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디자인씽킹과 인문학 

‘보다 나은’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자본주의적 태도는 진보를 재화와 축적을 위한 ‘기술’ 개발과 발전의 측면으로 이해한다. 그것들은 모두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1939년 개요>의 결론에서 벤야민은 블랑키를 빌려 판타스마고리아의 진보란 사실상 ‘반복되는 새로움’, 즉 이미 있었던 것의 진부한 반복이 기술의 힘으로 화장을 고치고 등장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진보의 이미지는 역사 자체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반복’을 ‘새로움’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판타스마고리아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집단의 꿈’을 꾸고 있는 셈이다. 

요즘 읽는 책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나오는 문단이다. 이 글을 읽으며, 하나의 성찰거리가 생겼다. 하버트 사이먼에 의하면, 디자인이란, 기존의 상황을 ‘더 바람직한’ 상황으로 개선시키기 위한 일련의 행동을 고안하는 것이다. 나는 이 개념을 ‘디자인 씽킹’과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다. 결국 디자인 씽킹이란, 단순한 미학적 디자인이 아니라 ‘더 바람직한 혹은 더 나은’것을 상상하고, 실현시키는 능력을 말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탄생한다. 앞서 벤야민의 맥락과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바람직한 것'인가? 무엇이 ‘보다 나은 것’인가? 만약, 무언가가 더 나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뤄내야 하는가? 거기선 수단이 중요한가? 목적이 중요한가? 그리고 그 목적에는 수만가지 방향성이 내재되어 있는가? 우리는 우리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가? 엄청난 논쟁거리가 이 하나의 단어 <더 바람직한>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보다 나은’ ‘바람직한’ 이란 단어에 대해서 그리 오랫동안 성찰하게 하지 않는다. 그저 기술적 진보를 ‘새로움’이란 이름으로 포장해서 앞으로 달려나갈 뿐이다. 기술적 진보는 진짜 진보다 아니다. 벤야민의 말처럼 그것은 그저 ‘집단의 꿈’일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디자인 씽킹을 다루는 사람은 그렇기 때문이라도 "인문적 가치"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다. 나아 갈 방향에 대해서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디자인 씽킹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 왜냐면, 너무나 효과적인 방법론이고 파워풀하기 때문이다. 방향만 좋다면 최적의 효율성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되려 위험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 좋은 ‘도구’의 특징이 아닌가? 이처럼 모든 것의 양면성은 고려되어야 한다. 디자인씽킹도 마찬가지다. 같은 칼을 가지고 도둑이 될 수도, 집밥 백선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 ‘인간 중심’인지, 무엇이 ‘지속가능한 발전’인지. 그에 대한 탐구와 토론, 그리고 성찰이 우선될 때, 디자인 씽킹의 가치는 더 크게 빛을 발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디자인씽킹과 함께 ‘인문학과 철학’을 요즘들어 계속 공부하고자 하고, 다루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성찰과 행동은 둘이 아니다. 그들은 사실상 하나이고, 하나일 때 그들은 각자로써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8월 25일
들뢰즈 강의

오늘 오전에 일을 해야 할 시점에, 일이 하기 싫었다. 그래서 이정우 교수님의 들뢰즈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받아적고, 내 생각도 굴려보는데 그게.. 그게 너무 행복했다.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들뢰즈에 대해서 오랜 기간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도 기뻤고, 어제 벤야민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들뢰즈로 이어지면서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론 들뢰즈가 말한 노마니즘을 삶에서 최대한으로 구현한 사람이 벤야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만약, 오전을 이렇게 보내고 오후에도 이 정도로 보냈다면 후회했을 것 같은데, 오늘은 그래도 후회하진 않는다. 왜냐? 오후엔 해야 할 일을 잘 마무리 했기 때문이다. ㅋㅋ 좋은 하루다. 아, 맞다. 블로그에 계속 방문자가 많다. 우연이겠지만, 어디 선가 퍼져나간 듯 하다. 그리고 이제 조금 알겠다. 핵심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서두를 필요도, 조급해 할 필요도 없다. 원래 길을 잘못 든 사람이 조급해하는 법이니까.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 꾸준히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다. 유명해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존재’가 되느냐. 그것이 진짜 중요하다. 


8월 26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운

오늘은 나에게 인상깊은 하루다.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운을 한번에 맞이한 느낌? 물론 아주 작은 불운들이 연속으로 온 것이기에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큰 불운이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상경중으로 시스템사고 교육을 하러 갔다. 첫 번째 불운은 자초한 것이다. 시간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중간부터 늦지 않을까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결국 여유있게 도착하지 못했다. 두 번째 불운에는 절반의 책임이 있다. 오늘 진행하기로 한 교재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꼼꼼하게 확인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ㅠㅜ 그래도 임기응변에 약한 편은 아니라, 일단 A4용지로 진행하기로 했다. 급한 불은 꺼야 하기에. (그리고 노트북과 관련한 약간의 문제도 있었지만 일단 패스)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2번째 강의 장소인 동양중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세 번째 불운이 오는데, 이게 컸다. 원래 네이버 지도 상으론 아무 문제 없는 길이었다. 나름 여유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반포에서 지하철을 내려 버스를 탔는데, 한참을 가던 길에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알고 보니 버스가 지금 논현을 지나는 것이 아닌가! 가야 할 방향과 정반대로 가고 있음을 알고 약간의 패닉이 왔다. 신논현역에서 급히 내려서 달려갔다. 생각보다 버스 정류장에서 지하철까지 거리가 멀어서 또 한번 좌절. 뛰어갔더니 때맞춰 일반 열차는 지나가고 말았고, 급행 열차만 날 기다리고 있었다. 불운의 연속이다. 머리는 미친듯 돌아갔다. 상황이 안 좋지만, 일단 노량진으로 가서 택시를 타고 가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으며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일찍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려울 것 같다고. 급한 마음에 지하철을 내려서 택시를 잡았다. 마지막 불운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라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학교로 가려고 커브를 도는데, 하필이면 상도 터널로 접어드는 방향으로 타버린 것이다. 택시 기사님도 당황하시고, 나도 망했다는 생각이 퍼뜩 지나갔다. 이렇게 하다간 수업도 못하겠다는 불안감에, 일단 내렸다. 동양중까진 약 600미터. 그것도 대부분은 오르막이다. 미친듯 산을 올라갔다. 엄청난 감정이 밀려오면서 욕두문자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마 최근에 했던 분노 중에선 가장 높은 수준의 분노였을 것이다. 미리 확인하지 못한 내 탓도 있고, 한번도 문제 없었던 네이버 지도의 문제도 있고, 하필이면 상도 터널로 들어간 불운도 있다. 누굴 탓하리오. 시련은 멘탈을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올라가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생각해보면 다행이기도 하다. 적어도 수업에 늦진 않았으니. 그렇게 땀을 뻘뻘흘리며 수업에 들어갔고, 선생님께선 높이 올라오느라 수고하셨어요. 라고 하신다. 이런 사례가 종종 있나보다 했다. 그리곤 수업을 진행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한 하루였다. 


8월 27일
아쉬운 귀가길

오늘 아쉽다. 굉장히 잘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시간만 보낸 셈이다. 역시 계획을 하고, 하기로 한 것을 하는 것이 나같은 인식형에게 꼭 필요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난 주에는 글이라고 썼는데, 차라리 영화라도 볼껄이란 생각을 한다. 중간에 차라리 40분 정도 잠들어 버린 것이 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음에는 어떻게 쓸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글쓰기’다. 지금까지 이 시간을 가장 잘 썼다고 생각되는 건 역시 글쓰기다. 글쓰는 것 이외에는 블로깅도 괜찮다. 어쨌든 뭐라도 하자. 이렇게 보내는건 아니다. 정말로. 


8월 28일
영화 베테랑

몇 만년 만에 영화를 봤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위플래쉬’다. 그것도 너무 보고 싶어서 오전에 조조로 봤던 것. 작년까지는 아내랑 함께 영화관을 자주 갔지만, 올해 들어서 울 똥강아지가 태어나고 나선 영화관은 우리에게 먼 일이 되었다. 나야 일정을 조율해서 보려면 볼 수 있지만, 미안해서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이번엔 아내가 아량이 베풀어주었기에 가능했지만. ㅎㅎ 영화를 보고나서 일하러 커피숍에 들어왔다. 호탕하고 재미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기도 해서, 한번 글로 옮겨보려고 한다. 인상이 남아있을 때.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책은 ‘슬라보예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란 책이다. 굉장히 큰 담론을 던지는 책이다. 그것은 바로 말 그대로 ‘폭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 폭력이라고 하면 우린 무엇이 떠오를까? 대부분은 물리적 폭력을 떠오른다.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보는, 그런 폭력 말이다. 그것은 중요하다. 있어선 안 되는 일임에도 분명하고. 하지만 지젝은 그러한 폭력은 하나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 외에 ‘상징적 폭력’ 그리고 ‘구조적 폭력’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언제나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깊고, 무서운 것이다. 상징적 폭력은 쉽게 말하면, 언어 폭력을 말한다. 사이버 세계에서 벌어지는 댓글이 그 좋은 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구조적 폭력이다. 이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특히 사회 전반에 걸쳐 만성적으로 작용하기에 무섭다. 베테랑에서 유아인 역할이 그 좋은 예다. 굉장히 깔끔하게 모든 것을 처리하는 돈의 힘. 영화에선 통쾌하게 유아인을 고발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사람들 역시 (눈에 보이는) 물리적 폭력을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보다 더 위험하게 여기기도 하고.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닌데 말이다. 요즘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맑스를 비롯한 다양한 사상가들을 읽으며 내 생각을 가다듬어야 겠다. 


8월 29-30일
주말엔 산책을 

토요일엔 와우 수업을 했다. 하루 종일 했고, 그에 대한 후기도 썼다. 여기선 공유하지 않는 걸로. 일요일의 절반은 집안일, 절반은 산책이었다. 우선 아침부터 3시까진 종일 집안일을 했다. 재원이와 함께 하기 때문에 끝이 없다. 저거 끝나면 다른 게 또 시작된다. 게다가 빨래는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것. 월요일에 아내가 주로 돌린다. 집안일은 끝도 없더라. 오후엔 먼 곳으로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날씨가 생각보다 더웠다. 아내도 피곤해했고, 마침 나가려고 했을 때 재원이가 맘마를 먹다가 잠에 들었다. 나도 깜빡 잠들었다. 1시간 정도. 일어나니 4시였다. 먼 곳으로 가긴 그래서 상암으로 산책이나 가기로 했다. 우리가 자주 걷는 코스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으로 갔다가 홈플도 갔다가 한강으로 걸어오는 길이 참 좋다. 여러가지 수준의 행복이 있겠지만, 나는 걷는 행복이 아주 높은 곳에 있을거라 예상한다. 시원한 바람을 따라서 그저 걷는 것.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것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그럴 것이고. 그렇게 우린 저녁이 되어서 집에 들어왔다. 매주 주말은 이렇게 보내고 싶단 생각을 할 정도로 좋은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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