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오랜만에 봤다. 흥미로운 주제라, 안 볼 수가 없었다.
내용인 즉슨, 2015년 연초 최대 화두인 '갑질 논란'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관적으로’ 세 가지가 인상에 남는다.



1. 
방송을 보던 중 백화점 VIP 모녀가 하는 표현 중에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가장 이상하게 들리는 말은 이것이었다. “돈을 기쁜 마음으로 쓰러와서” 라든지. “당일 600-700만원을 쓰고 왔는데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 싶었다.” 라는 말. 

돈을 쓰는 것과 주차요원과의 사건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그런 논리가 아닐까,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돈을 많이 썼다. 그러니 그만큼 대접받아야 한다. 그런데 주차요원은 그렇게 날 대접하지 않았다. 그러니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내가 무릎을 꿇였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논리적 헛점을 찾아본자. 다시 말해, 돈을 많이 쓰면 더 잘 대접해야 하고, 돈을 안 쓰는 고객은 대충 대접해도 된다는 뜻인가? 다시 말해, 본인이 만약 그날 백화점 와서 3000원 어치 반찬꺼리를 사고 집에 돌아가는 상황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인가? 난 도대체 돈의 액수가 왜 자꾸 언급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돈의 액수가 아니라 한 사람의 고객으로서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면 조금은 더 이해가 되지 않을까. 뭐 오해는 할 수 있으니. (물론 그 이후의 무례한 행동을 이해하긴 어렵지만)

이렇게 계속 돈을 쓰러 왔음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시장 만능주의’가 만연해 있는지 알 것 같다. ‘돈’이 우리의 삶의 가치를 모두 재배열 해버리는 느낌. 굉장히 슬프다.


2. 
방송을 보면 조현아 부사장에 대한 언급도 많이 나온다. 대한항공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은 이젠 별 상관이 없어진 회사를 향해 작심하듯 소신껏 대답한다. 헌데, 왜 그 누구도 회사 안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까. 게다가 직접 서비스를 했던 그 승무원은 그러한 모멸감에도 불구하고 벌써 회유에 넘어가서 회사 편이 되었을까. (조사 받으러 가면서 웃을 때는 좀 무서웠다)

그 사람들이 잘못했다가 아니라, 이 사회의 무엇이 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스스로 생존이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어서는 아닐까. 옛말에 ‘의식이 족해야 예를 갖춘다’라는 말이 있다. 일단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누구나 약해질 수 밖에 없고, 그 상황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사치처럼 보이기도 하겠지. 이해한다. 그 누가 회유당한 그들에게 쉽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회유 당하지 않고 박창진 사무장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상황에서 말이다. 어제 방송을 보면서 가장 많이 시뮬레이션 해 본 것도 그것이다. 결론은 이상하게도, 내가 여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ㅋㅋㅋ 나는 그런거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결론. 아내에게도 미리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저 상황에서 그냥 나와버리겠다고. 뭐 그게 내 팔자다. 

3.
마지막, 짧게 쓰자. 내가 들은 가장 이상한 표현은 이것이다. 내 돈, 내 비행기, 내 회사, 내 것…!!
여기서 내가 가장 떠오른 책은 에리히 프롬의 <소유와 존재>다. 오랜만에 꺼내서 잠깐 옮겨본다.

p.59
"차이의 요점은 권위를 소유하고 있느냐, 아니면 권위로 존재하느냐이다. (…) 합리적 권위는 그 권위를 의존하는 인간의 성장을 촉진시키며, 권능을 바탕을 한다. 비합리적 권위는 권력을 바탕으로 유지되며, 권력에 굴하는 사람들을 착취한다."

P.110
"소유적 실존양식은 사유재산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진술은 객체를 소유하고 있음을 빌려서 나의 자아를 정의하고 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주체이다. 나의 소유물이 나와 나의 실체의 근거가 된다. (…) 내게 그것을 소유할 가능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지금 나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관계도 있을 수 있어서, 그것이 나를 소유하기도 한다."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말이 나온다. 내 회사, 내 비행기는 지금 내가 갖고 있다. 내가 아니라 나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라고 착각하는 순간, 그것이 사라졌을 때 무엇이 찾아올까..? 나의 소멸이 찾아온다. 쉽게 견딜 수 있을까? 스피노자가 말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p.134
“무엇보다도 돈, 재산, 명성에의 욕구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을 정상적이며 적응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오늘날의 지배적 통념과는 반대로, 스피노자는 그런 사람들을 지극히 수동적인 인간으로, 근본적으로 병든 인간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스피노자 자신이 몸소 구현했고, 그가 의미했던 바의 능동적 인간유형은 지나간 역사 동안 이미 예외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결국,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능동성’과 ‘자유’를 찾은 것이 아닐까. 인간성을 되돌리고, 가치를 회복하는 것.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이 말을 기억하자. 소유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고 존재에 의해서 규정된 인간은 참 자아에 이르게 되며 순잔히 바쁘다거나 일에 메달린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면의 능동성을 전개한다. 이런 인간에게는 소유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에게 사랑은 모든 것이다.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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