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와 함께 한 나날
- 뜰 앞의 매화
뜰 앞에 두 그루 매화 있는데 
가을 잎이 먼저 많이 시들었구나.
골짜기의 울창한 나무들이 
어지러이 자리를 다투는 듯하네.
고고한 모습은 지키기 어려운데 
잡초들이 더더욱 기승이구나.
바람과 서리에 모두 떨어지다니 
굳센 것 연약한 것 뭐가 다른지.
저 스스로 향기로운 시절 있나니
어찌 남이 알아줄 필요 있으랴.

+ 스스로 향기로운 사람은 남이 알아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사실 그렇다. 주위에도 보면 자연스런 향이 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는 이치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인공스런 향이 난다거나, 오히려 악취가 풍기는 사람도 있다. 겉 모습은 꾸밀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나 비언어적인 행동은 결코 꾸밀 수가 없기에. 각자 사람들만의 향을 우린 맡을 수 있다. 자기답게 사는 것, 그것은 어쩌면 자기만의 향기를 뿜는 것과 다를바 없는 것 같다. 

나의 일상, 나의 시
- 저물녁 거닐며
자꾸 잊어 어지러이 글을 뽑아서
흩었다가 도로 정리하자니
해가 홀연 서쪽으로 기울고 
강 빛이 숲 그림자를 흔드네.
지팡이 짚고 뜨락에 내려가 
고개 들어 구름산을 바라보니
밥 짓는 연기 솔솔 일고
들판은 으스스 싸늘하누나.
농가에 가을걷이 가까워져
방앗간 우물터에 기쁜 빛 도네.
갈가마귀 돌아오니 철을 잘 알고
해오라기 서 있느니 훤칠한 모습.
이내 생애 나 홀로 뭘 했는지
숙원이 막힌 지 하마 오래네.
이 회포 얘기할 이 없어서
고요한 밤 거문거를 타노라.

+ 이 시를 보는데 참 느낌이 좋았다. 저물녁, 이황의 일상이 내 눈에 보일 것 같은 느낌. 아, 이러한 섬세한 관찰력과 표현력을 배우고 싶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상을 보니
- 꽃이 화려한들
꽃치고 열흘 가는 꽃이 없고
번화한 꽃일수록 열매 적은 법
요즘은 화려함을 숭상하지만 
근본이 없는데 어디다 쓸꼬. 

+ 번화한 꽃일수록 열매가 적다. 이 표현은 지금 이 시대에 참 적절한 표현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에 사람들은 돈을 쓰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들이는 노력은 적다. 하지만 이황은 단호하게 말한다. 근본이 없다면 쓸 곳이 없다. 앞으로 더 그럴 것이다. 스스로에게 끈질기게 묻고, 답하고, 공부하고, 행하고,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의 뿌리를 더 깊게 박아야 한다. 열매를 맺는 방법은 그것 이외에는 없다. 

- 독서
독서는 산놀이와 같다고들 하는데
이제 보니 산놀이가 독서와 같네.
낮은 데서부터 공력을 기울여야 하니
터득을 하려면 거기를 거쳐야지.
구름 이는 것 봐야 오묘한 이치 알고
근원에 당도해야 시초를 깨닫지.
꼭대기 높이 오르도록 그대들 힘쓰오
노쇠하여 포기한 이내 몸이 부끄러워라. 

+ 퇴계가 스스로를 이렇게 말하다니.  내가 부끄럽다. 

참된 나에 이르는 길
- 자만심에 대한 경계
예로부터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 많았지요. 사람의 마음은 본래 신령하고 총명합니다. ... 그렇지만 이때 그 사람이 별안간 으쓱해져서 ‘나는 이미 알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모르는 군’이라고 자만해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대단한 사람인 양 여기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부류로 자처하여,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줄 모르게 되고, 훌륭한 벗과 더불어 공부에 힘쓸 줄 모르게 되지요. … 이런 사람이 바로 명도 선생이 말씀하신 바 “경솔하게 자기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다가 끝내 아무런 성과도 없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1-102
+ 이 자만심에 대한 경계는 나에게도 의미가 깊다. 책을 좀 본다는 사람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이 자만심이 아닌가 한다. 왜냐면,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으론 분명 주위 사람들보다 내가 더 뛰어나거든. 그리고 내가 더 많이 알기에 우월하다고 느끼거든.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라, 그런 자만심을 쉽게 무너뜨린다. 삶은 ‘할 줄 알아야 진짜 아는 것’이라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고자 노력한다. 분명,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진짜 아는 것이 아니었음을 발견하는 것은 참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그 길만이 자만심을 넘어 진짜 공부에 접어드는 유일한 길이다. 

- 자기 잘못을 고치는 용기
진정한 굳셈과 진정한 용기란, 강력하게 자기주장을 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허물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상대방의 올바른 말을 들으면 그 즉시 따르는 데 있습니다. 103
+ 상대방의 말을 따르기 위해선 앞서 말했던 자만심이란 자기기만을 뛰어 넘어야 할 것이다. 

- 지나친 자책
옛날 사람들은 비록 잘못을 뉘우치고 자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각박하거나 매정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 만약 그대가 이런 병통을 인식하고 없애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잡념을 일체 쓸어 버리고, 날마다 다만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화평하게 하여 글을 읽고 일상사를 도리에 맞게 하며 오랫동안 독실하게 자기 마음을 잘 기르고 가꾸어야 합니다. 105
+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화평하게 하고, 글을 읽고, 일상을 도리에 맞게 하는 것. 이렇게 어려운 것을 이렇게 쉽게 표현하니 참으로 당황스럽다. 이 쉬운 표현을 일상에서도 쉽게 구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꼬. 

- 지나침의 평폐
대저 그대는 선을 추구하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나친 게 문제이며, 학문을 즐기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조급한 게 문제이며, 예를 좋아하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편향된 게 문제입니다. … 이 세 가지 병통은 그대의 큰 근심거리입니다. 지금 너무 조급하게 학문을 이루려고 하는 그대의 계획도 여기에서 말미암지요. 106
+ 이 책을 보니, 퇴계는 언제나 지나침을 경계한다. 이것은 연지원 팀장님의 멘토링과도 일치한다. 그러고 보니, 도올 선생의 ‘중용 시리즈’ 영상을 보려고 모아둔 것이 있는데, 아직도 못 보고 있었구나. 올해 중엔 다 봐야 겠다. 중용은 중요하다. ㅋㅋ 

- 일상생활 속에 진리가 있다. 
중용이란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으로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치라고 합니다. 대저 이러한 진리는 전적으로 일상생활 속에 있습니다. … 그런데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진리를 찾을 줄은 모르고 곧장 괴상하고 특이한 데로 발을 들여놓지요. 그런 사람들은 차근차근 진리로 들어갈 가망성이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특이한 것을 들추어내고 괴이한 행동을 하는 쪽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지요. 심히 개탄스러운 노릇입니다.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비 중에 세속을 따르다가 잘못된 습성에 물들거나 확고한 의지가 없어 평범한 일상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예외 없이 학문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반면에 학문을 하려고 하는 이들은 대개 모두가 세속을 따른 것을 부끄럽게 여겨 스스로 뽐내면서 세속을 미워하고 남다르게 하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 그 병폐를 보면 도리어 학문을 모르는 사람보다 심하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08
+ 지나침의 병폐가 이어진다. 지나치게 일상에 안주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일상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면 성숙해지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반대의 사례에 더 눈이 간다. 학문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지나칠 경우 문제가 된다.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주위에 비슷한 사람들을 꽤 보다 보니 정말 공감된다. 나도 그랬고. 그렇게 자기자신을 높이고, 세속을 미워하고, 남다른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또 그들끼리 어울린다. 나는 그 경계에 서고 싶었다. 일상에서도, 공부에서도, 일에서도 모두 균형을 추구하고 싶었다. 나에겐 양쪽 다 아쉬움이 남아서 일수도. 그리고 퇴계도 그 사실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올해 들어서, 그나마 이러한 균형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1월 수업 떄 팀장님의 말이 많은 힘이 된것 같다. 중요한 것은 같이 쫓는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격해야 한다.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그 사이의 균형감각을 찾아가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 휴식의 중요성
주자의 시에 “깊은 근원은 바로 한가한 가운데서 터득되고, 신묘한 작용은 원래 즐거운 곳에서 생겨난다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도 이런 뜻입니다. 대저 한 가한 가운데서 터득한 깊은 근원과 즐거운 곳에서 생겨난 신묘한 작용이, 어찌 그 이전에 고생해 가면서 꾸준히 쌓아 올린 공부가 없이 하루아침에 거저 터득되고 거저 생기겠습니까? 오랫동안 공부를 하여 두껍게 쌓아 올렸기 때문에, 터득한 것과 생겨난 것이 깊고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그대의 편지에는, 너무 발리 앞서 나가다가 이내 빨리 물러날 조짐이 있는 듯합니다. 비유하자면 깊은 우물을 파는데, 이제 겨우 몇 번 삽질을 했으면서 맑은 물이 펑펑 솟아나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실망해서, 벌써 몸이 피곤하다는 둥, 힘이 다해 지쳤다는 등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115
+ 아이고 부끄러워라. 이제 겨우 삽질 했으면서 피곤하다는 둥, 다 비슷할 것 같다는 둥, 힘들다는 둥, 그런 핑계를 대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진리에 닿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꾸준히 쌓아 올린 공부가 없인 아무런 열매도 없을 것이리라. 

- 한 수를 잘못 두면
그대는 바둑 두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까? 한 수를 잘못 두면 판 전체를 망치지 않던가요? …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기묘년에 앞장서서 개혁을 주장한 선비는 학문을 연마하다 아직 완성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대단한 명성을 얻고 나서는 대번에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겠노라고 자부했지요. 임금님도 그가 명성이 높은 것을 좋게 생각하시어, 그를 두텁게 신임하셨고요. 그러니 이것이 바둑으로 치면 수를 잘못 두어 일을 망치는 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이 부분 상당히 중요하다. 어쩌면 조광조에서 비롯된 이 사건은 퇴계 생각의 흐름을 형성한 중요한 사건이었고, 이 문제의식은 안창호 선생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마지막 해설 부분에 좀 더 자세히 설명 되지만, 퇴계는 서원창설운동을 벌린다. 안창호 선생도 그러했다. 급작스런 방식(무력 및 암살)으로 독립을 이루려는 사람들과는 달리, 안창호는 민족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흥사단을 만들었다. 나도 사실 이러한 맥락을 선호한다. 그래서 학습조직이나 공동체에 관심이 많은 것일수도 있다. 물론 다 중요하다. 급진적인 사람도 필요하고, 멀리 보고 이러한 토대를 만들려는 사람도 필요하겠지. 나의 성향은 후자에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 배움을 권함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준마가 달리는 것과 같으니, 서른이 되어도 뜻이 확고해지지 않으면 끝이다. 천지와 짝하여 사람이 되었으니 타고난 성품이 요순과 같지만, 자포자기하면 도리어 짐승과 같게 된다. … 그대들은 지금 몇 살이고, 배움은 이제 어느 정도인가? 옛날 사람들은 책상자를 지고 천릿길을 마다않고 스승을 찾아 도를 물었는데, 하물며 가까이에 스승이 있어서 쉽게 물을 수 있음에랴!

글을 골똘히 읽지 않으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얻는 게 없고, 생각이 지극하지 못하면 이치를 드러낼 길이 없으며, 부지런히 글을 짓지 않으면 붓이 무뎌지고, 붓이 무뎌지면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한다. 골똘히 읽고 많이 쓰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 노력해야만 얻는 것이 있을 것이요. 게을러서는 이우러지는 일이 없을 것이니, 힘쓰고 또 힘쓸지니라. 126
+ 글을 읽고, 생각을 깊이 하고, 글을 쓰는 것. 그것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 배움이 그것이다. 힘쓰고 또 힘쓰자. 

- 먼저 폭넓게 배우고
다만 염려되는 것은, 공부를 막 시작한 데서 진리의 일부분만 겨우 엿보았으면서, 간단하게 빨리 터득했다고 스스로 좋아하여 자부하고 자만한 나머지, 다양한 글을 폭넓게 배우는 일에 다시는 뜻을 두지 않다가, 결국 잘못된 학문에 빠졌으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크게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다양한 글을 폭넓게 배우는 일, 나는 오히려 그 함정에 빠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한 가지 주제로 깊이 파기 보단 다양한 관심사로 이런 저런 책을 보는 것을 즐긴다. 물론 그 책들을 관통하는 나름의 주제는 있지만, 너무 넓게 배워서 깊은 데 이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도 된다. 하지만 일단 전체적인 구조를 보려 하고, 한 곳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큰 장점일 것이다. 

-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
억지로 밝혀내기 어려울 때에는, 우선 이 일을 그냥 놔두고 방향을 바꾸어 다른 일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 이치는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기가 어려우며, 행하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오랫동안 노력하여 참되게 쌓는 게 더욱 어렵습니다. 
+ 지식이 아니라, 행동. 행동이 아니라, 태도. 결국 진리는 태도에 달려있다. 

- 조급한 마음의 병통 2
늘 마음이 조급해져서 항상 어딘가에 쫓기는 듯하고, 그 결과 원래는 다양한 책을 폭넓게 읽고자 했지만 정작 글에 대한 이해가 거칠고 엉성하여 무엇을 읽었는지 도로 잊어버리게 되고, 그래서 마침내 아예 책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게 되는 법입니다. 
+ 앞서 폭넓게 배우기를 좋아하다 보니 생각하는 문제점이 이런 것은 아닐까. 너무 글을 엉성하게 이해하여 읽지 않은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나에게 남아있다. 그래서 가끔 석사나 박사들처럼 뭔가 체계적으로 자신의 전문분야를 쌓아가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러한 길은 아니라, 그 부러움은 잠깐일 뿐, 결국 나는 또 나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 뭔가 횡설수설하는 느낌.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든다. 흑. ㅠ 

- 엄격하면서도 너그럽게
독서 계획은 엄격하게 세우되 뜻은 너그럽게 두어야 합니다. 독서 계획을 엄격하게 세운다는 것은 많이 읽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 말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헤아려 거기에 맞게 계획을 세운 다음, 삼가 그 계획을 준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뜻을 너그럽게 둔다는 것은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범범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조급해 하지 말고 마음을 비운 다음 요모조모 글을 음미하며 사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 학문을 하려는 젋은이에게 
진실로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것과 자신의 정서에 맞는 것은 싫증 내지 말고 늘 접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항상 심기를 순탄하게 하여, 울화가 치밀어 성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 이치를 탐구하는 것은 모름지기 일상생활의 평이하고 명백한 곳에서 나아가 이치를 꿰뚫어 보고 익숙하게 하며,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푹 젖어 들어 그 의미를 충분히 음미해야 합니다. … 오랫동안 학문을 쌓다 보면 저절로 나 자신과 진리가 혼연일치되어 이치를 터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일상에서 이치를 꿰뚫어보고, 의미를 충분히 음미하는 것. 현대 사회의 긴박한 흐름 속에선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다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고 그곳에서 나마 이렇게 깊이 있는 성찰을 하는 것. 그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생각을 한다. 나에겐 지금 매주 목요일마다 왔다 갔다 하는 6시간이 그 시간이 되어주고 있다. 그 3시간을 내려가고 올라오는 동안,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한다. 그렇게 서울 올라 올 때쯤 글을 마무리 할 때 기분이 넘 좋더라. 

산수 유람의 즐거움
- 도산에 사는 즐거움
마음 가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눈길 닿는 것마다 흥취를 느끼고, 만나는 경치마다 운치를 즐기다가 흥이 다해 집으로 돌아오면, 온 집 안이 고요하고 벽에 책이 가득하다. 책상 앞에 묵묵히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연구하고 사색하다가 이따금 마음에 이해되는 것이 있으면 너무 기뻐서 밥 먹는 것도 잊게 되며,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함께 공부하는 벗이나 제자에게 도움을 받는다. 
+ 진짜 멋진 삶이다. 이번 여행에서 이렇게 하고 싶다. 잠깐이나마 완전히 새로운 일상이 펼쳐질 것 같다. 

- 소백산에 다녀와서
어디에 거쳐하느냐에 따라 기질이 변하고, 어떻게 기르느냐에 따라 모습이 변하는 법이다. 어찌 식물이라고 사람과 다르겠는가? … 산과 언덕이 쓸쓸하여 천 년 동안 진정한 은자가 없었으니, 진정한 은자가 없었다면 진정한 감상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다만 나는 우선 내가 본 것을 차례대로 서술하고, 내가 들은 것을 기록해 둘 뿐이다.
+ 일상에서 이치를 발견하는 것이 이런 것일까?

- 단양의 산수
산수를 좋아하는 것은 그 맑고 고상한 운치를 좋아하는 것이다. 맑은 것은 제 스스로 맑고, 고상한 것은 제 스스로 고상하니,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무슨 상관이겠는가? 산수는 스스로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데 나는 안타깝게 여기고 있으니, 그렇다면 내가 어리석은 것이다. 
+ 내적 만족에 대한 글 같다. 이번 독서축제는 축제가 되지 못했다. 시간을 까먹고 있었던 내 잘못이 가장 크다. 그 전까진 시간을 잘 배분해서 했기에 즐겼고, 정말 축제였는데, 이럴 수가. 그리고 또 한번 느낀다. 나는 남들이 알아주건 아니건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하다. 내가 충분히 만족하면 그걸로 된다. 다음 번 부턴 다시 그래야겠지. 그럴 자신도 있다. 

해설
p.182
기대승과의 논쟁은 매우 유명하다.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논쟁을 하면서 이 두 학자가 보여준 사고의 깊이와 치밀함, 겸손하면서도 단호한 태도, 진지한 학문적 자세는 조선 시대 학술사를 빛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귀감이 된다. … 이런 토론과 논쟁을 거치면서 성리학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이해과 심화되고, 그에 대한 여러 학설이 이론적으로 정비되기에 이르렀다. 
+ 내가 토론을 좋아하는 이유. 찬성과 반대로 말하다 보면,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간격들이 채워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이해도 깊어지기 마련이고. 

p.184-5
‘기묘사화’는 그 당시 선비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퇴계도 이 사건을 거울 삼아, 사림파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반성하고, 앞으로 자기 자신은 학자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깊이 고민했다. … 퇴계가 번번이 벼슬을 사양하고 조정에서 물러나 한평생 학문 연구에 몰두하고 교육에 힘쓴 것은 이런 생각에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퇴계는 사림파의 한계를 자각하고, 학문을 닦고 인재를 양성하면서 후일을 기약했던 것이다. … 퇴계의 일련의 활동을 두고 학계에서는 ‘서원 창설 운동’이라고 한다. 지방의 서원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이 훗날 꾸준하게 사회에 진출함에 따라, 예전에 사림파가 표방했던 성리학적 이념이 점차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 이렇게 보면, 퇴계의 연구 활동 및 교육 활동은 그 나름의 학문적인 사회 참여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 이 단락은 너무 중요하기에, 다시 적고 싶다. 리뷰에서. 

p.188
퇴계는 당시의 저명한 학자나 자기의 제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학술적인 토론을 하거나, 학문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주제는 글 읽기, 학문하는 자세, 공부 방법을 비롯하여 몸과 마음의 수양, 일상생활의 행동과 태도 등 다양하다. 

p.189
퇴계는 진리가 유별난 것이 아니라 일생 생활 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진리관에 따르면 일상생활의 모든 일을 잘하는 것이 곧 공부이다. … 퇴계가 강조한 ‘일상생활 속의 진리’는 이렇게 ‘지식’과 ‘실천’의 상호 순환을 통해 터득되는 진리요. 인간을 전인적으로 풍부하게 형성해 주는 진리이다. … 퇴계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자체를 경계했다. … 퇴계의 균형의식은 그때그때마다의 적절함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 만큼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자기 성찰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상당한 지적 통찰려과 긴장감을 수반하는 것이다. 
+ 그렇다. 중용은 멈춰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적 균형이 가깝다. 비유를 들자면 한줄타기같은 느낌. 한 쪽으로 치우는 것이 너무 자연스런 인간이기에. 치우치지 않으려면 깨어있어야 한다. 가만이 있으면 반드시 치우친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고, 반성하고, 행동을 수정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 균형감각이 발달되리라 믿는다.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할 것이고. 

p.192
퇴계는 한편으로는 괴롭게 느껴질 정도로 철저하게 공부하는 것을 중시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휴식과 정서 함양을 중시했다. 사람이 공부에만 몰두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굳어지기 쉽다. 그래서 휴식과 정서 함양이 중요하다. 퇴계에게 휴식은 단순한 유흥과 다르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폭넓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을 전제로, 여유롭게 사색할 수 있는 마음속의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공부를 더 깊고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휴식과 정서 함양이다. 이렇게 공부와 정서 함양 내기 휴식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는다. 
+ 이 글을 보면서 떠오른 것은 팀장님의 삶이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주위에 별로 보이지 않는데, 그나마 가장 가깝게 살고 있는 롤모델이다. 

p.199
퇴계는 성실한 학자임에 동시에, 자상한 교육자요,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식의 축적’과 ‘실천’과 ‘정서 함양’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하여 ‘나’의 심성을 기르고, 그것이 ‘나’의 어떤 모습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가 다시 타인을 비롯하여 사회에 작용함으로써 풍부한 전인적 학문 세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 학자이자, 교육자이자, 시인인 퇴계. 나는 어떠한 교집합이 있을까. 나는 학자이자, 교육자이자, 커뮤니티 빌더가 되고 싶다. 나에겐 시인보단 학습을 더 잘 하는 것. 함께 학습하는 것, 그런 성향이 더 어울린다. 지식의 축적과 실천 그리고 정서 함양은 나에게도 정말 중요한 키워드다. 특히나 실천과 정서 함양을 게을리 하는 편이라, 퇴계 선생 같은 깨어있는 분의 메시지는 더 깊이 나에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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