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싸우는 인문학
오늘 왔다 갔다 하면서 본 책은 싸우는 인문학. 본 이유는 간단하다. 가볍게 보고 싶었을 뿐이다. 여러 저자에 의해서 쓰어진 책이기 때문에 일관적인 논리의 흐름은 아니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중간 중간 통찰을 주는 내용도 많았고, 인문학이란 분야에서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그런 것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오전에 초딩 3학년들과 수업을 하면서 마음이 참 따뜻했다면, 오후에 중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는 다소 무거웠다. 물론 아이들은 잘 해주었지만, 아이들이 왜 이렇게 생기가 사라졌을까. 그런 안타까움이 든건 사실이었다. 무엇 때문에 나이를 먹을 수록 아이들이 이렇게 바뀌는 것일까? 인문학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연결시켜 본다면, 지금 우리의 사회,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을 더 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무엇이 아이들로부터 그리고 우리들로부터, 삶과 교육을 이렇게 분리시켰을까? 그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문주의자들에게 ‘인문학’이란, ‘신학’이 아닌 그 무언가였다. ... 어찌됐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작가들은 ‘이교도’였고, 이교도의 글을 연구하고 읽고 흠모하고 애호하는 행위는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이었다. 모든 고대 문헌 연구자들, 인문주의자들이 다 이단으로 몰렸거나 고초를 겪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묻혀져 있었던 ‘새로운 옛 사람’을 복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즉 자신들이 기독교적인 세계 속에서 ‘신학이 아닌 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말이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한국에서 ‘인문학’은 지금 여기의 지배적인 사고방식 및 세계관과 자신을 차별화하고 있는가? 돈을 벌고, 성공하고, 출세하라는 자본주의적 계시 앞에서, 묵묵히 다른 텍스트를 읽어나가며 ‘새로운 옛 사람’을 찾아내는 인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9월 2일
왼손이 하는 일
한 동안 신경 쓰였던 것이 있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스트레스 받았다. 우리 집 앞에 놓여진, 차츰 쌓여가는 쓰레기가 바로 그것이다. 깨끗했던 곳이었는데, 개념없는 몇몇이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쓰레기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고 되려 그 세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심지어는 먹나 남은 음식들, 피자, 치킨, 심지어는 음식물 쓰레기도 놓여지기 시작했다. 기분 좋게 들어가려는 내 계획은 언제나 쓰레기와 함께 무산되었다. 누군가는 치워야 함에도,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뭐하러 그러겠는가. 나도 한동안은 지켜보기만 했다. 누가 치우겠지하는 안일한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정체 불명의 쓰레기가 쌓여가는 것을 보며 나는 포기했다. 언제나 그렇더라. 변화는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오로지 내가 만드는 것. 오늘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5시 반이었다. 5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를 들고 비닐 장갑을 끼고 쓰레기 더미로 향했다. 그 악취나는 쓰레기들을 손으로 주워서 버리는 것은 정말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엄청난 수의 벌레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그렇다. 손에 잡히는 촉감도 물컹한게 너무 이상했다. 한 동안 치웠더니 50리터짜리 봉지가 가득차기 시작했다. 정말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치웠다. 헌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쓰레기를 치우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을 봤다. 무슨 마음일까? 우리 동네 사람들이 날 바줬으면 하는 마음을 본 것이다. 생색을 내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생색을 내고 싶었고, 또한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양심을 가책을 느껴서 다신 쓰레기가 모이지 않았음 하고 바랬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고, 나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돌아보니 부끄러웠다. 이이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의로움은 이해타산 없이 행하는 정신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해타산을 한다면 그것은 잇속의 마음으로써, 그는 도둑이나 다름없다. 선행을 하더라도 거기에 공명을 얻으려는 마음이 끼어 있으면 그것 또한 잇속의 마음이다. 군자는 그것을 도둑보다 더한 심보로 여긴다” 사람들이 이러한 내 모습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 때문에 나는 결국 ‘선행’을 했지만, ‘선행’을 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 작은 일에도 이런 ‘인정에의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데, 하물며 큰 일이면 어떻게 될까. 내 마음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렇게 부끄럽게 하나 더 배운다.
9월 3일
감사 수업
오늘은 칠보초 수업 날이다. 3학년 수업은 무겁게 시작했다. 특히 지난 번 수업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혼을 좀 냈는데, 숙제에 대한 중요성은 꼭 주고 싶었다. 다음 시간까지 감사한 것을 써 오지 못하면 어떻게 피드백 해야 할까. 벌써부터 고민이다. 4학년 수업은 드디어 끝났다. 지난 학기 프레젠테이션 수업이 이제서야 끝난 것이다. 워낙 수업 시간이 짧기도 하고, 아이들의 진도가 생각보다 늦긴 했지만 그래도 모두 발표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꽤 큰 기쁨이다. 그래도 처음으로 4학년들이 서로를 도와가면서 미션을 수행한 느낌이라. 뿌듯함이 오늘은 더 크다. 5-6학년 수업은 감사 수업을 이어갔다. 이지선님의 이야기도 보여주고, 각자의 사례를 통해 ABC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작년 깨알감사를 했던 일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기쁘다. 세상 어떤 것도 쓸모 없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내가 마음 먹은 대로 자유자제로 수업할 수 있다는 상황도 너무 감사하고 말이다. 뒷 부분에는 감사 상황극을 준비해서 하기로 했는데, 어찌 나올지 기대 중이다. 21일 동안 감사 일지 쓰는 것도 나도 함께 해야 겠다. 오늘 감사한 것 3가지를 써보자. 1. 무사히 수업 잘 마칠 수 있음에 감사. 2. 옥수수를 1000원에 사먹을 수 있음에 감사 3.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 모든 것에 감사하다.
9월 4일
처음 가 보는 광교
아침부터 서둘렀다. 8시에 광교 스타벅스에서 인디언 계모임이 있었다. 아침에 서둘러 갔더니 되려 일찍 도착했다. 뭔가 신도시가 세워지는 느낌이었는데, 아침 일찍 돌아다니면서 책도 보고. 기분이 좋았다.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면 뭔가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또 그걸 가지고 글로 풀어내는 경험을 몇 번 했다. 그리고 신기한 경험 하나 더 있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어디서 많이 본 분이 왔다갔다 하시는거 아닌가. 알고 보니 김성우 코치님이셨다. 작년 여름에 동양미래대학에서 강의 때문에 한번 뵙고 처음 보는 것. 광교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신기하고 반가웠다. 이런 저런 근황을 주고 받았다. 스타벅스에서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책을 읽었고, 아까 대화 나누며 나왔던 키워드인 ‘억압’에 대한 글감을 떠올랐고, 아이폰에 이런 저런 글들을 끼적끼적 거렸다.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쓰고 싶어서 써지면 참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진 그런 편인데, 앞으론 또 모르지 뭐.
9월 5-6일
녹차를 먹은 주말
내가 너무 멍청하다는 것을 깨달은 주말이다. 우선 토요일. 음. 뭐했지? 갑자기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분명 집에 있었는데, 뭐했지. 일단 아침에 한강을 나갔다. 아가를 안고 한강을 걸었고, 비가와서 금방 들어왔다. 그리곤 집에 와서 뭐했더라. 재원이랑 논건 기억나지만, 잘 모르겠다. 육아를 하면서 주부들은 흔히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 기억났다. 오후엔 베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 먹으러 시장에 갔다. 그렇게 산책하고 왔구나. 저녁엔 SCM 학기 프로그램 미팅이 있어서 압구정으로 갔다. 여기서 나의 실수가 나온다. 음료를 시켰고, 난 커피는 먹기 싫어서 녹차 블랜디드 아이스(?)를 먹었는데, 먹으면서도 참 녹차가 진하구나란 생각을 했다. 거의 10시 50분이 되어서 미팅을 마쳤고, 나는 집으로 왔다. 잘 준비를 해서 침대에 누웠는데,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잠이 오질 않는 것이다. 분명 엄청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은 오지 않았다. 이 느낌을 느낀 경험이 과거에 딱 1번 있다. 그건 바로 진한 커피를 마셨을 때! 이번엔 녹차였던 것이다. 평소 커피를 잘 안 마시던 나라, 카페인에 엄청 민감한 것 같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3시가 되었다. 눈은 엄청 감기는데 뇌는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 화가 났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오지 않아서 결국 일어났다. 감사한 점이 있다면, ‘저녁에 커피나 녹차를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꼈다는 점’ 그리고 ‘다음 날이 월요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어난 나는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책을 좀 보다가 어제 끄적거렸던 글을 완성시키고자 했다. 2-3시간 정도에 걸쳐서 손을 봤고, 결국 블로그에 포스팅까지 할 수 있었다. 얻은 것이 있다면 글이고, 잃은 것이 있다면 건강이다. ㅎㅎ 일요일은 그렇게 비몽사몽으로 보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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