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에 대하여 

주관적 저자조사 
이번에도 같은 저자다. 이번에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저자에 대한 글을 써볼까 살짝 고민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책 연금술사를 읽고 파울로 코엘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주인공’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조언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지난 번엔 순례자의 곁을 지키는 페트루스를 통해 드러내었다면, 이번에는 살렘의 왕, 크리스탈 가게 주인, 영국인, 낙타몰이 꾼, 연금술사, 그리고 성장하는 산티아고 자신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의 주장을 잘 드러내는 문장을 몇 가지 추려 보고 연결해 보기로 했다. 

“어쨌든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임무지.” “자네의 삶이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일세.” “마크툽.”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지금 당장 저곳으로 가지 않는 거죠?” “지금은 잘 시간이니까.” “밤새 자네를 기다렸어. 그는 첫별이 뜰 때 나타났지. 아제껏 당신을 찾아다녔노라고 말했지. 그러자 그가 납을 금으로 변하게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더군.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게 바로 그거라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직접 한번 해보라는 거야. 그게 다였어.” “그대의 용기를 시험해본 것이네. 용기야말로 만물의 언어를 찾으려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부터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그대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깨우쳐주었을 뿐이지.” “만일 내가 미리 일러주었더라면, 그대는 정녕 피라미드를 보지 못했으리니. 어땠나? 아름답지 않던가?” 

그는 말한다. 삶은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 사실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고. 하지만 우린 서둘러서도 안 된다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서도 안 된다고. 직접 해야 한다고. 용기야 말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가혹한 시험을 이겨내야, 자아의 신화를 이룰 수 있다고. 그리고 그걸 해낼 수 있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설사 보물을 발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꿈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이미 우리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파울로 코엘료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아의 신화를 살 수 있다고. 나도 살고 있으니 당신도 살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이다. 나도 그러하고 싶다. 




가슴에 남는 글

1부

- “저 녀석들은 이제 내게 너무 익숙해져서 내 일과시간을 훤히 꿰뚫고 있지.” 산티아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 자신이 양들의 일과에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니까. 20 
+ 나에게도 첫 번째 도약은 분명히 있었다. 매번 언급하는 2009년의 사건, 내 전공을 포기하면서 한번 나의 길로 도약했던 사건이 바로 그 도약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이제 나의 일과시간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심지어 나에게도 꿰뚫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 도약 역시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 “양치기들이 책을 읽지 않는 건 책보다 양들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겠죠.” 
산티아고가 대답했다. 22
+ 책보다 양들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는 말을 나는 믿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그 거대한 세상을 다 말하지 못함에도, 나의 채널은 대부분 책에 머물러 있었다. 그나마 올해 들어서 좀 더 넓은 세상을 만지고, 맛보고, 듣고, 보려고 애쓰지만, 아직은 머물러 있다. 나의 두번째 도약은 아마 ‘책’을 넘어서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 “아버지, 저는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습니다."
“… 하지만 우리 중에 떠돌아다니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양치기밖에 없어."
“그렇다면 전 양치기가 되겠어요."
아버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버지는 주머니를 하나 건네주었다. 스페인의 옛 금화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언젠가 들에서 주운 거란다. 네 이름으로 교회에 헌금할 생각이었지. 이것으로 양들을 사거라.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 맘껏 돌아다녀. 우리의 성이 가장 가치 있고, 우리 마을 여자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배울 때까지 말이다.” 아버지는 축복을 빌어주었다. 27
+ 훌륭한 아버지다. 자식이 떠난다고 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적절한 도움을 주고, 축복을 빌어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이자 용기가 아닐까? 나의 여정에 빗대어 볼 때도 가장 큰 지지는 부모님으로 부터 나왔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이 내가 하는 걸 다 이해하고, 격려하고, 도와준 것이냐? 그건 아니다. 아직도 내가 뭐 하면서 뭘 가르치면서 지내는지 명확하게 아시리라 생각친 않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내 스스로 판단한다고 했을 때 절대 막으시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나의 길을 미리 정하시거나, 간섭하시지도 않았다. 학창 시절에 공부할 때도 그랬다. 억지로 무언가를 시키시거나, 공부로 스트레스 주는 경험은 거의 없었던거 같다. 혹시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그런 유사한 기억이 거의 없는 걸 보면, 없었던 것으로 간주해도 좋을 듯 하다. 어쨌든 그것으로 다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다. 사실 옛날에는 다 그랬지만 청소년기에 나는 우리 부모님의 관심과 보살핌이 조금 부족한 편이라고 느꼈다. 20대에도 부모님과 사이가 좋았다고 말하긴 어렵고. 나이가 들고 요즘 들어서 사이는 확실히 더 좋아졌다. 관심이 적어도, 넘쳐도 모두 문제다 문제.)  

- “꿈을 풀이해달라고 온 게지. 꿈이란 곧 신의 말씀이지. 신이 이 세상의 언어로 말했다면 나는 자네의 꿈을 풀어줄 수 있어. 그러나 만약 신이 자네 영혼의 언어로 말했다면 그건 오직 자네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다네. 하지만 어느 쪽이 됐건 복채는 내야 해.” 34
+ 나의 꿈은 다른 사람에 의해 이해될 수 없다는 말. 얼마 전에 꿈에 대한 워크샵(심톡)을 준비하면서 꿈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꿈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거더라. 세상에서 오직 나밖에 모른다는 것. 그렇다. 내가 꾼 꿈을 다른 누구에게 설명을 할 순 있지만, 그 사람에게 경험시켜 줄 수는, 보여줄 수는 없는 법이다. 꿈이야 말로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꿈을 해석하는 것도 자기 자신일 수 밖에 없다. 요즘 자고 일어나서 가급적 꿈 일기를 적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아 글을 쓰면서 인식된다. 요즘 꿈에 선생님을 비롯한 와우가 자주 출현한다는 사실을 ㅋㅋ 이건 무슨 메시지일까 해석 중이라는 사실을 ㅋㅋ 

- 그는 이 마을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었다. 늘 새로운 친구들과의 새로운 만남. 하지만 그렇게 만난 친구들과 며칠씩 함께 지낼 필요는 없었다. 항상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있으면 그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사람들에겐 인생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기준들이 있기 때문이다. 39
+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있으면 그들은 서서히 우리 삶을 차지한다. 이 말은 정말 공감했던 말이다. 나의 경우 커뮤니티에 속했다가, 그곳을 떠난 경험이 몇 번 있다. 꽤 깊이 관여했던 적도 있고, 근처에 머물렀다가 아무도 모르게 쏙 빠져나온 적도 있지만, 어쨌든 몇번의 경험을 통해 인식한 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커뮤니티가 주는 명와 암이다. 우선 좋은 점은 굉장히 많다. 우선 나의 관심사에 대해 나눌 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곳에선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나의 어떤 이야기도 이 사람들은 수용해줄 수 있다. 게다가 커뮤니티에는 참 착한 사람도 많고, 능력자도 많다. 그들에게 이런 저런걸 배우면서 성장하는 즐거움은 말도 다 할 수 없다. 그 공통의 정체성과 친밀함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큰 점이 아닐까. 하지만, 빛이 강한 만큼, 그늘도 있다. 우선적으론, 하나의 프레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안에서는 ‘프레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결코 볼 수 없다. 물고기는 물을 인지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순간 뭔가 커다란 프레임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커뮤니티는 하나의 공통의 목적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것을 추구할 때는 둘 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내가 다른 생각을 하거나, 그 목적이 내 삶에서 힘을 잃게 될 때 그들 역시 내 삶에서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목격한 진짜 문제는 사실 이것이 아니라, ‘리더’에게 의존하는 모습이다. 사이비 종교처럼, 어떤 집단이든 견제할 만한 세력이 갖추어 지지 않을 때 리더는 괴물이 된다. 그건 그의 잘못도 아니다. 되려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사람을 추종하기에 바쁘고, 시간이 지나면서 비판하는 목소리는 차츰 사라지는 것. 마치 종교집단화 되는 것. 그런 것들을 많이 봤다. 그리고 가장 슬픈때가 있다. 바로, 떠날 때다.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해 버린 커뮤니티가 사라질 때, 나는 나의 한쪽 팔과 다리를 내놓은 것과 같은 상실감과 슬픔을 느꼈다. 아마 밀접한 관계를 이루던 커뮤니티에서 한번 쯤 탈퇴해 본 분이면 공감하시리라. 그 상실감은 쉽게 달래지지 않더라. 

-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게 이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
“어쨌든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임무지.” 46
+ 요즘 이 아름다운 말이 참 많이 악용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리다. 특히 현 우리나라 최고 통수권자이자 반인반신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로 유명한 박근혜는 이 말을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어디에서도 남발함으로써 그 권위를 떨어뜨렸다. 언제나 메시지보단 맥락이 더 우선하고, 더 중요하다. 미디어가 컨텐츠를 좌우하듯. 어쨌든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하는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기회로 보인다. 지나 다니는 것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기 시작하고, 만나는 사람들의 의미도 재조정된다. 그러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얻는 혜택은 바로 ‘경험치의 축적’이다. 예전에는 쌓이지 않았던 경험치가 그때서야 쌓이기 시작한다. 사람과 사건의 만남이 쌓이고,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레벨업을 한다. 그리고 한참 동안의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을 어쨌든 삶에서 이루어낼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리라. 그 간단한 자연법칙을 굳이 신화하하고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여지를 만드는 것을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렇게 자신의 내적 욕망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의 표정은 주로 밝다. 주위 사람들의 기분은 좋아진다. 그러니 더욱 꿈을 이루어내는 과정은 과속화 될 수 밖에. 이걸, 단순히 우주의 마음이라고 표현하면 뭔가 아쉽다. 

- “저 사람도 어릴 때 떠돌아다니기를 소망했지. ... 어리석게도 사람에게는 꿈꾸는 것을 실현할 능력이 있음을 알지 못한 거야.” ...
“결국, 자아의 신화보다는 남들이 팝콘 장수와 양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거지.” 49
+ 자아의 신화를 사는 것의 반댓말은 ‘자아의 신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중도는 없다고 본다. 가까워 지거나 멀어지거나. 둘 중의 하나다.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본다. 사실, 자신의 진짜 자아와 하나가 되어서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드물다. 다들 각자의 미션과 숙제를 해결하면서 가까워지고자 아둥바둥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실은, 아예 저멀리 도망가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 주된 원인은 아마 ‘내가 어떻게 보일까?’라는 질문일 것이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자아의 신화는 멀리 도망가는 것이 아닐까. 물론 차라리 강하게 도망가다가, 강한 반동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아의 신화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방하는 것이다. 마치 이런 느낌. 나는 숙제를 안 풀고 있는데 너는 왜 푸는 거야? 짜증나네. 같이 망치자. 일로와~ 내가 망가뜨려주마~ 뭐 그런 느낌? 

… “왜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위해 살려고 하기 때문일세. 그런데 지금 자네는 포기하려 하고 있어."
+ 음. 이 대목이 나에게 걸린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산티아고가 양치기를 선언한 것은 나에겐 전공을 포기했던 일로 연결된다. 나는 내 자아의 신화를 살려고 했다. 분명히. 하지만 산티아고는 이내 양치는 일에 익숙해졌고, 다시 꿈을 꾸긴 꾸지만, 이제는 그냥 머물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다. 나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번의 도약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도 이 삶이 익숙해졌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안정이 필요한 시기이긴 하다. 삶에는 각자 거쳐야 할 단계가 있는 법이기에. 물론 내가 포기하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늦지 않게 앞으로의 방향을 정해야 겠단 생각은 분명하게 하게 된다. 올해는 자아의 신화를 살기 위한 전초전이었다면, 앞으론 정말 본격적인 전쟁이다. 

- 산티아고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말고는. 양들, 양털 가게 주인의 딸, 그리고 안달루시아의 평원은 그에게 단지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가는 과정들에 불과했다. 56
+ 사실, 나를 막는 것은 없다. 내가 몇번 경험한 것이, 결단의 힘은 세다. 내가 결단하면, 기필코 이루겠다고 하면, 그것에 맞춰 세상이 재배열되는 경험을 몇번 한 적이 있다. 나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가족이 생기면서 책임감이 더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몸이 무거워진것도 맞다. 예전처럼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하는 것? 이제는 정말 쉽지 않게 되어 버렸다. 사실 그것이 나의 성장을 돕는 길이기도 할테다. 욕망 추구에서 어느 정도 의무 추구로 나를 옮겨가는 것. 그것이 나에겐 고유성을 넘어서 탁월성을 향해 가는 중요한 신호란 생각도 들기에.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할 뿐, 그것이 무엇이든 경험해 보는 건 괜찮다. 

- “… 만약 자네가 처음으로 카드 놀이를 하게 된다고 치세. 자넨 틀림없이 따게 돼. 바로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거지.”
노인이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죠?”
“자네의 삶이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일세.”57
+ 초심자의 행운! 나에게도 초심자의 행운이 있었다. 몇번 기억나지만, 가장 극적이어던 시기는 바로 2013년 7월이다. 바로 심마니스쿨을 만들었던 시기. 내 생애에서 가장 수입이 적었던 시기. 나는 그때 한 달에 80만원인가? 벌고 있었다 ㅋㅋㅋ 하지만 그해 10월엔 결혼을 해야 했고, 필요한 자금은 턱도 없이 부족했다. 생활비가 모자라서 대출도 받고 있었고, 세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암튼 막막한 상황임에 분명했다. 뭔가 열심히 해보고 싶었지만, 한동안 일거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자 나는 어느덧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있을 수 만은 없었기에 . 나는 선언했다. 앞으로 3달 동안 700만원을 벌겠다고. (왜 그러한 액수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대담한 목표를 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실제로 다 합쳐서 거의 7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아는 코치님이 함께 프로그램을 디자인해보자고 해서, 전국을 돌며 캠프를 하기도 했고, 다른 분 도움으로 새로운 코치분들을 만나기도 했었다. 암튼 2013년 여름, 나름대로 바쁘게 돌아다닌 결과로 나는 내가 원했던 돈을 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나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싶다. 아마 그 행운이 없었다면 난 몇 개월 이후 아마 그냥 취업을 택하지 않았을까. 먹고는 살아야 하니 말이다. 나에게 그 경험이 지속되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았다. 방학이 끝나고 2학기 들어서는 다시 수입이 줄어들었고, 결혼식을 기점으로 힘든 시련이 견뎌내야만 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분명 초심자의 행운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참 감사하다. 

- “보물이 있는 곳에 도달하려면 표지를 따라가야 한다네. 신께서는 우리 인간들 각자가 따라가야 하는 길을 적어주셨다네. 자네는 신이 적어주신 길을 읽기만 하면 되는 거야.” 58
+ 나는 표지를 잘 읽어내지 못한다. 그리 예민하지 않은 편이다. 굳이 하나의 표지라고 한다면 나는 ‘사람’을 본다. 사람도 잘 보지 못했었지만, 그대로 뼈저린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은 늘어난 편이다. 어떤 사람과 함께 나아가야 할지, 어디서 멈춰야 할지. 그것을 읽어낼 수만 있어도 삶의 어려움을 꽤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은 데 있도다.” 62
+ 정말 감탄했던 대목이다. 작년에 비해서 훨씬 더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왜냐? 내가 지금 균형을 잘 잃어버리는 상태라 그런가보다. 나는 주로 주위를 보느라 숟가락은 잘 안 보는 것 같다. 분명 몰입해야 할 주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들에 관심을 뺏기느라 집중을 못 한다. 탁월하다고 할 만한 결과도 없고. 그저 꾸준히 하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이지만, 그리 만족스럽진 못하다. 기름 두 방울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내공이 필요할까. 참 부족감이 많이 느낀다. 

- 하지만 장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고향에서도 멀리 떨어진 낯선 곳이었다. 울음이 터져나왔다. 신을 불공평했다. 오직 꿈 하나만 믿었던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보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72 
+ 초심자의 행운은 영원하지 않다. 나에게도 지금 산티아고의 기분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바로 2013년 2월, 예전에 머물던 교육 회사를 퇴사하고 난 시점이다. 2년간 영업 사원 일을 마치고, 나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일)을 찾아 1년 동안 미친듯 일하게 된다. 보수는 되려 예전 직장보다 더 적었고, 안정성은 하나도 없었던 일이었지만,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생각 때문에 정말 최선을 다 했었다. 일요일은 제외하곤 모두 일을 했을 정도로 시간을 많이 보냈고, 정성도 쏟았다. 그리고 정말 잘 될 수 있겠다는 희망도 느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이루어 지지 못했다. 여기서 다 말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어쨌든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더 슬펐던 것은 1년 동안 쏟아부었던 내 열정이 모두 의미가 없어져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었다. 그 시점에 내가 본 영화가 ‘파이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울었다. 파이가 처한 상황이 내가 처한 상황과 별 다를바가 없어 보였기에. 정말 그 때 내 심정은 이랬다. 오직 꿈 하나만 믿었던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보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 "나 자신의 결정을 따르기로 약속했었지.” 
그는 스스로에게 확인하듯 말했다. 어쨌든 보석들은 노인의 보살핌이 계속될 거라고 말해주었고, 그의 믿음은 힘을 얻었다. 산티아고는 텅 빈 시장을 다시 한번 바라본 후, 조금 전 느꼈던 절망을 털어냈다. 이곳은 더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야말로 그가 원하던 일이었다. 그는 진정 새로운 세상을 알고 싶어했다.
...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야.’ 75-76
+ 새로운 세상은 없다. 새로운 눈이 있을 뿐이다.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은 뒤바뀐다. 지금 내가 그렇다. 사실 올해 12월까지 1년 동안 계약한 학교가 있다. 목요일에는 매주 수업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나도 별 다른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예산 문제로 인해 그만 10월까지만 수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누군가의 잘못이나 탓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 뿐이었다. 정해진 일정과 수익이 사라졌지만, 나에게 가능성의 공간과 시간이 열린 것도 사실이다. 이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 정말 고민 중이다. 나에게 11월과 12월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시기다. 나는 지금,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다. 

- 산티아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노인과 똑같은 일을 자기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아의 신화와 가까이 있는지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이었다. 78
+ 나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아의 신화와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그 자연스러움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우선 그 사람의 인상과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 파악되기도 한다. 다소 조급하거나 외부의 시야를 의식하는 사람의 눈은 다소 돌출되어 있고, 목소리는 떠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눈이 다소 들어가 있고 (깊다고 표현해야 할까) 목소리도 차분하더라.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는 이 정도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건 오랜 시간 ‘함께 있어보는 것’이다. 관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2부

- “그런데 아저씨는 왜 지금이라도 메카에 가지 않는 거죠?” 산티아고가 물었다.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진열대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저 크리스탈 그릇들, 그리고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94
+ 정말 그렇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다. 나의 방식은 나에게만 옳다. 다른 사람에게 내 방식을 적용할 때, 그건 억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얼마 전에 아내와 살짝 다툰 적이 있다. 아내는 먹는 것이나 입는 것, 분위기에 예민하다. 그래서 일년에 한번은 꼭 호텔 뷔페에서 밥을 먹기로 약속했었다. 뭐, 나도 맛있는 것 먹는 건 좋지만, 그 비용이 너무 비싸면 스트레스가 있는 편이다. 관련해서 아내와 대화하다가 나도 모르게 계속 ‘꼭 그래야 할까? 다른 데 돈을 쓰면 되지 않을까?’란 입장을 내세우게 되었던 것 같다.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여보는 내가 이런데 돈 쓰면 아까워 하는거 같다고.’ 나는 솔직히 말해다. ‘솔직히 어느 정도 아깝단 생각을 한다고’ 그런데 아내가 나의 정곡을 찔렀다. ‘그런데 여본 교육비나 책 사는 건 아깝단 생각하냐고. 나는 그 돈이 아깝단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뭐라고 하지 않지 않냐고’ 맞다. 그 말이 맞았다. 허긴, 지금까지 썼던 교육비만 모았어도 소형 차 한대는 살 수 있었을 나다. 각자 그 기준은 다 다르다. 아내도 교육비와 책값으로 돈을 다 쓰는 내가 답답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믿어주고 별로 스트레스 안 주는 편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미안했다. 가끔 아내에게 엄청난 통찰력을 볼 때가 있다. ㅋㅋ 그리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집안의 평화가 오겠단 생각도 했다. 서로 다른 그 가치들을 어느 수준까진 만족시키려면 현실적인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 순간, 그는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그는 언제든지 양치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크리스털 장수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세상엔 어쩌면 다른 보물들이 더 많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랐다. ... 그의 손에는 여전히 우림과 툼밈이 쥐어져 있었다. 그 두 개의 보석 덕분에 그는 보물을 찾아가는 길로 다시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자아의 신화를 살아가는 사람 곁에 항상 있다네.”
늙은 왕은 말했었다. 111
+ 나도 가끔 최악의 상상을 한다. 그러면 뭔가 가벼워질 때가 있다. 이러다 뭣도 안 되면 다시 취업하면 되지 뭐. 허긴 최악의 경우가 직장생활이라고 생각해보면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최악은 아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기 싫으면 더 열심히 일하면 되는 것이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위안을 준다. 그리고 아직 끝난 것도 아니다. 난 아직 굻어죽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할 정도로 주위의 상황이 도와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고, 힘을 쌓으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결정이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어떤 사람이 한 가지 결정을 내리면 그는 세찬 물줄기 속으로 잠겨들어서, 결심한 순간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116
+ 앞서 말했지만, 결단은 힘이 세다. 게다가 나의 온 존재를 건 결단은 분명 내 인생의 트랙을 바꾸어 놓는다. 2009년에 내가 결단한 것은 이것이다. 난 절대 엔지니어로 돌아가지 않겠다. 그 결단은 실제로 작동했다. 아직까지 어쨌든 버티고 있으니. 하지만 이제 2번째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 예감, 어머니가 자주 입에 올리던 말이었다. 그는 ‘예감’이라는 것이 삶의 보편적인 흐름 한가운데,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들 속에 그럴 수 밖에 없는 어떤 방식으로 펼쳐져 있는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천지의 모든 일이 이미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마크툽.” 127
+ 마크툽. 예전에 슬럼독 밀리어네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온갖 고초를 겪고 퀴즈쇼에 나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그러한 고초를 겪으면서 경험했던 모든 경험이 퀴즈쇼에서 정답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만약, 주인공이 미리 엔딩을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담 당시에 경험들이 그렇게도 힘들었을까?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트툽에는 그런 힘이 있다. 지금 경험하는 세상에 새로운 의미부여를 하게 만들어 준다. 이 또한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받아들이자. 라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수용을 하게 한다. 하지만 양이 있으면 음도 있는 법. 지나친 결정론자. 혹은 운명주의자들은 ‘현실을 바꿔나가는 것’에 회의적인 경우도 많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되, 바뚤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바꿔나가는 변증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크툽은 그러한 지혜 위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빛낼 수 있을 것이다. 

- 선생은 대상의 행렬을 좀 더 눈여겨보셔야 할 것 같군요. 행렬은 비록 수없이 길을 돌아가긴 하지만 언제나 한곳을 향해 가니까요.”
“자네야말로 책을 더 많이 읽도록 하게. 그 점에서라면 책과 대상의 행로는 똑같은 것이니 말이야."

- 산티아고는 달과 흰 모래사막을 바라보며 얼마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난 대상 행렬이 사막을 건너는 것을 쭉 지켜봤어요. 대상 행렬과 사막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막은 대상 행렬이 자신을 건너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거겠지요. 사막은 대상 행렬이 자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나는 곳마다 끊임없이 시험을 해요. 만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면 대상 행렬은 오아시스가 있는 곳까지 가게 되겠지요.” ...

말없이 있던 영국인은 입을 뗐다. 
“이제부터는 나도 행렬을 좀더 주의깊게 지켜봐야겠군."
그러자 산티아고가 대꾸했다. 
“나는 선생이 갖고 있는 책들을 읽어야겠어요.” 135
+ 산티아고가 감각형이라면, 영국인은 직관형이 아닐까. 나는 전형적인 직관형이다. 나의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선 오로지 독서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독서가 나를 더 지혜롭게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절반만 맞다. 나는 책이 아닌 세상을 더 봐야 한다. 세상을 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내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보려고 애쓰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산티아고와 영국인이 서로를 존경하는 ‘지혜’가 어울려졌던 명장면이 아닐까 한다. 

- 산티아고는 그릇을 닦으며 머릿속에서 온갖 잡념을 몰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불꽃을 바라보는 일과 다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연금술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점차 확신을 갖게 되었다. 138
+ 일상에 몰두하는 사람은 잡념이 사라지게 된다. 내가 요즘 가장 신경쓰고 있는 것도 역시 ‘잡념’이다. 스마트폰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리고 마니, 요즘 나의 일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계속 쳐다보고 있는 내가 싫어질 지경이지만, 그 습관 만큼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 일상의 자각 상태를 놓치고 싶지 않다. 예전처럼 다시 명상이라도 해야 할까보다. 

-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142
+ 그렇기 때문에 우린 더 겸손해야 한다. 각자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쉽게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 사실만 잊지 않아도 절반은 성공이다. 

- “저기가 오아시스요."
낙타몰이꾼이 별 있는 쪽으로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지금 당장 저곳으로 가지 않는 거죠?"
“지금은 잘 시간이니까.” 145
+ 잘 때는 자야 한다. 해가 뜨면 걸어야 한다. 자신의 흐름을 잘 아는 것은 ‘자아의 신화’를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첫 번째 단계가 아닐까. 구본형 선생님이 새벽을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것 처럼, 우리에게도 자연스러운 흐름이 필요하다. 창의성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기에. 

- 산티아고는 자신의 보물을 생각했다. 그가 자신의 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려움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늙은 왕이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불렀던 것도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아의 신화를 추구하는 사람의 끈기와 용기를 시험하는 시련뿐이라는 것을. 그 때문에 그는 서두를 수도, 초조할 수도 없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신이 그의 앞길에 준비해놓은 표지들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153
+ 서두르지도 말고, 초조해 하지도 말라는 말. 나에게 자주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1-2달 정도의 단절적 시간이 필요하다. 방향 점검을 위해선 가고 있는 길에서 멈춰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지금 가고 있는 길로 계속 갈 것인지, 어느 속도로 갈 것인지, 아니면 방향을 살짝 바꿀 것인지. 좀 쉴 것인지. 그 결정은 멈췄을 때 가장 잘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지금 내 상황이 그러하다. 나의 끈기와 용기를 시험하는 시련이 날 조금씩 조르고 있고, 나는 이제 좀 더 예민하게 세상이 나에게 주는 표지들을 읽어야 할 시점이다. 표지를 읽자. 삶이 주는 신호를 보자. 

- ‘초조해하지 말자.’ 그는 속으로 되뇌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낙타몰이꾼이 얘기한 대로, 먹을 때는 먹기만 하는 거야. 그리고 길을 떠나야 할 때는 떠나는 거고.’ 154

- 그녀의 검은 눈동자와 침묵해야 할지 미소 지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그녀의 입술을 보는 순간, 그는 지상의 모든 존재들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만물의 언어’의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난해한 부분과 맞닥뜨렸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158
+ 순례자에서 읽었던 ‘사랑’과 ‘열정’에 대한 내용이 갑자기 다시 떠오른다. 가장 본질적 변화는 결국 사랑에서 온다. 사랑은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도 결국 그렇더라. ‘사랑’이 있는 관계는 오래 지속되고, 변화한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관계엔 변화도, 지속성도 없다. 

- 영국인은 사막을 응시하고 있었다. 
“밤새 자네를 기다렸어. 그는 첫별이 뜰 때 나타났지. 아제껏 당신을 찾아다녔노라고 말했지. 그러자 그가 납을 금으로 변하게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더군.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게 바로 그거라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직접 한번 해보라는 거야. 그게 다였어."
산티아고는 잠자코 있었다. 가엾은 영국인은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듣기 위해 그 먼길을 여행한 셈이었다. 산티아고는 자기 역시 늙은 왕에게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요! 한번 해보세요."
“그럴 참이었어. 지금 당장 다시 시작해야지.” 161
+ 나도 많은 스승을 찾아서 돌아다닌 편이다. 그리고 나만의 스승관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스승은 이것이다. ‘진리’라고 여겨지는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일수록 스승이 아니다. 확신하는 사람일수록 스승이 아니다. 자신(스승)처럼 살아가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스승이 아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사람일수록 스승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스승이 아니다. 반대로, 제자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스승이다. 제자들이 실은 자기 자신의 스승이었음을 알게 하는 사람이 스승이다. 참된 스승은 나도 모르니,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스승관과는 반대로 세상은 이런 사람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는다. 고기를 잡아주는 사람을 참된 스승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스승은 결코 제자들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힘, 그 자발성을 빼앗아선 안 된다. 그래서 가끔은 되려 거칠고, 불편해야 한다.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 나는 당신 꿈의 일부이고, 당신이 자주 얘기하는 자아의 신화의 일부이기도 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여행을 계속하길 원해요. 당신이 찾는 그곳으로 말예요. 만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그전에 떠나야 한다면 당신의 신화를 향해 떠나세요. 사막의 모래언덕을 바람에 따라 변하지만, 사막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랍니다. 우리의 사랑도 사막과 같을 거예요.” 164 
+ 사랑은 자아의 신화의 일부다. 파티마의 참 멋진 대사였다. 

- 낙타몰이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산티아고가 하는 말을 이해했다. 대지는 갖가지 표정으로 세상의 어떤 일이든 알려줄 수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책을 아무렇게나 펼쳐도, 사람의 손을 들여다보거나 새들의 비행을 바라볼 때도, 카드놀이를 할 때도, 그게 무엇이든 간에, 우리 모두는 의미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사물들은 그 어떤 것도 스스로 드러내지 않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며 만물의 정기를 꿰뚫어보는 방법을 발견해낸 것은 바로 사람들이었다. 169
+ 이 부분은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들, 예전에 천지의 기운을 읽은 사람들의 메시지와 다를 바가 없다. 예를 들어,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이나, 하늘의 떨어지는 별을 붙잡았다는 제갈 공명과 같은 사람들. 그들 대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삶의 신호’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들었다. 다시 말해, 굳이 어떤 도구에 의존하지 않아도 ‘눈과 귀를 열면’ 세상이 미리 말해주는 신호를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가 오기 전, 수 많은 곤충들과 동물들은 미리 그 신호를 읽고 산으로 도망갔다고 했는데, ‘눈과 귀가 먼’ 인간들은 전혀 그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이런 사례가 위의 글을 뒷받침하는게 아닐려나. 참고로 신기한 것이 재원이가 희안하게 재체기를 할 때가 있는데 어른들 말씀이 그럼 그 다음 날 비가 온다고 한다. 아기 때 우리는 그러한 신호에 열려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진짜 신기했다. 

- "미래는 신께 속한 것이니, 그거을 드러내는 일은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네. 그럼 난 어떻게 미래를 짐작할 수 있을까? 그건 현재의 표지들 덕분이지. 비밀은 바로 현재에 있네.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욱 나아지게 할 수 있지. 현재가 좋아지면, 그 다음에 다가오는 날들도 마찬가지로 좋아지는 것이고."
+ 앞서 말했듯, 미래는 현재에 와 있다. 내가 아직 그 신호를 읽어내지 못할 뿐. 

“신께서 미래를 보여주실 때라네. 신께서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미래를 잘 보여주시지 않아. 한 가지 예외란 바로, 미래가 바뀌도록 기록되어 있을 대를 말하지.” 
늙은 점쟁이가 말했다. 171-172

- “우리 상인들이 그를 사서 이집트로 데리고 왔었네. 그때나 지금이나, 꿈을 믿는 자는 꿈을 해석할 줄도 안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176 
+ 꿈을 믿는 자는 꿈을 해석할 줄도 안다. 꿈을 꾸는 자는 다른 꿈꾸는 자들을 알아볼 줄도 안다. 뭐든 스스로 경험이 되면, 다른 경험에 대한 비평이나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 집을 떠나온 후로 그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다. 내일 죽게 될 지라도, 그의 두 눈은 다른 양치기들이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보지 않았는가. 그는 그게 자랑스러웠다. 180
+ 분명 내가 내 삶을 살아가면서 더 치열하게 살아온 것은 맞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본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란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어느새 초심을 잃고 벌써 부터 나태해지려는 내 모습에 자꾸 경종을 울리게 된다. 탁월함을 위한 필연적 수고를 종종 잃어버리는 내가 안타깝다. 

- “그대의 용기를 시험해본 것이네. 용기야말로 만물의 언어를 찾으려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그 순간 산티아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먼길을 걸어왔다 해도, 절대로 쉬어서는 안 되네. 사막을 사랑해야 하지만, 사막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돼. 사막은 모든 인간을 시험하기 때문이야. 내딛는 걸음마다 시험에 빠뜨리고, 방심하는 자에게는 죽음을 안겨주지.” 183
+ 용기야 말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용기 중에서도 최고의 용기는, ‘한 걸음’ 더 내딛는 용기다. 바람이 불어도, 더워도, 비가 와도, 쓰러져도 그 어떤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딛으려고 하는 자, 그 자가 가장 용기있는 사람이 아닐까. 

-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일을 소망할 때, 천지간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뜻을 모은다네.” 189

- “병사가 전투를 앞두고 휴식을 취하듯 그대도 쉬게. 하지만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그대의 여행길에서 발견한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때 그대의 보물은 발견되는 걸세.” 190
+ 순례자를 읽으면서 각오를 품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 보기로 했다. 거기서 내 보물을 발견해 보고 싶다. 앞으로 11월과 12월 동안 내 주위에 있으면서도  미처 돌아보지도 못했던 나의 보물을 찾으러 가야 겠다. 

- “제가 이곳에 남기로 한다면요?"
“그후 일어날 일을 그대에게 말해줌세. 그대는 오아시스의 고문이 될 걸세. ... 이 년째 되는 해, 그대는 보물의 존재를 기억하게 될 것이네. 표지들은 집요하게 보물의 존재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테고, 그대는 그것을 잊으려 무진 애를 쓸 걸세. ... 삼 년째 되는 해에도 표지들은 그대의 보물과 자아의 신화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할 것이네. 그대는 밤마다 오아시스를 배회하고, 파티마는 자신이 그대의 길을 가로막았다는 자책감으로 번민하는 슬픈 여인이 될 것이네. ... 사 년째 되는 해, 표지들은 그대를 떠날 것이네. 그대가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부족장들은 그걸 알아차리고 그대에게서 고문의 자리를 빼앗아갈 걸세. ... 명심하게.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만물의 언어를 말하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지.”
196-197
+ 자아의 신화를 찾으러 가는 길은 멈출 수 없다. 가장 두려운 것은 표지들이 나를 떠나는 것이다. 내가 둔감해지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다. 비록 그렇게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끝까지 듣고자 노력하고 싶다. 표지가 나를 먼저 버릴지언정, 내가 표지를 먼저 버리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다. 

- “그렇다면 금을 만들려다 실패한 다른 연금술사들은 뭐가 잘못되었던 거죠?"
“그들은 단지 금만을 구했네. 자아의 신화, 그 보물에만 집착했을 뿐 자아의 신화를 몸소 살아내려고는 하지 않았지.” 206 
+ 내가 보상을 싫어하는 이유를 잠깐 하고 싶다. 나는 청소년들은 대상으로 주로 이런 저런 강의와 워크샵을 한다. 헌데, 이런 경우 많은 주위의 코치님들이나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편으로 ‘당근과 채찍’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본다. 아이들에게 어떤 미션을 주고, 가장 빨리 하는, 혹은 가장 잘하는 팀에게 선물을 주는 것. 그것은 꽤 효과적인 방법이긴 하다. 당장은 아이들의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키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보상’을 내건 경험이 손에 꼽는다. 초반에 뭣도 모를 땐 다른 코치님들 따라서 몇번 해보기도 했지만 그게 나와는 안 맞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로 인해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다. 잃는 것은 ‘환호성’이다. 게다가 학생들이 보상과 관계 없이 흥미를 보이게 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얻는 것도 있다. 바로 ‘진정성’이다. 아이들의 가짜 반응이 아닌 진짜 반응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운이 좋아서 흥미를 동하게 하는데 성공만 한다면, 정말 아이들에겐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예전에 봤던 책 ‘드라이브’에서도 외재적 보상이 내재적 보상(의미추구)를 방해한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연금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는 없어.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드는 편이 낫네.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그대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대를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 마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211
+ 그렇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한다는 말이 공감이 된다. 내가 지금 그런 상황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 마음이 자주 귀를 열어줘야 겠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은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 ‘그래, 무언가를 찾아가는 매순간이 신과 조우하는 순간인 거야. 내 보물을 찾아가는 동안의 모든 날들은 빛나는 시간이었어. ... 보물을 찾아가는 길에서, 나는 이전에는 결코 꿈꾸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어.’ ... 그날 오후 내내 그의 마음은 평온했고, 그는 아주 편안하게 잠들었다. 다음날 눈을 뜨자, 그의 마음을 만물의 정기로부터 나온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모든 행복한 인간이란 자신의 마음속에 신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마음은 속삭였다. 213
+ 그래,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사실 모든 보물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아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을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은 험난한 것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낮은 소리로 말하지. 214 

- “피라미드가 있는 방향으로 계속 가게. 그리고 표지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그대의 마음은 이제 그대에게 보물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니.” ... “누군가 꿈을 이루기에 앞서, 만물의 정기는 언제나 그 사람이 그 동안의 여정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싶어하지. ...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부터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215-216
+ 가혹한 시험은 곧 ‘탁월한 결과’와 같고, 초심자의 행운은 곧 '차가운 현실’과 동의어다. 시험과 결과는 동전의 양면이고, 행운과 현실 (혹은 불행)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래서 우린 일회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유일한 지침이 있다면,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나에게도 필요한 마음이란 생각이 든다. 그저 걸어가기. 행운이 오든 시험이 오든 관계 없이 그저 걸어가기. 

-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을 도와주나요?”
그가 다시 연금술사에게 물었다.
“주로 자아의 신화를 살아가는 사람들만 도와주지. 하지만 어린아이들, 술취한 사람들, 노인들도 도와준다네.” 220
+ 내 생각에 마음은 자신에게 귀를 열어주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진정한 연금술사들을 나는 알고 있네. 그들은 실험실에서 틀어박힌 채 자신들도 마치 금처럼 진화하고자 노력했지. 그래서 발견해낸게 ‘철학자의 돌’이야. 어떤 한 가지 사물이 진화할 때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도 더불어 진화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걸세. ... 끝으로, 오직 금만을 찾으려는 자들이 있었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그 비밀을 찾아내지 못했어. 납과 구리, 쇠에게도 역시 이루어야 할 자아의 신화가 있다는 걸 잊었던 걸세. 다른 사물들의 자아의 신화를 방해하는 자는 그 자신의 신화를 결코 찾지 못하는 법이지.” 223
+ 주위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나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이 있다. 내가 변화하기 위해선 주위를 변화시키기 위해 애써야 한다. 내가 요즘 진로 교육을 하다가 든 생각은 이렇다. 나의 꿈, 나의 강점, 나의 가치관을 찾고자 애쓸 시간에 차라리 내 주위 친구들의 강점과, 꿈, 가치관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자신의 진로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란 생각. 언제나 그렇듯 ‘나’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 왜냐면 찾고나 하는 ‘나’는 결코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관계’ 속에서 출현하는 존재다. ‘너’가 없이 홀로 존재하는 ‘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해선 되려 타인의 신화를 찾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그런 자만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제서야 그 빛을 보고 다른 사람에 변화하게 될 것이다. 변화는 내부에서 시작되지만, 내부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것은 오히려 외부다. 그게 내가 요즘 드는 생각이고, 진로 교육의 방향성이다. 

- “자아의 신화를 사는 자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세.” ...
“만일 제가 해내지 못하면요?” 
“그대 자아의 신화를 살다가 죽게 되는 것이지. 자아의 신화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죽음에 이르렀던 무수한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네.” 230
+ 나는 아이들과 '토끼와 거북이’ 토론을 주로 하는 편이다. 짧은 이야기지만, 그 안에 중요한 이야기는 정말 다 들어있다. 여러 가지 질문과 토론이 이어지고, 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거북이라면 토끼에게 시합을 신청할래?’란 질문. 아이들 대부분은 그런 무모한 짓을 안 한다고 말한다. 질 것이 뻔한데 뭐하러 신청하냐고 말한다. 뭐 그럴싸한, 아주 논리적인 대답이다. 하지만, 그러던 중 한 아이의 대답이 내 마음을 움직인 적이 있다. 그 아이가 그랬다. ‘나는 거북이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왜?’ ‘만약, 졌다고 하더라도 그 거북이는 거북이들 중에선 유일하게 토끼와 대결해 본 거북이잖아요.’ 심쿵했다. 맞는 말이었다.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탓에, 나는 이후에 아이들에게 모두 이 말을 한다. 아이들도 역시 끄덕거린다. 맞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건 그런 의미가 있다. 죽더라도, 실패하더라도, 거기까지 갔다는 사실, 무언가에 흠뻑 취했었다는 경험. 그것이 의미가 있다. 그것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올 것이다. 그럼 되었다. 더 바랄 것이 뭐가 있을까?

- 만물이게는 저마다 자아의 신화가 있고, 그 신화는 언젠가 이루어지지. 그게 바로 진리야. 그래서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존재로 변해야 하고, 새로운 자아의 신화를 만들어야 해.” 
… ‘바로 그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납은 세상이 더 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 하고, 마침내는 금으로 변하는 거야.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 그거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 241-242
+ 우리가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자아의 발견’이 아니다. 실은 ‘새로운 자아의 발견’이 맞는 말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존재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과정이 바로 삶이기에. 나는, 우리는 그렇게 계속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 역시 거듭나지 못하는 것이기에. 

- “스승님, 고맙습니다. 스승님은 제게 만물의 언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대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깨우쳐주었을 뿐이지.” 246
+ 참된 스승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코치’도 이러한 사람이고, 심마니스쿨이 지향하는 선생님도 바로 이런 모습이다. 뭔가 덧대거나 뺴는 것이 아닌, 온전한 그 모습 그대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들. 공간을 만들어주는 존재들. 

- 내가 믿고 있는 이 땅의 속담이 있지.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두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250
+ 아무리 중요한 것이든 한번 일어난 것은 괜찮다.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것이든 무엇인가를 나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다면, 그 반복은 내 삶을 지배한다. 내 삶을 만드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습관’이니까. 

- “아닐세” 그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만일 내가 미리 일러주었더라면, 그대는 정녕 피라미드를 보지 못했으리니. 어땠나? 아름답지 않던가?” 264
+ 살아서 꼭 한번쯤은 직접 사막을 건너고 싶다. 피라미드를 보고 싶다. 허긴 지난 번 순례자를 보면서는 순례길을 걷고 싶었는데 말이지. ㅋㅋㅋ

- 그는 배낭 속에서 우림과 툼밈을 꺼냈다. 그 두 개의 돌은 언젠가 아침 무렵의 장터에서 꼭 한 번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돌들 말고도 얼마나 많은 표지들이 그의 여로를 밝혀 주었던가. 자아의 신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삶은 얼마나 자비로운지 새삼 신의 뜻에 고개가 숙여졌다. 265
+ 토템이 하는 역할이 있다.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힘. 산티아고에게 우림과 툼밈이 있다면, 나에겐 어떤 토템이 있나. 모르겠다. 지금 하나 떠오르는 건, 내가 군대에서부터 적어온 수첩? 허긴 나에게 보물 1호는 바로 지금까지 내가 써온 수첩들이다. 2012년까지도 나는 아날로그 수첩을 써왔다. 2013년 이후엔 거의 에버노트를 중심으로 옮겨오면서 자취를 감췄지만, 그 이전까지의 수첩들은 분명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아날로그 수첩을 다시 써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 분주히 뛰어다녔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는 나날이었다. ... 내 인생의 그 다음 6년간을 지배한 것은 지독한 회의 였다. 그간 나를 사로잡았던 신비의 언어들은 모두 거짓인 것 같았다. ... 나는 이 절망의 바다에서 비로소 신의 음성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우리가 마음 깊이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마침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 이었다. ...

“그럼 세번째 부류는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일세.” 270-271
+ 내가 마음 깊이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마침내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라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아킬레스 건은 사실 바로 ‘이기심’이다. 나는 이기적이다. 시간을 쓰는 것도, 돈을 쓰는 것도 철저히 이기적이다. 굳이 좋게 표현하면, 욕망 추구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가치에는 돈이나 시간을 아주 호화롭게 쓰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에는 스쿠르지보다 더 인색하고 못 됐다. 가까운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도 인색하고, 심지어 아내나 가족에게도 그런 편이다. 어쩌면 내가 간절히 하고 싶은 것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저하고 있는 까닭은 이 ‘이기심’이 저항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빤히 보이기 때문에 나의 공간과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슬퍼할 과거의 내가 있다. 하지만 새로운 나, 더 발전된 나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균형을 이루고, 내가 진짜 원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거부하는 내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 거부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조만간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 

- 위대한 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하루 자아의 신화를 살아내는 세상 모든 사람 앞에 조용히 열려 있었다. 272
+ 진리로 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길이다. 이 교훈은 순례자와도 겹친다. 그리고 어쩌면 파울로 코엘료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말은 곧 그 주인공은 ‘바로 너’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자 고통이기에. 그렇게 자아의 신화를 찾으러 가는 우리 모두는 결국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필수 조건은 ‘하루 하루’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아닐까.  







독서 후 성찰

지난 번에 이어서 또 파울로 코엘료다. 사실, 나는 순례자와 연금술사의 내용과 흐름이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는 둘 다 자아의 신화를 찾으러 가는 여정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연금술사가 비교적 좀 더 쉽고, 편하게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선생님은 타고난 직관형 작가가 감각형의 묘사 능력을 습득한 결과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순례자는 내가 잘 모르는 용어들이 많아서 책을 읽는 내내 멈칫멈칫 하는 것에 비해서, 연금술사는 대체로 쉬운 용어로 구성되어서 잘 넘어간다. 순례자보다 훨씬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면서도, 메시지와 감동은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을 읽고 난 후,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몇 가지 내 생각을 적어본다.

우선, 주인공을 보자. 나는 순례자의 주인공(이름이 뭐였더라)이 좀 더 파울로 코엘료의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연금술사의 산티아고는 되려 파울로 코엘료가 살고 싶었던 삶 혹은 수많은 경험 이후에 더욱 탁월해진 자아의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쩌면 지금 현재 시점에서의 파울로 코엘료일 수도 있고. 어찌보면 연금술사의 영국인과 순례자의 주인공, 그리고 파울로 코엘료 자신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 셋은 몇몇 공통된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산티아고는 정말 탁월한 성장형 주인공이다. MBTI로 표현하면, 처음에는 내향성 그리고 감각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양들을 돌보며, 그저 이리저리 여행하고 숙고하는 모습에서 나는 내향형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이후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자 무의식이 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되고, 좀 더 큰 도전에 직면한다. 양들을 팔고, 사기도 당하고, 크리스탈 가게에서 일도 한다. 이후 사막을 걸어가면서 ‘만물의 정기’를 느끼게 되고, 자신이 꿈꿨던 피라미드에 결국 도달하게 된다. 끊임없이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을 변모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귀를 닫고, 자신에게 몰두하려 했던 내향적 모습에 비해, 시간이 지날 수록 산티아고는 세상에 자신을 열고, 더 느끼고, 함께 존재하고자 노력한다는 것. 그러한 열림에서 나는 외향형의 장점을 느꼈다. 

산티아고에게는 감각형의 성향도 보인다. 이것은 그의 탁월한 고유성이기도 하다. 아마 추측컨대 파울로 코엘료는 상당한 직관형으로 느껴진다. 영국인도, 순례자의 주인공도 모두 강한 직관형이니까. 하지만 그것으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낀 파울로가 아마 자신이 가장 지혜롭게 생각하는 내면의 자아를 불러낸 것이 산티아고의 모습으로 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산티아고를 감각형 성향으로 추측한 까닭은 직관형보다 좀 더 경험주의적이면서도, 세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느낄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국인과의 대화 <말없이 있던 영국인은 입을 뗐다. “이제부터는 나도 행렬을 좀더 주의깊게 지켜봐야겠군.” 그러자 산티아고가 대꾸했다. “나는 선생이 갖고 있는 책들을 읽어야겠어요.”>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감각형의 모습이었다. 처음에 자신의 꿈을 부정했던 것도 그러한 모습이고. 하지만 산티아고는 이내 자신을 받아들이고, 감각형과 직관형의 탁월함을 취한다. 꿈을 외면하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는 모습도 그렇고, 자신이 지나친 모든 경험에서 의미의 연결고리를 발견해내는 모습도 그렇다. 내가, 아니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을 산티아고라는 캐릭터에서 보았다. 그러나 실은, 산티아고는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 그의 영웅적 삶은 우리에게 커다락 자극을 준다.

그렇다. 이 책은 사실 영웅의 이야기다. 조셉 캠벨의 명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자신의 시련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영웅의 용기다.” 산티아고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단 나부터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러니 적어도 나는 이 말에 공감할 수가 있다. 우리의 삶도 영웅의 여정과 비견될 수 있기에. 나 역시 이번 연금술사에 나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한번 넣어보았다. 이 글로 인해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나의 신화를 살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글을 다 적은 지금, 나는 어떤 인식의 변화를 이루어냈을까? 분명해진 것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양을 치고 있다는 것.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산티아고의 열망처럼, 나 역시 그 열망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는 것. 첫 번째 도전은 이루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건 새로운 종류의 게임이다. 나는 이제 살렘의 왕과 노파를 만나서 대화하고 있다. 아직 양을 판 것은 아니다. 아마 다음 미션은 ‘자유’가 아니라 ‘관계’라고 생각된다. 더 어렵고, 더 힘든 도전이 예상된다. 산티아고가 사막길을 걸어간 것 처럼,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야 할 시점이다. 삶의 신호과 표지를 읽어내는 것, 행운과 불행을 담담하게 여기는 것, 책과 세상을 모두 품는 것, 사랑과 열정을 그 추진력으로 삼는 것, 만물의 정기와 하나가 되는 것,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숙제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세상은 나의 발걸음만을 기다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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