아까워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1시간 정도 그냥 쓰는 건 너무 아깝지 않아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볼 책이 많고, 할 공부가 많은데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건 치명적이다. 그 ‘시간 단위’를 좁혀나가자. 그게 의외로(?) 꽤 와닿았던 멘토링 시간이었다. 


12월 16일
한가로운 저녁 시간 

엄청 추운 날이었다. 오후에 나의 사무실(?) 망원역 스벅에서 일하다가 아내와 재원이를 만났다. 원래는 홈플러스도 가고 좀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매서워서 망원시장만 둘러보다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뭐 먹을까? 하다가 소고기 무국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무 하나랑, 재원이 먹을 유기농 야채랑 딸기만 사서 왔다. 집에만 오면, 재원이는 활동 시작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나는 뒷꽁무니 따라다니느라 바쁘다. 그렇게 내가 돌보는 사이에, 아내는 저녁을 준비했다. 아내가 중간에 이런 말을 했다. ‘저녁 준비 할 맛이 난다’고. 왜냐믄, 평소 내가 집에 별로 없으니 저녁도 안 챙겨먹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데 뜨끔했다. 미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12월에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재원이를 재웠다. 그리곤 안전망을 설치했다. 그간 재원이가 워낙 활발해서 부엌에 들어오는 걸 막느라 고생이 많았기에. 다 설치하고 누우니 벌써 10시다. 얼른 자자. 


12월 17일 - 19일
보람찼던 3일

내 예상에, 내 일정은 12월 중순이면 아주 여유넘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17일, 오늘도 하루종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주로 했던 것은 와우광땡 12월 수업 축제 준비다. 다음 주에 정말 푹 쉬고 싶었기에, 오늘 모든 일을 다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다보니, 쉼 없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뿌듯했다. 요즘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글쓰고, 일하기를 반복하는데.. 그게 참 마음에 드는 일상이란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18일. 오늘은 오전에 유유님과 만남이 있었다. 한 1년 반 정도에 1번 정도 보는 것 같다. 예전에 코칭 공부할 때 만났던 분인데, 지금은 학습 코칭 쪽으로 관심을 두고 일하고 계시다. 공동 육아에 대해서 선배시기도 하시고, 또 의식이나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도 오랜만에 다시금 정신이 바짝 들었다. 깨어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기도 했고. 사실 깨달음은 깨어있음이 자주 출몰하는 상태이기에. 그리곤 오후엔 은성중에서 수업이 있었다. 아이들 한명 한명과 대화를 나누는게 난 왜이리 즐거울까. 강의보단 이런 식의 소규모 수업이 훨씬 즐겁단 생각을 했다. 19일엔 원래 구미에서 강의였다. 하지만, 취소되었다. 중학생 신청자가 너무 적어서란다. 허긴 시험이 끝나는 지금 시점에 수업 들으러 오는 사람이 많을리가 없다. 덕분에 생긴 여유 시간 때문에 우린 즐거운 토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12월 20일 - 23일
영원처럼 길고, 정신없이 짧았던 시간

일요일 오후, 부모님께 연락이 왔다. 사실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할머니의 부고 소식이다. 내일 수업을 앞당겨서 진행하기로 하고, 바로 대구로 내려가기로 했다. 아내와 재원이는 두고 가고 싶었지만, 실랑이 끝에 결국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많이 떠오른 장면은 희안하게도 중학교 다닐 적, 할머니와 산에 가던 모습이었다. 나는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편이 아니었다. 소수의 친구들과 놀거나, 집에 와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것이 다 였다. 그러던 나를 보던 할머니는 내 손을 이끌고 동네 산에 함께 올라가자고 권하셨다. 집에 가만히 있음 사람이 처진다고. 그래서 난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이면 할머니와 함께 산을 많이 올랐다. 그래봐야 동네 언덕이지만, 그래도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할머니와 수다도 떨고, 운동도 했다. 사실 별거 아닌 기억이다. 하지만, 할머니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기억이긴 하다. 누군가와 함께 보낸다는 건, 그 절대적 시간은 참으로 가치있다는걸 세삼 느낀다. 그렇게 다음 날, 나는 매형차를 얻어타고 대구로 내려갔다. 차에서 재원이 때문에 힘들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잘 자주는 덕분에 그리 힘들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재원이가 얼마나 기특한지. 성주 요양원에 마련된 장례식 장에 갔다. 친척들이 미리 와 있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다들 얼굴을 보기 힘든데, 슬픈 와중에도 반가웠다. 이런 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느낀다. 가족만이 가져다 주는 그 특유의 연대감을. 그리고 그 소중함을. 할머니께 절을 드리고, 부모님과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친척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밤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와 재원이는 내일 일정을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매형의 도움을 얻어서 다시 대구로 갔다. 나와 매형만 새벽에 다시 오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결정이 정말 탁월했다고 본다. 실제로 다음 날까지 재원이와 아내가 계속 장례식장에 있었다면 나는 정말 멘붕이었을 것이다. 새벽 4시부터 내내 정신없었으니. 발인을 시작했다. 나는 지난 번 할아버지 장례식과 마찬가지로 영정 사진을 드는 임무를 맡았다. 발인을 마치고 차에 탔다. 화장하는 곳으로 갔다. 지난 번에도 그렇고. 나에겐 이곳이 가장 슬픈 곳이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할머니만 본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아내, 그리고 재원이의 모습마저 떠올린다. 이런 생각도 한다. 변하지 않는 두 가지 사실. 우린 태어나고, 또 죽는다는 것. 사람은 선택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 사건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냐는 것. 수 많은 질문과 기억이 떠오르는 공간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화장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는 영천의 호국원이었다. 할아버지가 6.25에 참전 하셨기 때문에, 할머니도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옆에 나란히 놓여진 할머니를 보았다. 사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리 잘 맞는 인연은 아니었다. 두 분이 싸우지 않고,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니. 이제 다시 만나셨다. 하늘나라에선 어떻게 지내실지 궁금하기도 하다. 제사를 드렸다. 이후 절에가서 다시 한번 공양을 드리고 집으로 왔다. 숨가쁜 하루였고, 많은 생각이 올라오고 사라진 날이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뭔가 싶기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도 된다. 


12월 24일 - 27일
2015년의 크리스마스 

아내는 크리스마스를 특별히 여긴다. 그래서 2013년 우린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작년에는 출산 준비로 재원이 방을 꾸몄고. 올해는 싱크대를 만들었다. 재원이와 아내의 역할극을 위한 미니 주방을. 사실 장난감이라고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정말 거대한 작업이었다. 만드는데 총 소요한 시간은 7시간에 가깝다. 가구 하나를 만드는데 이렇게 많은 손이 필요하구나. 라는 단순한 진리를 얻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즐거운 일이긴 했다. 생각이 없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하지만 나에게 적합한 경험은 아니었다. 나란 사람이 잘 하는 일과 못하는 일에 대해선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느려터진 나의 손과 발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기억나는 건 재원이 밥 먹이기와 놀기. 이번 연휴에는 난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맛 보고자, 노력했다. 그랬더니 얻은 수확이 있다. 이제 재원이가 ‘아빠 아빠’를 곧잘 외친다. 과거에 아무리 알려주려고 했어도 잘 말하지 않았던 아빠를 이젠 잘 한다. 역시 ‘절대적 시간’은 중요하다. 재원이가 내 얼굴을 확실히 익히지 않았을까 싶다. 아. 그렇지. 하나의 수확이 더 있다. 바로 '영화보기'다. 아내와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인턴>을 다 보았다. 다소 뻔한 내용이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영화에 푹 빠진 아내를 보는 것이 나에겐 더 큰 즐거움이었지만. ㅎㅎ 그렇게 조용하게 올해도 지나가고 있다. 


12월 28일
오늘 아침, 베트남 커피와 함께

얼마 만에 오는 낯선 카페인가. 새로운 경험과 맛을 중요시하는 나이지만, 딱 하나 고정적인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카페다. 나는 주로 망원역과 합정역의 스타벅스를 이용한다. 그 이유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주로 카페에 머물게 되면, 나는 꽤 오래 일한다. 그래서, '가장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큰 규모의 카페를 선호하는 편이다. 작은 카페에서 오래 앉아있는건 왠지 민폐라고 느껴지지만, 스벅은 그런 느낌이 덜하다. ㅋㅋ 오늘 아침엔 수원 화서역으로 왔다. 근처 강의가 있기에, 미리 도착해서 일하려고 앉았다. 주문하려고 하는데, 베트남식 사이공 커피가 있더라. 연유를 넣어먹는 맛이라고 들었는데, 호기심에 한번 시켜봤다. 맛있다. 일단, 커피가 달달하니 겨울에 먹기 좋은 맛이다. 이제 다시, 일주일의 시작이다. 일상으로 복귀한 느낌이랄까. 오늘 월요일과 지난 주 월요일과의 간격은 꽤 크다. 이제, 일 하자. 


12월 29일 - 30일
영화 '사도'를 보고

어젯 밤과 오늘 오후에 걸쳐서 영화 ‘사도’를 봤다. 스토리는 간단했다. 사도세자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밀도는 그리 얕지 않다. 이 사건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 중의 하나다. 그래서 온갖 드라마와 영화로 많이도 등장했다. 영화가 끝나고 좀 더 살펴봤다. ‘한중록’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한다. 비극의 시작은 사도가 1살때 세자로 책봉된 것이었다는 것. 다시 말해, 부모 밑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야할 아기가 세자가 되고, 떨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애정 결핍’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에 비해 영조의 기준은 높기만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게다가 영화를 봐도 사도는 그림과 춤, 무예를 좋아하는 아이다. 만약 그 강점을 살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아이의 입장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누구도 완전한 사람은 없다. 사도 입장에서 보면 그가 이해가 되지만, 영조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사랑했음 세자로 책봉했을까. 하지만, 지혜롭지 않은 자의 최선은 최악을 결과를 낳는다. 마음도 좋요하지만, 그 마음을 지혜롭게 표현하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 그 조그만 아이에게 세자로서의 책임감이 아닌 사랑받는 느낌만 충분히 주었더라고 이런 결과가 일어났을까 싶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이러한 내용과는 별개로, 또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사관’의 존재다. 영조가 하는 말 중에 ‘너는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라는 어조가 많이 나오는데, 왜냐면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사건이 후대에 기록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하는 행동이 모두 누군가에게 보여지게 되고, 이야깃 거리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인간이 타자를 인식하는 순간, 게다가 후대를 머릿 속에 넣는 순간, 그가 판단 기준은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선대의 좋은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시대에는 후대를 유념하며 살아간다면, 그리고 어떤 유산을 남겨야 할지 고민한다면, 분명 이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사관 제도를 온 국민에게 도입한다면 어떨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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