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메르스가 한창이다. 다들 걱정이다.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로 걱정이 없는 편이다. 걸리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지만 만약 걸리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각종 찌라시들과 기사들은 우리를 걱정과 염려에 중독되게 만든다. 이런 시기일 수록 우린 ‘염려’의 중독에서 깨어나야 한다. 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강의가 있어서 옮겨적어 보았다. 강의는 강신주가 했지만 편집자는 나다. 강의 내용을 충실히 구현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내 위주로 편집하게 되었다. 소제목도 그냥 지어봤다. 사실 그게 더 재미있는 작업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언어를 다시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나는 즐겁다. 다들 재미있게 보시길. 



제목 : 우리는 이미지 시대에 살고 있다.
강사 : 강신주

1.
우리 사회는 지금 철학자를 부른다.

요즘 바쁘다. 사실 철학자가 세상에 나와선 안 된다. 철학책을 본다는 것은 고민한다는 뜻이기에. 다시 말해 살기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되려 10년 전에는 사람들이 날 찾지 않았다. 생계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니 나를 찾는 것이다. 1997년 IMF를 경험하면서 우린 바닥을 알았다. 그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느낌 때문에 우린 불안한 것이다. 이 고민은 개인의 문제이면서 사실 큰 구조적 문제이다. 다만 철학자들의 주어는 ‘나’이다. '나는 어디에 직면해있는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인문학자들이다. 그 관점에서 살펴보자.

2.
다람쥐 쳇바퀴의 삶을 권하다.
 
우리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제도에 산다. 우리의 표와 재벌의 표 그리고 국회의원의 표가 같아지는 순간은 선거날 단 한번이다. 나머지 날엔 실질적으로 그들은 우리를 지배한다. 월급도 고민해봐야 한다. 그들이 왜 월급을 줄까? 쓰라고.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우리가 돈을 안 쓰는 것이다. 돈을 다 쓰면 어떻게 되는가? 다시 일해야 한다. 다람쥐의 삶과 다를바 없다. 그런 쳇바퀴 중에 좋은 쳇바퀴가 대기업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 좋은 쳇바퀴에 들어가라고 한다. 

3.
우리는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일까? 그것은 소비의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온 돈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본가들은 우리를 소비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보드리야르는 책 <소비의 사회>에서 말한다. 소비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붙어있는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우린 옷이 있다. 하지만 또 구입한다. 소비에 중독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소비를 통해 잠시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각종 영화, 드라마, 광고를 비롯한 미디어들은 소비를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거란 착각을 선사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심리학은 대부분 소비자 심리학으로 발달한다. 소비자를 연구해서 사게하기 위해. 요지는 이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필요를 구입하지 않는다. 

4. 
욕망의 집합체, 자본주의의 교육장 백화점.

자본주의의 첫번째 이미지는 욕망이다. 백화점은 자본주의의 교육장이다. 만약, 백화점에 부자들만 오게 하면 나중에 부자들도, 가난한 사람들도 오지 않게 된다. 서로를 통해 부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빈자들은 욕망을 느낀다. 돈을 벌겠다는 욕망, 나도 저곳에 속하겠다는 욕망.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광고는 시청률과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낚기 위해서 방송을 만든다. 실은 방송이 아니라 광고가 본질이다.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실, 광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자본, 광고와 결부되지 않을 때 진짜 가치있는 것이 출현한다. 

5. 
욕망과 염려를 파는 사회

경기가 좋을 때 자본주의는 ‘욕망’의 이미지를 만들고, 안 좋을 때 자본주의는 두 번째 이미지를 만든다. 염려의 이미지. 그래서 우린 연금도 들고 보험도 든다. 우린 아이들에게도 염려한다. "너 이렇게 살면 나중에 이렇게 이렇게 된다." 병원은 염려를 가장 잘 파는 곳이다. 진단을 하고, 아무 문제 없다고 하면서 돈을 받아간다. 우리의 염려로 돈을 버는 것이다. 우린 생수를 사 먹는다. 물은 누가 오염시켰나? 수 많은 공장들이. 그 공장이 다시 물을 팔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는 모든 것을 판다. 특히 지금의 우리 사회는 욕망보단 염려를 판다.

6. 
종교, 자본주의 그리고 인문학

인문학과 종교는 다르다. 종교는 먼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가까운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문학자들은 현재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내 아이와 남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인문학자들은 종교와 자본을 비판한다. 현재를 못 살도록 하기 때문에. 상상해보자. 만약, 당신의 아이가 1년 뒤에 죽는다고. 그럼 학원 보낼 것인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린 서로의 미래만 걱정한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관계는 사라진다. 미래에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꽃을 볼 수 있을까? 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염려의 이미지는 치명적이다. 나와 주위 사람들을 제촉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한다.  

7.
미래에 대한 염려를 줄이는 법

발터 벤야민은 말한다. '자본주의는 세속화된 종교다’라고. 왜냐면 자본은 미래를 팔기 때문이다. 우린 전문가들에 의해 걱정이 증폭된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괜찮을까? 아프지 않을까?" 하면서 그 사이에 병이 든다. 이 사회가 우리의 스트레스를 조장한다. 어떻게 해야 미래에 대한 염려를 줄일 수 있을까? 일단,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밖에 나가서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야 한다. 다만, 염려를 가중시키는 친구는 만나면 안 된다. 순간에 머물게 도와주는 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렇게 순간을 살기 위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8.
부처, 있는 그대로 사는 자
 
내일을 걱정하거나 10년 뒤를 걱정하고 있을 때 우린 현재를 살지 못한다. 당신도 아주 즐거웠던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있는 그대로(진여 여여 타타타)' 사는 사람을 부처라고 한다. 나의 세계에 집중하면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자유로운 사람들의 특징은 현재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면 사랑이 끝날 것을 걱정해서 사랑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인가? 그냥 살다가 꽃이 지듯이 죽으면 된다. 

9
돈은 좋은 관계를 위해 쓰는 것이다.
 
우리가 염려하는 동안 무엇이 사라질까? 관계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에 집중하는 순간, 자본주의는 힘을 잃는다. 우리는 보통 염려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험을 들고, 돈을 모은다. 만약, 그 돈으로 아이과 좋은 관계를 쌓는데 쓴다면 어땠을까? 나중에 아파서 누웠을 때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여러분 옆에 있을 것이다. 우린 내 미래가 두렵기 때문에 내 미래에 집중하느라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현재에 머물러야 관계가 생길 수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똑바로 서야 한다. 

10.
아이를 미래가 아닌, 현재에 머물게 하라. 

어떤 어머니가 서울역에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꼴난다.” 그 순간부터 아이는 자기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 아이는 과연 앞으로 엄마 걱정을 할까?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공포를 주입하는 순간, 염려는 되물림된다. 그 아이는 대학을 가든 어디를 가든 불안해한다. 아이를 잘 가르치는 엄마는 아이를 ‘현재’에 머물게 한다. 제대로 가르치는 엄마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학원 가지 말고, 나를 봐’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해야 한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친구나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다. 현재를 잡게 하라. 

11.
미래를 두려워하는 만큼 삶은 낭비된다.
 
영원한 현재. 여러분은 얼마나 현재를 잡고 있는가? 어제가 또렷히 기억나는가? 기억나지 않는 다면, 당신은 헛산 것이다. 현재가 차곡차곡 쌓이면 눈감을 때 웃을 수 있다. 미래는 공포가 아니다. 절대로. 한국처럼 공포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도 없다. 행복하고 싶으면 현재에 머물고, 불행하고 싶으면 미래에 머물라.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내 앞에 있는 풍경과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문화 예술이 위축되어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들 미래에 가있기 때문이다. 카르페디엠. 현재를 잡아라. 자기계발은 미래가 두려운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통해서 진짜 행복한 사람은 그 저자들이다. 나머지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인문학적 통찰들은 그곳에서 현재에 머물게 돕는다. 우린 싸워야 한다. 싸우지 못하면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사회가 아무리 미래를 요구해도, 우린 반드시 현재를 붙잡아야 한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만큼 삶은 낭비된다. 


강의 리뷰.

1. 
강의를 듣고 느낀 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다소 뜬금없지만 ‘경청’이다. 나는 지금까지 강신주 작가의 강의를 다른 곳에서도 많이 들었다. 인문학 강의가 워낙 붐이 일다보니 유투브에 ‘강신주’만 입력해도 엄청나게 다양한 강의가 뜬다. 그 많은 강의 중에서 아침마당을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경청의 힘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2013년 봄 쯤에 한번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모임이었는데, 대부분 40-50대 아주머니들이었다.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리고 그 경험은 내 인생의 손꼽히는 행복했던 강의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때 나는 느꼈다. "아, 강의라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이 강의를 듣고 참여하는 분들이 만드는 거구나." 라는 것을. 지식도 경험도 일천한 나였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에 하나 하나 귀를 기울여주고, 뭔가를 받아적기까지 하시고, 또 중간 중간 ‘아’ 하는 감탄사까지. 정말 완벽한 경청이었고, 나도 그 분위기에 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120%를 발휘할 수 있었다. 중간에 이런 생각까지 했다. “지금 이 말을 누가 하는거지?” 

좋은 강의는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아침마당의 특강을 본다. 거기는 정말 ‘숙련된 조교(아닌 아주머니)’들이 계신다. 무슨 말만 해도 ‘아~’ ‘오~’ ‘꺄르르’ 별 말 하지 않아도 엄청난 리액션이 쏟아진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당에서 좋은 강의를 많이 건진다. 강사들도 공중파 방송이기에 아무래도 준비도 많이 할 것이고, 시간도 딱 1시간이다. 그리 길지 않아서 좋다. 사족이 길었지만, 이것이 내가 이번 방송을 본 이유다. 

2. 
내용에서의 느낀 점은 이렇다. 결론은 ‘현재를 살아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끌어가는 과정이 아주 탁월했다. 유려하게 말과 글을 만들어내는 분이란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 논리도 심플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산다. 경기가 좋을 때는 욕망을, 경기가 나쁠 때는 염려를 파는 시대. 욕망도 염려도 결국 시선이 현재가 아닌 미래로 가게 하는 것이다. 미래로 가는 순간, 일상의 중요성, 관계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를 보자. 진리는 언제나 쉽다. 하지만 실천하긴 어렵다. 이번에 메르스 때문에 우리 사회는 또 걱정과 염려가 확장되고 있다. 물론 나도 걱정한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 얼마나 많은 구멍이 있는지도 안다. 그것과 관련해서 종사하는 분들은 정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그러한 ‘일어난 일’과 상관없이 증폭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해석’들이다. 이미 많은 어머니들이 걱정을 시작했다. 나도 이제 130일 된 아가를 키우는 아빠다. 걱정은 된다. 그리고 적당한 걱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치면 언제나 우리를 해친다. 한 독물학자가 말했다. “독이나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양이다.” 

현실적으로 대처할 것은 대처하되, 그 더 이상의 확대해석은 금물이다. 이러한 염려에 대응해서 무언가는 또 나올 것이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듯한 각종 상품과 서비스들. 이것만 구매하면 당신의 염려는 사라질 수 있다는 착각들. 거기에 속아선 안 될 것이다. 우린 스스로의 힘을 키워야 한다. 외부의 어떤 것도 우리를 궁극적으로 구원해줄 수는 없다. 배에 힘을 탁 줘야 한다. 만약 내일 내가 메르스에 걸린다면, 그건 걸린 것이다. 내가 최선의 대처를 했음에도 걸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그건 그때 생각해도 된다. 그러니 시선을 돌리자. 미래에 대한 걱정, 염려와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순간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엘리자베스 퀴슬러 로스 <인생수업>의 이 말을 기억하자. 

"죽음을 앞군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가장 놀라운 배움 중 하나는 삶은 불치병을 진단 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기의 머리를 만져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삶을 진정으로 만지고 맛보고 있나요? 평범한 것 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고 느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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