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오늘은 월요일. 자유학교 수업이 있는 날이다. 프로젝트는 결국 2개로 확정되었다. 하나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전거 이용자가 즐겁게 라이딩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 두번째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학교 앞 쓰레기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데, 모쪼록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처음에 ACT와 ACTION을 구분했다. ACT란 돌파구를 만들기 위한 진짜 행동, ACTION란 하는 척 하는 행동이다. 이것을 구분할 수 있는 건 자기자신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그냥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 하기 위해서 할 수도 있고, 진짜 조금이라도 진심으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움직일 수도 있단 뜻이다. 사실 그렇다. 나는 체인지메이커가 되기 위한 교육을 하고 싶다. 체인지메이커인척 하는 교육은 하고 싶지 않다. 변화를 만드는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었으면 좋겠다. 변화를 만드는 것이 나의 진로에 도움이 되거나, 내 스팩을 쌓기 위해서, 혹은 선생님에게 덜 미안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면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이 메시지가 꼭 전달 되었으면 좋겠다.
4월 21일
오늘은 토론 수업이 있는 날. 요즘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 정신이 딴데 팔려있나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닌데 또 나쁜 습관이 고개를 든다. 더 잘하자. 성찰로는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성찰 뒤에 오는 실천. 그것이 변화를 이끈다. 이 글은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내가 더 나답게 살기 위해 쓰는 글이다. 실천이 없다면 이 글은 그냥 쓰레기다. 반복하고 싶지 않으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4월 22일
오늘 오전부턴 VTON멤버들 지현쌤과 한수쌤과 미팅했다. 정말 다양한 주제가 오고 갔다. 최근에 내가 가진 이슈들도 자연스래 나왔다. 키워드만 뽑아 본다면, 회복력, 커뮤니티, 학습조직, 온전함의 회복 등이었고, 책으로는 학교 없는 사회, 학습하는 조직, 폭력이란 무엇인가, 호모 코뮤니타스 등이 언급되었다. 3시간 정도의 대화 나눔이었지만, 밀도가 높았다. 배움이 별거인가. 이런게 배우는게 아닐까.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내가 이렇게 말했다. “뭘 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뭘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맞다. 그냥 모이는 것이 좋다. 꼭 목적을 가져서 모이는 것 보단, 그냥 모여서 뭘 할까를 함께 정하고 가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학습 조직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해서, 내년에는 꼭 시도하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역이니. 오랜만에 환기도 했고, 일도 했다.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4월 23일
요즘 내 생각의 흐름을 가속화주는 책도 읽고, 변화를 주는 책도 많이 읽게 된다. 가속화하는 책들은 예를 들면 고민하는 힘, 희망의 인문학,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호모 코뮤니타스 등이 있다. 내가 추구하는 생각을 이미 이뤄가는 사람들의 사례이고, 그로 인해 얻는 것이 많다. 하지만 변화를 주는 책들도 있다. 슬라보예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그러하다. <폭력이란 무엇인가>는 생각만 해도 너무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다음에 다루기로 하자. 오늘 오전에는 <읽지 않은 책..>을 옮겨적었다. 이 책은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인 나에겐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는 책이다. “책 읽는 거? 그거 정말 중요해?”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의 나는 저자의 생각에 거의 동의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독서가 중요하다 아니다가 아니라, ‘지나친 독서에의 맹신’이 주는 폐악을 보자는 것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네 생각을 말하라.’ 책을 읽고 안 읽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되려 독서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성찰할 시간을 빼앗아버리게 된다. 이러한 관점으론 최근 최진석 교수가 쓴 책 <인간의 그리는 무늬>도 비슷하다. 이 책을 본 것은 아니자만, 저자의 강연을 듣고, 인터뷰를 듣고, 책의 리뷰를 보고 내린 나의 판단이다. 나도 읽지 않은 책에 말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하. ‘나는 이 정도 책을 봤으니 이 정도야’라는 생각. 그건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지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자기 생각을 얼마나 말했는가? 그것이 본질이다. 우리는 모두 수용자가 아닌 생산자,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을 기억하라. 책은 읽는 사람의 생각음 움직일 수 있고, 동시에 그가 가진 가장 독창적인 부분으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나도 앞으로 기죽지 않으련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당당히 말하련다. 틀리면 뭐 어때.
4월 24일
올해 들어서 일기 쓰는 일을 거의 빼먹지 않았는데, 이번에 거의 처음으로 3일이 밀렸다. 그 이유는 와우 엠티 때문이리라. 그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금요일 일기를 적지 못한 건 내 불찰이다. 금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되돌아보자. 그래 금요일에 자유학교 발표가 있었다. 아이들의 마지막 발표였지. 나름 잘 해주었다. 금요일 오후에는 병원을 갔다. 오른쪽 어깨가 자주 아파서 정형외과를 갔는데, 근막통증이라고 하더라. 금요일엔 왼쪽 어깨도 치료받았다. 의사가 말하길, 아무리 이렇게 치료받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체조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체조하는 습관. 이젠 더 이상 늦어질 수 없다. 피터 드러커는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건강을 중요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하루에 1시간은 꾸준히 수영을 했다고 하니,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드러커보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닐텐데. 체조를 빼먹는 일은 없도록 하자.
4월 25일-26일 (엠티 후기)
오늘은 와우 엠티를 가는 날. 엠티의 행선지는 바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안동이다. 이 엠티를 가기 위해 아내의 엄청난 배려가 필요했다. 무려 1박 2일의 일정이었기에. 아기가 배가 조금 아픈 상황이기도 했고, 떠나는 나도 마음은 다소 무거웠다. 쨌든, 아침 일찍 서둘러서 떠났다. 서울팀은 8시반, 양재역에 모여서 출발했다. 오랜만에 보아서 더욱 반가웠다. 아름다운 덕평 휴게소를 지나 나는 지명(형)님 차로 옮겨 탔다. 이번 엠티에서 누구보다 이야기를 많이 한 게 지명(형)님이 아닐까 싶다. 안동으로 가는 길, 거의 대서사시이자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지명(형)님의 인생을 들었고, 나도 내 삶을 나누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들 한번 들어보시길 강추한다. (ㅎㅎㅎ) 시간 가는지 모르고 수다를 떨다보니 이내 도착한 곳은 하회마을이었다. 하회마을은 워낙 유명한 곳인데, 팀장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강이 돌아서 나간다고 해서 하회란 이름이 붙었단다. 아무것도 모르고 좋다고 돌아다니는 내가 부끄럽다. (ㅎㅎㅎ) 도착 후 가장 먼저 먹은 건 안동찜닭. 워낙 식도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지만, 왜 안동찜닭이 여기서 유명해졌는지는 궁금했다. 나름 검색해보니 1970년도 부터 유명해졌다고. 아주 과거 (조선시대) 부터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맛은 너무 좋았다. 달콤달콤. 그 이후엔 화천서원을 들려서 서원과 서당(정사)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부영대를 올라갔다.
부영대에서 내려다 본 하회마을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정말 완벽한 그림. 산은 보기에 딱 좋을 만큼 높았고, 하늘은 구름 한점 없었고, 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는 낙동강은 반짝 반짝. 그리고 그 사이에 소복히 내려앉은 듯한 마을은 이 그림의 정점이었다. 놀라운 경치였다. 다들 놀라운 광경에 사진을 찍느라 정신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예전에 로마에서 본 포로로마노가 문득 떠올랐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하나 정하라고 하면 나는 포로로마노를 꼽는다. 그 이유는 건축물이 웅장해서도 (콜로세움이 더 웅장하다), 주위 풍경이 더 멋져서도 (베니스가 풍경은 낫다) 아니다. 그 이유는 포로로마노에선 내가 ‘그 때 그 시절’을 그려보았기 때문이다. 수 많은 로마인들이 광장에 모여 토론하는 모습, 물건을 파는 모습, 걸어다니는 모습. 그런 모습이 총체적으로 떠올라서 일 것이다. 하회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을 때도 슬쩍 스쳐지나갔다. 공부하는 조선의 선비들과 밥을 짓기 위해 부산스런 아낙내들. 강으로 물자를 나르던 상인들과 뱃사공들. 옆 마을과 교류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그걸 상상하는게 좋았다. 광땡들과 사진을 찍고, 잠깐 머문 뒤, 내려왔다.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도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5대 서원이 무엇인지. 18대 현인은 누구인지 등등. 내가 남명 조식 선생을 비롯한 몇몇 유학자들은 왜 5대 서원에 들어가지 않냐는 질문도 했고, 팀장님이 잘 답변도 해 주셨다.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 내려오는 길에도 많은 생각을 했는데, 어서 이 빈칸들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게 자연스런 공부가 아닐까.
부영대에서 내려와선 옥면선사에 들렸다. 류성룡 선생님이 내려와서 ‘징비록’을 지은 곳. (기억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회 마을이 더 가까이 보이는 곳이었는데 이런 곳에서 공부가 잘 될까. 싶긴 했다. 아마 풍류를 즐기느라 더 바쁘셨을 지도. 이후에 자리를 옮긴 곳은 병산서원이다. 가는 길도 너무 이뻤지만, 도착해선 더 놀랐다. 어마어마한 병풍들. 그 앞을 흐르는 강. 그리고 그것들과 한치의 어긋남 없이 자리잡은 병산서원. 병산서원의 툇마루에서 내려다 보는 산수의 모습은 하회마을을 능가하는 절경이었다. 내가 기존에 한국 땅을 많이 보지 않은 이유가 더 크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얻은 중요한 나의 시야는 바로 ‘산과 물’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산과 물이 잘 어울어지는 땅이었나? 안동이 유독 그런 것인가, 내가 너무 돌아다니지 않은 탓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한 것인가. 지금까지 이런 것을 잘 알지 못했기에 조금은 후회스러웠고, 더욱 놀라웠다. 서원을 둘러보고 나선 강가로 나아갔다. 잔잔한 강을 보면 생각하는 놀이가 있지. 돌을 던져 통통 튕기는 전설의 그 놀이! 물수제비. 거의 초등학교 때, 아니 중학교 때 까진 했던거 같은데 그 이후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돌맹이를 손에 쥐고 던져봤다. 잘 안 되더라. 물과 돌, 그리고 사람의 힘이 적절해야 잘 되는데 우리에게 그리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기로 몇번 더 튕기긴 했지만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1등은 팀장님이 튕긴 5개. 나는 3개인가 4개인가. 암튼 재미있었다. 그거 조금 운동했다고 담날 어깨가 약간 아프긴 하더라 ㅋㅋ 물가에서 놀고, 사진도 찍다가 자리를 옮겼다. 월영교로 가는 길이 꽤 멀었기에 서둘렀다.
월영교에 도착해선 헛제삿밥을 맛있게 먹고 (내가 지금껏 먹는 탕국 중에 베스트였다. 제사 음식 답게 반찬이 차서 좀 아쉬웠지만) 월영교에서 산책을 즐겁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물 위에 비친 달이 참 멋진 곳이었다. 안동에 관광하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도 많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길었지만, 차에 탄 영남 누님과 연주르와의 수다로 즐겁게 올 수 있었다. 숙소인 온계 종택도 멋졌지만, 차에서 내렸을 때 별빛이 더욱 멋졌다. 얼마만에 보는 밤 하늘인지. 팀장님이 아프셔서 이후엔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다들 그래도 즐겁게 와인과 다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비록 나는 술은 잘 못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즐겁고 편안했다. 다음 날 일어나서 주위를 산책하려고 하는데 진경이가 벌써 부지런히 나와있었다. 함께 집 근처를 돌아봤다. 옆집의 할머니가 따뜻한 고구마를 건내시며 하나 먹어보라고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ㅠㅜ 이런 시골 인정 정말 어쩔꺼야 ㅠ 이후 궁금했던 것들을 부지런히 물어봤다. 저건 무슨 밭이에요? 여긴 왜 소나무가 많아요? 할머니는 뭐 키우세요? 저건 무슨 나무에요? 무슨 꽃이에요? 등등 할머니는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셨다. 넘 감사한 할머니를 만나서 산책길이 충만했다. 이후 팀장님과 지명형님도 산책 나오셨기에 건강을 여쭙고 퇴계태실에 들렀다가 왔다. 이후 아침을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여기 와서 장난아니게 살찔 듯. 오전에 집주인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듣고, 단체 사진도 찍고, 집을 나섰다. 다음 코스는 농암종택.
농암 종택에 가는 길은 정말이지. 절경이었다. 굽이 굽이 자동차 길을 따라서 강이 흐르고, 그 뒤로는 산과 절벽이 가득한. 이런 코스를 걸어다니면 백정도 저절로 선비가 되겠더라. 농암종택은 내가 방문 했던 국내 여행지 중에서도 손 꼽히는 곳이었다. 정말 자연과 잘 어우러졌다. 여행을 마치고도 어제 들린 병산서원과 농암종택을 난 최고로 쳤다. 그 만큼 종택에서 머물 때의 감명이 깊었다. 그리고 하나 느낀 건 내가 원래 자연에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거 같은데 나이가 들 수록 자연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 자주 접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 그런 변화도 느낄 수 있었다. 사진도 찍고, 대화도 나누고, 쿠사리도 먹고 (강각이었나. ㅋㅋ 나가세요 당장 나가세요 ㅋㅋ) 재미있었다. 언젠가 한번 꼭 따로 와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자고 싶단 생각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재원이와 함께 꼭 한번 와야지. 이후 점심으로 간고등어랑 더덕무침을 먹었는데 그것도 꿀맛이었다. 도산서원에 도착해선 공사 중이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오래 된 느티나무들이 인상적인 곳이었고, 무엇보다 스승의 뜻을 소중하게 여기고자 하는 제자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더 애틋한 곳이었다. 도산서원 앞으로 내려다 보는 강물의 반짝거림이 아직도 머릿 속에 남아 있다.
돌아가는 길. 나는 로디우스 뒤에 짐들과 함께 큰 짐이 되었다. 처음엔 많이 불편했는데, 그래도 적응하니 좀 괜찮았다. 하지만 대화하기 적합한 자세는 아니어서 그냥 혼자 책도 보고, 졸기도 하고, 광땡들 이야기도 훔쳐 듣고 하면서 왔다. 다들 맨 뒤에 있는 날 걱정해 주셔서 감사했다. 어쩌면 이 상황 때문에 그날 아침에 잘 생겼다고 띄어준 것은 아닐까? 이 모든게 큰 계획의 일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은 그 당시 하지 못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 한다. (ㅋㅋㅋ) 농담이다. 쨌든, 돌아오는 길은 아무래도 마음이 급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나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지명(형)님이 더 걱정 되었지만)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말했기에 지켜야 했고. 국수역에서 급하게 내리는 바람에 한명 한명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미안하게도. 그래도 유진 누님과 함께 타서 좋았고, 지하철에서도 내내 이야기하고 놀았다. 이틀 내내 행복하게 잘 놀다 가는 느낌이다. 도산서원에서 리뷰할 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원래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번 여행은 나에게 혼자하는 여행의 즐거움 (여유로운 시간, 산책)과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친밀감, 대화, 배려)을 둘 다 맛본 여행이라 더 좋았다고. 정말 그랬다. 애써주신 팀장님을 비롯한 모든 광땡들에게 감사함을 깊이 전하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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