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이들은 한번 만나는 것으로 왠지 아쉽다. 시간을 두고, 또 만나고 싶어진다. 책도 마찬가지다. 한번 읽고 나서, 뭔가 아쉬운 그런 책들이 있다. 나에겐 희망의 인문학이 그런 책이다. 나에게 '성찰과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소중한 책이다. 오늘 아침, 작년 1월에 읽었던 '희망의 인문학'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잠시 옮겨보았다.


"오늘날의 24번 구역과 내 아버지가 정치활동을 하던 당시의 24번 구역 사이에 드러나는 결정적인 차이는 그들이 어떤 종류의 빈곤으로 고통받느냐 하는 것이다. 대공황 시기 24번 구역 사람들은 자신들이 절대빈곤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빈곤하다고 생각할 때, 슬픔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

이제 24번 구역의 어느 누구도 절대비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 어디를 보고 있든, 어떻게 생각하든, 누구를 위해 기도하든 상관없이 쉼터의 거주자들이 바라보는 건 타인의 두툼한 지갑에서 넘쳐나는 부일 뿐이다. … 이제 24번 구역에서는 어떠한 정치활동도 일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경제가 지배 규칙이 된 것이다.

세계는 경주 만큼이나 상대적이며, 상대적인 빈곤은 견디기가 어렵다. 이것은 인류 공동체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기존중에 대한 모욕이다. 게임의 끄트머리에서 중산층이 승자와 맺는 동맹을 선택하고 다른 모든 이들을 빈민으로 규정해버리면, 24번 구역에 시기심이 등장한다. 그 시기심에서 소외, 증오, 그리고 분노가 피어오른다." p. 57-58


결론은 이것이다. 불평등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존재할 때 발생하며, 그 속에서 폭력의 씨앗(소외, 증오, 분노)은 무럭무럭 탄생한다. 우리가 사회의 암덩어리라 생각하는 IS나 일베도 그러한 현상의 일부일 따름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니.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키케로는 주장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며, 사적 삶이 아니라 공적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말과 행동의 일치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적절하게 중용을 지킬 수 있으며, 정치를 통해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P.71


내가 내리는 이 책의 짦은 결론은 이렇다. '성찰적으로 사고하고, 함께 대화하고, 정치적으로 행동하라' 인문학이라는 지적 동력 없이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은 실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자유의 형태가 처음으로 확연하게 드러났던 고대 아테네에서는 ‘공적 세계’에서 인문학을 따로 떼어내는 일이 불가능했다. 인문학과 도시국가는 자신의 존립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했다.(p.27)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고대 폴리스에선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현자가 아니라 미치광이로 취급했다. 폴리스에스 진정한 삶이란 정치적인 삶이었으며, 다른 것은 생각해볼 가치조차 없었다. 개인적 삶에 매몰된 사람들은 수동적이었기 때문에 시민의 대상에서 배재됐다. 폴리스의 경이로움은 대화 속에, 그리고 언제나 공적인 삶, 행동하는 삶 속에 존재했다. 그러므로, 함께 대화하고, 행동해야 한다. 글을 마치면서 자연스럽게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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