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두 번의 감동
오늘은 오전이 유난히 인상깊은 날이다. 일찍부터 미팅이 있어서 일찍 나온 아침이었다. 매일 보던 정류장이고 매일 타던 버스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느낌이 달랐다. 대구에 다녀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것인지, 어둑어둑한 날씨 때문인지, 조금씩 떨어지는 낙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버스를 타고 노래를 선곡했다. 왠지 오늘 아침에 어울릴 것 같은 곡, 황혼을 틀고 이어폰을 귀에 꼽는 순간, 살짝 전률했다. 지금의 이 공간, 이 시간, 그리고 노래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그 느낌. 그걸 포착하자 기분이 갑자기 차분해졌다. 노래를 온전히 들었다. 그저 좋았다. 미팅 장소는 종각 투썸이었다. 맨 윗층에 가면 야외 테라스가 있는데, 나는 거기 앉아서 읽던 책을 마저 읽기로 했다. 어둑한 날씨는 더욱 그 정도가 심해지고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드문 일이었다. 빗 속에서 책을 읽는 건. 빨간 파라솔이 나를 지켜주고, 그 속에서 책을 읽는 경험은 색달랐고 그 맛은 깊었다. 그 순간을 붙잡고 싶을 만큼.
10월 2일
아내와 함께 한 금요일
오래 전 부터 약속했던, 아내와 함께 하기로 한 시간이다. 벌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육아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아주 많아진다. 분명 가족과 (특히 재원이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 놀라운 경험. 육아가 주는 놀라운 망각의 힘이다. 분명한 건, 이날 나와 아내는 합정에 다녀왔다. 그리곤, 뭐 했더라. 흠. 그날 적지 않았더니 벌써 이런 부작용이. 원래 홍대에 나가기로 했는데, 급 피로해진 아내 때문에 합정에서 멈췄던 기억만 나는구나. 에헤라디야.
10월 3일-4일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
토요일은 일정이 있어서 일찍 나갔다가 늦게 들어왔다. 일요일은 언제나 그렇듯, 대항해의 시대가 아닌 대청소의 시대. 먼지를 훔치고, 청소기를 돌리고, 그 와중에 재원이를 보고, 창문틀도 닦고. 이리저리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2-3시간이 훌쩍 지난다. 사실 오늘은 지난 번 외출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멀리 나가자고 마음을 먹었었다. 처음 목표는 이케아였다. 하지만 청소를 하면서 점점 빠지는 기운들. 결국 이케아를 가긴 무리일 것 같단 결론을 내렸고, 해서 간 곳은 명동이다. 아내는 유난히 명동을 좋아한다. 명동 그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나는 엄청난 중국 관광객들에게 치이는 것이 두렵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멀리 나가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막상 도착해서 본 명동은 사실상 ‘홍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아내와 홍콩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자꾸 났다. 중추절은 맞은 요우커의 위엄은 대단했다. 그렇게 사람 반, 물건 반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미국을 따라한 이벤트가 있었다.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해서 국가적인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아마 그 영향인지, 사람들이 더 많아진 듯 하다. 예전의 나 같았음 별 생각이 없었을 것 같다. 그냥 ‘아 물건 싸게 파는구나. 뭐라도 사 볼까?’ 정도의 생각만 했을 테지.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요즘 이런 저런 철학책을 뒤적거려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이 현상이 너무나 비판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소비’를 권장하는 세상이라니. 어느새 이 세상의 경제 원리는 자원을 많이 가공하고,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고, 서둘러서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야 ‘경제’가 발달하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서 오래 쓰는, 튼튼한 물건을 만들면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소비가 경제 생활의 중추라니. 그렇게 해서 경제 성장률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니. 생산과잉과 소비과잉, 그러한 모든 ‘과잉’이 미덕이 되어버린 이 사회가 이젠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적절하게 생산하고, 오래쓰는 삶은 그리 권장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왠지 슬프게 다가온다. 뭐 그렇다고 내가 당장 뭘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건 아니지만, 좀 더 다르게 생각해보고 싶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다. 그건 분명하다. 이번 쇼핑에서 느낀 교훈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10월 5일
시간의 효율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굉장히 효율이 높은 시간대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시간대도 있다. 아마 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음악하는 사람들은 주로 밤에 작업한다고 하는데, 그들에겐 아마 그 시간이 가장 생산적인 때가 아닐까? 그리고 대부분의 일반인, 직장인들은 9시에서 6시 사이에 근무한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가장 생산적인 것을 아닐 테지만, 어쩔 수 없다. 다들 그 시간에 일하니, 나도 해야 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인식되길, 낮 시간은 일을 하는 시간이다. 특히 오전에 회의를 진행하고, 그 회의 결과를 토대로 오후에는 각자의 업무를 진행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쓰느냐고? 왜냐면 시간을 망쳤기 때문이다. 무슨 시간을? 오후 업무 시간을 말이다. 나에게 있어 시간은 매우 불규칙적이다. 강의를 하는 중간 중간 시간이 나에겐 업무 시간이다. 따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한다. 특히 자투리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잘 쓰면 보물같고, 잘못 쓰면 인생 금방 나락으로 떨어진다. 오늘 나에겐 2시부터 4시까지 자투리 시간이 있었다. 남들에겐 가장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황금 오후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왠지 어수선했던 것 같다. 난 희안하게 내가 하고 싶은 걸 충분히 하고나서 일을 하면 잘 되는 편인데, 그렇지 못하고 바로 일을 할 때는 잘 되지 않더라. 게다가 나에게 오후 시간은 정말 지루한 시간이다. 이 시간에 차라리 강의를 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일은 정말 효율이 낫다. 차라리 책이나 읽을 껄. 하는 생각을 이제는 한다. 내가 잘 쓰는 시간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기에. 성찰을 하는 이유는 나의 부족함을 알고, 다음에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오늘 망쳤으니 다음에는 더 제대로 만들자. 오전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자.
10월 6일
초서를 하는 이유
초서(옮겨적기)를 하게 되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첫 번째.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그 패턴을 보게 된다. 내가 줄을 그은 곳을 다시 읽으며, 하나하나 정성들여 옮겨적다 보면 ‘아, 나는 이런 문구에, 이런 의미에 반응하는구나.' 그걸 알게 된다. 두 번째. 나중에 다시 찾을 수 있다. 나중에 내가 책을 쓸 때, 결국 모든 사례들은 나의 초서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의 열매는 나의 씨앗이 된다. 마지막, 내 책을 누가 읽어줄 때 이렇게 읽었음 좋겠다. 하나하나 나에게 공감했던 것에 줄을 치고, 옮겨적는 과정은, 사실 내가 저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다. 나도 이런 성의를 들여서 내 책을 읽는 독자를 만나고 싶기에. 나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값어치 있는 것을 값어치 있게 대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만큼 가치있는 글을 쓰고 싶단 갈망도 여전하다.
10월 7일
세계를 담은 스쿨 성과발표회
오전은 마들역 상경중에서 시작했다. 시스템 사고 강의를 마치고 허겁지겁 노들역 동양중으로 갔다. 동양중은 정말 산 위에 있는 학교다. 처음 갔을 때 엄청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수업을 마친 시간은 4시 10분. 아직 일정이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은 시흥의 ABC행복학습타운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바로 ‘세계를 담은 스쿨’ 성과발표회를 여는 날이었으므로. 갔더니 엄청 나게 준비를 하셨더라. 학생들 사진 하나하나를 다 코팅하고, 자르고.. 이렇게 디테일한 것에서 감동을 준다는 걸 세삼 느꼈다. 성과 발표회는 잘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문자를 이렇게 보냈다. 다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늘 참석함으로써 프로젝트를 완주하신 분들, 그리고 개인 일정으로 완주하지는 못 했지만 마음으로라도 함께 해준 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가 탔던 롤러코스터는 이제 내리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가능성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각자 자신의 삶에서 더 멋지게, 더 행복하게 잘 살아갑시다. (씨익) 워낙에 좁아진 세상이라, 언제든 어디서든 다음에 또 만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담에 만나면 또 웃으며 인사해요. 앞으로 여러분의 건승을 빕니다. 다시 한번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하트뿅)"
10월 8일
칠보초 짧은 회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3주. 사실상 다음 주 1주 남았다. 그때, 퍼실리테이션을 해야 겠다. 우선, 3학년 수업. 이번 시간에 우진이랑 성민이 했지만, 한명 한명과 시간을 보내볼까. 각자의 강점과 단점을 인지하는 것. 그 활동을 해보자. 수업 시간에 기억남는 것은 마지막 시간에. 4학년은 좀 더 다르다. 차별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션을 해보자. 크로스 더 라인을 해볼까. 아니면, 무엇을 할까. 고민이 된다. 세아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하고 싶다. 5-6학년은 뭐 이번에 나온 기획을 그대로 해보면 된다. 아이들이 마음먹고 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하다. 마지막 2번은 그대로 하면 되고. 아. 함께 할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짧아지니 아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해진 일정을 바꿀 수 없으니 바꿀 수 있는 걸 바꾸자. 바로 나의 마음! 언제나 나의 신조를 염두하자.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그 교훈은 언제나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10월 10일
딥스
아침에 딥스를 읽으면서 캠프를 진행하러 가는 길이다. 아침에 밥이 얼마 없길래 그냥 안 먹고 나왔다. 아내는 배고플 때 민감해진다. 사실 지난 번에 일어났는데 나 때문에 밥이 없다고 한번 혼난 이후에 좀 신경이 쓰이기도 하다. 지하철에서 통하를 하는데 아내가 왜 밥을 안 먹었냐고 한다. 나는 지난 번에 혼나서 그랬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살짝 울컥했다. 아 내 안에 있는 어린 자아는 그 말에 상처 받았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다양한 자아를 품고 있다. 성숙한 자아에서 외롭고 어린 자아까지. 각각의 자아는 자신의 역할을 맡아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딥스를 보면서 그런 관점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이것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것.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 그렇구나 상처 받았었구나. 그랬구나. 라고 말해주는 것.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성찰 노트 > 일상 성찰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 2015년 10월 셋째주 성찰일지 (0) | 2015.11.06 |
---|---|
[일상] 2015년 10월 둘째주 성찰일지 (0) | 2015.11.06 |
[일기] 2015년 9월 마지막주 성찰일지 (0) | 2015.09.30 |
[일기] 2015년 9월 셋째주 성찰일지 (0) | 2015.09.22 |
[일기] 2015년 9월 둘째주 성찰일지 (0) | 2015.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