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조는 틀렸다. 
모두가 창조적이 되라고 강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창조에 대해선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열등감만 느끼게 한다. 창조는 틀렸다. 그건 신만이 할 수 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

그럼 창조가 아니라 창의성이라고 해보자. 창의성이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틀렸다. 창의성이란 듣도 보도 못한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 있는 것, 익숙해서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창의성이다. 다시 말해, 낯설게 하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이 창의성이다. 

그래서 나는 에디톨리지를 만들었다. 창조의 방법론. 편집학. 이것은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뜻이다. 모두 기존에 있던 것들이 새롭게 편집되었을 뿐이라는 것. 지금 정보는 넘처난다. 어느 때보다도 정보를 편집하는 편집자가 중요해진 세상이 된 것이다. 편집자가 권력을 가진 세상이 되었다. 

2. 편집학이란?
편집학은 자극, 정보, 지식으로 구성된다. 이 공간엔 수천가지 자극이 존재한다. 실험을 해보자.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이것을 <선택적 지각>이라고 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지각한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필요한지는 모른다. 

새로운 지식이란, 정보와 정보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즉, 정보의 맥락이 바뀌는 것. <도끼, 망치, 나무, 톱> 중에서 무엇을 뺄 것인가? 나무를 뺀 사람은 도구로 묶었고, 망치를 뺀 사람은 벌목으로 묶었다. 전자가 이론적 개념으로 정리된 추상적 지식이고, 후자가 맥락이 기반된 실천적 지식이다.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 

3. 마우스 혁명
<멍 때리기 대회> 우린 멍 때릴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멍할 때가 가장 창조적이고, 열심히 일할 때가 가장 비창조적이다. 열심히 한다는 건 이미 정해져있다는 뜻이다. 그건 이미 창조적이지 않다. 

천재와 맹구의 차이는 무엇일까? 천재도 맹구도 생각이 확 날라간다. 그러나 천재는 돌아오고, 맹구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처럼 옛날엔 천재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우스 덕분에 우린 천재가 될 수 있다. 날아가는 생각을 잡아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도구가 마우스다. 나는 주장한다. 마우스 덕분에 지식혁명이 시작되었다. 텍스트의 한계를 벗어나기 때문에. 

하이퍼텍스트란, 하이퍼링크를 통해 독자가 한 문서에서 다른 문서로 즉시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를 의미한다. 이렇게 마우스를 통해 사람들이 세상을 자발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새로운 분류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등등) 블로만가도 엄청난 지식이 넘쳐난다. 

그 결과, 지식권력으로서의 대학은 몰락했다. 미네르바 사건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알기 전, 대단한 경제학자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한방 먹은 것이다. 그는 전문대 출신의 무직자였다. 충격의 본질은 인터넷이 되는 곳에선 누구든지 편집을 통해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젠 대학이 설 자리가 없다. 

4. 맥락과 답의 관계
창조적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편집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집을 하기 위해선 맥락적 사고를 해야 한다. 어떤 사물을 볼 때마다 맥락과 관련지어서 말해보려고 해야 한다. 




A와 B의 색깔은 같은가? 사실 같다. 하지만 우린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
분명 다르다. 맥락은 답을 결정한다. 질문을 해보자. 
1)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2) 당신은 지난 달 데이트를 몇 번 했습니까?

뒤바꿔보면, 
1) 당신은 지난 달 데이트를 몇 번 했습니까?
2)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처럼 맥락이 달라지면 답도 달라진다. 그리고 사람도 맥락이 바뀌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남자가 군대에 가서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맥락이 남에 의해서 바뀌면 아주 힘들지만, 스스로 바꾼다면? 창조적 삶을 사는 것이다. 

5. 김정운 교수의 이야기 
3년 전, 일본에 가기 전 나는 탑이었다. 그런데 계속 화를 내고 짜증을 내더라. 그건 심리적으로 과부하의 증상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쓰고 있는 것.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안식년을 신청하고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사표를 냈다. 내 나이 50살에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했단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51살부턴 내맘 대로 하면서 살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엔 뭐 하고 싶은지 몰라서, 당황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은 안 한다고 바꿨다. 그 첫번째 조건이 학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좋은 교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봤더니, 지금까지 교수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 때문에 했던 것이었다. 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어릴 적 하고 싶었던 일,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일본의 미술전문대학에 입학했다. 그렇게 내 삶의 맥락이 바뀌니까, 내 생각이 180% 달라졌다. 그리고 가장 생산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너무나 외로웠다. 삶의 맥락을 바꾸기 위해서 외로움은 반드시 한번 경험해야 한다. 그게 무서워서 사람들은 관계로 도피한다.  

맥락을 바꿔라.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을 살아라. 유태인은 철저하게 일하고 철저히 쉰다. 안식일엔 절대 일하지 않는다. 창조는 열심히만 해선 결코 될 수 없다. 내 삶의 맥락을 주체적으로 바꾸기 위해선 외로운 시간, 휴식의 시간, 자기 반성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느낀 점.

삶은 편집이다. 맥락을 바꿔라. 물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정작 하는 것은 어렵다. 내가 예전부터 이 교수님을 좋아했었지만 지난 3년의 삶을 통해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 맥락에서 의사를 그만두고 어느샌가 그리스를 연구 중인 박경철 작가님도 존경한다. 주체적으로 삶의 맥락을 바꾸지 않으면 외부에 의해 바꿔지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그러하다. 1부는 여기까지 정리합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2부와 3부도 정리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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