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5


1.

요즘 꿈을 많이 꾼다. 그래서인지 일어날 때마다 힘들다. 마치 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랄까. 원래의 나는 꿈을 많이 꾸지 않는다. 불면증도 거의 없다. 눈을 딱 감으면 바로 잠들고, 눈을 뜨면 깨는 정도의 깔끔함.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거의 매일 꿈을 꾸고 있다. 신기하게도. 어느 날은 일어나서 한참이나 가만히 앉아 꿈을 반추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 꿈이 휘발되어 날라가기 전에 조금이나마 머금게 된다. 그럴 때는 자그마한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2.

꿈을 꾸는 건 왜일까? 딱히 이유가 있을까? 칼융이나 프로이드에게 물어본다면 뭐라 뭐라 할 수도 있겠지. 나의 잠재의식 속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편의대로 답을 찾아본다면, 이제는 그만 꿈을 깨라는 뜻이 아닐까. 난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사실 최근에 나는 현실에서의 활력을 조금 잃어버렸다. 고민 만큼 행동은 따르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 중요한 시간들을 차지하고, 어디로 가야하나 긴 방향성은 있지만 무엇을 해야할까 짧은 액션플랜은 없다. 분명히 꿈을 위해 달려가고는 있지만, 그 꿈을 현실화시킬 방법은 잘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 나다. 꿈을 깨고 발을 땅에 붙여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 


3.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존재가 아닌 말만 빛나는 사람. 기회를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 겉으로는 꿈을 얘기하면서 실상은 삶을 살아가는데 허덕이는 사람. 소외된 삶을 사는 사람. 그런데 돌아보면 내가 이런 삶을 살고있진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습에 빠져서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나이가 들고, 아빠가 되어가고, 책임감이 커지면서 자연스래 생기는 고민일거라 위로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더 온전히 이 시기를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보다 더 온전하게 말이다. 


4. 

내가 올해 초, 재미있게 봤던 <불완전함의 영성>이란 책에 이러한 글이 나온다. 인간은 부족하지만 완성을 추구하며, 불확실함 속에서 확실함을 구하며, 미완의 존재로 완전을 꿈꾸고, 깨어졌지만 온전하기를 원한다. 그럼 바람들은 물론 충족되지 못한다. 인간에게 완벽과 확실함, 완전, 온전함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피하지 못할 역설이다. 역설은 인간 존재, 곧 인간됨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것이 삶의 첫걸음이다. 


5.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대면하는 것이 삶의 첫 걸음이다. 많이 듣는 말이고, 나 역시 많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체득시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듯 하다. 인정하려 해도, 잘 수용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과 친밀해지는 것. 나와 다시 만나는 것. 내 안의 욕구를 다시금 들어보는 것. 내 안의 수용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다시 들어보는 것. 작은 것 하나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이 글이 그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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