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21분. 아니, 아침인가. 새벽이라고 하기엔 밝고, 아침이라고 하기엔 어스름한 그런 시간이다. 35살이 된 나에게, 올해들어 새롭게 생긴 증상이 있다. 바로 불면증이다. 추측컨대 아내가 이 글을 보면 웃을 것이 분명하다. 나라는 인간과 불면증이라니. 이질적인 두 단어다. 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잠’과 관련해선 별로 져본적이 없다. 누구보다 많이 자고, 빨리 잠들고, 심지어는 낮잠도 즐긴다. 그 무엇보다 잠자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낮잠은 내 행복의 원천이다. 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오후 6시 이후로는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한번은 커피를 먹었다가 잠을 못 잔 적이 있는데,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녹차도 마찬가지다. 나의 단잠을 방해하는 것은 철저히 금욕한다. 또 별 고민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는 편이라, 침대에 눕고 나면 이내 잠이 든다. 일반 사람은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도 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시간을 가져본 지가 꽤 되었다.
그런 나에게, 요즘 들어 가장 큰 고민은 불면증이다. 잠이 드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간에 한번씩 깰 때가 있다. 새벽 1시나 2시쯤. 그럴 때면 여지없이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나를 본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회사 일도 생각하다가, 도저히 안 되면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숨에 집중하기도 하고, 나름 명상도 한다. 이도저도 안 되면 짜증을 낸다. 혼자 좋다고 낮잠을 자 놓고, 내가 왜 잠을 잤을까 자책한다. 짧은 시간에 인간은 얼마나 많은 감정에 휩싸일 수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감탄한다.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인 오욕칠정을 순식간에 모두 경험한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지만, 몸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잠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에겐 생각보다 큰 고통이자, 스트레스다.
오늘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12시 경에 잠이 들었지만, 새벽 4시반까지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짜증이 났지만 결국 그냥 받아들였다. 나란 사람이 그렇다. 문제를 반기는 편은 아니지만, 문제에 끌려가는 것은 더욱 싫다.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보겠다고 마음 먹는다. 나와서 물을 마시고 불을 켰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부터 꽤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며, 찬찬히 책을 폈다. 얼마 전에 중고책방에서 샀던 책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구본형 선생님의 책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이다. 구본형 선생님은 매일 아침 2시간 씩 책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새벽에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책을 읽다보면, 그 새벽녘 맑은 정신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때가 있다. 그렇게 펼친 책의 첫 장을 보고, 웃음이 팍 터졌다.
“마흔이 되어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 몸은 피곤에 전다. 긴 잠 속으로 죽은 듯 빠져들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더 이상 쉽지 않게 되었다.”
소름. 불면증 때문에 일어나 보게 된 책에서 불면증에 대한 글을 보다니. 이것은 운명일까. 선생님은 글로써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하셨다. “어쨌든 불면증과 친해두어야 한다. 불면증을 고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찾아오면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이렇게 의자에 앉아 이놈에 대해 써보기도 하는 것은 꽤 오랫동안 이놈과의 싸움에서 얻은 요령이다. 마흔은 가끔 불면증과의 동행과 동침을 의미했다. 나는 오히려 불면을 즐겼다.” 나는 아직 서른 다섯, 마흔이 되기엔 5년이나 남았는데. 라는 핑계를 뒤로 하며, 절절히 공감하면서 읽었다. 책 읽기의 끝은 화자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는 오늘 그 끝을 경험했다. 그리고 위로 받았다.
불면에 대한 긍정적이 관점도 서술되어 있다. “불면은 내게 또 다른 고독을 즐기게 해주는 방법이다. 단지 내 스스로 불면을 찾아가지는 않는다. 이놈이 찾아오면 맞아줄 뿐이다. 나는 자신이 있다. 동물은 자신의 신체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은 반드시 자도록 만들어졌으니까.” 맞는 말이다. 어쩌면 나의 내면에서 이런 고독을 그리워 했는지도 모른다. 몸은 여전히 무겁고, 눈꺼풀도 고되지만, 오랜만의 새벽 독서에 정신이 깨어난다. 내 안의 무언가는 분명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구본형 선생님은 불면을 즐기는 방법으로 거대한 프로젝트를 생각했다고 전한다. 10년 동안 10권의 책을 쓰겠다는 저술가의 꿈도, 이렇게 탄생한 듯 보인다. 나도 스스로를 한번 돌아봤다. 이대로 괜찮은지. 어쩌면 변화가 가장 절실한 시점은 아닌지 말이다. 그 생각을 남기고자, 이렇게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어느새 6시 반, 완연한 아침이 밝았다.
그래. 어쩌면,
나에게 새벽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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