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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 노트/일상 성찰하기

[일기] 2015년 9월 셋째주 성찰일지

9월 14일
미치겠네

오늘 밤, 3시에 모기 소리에 깼다. 그 엥엥 거리는 소리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게다가 우리 부부가 더 신경을 곤두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재원이 때문이다. 모기들이 아기를 좋아한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 나도 민감하고 아내도 그렇다. 얼마 전에 형님께 받은 전기 모기채가 있어서 그걸로 잡으려고 일어났다. 그런데 왠일, 파박 파박 소리가 요란한데 비해서, 생각보다 잡히지 않는 것이다. 전기가 약한걸까, 아니면 내가 요령이 없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모기가 특수 체질인건가.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더 미칠 지경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냈다. 잡은거 같아서 누우면 또 엥엥 거리고. 다시 모기채를 휘두르기를 반복했다. 잠은 이미 달아나버리고, 배는 고프고, 감기 초기라 코는 막혀서 숨은 쉬기 어렵고, 재원이는 울고. 아, 정말 최악의 새벽을 보냈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5시 반에 나왔고, 나와서도 모기 때문에 시달리다가 잠을 포기하고 이 글을 쓴다. 이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정말 밤 모기는 싫다. 왠만한 상황은 다 웃으면서 넘어가는 나지만, 모기는 아니야. 엥엥 소리가 너무 싫다. 흑흑. ㅠㅜㅠㅜ


9월 15일
기억이 없다. 

이 날은 성찰일지를 못 쓴지 너무 오래 지났다. 그래서 기억도, 성찰도 없다. 시간은 중요하다. 기억은 시간을 담보로 하기에. 하지만 실은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다시 말해, 시간이 중요한게 아니다. 기록이 시간 위에 있다. 기록은 자신의 삶을 복기하려는 자연스런 의지에서 비롯된다. 어떤 아마추어 바둑 선수는 바둑을 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바둑을 두지만, 프로를 꿈꾸는 누군가는 바둑을 두고 바로 이어서 두지 않는다. 그는 복기를 한다. 내가 어디서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판단을 했는지, 복기하는 과정이 없인 프로가 될 수 없다. 너무 멀어져서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복기하자. 


9월 16일
다툼이 있던 날

저녁에 아내와 살짝 다투었다. 계기는 나의 감기 때문이다. 아내는 전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위협을 항상 걱정해하고, 불안해하는 성격이다. 나는 그 반대다. 되려 신경도 쓰지 않고, 닥치더라도 별로 불안해하지 않는다. 장단점이 있다 아내는 불안해하기 때문에 안정을 갈구하고, 실제로 미리미리 대비한다. 미리미리 예방하고, 건강검진도 꾸준히 받는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벗어날 정도의 사건이 닥치면 잘 대처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다. 나는 그런 스트레스는 없다. 그리고 상황이 닥치면 거기 맞춰서 유기적으로 잘 대처하고자 한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미리 대처하면 충분히 커지지 않게 막을 일도 있기에. 울 아가가 있으니 이제 아내의 예민은 더 날카로워졌다. 그 덕에 한판의 썰전이 벌어졌다. 서로가 가진 성향에 대한 옹호를 펼쳤다. 내 주장의 핵심은, ‘모든 일을 다 미리 막을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아기가 나 때문에 감가에 옮았다고 하더라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 아내가 평소 걱정과 죄책감이 많은 편이라 나는 이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화를 마치고, 다음 날이 되자. 곧 후회가 밀려왔다. 왜 그런 방식으로, 논쟁적으로 이 말을 했어야 했을까? 좀 더 현명하게 나의 의도를 전하는 길도 많았을 텐데, 나는 그리 지혜롭지 못했다. 되려 아내의 마음만 상하게 한 것 같아서 후회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재원이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고, 밤새 잠을 뒤척였고 말이다. 아이고. 이게 무슨 꼴이람. 


9월 17일
칠보초 다녀오는 길 

햐얕게 불태운 날이다. 오전에는 기존에 처리하지 못했던 잡일들과 친밀함 독서축제, 그리고 강의 준비까지
오후에는 수업, 저녁에는 독서축제 마무리.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독서. 후회가 남아있지 않은 하루다. 


9월 18일 
자소서 캠프

오늘 용마중학교 자기소개서 캠프가 있었다. 자소서 완성을 위해 '스스로 자원한' 학생들 23명이 모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매번 느끼지만, '원해서 모인' 아이들과 하면 분위기는 좋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최지은 코치님과 함께 진행한 수업이었는데 코치님이 주로 글의 표현을, 나는 아이들의 글감을 위주로 코칭했다. 앞부분, 간단한 강의와 문답을 마치고 1:1 코칭이 이어졌다. 한명 한명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묻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 그런 하소연을 듣다보니 나의 대학교 4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평생을 글과 상관없이, 게다가 특별한 경험도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내가, 어찌 자소서를 쓸 수 있었을까. 빈 종이를 보며 좌절하던 내가 떠올랐다. 영혼없이 쓰는 자소서가 왜 그리도 원망스러운지. 그리고 자책도 많이 했다.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기에 자소서에 쓸 말이 이리도 없냐고 말이다. 이미 엎퍼버린 물, 뒤늦은 후회였지만. 그런 장면이 잠시 지나가던 찰나, 한 아이가 대화 중 울기 시작한다. 휴지를 건내주거 잠시 기다렸다. 천천히 물었다. 지금 어떤 감정이 올라왔냐고. 그 아이는 답답하다고 했다. 지금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다고. 이게 어찌 그 아이의 잘못일까. 어쩌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하지 않는 우리 어른들의 잘못인 것을.

코칭이 끝날 때쯤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니, 실은 어린시절의 나에게 던지는 미련같은 조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했다. 우리 모두 앞으로 자소서는 계속 부딪치게 될 거라고.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어쩌면 끝도 없을 거라고. 그때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얼마나 힘드냐고.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언제든 써낼 수 있는 '근육'이라고 말하며, 앞으로 딱 두 가지만 해보자고 했다. 첫 번째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저 하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무거울 필요는 없다. 그저 가볍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하고 행동하기.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좋아하는' 것을 하기. 그렇게 가볍게. 두 번째는 '그 경험을 기록하고, 느낌을 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찰이다. 우린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배운다는 말을 전하며,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걸 잘 갈무리 하지 않으면, 성찰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천천히 세밀하게 나의 경험을 살피는 것은 중요하기에. 이 두 가지 활동은 어쩌면 자기인식의 필수 키워드가 아닐까. 행동하고, 성찰하고. 그러한 성찰을 통해 자신을 바로잡고 새로운 행동을 거듭하는 것. 그 선순환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행동이 성찰보다 부족하면 공허해지고, 성찰이 행동보다 부족하면 맹목적이 되기에. 이 각박하고, 여유가 없는 요즘 시절에 얼마나 이 한가로운 이야기가 귓가로 들어갔을까 싶지만은, 그래도 그렇게 말하고 나니 내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이 끄덕거리며 뭔가를 적어나가는 모습도 나에겐 고마웠다. 그렇게 오늘 경험을 갈무리하며 집에 가는 길이다. 


9월 19일 - 20일 
주말 보내기

이번 금요일에 재원이가 감기에 걸렸다. 그와 동시에 우리 부부의 잠도 반으로 줄어든 날들이었다. 완전히 비몽사몽하게 보낼 수 밖에 없는 나날들. ㅠㅜ 그 와중에 토요일에 경험했던 워크샵은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즐거운 질문들도 있었고 (현재 고군분투하거나, 도전 과제로 느끼는 것들은? 지난 한 달간, 학교에서 당신을 놀라게 한 것은? 체인지메이킹 성공스토리나 그 동안 배운점은?) 아쇼카 펠로우인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의 송인수 대표님과 세상을 품은 아이들의 명성진 대표님의 특강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몇몇 문장이 있다. 우선 송인수 대표님. "언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그 이후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꼰대가 된다.”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까지 지키려는 가치가 있는 사람은 ‘변화를 만드는 힘’을 확보하게 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상황에 맞춰 문제를 줄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참여의 정도가 문제의 해결 여부를 결정한다.” 명성진 대표님의 강연도 의미있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을 때, 말을 꺼내면 안 된다.” “좋은 아저씨의 삶과 체인지메이커의 삶은 다르다.” “어떤 문제든 ‘통’으로 인식되면 무력감을 느낀다. 큰 과제를 다 썰어서, 작은 과제 만큼은 반드시 처리하자.”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 노력하시는 두 분의 태도에 일단 감동했고, 영감받았다. 나 역시 저런 큰 존재가 되고 싶단 생각을 다시금 했고. 그렇게 토요일을 보냈다. 일요일에는 재원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인상깊게 남아있다. 한 20분 정도를 둘이 깔깔대면서 놀았던거 같다. 요즘 재원이의 웃는 모습이 왜 이렇게 아른거리는지. 꼬부기처럼 좋아하고, 꺄르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게 참 감사하다. 앞으로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즐겁게 놀았으면. 다만, 재원이랑 재미있게 놀기 위해선 나도 몸관리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이젠 정말 체력이 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