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페이스북을 통해서 하나의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보다가, 열을 받았고, 혼자 주절주절 대다가 글을 한번 써보기로 했다.
링크는 여기.
스마트폰을 이용한 교육부의 '학생자살 방지대책' 3가지... 가능할까?
3월 13일, 교육부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주재한 2015년 제2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학생자살 예방대책'을 확정했다. 키워드는 스마트 폰과 아파트 옥상이었고, 대책의 핵심은 자살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자살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1. 학생의 스마트폰 감시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는 "학생 스마트폰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에서 자살과 관련된 단어가 포착되면 부모에게 알려주는 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한 학생 스마트폰에서 자살 관련 애플리케이션과 사이트 접속을 막는 소프트웨어를 보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과 부모 모두 정부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야만 한다.
2. 한 달 앞당긴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는 매년 "초등학교 1·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특성검사를 거쳐 관심군 학생에 대한 면담조사 방식"으로 시행되는 검사다. 교육부는 원래 5월에 진행되던 이 검사를 4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3. 아파트 옥상 통제
교육부는 "지난해 발생한 학생 자살 사건 사례에서 투신이 65.9%로 가장 많았고, 장소는 아파트 옥상이 33%를 차지했다"며 학교, 아파트 옥상에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법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화재와 같은 응급상황에만 문이 개방되는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이러한 발표에 선생님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옥상을 폐쇄하고 자살징후를 감지해줄 앱을 설치하는 방법은 궁극적 해법이 될 수 없다. 자살에 복합적 요인이 내재해 있는 만큼, 요인별로 대처 방안도 달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은 "SNS를 검색해 통제하는 방식은 또 다른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고 현상에만 집착한 근시안적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말하자면, 학생을 감시하고 통제한다고 학생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자, 지금부터 하나하나씩 생각해 보자.
자살과 관련된 키워드를 검색하면 부모에게 알려진다. 그리고 자살관련 어플 혹은 사이트 접근을 막는 어플을 의무적으로 깔아야 한다. 우선, 이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자신을 통제하려 할 때 우린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안정감을 느끼는가, 스트레스를 느끼는가? 청소년들은 왜 자살하려고 하는걸까? 그 이유를 근본적으로 들여다보자. 인간이 자살을 생각할 때는 몇 가지 상황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가까운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 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없어 ‘자존감’이 낮을 때. 한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요인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자살'을 떠올릴 정도로 심신이 취약한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학생은 자살을 검색하면 부모가 알게 되고, 문제아가 된다. 부모는 자녀를 바라볼 때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시작하고, 부모와 자녀 그리고 학교 사이의 불신은 더욱 증가된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는 더욱 더 친밀해질 수 있을까?
또한, 사이트 접근을 막는 어플을 깐다고 가정해보자. 자신가 무언가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자율성’은 어떻게 될까? 게다가 그 정도 어플을 무시하는 방법이 설마 없을까? 분명히 나온다. 그것도 더 은밀하고 악독한 방법으로. 그레샴의 법칙,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시스템 사고 측면에서 보면 오늘의 문제는 어제의 해결책이다. 위의 조치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또 다른 (더 깊은 차원의) 문제점만 만들 뿐.
2. 한 달 더 앞당긴 학생정서, 행동특성 검사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관심 학생들은 5월이 지나서가 아니라 4월부터 집중 감시를 받게 된다.
달라지는 건 비교 당하고, 스트레스 받는 기간이 더 많아진다는 것. 끝.
3. 아파트 옥상 통제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학생들 입장에서 보자. 옥상이 잠겨있다. 마포대교로 가면 된다.
주민들 입장에서 보자. 화재가 났는데, 옥상이 잠겨있다. 갈 곳이 없다. 단순한 화재가 인재에 의한 대규모 사건으로 확장된다. 뒤늦게 안전대책이 생긴다. 아파트 옥상 통제가 풀린다. 끝.
4. 나의 결론은 이렇다. 자살은 시간 지연 효과다. 어린 시절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자살을 하려고 마음먹은 어떤 이가 자살을 하지 않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없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여건은 봉쇄할 수 없다. 자살은 그런 식으로 막을 수 없다. 자살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학생들 개개인의 자존감과 사회성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학생들의 자존감과 사회성은 언제 형성되는 것일까? 많은 학자들의 말로는 1-3세 사이에 자존감이, 3-7세 사이에 사회성이 대부분 결정된다고 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사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학생들의 정서 상태는 대부분 결정되어져 간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일탈은 단순히 1-2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릴 적부터 충분한 정서적 안정감과 사회적 경험이 필요하며, 그것은 그들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구간이다. 이 구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세상에 대한 안정감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이르러 그러한 ‘불안감’을 세상에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그것을 표출하지 않고 억누르는 것도 또한 새로운 문제의 가능성이다. 누가 그랬든, 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제발 이처럼 손 쉬운 ‘감시와 처벌'를 버리고, 길고 어려운 길이지만 ‘구조와 시스템’을 다시 들여다 봐야 한다. 다양한 접근이 있겠지만 나는 ‘사회성과 자아상’을 기르는 결정적 구간, 육아에 대해서 좀 더 주의깊게 바라봐야 한다고 믿는다. 이 구간은 비용이 아니다. 뿌리를 만드는 귀중한 시간이며, 건강한 뿌리 없이 좋은 열매는 맺히지 않는다. 자살은 어린 시절에 뿌린 씨앗이 시간 지연 효과에 의해서 청소년 시기에 결과를 맺는 것이다. 그 씨앗은 이미 1-7세 사이에 심어지고 있다. 헌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엄마, 아빠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가? 없다. 맞벌이 하느라, 야근하느라. 어린이집은 어떤가? 터무니 없이 적은 임금과 CCTV로 감시 받는 덕분에 스트레스는 더 심해지고, 아이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여유는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미셀 푸코는 “우리는 스며들어 있으나 익명성을 띠는 감시를 통해서 힘이 행사되고 있는 훈육적 사회 속에 살고 있다.”고 <감시와 처벌>에서 말했다.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감시와 처벌의 사회에서 훈욕당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감시를 자율로, 처벌을 애정과 믿음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최대한 빠른 시기에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야 그 이후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우리 주위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삶에도. 우리가 가진 관심에는 총량이 있다. 쓸데없는 미디어나 언론에 관심을 뺏기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지키고 철학을 닦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사를 읽고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 만의 관점을 넣어보는 훈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이 글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지금까지 보다는 좀 더 사회 문제에 개입하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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