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당신은 우주비행사다. 당신의 완벽한 하루를 설명하라.


위잉 위잉. 우주정거장 회전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오늘은 우주 비행 364일째. 드디어 내일이면 지구로 돌아가는 날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지퍼를 내리고 수면실에서 나왔다. 내가 가장 먼저 일어난 모양이다. 다들 매미처럼 이리 저리 매달려 자고 있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한편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짠하다. 한 모금 물을 마시고 나와 사령실로 들어갔다. 언제나 나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역시, 지구다. 태양계 셋째 행성이자, 인류의 고향 그리고 모든 생명의 어머니. 지구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지구는 푸른 베일을 감싼 신부와도 같다.”고 했고, 유진 서넌이란 우주인은 “지구는 우주의 오아시스다.”라고 했다고 하던데, 나에게 지구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파랗게 흔들리는 동공’처럼 보인다. 아무렇지 않은듯 침착하게 자전하고 있으나, 실은 고민 중인 느낌이다. "이 놈의 인류를 어떻게 해야할까"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예쁘게 보였을 것이다. 다른 생명들과는 달리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고, 자신의 자원을 제법 활용할 줄도 아는 모습이 기특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인류는 자신이 지구에 발을 닿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지구를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몇 차례에 거친 세계대전을 끝으로, 사실 지구는 마음이 돌아선지 오래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내일 다시 돌아갈 유일한 곳도 결국 지구다. 도망갈 곳도, 물러설 수도 없다. 자신의 ‘어머니’를 되살려야 하는 주체도 결국 돌아와야 하는 탕아, 인간이란 사실은 변치 않는다. 돌아가서 ‘지구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는다. 생각을 갈무리 하고, 아침을 먹었다. 마지막 우주식이라고 생각하니 그 지겹던 음식들도 꿀맛처럼 느껴진다. 2시간 근육 운동을 하고, 주어진 업무를 마무리했다. 어차피 내일이면 떠나야 하니, 대부분 후임에 대한 인수인계다. 저녁이 되자, 동료들이 나를 위한 깜짝 파티를 해줬다. 지난 1년의 생활을 압축된 영상으로 보니, 기분이 뭐랄까… 짧은 시간에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한 느낌이다. 처음 우주에 도착했을 때의 긴장. 처음으로 지구와 달, 그리고 태양을 바라봤을 때의 환희. 원치 않는 사고로 동료를 지구로 돌려보냈을 때의 분노. 일년 가까이 가족을 보지 못하는 슬픔 그리고 기나긴 외로움. 그간 겪었던 온갖 감정이 스크린처럼 지나갔다. 애써 준 동료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이제, 내일이면 다시 지구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우주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 새로운 가능성에 온 몸이 떨린다. 지퍼를 열고 수면실로 들어갔다. 눈을 감았다.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구나. 완벽한 하루의 조건은 바로,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것. 그것을 우주에서의 하루, 마지막에 조용히 깨닫는다. 


“지구를 떠나 보지 않으면, 우리가 지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제임스 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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