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



땡. 1초가 지났다. 방금 1초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언뜻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노트북 자판에 손을 올리고, 검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를 약간씩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화면에는 이런 저런 글씨가 쓰여지고 있다. 그 순간, 땡. 다시 일초가 지났다. 그 사이 내 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심장은 쿵쾅 쿵쾅 뛰면서 온 몸에 피를 보냈을 것이고, 폐는 열심히 숨 쉬며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와 장은 소화를 시키고 있겠지. 뇌.. 그래, 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땡. 뇌는 ‘1초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을 이리저리 연결하면서 언어를 찾고, 연결하고 있을 것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어쨌든 내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땡. 땡을 치는 이 순간에도 일초는 계속 흐른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1초를 기다렸다. 나는 1초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을까? 아니, 1초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개념일까? 만약 내가 1초라는 개념을 전혀 모르는 아프리카 원주민이라고 치자. 지금 나와 시간 개념이 같을까? 완전히 다를까? 1초라는 시간의 단락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그저 ‘약속’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래. 시간의 개념이 떠올랐다. 그리스에선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2개 있다고 한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크로노스는 그야 말로 과거부터 미래로 일정 속도와 방향으로 기계적으로 흐르는 연속한 시간을 말하지만, 카이로스는 일순간이나 인간과 주관적 시간을 나타낸다. 1초를 그저 흘러가게 둔다면 우리 모두는 똑같은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를 살게 된다. 하지만, 그 1초를 관념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순간, 나는 일상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벗어나게 되고, 그 시간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흘러가는 시간, 즉 크로노스를 관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다르다. 그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그렇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니다. 내 앞에 놓여진 1초. 그것을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1초를 반기자. 기다리자. 그리고 맞이하자. 깨어있음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루 하루를 생생하게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그 하루가 과연, 그저 24시간이란 말로 표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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