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정상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이다. 오늘 아침에 한 서울시 광고를 봤다. 서울시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세요. 그러면서 한 예시로 <파괴의 군주, 비글>이 나와있었다. 강아지를 키운 적은 없지만 비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재미있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상인 비글은 어떤 존재인가? 다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고뭉치. 말썽쟁이. 악마견. 파괴자. 등등 실제로 집안을 다 부숴버린다. 주인 입장에선 난감하다. 태도를 바꿔야 할 강아지다. 정신 무장이 필요하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비글은 정상이다. 비글을 그저 자신의 본성대로 행동할 뿐이다. 다만 자신이 있어야 할 적합한 곳이 놓여진 것이 아니다. 비글에게 어울리는 곳은 어디일까? 비글을 검색해 봤더니 이렇게 나온다. '비글은 사냥에 아주 적합한 견종으로 그들은 단호하고 날카로운 사냥꾼이다.' 그렇다. 비글에겐 아파트가 자신의 적합한 장소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공간만 충분히 확보된다면 비글은 파괴의 군주란 오명을 벗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어서 떠오른 이야기다. 영국에서 한 여자아이가 너무 산만했다고 한다. 병원에 대려가면 다들 ADHD라고, 문제가 있다고만 했다. 특수학교에 보내거나 약으로 처방해야 한다고. 부모는 낙심했다. 지친 부모는 마지막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이 아이는 타고난 댄서입니다.'


그렇다. 그 아이가 놓여야 할 곳은 교실이 아니었다. 춤을 추는 곳이었다. 아이는 너무도 춤을 추고 싶어 몸이 가만 있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이는 댄스 전문 학교로 보내어졌고 그녀는 영국왕립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가 되고 이후 <오페라의 유령>을 디렉트한 세계 발레계의 보물이 되었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선과 악의 기준은 선이라고. 선과 악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없다. 그렇기에 선은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폭력의 기준이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마찬가지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도 정상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비정상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 그것은 폭력이다. 그건 마치 자신이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정상과 비정상의 딱지를 붙이는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정말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해야 나는 더욱 나답게, 더 적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에게 맞지 않은 공간에서 우리와 맞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우리와 맞지 않은 목표를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비글이라면 사냥을 하러 가라. 당신이 댄서라면 춤을 추라.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어디서 누구와 함께 머물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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