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포스팅을 한다. 
사실 그 동안 블로그를 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글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프리랜서이던 작년 보다 글의 양이 확연히 줄어든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ㅠㅜ 모르고 입사한 것도 아니고, 나름 회사 경험을 통해 얻는 것도 많으니 스스로 위안을 할 뿐이다. 

이 글도 전혀 새로운 글이 아니다. 지난 번에 올렸던 책 '오리지널스'와 마찬가지로, 회사 그룹웨어를 통해서 공유했던 글이다. 다만, 내 블로그에 올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복붙'하려 한다. 자랑스런 글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낳은 글이니까. 엄청나게 방치하고, 모른척 했음에도 불구하고 블로그에 꾸준히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일부러 모른척 했던 내가 부끄럽다. 

뭐 대단한 글을 쓴다고. 쳇. 
바쁜 와중에 그냥 가끔 들어와서 '나 잘 살아가고 있소'라고 글을 쓰면 되는 것임을. 





서문


다음 애니메이션의 공통점은 무엇 일까요?
몬스터 주식회사, 월E, 그리고 인사이드 아웃

정답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 공통점은 바로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니까요. 하하.. 죄..죄송합니다. 아재라서;; 사실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자타공인 지구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 PIXAR’의 히트작이란 점이죠.

이번에 선정 한 <창의성을 지휘하라>는 픽사의 집단 창의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노하우가 담긴 책입니다. 조직 외부에서 바라보며 쓴 내용이 아니라, 창립자 에드 캣멀(현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회장)이 직접 쓴 글이라 진솔 하면서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는 CEO로서 자신의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픽사 사장으로서 내 목표는 언제나 픽사가 창업자들보다 오래 생존할 수 있게 픽사에 계속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의적 기업문화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p.14)

에드 캣멀이 품고 있던 질문, 그리고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집단 창의성을 길러 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자기 자신보다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 구조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그 목표이죠.

매 작품마다 창의적인 스토리와 뛰어난 그래픽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 픽사이기에, 이 질문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제 픽사의 창업자, 에드 캣멀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분이 사랑하는 PIXAR 캐릭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비밀을 알게 될 거에요.


첫 번째, 안전한 공간을 형성하라.

집단 창의성을 길러내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문책받을 걱정과 두려움 속에선 다양하고 풍부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고, 그렇게 될 수록 창의성과는 멀어지게 되죠. 에드 캣멀도 같은 고민에 빠졌고, 몇 가지 장치를 고안하기에 이릅니다. 첫 번째는 '물리적 변화’입니다. 즉 테이블 거리를 조절하고 명패를 없애기로 한 것이죠.

"나는 회의 참석자들이 서로 비슷한 거리를 유지하며 앉을 수 있는 테이들이 놓이길 바랐다. 그래야 회의 참석자들이 자신을 덜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터놓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회의실에는 새 테이블이 놓였다. …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 새 테이블에도 이전과 똑같이 명패가 놓여 있었다! … 명패는 우리가 픽사에서 피하려고 노력한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p.26)

이쯤에서 "그런게 효과가 있을까?" 라는 의문도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물리적 변화는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예전의 어느 심리학 실험에서도 미팅 시 ‘테이블’을 치우니 더 많은 의견이 나오더라는 결과를 본 적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스탠딩 미팅도 유행이라고 하죠. 서서 미팅을 진행하면 분위기가 좀 더 활기차 진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물이나 공간의 배치는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변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지위 계통을 넘어선 자유로운 '의사소통 규칙'입니다. 누구나 거리낌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죠.

"나는 모든 임직원에게 직위나 시간에 상관없이, 누구든 문책받을 걱정하지 말고 다른 임직원에게 자유롭게 얘기하라고 말했다. … 직원들끼리 직접 소통하고 나중에 상관에게 알리는 편이 ‘적합한 절차’와 ‘적절한 지위 계통’을 거쳐 정보를 교환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p.102)

위의 단락은 무엇보다 ST와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우선 저희도 ‘호칭’이나 ‘명패’가 따로 없습니다. 테이블을 가로막는 ‘버티컬’도 없죠. 게다가 의사소통 시 장애가 될 만한 것도 거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편하게 받아준다는 점이 우리 회사 최고의 장점이라고 봅니다. 저 역시 초반 한달 동안 막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고, 궁금한 내용을 물어봤는데요. 그때 우리 ST의 문화를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느 한분도 귀찮다는 내색 없이 모두 친절하게 대해 주셨고, 그때의 감사함을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혹시 신규 입사자 분들 중에서 이 글을 읽으며 믿어지지 않는 분들은 한번 실험해 보셔도 좋습니다. (물론 분위기 봐 가면서, 필요한 내용을 물어봐야 하겠죠. ;;)


두 번째, 진실된 대화를 나눠라.

픽사에는 무엇보다 우선되는 제 1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토리가 왕이다’ 입니다. 아무리 어두컴컴한 상황이라도 언제나 그들은 '스토리'를 등불로 삼고 나아갔습니다. 한번 기억해 보세요. 보셨던 픽사 작품 중에서 스토리가 엉망인 영화가 있었나요? 이처럼 픽사는 탁월한 스토리를 중심에 놓고, 토론하고, 싸우며 영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핵심 교훈을 얻게 되죠.

"나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좋은 아이디어를 평범한 팀에게 맡기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반면 평범한 아이디어를 탁월한 팀에게 맡기면, 그들은 아이디어를 수정하든 폐기하든 해서 더 나은 결과를 내놓는다." (p.115)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겁니다. '탁월한 팀’을 만드는 것이 ‘스토리 메이킹’의 본질입니다. 이 팀은 무엇이 가장 탁월한 것 일까요? 역량도 아닙니다. 전문성도 아닙니다. 집단 창의성을 위한 두번째 비법, 그것은 바로 ‘진실한 대화’입니다. 픽사의 언어로는 '브레인 트러스트’라고 합니다. 변화를 위한 제도나 형식이 갖춰지더라도 ‘내용’이 빈약하면 성과는 요원합니다. 브레인 트레스트는 그 ‘내용’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브레인 트러스트의 핵심 요소는 언제나 솔직함이다. … 솔직함이 없으면 신뢰도 존재할 수 없다. 신뢰가 없으면 창의적 협업은 불가능하다.” (p.132)

‘건설적인 비평’ 즉, 솔직한 대화는 올바른 협업을 이끌어 냅니다. 서로 다치지 않게, 발전을 위한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최고의 스토리가’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 뿐만 아닙니다. 저는 최근에 JYP엔터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프로듀서 개인의 ‘감’으로 곡을 선정 했지만, 지금은 내부, 외부의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결정된다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평균 점수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설사 박진영이 작곡한 노래라도 빛을 못보게 된다고 합니다. JYP 엔터는 이 시스템을 지난 2년 동안 실험해 왔고, 그 결실이 바로 트와이스의 성공으로 찾아온게 아닐까요? 그게 어디든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픽사 사람들은 어떻게 이 솔직한 피드백을 훈련 했을까요? 그 비결은 픽사 유니버시티의 ‘예술 교육’입니다. 예술의 핵심은 ‘표현과 비평’입니다. 픽사 직원들은 예술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 하고, 협업하고, 그 과정에서 작가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비평을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한 잦은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일상 업무를 할 때도 더 원활한 상호작용을 이뤄냈다고 합니다.

"앤드루 스탠튼의 설명을 들어보자. “비평과 건설적 비평은 다릅니다. 건설적 비평은 비평하는 동시에 건설합니다. 부수는 동시에 짓고, 해체하는 동시에 조립하죠. 건설적 비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형태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영감을 주는 의견서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154)

비난은 서로를 헐뜯고 부수지만, 건설적 비평은 해체하는 동시에 조립합니다. 창의적인 시나리오, 탁월한 결과물은 그 ‘솔직함’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대화는 분명 앞서의 ‘물리적 조건’을 갖췄을 때 더 촉진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세 번째, 끊임없이 숙련하라.

결국 '좋은 그릇’에 ‘훌륭한 음식’이 담겨야 합니다. 이렇게 형식과 내용이 갖춰지면 끝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집단 창의성을 위한 세 번째 방법. 그것은 바로 ‘숙련’입니다. 그들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픽사에서 물러날 테니, 누가 감독이 돼도 최고의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직원들을 가르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베테랑 감독을 감독 후보의 멘토로 연결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 핵심 활동은 멘토가 8개월 동안 멘티를 데리고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멘토는 자신의 노하우를 모두 멘티에게 전수합니다.

"멘토링 프로그램의 목표는 깊은 유대감을 구축하고, 공포와 도전을 공유하고, 경영자가 실제 고민하는 외적 문제 및 내적 문제와 씨름해보고, 직원들을 관리하는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신뢰감을 구축하는 것이다.” (p.182)

도제식 멘토링 제도 뿐만 아니라, 하나의 교육 제도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픽사 유니버시티’인데요, 그 커리큘럼은 수년에 걸쳐 조각, 회화, 연기, 명상, 댄스, 발레부터 실사영화 제작, 컴퓨터 프로그래밍, 디자인, 색상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학 교육이 직원들의 업무 성과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직원 사이에서 ‘상호 작용’ 촉진과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메시지입니다.

"픽사대학이 직원들의 업무 성과 증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촬영 기술자 옆에 경험 많은 애니메이터가 앉고, 그 옆에 회계부서나 보안부서나 법무부서 직원이 앉아 수업을 들은 시간은 그 가치를 금전적으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산이 됐다. 강의실에서 직원들은 사무실에 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했다. 강의실에서 직원들은 경계심과 긴장을 늦추고 마음을 열었다. 강의실에서는 직급이 적용되지 안았는데, 그 결과 소통이 활발해졌다. … 픽사대학은 그 과정에서 픽사의 조직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었다. 픽사대학은 모든 직원이 직위에 상관없이 다른 직원이 하는 일을 존중하도록 가르쳤으며, 모든 직원이 초심자로 돌아가 낯선 일들을 배우며 실수할 기회를 제공했다. 창의성은 실수로 점철된 미숙한 과정을 거치면서 발현된다. 나는 직원들이 이런 개념에 익숙해지길 원했다.

… 픽사대학의 목적은 결코 프로그래머를 애니메이터로 바꾸거나, 애니메이터를 댄서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픽사대학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계속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모든 직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는 것은 유연성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 나는 픽사대학을 통해 직원들이 더 유연하고 강한 인재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중요한 문장이라 한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픽사대학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계속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모든 직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는 것은 유연성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교육을 통해 전 직원들이 유연하고 솔직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 전략은 아직까지도 유효합니다. 오늘도 그들은 끊임없이 숙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우리가 사랑하는 픽사의 수 많은 캐릭터와 생생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꾸준히 학습하는 조직만이 번성할 수 있는 거겠죠.


결론

제 리뷰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열린 공간과 건설적 비평, 그리고 숙련을 위한 교육. 이 삼박자가 갖춰질 때, 개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깨어나게 되고, 전체적으로 ‘집단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하나의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가 제창한 ‘리좀’이 바로 그것입니다.

들뢰즈는 모든 사물이 평등하게 ‘AND 그리고’의 관계를 맺는 것을 꿈꾼 철학자 입니다. 그는 사물들이 하나의 중심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어가면서 새로운 ‘and 그리고’ 그리고 ‘between 사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는데요. 이러한 형식의 사유를 들뢰즈는 ‘리좀’이라고 불렀습니다. 쉽게 말해서, 리좀의 철학은 ‘관계의 철학’이며, 조직이 보다 유연할수록 더 역동적인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마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초기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요? 직위도 부서도 없고, 네 일과 내 일이 구분되지 않고, 서로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는 그 역동적인 모습 말이죠. 그럴 때 ‘집단 창의성’은 깨어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우리’가 해내는 기적을 연출합니다. 저희 ST의 지금까지의 모습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구요.

글을 마무리 지으며, 저는 이 글이 저에게 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 자신부터, 스스로의 역할을 구분하고, 부서를 나누려는 자세를 경계하고자 합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고 믿고 있는 나의 정체성에 돌을 던지고자 합니다. 저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어디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말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와 ‘장Field’ 속에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가능성이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아,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쳤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꾸준함’ 그 불변의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서도 결코 할 수 없습니다. 모두 함께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정말 멋진 기업 문화를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 가지 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창의적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한 가지 과제를 해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창의적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늘 신경 써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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