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드러커 자서전
[저자조사]
피터 드러커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미국인이며, 작가이자 경영학자였으며, 스스로는 ‘사회생태학자’라고 불렀다. 나는 그를 참 좋아하는데, 그가 탐구한 분야도 좋아하고, 그가 살아낸 삶의 모습도 좋아한다. 왜나면 20세기 후반의 많은 변화를 예측했고, 특히 지식 노동자라는 개념을 고안하고 설파한 점에서 놀라운 사람이다. 그는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20세기와 그 다음 세기의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30권도 넘는 경영서적을 저술하면서 새로운 지식경영의 패러다임을 연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빈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에 면제품 수출회사에 견습생으로 입사하여 장사를 배웠다. 하지만 그는 이후 1927년 함부르크 대학교 법과 대학에 등록했고 법학 공부를 했다. 그 후 그는 이 책에도 언급되는 프랑크푸르트의 최대 신문사에 금융 및 외교 담당 기자로써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으며, 프랑크푸르트 법과대학에서 헌법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러다 그의 글들이 나치에 의해 불에 타 없어지는 봉변을 당한 후, 1933년에 영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파이낸셜 타임즈에서 기자로 활약했다.
이후1937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버몬트의 베닝턴 칼리지에서 철학 및 정치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기업에 경영컨설팅을 제공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때 '경제인의 종말' 같은 주요한 책을 출간했는데, 그 책이 그에게 오늘날의 엄청난 명성을 안겨 주었다. 그가 설파한 것은 이렇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고객이며, 목적인 시장이다. 기업의 경영의 중심에 고객을 두고, 근로자를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인식시키려 했다는 점이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그는 아흔살까지 정력적인 활동으로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그가 겪은 세계대전, 그리고 대공황 이후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의 젊은 시절이 아닌, 이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옮겨적기]
개정판을 내며
-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흥미로운 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가 얼마나 인습에 순종적인지, 또는 얼마나 보수적인지, 아니면 지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지 등과는 상관없이, 일단 그가 자신의 일이나 지식, 흥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매력적인 존재로 돌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결국 개별적인 존재다. 11
+ 모든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다. 우린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는.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상은 이야기가 아닌 스펙으로 사람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토익, 자격증, 학력, 경력 등등. 나는 그게 참 싫다. 그래서 사람을 만났을 때 가급적 나의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렇게 삶을 나누는 과정이 가장 즐겁다. 사람은 결국 개별적인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들.
- 지난 50여 년은 집중화와 단일화, 획일화가 세상을 지배했던 시절이었다. … 전체주의 국가는 일반적인 흐름에서 단지 정도가 지나쳤던 사례에 불과했다. 지난 50여년 동안 민주주의 사회 역시 이런 조류에 휩쓸렸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경영서적과 수필 등을 통해 사회조직이나 사회단체를 다루어왔으며 이를 위해 사회조직이나 단체의 정치나 철학, 역사를 언급했다. … 하지만 어떤 소재를 선택하든 항상 상이성과 다양성을 강조했다. 거대정부나 거대기업에 의한 통제를 설파하는 학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는 권한분산과 실험정신, 그리고 공동체 창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3
+ 누군가 그랬다. 모든 사람은 역사에 소속되어 있다고 했었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피터드러커가 태어나고 살았던 시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두번이나 겪고, 그 이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엄청난 경제성장도 목도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50년을 획일화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어떤가? 다양성이 인정받고 있는가? 조짐은 보이고, 그런 인식도 증가하곤 있지만, 아직도 거대정부나 거대기업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나란 생각도 든다.
- 지금 우리가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는 지식사회는 조직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조직들의 사회는 다양하게 분산된 다중적인 형태를 갖게 될 것이다. … 지난 50여 년 동안 내 저서들이 강조한 조직설계와 분권화, 다양성 등은 어떤 이상, 즉 추상적 개념을 다룬 것이었다. 그 내용들은 주로 내가 선생이자 상담가로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발췌됐다. 15
+ 그는 미래 지식사회의 모습을 예견했으며 조직의 형태도 예언했다. 몇몇 책에서 그 자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걸로 아는데, 관심이 많았지만 아직 보진 못했다. 이 책을 보면서 피터드러커를 다시 한번 정복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프롤로그_한 사람의 구경꾼, 탄생하다
-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연극과 거기에 참여한 모든 배우의 성공은 관객들의 반응에 달려 있지만, 구경꾼의 반응은 연극의 성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자기 내면에만 어떤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극장의 안정요원들이 그런 것처럼 구경꾼들은 무대 한쪽에 서서 배우나 관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 이 책은 대단히 주관적인 작품이다. 일급 사진가가 항상 주관적이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21
+ 멋진 표현이다.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왜냐, 구경하기 때문이다. 구경꾼은 언제나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을 이야기한다. 행동하기 보다는 기술한다. 피터드러커의 이런 특징은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본 삶 전반에 흐른다. 특히 대단하다고 느낀 점은 등장 인물들과의 대화 하나하나를 다 기록했었단 것이다. 구경꾼도 이 정도로 꼼꼼한 구경꾼이라면 인정할 만 하다. 나는 구경꾼도 아니고 배우도 아닌 것이 뭐 하는지 ㅠ
- 당시 나는 군중들에 의해 원치 않는 방식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웅덩이를 돌아서 가려고 했지만 뒤에서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의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 즉 거대한 인간집단의 압력이자 집단 운동의 물리적 위협이 나를 압도했다. … 그 차갑고 떠들썩한 11월의 어느 날, 나는 내가 구경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경꾼은 만들어진다기보다 타고난다. 27
+ 구경꾼은 만들어진다기보다 타고난다. 나도 그렇다. 나도 구경꾼으로 타고났다.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쨌든 세상과 한 발자국 떨어져서 무언가를 해석하고, 기술하고, 관찰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익숙한 것이며, 내가 잘 하는 것이다. 나도 피터드러커의 작업을 따라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이렇게 나열하면서 적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만으로 즐거워지는 것을 보니, 나는 구경꾼 맞다.
1부.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1. 할머니_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준 유퀘한 사람
- 그 무엇도 할머니가 매일, 그것도 날씨에 전혀 구애 받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녀는 아마 빈의 모든 곳을 전부 다녀봤을 것이다. 40
+ 이 한 문장이 할머니의 많은 것을 설명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구경꾼이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느끼고,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경꾼인 피터드러커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원래 나와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에게 배울 것이 더 많은 법이니.
- 너 같은 경제학자들이 화폐를 가치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아마 너는 자의 눈금이 바뀌어서 내 키가 갑자기 180센티미터가 됐다고 말하려는 거겠지. 그렇다고 해도 내 키가 평균신장을 밑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53
+ 관념이 아니라 실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내가 배워야 할 부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 할머니는 결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지적이지도 않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할머니가 지식이나 영리함, 지능이 아니라 일종의 지혜를 가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 지식은 지식으로 끝나선 안 된다. 지식과 삶이 결부되어야 지혜다. 삶이 빠진 지식은 문제를 해결하지도, 갈등을 해결하지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나는 지혜로워지고 싶다.
2. 헤메와 게니아_경영의 귀감으로 삼은 괴짜 부부
- 나는 항상 추상적인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고, 관념이란 철학자들이 범주화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고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내게 흥미롭고 다양성을 가진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관념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발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변화를 일으키면서 무엇인가로 바뀐다. 72
+ 피터드러커의 위대함이 보이는 문장이다. 피터드러커는 구경꾼이다. 상황을 지켜보는 관찰자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연스럽게 추상적인 개념이나 언어로 관심이 흐르는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봤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그를 이렇게 위대한 사상가로 만든 것이 아닐까. 그 애정 어린 관찰력을 닮고 싶다.
- 난 언제나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려고 헀고 대중에 영합하기를 거부했었지. 난 그런 너의 모습이 좋았다. … 지금 네가 빈을 떠나겠다는 것도 전적으로 옳은 결정이다. 이곳은 과거 속에 있고 이미 끝난 도시니까. 하지만 피터, 일단 떠나리고 했으면 떠나야 해. 떠날 사람은 작별인사 따위는 필요 없는 법이다. 77
+ 대중과 영합하기를 거부하는 모습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발견되는 지점이다. 대중과 함께 하지만 그들을 따라가진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 그녀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학교를 운영하는 일은 분명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 대신 그녀는 특정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충족시키기 위한 온갖 종류의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 기아상태가 오스트리라를 휩쓸기 시작했을 때 게니아는 공동식당을 설립했다. 117
+ 게니아의 행동력에 나는 놀랐다. 나는 나중에 작은 학교를 운영하고 싶다. 그 학교의 철학과 사상을 지금부터 하나 하나 정리하고, 경험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교육철학 따윈 없었다. 그저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었다. 사람들이 기아에 시달리면 식당을 만들었고. 나는 너무 생각이 많다. 그냥 저지르면 어떨까? 게니아의 이 무모함이 나에겐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질까?
- 게니아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언제나 최고위 인사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정확하게 어떤 조치를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화기를 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만약 그것이 잘못됐거나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지적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보다는 연구에 몰두할 것이다.” 119
+ 최고위 인사에게 바로 달려드는 용기.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지 분명히 아는 그 목적의식. 아…
- 살롱은 작품의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정성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그 작품은 점점 더 자연스럽고 자유로우며 즉흥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 우리는 ‘자연스러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고의 시나리오와 엄청난 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125
+ 자연스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얼마나 부자연스런 사전작업이 필요할까. 강의나 워크샵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나 요즘 솔직히 말해서 강의 준비 열심히 하지 않는다. 많이 진행했던 강의들 이리저리 편집해가면서 대충 때우는 강의도 적지 않다. 예전에 강의 자료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계속 고민하던 나는 어디갔는지. 앞에 서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긴장감은 실종된지 오래다. 최고의 시나리오와 엄청난 준비작업. 그것이 자연스런 강의를 만드는 법인데, 언제까지 바쁘단 핑계로 이를 게을리할 것인지.
- 게니아의 살롱에서는 누구라도 스타가 될 기회를 갖고 있었다. 내가 최고로 무대에 앉았던 때는 아마 열네 살인가 열다섯 살 때였던 것 같다. … “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구나. 내 옆에 와서 네 생각을 모두에게 들려주지 않으련?” 그래서 나는 무대에 앉게 됐던 것이다.” 139
+ 게니아의 살롱 멋지다. 나는 매월 한번 진행하는 심톡이 그런 살롱형태의 모습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올해는 각자 다른 호스트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나는 믿는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와 함께 교육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마련되는가? 우리 주위에는 “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구나”라고 말해주는 게니아가 있는가? 그런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을 수 있지만 그 역할을 하고 싶었다. 매월 다른 호스트를 초청해서 그들에게 워크샵을 디자인할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시도가 잘 되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시도는 좋았지만, 그것에 걸맞는 노력은 덜 기울이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앞서 말했던 ‘더 자연스러운 진행’을 위한 철저한 준비. 그것만 더 보충하면 어떨까.
3. 엘자와 소피_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 “너는 작문에도 능해. 하지만 별로 연습을 하지 않는 것 같더구나. 너도 동의하니?” 이때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럼 그것을 목표로 삼자. 일주일에 두 개씩 작문을 해서 제출하렴. 하나는 네가 쓰고 싶은 내용을 마음대로 쓰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주제를 정해 주마. 160
+ 간결하다. 강제성은 있지만 그건 상대를 위함이다. 나에겐 이것이 부족하다. 아이들에게 강제적으로 무언가를 시키는 것이 어렵다. 그것이 분명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텐데, 강제적으로 무언가를 시키는 것을 어려워한다. 쓸데없이 배려하는 것이려나.
- 미스 엘자는 조금도 ‘아동중심’ 적이지 않았다. … 그녀는 오로지 아동의 학습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하루 만에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외었고 한 주가 지나면 학생 개개인의 성격과 그들의 장점을 모두 파악했다. … 미스 엘자와는 대조적으로 미스 소피는 전적으로 아동중심적이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몰려다녔다. … 대신 그녀는 단 한 번도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한 적이 없었다. 167
+ 재미있는 대조였다. 학습에만 관심있는 엘자와 그 반대의 소피. 나는 좀 더 소피에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이 글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치우쳐져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로썬 아이들의 학습을 이끌어내기 위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엄격함이 있는지 모르겠다.
- 미스 엘자가 소크라테스적 문답법을 완벽하게 적용했다면, 미스 소피는 선의 달인이었다. 174
+ 약간의 모호함이 있긴 하지만, 좋은 비유라고 생각되어 옮겨 적었다.
- 어쨌든 나는 교직의 길에 들어서야 했다. 일자리와 수입이 필요했고 다른 대안이 없었던 기간이 꽤 오래 지속됐었다. … 사실 지금까지 어떤 과목도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나의 흥미를 끌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전반, 신학과 철학에서 문학과 역사는 물론 행정학과 경영, 경제, 통계학에 이르는 열댓 가지 과목을 가르쳤다. 180
+ 이정도의 과목들을 이렇게 어린 나이에 가르쳤던 사람이라니. 이 천재성에 좀 놀랐다. 사실 피터드러커를 좋아하기만 했지, 이렇게 개인적인 영역은 잘 몰랐기 때문에. 신학, 철학, 행정학, 경영, 경제라니. 나는 더 공부해야 겠다. 드러커 발목이라도 붙잡고 늘어져야 겠다.
- 최고의 선생이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인기는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력과는 별도 관계가 없다. 하지만 학생들이 선생을 가리켜 “우리는 그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믿어도 된다. 학생들은 분명히 좋은 선생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188
- 선생의 열정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교육자의 열정은 학생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하지만 가르침과 학습은 언제나 열정이고, 그 열정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열정에 자신이 중독되는 것이다. … 진정한 선생과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201
+ 나에게 한 가지 컴플랙스가 있다면, 어릴 적 학창시절에 내 열정을 불러일으킨 참된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종종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잘 만나서 아직도 교류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나름 스승을 찾아서 헤매는 여정을 가고 있다. 어떤 스승을 만났고, 그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열정을 불러일으켰는지는 한번 정리하고 싶다.
4. 프로이트_프로이트에 대한 프로이트적 분석
- 프로이트는 무료 환자를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신분석환자에게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지 말아야 하며, 환자가 상당한 진료비를 지불할 때만 진료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빈의 의사 대다수가 따르던 유대인 전통에서 보면 대단히 ‘비윤리적인’ 것이었다. … 그는 의학을 ‘장사’로 만들었다. 게다가 프로이트가 옳을 수도 있다며 동조하는 의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12
+ 프로이트와 어릴 적 부터 교류한 사이라니. 놀라웠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이런 부분이 있었구나. 재미있었다.
- 의사가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하면 환자는 의사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러면 회복과 치료가 더뎌질 수 밖에 없으므로 의사는 고통을 받는 환자를 형제가 아닌 사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13
+ 프로이트의 무서운 점은 사람들을 그렇게 ‘사물’로 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적중률을 보였다는 점이다. 예전에 잠시 심리학 교재를 가지고 스터디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 심리학 전공자가 그랬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인간으로써 참 기분 나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그러한 이론의 적중률이라고 한다. 과학적이진 않지만,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뒤짚어보고, 이리저리 해부한 측면에선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 1910년이 되자 그 분야에서 프로이트 학파에서 파생된 알프레드 아들러와 카를 융 같은 라이벌이 생겨났다. … 1920년경 시작된 심리치료의 결과에 대한 연구는 항상 같은 내용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즉 심리치료가 중요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이터는 결론이 없다. 그 어떤 방법도 다른 방법보다 현저히 낫거나 다른 결과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217
+ 프로이트만큼 이후에 많은 비판과 논란을 받은 사람이 드물다. 그런 맥락과 비슷한 사례가 떠오른다. 어떤 철학자가 그랬다. "칸트는 걸레”라고. 왜냐? 그는 살아서 그리고 죽어서도 엄청나게 많은 반박을 받았다고 한다. 완전 너덜너덜해진 것을 두고 걸레란 비유를 든 것이지. 뭐 그런 사람들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학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미 훌륭하다.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 그 의견, 그 주장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지나친 주장은 금물이다. 그 어떤 방법도 다른 방법보다 현저히 낫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 그 다양성을 기억해야 한다.
- 프로이트의 저서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가 성적 불안, 성적 불만, 성기능 장애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19세기 말 강조됐던 한 가지 신경증이 빠져 있다. 바로 ‘금전 신경증’이다. 프로이트 시대 빈에서 억압의 대상이 됐던 것은 성이 아니라 돈이었다. 돈은 이미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상태였지만, 동시에 언급돼서는 안 될 대상이기도 했다. 224
+ 자본주의는 세속화된 종교다. 금전 신경증은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만연한 신경증이 아닐까.
5. 트라운 트라우네크_전쟁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의 고백
- 나는 대학에 진학해 학문의 길을 가기 전에 내 능력을 검증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부족한 면이 발견된다면 미련 없이 취업하는 것이다. .. 그는 법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형벌의 이유를 설명하는 문제’라는 것이 삼촌의 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불과 열여섯 살의 나이에 범죄의 형벌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에 대한 명쾌한 내용의 책을 써보겠다고 결심했다. … 나는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법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저서를 탐독했다. 내가 사회학자들의 주장을 처음 접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었고 오랫동안 지워지지도 않았다. 253
+ 내가 주목했던 것은 나이다. 열여섯 살의 나이에 ‘대학에 진학해 학문의 길을 가기 전에 내 능력을 검증해봐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난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연구와 공부에의 자유도만 주어지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지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말이다. 모두가 수능을 위해 달려가는 지금과 같은 모습 말고 말이다. 그런 과목들을 가르치는 사람도 왜 가르치는지 모르고, 배우는 사람도 왜 배우는지 모르는 지금 이런 상황보단 훨씬 더 나은 상황이 아닐까? 암튼 피터드러커가 당시 또래보다 다소 조숙한 건 사실이겠지만, 대단하다고 느꼈다. 난 뭐했누?
- 일단 백작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도저히 그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호리병의 마개가 펑 하고 열리면서 숨어 있던 남자가 튀어나온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자신이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심지어는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삶이 아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세대와 잃어버린 꿈에 대한 이야기였다. 257
+ 비유가 좋았다. 호리병의 마개가 펑 하고 열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 “우리가 실패한게 아니야. 사회주의가 실패했지. 우리가 의지했던 유럽의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진심으로 전쟁에 반대했어. … 그들이 총파업 시도했더라도 결국 아무런 효과가 없었을 거야. 평화와 형제애를 위해 거대한 힘을 발휘해야 할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은 애국이라는 불꽃 속에 기름이라도 부은 것처럼 유럽 전역에 격렬하게 타올랐지.” … 하지만 진정으로 전쟁을 원했던 사람은 바로 위대한 사회주의 대중이었어. 그들은 사회주의를 완전히 때려치웠지. 264
+ "그 시대 리더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대중들이 전쟁을 원했다." 라는 의견이다. 나도 의견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왜냐?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역사에 대해서 내가 너무 무지하단 생각을 했다. 피터드러커는 그 시대를 겪어보고, 바라보면서,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을 것인데, 나는 그 과거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한다. 과거를 모르면 미래도 알지 못함에도 말이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활한 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 독재와 오래된 구호 뒤에 숨어 있는 노골적인 권력투쟁에 불과하다. 만약 유럽의 지도층이 전멸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이 달라졌는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날 제1차 세계대전이 얼마나 심각하게 유럽의 지도층을 제거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 나는 20대 초반에 커다란 신문사의 편집장이 됐는데, 내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순히 내 앞의 세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70
+ 위의 글을 우리나라에 대입해보자. 우리나라엔 6.25가 있었다. 그 당시 정말 많은 희생자가 있었고, 그 이후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경제를 발전시키게 된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세대가 그 기회를 잡았다. 실제로 그 전 세대는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 별 조언을 안 했다고 한다. 시대가 워낙 급변하고 있었기도 했고, 윗세대는 아랫 세대에게 ‘우리가 아는 게 뭐 있다고’라고 말하기에 바빴을 것이다. 젊은 아버지 세대에 기회를 열어 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이미 성취를 이뤘다. 한번도 성공 해 본적 없는 사람보다, 성공을 맛 본 사람이 더 무섭다. 왜냐면, 성공은 누군가를 판단하는 근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들은 ‘니가 뭘 안다고’ 라고 말하는 세대가 되었다. (우리 아버진 다행히 그렇진 않지만) 그 세대에 눌린 세대가 지금의 20-30대다. 우리 세대의 가장 큰 불안은, ‘우리 아버지들의 기대’를 저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아닐까. 나는 아버지들처럼 살아가지 못할꺼란 두려움. 하지만 현실은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 나도 그 사이에 낀 세대지만, 우리 나이 또래는 참 불쌍하다.
- “자신이 오스트리아 프리메이슨 수장이란 사실을 네 아버지가 말해 줬는지 모르겠구나.”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스스로 밝혔던 것은 아니다. 274
+ 예전에 나는 음모론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더 안다는 것, 그것 자체가 나에게 동기를 주었다.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봤던 시절도 있었고. ㅎㅎ 그 당시 <그림자 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음모 관련 서적을 봤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진 않지만. 헌데 피터드러커의 아버지가 프리메이슨의 수장이라니. 그리고 그것을 본인도 알고 있었다니. 놀라운 사실이다. 그렇다면 피터드러커는 자신은 프리메이슨이 아니란 보장이 있을까? 모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도 대박.
2부. 명멸하는 시대의 사람들
1. 폴라니가_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 그 전 해에 대합입학시험의 일환으로 ‘파나마 운하가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주제로 해서 쓴 논문이 바로 몇 주 전 독일의 한 경제지에 실렸던 것이다. … 처음으로 내 글이 활자화된 것을 보는 짜릿함에다 내가 오랫동안 읽어온 글을 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기쁨이 더해졌다. 그것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280
+ 내 글이 활자화된 것을 보는 짜릿함, 그리고 그 글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기쁨. 나도 맛보고 싶은 선물이다.
- 네 사람 모두 나를 쳐다보며 합창이라도 하듯이 동시에 말했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군요. 월급을 자신을 위해 쓰다니! 우리는 그런 소린 생전 처음 들어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요.”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카를의 아내인 일로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논리적인 사람들이죠. 빈은 헝가리 피난민들로 넘쳐나고 있어요. …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지만 카를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러니 카를의 월급은 다른 헝가리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우리가 나가서 필요한 돈을 벌어오는 것이 논리적인 일이죠.” 286
+ 이 부분을 읽으면서 빵 터졌다. 그리고 존경심이 생겼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가족이었다. 명문가라고 볼 수 있을 듯. 가문의 의지, 그리고 그것을 각자 실현하는 모습이 나에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 책 전반에 걸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폴라니가’였기에.
- 그들은 19세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자유를 추구하되 부르주아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번영을 이루되 경제에 종속되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하되 마르크스 주의의 집산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추구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다섯 형제는 각자 독자적인 길을 갔지만 결국 똑같은 목표를 추구했다. … 폴라니 가는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가장 성공한, 그러나 자신들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가장 실패한 가족이었다. 그들은 또 가장 생기 있고 호기심과 활력이 충만한 가족이었다. 286
+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한, 그러나 자신의 기준으로 실패한 인생. 정말 멋진 표현이다. 그들의 기준은 매우 높았다. 나도 이런 사회를 꿈꾼다. + 능력에 따라 벌고, 필요에 따라 쓰는 것. 그것이 가족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맑스가 추구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사회를 ‘인디언의 삶’에서 찾는다. 작년에 토머스 무어의 <유토피아>를 봤는데, 그 책도 미국 인디언의 삶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어서 본 책이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인데, 그 책을 보면서 내가 꿈꾸는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 본 계기도 만들었다. 그런데 칼 폴라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나보다. 그도 나처럼 경제와 공동체를 조화시켰던 사례를 찾으려고 했고, 다양한 사회를 발견했다고 들었다.
- <위대한 변환>에서 폴라니는 산업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려고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영국 사회와 경제를 바꾼 것은 기계가 아니었다. … 카를에게 <위대한 변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경제와 그가 개발한 사회의 이론적인 통합 모델이었다. 시장만이 유일한 경제 시스템이 아니다. 또한 가장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경제와 공동체를 조화시키면서 경제적 성장과 개인적 자유를 허용하는 대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 그는 초기 경제학에 대한 이해와 원시적인 경제제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문화인류학과 경제선사학에서 카를 폴라니는 권위자가 됐다. 305
+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엄청 흥미로웠다. 왜냐면 나 역시 <위대한 변환> (우리나라에선 위대한 전환으로 변역되어 있다)를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두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중간에 ‘아 어디서 많이 듣던 책인다’하면서 나의 책 리스트를 검색했더니 나왔다. 나 역시 사회적 경제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분야 대가인 칼 폴라니와 피터드러커가 교류했단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그 폭넓은 지적교류가 참 부러웠다. 그리고 내가 자주 가는 건물에 <칼폴라니 사회경제 연구소>도 있는 것을 봤는데, 그 협동조합에서 가입해볼까. 그런 생각도 했다. 기사를 좀 더 찾아보았는데, 칼 폴라니의 딸이 얼마 전에 한국에 와서 강연도 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 가문의 의지를 이어지고 있구나. 정말 대단한 명문가다. 나도 이런 명문가를 만들고 싶다. 그런 생각도 하게 한 멋진 가족이었다.
- 재고의 여지도 없이 내가 아는 가장 특이하며 가장 재능이 뛰어난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삶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품었던 이상과 실패 때문이었다. 309
+ 나도 동의한다.
2. 크레머_키신저를 만든 외교정치 고문
- 크레머는 ‘추한 독일인’을 증오하고 ‘선한 독일인’을 존경했지만, ‘선한 독일인’이 ‘추한 독일인’에게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322
+ 선한 의도가 꼭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전에 선생님이 논어와 군주론을 다 읽어야 한다는 말. 그 말이 생각났다. 우린 선하기위해 노력해야 하고, 또 승리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나에겐 후자에 대한 배움이 더 필요하다. 과정 보다는 결과!
- 우리는 직관적으로 서로가 추구하는 답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똑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것도 금세 할게 됐다. … 우리는 서로를 이용해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자신에게 입장을 분명히 하게끔 만들었다. 331
+ 서로가 추구하는 답이 다르되,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만날 때 얼마나 기쁠까. 진짜 토론다운 토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피터드러커와 크레머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 얼마나 기뻤을까.
- 역사서적을 읽어갈수록 나는 천재적인 외무장관이 나라에 큰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프랑스는 리슐리외를 극복하지 못했다. … 디즈레일리가 예측했던 대로 천재적인 외무장관의 빈자리는 언제나 ‘해병 대위’나 서기장이 물려받게 되기 때문이다. … 예술이나 과학과는 달리 공적인 일에서는 개인적인 성취 외에도 연속성이 필요하다. 공적인 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위대함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대한 사람은 자기 뒤에 공백상태를 남긴다. 338
- 스스로 힘을 갖고 있으며 뒤에 힘을 남겨놓는 지도자, 즉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자 진짜 ‘지도자’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며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339
+ 짐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도 나오는 내용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이기도 하고. 단계 4의 리더는 천재적 카리스마로 자신의 시기에 엄청난 성취를 올리지만, 그 이후에 조직은 서서히 침몰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단계 5의 리더다. 그들은 스스로 힘을 갖고 있지만 그리 두드러지진 않는다. 그들의 진짜 힘은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 증명된다. 그들은 자신의 위대함을 ‘시스템과 구조’에 바친다. 자기 뒤에 공백을 남기지 않는다. 자기 뒤에 성장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사라진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손아귀에 모든 것을 집중시키지 않는 권한위임의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리더상이 여기에 있다.
3. 헨슈와 셰퍼_나치즘이 불러온 개인의 비극
- 나는 그 신문사에서 빠르게 승진해서 2년 후에는 외교와 정치 뉴스를 담당하는 선임편집자로 임명됐다. … 나는 일주일에 서너 개씩 사설을 썼고 … 1931년에는 국제법과 공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그리고 비록 20대 초였지만, 대학에서 ‘강사’임명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 게다가 나는 저술활동도 하고 있었다. … 그 논문들은 유명한 경제학 계간기에 실렸으며, 박사논문은 책으로 출판됐다. 346
+ 아무리 젊은 이들에게 기회를 많이 열어준 시대였다곤 해도, 어떻게 20대 초반에 강사, 작가, 편집자를 맡아서 할 수 있었을까?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번째, 그는 정말 대단하다. 어느 정도 특별한 사람이란 것을 전제하고 기죽지 말아야 한다. 두번째, 하지만 기죽는게 사실이다. 지금의 우리 시대의 교육은 무엇을 위함인가? 19세기의 교육보다 20세기의 교육이 훨씬 더 퇴보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인가? 20대 초반에 이 정도의 역량을 가진 사람을 배출하고 있는가? 이제는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고작 학점, 토익, 자격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사람들만 수두룩한 세상이 되었다. 막상 그들에게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편집을 하라고 한다면 그 누가 해낼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해, 우린 아무도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린 도대체 왜 공부했던 것일까?
- 대학 강사가 되면 비록 무보수이지만 자동적으로 독일 시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히틀러의 국민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그 책은 내 입장을 분명히 해주었다.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지라도, 나 자신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해야 했던 것이다. 349
+ 피터드러커도 양심을 따라 움직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았다.
-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 된다. …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퍼처럼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 … 권력을 탐한 헨슈의 죄와 자기과신과 오만의 죄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쁜 것일까를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죄는 아마도 이 두 가지 죄가 아닐 것이다. 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한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 364
+ 마지막 이 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욕망도, 무지도 악덕이다. 하지만 진짜 악덕은 무관심이 아닐까. 나도 동의한다. 내 양심을 따르지 않을 때 모든 악덕이 출현한다고 나는 믿는다.
4. 브레일스포드_영국의 마지막 반체제자
- 노엘 브레일스포드는 절대로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양심이었다. … 그는 영국의 마지막 ‘반대자’였으며, 그 때문에 중요한 사람이 됐다.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그가 무엇을 대표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367
+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대표하는가? 그것이 브랜딩이 아닐까. 그는 무엇을 대표하는 사람인가? 라고 했을 때 사람들의 머릿 속에 ‘탁’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브랜딩을 잘 한 것이다. "나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이다.
- 브레일스포드의 힘은 언제나 그가 양심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것이 언제나 반대자의 힘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일을 원상복귀 시키는 것 역시 반대자의 힘이라는 것을 브레일스포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그는 양심을 환경에 맞추었다. 390
+ 진짜 힘. 그건 양심을 따르되 그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멋진 문장이다. 결과를 생각하는 양심은 더 이상 양심이 아니다. 양심이 양심으로써 작동하기 위해선 ‘결과’를 지워야 한다. 그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될지 안 될지를 고민해선 안 된다.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는가?'를 고민해서도 안 된다. 그저 물어봐야 하는 질문은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 찰스 디킨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강하고 어두운 소설인 <어려운 시절>의 주인공이자 반대자인 스티븐 블랙풀은 자신의 양심이 권력과 야합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의심받고 추방당해 파멸에 이른다. 그의 죽음조차도 실패였다. 그가 죽었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런 동요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디킨스의 19세기형 반대자는 순교자조차 아니었다. 그는 단지 사상자였을 뿐이다. 396
+ 순수한 양심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그 양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힘’이다. 힘이 없는 양심은 그것이 가져오는 변화도 적다. 양심과 힘, 둘 다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던 논어와 군주론이 그것을 대표한다. 공자의 양심과 마키아벨리의 힘. 그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지혜를 발휘하는 자. 그 사람이 진정한 ‘현인’이 아닐까.
5. 브리트베르크_19세기의 탁월한 개인금융업자
- “그게 얼마간이든 매출과 이익을 함께 올리겠다고 약속하는 경영진은 사기꾼이거나 멍청한 인간들이야. 대개는 둘 다이기 십상이지.” 411
+ ㅋㅋㅋ 맞는 말이다.
- “재미있군. 루이스를 불러다가 그 제안서를 읽혀보게.” “하지만 사장님, 루이스는 부기부서에서도 가장 어린 직원 아닙니까? 그리고 며칠 전에 보셨다시피 좀 멍청해요.” “바로 그거야. 그가 자네의 제안서를 이해하면 그대로 할 걸세. 그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자네 제안서가 너무 복잡하다는 뜻이야. 어떤 일이든 반드시 멍청한 사람이 다룰 수 있어야 해. 결국 일은 늘 멍청한 사람들이 하게 마련이거든.” 412
+ 나도 그렇다. 나도 너무 복잡하다. 좀 더 단순하게, 명쾌하게 생각을 펼쳐야 하는데 너무 너무 부족하다.
- “내가 보기에 자네는 너무 많은 시간을 책하고만 씨름하는 것 같다. 책을 통해 경제전문가가 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지. 하지만 은행업이란 사람을 다루는 일이야. 앞으로는 사람을 관찰해 보게. 내가 관찰해 볼 만한 몇 사람을 만나게 해주지.” 418
+ 은행업이란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옛날에 ‘상도’라는 책에서도 거상 임상옥은 말했다. ‘사람을 남기는 것이 장사’라고. 과거에 나에 비해서 지금의 내가 책만큼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 “소매에는 오직 두 가지 원칙만 있네. 첫 번째 원칙은 ‘2센트 에누리에 안 넘어오는 고객은 없다’이고, 두 번째 원칙은 ‘진열해 놓지 못한 상품은 팔 수 없다’는 거지. 나머지는 모두 노력이다.” “어리적은 고객은 없다. … 만일 고객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 같다면, 밖으로 나가 고객의 입장에서 상점과 상품을 살펴보는 거야. 그러면 그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 단지 그들의 현실이 상인의 현실과 다를 뿐 인 거야.”
+ 고객은 언제나 옳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그들에게 답을 구하라.
- <파이드로스> <크리톤> 그 두 개의 대화편은 우리에게 논리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웅변’이 아니라 잡담이며, 경험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라고 가르친다. 이제 우리는 다시 찰리 켈스타트가 “아니면 어떻게 내가 마음의 눈으로 문제를 볼 수 있었겠소?”라고 말했을 때 의미했던 것을 알아야 한다.
6. 로베르트와 파르크하슨_사업가에게 여성이 미친 영향
- 그는 우울하고 감정적이었으며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도 듣지 못한 채 몇 시간씩 잠자코 앉아 있다가 갑자기 열정적으로 연설을 하거나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놓곤 했다. 그는 통찰력이 있었다. 자신의 결론에 대해서 설명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일반적으로 그의 통찰력은 놀라울 정도로 옳았다. 452
+ 나도 이렇게 통찰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3부. 순수의 절정기
1. 헨리 루스_잡지왕국의 제왕
- 좋은 편집자는 관대하지 않다. 그들은 동료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들이 ‘신문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든다. 위대한 편집자는 인정사정 없는 지독한 독재자다. 471
- 나는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책을 내는 것은 공격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게다가 내 책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있었다. 474
+ 글을 쓰는 것을 포함해,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은 ‘공격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맞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그 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없이는
- 루스는 타임, 라이프, 포춘에 능력 있는 사람들을 무척 많이 고용했다. 그러나 일단 직원이 되고 나면 대부분 일생 동안, 심지어는 회사를 떠나고 나서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돈을 많이 주고 호사를 시킨 루스의 친절이 그들을 망쳐버린 것이다. 과연 내게 그런 것을 버틸 만큼 꿋꿋함과 성숙함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당시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475
- 인간적인 분위기를 흐린 데 큰 몫을 한 것은 루스가 직원들에게 직원들에게 돈을 너무 많이 주었다는 점도 있다. … 그 결과는 자신들이 쓸모없는 껍데기가 되어가고 있음을 아주 잘 아는 사람들조차도 떠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488
+ 요즘 취준생에게 기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하면, ‘연봉’일 것이다. 좋은 공기업과 대기업은 모두 ‘높은 연봉’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 양면성도 봐야 한다. 높은 연봉의 반대편에는 ‘절실함’이 존재한다. 돈을 많이 받을 수록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한 절실함은 사라지게 되어있다. 인간은 안락함을 추구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대기업에 가지 않게 된 것이 지금에 와서는 정말 감사하다. 나에겐 애초에 그런 것을 버틸 만큼의 성숙함은 없었다. 그나마 내가 지난 5년 동안 다양한 생각과 성찰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배고팠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배고프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굶어죽지 않았으면 됐다. 버티면 된다. 시간은 나의 편이라고 나는 믿는다.
- 그가 미국인의 세상 인식이 미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가 새로운 인식을 창조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새로운 인식이 널리 퍼지게 했다. 503
+ 새로운 인식을 창조하는 것은 지식인의 역할이고, 인식을 퍼지게 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다. 그래서 좋은 지식인과 좋은 언론의 결합은 변화를 창조한다. 우린 그 반대의 예를 더 많이 보지만.
2. 풀러와 맥루안_테크놀라지의 위대한 예언자
- 러셀 월리스는 “의도적으로 비유기적 진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인간 뿐이다.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맥루한에게 기술이란 인간의 자기완성이며, 인간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완성해가는 수단이다. … 인간은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다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509
+ 인간은 도구로 다른 인간이 된다. 맞다. 우리에게 주어진 스마트폰이 우리를 변화시켰다. 나만 해도 그렇다. 20대 초반에 휴대폰을 사용할 때 나의 뇌와 지금의 뇌가 같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 기술이 형이상학과 문화, 미학, 인류학과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사실상 기술이 인류학의 핵심이며 인간의 자기인식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세대에게 이 두 예언자는 새로운 현실을 희미하게 보여준 사람이었다. 510
- 조립 라인은 본질적으로 단순히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일의 본질에 대한 이론적이고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 다시 말해 기술은 인문주의자와 과학기술자 모두가 갖고 있던 전통적인 생각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기술은 생산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정체성을 정의하거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정의했다. 520
- ‘미디어’와 ‘메시지’의 상호작용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한 맥루안의 말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양자 모두 서로를 결정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형성한다. … 맥루안의 가장 중요한 통찰력은 “미디어는 메시지다”가 아니라, 기술이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확장’이라고 본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주인’이 아니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킨 바로 그만큼 인간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524
+ 미디어와 메시지는 서로를 형성한다. 과거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책에서 니체였나, 누군가의 사례에서 보았다. 펜으로 글을 쓰다가 어느 날부터 타자기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문체가 바뀌었다고 한다. 아마 예전보다 더 단호한 문제로 바뀌었다고 했던거 같은데, 꽤 놀라운 사례였다. 미디어와 메시지는 밀접하다. 나중에 미디어에 대한 책을 좀 봐야겠단 생각도 했다. 나도 무의식적으로 폰, 노트북을 내 몸처럼 쓰고 있기에.
- 버키 풀러와 마셀 맥루안은 내게 한 가지 목표에 정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제로 보여준 사람들이다.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다. 나를 포함해 나머지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재미를 즐기기는 하겠지만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다. … 버키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도 없이 황무지에서 40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비전에 헌신했다. 526
+ 한 가지 목표에 정진하는 것.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위대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남은 인생에선 좀 더 포커싱했으면 한다.
3. 앨프레드 슬론_절대적 권위로 GM을 이끈 전문경영자
- 나는 베닝턴 대학에서 정치이론과 미국 정부, 미국 역사와 경제역사, 철학, 그리고 종교 등을 망라한 어떤 분야든 내가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주제에 관련해서는 뭐든지 마음대로 가르칠 수 있었다. … 나는 관료체제의 부속품 역할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런 업무에 능숙하지도 않았던 나는 정부관료로서 할 수 있는 것보다는 컨설턴트로서 훨씬 더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531
+ 피터드러커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연구하는 주제도 넓었다. 여러모로 참 부러운 사람이다.
- 드레이스타트는 디자인을 위해 돈을 썼고, 그보다 더 많은 돈을 공구에 투자했으며, 품질관리와 애프터서비스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했다. 557
- 디트로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노동력이란 늙어서 더 이상 일거리를 찾을 수 없는 매춘부들뿐이었다. 드레이스타트는 그들 2,000명을 고용해서 주위를 아연실색케 했다. “여자 포주들도 고용하기로 했죠. 그들은 여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알고 있거든요.” …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여성 근로자들을 내보내야 할 시기가 되자 많은 여자들이 자살을 시도했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562
+ 희망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양면도 봐야 한다. 희망 뒤에는 절망이 숨어 있다. 큰 희망 뒤에는 큰 절망이.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닐까? 참 어렵다. 지혜라는 것은.
- “나는 내 머리를 믿기보다는 직접 찾아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처음에 그는 대대적인 직원 설문조사를 원했지만 겨우 5%에 불과한 응답만 예상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걸로 충분치 못해요.” 그래서 그와 그의 참모들은 글짓기 경연대회를 개최하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나의 직업, 그리고 그것이 좋은 이유’에 대한 글짓기 대회는 많은 경품들을 준비하고 외부에서 심사위원도 초빙했다. … 그 대회는 윌슨과 나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 노동에 대한 외부적인 보상들, 예를 들어 임금이나 승진 등은 허츠버그가 명명했던 ‘위생 요인’이었다. 이 요인들에 대한 불만은 의욕 저하나 동기를 급격히 감소시키게 되지만 일부 사람에게는 그 요인에 대한 만족하는 것이 특별히 더 중요하거나 동기를 유발시키는 작용을 하지는 않난다. 성취, 기여, 책임 등이 강력한 의욕을 주고 동기를 유발시키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 그들은 자기들이 근무하는 회사와 그 회사의 경연진, 그리고 상사를 존경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572
+ 예전에 본 <당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란 책에서 이 위생요인과 동기부여 요인이 등장했다. 위생요인은 필요조건이다. 그것이 충족되지 못할 때 우린 불행을 느낀다. 하지만 위생요인이 채워진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에는 동기부여 요인이 필요하다. 즉, 둘 다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에 워낙 위생요인에 치우쳐져 있었기 때문에 요즘들어 동기부여 요인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 절대로 자기의 후계자를 직접 임명하지 마라. 그건 결국 자신의 복사판이 될 것이며, 그런 사람들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예부터 내려오는 첫 번째 규칙입니다. 582
-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을 적소에 잘 배치시키는 것이 전부에요. 그게 회사의 역할이에요. 583
+ 좋은 사람을 뽑고, 그들을 적합한 장소에 배치시키는 것. 그리고 그냥 놔두는 것. 그것에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회사의 모습이다.
- “어떤 외과의사가 맹장을 제거할 때는 그가 맹장수술에 능해서라거나 수술 자체를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오. 그가 맹장을 제거하는 이유는 환자를 진단한 결과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에요.” 602
+ 캬. 나에게 부족한 것.
4. 그 밖의 사람들_대공황 시키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
- 대공황은 많은 중년층 남성에게는 대재앙이었고, 대부분은 그 충격에서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 하지만 나와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 즉 아직도 한참 성장할 수 있는 젊음과 자립심, 건강을 가진 세대에게 공황은 오히려 활력을 주고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시기였다. 누구나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주 확실했으니 말이다. … 다른 사람에 대한 시샘은 없었다. 어떤 사람의 성공은 결국 모두의 성공이었고, 가난이라는 공통된 적에 대한 반격이었다. 612
- 서로가 도우면서 살아가는 자세는 대공황에 대한 미국인만의 대처법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와 같은 현상이 없었고, 오히려 대공황으로 인해 의심과 무뚝뚝함, 두려움, 질시만 더 깊어졌다. … 모든 자연재해가 끝났을 때처럼, 대공황의 생존자들은 대단히 웃음이 많은 사람이 됐다.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행복했을 것이다. 621
- 대공황기의 미국이 공동체의식을 강조했기 때문에, 결국 지역적이고 편협하며 부족적인 미국인의 삶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동체는 종교적이고 인종적이며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했고,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가치관 사이에 경계선이 뚜렷하게 형성됐다. 627
+ 대공황과 지금의 저성장 시대는 또 다른 맥락이다. 그 당시에는 되려 희망이 느껴진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의 해법은 그때와는 다르다. 이젠 기대감소의 시대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게 맞는 것인지, 그 기대가 없다. 그래서 더욱 연구가 필요하다. 피터드러커가 지적한 공동체 의식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좀 더 알게 되어서 좋다.
- 자동차와 전기, 트랙터, 채면기로 인해 농장경제의 미래는 암울해졌고, 농촌지역 흑인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술은 대량생산 산업분야에 대체 일자리를 창조해 냈고, 그곳으로 숙련되지 않은 산업화 이전의 남부 흑인 소작농들이 이주해 들어갈 수 있었고, 돈을 벌 수 있었으며,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물론 노조에 가입하고 투표권이라는 정치적 권력도 누릴 수 있었다. 644
- 미국만의 독특함을 강조하다 보니 대공황 시절 미국은 가끔 어리석음과 맹목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어리석음과 맹목성에는 결국 미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반드시 미국적이어야 하며, 독특한 미국만의 명분을 가져야 한다는 몰상식한 가정이 내재되어 있다. … 또한 미국적 가치관은 감상주의와 허풍, 대중적 장광설로 흐르기 쉽고, 실제로도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다. … 하지만 미국의 가치관은 링컨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희망’이기도 했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유럽인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였던 요인이 그 미국의 가치관이었다.
+ 미국의 어리석음과 맹목성. 몇 번의 전쟁을 통해 우린 그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피터드러커라는 구경꾼은, 미국을 가장 잘 관찰한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전 세계적 주요 역사의 흐름을 몸소 겪으며 기술이 이 책은 그래서 참 의미있게 느껴진다.

피터 드러커
[리뷰]
우선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피터 드러커의 인생을 슬쩍 구경한 느낌이다. 피터 드러커는 스스로를 구경꾼이라고 칭했으나, 이번엔 내가 그의 구경꾼이었다. 책을 읽으며 그의 삶은 그 스스로 이끌어 온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을 구성한 주요 배역은 '역사적 사건'와 '사람'이다. 어쩌면 나의 삶도 그럴 것이다. 나는 1983년 2월 17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이후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급격히 경제성장을 이루는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고, 조금 철이 들었을 때 (1997년) IMF를 경험했다. 2000년에 수능을 쳤고, 2002년에 월드컵 4강을 목격했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 휘말렸고, 이후 지금까지도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내가 어쩔 수 없었던 역사적 사건들이지만,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내가 마주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는 인연이든, 우연이든 그 사람들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삶은 '나치'와 '세계대전' 그리고 '대공황'이 없다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의 삶은 그러한 엄청난 사건 앞에서도 '획일화'를 거부한데서 탄생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그는 반대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과 사건에 휘말리는 사람을 지켜보는 피터 드러커의 시선은 아주 매서울 수 밖에 없다. 획일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언제나 통찰력이 넘친다. 그리고 그가 들여다 본 것은 인간의 다양성이다. 그래서 그는 이 책에서도 자기만의 해석을 내리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선 일단 자기 자신의 해석부터 존중해야 한다. 해석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말하야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피드백에 별 영향이 없었다고 하니, 그것은 타고났다. 그랬기에 이 정도의 외부 관찰과 내면의 성찰이 잘 이루어진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좋았다. 나의 성향과도 어울리는 피터 드러커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에 언급된 모든 언급이 철저히 주관적이란 사실은 잊어선 안 된다. 이 책은 그의 역사일 뿐이다. 나의 역사는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역사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특히 근현대사에 대한 나의 이해는 너무 부족해서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리고 칼 폴라니를 비롯한 사회적 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하나 더 있다면, 나는 나의 역사를 쓰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실들과 사람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나의 해석. 지금까지의 나와 그것들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도 나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싶다. 그 시작은 쓰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를 만든 것도 어쩌면 사건과 사람이 아닐 수 있다. 그것에 대한 그의 해석과 판단 그리고 글. 그것이 그를 형성했다. 나도 구경꾼으로 태어났다. 구경꾼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소명이다. 쓰자. 이 세계와 나의 내면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